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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소음_ 예술은 누구의 것인가? | 나의 서재 2017-07-12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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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저/송은주 역
다산책방 | 2017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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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정치의 괴리 속에서 신음한 어느 예술가의 고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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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소음에 무엇으로 답변할 것인가

예술과 정치의 괴리 속에서 신음한 어느 예술가의 고뇌!

 

   ‘진실한 생활이란 자유로운 곳에만 있을 수 있다. 억압, 통제하는 곳일수록 연극이 많아지기 마련이다.’

문득, 북한 체제의 현실을 고발한 소설 『고발』속의 글귀가 떠오른다. 체제에 철저히 순응하며 살아가야 하는 공산주의 내부에서는 자유의지를 강탈한 독재자를 위해 누구랄 것 없이 모두가 연극인이 되어야만 했다. 레닌과 스탈린을 잇는 암흑의 러시아를 살아간 이들의 삶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러시아가 코끼리의 고향이 될 수 있고, 베토벤의 고향 또한 러시아가 될 수 있었던 시대였다. 예술가라면 응당 어떤 정치적 지시도 없이 오직 그들의 자유의지로 자신의 창의성을 빛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예술의 존재론적인 가치마저 체제의 형장에 가두고 마음대로 총살할 수 있는 시대이기도 했다. 뛰어난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역시 예술가이면서 동시에 체제의 부름에 응답해야만 하는 연극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줄리언 반스의 신작 『시대의 소음』은 이러한 러시아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의 삶을 재구성한 소설로, 예술과 정치의 괴리 속에서 신음해야만 했던 이 예술가의 내적투쟁을 치열하게 그려나간다.

 

 

 

예술이 권력에 혀가 묶이고

 

 

   윤년엔 악운이 깃든다고 했던가. 쇼스타코비치가 자신의 삶 중에서 ‘최악’이라 꼽은 시기는 마치 운명의 수레바퀴처럼 12년을 주기로 찾아왔다. 소설은 바로 1936년, 1948년, 1960년에 이르는 이 세 시기를 중심으로 살얼음판을 걷듯 인생의 시험대에 올라야만 했던 그의 삶을 조명한다. 이야기는 스탈린 앞에서 선보인 연주곡을 망친 이유로 곡을 금지당하고 목숨까지 잃을 위기에 처한 그가 매일 밤 승강기 옆에서 체포되기를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그의 연주곡은 갑자기 요란하게 짖어대 주인의 기분을 거스른 개와 같은 꼴이 되었고, 그의 죄는 또한 정치적인 것이기도 했다. 우호적이었던 언론은 물론 고위 관료들로부터 그의 음악은 ‘음악이 아니라 혼돈’이라고 낙인찍혔고, 자신의 후원자이던 투하쳅스키 마저 반스탈린 쿠데타를 주도한 혐의로 처형당하면서 그 역시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한 것이다. 도시 전역에서 매일 밤 체포되기를 기다리는 수백 명의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체포되는 모습만은 보여주지 않으려고 그는 승강기 옆에서 밤을 지새워야 했다.

 

 

 

그는 어째서 권력층이 이제 음악에, 그리고 그에게 주의를 돌리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권력층은 항상 음보다는 말에 더 관심이 있었다. 작곡가가 아니라 작가들이 인간 영혼의 기술자로 선포되었다. 작가들은 <프라우다> 1면에서 단죄를 당했고, 작곡가들은 3면에서 비난을 받았다. 두 면은 따로따로였다. 그러나 별일 아니라고는 할 수 없었다. 죽음과 삶을 가를 수도 있었다. / 62p

 

 

 

   친구와 후원자는 모두 죽었지만 그는 결국 살아남는다. ‘우리는 꿈꿀 때만 쉴 수 있다’던 시인 블로크의 말처럼, 이제 살아남았으니 가족과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대중적이고, 인민이 듣기 좋은 음악을 쓰는 것으로 권력의 호의에 응답해야만 하는 운명 앞에 놓인다. 이는 1984년, 두 번째로 찾아온 최악의 시기 속에서 그의 날선 고통이 더욱 극대화된다. 적절히 지도를 받기만 한다면 명쾌하고 사실주의적인 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최고위층의 견해에 따라 교육받아야 했던 그는 마침내 미국 뉴욕에서 열린 문화 과학 세계 평화 의회에 참석할 것을 요구받는다. 그는 그곳에서 소비에트적 가치의 대표이자 얼굴마담 역할을 하며, 자신이 쓰지도 않은 연설문을 읽어야했고 그간 자신의 우상으로 삼았던 스트라빈스키를 비판해야 했다. 체제에서 벗어나 이상주의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기를 바라는 미국인들 앞에서 작곡가 조합의 일원이 아니면 악보 용지조차 살 수 없다는 것을 말할 수도, 권력층으로부터 자신의 오페라가 살해당할 수 있다는 현실을 과감히 드러낼 수 없는 데에서 자기혐오를 느낀다.

 

 

 

아이러니는 파괴자와 사보타주 주동자들의 언어로 통했기에, 그것을 쓰면 위험해졌다. 그러나 아이러니는―어쩌면 가끔씩은, 그는 그러기를 바랐다―시대의 소음이 유리창을 박살낼 정도로 커질 때조차―자신이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을 지킬 수 있게 해줄지도 모른다. 그가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 무엇일까? 음악, 그의 가족, 사랑. 사랑, 그의 가족, 음악. 중요도는 바뀔 수 있었다. 아이러니가 그의 음악을 보호해줄 수 있을까? 잘못된 귀들이 듣지 못하도록 소중한 것을 숨겨서 통과시킬 수 있는 비밀의 언어로 음악이 남아 있는 한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음악이 암호로만 존재할 수는 없었다. 때로는 솔직하게 다 털어놓고 말하고 싶어 좀이 쑤셨다. / 127p

 

 

 

   세 번째로 찾아온 최악의 시기, 1960년에는 스탈린의 시대가 막을 내린다. 그간 스탈린의 부름으로 명예를 회복하고 각종 상을 받으며 영예를 되찾은 그이지만, 공산당은 러시아 연방 작곡가 조합 의장을 억지로 맡기면서 입당을 강요한다. 공포가 끝나니 당 입적이라는 영혼의 소유를 요구받는다며 자신의 처지를 넋두리 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갖은 위기 속에서도 살아남았으나 도덕적 자살을 결심해야 하는 그의 가혹한 운명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소설은 이렇듯 시대의 소음에 피폐해져가는 예술가의 고뇌를 매우 섬세하게 담아내고 있다. 겁쟁이가 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라고, 스스로에게 변명을 하고, 머뭇거리고, 움츠러들고, 고무장화의 맛, 자신의 타락한, 비천한 상태를 새삼 깨닫게 될 다음 순간을 기다려야만 하는 삶 또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던 그의 자조는 참으로 서글프기까지 하다. 결국 이러한 자기혐오와 고뇌는 완벽하게 순응하기보다 사회가 듣고 싶은 것을 들려주되, 그들이 읽어낼 수 없는 체제의 아이러니와 조롱을 교묘히 담아내 저항함으로써 예술가 본연의 뜻을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의 작품이 오늘날까지도 위대하다고 평가받는 데에는 바로 현실을 통찰력 있게 담아내려는 그의 의지를 음악 속에서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리라.

 

 

 

예술은 모두의 것이면서 누구의 것도 아니다. 예술은 모든 시대의 것이고 어느 시대의 것도 아니다. 예술은 그것을 창조하고 향유하는 이들의 것이다. 예술은 귀족과 후원자의 것이 아니듯, 이제는 인민과 당의 것도 아니다. 예술은 시대의 소음 위로 들려오는 역사의 속삭임이다. 예술은 예술 자체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을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어느 인민이고, 누가 그들을 정의하는가? / 135p

 

 

그는 무엇으로 시대의 소음과 맞설 수 있었을까? 우리 안에 있는 그 음악-우리 존재의 음악-누군가에 의해 진짜 음악으로 바뀌는 음악. 시대의 소음을 떠내려 보낼 수 있을 만큼 강하고 진실하고 순수하다면, 수십 년에 걸쳐 역사의 속삭임으로 바뀌는 그런 음악.

그가 고수했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 181p

 

 

 

   『시대의 소음』은 사실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다. 이야기적인 요소가 아닌, 주인공인 쇼스타코비치의 의식과 그 흐름대로 진행되기 때문에 보다 많은 집중력을 요구한다. 전작인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가 그러했듯 나에게는 줄리언 반스의 소설이 친절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다만, 시대를 통찰하고 예술가의 내적 내레이션을 그만의 지적 감수성으로 치열하게 문장을 통해 담아내려는 소설가적 사명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무엇으로 시대의 소음과 맞설 수 있는가, 시대의 소음을 떠내려 보낼 수 있을 만큼 강하고 진실하고 순수한 우리 존재의 음악을 고수하려했던 쇼스타코비치의 생애가 던지는 질문에 우리 역시 응답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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