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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필로소퍼 6호 | 독서일기 2019-04-30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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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뉴필로소퍼 NewPhilosopher (계간) : Vol.6 [2019]

편집부 저
바다출판사 | 2019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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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필로소퍼》는 이름으로 짐작할 수 있듯이, 철학을 탐구하여 독자들이 "보다 행복하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하는 계간지입니다. 얼마 전에 제가 리뷰하기도 했던 《우먼카인드》처럼 호주에서 창간된 잡지이고, 마찬가지로 한국판은 바다출판사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우먼카인드》보다 《뉴필로소퍼》를 먼저 알고 있었고 과월호도 다 모았는데요, 그것이 물론 다 읽었다는 것과 같은 말은 아니죠! 단행본이 아니라 잡지이다 보니 꼭 처음부터 다 읽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조금씩 골라서 읽곤 했는데, 이번호는 주제가 정말 흥미롭고 내용도 좋아서, 처음으로 한번에 완독했습니다. 6호에서 다룬 주제는 바로 '시간'입니다.


 우리가 가진 시간은 아주 짧다는 것, 우리는 모두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다는 것, 시간은 정말 소중하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는 것. 모두가 다 알고 있지만 시간을 낭비로부터 지켜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도 언제나 할 일은 많고 시간은 없다고 불평하는 것이 일상이지만, 의미 없이 스마트폰을 만지고 괜히 카톡과 SNS를 확인하는 시간만 모아도 쌓인 일을 거의 다 해결하고도 남을 것 같습니다. 특히 저는 아이폰을 사용하는데, 최근 아이폰 업데이트는 '스크린 타임'이라는 메뉴를 제공하여 스마트폰 화면을 하루에 몇 번이나 켜는지, 어떤 앱에 얼마나 시간을 쓰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저는 처음에 보곤 정말 깜짝 놀랐었어요. '내 시간이 다 여기로 갔구나!' 하는 깨달음을 바로 얻을 수 있었죠.


 《뉴필로소퍼》 6호에는 이런 우리가 공감하고 생각할 거리를 얻을 수 있는 글이 많습니다. 《가디언》 기자이자 작가인 올리버 버크먼은 <시간 도둑을 잡아라>라는 글에서 어떻게 오늘날의 관심경제가 사람들의 시간을, 곧 사람들의 수명 일부를 훔치는지 보여줍니다.


 현대 심리학의 창시자 윌리엄 제임스는 "내 경험은 내가 관심을 쏟기로 동의한 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달리 말하면, 관심이 곧 인생이라는 것이다. 인생은 결국 한 사람의 관심 범위를 채우는 요소들의 총합이다. 그런 점에서 관심경제가 주된 사업인 기업들이 우리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하면, 그들에게 삶을 영위하는 우리만의 방법을 부분적으로나마 좌우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과 같다. 기술철학자 제임스 윌슨 윌리엄스는 관심을 쏟는 행위가 "관심을 쏟을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모든 것, 추구하지 않은 모든 목표, 만약 다른 일에 관심을 쏟았다면 얻을 수 있었을 모든 가능성"을 지불한다는 의미와 같다고 말한다. 관심을 쏟는 일은 결국 가능한 다른 미래를 포기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p.20-21)


 한편 철학과 교수 마리아나 알레산드리는 <시간이 없다고 말하기 전에>에서, 우리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짧은 순간들을 잘 사용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줍니다. 본인은 갓 태어난 아들을 돌보면서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권을 읽었고, 그 덕분에 아들 둘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시간의 중요성과 함께 행복을 충만하게 느꼈다고요.


 프루스트는 사람들이 대체로 내던지는 기억을 음미했고, 밴더캠은 사람들이 대체로 내던지는 짧은 순간을 음미했다. 밴더캠은 프루스트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가장 칙칙한 시간을 화려한 총천연색으로 바라본다. 그는 출퇴근이나 장보기 시간처럼 가장 따분한 순간을 주목하라고 우리 앞에 내민다. 밴더캠의 손에서 무료한 일상은 우리가 사랑에 빠질 수도 있는 무대처럼 보인다. 프루스트가 다들 불모지라고 생각했던 땅에서 기억을 우아하게 길러낸다면, 밴더캠은 우리 쓰레기통을 우악스럽게 뒤져서 우리가 잃어버린 시간을 구해낸다. (p.94)


 이번에는 철학잡지답게, 조금 더 철학적인 관점에서 시간에 대해서 생각해 볼까요? 철학과 교수 휴 프라이스는 <시간에는 방향이 존재하지 않는다>에서 시간에 대해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여러 관점들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시간이 오직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시간에는 방향성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기술철학자인 톰 챗필드는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에서 시간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설명합니다. 물리학 교수인 카를로 로벨리는 <시간은 각각의 '지금'들의 총합이다>에서 사람들이 시간을 생각하는 방식이 어떻게 달라져 왔는지, 물리학에서의 시간 개념과 인간이 느끼는 시간 개념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설명합니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경이로운 생각들이 담긴 글이라고 느꼈습니다.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소설이 빠지면 섭섭하죠. 시간을 독특한 방식으로 다루며 독자들에게 재미와 생각할 거리를 함께 주는 소설은 아주 많은데요, 《뉴필로소퍼》는 그 중에서도 시간여행을 다룬 소설들을 소개합니다. 목록 중에서 제가 읽은 책은 오드리 니페네거의 『시간 여행자의 아내』, 클레어 노스의 『해리 오거스트의 열다섯 번째 삶』 두 권입니다. 사두기만 했거나 읽다 만 책으로는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 허버트 조지 웰스의 『타임머신』, 아이작 아시모프의 『영원의 끝』, 커트 보니것의 『제5도살장』 등이 있네요. 특히 『크리스마스 캐럴』은 지난 크리스마스에 읽고 리뷰를 올리려다가 결국 올해로 미뤘는데,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꼭 완독 후 리뷰를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다른 소설들도 꼭 읽어보고 싶고요.


 이번 《뉴필로소퍼》를 통해 저는 우리가 평소에 아주 당연하게 경험하고 느끼는 '시간'을 낯설게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낯설게 바라보는 경험은 물론 그 자체로도 재미있지만, 제게 매일 주어지는 시간을 어떻게 써야 제 인생을 더 충만하게 보낼 수 있을지 깊게 생각할 기회 또한 주었습니다. 이게 바로 철학의 재미이겠죠. 《뉴필로소퍼》는 이런 철학의 재미를 쉽게 느낄 수 있도록 독자들을 이끌어 주는 잡지입니다. 저는 이번 호를 정말 흥미롭게 읽어서 빨리 과월호들도 읽고 싶어졌어요. 더 많은 분들이 《뉴필로소퍼》를 통해서 이런 철학의 재미를 느끼시길, 그리고 평소에 당연히 여기던 것들을 새로이 바라보며 더 다양한 관점을 경험하고 깊은 생각을 해보시길 바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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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변호인 | 영화일기 2019-04-28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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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세상을 바꾼 변호인

미미 레더
미국 | 2019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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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에 본 영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에 이어, 역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를 다룬 영화 <On the Basis of Sex>를 보았습니다. 한국어 제목으로는 <세상을 바꾼 변호인>인데, 번역된 제목이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네요. 아직 정식 개봉은 하지 않았지만 이번에 CGV 아트하우스에서 특별 기획전을 하여 미리 볼 수 있었고, 정말 만족스러웠습니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를 본 후 보아서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었고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삶과 커리어를 전반적으로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와는 달리 <세상을 바꾼 변호인>은 배우 펠리시티 존스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역할을 맡은 전기 드라마 영화입니다. 미국에서는 작년 크리스마스에 개봉했고요. 이 영화는 루스가 하버드 로스쿨에 입학하는 장면으로 시작하여, 중간 과정을 빠르게 훑은 후 하나의 사건에 집중합니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가 변호사로서 처음으로 맡았던 성차별 소송으로, 찰스 모리츠라는 한 남자가 국세청을 상대로 소송한 일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영문)


 이 영화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가 이 사건을 맡게 된 경위, 그리고 승소하기까지의 여러 과정들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워낙 그가 해온 일들이 대단하고 또 많기 때문에 지금 와서 보면 그 하나하나의 어려움과 중요성이 잘 느껴지지 않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상을 바꾼 변호인>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가 이 하나의 소송을 다루며 얼마나 많은 장애물에 부딪혀야 했는지, 어떻게 이를 헤쳐나갔는지를 보여줍니다. 법정에서 그가 했던 말 한마디, 그가 쓴 글 한 줄이 얼마나 어려운 과정을 거쳐 나온 것인지, 그 한 걸음이 모이고 모여 어떻게 미국을 바꾸어 놓았는지를 보니 존경심도 들었고, 또 가슴이 뛰기도 했습니다. 저도 제가 선 자리에서 이런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라는 존재 자체가 저에게, 또 다양한 차별과 싸우는 사람들에게 큰 위안과 응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정식으로 개봉하면 몇 번이고 더 보러 영화관에 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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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 | 독서일기 2019-04-24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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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레오나르도 다빈치

월터 아이작슨 저/신봉아 역
arte(아르테) | 2019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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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터 아이작슨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참 흥미로운 책입니다. 먼저 저자 월터 아이작슨은 작가이자 저널리스트로서 아인슈타인, 벤자민 프랭클린, 스티브 잡스 등의 전기를 쓴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가 이번에는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창의적인 사람으로 꼽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전기를 썼습니다. 물론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우리에게도 아주 잘 알려져 있습니다. 「모나리자」, 「최후의 만찬」 등을 그린 화가이면서 동시에 발명가, 과학자, 해부학자, 건축가 등으로서 놀라운 흔적을 남긴 사람이죠. 하지만 그가 정말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환경에서 태어나 어떻게 자랐으며 개인적인 삶은 어떠했는지는 보편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저도 그에 대해서는 르네상스 시기에 활동했던 유명하고 대단한 천재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이 두꺼운 책이 그에 대한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책을 펼쳐들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이탈리아에서 1452년 4월 15일에, 공증인 피에로 다빈치의 사생아로 태어났습니다. (공증인은 당시 이탈리아의 상업 경제가 부흥하면서 상업 계약서, 토지 거래 계약서, 유언장 같은 법률 문서를 라틴어로 작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다비치가 사생아로 태어난 것은 어찌보면 정말 다행인 일이었습니다.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시대는 사생아로 태어난 것을 대외적으로 망신스러운 일이라고 보지 않았고, 사생아가 아니었더라면 집안 전통에 따라 공증인이 되어야 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그는 사생아였기 때문에 '라틴어 학교'로 보내지지 않았는데, 당시 그 학교에서는 고전과 인문학을 주로 가르쳤다고 합니다. 레오나르도는 주산 학교에 다닌 것 외에는 주로 독학을 했고, 덕분에 평생에 걸쳐 끊임없는 경험과 실험을 통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


 다양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뒤섞이면서 각기 다른 분야의 아이디어를 융합하는 것은 일상이 되었다. 실크 제작자는 금박공과 협업해 눈길을 사로잡는 패션을 창조했다. 건축가와 예술가는 힘을 모아 원근법을 발전시켰다. 나무 조각가는 건축가를 도와 피렌체의 교회 108곳을 장식했다. 상점은 공방으로 상인은 자본가로, 장인은 예술가로 변모했다. (p.48)


 이질적인 분야의 아이디어들을 융합할 줄 아는 창의성을 격려하는 분위기가 피렌체의 축제 문화 위에 양념처럼 더해졌다. 좁은 골목에서 직물 염색업자와 금박 세공업자가 나란히 일했고, 그 옆집에는 렌즈 제작자가 일했다. 그들은 쉴 때면 광장으로 가서 열띤 토론을 벌였다. 폴라이우올로의 작업실에서 젊은 조각가들과 화가들은 인체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해부학 연구를 했다. 예술가들은 원근법을 배우고 빛의 각도에 따라 어떤 그림자와 깊이감이 만들어지는지 공부했다. 무엇보다 당시 문화는 각기 다른 분야를 깊이 공부해 접목하는 사람들에게 보상을 제공했다. (p.51)


 1400년대 피렌체는 예술, 기술, 상업이 복잡하게 얽힌 형태로 바뀌면서 번성했습니다. 금융의 중심지였고, 상업과 예술은 번영했고, 많은 사람들이 글을 읽을 수 있었으며 유명 대학교가 있었고 부유한 가문이 가득했습니다. 중산계급은 비교적 최근 부를 얻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예술가들을 후원했습니다. 빈치에서 태어났던 레오나르도는('다빈치'는 '빈치 출신'을 뜻하는 기술어라고 합니다.) 열두 살에 아버지를 따라 피렌체로 이주하는데요, 이런 환경에서 성장한 것은 물론 그에게 큰 행운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관심사가 너무 다양해서 쉽게 주의가 산만해지는 학생이었고, 이러한 기질은 평생 계속되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주산 학교를 끝으로 정규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열네 살쯤 아버지의 고객 중 한 명이었던 안드레아 델베로키오 밑에서 도제 교육을 받기 시작합니다. 다재다능한 예술가 겸 기술자였던 베로키오의 밑에서 레오나르도는 과학과 예술 등을 배웠고 공방의 작품을 만드는 데 기여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어려서부터 놀랍도록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보였고 그림도 잘 그렸지만, 이 책을 읽으면 알 수 있듯이 그저 타고나기만 한 천재는 절대 아니었습니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그의 노트에는 할 일 목록이 적혀 있는데, "밀라노와 밀라노 교외의 크기를 측정하기, 수학 잘하는 사람을 찾아 삼각형과 같은 면적의 정사각형 작도하는 법 배우기, 거위의 발 관찰하기, 딱따구리의 혀를 묘사하라" 등 종잡을 수 없이 다양한 분야의, 때로는 기이하기까지 한 내용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식으로 세상의 거의 모든 분야에 대해 끊임없이 호기심을 가지고 공부했으며, 놀라운 관찰력으로 스스로 실험해서 배운 것도 많았지만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서도 많이 배웠습니다.





 이 책은 레오나르도의 그림과 메모들을 잔뜩 보여주는데요, 특히 제가 가장 매료된 것은 그의 해부도입니다. 레오나르도는 평생 그림을 그리면서 근육, 힘줄, 신경, 뼈 등에 대해 공부했고 동물과 사람의 시체를 수없이 해부하며 엄청난 양의 메모를 남겼습니다. 그 중에서도 그가 해부학 초기 연구 당시 그렸던 인간의 두개골 그림은 정말 정말 놀랍습니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겐 별로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당시로서는 이렇게 반으로 나뉜 두개골을 함께 그린 것 자체가 획기적이었고 그림 자체도 아름답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또한 「암굴의 성모」를 그리기 위한 습작으로 알려진 「젊은 여자의 머리」도 정말 놀라운 그림입니다. 이토록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작품이 존재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지요? 그가 빛과 그림자를 나타내기 위해 어떻게 선을 이용했는지 자세히 보면 볼수록 절묘하고 기가 막힙니다.





 그림에 얽힌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었던 작품은 단연 「최후의 만찬」입니다. 레오나르도는 그림을 그릴 때 그 그림이 감상되는 위치까지 고려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최후의 만찬」은 아주 커다란 그림이고 벽화이기 때문에 절대로 모든 관람객이 동일한 위치에서 감상할 수 있는 그림이 아닙니다. 정면에서, 측면에서, 혹은 걸어가면서도 그림을 볼 수 있죠. 그래서 레오나르도는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자연 원근법과 인공 원근법을 섞은 '복합 원근법'을 이용해 그림을 그렸고, 어디에서 보더라도 그림이 덜 왜곡되어 보이게 하기 위해 착시를 유발하는 온갖 속임수를 사용했습니다.


 그림도 그림이지만, 그의 놀라운 관찰력과 사고가 가장 잘 드러나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부분은 12장 <기계학>이 아닌가 합니다. "움직이는 물체는 출발 지점에서부터 시작된 이동 경로를 유지하려 한다."라며 200년 후에나 뉴턴이 정리할 관성의 법칙을 예견하는 듯한 메모를 남겼고, 영구기관의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하며 결국 이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또한 영구운동의 방해 요소가 되는 마찰의 존재를 깨닫고는 다양한 실험을 했는데, 이를 통해 물체와 경사면의 접촉면 넓이가 마찰력을 결정하는 요인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심지어 나무의 마찰 계수를 측정했는데 이는 실제 값과 거의 맞아떨어진다고 합니다. 게다가 그는 경사면을 미끄럽게 만들면 마찰을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여 기계장치에 윤활유를 주입한 최초의 기술자 중 한 명이 되었다고 하는데……. 쓰면서도 정말 황당합니다. 이 한 명의 사람이 이뤄낸 모든 것이 놀랍고, 또 그가 자신의 연구들을 발표만 했어도 세상이 얼마나 바뀌었을지 상상하게 됩니다. 이 장을 통해서는 그가 그림을 어떻게 사고의 도구로 활용했는지도 엿볼 수 있는데, 이 장을 읽으며 저는 진지하게 그림을 제대로 공부해 볼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물론 평생을 그려도 그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겠지만, 그런 것을 떠나서 그림을 활용해 생각하고 실험하는 것이 얼마나 유용한지 레오나르도를 통해 깨닫게 되었거든요.


 이처럼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삶, 그의 작품들, 그가 살았던 시대 등에 대해 알 수 있는 재미있고도 훌륭한 책입니다. 또한 이 책을 통해 '창의성'이나 '혁신'이라는 것이 등장하기 위해서는 어떤 환경이 필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우선 개인으로서는 다양한 분야에 호기심을 가지고 계속 공부해야 하고, 다른 사람들과 협력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시대를 잘 타고나는 것도 아주 중요합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르네상스 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사생아였고, 동성애자였고, 왼손잡이였지만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었습니다. 구텐베르크는 출판사를 열었고, 지식은 폭발했고, 보기 드문 평화의 시대였으며 예술 후원자가 많던 시기였기 때문에 레오나르도를 비롯한 다양한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었죠. (물론 레오나르도는 거의 평생에 걸쳐 안정적인 후원자를 찾아다녔지만요.) 과연 우리들이 사는 지금 이 곳, 이 시대가 다양성을 장려하고 창의성을 자극하며 사람들이 자신의 꿈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환경인지 이 책을 읽으며 고민해 보았습니다. 역시, 그렇다고 보기엔 조금 어렵겠지요.


 하지만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읽는 것만으로도 그 시대를 충분히 간접 경험할 수 있습니다. 저는 레오나르도의 수많은 메모와 그림을 보면서, 책에 묘사된 르네상스 시대의 피렌체와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정말 많은 자극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아마 많은 독자분들이 이 책을 읽은 후 하늘은 왜 파란지, 딱따구리의 혀는 어떻게 생겼는지 한번쯤은 궁금해하지 않을까요? (이 책에 답이 나와 있습니다!) 가끔은 자신의 분야와 전혀 관련이 없는 책을 한 권이라도 읽고, 세상에 전혀 쓸모도 없을 것 같은 지식을 탐구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될 수도 있죠. 바로 거기서 모든 것이 시작될지도 모릅니다. 이 방법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자신의 인생을 통해서 보여준 창의성의 비밀이니까요.


 레오나르도와 관계된 일이 늘 그렇듯, 그의 예술과 인생, 그의 출생지부터 이제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는 신비로운 베일이 드리워져 있다. 우리는 딱 떨어지는 선으로 그를 묘사할 수 없고,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다. 레오나르도 역시 「모나리자」를 그런 식으로 그리고 싶지 않았으리라. 약간은 우리의 상상에 맡겨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도 알고 있었다시피, 현실 속의 윤곽선은 필연적으로 흐릴 수밖에 없고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약간의 불확실성을 남겨둔다. 그의 삶에 가까이 다가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가 이 세상에 접근하며 사용했던 방법과 똑같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이 세상의 무한한 경이에 감탄하며. (p.652)



*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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