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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_ 살인자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 | 나의 서재 2019-04-16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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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편지

히가시노 게이고 저/권일영 역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04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미스터리는 잊어라, 휴머니즘과 감동으로 녹아낸 히가시노 게이고의 색다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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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가족으로 속죄와 차별 속에서 살아가야 했던 남자의 이야기!

미스터리는 잊어라, 휴머니즘과 감동으로 녹아낸 히가시노 게이고의 색다른 소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고 난 뒤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이거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 맞아?’ 하고 말이다. <11문자 살인사건>, <브루투스의 심장>, <기린의 날개>, <아름다운 흉기>, <회랑정 살인사건> 등의 작품을 읽은 나로서는 추리소설가라는 강렬한 인상 때문인지 휴머니즘과 감동을 녹아낸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란 작품은 어쩐지 의아하기만 했던 것이다. 갑자기 불쑥 튀어나온 의외의 작품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데 지금에 와서 보니 그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나 갑작스러운 게 아니었던 것 같다. 아버지와 아들 간의 부성애 코드를 다룬 <도키오>, 그리고 살인자의 가족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진지한 물음을 던지는 <편지> 같은 작품이 이전에 존재했었던 까닭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작가의 작품에 대해 꽤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간 본격추리나 사회파적인 미스터리물의 강렬함에 압도되어 그가 얼마나 스펙트럼이 넓은 작가인지 나는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읽을 게 많고 감탄할 게 많다는 건 독자로서 참 좋은 일이 아닐까.

 

 

 

편견과 차별, 속죄와 용서, 우리는 어디까지 가능할까?

 

 

   <편지>는 살인자를 가족으로 둔 한 남자를 통해 사회에서 가해자 가족이 겪는 편견과 차별을 다룬 작품이다. 그간 추리물이나 미스터리 장르를 선보이는 가운데, 일본 사회의 병폐와 사람 사는 이야기의 향수를 은근하게 녹여낸 바 있던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작품을 통해 본격적으로 사회적인 문제와 인간다운 삶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내던진다.

 

 

하지만 지금 내게는 직장도 돈도 없다.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살 돈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 정월에 떡을 사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츠요시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동생 나오키가 걱정 없이 대학에 진학할 마음을 먹게 할 수 있는 돈이었다.

츠요시는 이런 공상을 했다. 우선 은행에 목돈을 정기예금으로 넣는다. 그걸 나오키에게 보여준다. 너한텐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이만큼 저축을 해놓았어. 이것만 있으면 입시 전형료건 입학금이건 문제가 되지 않을 거야. 그러니 넌 아무 걱정할 필요 없어. 동생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 12p

 

 

 

   츠요시는 가난한 형편에 동생인 나오키가 대학 진학을 거의 포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마음이 다급해진다. 허리와 무릎이 좋지 않아 다니던 이삿짐센터는 물론 음식 배달 일도 그만둬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렇다 할 방법이 없었던 그는 이삿짐센터에서 일할 때 알게 된 오가타 할머니 집에 몰래 들어가 돈을 훔치다가 그만 살인자가 되어버린다. 결국 그는 교도소에 수감되고 홀로 남은 동생 나오키는 살인자의 동생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로 지긋지긋한 가난에 꿈을 상실한 채 막막한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학교에서는 그가 학업을 중단하고 떠나주길 바라고, 따뜻한 정을 베풀어주던 아르바이트 점장은 그가 살인자의 동생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를 불편하게 여기고, 음악에 대한 열정과 꿈도 포기해야하는 것은 물론, 사랑하는 여자의 가족으로부터 무시를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한다. 이렇듯 살인자 형을 둔 동생이라는 꼬리표는 매 순간순간마다 그의 발목을 붙든다. 더욱이 형이 매달 보내는 편지는 동생을 향한 애정과 살인에 대한 죄책감으로 가득하지만 동생의 입장에서는 형이 살인자라는 사실만 더욱 각인시킬 뿐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그는 점점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지 않게 되고 형의 존재마저 자신에게서 지우려 한다.

 

 

드디어 악몽에서 해방된 거라고 생각했다. 앞으로는 다른 젊은이들처럼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음악과 만나면서 닫혀 있던 모든 문이 열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모두 착각이었다. 상황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세상과 자신을 가로막는 싸늘한 벽이 여전히 눈앞에 있었다. 그 벽을 넘어서려 해봐야 더욱더 차가워질 뿐이다. / 183p

 

 

차별과 편견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잘 알기에, 나오키는 현재 상태로는 자신이 행복하게 살 수 없을 거라고 믿었다. 그걸 손에 넣기 위해서는 뭔가 힘이 필요하다고 확신했다. 어떤 힘이건 상관없다. 뛰어난 재능이건 재력이건. / 233p

 

 

나는 어떻게 될까? 만약에 몸이 불편해지는 어떻게 될까? 회사가 다른 일을 마련해주면 다행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는 걸까? 그리고 돈이 궁해져 결국 남의 것을 훔칠 생각을 하게 될까? 설마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츠요시도 자기가 도둑질을 하러 들어갔다 충동적으로 노파를 죽이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나에겐 그런 형과 같은 피가 흐르고 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게 바로 그 피다. / 355p

 

 

 

 

 

 

   이 소설을 읽다보면 살인자의 가족마저도 속죄하는 삶을 살아야만 하는가? 어느 만큼 희생을 해야 하는가? 어떻게, 얼마나 속죄해야 희생자의 가족들에게 위로가 될까 하는 등의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소설 속에서 누군가는 “살인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왜 네가 부당한 대우를 받아야 해?” 하는 말을 던지지만, 대부분은 이상한 일에 말려들까봐 쉬쉬하며 최대한 배척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 츠요시가 매달 희생자의 가족에게 보내는 사죄의 편지가 정작 희생자 가족에게는 어떤 위로보다 상처가 되어 긁어 부스럼이 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면서 진정한 속죄란 무언인가를 고민하게 한다. 이런 점에서 나오키와 히라노 사장의 대화는 의미심장하다. 자신이 죄를 지으면 가족도 고통을 받게 된다는 걸 모든 범죄자들은 알아야 한다고, 동생인 나오키가 겪는 차별과 편견은 어떠면 당연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을 원망하거나 피하기보다 착실하게 사회성을 되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이다.

 

 

 

"자네가 형을 원망하건 어쩌건 그건 자네 자유지. 다만 남을 원망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뿐일세. 좀 더 알기 쉽게 말하면, 자신이 죄를 지으면 가족도 고통을 받게 된다는 걸 모든 범죄자들이 깨달아야 한다는 이야기지." / 363p

 

 

“그럴지도 모르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해. 엽서 한 장이라도 보내주면, 적어도 그 사람들이 그 사건을 잊지 않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으니까. 우린 잊고 싶어도 미키의 상처를 볼 때마다 생각이 나. 결코 잊을 수 없을 거야.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점점 잊어가지. 그래서 우린 더 상처를 입어. 우린 이 세상에 사건을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우리 말고도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잠깐 위안을 얻을 수 있어.” / 453p  

 

 

 

 

 

   소설은 비록 사람들로 하여금 상처와 고통을 받았지만, 나오키의 곁을 한결같이 응원하는 유미코, 나오키의 음악을 향한 순수한 열정을 지지해주고 형과 다리를 놓아주는 역할을 하는 데라오 등을 통해 나오키가 관계를 회복하고 숨지 않고 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을 따듯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차별과 멸시, 편견 앞에서 자유롭지 못한지, 또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끝까지 진중하게 풀어나간다. 어쩌면 이 소설이야말로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작가가 추리와 미스터리 장르의 한계에서 벗어나 더욱 확장된 소설적 세계관을 보여줄 수 있는 작가임을 입증하는 계기가 되었지 않나 싶다.

 

 

 

   사실 이 책을 선택했을 때는 당연히 추리소설일 거라고 생각했기에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내용이어서 자칫 실망할 뻔했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비록 호불호는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담백한 문체와 높은 몰입도, 우리 사회가 모두 고민해보면 좋을 주제여서 그의 팬이라면 꼭 읽어보시라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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