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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_ 대한민국의 첫 번째 봄 | 나의 서재 2019-04-21 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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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1919

박찬승 저
다산초당 | 2019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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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상 가장 뜨거웠던, 그 날의 함성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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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탄생한 역사 교양서!

우리 역사상 가장 뜨거웠던, 그 날의 함성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만 한다!

 

 

 

선언서를 들고 지방 곳곳으로 내려간 이들은 속으로 어떤 생각을 품고 있었을까? 3·1운동 이후 체포된 보성사 직원 인종익은 경찰이 “대체 왜 이러한 무모한 일을 시도했는가?”라고 묻자 이렇게 답한다. “우리는 전혀 무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좋은 때가 왔기에, 그에 맞는 적절한 시도를 한 것뿐이다. 처음부터 성공을 기대하고 벌인 일도 아니다. 이번에 우리가 좌절하면 그 뒤를 이어서 또 다른 사람들이 나올 것이고, 100명을 죽이면 또 다른 100명이 나올 것이다. 당신들이 아무리 막으려 해도 한번 터진 물길은 계속해서 흘러넘칠 것이다.” / 23p

 

 

 

   지금으로부터 꼭 100년 전인 1919년 3월의 봄날, 일제의 침략에 짓밟혀 나라의 주권을 빼앗긴 바로 이 땅 위에서 자유와 독립을 목놓아 부르짖은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한반도 전역은 물론 중국 상하이, 일본 도쿄, 미국 필라델피아 등 세계 곳곳에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하나가 된 목소리로 평화를 외쳤다. 이들이 하나의 목소리로 ‘독립 만세’를 외칠 수 있었던 것은, 독립이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지금 이룰 수 있는 일이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피와 땀, 간절한 바람에 의해 민주와 자유 평등을 기치로 내건 임시정부 즉, 민주공화국이 탄생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올해는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다. 각종 매체를 비롯하여 다양한 곳에서 이를 기념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 ‘헬조선’이니 ‘탈대한민국’을 부르짖는 오늘날, 100년 전 봄날 이 땅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몸과 정신을 바친 사람들의 함성 소리를 기억하는 일이란 마음을 더욱 숙연케 한다. 그런 의미에서 때마침 출간된 <1919>는 몰락한 식민지의 백성에서 공화국의 시민으로 자주, 독립, 평화를 외치며 내딛었던 민주공화국을 향한 위대한 여정을 담은 역사 교양서다. 서울에서 수백 킬로미터 기차를 타고 가서, 또 수십 킬로미터를 걸어가서 독립선언서를 전한 사람들, 장날의 만세시위에 쓰기 위해 어두운 골방에서 수백 장의 태극기를 그리고 또 그린 사람들, 시위 현장에서 앞장서서 독립 만세를 부르고 시위 행렬을 이끈 사람들, 그리고 결국 군경을 총칼에 희생된 영웅들을 기리기 위해서 쓴 책이다.

 

 

 

 

 

 

   책은 일제의 무단통치에 반발하여 하여 만세운동을 준비하기 위한 움직임들, 독립선언서를 작성하고 배포하여 세계를 향해 선포하는 과정, 마침내 울려 퍼진 3월의 만세소리와 임시정부가 수립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1919년의 봄을 재조명한다. 1장에서는 3·1운동의 직접적인 원인이 무단통치라면 윌슨의 민족자결주의가 우리 민족에게 어떤 희망의 불씨를 일으켰는지 그 과정을 상세하게 살펴본다. 여기에서 놀라운 점은 3·1운동을 이끈 대표자들도 민족자결의 원칙이 당장 한국에 적용되리라 믿지 않았다는 점이다. 민족대표 48인 중 하나인 현상윤은 훗날 회고록에서 이렇게 밝힌다. “당초 우리가 독립운동을 계획할 때, 꼭 그때에 민족자결의 원칙이 우리에게 적용되리라곤 물론 믿지 않았다. 파리평화회의가 우리 문제까지 토의하지 않을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파리회의의 각국 대표에게 서한을 보내고 만세운동까지 일으킨 것은, 독립운동에도 단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3·1운동이 당시에는 성공을 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분명 독립을 위한 중대한 단계가 될 것이고, 토대가 될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라고. 훗날 독립이란 열매를 얻기 위해서 기꺼이 자신들의 희생을 아까워하지 않은 그들의 의지에 마음이 뭉클해지는 대목이다.

 

 

 

독립을 선언하는 근거로는 네 가지를 들고 있는데, 바로 ‘반만 년 역사의 권위’와 ‘이천만 민중의 진실한 마음’, ‘민족의 영원하고 자유로운 발전의 소망’과 ‘세계개조의 큰 기운’이 그것이다. 이를 통해 독립선언은 ‘하늘의 명령’이자 ‘시대의 대세’이며, ‘정당한 권리의 발동’으로서 누구도 막지 못할 것이라고 천명한다. / 179p

 

 

최린 등이 종로경찰서에 독립선언서를 보내자, 종로서에서는 민족대표가 실제로 태화관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걸어 이를 문의했다. 이에 태화관 측은 확인하고 전화를 주겠다고 답한 뒤, 손병희 등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 물었다. 손병희가 “여기에 있다고 답하라”라고 하자, 태화관 측은 종로서에 전화를 걸어 그렇게 답했다. 이후 경찰과 헌병이 태화관으로 출동한 것이다. 당시 민족대표 33인은 독립선언식을 무사히 마친 뒤에는 경찰에 자지해 연행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경찰이 출동하자 의연한 자세로 기꺼이 연행됐다. / 193p

 

 

 

   맨 처음 파고다공원에서 학생단으로 이루어진 200여명의 함성 소리는 공원을 벗어나 시가지로 나가는 행진 과정에서 수천 명으로 늘어났다. 이 군중은 셋으로 나뉘어 제1대는 덕수궁으로, 제2대는 외국 영사관으로, 제3대는 가장 큰 무리를 이루어 총독부를 목표로 진로를 잡았다. 사전에 전혀 대비가 없었던 데다 독립선언식을 마치고 태화관에서 민족대표 33인을 연행하느라 발목이 묶여 있었던 경무총감부는 이 때문에 시위대에 바로 대처하지 못했다. 군경이 열성적으로 만세를 부르는 이들을 하나둘 검거하기 시작한 것은 오후 5시가 넘어서였는데, 이날 혼마치를 중심으로 서울 시내에서 체포된 군중만 134명이었다고 한다. 이날의 시위를 시작으로 3월 5일, 남대문역 앞에서 다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는데 이날에는 여학생도 다수 참여한 것이 눈에 띤다. 뿐만 아니라 22일에는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시위운동도 일어났으며 기독교와 천주교가 합작한 평양, 기독교인과 학생이 중심이 된 대구, 군경의 탄압에 격렬히 맞선 단천군, 유관순의 아우내장터, 유생들이 중심이 된 안동 등 전국으로 만세시위가 확산되었다. 놀라운 사실은 전체 시위 가운데 70~85퍼센트 정도가 폭력과는 관계없는 문자 그대로 평화적인 시위였다고 하니 이는 자긍심을 가질 만한 일이다.

 

 

 

해산한 학생들은 3월 10일 다시 봉기하기 위해 태극기를 만드는 등 준비를 서둘렀다. 그리고 10일 오후, 태극기를 품은 채 시장에 잠입했지만, 장터에는 헌병과 경찰 수가 장꾼보다 더 많았다. 그런 상황에서도, 학생들은 ‘대한 독립 만세’라고 쓴 큰 깃발을 들고 소리 높여 독립 만세를 외쳤다. 100~200명의 군중이 일제히 호응했고, 이내 만세의 함성이 온 시장을 진동케 했다. / 253p

 

 

 

 

 

 

   이처럼 도시와 농촌, 산간벽지를 가리지 않고 확산된 3·1운동이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한국인이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과 자주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위 과정에서 일본은 독립 만세를 외치는 한국인의 목소리를 어떠한 폭력적인 수단을 써서라도 막으려했다. 4월 들어서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또 격렬해지자, 일본 정부는 본토에서 헌병 400명과 보병 6개 중대를 추가해 전국 각지에 배치했고, 자제단의 조직도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만세시위는 급격히 줄어들었으니 말이다. 결국 우리에게 남은 길은 하나였다. 스스로의 힘으로, 또 장기적인 싸움으로 독립을 쟁취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새로운 구심점이 필요했다. 바로 임시정부의 탄생이다. 저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으로 한국사는 이제 명실상부하게 군주나 귀족이 권력을 독점하는 ‘제국’에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권이 있는 ‘민국’의 시대로 넘어가게 되었다고 정의한다. 아울러 1919년 3월의 함성으로 대한민국은 역사의 거대한 전환을 이루어냈으며, 이것이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봄날의 함성을 앞으로도 잊지 않고 계속 되새겨야 하는 이유라고 말한다.

 

 

 

1919년 4월 11일 새벽, 임시의정원은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와 ‘민국’이라는 연호를 제정한다. 이날 논의된 ‘대한민국’, ‘조선공화국’, ‘고려공화국’ 등 여러 국호 중에서 신석우가 제안한 대한민국이 채택된 건, ‘대한’에는 일본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다는 의미가 있으며, ‘민국’은 1911년 신해혁명으로 탄생한 ‘중화민국’처럼 새 나라가 공화제 국가임을 분명히 보여주는 의미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 311p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성립 과정에서 우리가 반드시 눈여겨봐야 할 것이 있다. 바로 4월 10일 임시의정원에서 통과된 대한민국 임시헌장이다. 임시헌장은 신익희, 조소앙, 이광수 등이 만드는 데 참여해 모두 10조로 구성되는데, 특히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는 문장은 대한민국 현행 헌법의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와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와도 직결된다. 우리에게는 매우 익숙한 내용이지만, 사실 대한민국 외에는 전 세계 어떤 나라의 헌법에도 이렇게 쓰여 있는 경우가 없다. / 331p

 

 

 

 

 

 

   책의 말미에는 부록으로 「2·8독립선언서」, 「3·1독립선언서」 전문을 수록함과 동시에 3·1운동의 성격과 참가자 구성, 사망자 및 부상자 수의 통계자료가 수록되어 있다. 이를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또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이 이 땅의 자유 수호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나 언론, 지식인들은 3·1운동을 ‘폭동’이나 ‘소요’라고 표현하면서 그것이 단순히 1910년대 조선을 통치한 데라우치 마사타케나 하세가와 요시미치 같은 무관총독이 무단통치를 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분석한다고 하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사정이 이러한데 우리는 3·1운동의 정신과 임시정부 수립의 위대한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는 점점 모르는 채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우리가 그동안 몰랐던, 하지만 꼭 알아야할 역사를 생생하게 되살려냈다는 점에서 꼭 읽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앞으로의 세대가 더 기억해주었으면 하는 역사이기에 보다 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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