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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높은 산_ 이곳이 '집'이다 | 나의 서재 2017-11-27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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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저/공경희 역
작가정신 | 2017년 1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한 세기에 이르는 시간을 관통하여 삶과 죽음, 신과 믿음이라는 웅대한 주제를 능숙하게 조직한 '이야기 대가'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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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기에 이르는 시간을 관통하여 삶과 죽음, 신과 믿음이라는 웅대한 주제를

능숙하게 조직한 '이야기 대가'의 귀환!

 

 

 

   이것은 '집'에 관한 이야기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추억으로 쌓아올려 서로를 향한 의미로 채운 공간에 관한 이야기다. 번지와 호수로 그 존재를 설명할 수 있는 따위의 것들이 아니라 나와 당신의 이야기가 있는 곳이 곧 집이 되는 삶의 정체성에 관한 소설이다. '기억과 의미가 머물러 있는 집', '현재를 살아가는 집', '앞으로 살아가야 할 집'에 대해 생각하게 함으로써 내 삶의 목적과 가치란 바로 이러한 것들을 찾아나가는 여정 속에 있음을 깨닫게 하는 위대한 서사이기도 하다.

 

 

 

여기가 집이야, 여기가 집이야, 여기가 집이야

 

 

   <포르투갈의 높은 산>은 <파이 이야기> 이후 무려 15년 만에 출간된 얀 마텔의 신작이다. <파이 이야기>가 망망대해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신과 진정한 믿음의 합일을 통해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한 소년의 모험기라면, <포르투갈의 높은 산>은 저마다 상실의 아픔을 지닌 각각의 인물들이 삶의 목적과 나아갈 방향을 찾아가는 일련의 여정을 담아낸 것으로 다른 시대, 다른 공간에 살던 인물들이 '포르투갈의 높은 산'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마침내 그것이 마치 하나의 이야기인 듯 거대한 서사로 완성되는 마법 같은 스토리다. 1904년부터 1981년까지 각기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세 이야기를 절묘하게 하나로 엮은 이 뛰어난 역작은 '이야기의 대가'라는 그의 수식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강렬하고 장엄한 스토리, 환상 미학, 삶과 죽음 앞에서 마주하게 되는 철학, 기발한 상상력과 은유까지 겸비한 완성도 높은 작품임에 틀림없다.

 

 

 

사랑은 집이다. 매일 아침 수도관은 거품이 이는 새로운 감정들을 나르고, 하수구는 말다툼을 씻어 내리고, 환한 창문은 활짝 열려 새로이 다진 선의의 싱그러운 공기를 받아들인다. 사랑은 흔들리지 않는 토대와 무너지지 않는 천장으로 된 집이다. 그에게도 한때 그런 집이 있었다. 그것이 무너지기 전까지는. / 35p

 

 

 

 

 

 

   소설은 3부에 걸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현재, 내 삶의 전부로 상징되는 '집'을 잃은 세 남자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1부인 '집을 잃다'에서는 1904년 무렵 포르투갈의 리스본 지역을 배경으로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를 잃은 뒤, 연이어 아버지의 죽음까지 맞게 된 토마스가 등장한다. 예측 불가능했던 죽음이었기에 더욱 큰 상처가 되었을까, 이 가혹한 비극 앞에서 견딜 수 없었던 그는 그때부터 1년째 '뒤로 걷기'를 실천한다. 그에게 있어서 뒤로 걷기는 죽은 자들을 위한 애도가 아니라 세상을 등지고, 신을 등짐으로써 '반발'하는 은유와 상징의 행위였다.

 

 

 

바람, 비, 태양, 벌레들의 습격, 침울한 타인들, 불확실한 미래 등을 감당하는 데에는 뒤통수나 재킷의 등판, 바지의 엉덩이 부분같이 방패막이가 되어주는 것들이 더 적합하지 않냐고. 그런 것들이 우리의 보호막, 우리의 갑옷이라고. 그것들은 예측불허의 변화를 가져오는 운명을 견디도록 되어 있다고. 또한 뒤로 걸으면 더 섬세한 부분, 즉 얼굴, 가슴팍, 옷에 멋을 더하는 세부 장식을 앞쪽의 잔인한 세상으로부터 가릴 수 있고, 그 익명성은 돌아보고 싶을 때 간단히 몸을 돌림으로써 자발적으로 깨뜨리는 거라고 말했다. / 18p

 

 

 

   고미술 박물관에서 근무 중이었던 토마스는 일을 하다 우연히 1631년부터 기록된 율리시스 신부의 한 일기장을 발견하게 된다. 일기는 율리시스 신부가 기니 만에 있는 상투메 섬에 머무르며 사제 활동을 했던 때를 기록한 내용이다. 율리시스 신부는 15세기 말부터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상투메 섬을 가리켜 '이 주머니는 망연자실한 아프리카의 영혼들로 짤랑거린다'고 표현할 만큼 불화하는 권력자들의 섬이자 아프리카 노예 무역지인 이곳에서 질병과 고독, 적막과 분노, 철저히 이방인으로 취급되어 고립된 백인의 심정으로 점차 환멸을 느끼게 된다. 목적의 상실로 인해 품게 된 깊은 회환, 상투메 종교 당국과의 분열로 결국 파문이라는 혹독한 조치를 당한 그는 마침내 기독교를 발칵 뒤집어 놓을 만한 기이한 십자고상을 만들게 된다.

 

 

 

   토마스는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집'을 잃어버린 자신의 모든 불행이 율리시스 신부가 상투메에서 겪은 모든 불행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하며, 그가 만든 십자고상을 자신이 찾아내고 말겠다는 기묘한 끌림에 휩싸이게 되고 그것이 있다고 추정되는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향하기에 이른다.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가는 기나긴 여정을 동행할 어마어마한 기계, 놀라움과 고난의 연속이 되어줄 자동차와 함께. 미숙한 운전실력, 세상 놀란 눈으로 자동차를 향해 밀려드는 인파들, 어딜 가나 똑같은 충고의 말, 이해력 부족, 길을 잃어 느끼는 마비, 무기력, 절망감, 극심한 피부병, 이따금씩 솟구치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올라 치미는 슬픈 감정들 사이에서도 끊임없이 목적지를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었던 토마스의 지난한 여정이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것은 무엇일까. 이 고난을 통해서 그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그리고 자신이 그토록 찾고자했던 십자고상을 만날 수 있을까.

 

 

 

그는 울음의 목적이 무엇인지 모른다. 실컷, 심지어 몸부림치며 울지만, 그 마지막에는 뭐가 남는가? 황량한 피로감. 눈물 콧물에 젖은 손수건. 울었다는 걸 누구에게나 알리는 빨간 눈. 그리고 울음에는 품위가 없다. 울음은 예의범절을 초월한 개인의 언어이고, 표현 방식도 제각각이다. 얼굴 찌푸림, 눈물의 양, 흐느낌의 음색, 목소리의 높이, 소란의 크기, 안색에 미치는 영향, 손의 움직임, 취하는 포즈가 다 다르다. 사람은 오직 울 때 울음-울음의 개인적 특성-을 발견한다. 이것은 타인에게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낯선 발견이다. / 65p

 

 

 

   2부인 '집으로'에서는 시간을 건너 뛰어 1938년 포르투갈의 브라간사에 위치한 상 프란시스쿠 병원의 병리학 과장 에우제비우 로조가 등장한다. 새해인 1939년으로 넘어가기 직전, 그는 처리해야 할 서류들로 둘러싸인 너저분한 사무실에서 두 여인의 방문을 받게 된다. 첫 번째 방문자는 그가 무척이나 사랑하는 아내 마리아다. 강한 신앙심과 문학을 사랑하는 아내 마리아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들을 그의 앞에 꺼내놓으며 기나긴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하나는 예수의 기적들에 관한 것이고 또 하나는 애거서 크리스티 작품에 관한 것인데 그녀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 속에서 예수 이야기와의 유사점을 발견하고 이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는다. 그러면서 신앙이 지닌 비실용성과 이성이 지닌 맹목성, 이 둘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야기'가 해결책이 될 거라는 난데없지만, <파이 이야기>에서부터 끊임없이 '신'과 '이야기'에 천착한 저자의 철학이 그녀의 육성을 통해 전달된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미스터리에서 살인범은 우리 예상보다 가까운 인물이기 일쑤예요. 몇 가지만 꼽아보자면 <갈색 양복의 사나이><세븐 다이얼스 미스터리><3막의 비극><에이비씨 살인사건>, 특히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이 그렇죠. 우리는 멀리 있는 악은 명확하게 보지만, 악이 가까이 있을수록 윤리적 통찰력이 결여되죠. 가장자리가 흐릿해지고 핵심은 보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누가 한 짓인지 드러나면 '브르투스, 너마저?'라는 식으로 반응하죠. 유다가, 친구이자 길벗인 선한 이스가리옷 유다가 배반자임이 드러났을 때 다른 제자들은 틀림없이 그런 반응을 보였을 거예요. 우리는 가까운 악을 얼마나 보지 못하는지요. 얼마나 외면하려 하는지요." / 192p

 

 

"그런데 애거서 크리스티와 복음서는 중요한 면에서 달라요. 이제 우린 예언과 기적의 시대에 살지 않아요. 복음서 시대 사람들과 달리 이제 우리 중에는 예수가 없어요.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복음은 존재의 서술이에요.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은 부재의 복음서들이고요. 의심은 더 많고 믿음은 더 적은 현대인들을 위한 현대의 복음서죠. 예수는 그렇게 단편적으로, 발자취로, 망토와 가면을 쓰고 불명료하게 숨어서 존재해요. 하지만 봐요-예수(Christ)는 그녀의 성씨(Christie) 안에 떡하니 있어요. 그렇다고 해도, 그는 대개 맴돌고 속삭일 뿐이요." / 199p

 

 

 

  두 번째로 방문을 한 여인의 이름 역시 마리아다. 그녀는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서 남편의 시신을 가져와 느닷없이 그에게 부검을 부탁한다. 그리고 에우제비우에게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알고 싶어요."라고 고백한다. 모든 시신은 들려줄 사연이 담긴 책이라 여기며, 시신 앞에서 마지막 서술자가 되어 늘 죽음이란 존재를 가까이 하지만 늘 결과론에 지나지 않았던 그에게 어떻게 죽었는지가 아닌 어떻게 살았는지를 묻는 여인의 낯선 질문은 그는 당혹케 한다. 마침내 뭔가에 홀린 듯 여인 앞에서 남편의 시신을 부검하기 시작한 에우제비우는 그의 몸에서 토사물, 은화, 피리, 굴 껍데기, 장난감 수레, 말린 꽃잎 등등 믿을 수 없는 각종 물건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시신의 몸속에서 발견한 침팬지 한 마리와 침팬지가 보호하듯 안은 갈색 새끼 곰만큼이나 믿을 수 없는 슬픈 죽음에 관한 이야기 하나와 남편의 시신과 같이 꿰어 달라는 여인의 기괴한 요청, 에우제비우에 얽힌 놀라운 반전에 다다르게 된다. 이어 "여기가 집이야, 여기가 집이야, 여기가 집이야."를 되뇌는 그녀의 음성에 사로잡히게 된다. 마치 한여름밤의 꿈처럼 펼쳐지는 이 미스터리한 이야기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분명한 것은 이것이 1부와 3부를 연결하는 굉장히 중요한 장치로 작용함은 물론, 가장 문학적인 상상력이 빛을 발하는 작품임을 의심할 수 없다는 점이다.

 

 

 

   3부작인 '집'에서는 1981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상원 의원으로 재직 중인 피터 토비가 등장한다. 아내를 잃고 아들마저 이혼을 하게 되어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히게 된 그는 기분 전환 삼아 오클라호마 주 의회의 초청으로 가게 된 곳에서 '오도'라는 이름을 지닌 침팬지를 만나게 된다. 아내를 잃은 상처를 위로받듯 오도로부터 묘한 교감을 주고받게 된 그는 만 5천 달러에 오도를 사게 되고, 한때 그의 모든 것이 머물러있던 집과 일을 정리하고 부모의 고향인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이주하게 된다. 낯선 언어, 변변치 않은 살림살이, 해야 할 일이 사라진 시계마저 필요 없는 세상에서 그는 이제 오도와 공생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는 마침내 오도와 함께 하는 이야기가 곧 자신의 집임을 깨닫게 된다.

 

 

 

"침팬지에게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보통의 사람이 예상하는 것 이상을 배웁니다. 침팬지는 진화론적으로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입니다. 우리는 침팬지와 공통의 영장류 조상을 갖고 있지요. 인간과 침팬지가 갈라진 것은 600만 년 정도밖에 안됩니다. 로버트 아드리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진화된 유인원일 뿐 타락한 천사가 아니다.'" / 273p

 

 

오도와 투이젤루로 이주한 후 캐나다에 돌아가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다. 이제 그와 같은 종인 인간은 피로를 안겨준다. 그들은 너무 시끄럽고, 너무 성미가 까다롭고, 너무 고민하고, 너무 믿음이 가지 않는다. 피터는 오도의 곁에서 느끼는 강렬한 고요가, 무슨 일을 하든 생각에 잠긴 더딘 움직임이, 대단히 간결한 수단과 목적이 더 좋다. 그게 오도와 있을 때마다 그의 인간다움이, 경솔하게 서두르는 행동이, 복잡다단한 수단과 목적이 수치스럽다는 뜻이라 할지라도 그렇다. / 362p

 

 

 

  뒤로 걷기, 침팬지, 포르투갈의 높은 산 그리고 집

 

 

   3부작을 한 데로 엮은 이 작품은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신과 믿음, 죽음과 삶, 인간과 동물, 판타지와 현실이라는 이 거대한 주제를 이야기라는 틀에 꿰어 넣는 이 정교함에 저절로 감탄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높은 산'으로 명명되는 이 지역이 사실은 위압적으로 우뚝 선 큰 바위들만 있을 뿐 대평원이나 다름없는 곳임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놀라운 은유와 메시지를 마주하게 된다. 우리가 필사적으로 쫓는 삶의 의미와 목적이 사실은 어떤 거대한 이미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찾아나가는 여정에 있다는 것을, 그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이야기에 있다는 것을.

 

 

 

   공교롭게도 <일러스트 파이 이야기>를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얀 마텔의 신작을 바로 읽을 수 있었던 점은 그의 세계관과 메시지를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어서 좋은 기회가 되었다. 감히 말하건데 그는 <포르투갈의 높은 산>을 통해 더욱 진화된 이야기를 선보였음은 물론, 남다른 작법으로 문학의 정수를 이끌어내었다. 이래서 이야기란 참으로 매혹적인 것이다.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이 아름다움 때문에 오늘도 나는 책을 읽고 여기에 나의 집이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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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남 오빠에게_ 우리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으로 | 나의 서재 2017-11-20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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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현남 오빠에게

조남주,최은영,김이설,최정화,손보미,구병모,김성중 공저
다산책방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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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명의 작가가 모여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여성의 삶을 이야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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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언어를 이야기하기 시작한 본격 페미니즘 소설!

일곱 명의 작가가 모여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여성의 삶을 이야기하다!

 

 

 

   현대 사회의 가장 큰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단어가 있다면 단연 '페미니즘'이다. 그간 억압되고 불합리한 사회 구조 속에서 여성들이 겪는 각종 차별적인 문제에 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다뤄왔지만, 남성들의 시각에서 다루는 제한적인 형태가 아닌 여성들이 스스로 다양한 음성과 언어를 통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은 생각보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오히려 최근에야 보다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런 의미에서 페미니즘 소설을 쓰기 위해, 우리 시대의 역량 있는 여성 작가 일곱 명의 작품이 한 데로 모여 '페미니즘 소설'이라는 소설집이 탄생한 것은 그 뚜렷한 정체성이 오히려 낯설고 다소 이례적일만큼 남다른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나와 당신 모두 한번쯤은 겪었을, 현남 오빠라는 존재

 

 

   <82년생 김지영>이란 작품으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조남주 작가를 비롯하여 주목받는 대표적인 여성작가 최은영, 김이설, 최정화, 손보미, 구병모, 김성중의 페미니즘 단편 소설 일곱 작품이 한 데에 모였다. 작품 뒤에 수록되어 있는 작가 노트를 통해 미루어 짐작하건데, 처음부터 페미니즘 소설집을 구성하고자 하는 출판사의 기획 하에 작가들이 뜻을 함께 한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여성들의 삶을 현실감 있게 그려낸 일상적인 작품들은 물론, 소설적 상상력과 판타지를 결합한 독특한 시도가 눈에 띄는 작품 또한 상당수 있어 보다 다채로운 페미니즘 소설집이 완성된 듯하다.

 

 

 

   표제작인 「현남 오빠에게」는 현남 오빠의 청혼을 거절하려는 주인공이 그에게 쓰는 편지를 쓰는 것으로 시작하는 소설이다. 소설은 두 남녀가 만나 흔한 연애 생활 속에서 겪는 일상성을 매우 현실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이별을 앞둔 주인공의 고백에서 그간 말하지 못했던 이 연애의 불편한 기억과 감정들이 곳곳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이를 테면 남녀가 만나서 사랑이란 감정을 공유하는 사이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하는 요소들, 즉 주도권과 선택의 몫은 늘 남자 쪽에 있고 자신을 인생의 부속품으로 생각하는 듯한 오만한 태도와 그 뻔한 편견들을 조목조목 읊는 그녀의 말투에서 지긋지긋함과 질린 듯한 기색이 역력하게 드러난다. 분명 처음 읽는 소설인데 이 낯설지 않은 기시감은 뭘까. '어쩔 수 없다고, 별일 아니라고, 원래 그렇다고 생각했던 일들에 대해 자주 의심합니다'고 고백하는 작가 노트에서도 알 수 있듯 소설은 사실 미처 느끼지 못했거나 알고 있었으나 밖으로 꺼내 말하지 못했던 연애 관계의 불균형에서 이제는 의심하고, 외부로 한 발짝 나와 관계의 중심에 대해 생각해볼 것을 꿈꾼다.

 

 

 

오빠가 아이를 낳아 키우는 삶이 너무 당연하다는 듯 말해서 그동안 말하지 못했습니다. 오빠의 질문은 "아이를 낳는 게 좋다고 생각해?"가 아니라 "아이를 몇 명이나 낳는 게 좋다고 생각해?"였고, "네가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가 아니라 "네가 아이를 몇 년쯤 직접 키울 수 있을까?"였으니까요. 저는 아직 생각해본 적 없다고 대답을 피하곤 했고 오빠는 왜 그렇게 계획 없이 사느냐고 저를 한심해했습니다. 하지만 오빠, 오빠가 아이를 직접 낳을 것도 키울 것도 아니면서 무슨 자격으로 그런 계획을 혼자 세우죠? 한심한 건 제가 아니라 오빠예요. / 「현남 오빠에게」 중에서 34p   

 

 

 

   결혼을 앞둔 동생 커플을 바라보는 누나 유진의 시선을 통해 모순된 결혼 관념, 맏딸에게 부여된 엄마라는 그늘 등을 다룬 「당신의 평화」 역시 「현남 오빠에게」만큼이나 매우 사실적인 작품이다. 나는 소설을 읽는 내내 유진에게서 나의 모습을 거울처럼 바라보곤 했다. 나 역시 이제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서일까, 자식들에게 자신의 삶을 저당 잡히듯 살아온 수많은 엄마들의 삶의 무게를 이해하면서도 그것을 자식 혹은 며느리들에게 이해를 요구하는 상황들을 마주할 때면 숨이 막힐 때가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당신의 평화」가 엄마를 향한 이중적인 감정들을 생생하게 그려낸 작품이라면, 「경년(更年)」은 두 아이를 낳고 사는 중년 엄마의 삶을 그린 소설로 이 역시 낯설지 않은 우리 시대 엄마들의 현주소를 들여다보게 한다. 소화가 잘 안 되고, 월경전증후군이 심해지고, 급뇨 증상이 일어나거나 갑자기 사소한 것에도 화가 나서 감정을 추스를 수 없게 될 때면 으레 '갱년기라서 그래'라는 말을 듣곤 하는 엄마들. 중학교 사내아이가 여자 친구를 만나고 관계까지 맺고 다닌다는 소식에 '요즘 애들은 워낙 빠르니까'라는 변명으로만 이해할 수 없는 착잡한 심정들까지. 특히나 사내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의 입장에서는 머지않아 닥쳐올 나의 이야기인 것 같기도 해서 남다르게 여겨졌다.

 

 

 

내가 누구한테 말하겠니.

누가 내 얘기를 들어주겠니.

정순은 그렇게 말했다. 어린 시절에는 자기 존재에 대한 인정으로 느껴졌던 그 말이 시간이 지날수록 유진을 옥죄었다. 남동생이 태어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정순은 아들에게는 자신이 겪은 괴로움을 시시콜콜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들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으므로. / 「당신의 평화」 중에서 50p

 

 

랜소이스의 사막을 본 아침, 나는 내가 사뭇 이렇게 늙어가게 될 것 같은 아득한 예감이 들었다. 앞으로는 음모 새치를 아무렇지 않게 뽑을 것이고, 아이들은 내가 가보지 못한 세계 곳곳을 아무렇지 않게 다닐 것이며, 나는 그 사실을 무감하게 받아들이겠지. 이십대에 가졌던 꿈이라든지, 삼십대에 열망했던 미래에 대한 희망은 결국 기억에 남지도 않을 것이었다. 나는 노트북을 소리 나게 덮어버렸다. / 「경년」 중에서 87p

 

 

 

   이처럼 여자로, 딸로, 엄마로 살아가는 숱한 여성들의 삶을 사실감 있게 그려낸 소설들이 많은 공감대를 불러일으킨다면, 「모든 것을 제자리에」, 「이방인」, 「하르피아이와 축제의 밤」, 「화성의 아이」는 좀 더 다른 방식으로 여성들의 삶을 외부로 끄집어낸다. 붕괴된 건물을 촬영하는 낯선 직업의 율이 등장하는 「모든 것을 제자리에」의 경우, 책 속에 수록된 여러 작품들 중에서 가장 혼란스러웠던 작품이기는 했지만 여성 스스로가 가지고 있었던 내 안의 여성혐오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게 한 남다른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이방인」 역시 여성이 주인공인 느와르풍의 소설이라는 다소 낯선 풍경이 이색적으로 다가오는 작품이다.

 

 

 

   책에 수록된 작품 중에 가장 강렬한 인상을 지닌 작품은 단연 구병모 작가의 작품 「하루피아이와 축제의 밤」이다. 친구의 부탁으로 남장 여장 대회에 참가하게 된 표는 처음 와보는 섬의 낯선 도시에서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여성들처럼 화장을 하고, 옷과 구두, 장식을 한다. 참가자의 이력을 전혀 알 수 없을 만큼 여성으로 치장된 남성들이 1번부터 무대에 오름으로써 축제가 시작되는데, 느닷없이 수많은 화살 다발이 그들을 향해 퍼부어지고 이내 모두가 죽음의 공포에 내몰리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 무자비한 공습의 이면에 무엇이 있을까. 우리는 그 존재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것이 그간 수많은 여성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잔인한 남성들의 역사'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자신의 것 아닌 신에 발을 꿰기 전에는, 영원한 타인의 옷을 입어보기 전에는 결코 알 수 없었던 감각들이 표의 온몸을 타고 흘렀다. 그럼에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통증보다는 가려움에 가까운 무엇이었다. / 「하르피아이와 축제의 밤」 중에서 237p

 

 

 

   이어 「화성의 아이」는 화성으로 쏘아진 열두 마리의 실험동물들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나'와 실험동물의 원조로 인간보다 빨리 우주로 나간 최초의 생명체이나 이미 죽은 개의 영혼을 한 '라이카', 버려진 탐사로봇 '데이모스'가 화성에서 의지해 살아가는 이야기다. 공상 과학 혹은 우주 소설과 같은 판타지 형식의 소설이 대체 왜 페미니즘 소설이라 할 수 있는 것인가에 의문을 내내 가지게 되는데, '나'가 알고 보니 뱃속에 새끼를 품은 암컷이었음이 밝혀지면서 임신한 나를 자신의 딸처럼 돌보는 라이카와 데이모스를 통해 생명이란 존재의 유한한 가치와 공존, 희망을 들여다보게 한다.

 

 

 

 

 

 

   이렇게 「현남 오빠에게」로 대표되는 일곱 편의 소설집은 저마다 다른 문체와 개성 있는 구성으로 페미니즘의 가치를 실현한다. 의미 있는 것은 '책으로 읽는 페미니즘과 SNS에서 드러나는 페미니즘, 내가 아는 페미니즘과 희망하는 페미니즘, 내 집에서의 페미니즘-딸들에게 설명하는 페미니즘과 남편을 설득하는 페미니즘, 내가 쓰고 싶었던 소설 속의 페미니즘과 결국 내 소설 속에 갇혀버리고 만 페미니즘이 모드 다 다른 언어'여서 '무엇보다도 실제의 내가 실천하는 페미니즘이 그 모든 페미니즘을 따라잡을 수 없어 나는 너무 자주 곤란해지곤 했다'는 김이설 작가의 고백처럼 여전히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과제와 고민들이 상당하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단 점이다. 여성들뿐만 아니라 많은 남성들이 이 책을 읽고 함께 이해와 공감의 시간을 가져주길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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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 다이어리_ 지친 일상을 채우는 쉼표의 마법 | 나의 서재 2017-11-17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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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쉼표 다이어리

킹코 저
MY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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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자신을 더 사랑하기 위한 자존감 UP 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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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나, 조금 더 나은 나를 채워줄 쉼표의 마법!

하루하루 자신을 더 사랑하기 위한 자존감 UP 다이어리! 

 

   어느덧 2017년이 한 달 반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문득 올 한 해 있었던 일을 더듬어보려 다이어리를 펼쳐보았는데 어째 민숭민숭하다. 세 살인 아들을 키우며 살다보면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가는 것 같은데, 막상 다이어리를 훑어보면 이렇다 할 특별한 일이 보이지 않는다. 괜히 허무해진다. 뭐 하나 의미 있게 기록될 만한 것이 없는 일상의 반복, 그 안에서 그저 가만가만히 머물러 있기만 하는 나. 분명 2017년을 시작할 땐 뭔가 목표도 있었던 것 같고 다짐도 했던 것 같은데 그 기억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순간순간 기우는 자존감을 억지로 붙들고 산 것만 마음에 남는다.

 

 

 

   때문에 2018년이라고 별반 다를 일 없는 한 해가 될까봐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다이어리는 새 것으로 바뀌겠지만, 새로울 것 없는 2018년이라니. 벌써부터 마음이 울적해지려는 찰나에 관심이 가는 책 하나를 발견했다. <쉼표 다이어리>다. 귀여운 캐릭터가 눈에 띄는 걸 보니 웹툰 에세이인 것 같기도 하고, 다이어리라고 하는 걸 보니 말 그대로 실용 서적 같기도 하고 잠시 의아했는데, 어느 쪽이든 “쉼표를 기록하는 순간, 당신의 자존감이 조금씩 올라갑니다”라는 문구가 덜컥 마음을 사로잡았다.

 

 

 

 

 

 

   <쉼표 다이어리>는 그림을 그리는 저자 킹코와 정신건강의학과 신동원 전문의가 함께 만든 따뜻한 감성의 에세이 혹은 다이어리다. 저자인 킹코는 축구선수의 꿈을 꾸었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 다리 부상으로 꿈을 잃자, 대학 진학에 전념했지만 이마저도 뜻이 맞지 않아 훌쩍 군대에 가버렸다고 한다. 그는 취미로 낙서하는 걸 좋아해서 군대에서도 시간이 날 때마다 그림을 그렸는데 자신이 그림을 그릴 때 가장 즐겁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꿈을 잃고 좌절했던 시기를 떠올리며 그린 그의 그림은 멋지고 화려하지 않지만 사람들이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그림, 사람들의 마음을 살짝살짝 긁어줄 수 있는 그림이었다. 나중에 저자의 sns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인데, 어쩐지 순둥순둥해 보이는 생김새와 그림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어 살포시 미소가 나오기도 했다.

 

 

 

   저자는 자신이 힘든 일을 겪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처럼, 독자들이 자신의 그림으로 위안을 받고 이 책을 통해 온전한 나로서 일어설 수 있기를 희망한다. <쉼표 다이어리>를 살펴보면 자기 자신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비록 상처투성이에 실수투성이라 할지라도 자기 자신을 사랑해주었으면 하는 그의 바람이 그림 한 장, 글자 하나하나에서 고스란히 묻어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하루 동안 잠시만이라도 자기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볼 것, 그것이 이 <쉼표 다이어리>가 전하는 따뜻한 메시지인 것이다.

 

 

 

누구에게나 마음속에는

자신을 비춰보는 거울이 있다

 

 

 

<쉼표 다이어리>는 스스로 묻고 답하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온전한 나와 마주하고 혼자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짜여져 있습니다. 하루 십 분 당신 혼자 스스로를 만날 시간을 가지세요. 매일 아침 화분에 물을 주듯, 당신의 마음도 보살피세요. 마음속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고 스스로를 가꾸세요. 스스로가 만족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됩니다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동원 -

 

 

 

 

 

 

   스마트한 시대에서 살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매년 다이어리를 구입해 펜으로 기록하고 지면을 넘기며 일상을 더듬는 것이 좋다. 아이를 키우며 살다보니 직장 생활을 했을 때만큼 빼곡한 다이어리의 지면을 기대하기 어렵고, 나의 스케줄이 아닌 가족의 스케줄로 채워진 것이 대부분이지만 현재 내가 충실하게 여기는 것들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니 이 또한 내 모습 중에 하나가 아닐까. 그런 점에서 <쉼표 다이어리>를 적다보면 단순히 일상을 기록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묻고 싶은 말, 나에게 건네고 싶은 말, 지금 이 순간 나를 위해” 쓰고 싶은 말들을 적음으로써 온전한 나를 들여다볼 수 있으니, 스스로에게 굉장한 선물이 된 것 같다. 지금 나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 혹은 연인에게 다이어리 한 권을 선물하고 싶다면 이 책이 어떨까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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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 혀_ 요리로 풀어낸 한중일 세 나라간의 거대한 상상력 | 나의 서재 2017-11-16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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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칼과 혀

권정현 저
다산책방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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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동아시아적 세계관을 품은 거대한 상상력이 탄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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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몰고 온 광풍 속에서 다채롭게 피어오르는 음식의 향연,

한중일 동아시아적 세계관을 품은 거대한 상상력이 탄생하다!

 

 

   제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인 <난설헌>으로부터 시작하여 제6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고요한 밤의 눈>까지, 꽤 오랜 시간 동안 하나의 문학상이 그려온 궤적을 나 역시 함께 따라왔다. 격동의 민족사를 치열하게 다룬 소설가 최명희를 추모하고자 만든 문학상인 만큼 그간의 수상작들이 대체로 우리 민족과 역사에 밀착한 깊이 있는 상상력을 돋보인 작품들이 주를 이뤘다고 할 수 있겠다. 이와 달리 지난 수상작 <고요한 밤의 눈>에서는 사회 구조 속에 숨겨진 거대한 음모를 다루어 혼불문학상의 수상작이라기에는 다소 의외의 선택이라는 생각에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럼에도 문학이 이 시대를 돌파할 힘이라는 작가의 강렬한 메시지 앞에서 혼불문학상이 점점 더 확장된 세계관을 보여주고자 한다는 신선한 시도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때문에 이번 제7회 수상작인 <칼과 혀>는 다시금 혼불문학상만의 색채감을 재확인하면서도 한중일이라는 동아시아적 세계관으로 확장되는, 더욱 거대해진 상상력의 과감한 돌파 앞에 묵직한 한 방을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호수공원 한 귀퉁이에서 한중일 역사의 무대 만주로 나아가는 작가의 상상력은 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심사위원 전원 만장일치로 꼽았다는 수상작에 대한 설명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나는 책을 읽는 내내 놀라워하고, 또 놀라워하며 연신 압도되는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운명의 소용돌이, 만주에서 휘몰아치다

 

 

   <칼과 혀>는 1945년 만주에 주둔해있는 일본 관동군 사령관 야마다 오토조, 그를 암살하려는 광둥인 천재 요리사 첸, 사회혁명주의자인 오빠의 부름 앞에 기구한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조선 여인 길순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여기서 유일하게 실존 인물이기도 한 야마다 오토조는 마지막 관동군 사령관으로 실제 전쟁을 좋아하지 않는 겁쟁이였다고 알려진 점이 꽤 흥미롭다. 여기에 소설적 상상력이 덧입혀져 소비에트와의 전쟁을 치러낼 의지도 능력도 없는 사람이라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의 무능을 비난하고, 사령부를 자주 비운 채 극락사에 앉혀진 조선의 반가사유상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더욱 의아한 점은 군인이라는 신분과 곧 닥쳐올 전쟁의 광풍 앞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끊임없이 요리의 미학을 앞세워 궁극의 맛을 쫓는 기이한 행동을 보인다는 점이다. 이는 사령관 암살 계획을 세우고 황궁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일부러 붙잡힌 듯한 요리사 첸을 사살하지 않고 끝끝내 그가 선보이는 음식을 남김없이 먹어치우는 놀라운 집착에 사로잡히기까지 한다.

 

 

 

내 눈을 탐했던 적(敵)을 증오의 대상이 아니라 혀에 와 닿는 맛으로 경험했던 그날, 나는 커서 결코 군인 따위는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적을 죽이다가 끝내는 자신마저 그 죽음 속으로 밀어넣어야 하는 미련함, 대상에 대한 자유로운 품평을 강제당한 채 통일된 동작으로 뜨겁게 고개를 숙여야 하는 획일화된 세계에 대하여 나는 어린 나이임에도 환멸을 느꼈던 것 같다. 그러니까 그날 내 혀에 와 닿던 백숙의 맛은, 간장의 달착지근함이 더해진 그 연한 고기의 맛은, 적을 향한 그 어떤 사나운 증오심조차 그 연한 속살 속으로 들어가면 자신의 외피를 둘러싼 단단한 껍질과는 상관없는 가장 순수하고 정제된 하나의 본질을 지니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자애로움으로 가득했던 내 어머니의 외피 속에 숨겨진 고요하기 이를 데 없었던 그날의 의식처럼. / 217p

 

 

전쟁은 반복된다. 두려움은 간부나 사병이나 민간인이나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받기 싫은 선물처럼 진주해 있다. 그 속에서도 인간은 부지런히 먹고 마신다. 두려움 속에서도 매일 세끼의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축복인가. 매일 아침저녁 장교식당을 찾는 머릿수는 여전히 줄어들지 않는다. 그들은 잘 먹어야 잘 싸울 수 있다고 자위한다. 사령부가 적들에 둘러싸일 때, 과연 저 머저리들 가운에 몇 명이나 착검을 하고 적을 향해 돌격할 수 있을까? 부하들에게 돌격 명령을 내려놓고 뒤에서 머뭇거릴 인간들이 태반이다. 나 역시 그러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다만 나는 내 마지막 순간이 그런 무모함 가운데 놓이지 않기를 바란다. / 248p

 

 

 

   한편 볼품없는 외모를 지닌 인물로 묘사되고 있는 중국 광둥인 요리사 첸은 유년시절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요리사의 숙명과 비밀 자경단원이라는 또 다른 신분 사이에 놓인 매우 극적인 인물로 등장한다. 오토조 사령관 앞에 붙잡혀 와 죽기 직전, 자신이 광둥 최고의 요리사임을 증명해야 하는 운명의 시험 앞에서 그는 요리사로서의 혼을 담아 의연하게 이를 치러냄은 물론, 오토조 사령관의 입맛을 사로잡기에 이른다. 하지만 비밀 자경단원으로서는 그저 적일뿐인 오토조 앞에서 그는 이중적인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그도 그럴 것이 비록 적일지라도 자신의 요리를 먹어주는 이의 입맛을 사로잡고 싶은 요리사의 사명 또한 그의 것이기 때문이었다.

 

 

 

매번 그랬지만 재료를 앞에 놓아두고 칼집을 넣기 직전만큼 겸허한 시간은 드물다. 마침내 싸움이 시작되고 다섯 마디 손가락이 꿈틀거리며 산 것들의 욕망을 죄 갈라놓을 때, 그리하여 그것이 불과 섞이고 양념이 덧발려 여백을 거부하는 수무요 위에 가지런히 담길 때 나의 욕망은 끝난다. 아버지의 말을 빌리자면 지금 이 순간만큼은 요리사는 그 누구의 입맛도 아닌, 자신의 욕망을 위해 싸워야 한다. 어떤 식재료도 완전히 굴복시켜 불의 품으로 돌려보내겠다는 열의, 그 수고로움이 식탁 위에서 인간의 혀에 얹힐 때 비로소 요리사의 임무가 끝난다. / 57p

 

 

 

 

 

 

   첸과 마찬가지로 길순 또한 오토조를 죽여야 한다는 압박감과 그를 향한 연민 사이에서 고뇌하는 조선의 여인으로 등장한다. 사회혁명주의자인 오빠를 찾아 만주로 오는 길에 꾐을 당해 위안부 생활을 하게 된 그녀는 어쩌다 첸의 도움으로 지옥 같은 생활에서 벗어나지만 운명은 그녀를 그곳에서 머무르게 하지 않고, 결국 오토조 사령관의 여인이 되어 그를 죽여야 한다는 위기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그녀가 조선의 여인이여서일까. 혹은 유일하게 구어체를 사용하여서일까. 작가는 길순의 사연을 애써 구구절절하게 설명하지 않지만 모든 사내들을 믿지 않는다는 그녀의 담담한 고백에서 당시 조선의 여인들이 겪었을 한의 정서와 그 속에서 꿋꿋이 움켜쥐려는 자존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나는 물어봤어야 해. 도대체 사람을 죽여 무얼 얻지? 오빠는 화를 냈을 거야. 계집들 때문에 집안이 망한다고. 그 얘긴 아버지가 즐겨 내뱉던 말이기도 했어. 숙영이가 죽었어도 오빠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지. 자신 때문에 한목숨이 끊어졌는데도 앞날에 방해가 되게 생겼다며 욕을 해댔어. 숙영인 자살한 게 아니라 오빠의 무관심이 죽인 거야. 썩어 악취를 풍기는 혁명주의자. 내가 죽여야 하는 건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일본인이 아니라 오빠라는 사내들인지도 몰라. 오빠라는 뜨거운 생명을 건너가면 대웅전 부처처럼 열반에 들 수 있을까? 오늘은 그 질문에 답을 듣고 싶어. / 45p

 

 

전쟁이 나면 멍청한 남자들일수록 으레 그래야 하는 것처럼 세상의 모든 정의를 짊어지고 불속으로 뛰어들길 주저하지 않잖아? 그건 때가 되면 규칙적으로 여자들에게로 찾아오는 이름 모를 일본 병정들이나, 남부식 권총 하나로 세상의 부조리를 끝낼 수 있다고 믿는 내 오빠나, 도마 하나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첸이나 모두 매한가지야. 그래서 난 사내들을 믿지 않아. / 92p

 

 

   이 세 인물의 시점과 입장에 따라 각각의 이야기가 한 데로 얽히는 소설의 구조는 한중일이라는 각기 다른 세 나라 고유의 민족관과 소통의 가능성을 확장시킴으로써 입체적이고도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나아가는데 기여한다. 오랫동안 실타래처럼 얽혀있지만 그 누구도 풀어낼 수 없는 세 나라의 복잡한 역사와 날 서린 긴장감을 이 세 인물을 통해 형상화하고자 한 작가의 대담한 발상이 높이 평가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칼과 혀, 공존의 가능성을 제시하다

 

 

   절대 공존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이 세 인물을 한 데로 엮을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준 것은 바로 '칼과 혀'이다. 한중일 세 나라의 깊은 갈등 구조를 단순히 정치적으로 풀어내려는 시도라면 굳이 그것을 소설에까지 끌어들일 필요가 있을까. 때문에 정치와는 무관한, 인류 보편의 문화인 '요리'라는 영역을 통해 갈등을 공감과 이해로 풀어나가는 방식을 사용한 점이 무척 흥미롭다.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어머니지만 그녀가 만들어준 분고규를 그리워하는 야마다 오토조, 일곱 살 때 아버지로부터 조리용 칼을 쥐는 법을 배우고 난 뒤 요리사의 수고로움과 욕망에 사로잡힌 첸, 야마다 오토조가 쫓기어 들어간 공양간에서 길순이 만들어준 고향의 맛 청국장까지. 요리가 상징하는 칼과 혀라는 매개물을 통해 누구나 한번쯤은 아련하게 지니고 있을 맛에 관한 추억들을 떠올리게 하고, 그 추억의 자리를 서로가 어루만져줌으로써 공감과 화해의 기회를 만들어주고자 한 작가의 시도들이 이 소설을 남다른 지점으로 끌어올리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도마에 놓인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하나의 생명이야. 칼은 그들의 생명을 끊는 도구가 아니라 그들을 굴복시키는 도구야. 칼을 다룰 때 조금이라도 허점이 보이면 재료들은 접시에 오르는 순간까지 말썽을 부리잖아. 칼은 등을 보여서도 안 돼. 칼날로 재료를 지그시 눌러가면서 놈들의 눈을 제압해. 숨통을 단박에 끊어놓은 듯 위협하면서 동시에 재료 고유의 빛깔과 싱싱함에 다치지 않도록 배려해." / 98p

 

 

"너의 혀를 느껴봐, 뇌가 아니라 스스로 혀가 되어 다가오는 감각을 느껴봐. 혀는 신이 만든 모든 기관 중에서 가장 완벽하다. 또한 아름답다. 너는 그 이유를 아니?"

사내는 규칙적인 움직임 속으로 찾아드는 중이야.

"스스로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야.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게 바로 피다. 혀가 붉은 건 세포 속에 피를 한가득 머금고 있기 때문이야. 맛을 갈구하는 것은 혀가 아닌 피다. 인간들이 끝없이 입속으로 음식을 집어넣는 이유를 이제 알겠니?" / 194p

 

마술사과 요리사 모두 손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 다만 마술사는 상대의 눈을 속이지만 요리사는 상대의 혀를 속여야 해. 맛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아. 모든 사물은 그대로 있을 뿐이지, 거기에 의미를 부여한 게 맛이야. 의미란 공통의 관습에 따라 좌우되기도 하고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의미를 부여받기도 하는 거고. 유능한 요리사는 그런 개인의 습성, 집단의 습성을 빠르게 간파하여 그들의 혀를 속일 수 있어야 해. 마술사들이 젊은 연인들을 앉혀놓고 모자 속에서 빨간 장미를 뽑아내듯이, 필요할 때 필요한 맛을 대령하는 거지. 곧 죽어갈 머저리들에게. 응, 알겠나?" / 239p

 

 

 

   <칼과 혀>는 뛰어난 수작으로써 강렬한 서사, 탄탄한 묘사, 가독성이 높은 작법까지 모두 만족스럽게 읽은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인물 설정 면에서 작위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으나 이런 과감한 시도들이 칭찬받을만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없다. 갑자기 어디서 이런 작가가 탄생했나, 놀라며 다시 작가의 이력을 살펴보니 눈에 익은 작품이 더러 있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혼불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그의 작품이 더욱 도약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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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류바_ 거울처럼 마주하고 선 소설과 현실, 그 생생한 감각들! | 나의 서재 2017-11-08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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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스크류바

박사랑 저
창비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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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텍스트의 병치를 절묘하게 이끌어낸 작가의 영민함이 빛나는 단편소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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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한 현대인의 권태로운 일상을 동반하는 고독, 그 생생한 질감들!

현실과 텍스트의 병치를 절묘하게 이끌어낸 작가의 영민함이 빛나는 단편소설들!

 

 

 

   살얼음이 붙은 스크류바를 막 입에 넣자마자 습관적으로 배배 돌렸다. 그때 악, 하고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차가운 스크류바가 입술 안쪽 살갗에 들러 붙은지도 모르고 재미삼아 빙글 돌렸다가 찢어진 것이다. 찢겨진 살갗 위로 붉은 피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달콤한 스크류바에 배신당해버린 그 쓰라린 감각이라니. 핑크빛 스크류바에 덕지덕지 묻은 붉은 피, 그럼에도 불구하고 찢겨진 살갗을 달래가며 막대에 달라붙은 달콤함을 끝까지 다 먹어치웠던 그 날. 박사랑의 소설집 「스크류바」의 표지를 마주한 순간, 그 선연한 기억이 하얀 백지 위에 흘러내리는 스크류바의 흔적처럼 끈적하게 들러붙어 다시 되살아났다. 그 와중에도 집요하게 스크류바를 먹어치웠던 내 안의 욕망이 쭈뼛 일어서는 듯한 느낌, 나는 소설을 읽는 내내 그 느낌을 쉽게 떨칠 수 없었다.

 

 

 

권태가 쌓아올린 현대인의 고독한 일상

 

 

   박사랑의 「스크류바」는 총 10편의 단편으로 이뤄진 소설집이다. 첫 번째 수록작인 <#권태_이상>은 이상의 「권태」를 닮은 소설로, 갑자기 얻은 보름의 휴가를 할머니가 지냈던 시골에서 친구 매앵과 주인공이 전기 없이, 자동차와 휴대폰 배터리마저 방전되어 그저 먹고 자고 마시는 것 말고 할 것이란 게 없는 무기력한 시간을 보내며 늘 쫓기듯 살아가는 일상과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을 내일을 두려워하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그려놓았다. <높이에의 강요> 역시 취업에 대한 피로감, 마놀로 블라닉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구두로 대변되는 속물 근성, 타인으로부터 받는 상대적 박탈감과 열등감 등으로 끊임없이 고통 받는 오늘의 청년들을 사실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

 

 

 

뒤에 있는 고층 건물에서는 아직도 불빛이 새어나왔다. 그 옆 건물에서도, 또 그 옆 건물에서도, 길 건너편 건물에서도 불빛은 반짝였다. 늦은 밤까지 쉬지 못하는 저 불빛 속의 누군가와 이 자리에 서서 위만 쳐다보고 있는 나, 이 중에 누가 더 나은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높이에의 강요> 중에서 58p

 

 

 

   앞선 두 작품과 유사한 궤를 달리는 <어제의 콘스탄체>는 보다 더 의미심장하다. 자신이 모차르트라며 열살 때 전생을 자각했다는 남자로부터 느닷없이 모차르트의 아내인 콘스탄체라 불리게 된 주인공의 이야기다. 별 미친 사람 다 있다고 생각하며 넘어가려고 했지만, 우연히 그에게 도움을 청할 일이 생기게 되면서 그가 속해 있는 예스터데이라는 모임에 이끌리듯 따라가게 된다. 예스터데이는 어제를 사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그곳에는 전생에 자신이 니체, 버지니아 울프, 갈릴레오 갈릴레이, 이사도라 던컨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 황당무계한 사람들 사이에서 당장 내일 출근해야 할 회사를 걱정하는 주인공에게 "집에 돌아가면 아마 나는 글을 쓸 거야. 물이 새는 옥탑방에 앉아 세숫대야에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글을 쓰겠지. 하지만 그 글은 책으로 출판되지는 않을 거야. 내 컴퓨터 안에만 있다가 어느날 휴지통으로 들어가겠지. 나는 그렇게 살아. 내일은 생각하지 않아도 뻔해. 생각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너는 우리가 돌았다고 생각하겠지. 그러는 넌 네가 제정신이라고 생각해?"라며 냉소를 던지는 버지니아의 말은 뼈아프다. 과거보다 더 이전의 전생에 갇혀버린 사람들, 그렇게 해서라도 오늘을 잊고 살고 싶은 20~30대 젊은이들의 불완전한 자아를 마주보는 것 같은 그 불편한 감정들.

 

 

 

 

 

 

등 떠밀린, 지쳐버린 모성의 존재들

 

 

   박사랑의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작품은 역시 표제작 <스크류바>다. 버스에서 잠깐 잠든 사이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의 이야기로, 그녀가 아연실색해진 상태에서 아이를 찾기 위해 신고를 하고 버스정류장을 되짚어가며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담고 있는 것이 소설의 큰 맥락이다. 이쯤하면 나 때문에 아이를 잃어버렸다는 자책감으로 괴로워하는 엄마의 모습과, 필사적으로 아이를 찾아 헤매며 상황이 긴박하게 흘러갈 것으로 예상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하지만 소설은 아이를 잃은 와중에도 스타벅스를 찾아가 지독한 더위와 갈증을 해결하며 이대로 자고 싶다고 생각하거나, 남편과 들렀던 모텔 카운터에서 열다섯 살쯤 되는 여학생이 핥아먹고 있던 스크류바를 먹고픈 강렬한 충돌에 사로잡히는 등 우리가 기대하고 있는 엄마의 모습에서 비켜난 행동들을 보여준다.

 

 

 

   이런 자신의 모습을 미쳤다고 자조하면서도 주인공은 이렇게 고백하기도 한다. '아이를 안고 있으면 그 높은 체온에 정신이 아찔해지는 듯 했다. 때로는 숨이 막혔다. 가슴을 파고드는 아이의 머리를 밀어내고 싶기도 했다. 내 가슴을 물어뜯는 아이에게 더이상 가슴을 내어주고 싶지 않았다'고. 어쩌면 그녀는 아이를 찾아 헤매던 것과 동시에 억눌려왔던 자신의 욕망과 엄마로서의 의무 혹은 모성 사이에서 어지럽게 떠돌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글을 읽는 동안 나는 내내 모골이 송연해졌다. 엄마라는 책임의 무게에 짓눌리고, 세상이 강요하는 모성에 순응하듯 등 떠밀려 있던 나의 또 다른 모습을 들여다본 까닭이었다. 톡, 톡. 이것이 불온하게 바닥으로 떨어지는 저 스크류바에게서 불안한 모성의 현주소를 들여다보게 하는 작가의 생생한 감각이 빛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녹은 스크류바가 발끝으로 톡, 떨어졌다. 분홍색 동그라미가 발끝에서 터지자 그리로 무언가 스멀스멀 모이는 기분이 들었다. 톡, 톡 퍼져나가는 분홍색 동그라미, 달콤하고 끈적한 그 흔적. 나는 발끝으로 감각을 집중했다. 마치 전기가 오른 것처럼 발끝이 찌릿했다. 그리고 그 감각은 점차 다리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온 정신을 모아 그 감각만을 따라갔다. 무릎을 지나 사타구니에 그 찌릿함이 전달되자 몸에 있는 모든 혈관에 빠른 속도로 피가 돌기 시작했다. / <스크류바> 중에서 79p

 

 

 

 

 

 

   <울음터>, <하우스> 역시 <스크류바>와 주제를 함께 하는데, 이 또한 버거운 모성의 무게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의지하게 되는 그것에 안부를 전한다. 31~42밀리미터에 5그램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한 생명이 누군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존재였을지도 모른다고 위로하고, 하우스에서 화투에 빠져 사는 엄마에게 속으로 '저런 건 엄마도 아니야' 라고 말하면서도 집으로 왔을 때 엄마가 있기를 바라는 소녀를 보며 모성이 머무르는 자리에서 가족의 안녕을 찾게 되는 그 큰 존재감을 쓸쓸히 어루어 만진다.

 

 

 

엄마, 지수 몸무게가 몇이야? 10.6킬로그램. 무겁네. 그럼, 무겁지. 지수의 손이 내 뺨을 만졌다. 너도 5그램이었던 때가 있었겠지. 그때는 가벼웠는지, 아니면 그때도 너는 누군가에게 무거웠던 건지. / <울음터> 중에서 198p

 

 

 

현실과 텍스트의 병치, 그 환상의 미학

 

 

  일상적 상황과 부조리한 삶의 현실을 다루는 박사랑 작가의 화법은 사실 단순하지만, '이야기' 즉 텍스트를 소설 내부로 끌어들이는 치밀하고 집요한 고민은 그녀의 남다른 성과라 자부할 만하다. <스크류바>가 이 소설집의 가장 강렬한 인상을 차지한다면 <바람의 책>과 <이야기 속으로>는 그녀만의 개성, 혹은 여느 소설에서 보여주지 못하는 남다른 매력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바람의 책>의 경우 강박신경증에 관한 책을 쓰고 있던 신경정신과 전문의가 등장하는데, 선배의 부탁으로 한 남자를 상담하다 그로부터 보르헤스의 작품 「모래의 책」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고 자신 역시 그 모래의 책을 찾아 기이한 환상적 체험을 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말하는 기이한 환상이란 책을 펼칠 때마다 페이지가 끝없이 늘어나는 것이었는데, 오로지 알 수 없는 문자로 가득 채워진 책이 불어난다는 것이 독자로 하여금 오싹하게 만든다. 종래에 이 모래의 책은 바람에 날리는 모래처럼 눈앞에서 글자가 사라지기까지 하는데, 무한한 책이 아닌 무(無)의 책이 되어가는 이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주인공은 논문의 주제로 삼고 있던 강박 증세를 몸소 체험하며 마침내 쓰고 있던 논문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어 <이야기 속으로>의 경우에는 아예 기존의 텍스트 내부로 들어가기까지 한다. 기존의 텍스트란 김승옥의 작품 「서울, 1964년 겨울」로, 술을 마시다 옆자리에서 이 소설의 내용과 똑같은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자신이 이야기 속으로 들어온 듯한 기이한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 내내 훔쳐보듯 소설 속 인물들의 움직임을 따라가고만 있던 주인공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사내가 자살을 하리란 결말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이를 막아보고자 마침내 인물들 사이로 끼어들기까지 한다. 하지만 일어날 일은 결국 일어나고야 말았고, 안과 김 그리고 사내와 1964년 서울의 거리, 그 날 주머니 속에 넣어둔 여관 열쇠가 마치 꿈이 아니었음을 생생하게 떠올리게 한다. 이후 그는 1964년의 사내와 절묘하게 닮은 구석이 많은 한 남자를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 또다시 죽음이 재현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지만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남자가 풀어놓고 간 넥타이가 사실은 친구의 것이었고, 주머니에 있던 열쇠마저 아버지의 헌책방 문을 열던 열쇠였음을 깨닫게 된다. 현실인지 환상인지 모를 이 낯선 체험은 어쩌면 소설을 써야 한다는 이 등단 작가의 강박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을까 짐작케 한다. <바람의 책>에서 신경정신과 전문의가 그랬던 것처럼.

 

 

 

1964년 겨울, 서울의 거리는 추웠다.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바람에 옷깃을 여몄다. 안은 심드렁한 말투로 그럴 줄 알았습니다, 했고 김은 약간 과정하며 그럴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했다. 김이 나에게 이형은 알았습니까? 하고 물었다. 나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고 얼버무렸다. 그러자 김과 안이 동시에 나를 쳐다봤다. 당신은 소설가이지 않습니까? 하는 표정 같았다. / <이야기 속으로> 중에서 119p

 

 

 

   이는 곧 박사랑이란 소설가 자신이 느끼고 있는 글쓰기에 대한 자의식의 발현이며, 문학이 시대에 반응하고 가져야 할 사명 같은 것을 고민하게 하는 부분이다. 덕분에 우리는 더 이상 색다를 게 나올 것 같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생산과 재생산으로 무한 증식하는 듯한 문학에 여전히 기대하고, 그 존재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박사랑 작가의 「스크류바」 속 단편들은 그런 기대에 부응한 훌륭한 작품들이 상당하다는 점에서 매우 흡족했다. 흡인력 있는 스토리 전개, 생의 불가해함과 권태로운 일상이 동반하는 고독의 질감을 생생하게 전달함은 물론, 기존의 문학을 상상력으로 끌어낸 영민함까지. 앞으로도 계속 주목해서 지켜보고 싶은 작가가 생겨서 더욱 즐거운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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