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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독일인의 삶 | 독서일기 2020-02-28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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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어느 독일인의 삶

브룬힐데 폼젤 저/토레 D. 한젠 편/박종대 역
열린책들 | 2018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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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히틀러의 최측근이자 나치 선전부 장관이었던 요제프 괴벨스의 비서로 3년간 일했던 브룬힐데 폼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책을 읽기 전까지 괴벨스에 대해서 거의 몰랐고 이 책도 아주 우연히 접했는데요, 기대했던 것보다 재미있었고 흡인력이 있어 금세 다 읽었습니다. 굉장히 많은 생각을 이끌어내는 책이었고요.


 브룬힐데 폼젤은 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힘든 시기에도 비교적 잘사는 부류에 속했습니다. 동시에 정치에는 별다른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습니다. 공부도 비교적 잘했지만 중학교 1학년을 끝으로 학교를 관둬야 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딸의 교육을 위해 돈을 더 쓰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죠.


 내 눈에는 사무실로 출근하는 부인들이 아주 멋져 보였어요. 비서나 사무원, 또는 보험회사 영업 직원 같은 사람들이었는데, 나도 꼭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우연히 구인 광고를 통해 후한 월급을 받는 직장에 취업한 폼젤은 회사에서 일하면서 저녁에는 상업고등학교에 다녔습니다. 학교에 다닐 때부터 속기를 좋아했고 아주 잘했던 폼젤은 훗날 이 속기 기술을 통해 방송국을 거쳐 선전부에도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모든 것이 좀 분열되었던 시절이었어요. 당시 난 사랑에 빠진 젊은 여성이었을 뿐이에요. 나한테 중요한 건 그거였어요. 게다가 벌써 오래 지난 일이에요. 지금은 더 이상 그때 상황으로 돌아가 생각하기가 어려워요. 그때는 그냥 그랬어요. 그냥 휩쓸려 들어갔어요.


 히틀러가 권력을 잡은 이후 폼젤은 방송국에서 일할 기회를 잡습니다. 방송국에서 일하기 위해 당원이 되었고, 꽤 괜찮은 월급을 받으며 몇 년 동안 즐겁게 일하죠. 그러다 점점 유대인 탄압이 심해지고, '강제 수용소'라는 말이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유대인 친구와 그 가족은 하나둘 사라지고, 유대인에 대한 폭력이 눈에 보일 정도로 심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합니다.


 그래도 우린 살아갔어요. 계속 불안과 공포에 떨고 눈물을 흘리고 도망치면서 살 수는 없지 않아요? 그래요, 우린 그래도 살아갔어요. 일상이라는 게 그런 거니까요. 게다가 베를린 사람에게는 그나마 나름의 보상이 있었어요. 사탕이나 초콜릿 같은 것들을 받고, 커피 배급량이 늘고, 또 다른 특별한 물건들을 배급받았으니까요. 그래서 그런지 수도에 사는 사람들은 잠잠했어요. 얌전하게 순응했죠. 사실 그런 상황에서 누가 정권에 반기를 들겠어요? 조금이라도 힘이 남은 사람은 대부분 전쟁에 끌려갔어요. 남은 사람이라고는 힘없는 여자와 아이들, 병자, 상이용사들뿐이었어요. 모래알처럼 날리고 힘없는 오합지졸이죠.


 어느 날 나치 선전부에서 여자 속기사 하나를 필요로 했고, 평소에도 원하는 대로 방송국 인원을 차출하곤 하던 선전부는 방송국에서 속기로 제일 유명했던 폼젤에게 면접을 보러 오라고 통보합니다. 그리고 면접을 보러 가서 바로 출근까지 통보받죠. 결국 폼젤은 쿠르트 프로바인이라는 괴벨스 수행 비서의 밑에서 일하게 됩니다. 프로바인은 괴벨스의 그림자와 같은 사람이었고, 폼젤은 그 밑에서 여러 가지 문서를 정리하는 일을 맡습니다.


 정권에 저항한 사건들이 언론에 보도되는 경우는 없었어요. 백장미단 사건도 그랬어요. 최소한의 내용으로 제한되었죠. 당시 그 사건이 일어났던 뮌헨에서는 그게 어떤 식으로 보도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쨌든 우리는 그 사람들에게 무척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있었어요. 젊은 사람들이었거든요. 그것도 아직 대학생이었죠. 그런 젊은이들을 즉시 처형해 버린 건 너무 가혹했어요. 누구도 그걸 원치 않았어요.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그 사람들도 어리석었죠. 어떻게 그런 일을 계획할 생각을 할 수 있어요? 그냥 입을 다물고 살았다면 지금도 살아 있지 않겠어요? 그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이 그랬어요.


 나는 유대인 수송차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다만 들리는 말로는 유대인들을 잔뜩 태운 화물차들이 베를린 거리를 질주했다고 해요. 그건 사실일 거예요. 그건 나도 부인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그런 차를 직접 보지는 못했어요. 슈테클리츠 거리에는 그런 차가 지나가지 않았어요. 우리 동네는 한적한 교외였으니까요. 거긴 그런 차들이 없었어요. 1933년 이전에도 적색 전선 차량 하나 지나가지 않은 동네였어요. 베를린 시내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죠. 우리 동네는 정치와 담을 쌓고 있었어요. 사람들도 그렇게 살았고요. 그냥 변두리였어요. 세상일에서 비켜난 변두리요.


 폼젤은 선전부에서 일하며 방송국에서 받았던 괜찮은 월급보다도 훨씬 많은 월급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살 수 있는 물건이 없었기에 돈 쓸데가 별로 없었다고 말합니다. 디자이너가 만든 좋은 옷을 입고, 불법으로 유통되는 비싼 버터와 코냑을 구하고, 방송국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향수 같은 선물을 받기도 했다고는 하지만 말이에요.


 아무튼 난 남들보다 지내는 형편이 괜찮았어요. 약간 선택받은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거기서 일하는 것이 만족스러웠어요. 모든 것이 편했고 마음에 들었죠. 쫙 빼입은 사람들, 친절한 사람들……. 그래요, 난 그 시절 껍데기로만 살았어요. 어리석게도요.


 하지만 이 행복한 삶은 오랫동안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히틀러가 죽었다는 소문이 들려오고, 결국 몰락의 순간이 찾아오고 말죠. 폼젤은 선전부 내의 벙커에 마지막까지 남았다가 결국 러시아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소련의 수용소에 수감되었고, 5년 뒤에 석방되었습니다.


 지금 입장에선 당연히 이런 의문이 들 수 있어요. 나치에 대항할 수는 없었느냐고요. 하지만 그건 불가능했어요. 목숨을 걸어야 했으니까요.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그런 예도 충분했어요. 나치가 저지른 일들이 엄청난 범죄였다는 사실은 나중에 확실히 깨닫게 되었어요. 하지만 당시에는…… 그 당시에는…… 우린 모두 나치 선전에 완전히 속아 넘어갔고, 완전히 말려들어갔어요. 그건 당연히 어리석은 짓이었죠. 하지만 다른 정보나 접촉이 없는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었어요. 당시에 외국의 누군가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됐겠어요? 그런 사람은 거의 없었죠.

 나치에 저항했던 사람들이 소수 있었지만, 그게 결과적으로 누구한테 도움이 됐나요? 그 사람들만 목숨을 잃지 않았나요? 오히려 국가에 다른 뭔가를 기대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았어요. 그래서 추천을 받아 하루라도 더 일찍 당에 가입하려고 했어요. (...)

 나는 그런 정치적인 소용돌이 속으로 나도 모르게 끌려 들어갔지만, 그래도 항상 그런 것들과는 거리를 뒀어요. 그런 것들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도 않았고요. 어떻게 하면 그렇게 끌려 들어가지 않을까 하는 방법도 몰랐을 거예요. 잘못된 사람들을 따르는 어리석은 사람들은 항상 있기 마련이에요. 물론 그로 인해 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지만요. 지금 생각하면 나는 다시는 그런 일을 반복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사람들이 거기서 깨달음을 얻었을지는 모르겠어요.


 그런데 나는 러시아인들이 나만 꼭 집어서 잡아간 것이 전적으로 부당하고 잘못된 일이라고 느꼈어요. 왜냐하면 나는 괴벨스 밑에서 타자를 친 것 말고는 한 일이 없었기 때문이죠.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뭐라도 한 게 있다면 책임을 져야겠죠. 하지만 난 아무것도 한 게 없어요. 그냥 러시아 군인들이 선전부 지하 벙커로 들이닥쳤을 때 불행하게도 집에 남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버리고 거기에 가서 붙잡힌 것뿐이에요.


 영원히 풀릴 것 같지 않던 책임에 대한 문제만큼은 스스로 답을 일찍 찾았어요. 그래요, 난 책임이 없어요. 어떤 책임도 없어요. 대체 뭣에 책임을 져야 하죠? 아무리 생각해도 난 잘못한 게 없어요. 그러니 져야 할 책임도 없죠. 혹시 나치가 결국 정권을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독일 민족 전체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그건 어쩔 수 없지만요. 그래요, 그건 우리 모두가 그랬어요. 나도 물론이고요.


 내 책임은 전혀 없다, 그 당시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관심이 없었다, 몰랐다, 그냥 그렇게 된 것이다…. 이런 어이없는 자기변명과 외면은 참 황당하고, 일견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몰랐으면 죄가 없는 건가요? 심지어 몰랐다는 말이 진짜이긴 한가요? 하지만 만약 우리가 그 시대로 돌아간다면, 브룬힐데 폼젤의 위치가 된다면 과연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요? 그가 말한 대로 거기서 무언가 행동을 한다는 건 곧 목숨을 거는 것과 같았을 것이 틀림없죠. 그런 상황에서 우린 목숨을 걸고 행동할 수 있었을까요? 그 행동은 얼만큼의 의미를 가질 수 있었을까요?


 굳이 그 시대, 그 상황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우리가 지금 처한 시대와 상황 역시 그때와 비슷한 점이 많아 보입니다. 목숨을 건 행동까지 필요한 상황은 아닌 것 같지만 책임을 전가하고, 관심을 가지지 않고, 모르는 척하는 건 여전하죠. 어쩌면 이건 인간의 본성일까요? 그렇다면 우리가 감히 그를 욕할 자격이 있나요? 언제나 질문만 잔뜩 던지지만, 그래도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을 멈추지 않아야겠다는 다짐만큼은 매번 하게 됩니다. 언젠가는 저만의 답을 찾고 행동할 수 있는 날이 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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