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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_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그리고 계속되어야 할 이야기 | 나의 서재 2021-09-30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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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저
문학동네 | 2021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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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로 스며드는 듯한 언어, 그 예민한 감각의 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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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멸의 시도들, 그 불온한 역사 이후의 시간들!

피부로 스며드는 듯한 언어, 그 예민한 감각의 여운!

 

 

 

그 겨울 삼만 명의 사람들이 이 섬에서 살해되고, 이듬해 여름 육지에서 이십만 명이 살해된 건 우연의 연속이 아니야. 이 섬에 사는 삼십만 명을 다 죽여서라도 공산화를 막으라는 미군정의 명령이 있었고, 그걸 실현할 의지와 원한이 장전된 이북 출신 극우 청년단원들이 이 주간의 훈련을 마친 뒤 경찰복과 군복을 입고 섬으로 들어왔고, 해안이 봉쇄되었고, 언론이 통제되었고, 갓난아기의 머리에 총을 겨누는 광기가 허락되었고 오히려 포상되었고, 그렇게 죽은 열 살 미만 아이들이 천오백 명이었고, () / 317p

 

 

 

  이따금 인간이 벌일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유형의 비극을 상당히 오랜 시간 들여다보고 나면, 삶이 과연 온전히 유지될 수 있을까 궁금해질 때가 있다. 찰나의 섬광, 날카로운 비명, 이 죽음의 끝에 또 어떤 죽음이 잇따라 이어질지 알 수 없는 자들의 생생한 공포. 저 내밀한 사연들을 하나하나 좇아가며 복기하고 또 복기하여 글로 엮어낸다는 건, 그들의 삶의 무게를 다시 하나하나 내 것으로 짊어지는 일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소설가인 경하의 삶에 뿌리를 내린 악몽도 그렇게 시작된다. 수천 그루의 검은 통나무들이 묘비처럼 심겨져 있는 눈 내리는 벌판. 왜 이런 데다 무덤을 쓴 거야? 밀물이 밀려오고 있는 바다 위에 펼쳐진 이 기이한 광경을 바라보며 경하는 마음이 다급해진다. 이미 물에 잠긴 무덤들은 어쩔 수 없더라도 위쪽에 묻힌 뼈들은 옮겨야 한다고, 바다가 더 들어오기 전에 이 검은 나무들을 옮겨야 한다는 생각에 어쩔 줄을 모른다. 그러는 사이 어느 새 바닷물은 무릎까지 차올라 있고, 주변에는 아무도 없고 이 많은 무덤들을 다 어떻게 하냐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며 황망히 꿈에서 깨어난다.

 

 

 

  사 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서까지 경하는 이 날의 꿈을 잊지 못한다. 어쩌면 봉분 아래의 뼈들을 휩쓸어가기 위해 밀려들어오던 그 시퍼런 바다는, 소설을 쓰는 내내 몰두해 있었던 도시 광주에서 일어난 학살을 의미하는 건가. 학살과 고문에 대해 쓰기로 마음먹었으면서 언젠가 고통을 뿌리칠 수 있을 거라고, 모든 흔적들을 손쉽게 여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순진한 착각은 이후에도 집요하게 그녀를 따라다니며 괴롭힌다. 인선에게 그 꿈을 이야기하게 된 것은 그저 우연이었을까. 경하는 한때 사진과 다큐멘터리 영화 작업을 하다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제주로 내려가 있던 친구 인선에게 그 꿈과 연관된 작업을 짧은 기록영화로 만들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한다. 인선은 흔쾌히 좋다고 약속했지만, 두 사람의 일정이 꼭 맞는 때가 좀처럼 오지 않은 채 또 다시 사 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가버리고 경하는 하지 않는 것으로 마음을 바꾼다.

 

 

 

그러나 여전히 깊이 잠들지 못한다.

여전히 제대로 먹지 못한다.

여전히 숨을 짧게 쉰다.

나를 떠난 사람들이 못 견뎌했던 방식으로 살고 있다, 아직도. / 28p

 

 

 

  12월 하순의 아침, 경하는 인선이 병원에 있다는 연락을 받는다. 통나무 작업을 하던 중 사고로 두 손가락이 잘려 봉합수술을 받았다는 것이다. 다급히 병원을 찾은 경하는 인선으로부터 뜻밖의 부탁을 듣는다. 지금 당장 제주로 내려가 혼자 남아 있는 새를 구해달라고. 오늘 안에 물을 줘야 살릴 수 있다고 말이다. 폭설로 인한 기상악화로 인해 겨우 마지막 제주 비행기에 올라탄 경하는 가까스로 인선의 마을로 향하지만, 지독한 두통과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어둠 속에서 길을 잃으며 이곳에 오지 말았어야 했나 하는 후회에 잠긴다. 하지만 그녀는 어두컴컴한 길을 헤치고 인선의 집을 향해 앞으로 나아간다. 새를 구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게 멈춘 게 언제였을까, 나는 생각한다. 내가 건천으로 미끄러지지 않았다면 그전에 물을 먹일 수 있었을까. 그 순간 제대로 길을 택해 내처 걸어왔다면. 아니, 그전에 터미널에서 더 기다려 산을 가로지르는 버스를 탔다면. / 155p

 

 

 

 

 




 

 

 

 

제주 4·3 사건,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폭설로 전기마저 끊긴 인선의 집에서 경하는 제주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에 얽힌 인선의 가족사와 당시 제주민들의 증언이 담긴 기록을 마주한다. 언니와 심부름을 간 사이 온 가족이 학교 운동장으로 끌려가 학살을 당해 시체의 무덤 속에서 가족의 얼굴을 찾아 헤맸던 열 세 살의 엄마, 이북 사투리를 쓰는 경찰들이 마을마다 들이닥쳐 젊은 남자들을 잡아가 실적을 올린다는 소문에 동굴에 혼자 숨어 지냈던 아버지, 피투성이로 모래밭에 엎어져 있는 사람들을 군인들이 바다에 던지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던 어느 노인의 증언, 내 너머로 사십 호 안팎의 집들이 모여 있었지만 1948년 소개령 때 모두 불타고 사람들이 몰살되며 폐촌이 되어버린 마을, 시간이 흐르고 흘러서도 학살을 피해 사라졌던 오빠의 행적을 찾기 위해 외로운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던 엄마와 또 다른 생존자들의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절멸의 시도들, 그 불온한 역사 이후의 시간들이 생생하게 인선의 육성과 기록을 통해 경하에게로 전해진다.

 

 

 

까무러칠 것같이 아팠는데.

정말 차라리 까무러치고 싶었는데, 왜 그때 네 책 생각이 났는지 몰라.

거기 나오는 사람들, 아니, 그때 그곳에 실제로 있었던 사람들 말이야.

아니, 그곳뿐만 아니라 그 비슷한 일이 일어났던 모든 곳에 있었던 사람들 말이야.

총에 맞고,

몽둥이에 맞고,

칼에 베여 죽은 사람들 말이야. / 56p

 

 

나는 바닷고기를 안 먹어요. 그 시국 때는 흉년에다가 젖먹이까지 딸려 있으니까, 내가 안 먹어 젖이 안 나오면 새끼가 죽을 형편이니 할 수 없이 닥치는 대로 먹었지요. 하지만 살 만해진 다음부터는 이날까지 한 점도 안 먹었습니다. 그 사람들을 갯것들이 다 뜯어먹었을 거 아닙니까? / 225p

 

 

 

  인간이 인간에게 어쩌면 이리도 끔찍한 일을 벌일 수 있을까, 소설이 다루고 있는 제주 4·3 사건을 비롯해 아주 무거운 진실들은 너무 참담해서 때로는 차라리 몰랐으면 하고 바랄 때가 있다. 그래서일까, 촛불은 이제 다 타들어 가는데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처럼 재우치는 인선을 따라가며 몇 번이나 머뭇거리게 되는 경하의 목소리가 꼭 내 것 같다. 돌아가자, 다음에 오자, 눈 그치고 다시. 하지만 그렇게 흘려 보낸 시간들이 아쉬워서, 너무나 간절해져서 인선은 혹은 그녀와 꼭 같은 마음이었을 수많은 누군가들은 꽤나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인선의 한 마디가 경하는 물론, 내 마음까지 와락 붙든다. ……다음이 없을 수도 있잖아.

 

 

 




 

 

 

 

 ‘작별하지 않겠다라는 완곡한 다짐을 쓸 수 없었던 이유는, 우리는 기껏해야 이 비극의 아픔을 바라보고 그들의 상처를 들어주고 보듬어주는 것 정도 밖에 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손가락을 포기하는 것보다 잘린 손가락의 신경을 죽이지 않기 위해 3분 마다 바늘에 찔리는 고통을 감내하는 것을 택했던 인선의 아픔조차 다 이해할 수 없는 법이다. 다만, 외면하지 않고 조금 더 끈질기게 바라보며 언제나 그것들이 던지는 질문 앞에서 마주 앉아 대답해보는 것. 어설픈 다짐이 아닌 담담히 그리고 묵묵히 작별하지 않고 계속 얘기해보는 것. 그것이 우리를 더 나은 곳으로 이끌지 않을까 믿어보는 거다.

 

 

 

물은 언제까지나 사라지지 않고 순환하지 않나. 그렇다면 인선이 맞으며 자란 눈송이가 지금 내 얼굴에 떨어지는 눈송이가 아니란 법이 없다. 인선의 어머니가 보았다던 학교 운동장의 사람들이 이어 떠올라 나는 무릎을 안고 있는 팔을 푼다. 무딘 콧날과 눈꺼풀에 쌓인 눈을 닦아낸다. 그들의 얼굴에 쌓였던 눈과 지금 내 손에 묻은 눈이 같은 것이 아니란 법이 없다. / 133p

 

 

 

  심심하게 다가오는 듯했던 소설이 갈무리될 때쯤 어느 새 저릿하게 파고든다. 피부로 스며드는 듯한 한강의 언어와 그 예민한 감각의 여운이 상당히 오래갈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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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_ 다시 쓰는 신화, 매력적인 여성 서사시의 탄생 | 나의 서재 2021-09-24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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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키르케

매들린 밀러 저/이은선 역
이봄 | 2020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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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신화의 빈틈을 메워나가되 새로운 해석과 가능성을 열어 보인 새로운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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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정체성을 계속해서 고민하고 극복해나가려는 새로운 유형의 여성 서사시를 발견하다!

전통 신화의 빈틈을 메워나가되 새로운 해석과 가능성을 열어 보인 새로운 신화!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에 따르면, 신화란 세상에 대해 알아가고, 인간에 대해 알아가고, 곧 나에 대해 알아가기 위한 도구라고 한다. 세상의 수많은 상징을 잉태한 신화를 알면 세상이 보이고, 그것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인간을 알면 인간이 보이고, 그 속에 있는 내가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가 오늘날까지도 가장 널리 읽히는 작품이자, 살아 움직이는 이야기로써 여전히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사랑받는 소재로 쓰이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아킬레우스의 노래에 이어 키르케까지, 작가 매들린 밀러가 신화에 주목한 것은 크게 이례적이라고 할 만한 일은 아니다. 신화를 입체적으로 해석하고 현대적으로 각색하는 등의 시도들은 이미 다양하게 이루어져왔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질문을 우선 하지 않을 수 없다. 왜 신화인가? 왜 키르케인가?

 

 

 

새로운 여성 서사의 고전, 키르케가 던지는 의미들

 

 

  키르케는 누구일까. 그리스 로마 신화 속에서 내가 키르케라는 이름을 본 적이 있었던가. 익숙한 듯 낯선 이름에 비교적 최근에 읽은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뒤적이며 찾아보았지만 좀처럼 그녀의 이름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나만 못 찾은 것일까). 그나마 오디세이아에서는 오디세우스의 발목을 잡아 그의 귀환을 늦추는 아이아이에의 마녀로 등장하여,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남성들을 돼지로 만들어버리는 능력자 정도로만 묘사되어 있을 뿐이라는데. 수많은 올림포스의 신과 인간들 혹은 그들이 낳은 괴물들의 이야기로 풍성한 신화 속에서 고작해야 이름 몇 번 정도 등장할 법한 아주 작은 배역에 지나지 않는 이 인물에 굳이 주목한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해서 나는 이 책을 읽지 않았을 수 없었다.

 

 

 

맨 처음 태어났을 때 나에게는 걸맞은 이름이 없었다. / 9p

 

 

 

  태양신인 헬리오스와 샘물과 시냇물의 정령인 님프 페르세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여느 하급 여신들이 그러하듯 키르케 역시 수많은 님프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눈이 노란 게 오줌색이야. 목소리는 올빼미처럼 끽끽거리고. 저렇게 못생겼는데 매가 아니라 염소라고 불러야 하는 거 아니야?’ 하고 두 동생과 어머니로부터 늘 조롱을 당해온 그녀는 아무리 하급 여신이라 하더라도 자신에게 얼마쯤은 아버지가 지닌 위대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해본다. 하지만 대부분의 님프들이 그러하듯, 그녀 역시 가까스로 영생을 유지하며 그나마 뛰어난 미모로 남신과의 결혼을 도모하고 신들의 모임에서 한 자리 꿰차는 것만이 유일한 생존법이자 운명임을 이내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삼촌 하나가 벌을 받게 됐다는 소문을 듣는다. 그는 오래전에 인간들이 동굴 속에서 벌벌 떨며 움츠리고 지내던 시절에 제우스의 뜻을 거역하고 불을 선물한 프로메테우스다. 저승에 사는 극악무도한 복수의 여신 에리니스 자매 중 하나에게 처벌의 책임이 맡겨지고, 프로메테우스는 신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끔찍한 형벌을 받는다. 인간들을 도왔다는 이유로 신의 처벌을 자청한 그를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키르케는 그의 의연함에서 이제껏 알지 못했던 묘한 감정을 느낀다. “모든 신이 똑같을 필요는 없어.” 키르케는 자신이 수천 곱하기 수천의 어린 님프들 가운데 한 명에 불과하지만 그저 그 일부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무엇보다 살아 있는 생명체라는 사실을 프로메테우스와의 짧은 대화를 통해 깨닫게 된다.

 

 

 

모든 신이 똑같을 필요는 없어.

() 나는 그들과 달랐다.

다르다고? 낮고 우렁찬 삼촌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럼 생각을 해야 한다, 키르케. 그들이라면 어떻게 하지 않겠는지. / 81p

 

 

세상에 그런 능력이 있다 한들 너 같은 애의 눈에 발견될 리 없지 않으냐.”

내 뒤에서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들렸고, 삼촌들은 대놓고 재미있어했다. 하지만 쓰레기 떨구듯 이야기하는 아버지의 말투가 가장 충격이었다. 너 같은 애. 다른 날 같았으면 나는 몸을 웅크리고 울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은 아버지의 경멸이 마른 장작 위에 떨어진 불똥과도 같았다. 나는 입을 열었다.

아버지 생각이 틀렸어요.” 내가 말했다. / 84p

 

 

 

  이후 키르케는 인간 남자인 글라우코스를 만나면서 인간의 심연을, 거룩한 힘 대신 손으로 직접 일과를 수행하는 수고로움을, 단순하지만 인간적인 기적을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영겁의 시간이 주어진 자신과 인간인 글라우코스는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사는 존재였다. 이에 괴로움을 느낀 키르케는 글라우코스를 영원히 자신의 곁에 두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과 파르마콘을 이용해 그를 신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 이 일을 계기로 키르케는 자신에게도 매우 놀라운 능력이 있음을 깨닫게 되지만, 이내 님프인 스킬라가 글라우코스의 마음을 꿰어냈다는 사실에 분노하여 그녀를 괴물로 만들어버리고 만다. 결국 키르케는 신들의 명예를 욕보였다는 이유로 무인도인 아이아이에 섬으로 유배된다. ‘마녀라는 낙인과 함께.

 

 

 

  키르케는 신들로부터 철저히 내쳐지게 되지만, 마냥 절망하고 있지만은 않는다. 약초가 자라는 곳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시기에 맞춰서 캐고 흙바닥에서 뽑고 추리고 껍질을 벗기고 씻고 다듬으면서 날마다 끈기 있게 오류를 수정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를 반복한다. 어디에 어떤 능력이 있는지, 자신의 능력이 어디까지 미칠 수 있을 것인지를 가늠한다. 그렇게 자신의 능력을 갈고 닦아 키르케는 아이아이에를 찾아오는 신들과 인간들을 위해 자신의 힘을 이용하기 시작한다. 자신을 늘 비웃었던 여동생 파시파에가 황소 아이 미노타우로스를 낳는 것을 돕고, 다이달로스가 성난 미노타우로스를 가둬둘 미로를 만들기 전에 모두를 안전하게 보호해 줄 주술을 쓴다. 오디세우스와 그의 전우들을 돕기도 하고, 훗날 세이렌을 피할 방법을 일러주기도 한다. 그러는 사이 신들은 자신들의 기분에 따라 시시때때로 그녀의 평화를 깨뜨리곤 하지만, 그녀는 신의 방식에 의지하지 않고 끊임없이 운명을 거부하면서 자신만의 서사를 만들어나간다. 비록 거기엔 어떤 거대한 힘이나 극적인 요소는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는 그동안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키르케의 목소리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계속해서 고민하고 극복해나가려는 새로운 유형의 여성 서사시를 발견하게 된다.

 

 

 

이 바보들아.” 내가 말했다. “내가 저 괴물을 만든 자다. 자존심과 허영심에 눈이 멀어 그런 짓을 저질렀다. 그런데 내게 감사한다고? 너희 동료 열두 명이 죽었고 앞으로 몇천 명이 더 목숨을 잃겠느냐? 아까 내가 그녀에게 먹인 약은 가장 강력한 약이었다. 알겠느냐, 인간들아?” / 152p

 

 

이카로스, 다이달로스, 아리아드네. 모두들 손으로는 허공 말고는 아무것도 쥐지 못하고 발로는 더 이상 땅을 딛지 못하는 어두컴컴한 세계로 떠났다. 내가 거기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들 달라졌을까? 헤르메스가 한 말이 맞았다. 인간들은 시시각각으로 죽었다. 난파당하거나 칼에 맞아서, 사나운 짐승이나 사나운 인간에게, 병이나 부주의나 노령으로. 프로메테우스도 얘기했다시피 그것이 그들의 운명이었고 그들 모두가 공유하는 사연이었다. 살아생전에는 아무리 활기 넘쳤어도, 아무리 눈이 부셨어도, 아무리 경이로운 업적을 남겼어도 결국은 먼지와 연기 신세였다. 반면에 아무리 하찮고 쓸모없더라도 신은 별빛이 꺼질 때까지 계속 환한 공기를 마실 것이다. / 206p

 

 

나는 후회와 세월이 새겨진 거석처럼 너무 오랫동안 칙칙하고 근엄하게 지냈다. 하지만 그건 남들이 나를 억지로 끼워맞춘 틀에 불과했다. 이제 그 안에 갇혀 있을 필요가 없었다. / 485p

 

 

 

  소설 키르케가 흥미로운 것은 기존의 신화를 그대로 답습하는 게 아닌, 빈틈을 메워나가되 새로운 해석과 가능성을 매우 설득력 있게 제기한다는 점이다. 이를 테면 파시파에는 희대의 손재주꾼 다이달로스를 이용하여 가짜 소를 만들게 해 자신의 욕정을 채우는데,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에 따르면 파시파에의 눈에, 포세이돈의 황소가 바로 잃어버린 반쪽이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냥 보이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침내 황소의 강렬한 짐승스러움과 수컷스러움에 욕정을 느끼는 데까지 이른다로 묘사되어 있다. 파시파에는 왜 가짜 소로 하여금 자신의 욕정을 채운 것일까. 사실 파시파에가 특별히 음란한 여성이었다는 기록도 없고, 언제부터 지아비인 미노스왕이 진정한 자신의 반쪽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에 대한 기록도 없기에 우리로서는 다만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매들린 밀러는 여기에 재미있는 가능성을 제기한다. ‘파시파에가 미노스와 결혼했을 때 크레테는 가장 부유하고 유명한 왕국이었다. 하지만 이후로 날마다 미케네와 트로이아, 아나톨레와 바빌론에서 새로운 왕국이 부상했다. 그리고 남동생 한 명은 죽은 자를 살리고, 다른 한 명은 용을 길들이고, 언니는 스킬라를 변신시켰다. 이제 아무도 파시파에를 화제로 삼지 않았다. 그런데 희미해져가던 그녀의 별이 단박에 다시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온 세상에서 인간을 잡아먹는 거대한 황소를 낳은 크레테의 왕비 이야기를 할 것이라고 말이다. 다시 말해 매들린 밀러는 파시파에가 일탈적인 변덕으로 황소와 교미한 게 아니라 미노타우르스를 생산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상기시켜줄 용도로 이용했을 것이라는 놀라운 상상력을 부여한다. 여기에 다이달로스, 이아손과 메데이아,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에 이르기까지, 매들린 밀러가 쓴 이 새로운 신화는 전통 신화 너머에 존재하는 그들의 숨겨진 서사를 발굴해냄으로써 신화를 다르게보게 한다는 점에서 무척 특별하다.

 

 

 

하늘에서 별자리가 어둑어둑해지고 자리를 바꾼다. 바닷속으로 추락하기 직전의 마지막 햇살처럼 신의 광휘가 내 안에서 빛을 발한다. 예전에는 신이 죽음의 반대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 무엇보다 죽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바뀌지도 않고, 손에 쥘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 500p

 

 

 

  물론 키르케는 그 자체만으로도 재미는 있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와 관련된 도서를 한 번이라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 새로운 신화가 얼마나 신선하게 느껴질 수 있을지 의문은 든다. 그래서 이 책을 읽어보지 않은 분들에게 이왕이면 관련 책을 미리 읽어보시기를 추천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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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사람과 뻔뻔하게 대화하는 법_ 나에게 꼭 필요한 대화의 기술 | 나의 서재 2021-09-15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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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불편한 사람과 뻔뻔하게 대화하는 법

진 마티넷 저/김은영 역
필름 | 2021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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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상대와 어울리고 싶다면 이 책에 주목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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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모임에 누구누구 오는데?”

  느닷없이 모임 약속이 잡힐 때면 나는 동행자에게 누가 참석하는 모임인지 반드시 확인 하곤 한다. 모임의 목적과 참석자의 성향에 따라 옷과 화장 등의 차림새를 달리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은 참석자 중에 불편하거나 껄끄러운 상대가 없는지 미리 파악하기 위해서다. 처음 보는 사람과의 만남과 대화를 두려워하는 편은 아니지만, 대화하기 편한 상대를 우선으로 찾고 이해관계가 같은 사람과 어울리는 게 편리하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화 도중 감정이 격해지거나 갈등이 일어날 것 같은 기분이 들면 일단 피하고 보는 게 이롭다는 것도. 그래서일까, 언제부턴가 끼리끼리어울리고 편한 사람과의 만남에만 치중하다보니 대인관계의 규모가 많이 축소되었다는 느낌도 든다. 더군다나 코로나19로 인해 소규모의 만남이나 친한 사람만 겨우겨우 만날 수 있는 실정이다 보니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일이 그 어느 때보다 쉽지 않은 요즘이다.

 

 

 

  『불편한 사람과 뻔뻔하게 대화하는 법을 쓴 저자 진 마티넷의 말에 따르면, 대다수의 미국인들이 처음 만난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일에 대해 이미 남몰래 어울림 공포증을 앓고 있다고 한다. 어디 미국인들만의 문제일까. 긴장되고 방어적인 분위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임에 참석하기를 두려워하고, 모임에 참석해서도 말실수를 할까 봐 전전긍긍하게 됨으로써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은 오늘날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불안증이 되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갈등을 피하기 위해 얼굴을 맞대고 나누는 대화를 멀리해선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대인관계를 쌓는 일이 어려워질수록 즐거운 대화와 만남이 더더욱 필요하며, 이해관계가 같은 사람들끼리만 모이려고 하는 경향이 사회 건강에 해롭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상처받거나 화내지 않고 불편한 사람과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이 책은 적대적인 대화로 즐거운 시간을 망치지 않으면서 선입견 없이 타인과 능숙하게 대화할 수 있을지 대화법에 관한 훌륭한 전략과 기술들을 소개한다. 나를 폭발하게 만드는 방아쇠를 찾는 법, 대화가 파멸에 임박했음을 알리는 신호를 알아차리는 법, 우아하게 이의를 제기하는 방법, 유머를 대화의 훌륭한 도구로 삼는 방법을 비롯해 자연스럽게 화제를 바꾸는 법, 정신 건강을 위해 우아하게 대화에서 후퇴하는 법 등 여러 상황에 따라 효과적으로 활용해볼 수 있는 기술들을 알려준다. 평소 대화의 주제를 고르기 어려워하거나 지나치게 상대방의 눈치를 보는 이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다 이내 대화 자체를 포기하게 되는 이들에게도 좋은 해결책을 제시해준다.

 

 

 

증오의 반대편에는 우리 모두가 근본적으로

동등한 상태의 인간으로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아름답고 강력한 현실이 있다. 증오의 반대는 관계맺기다. - 샐리 콘 / 89p

 

 

 

  저자는 불편한 상대와 어울리는 법을 배우려면 먼저 기본 원칙을 염두에 둘 것을 제안한다. 어떤 상황이든 주요 목적은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이지,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업상 모임이든 이웃사람들과의 모임이든, 그 모임이 사랑하는 관계든 친구사이든 아니면 승진을 목적으로 하든, 일차 목적은 사람과 교류하고 그 교류를 통해 배워나가는 데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임에 나갈 땐 미리 마음을 정해두지 않을 것을 제안한다. ‘미리 정해둔다는 것은 사고를 지나치게 경직되게 만들며, 대화의 흐름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상대방에게 특정 의견을 갖게 되면 그가 실제로 무슨 말을 하건 잘 듣지 않게 될뿐더러 상대방의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판단을 내릴 위험이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미리 마음을 정해둔다거나 지레 추측을 하는 행위는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무언의 교묘한 모욕과 같을 수 있음을 잊지 말자.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스스로 준비하고 훈련해야 한다. 사회화에 능숙해지는 동시에 덜 방어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서로를 거슬리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마음을 터놓고 그동안 익숙했던 맹렬한 비난은 버려야 한다. 가장 값지고 즐거운 대화는 선입견 없이 자유롭게 흘러가도록 두는 대화이다. 따라서 눈앞의 사람들과 대립하지 않으면서 마음속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 14p

 

 

단어뿐 아니라 다른 모든 신호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행간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상대방의 입에서 나오는 단어뿐 아니라 단어 뒤에 숨어있는 것들도 잘 들어야 한다. 얼굴 표정과 몸짓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대화의 어떤 부분이 상대방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어느 부분에서 웃고 어느 부분에서 고개를 돌리는지, 말 뒤에 무엇이 숨어있는지 보려고 노력하자.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저 생각 뒤에는 어떤 동기가 숨어있을까? 이 사람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지금 이 순간에 머무르자. 적어도 말하는 만큼 잘 듣자. / 93p

 

 

 



 

 

 

 

  때로는 말로 설득하려 해도 도무지 설득할 수 없는 이들이 있고, 이해할 수 없는 무리들을 꼴불견을 볼 때마다 뭐라 한 마디 하고 싶지만 꾹 참아야 할 때도 있다. 저자는 이럴 때 감정의 날을 세우고 흥분하기보다 눈을 감은 뒤 타인을 판단하지 말고 스스로 이렇게 타일러 볼 것을 제안한다. 나를 불쾌하게 만드는 사람들을 모두 세 살 어린아이라고 상상해보는 것이다. 만약 모임에서 주변 사람들이 순간 너무 추잡해 입에 담기도 싫은 것들을 마구 쏟아내고 있다면, ‘이 까탈스러운 세 살짜리들 좀 보라지. 다들 잘 시간이 지났나 보군.’ 하고 자신을 속여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말이다. 또 잘난 척하며 가르치려 드는 허풍선이나 고압적인 사람과 마주할 때는 모른 척 호소하기전략을 사용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소개한다. 간혹 남의 말은 전혀 듣지 않고 내가 누구보다 이 분야에 대해 연구를 많이 했는데 말이야.” 혹은 그런 것도 모르다니 정말 멍청하네…….”와 같은 말을 뱉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유형의 사람과는 이성적 대화가 불가능하므로 모른 척 호소하는 것으로 열기구 풍선에 핀을 찔러 넣듯 허풍에 바람을 빼는 게 의외로 효과가 좋을 거라고 말한다. “, 저는 잘 모르겠네요.”라고 대응하거나 그건 아닌 것 같지만 저는 그 문제에 대해 토론할 만큼은 잘 모르겠네요. 다른 얘기를 하면 어떨까요?”라고 응대함으로써 상대의 아는 척에 반응하지 않는 것으로 응수하기, 꽤 괜찮은 방법 같다.

 

 

 

/아니오 질문은 하지 말자. 상대방이 길게 말할 수 있는 질문을 하자. 가장 좋은 질문은 무언가를 공유할 수 있는 질문이다. 그런 질문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마음을 열게 만든다. 예를 들어, “나는 시카고 근방에서 자랐지만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도시 생활을 많이 경험하지 못했어요. 당신은 어디 출신이죠?”와 같은 질문이 좋다. / 95p

 

 

때로는 침묵을 통해 찬성할 수 없다는 것을 조용히 그리고 효과적으로 표명할 수 있다. 상황이 적절하다면 침묵은 책임회피가 아니다. 자신의 원칙을 저버리는 것도 아니며 실제 정면으로 맞서는 것도 아니니 소란이 발생하지도 않을 것이다. 때로는 적극적으로 맞서면 상대방이 오히려 더 완강하게 버티며 자신을 방어한다. 불쾌하게 만든 사람이 침묵을 전혀 신경 쓰지 않거나 술에 취했거나 혹은 돌에 맞지 않은 이상 침묵은 이의를 제기하거나 화를 내는 것보다 상대방을 더 불편하게 만든다. 가끔은 침묵이야말로 가장 시끄러운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 115p

 

 

 


 

 

 

 

  흥미롭게도 저자는 의견 대립이 있을 때 오히려 상대방의 마음을 얻거나 바꾸는 데 집중하지 않을 것을 제안한다. 대신 서로가 상대방이 왜 그런 믿음을 가지게 되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대화를 목표로 하라고 조언한다. 상대방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하겠다는 마음은 버리고, 옳은 것을 선호하는지 아니면 흥미로운 대화를 선호하는지 스스로에게 먼저 물어보자. 옳고 그름의 판단을 포기한다면 여러 이슈에 대해 열심히 갈고닦은 통찰력을 느끼게 될뿐더러 상대방의 입장도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그간 상대방의 의견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부단히 애써오지 않았는지, 그러함으로써 더욱 흥미로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곧잘 잃지는 않았는지 돌이켜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책을 읽다보니 내 편이 아니면 모두 적으로 간주되고, 공격이 대화를 대체하고 있는 우리 시대에 어쩌면 대화의 기술은 서로를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으로 하여금 많은 이들이 단절된 대화에 다리를 놓고, 관계를 개선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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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지구 끝의 온실

김초엽 저
자이언트북스 | 2021년 08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아주 작아 보이는 것들이 일으키는 파동을, 여린 온기가 불어넣은 생명의 힘을 희망으로 엮어낸 놀라운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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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의 위기에 처한 인류의 미래를 생생하게 구현해낸 소설!

아주 작아 보이는 것들이 일으키는 파동을, 여린 온기가 불어넣은 생명의 힘을 희망으로 엮어낸 놀라운 작품!

 

 

 

 

[헤데라 트리피두스Hedera trifidus, 일명 모스바나. 송악속의 상록성 덩굴식물로 흔히 키우는 관상용 담쟁이의 근연종이다. 다른 식물들에 피해를 입힐 정도로 강한 침투성 식물이고, 땅에서도 넓게 퍼져 잘 자라지만 주로 벽이나 나무를 타고 오른다. 독성이 있어 피부염이나 알레르기를 유발하고, 식물의 거의 모든 부위가 사람에게 위험하며 특히 잎과 열매는 더 강한 독성을 가진다.]

 

 

 

  때는 2129, 더스트생태연구센터에서 연구원으로 재직 중인 아영은 산림청으로부터 모스바나라 불리는 식물의 샘플을 분석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겉은 평범해 보이지만 피부에 닿으면 매우 간지럽고 따끔해 일명 악마의 식물이라 불릴 정도로 위험한 이 식물이 최근 강원도 해월의 한 폐허를 중심으로 이상 증식하고 있다는 마을 주민들의 제보가 빗발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생태연구원인 아영에게도 독성을 지닌 덩굴식물이 한 야산을 다 뒤덮을 만큼 이상 증식을 하는 광경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그곳이 한때 한국의 최대 로봇 생산지였으나 기계들의 집단 오류로 이제는 도시 전체가 폐허로 변한 해월인 것도 의아한 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모스바나는 더스트 시대, 이른바 더스트 폴이라 불리는 먼지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는 그 어떤 유기체도 살아남기 힘들었던 멸종의 시대에 독점종의 지위를 차지하다가 더스트가 종식되고 마침내 인류가 재건되기 시작하면서 서식지가 급격히 감소했고, 최근까지도 국내에선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종이었기에 의문은 더욱 짙어진다.

 

 

 

  대체 왜? 끔찍한 바이러스나 세균 테러도 아니고, 생물 테러라기엔 단지 성가신 식물을 증식시켜 방제 담당 직원들을 괴롭히는 것 정도에 불과한 것을 굳이 왜? 해월 인근 지역 주민들에게 원한을 품거나, 농사를 방해할 목적이거나 그도 아니면 자연 생태계를 교란시키려는 목적으로? 대체 누가 그런 의도로 하필이면 모스바나를 이용한단 말인가. 그렇게 누가 봐도 선뜻 의미를 알 수 없는 기이한 광경과 마주한 아영은 문득, 과거에도 이와 유사한 장면을 어디선가 목격한 것 같은 기시감을 느낀다. 괴상한 탈것과 인간형 로봇들이 쌓여있는 창고, 잡초와 모스바나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덩굴식물이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던 정원, 그 가운데 놓인 안락의자에 앉아 종종 꾸벅꾸벅 낮잠을 자거나 허리를 굽혀 한참동안 식물들을 들여다보고, 이따금 재미있는 식물 이야기나 더스트 시대에 자신이 보았던 흥미로운 존재들에 대해 들려주곤 했던 한 노인. 더스트가 종식된 후 자취를 감추었던 모스바나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지금, 그동안 잊고 있었던 노인 이희수에 대한 기억을 건져 올리게 된 건 과연 우연일까. 아영은 물론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이 미스터리한 현상 사이에서 어쩐지 이제껏 묻혀 있었던 혹은 보지 못했던 세상의 비밀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묘한 예감에 빠져들게 된다.

 

 

 

그건 생존과 번식, 기생에 특화된 식물이지요. 더스트 시대의 정신을 집약해놓은 것 같다고 할까요. 악착같이 살아남고, 죽은 것들을 양분 삼아 자라나고, 한번 머물렀던 땅은 엉망으로 만들어버리고, 한자리에서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멀리 뻗어 나가는 것이 삶의 목적인…… 그 자체로 더스트를 닮은 식물이지요.” / 106p

 

 

 

  이후 모스바나에 대한 아영의 의문은 에티오피아에서 랑가노의 마녀들이라 불리며 마녀이자 성인, 구원자로 통하는 아마라와 나오미 자매에게로 향하게 한다. 그들은 모스바나를 에티오피아 곳곳에 도입한 장본인이자, 그 누구보다도 모스바나에 대해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이를 이용해 더스트로 고통 받던 사람들을 치료까지 했다는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영은 이 만남을 통해 한때 인류를 멸망 위기에 몰아넣은 더스트가 휩쓸고 간 풍경과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거대한 돔 시티와 소규모의 돔 마을을 구성한 사람들, 돔에서 밀려난 사람들을 대상으로 가해진 폭력, 더스트에 내성을 갖고 있던 이들이 내성종이라고 불리며 착취당했던 과거의 이야기들을 생생하게 전해듣는다. 그리고 마침내 이들이 당도한 프림 빌리지라 불리는 한 도피처에 관한 이야기도 듣게 된다. 한 식물 연구소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와 그곳에서 개량된 더스트 저항종 식물들, 그 식물을 심으며 함께 살았던 사람들, 그들이 세상 밖으로 전한 것들까지. 아영은 그들에 관한 이야기 속에서 이제껏 알지 못했던, 세상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멸망의 위기를 극복해낸 인류 재건의 또 다른 역사를 마주하게 된다.

 

 

 

더스트 시대에는 이타적인 사람들일수록 살아남기 어려웠어. 우리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후손이니까, 우리 부모나 조부모 세대 중 선량하게만 살아온 사람들은 찾기 힘들겠지. 다들 조금씩은 다른 사람의 죽음을 딛고 살아남았어. 그런데 그중에서도 나서서 남들을 짓밟았던 이들이 공헌자로 존경을 받고 있다고, 그게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거든.” / 63p

 

 

세계 곳곳에 더스트를 피하기 위한 거대 돔이 세워졌을 때 사람들은 숲이나 들판의 생물들을 위한 돔은 만들지 않았다. 많은 종이 멸종을 향해 갔지만, 빠르게 더스트에 적응해 변이한 식물들도 있었다. 학자들은 더스트 자체가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유도해 빠른 변이를 촉진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 더스트로 죽은 숲 위에 새로운 생물종이 숲을 꾸리는 덧생태계도 나타났다. 그렇게 생겨난 변형종들은 더스트가 사라진 이후에도 한동안 자연을 지배하면서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풍경을 만들어냈다. 그러다 21세기 후반부터는 더스트 적응종들이 더스트가 없는 환경에 맞추어 다시 변하며 생태계의 풍경을 바꾸고 있었다. / 83p

 

 

 




 

 

 

 

  이처럼 지구 끝의 온실은 모스바나라는 한 식물에 관한 이야기로부터 출발하여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잊힐 뻔했던 인류 구원의 한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SF소설이다. 멸망한 세계 속 유일한 도피처인 온실로부터 파생되어 온 인류 재건의 역사는, 어떤 위대한 발견과 뛰어난 능력을 가진 특정한 누군가에 의한 것이 아니라 끝끝내 살아남아 그저 내일을 믿고, 희망의 씨앗을 부지런히 실어 나르며 가꿔온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이루어진 것임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멸망 속에서 새로이 일으킨 지구의 역사를 식물의 관점에서 재구성한 것은 우리가 왜 김초엽이라는 작가에 주목해야 하는지를 증명한다. 인간들이 부단히 자신들의 능력을 증명하느라 지워낸, 동식물들의 삶에 가득한 경쟁과 분투 그리고 그들의 끈질긴 생명력에 온기를 불어넣은 그녀의 작업은 소설이 우리 시대에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게 아니었을까.

 

 

 

아영에게는 모두 소중한 연구 대상인데, 왜 하필 연구비를 들여 그 식물들을 복원하고 보존해야 하냐는 질문 앞에서는 늘 할말이 없어지곤 했다. 가장 그럴싸한 건 생물자원으로서의 가능성, 즉 식용이나 화훼 작물로의 쓸모나 약리적 성분을 강조하는 거였지만 아무 식물에나 그런 코멘트를 붙일 수는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맛있거나 예쁘거나, 하다못해 약으로 쓸 수 있는 식물 외에는 더 이상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 30p

 

 

당신은 재건의 역사를 식물들의 관점에서 재구성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아직도 그 작업이 수행되지 않았다는 점이 놀라울 정도입니다. 인류는 그간 얼마나 인간 중심적인 역사만을 써온 것일까요. 식물 인지 편향은 동물로서의 인간이 가진 오래된 습성입니다. 우리는 동물을 과대평가하고 식물을 과소평가합니다. 동물들의 개별성에 비해 식물들의 집단적 고유성을 폄하합니다. 식물들의 삶에 가득한 경쟁과 분투를 보지 않습니다. 문질러 지운 듯 흐릿한 식물 풍경을 바라볼 뿐입니다. 우리는 피라미드형 생물관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식물과 미생물, 곤충들은 피라미드를 떠받치는 바닥일 뿐이고, 비인간 동물들이 그 위에 있고, 인간은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완전히 반대로 알고 있는 셈이지요. / 365p

 

 

 




 

 

 

 

  인류의 이기로 인해 초래된 지구 위기, 김초엽이 소설 속에서 보여준 미래가 낯설지 않은 것은 우리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좀처럼 종식되지 않고 있는 코로나 시대 속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이고, 전해주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이 소설로 하여금 독자들이 각자 그 해답을 얻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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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하고 괴상하고 웃긴 과학 사전! 1(동물 편)_ 놀랍도록 신비한 동물의 세계 | 나의 서재 2021-09-05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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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기발하고 괴상하고 웃긴 과학 사전! 1 동물

내셔널지오그래픽 키즈 저/신수진 역
비룡소 | 2021년 07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세상에 이런 일이, 우리가 이제껏 몰랐던 신비한 동물의 세계를 만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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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엄선한 신개념 동물 과학 사전!

세상에 이런 일이, 우리가 이제껏 몰랐던 신비한 동물의 세계를 만나보다!

 

 

 

  두 아이를 키우다보면 동물은 역시 아이들에게 가장 친근감 있는 언어라는 생각이 든다. 꽥꽥, 멍멍, 야옹, 엉금엉금, 깡충깡충아직 말을 틔우지 못한 아이들조차 먼저 반응을 보이고 따라하는 단어들을 살펴보면 대체로 동물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3살이 된 나의 아이도 동물도감만큼은 지루해하지 않고 마치 오늘 처음 읽은 것처럼 재미나게 본다. 하지만 기존에 가지고 있던 책만으로는 어쩐지 부족한 느낌이라 새로운 유형의 동물도감을 찾고 싶었는데, 마침 재미있는 제목의 책이 출간되어 눈길을 끌었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아 보이는 이 책 기발하고 괴상하고 웃긴 과학 사전! 1동물 편이다.

 

 

 

세상에! 내가 몰랐던 기상천외한 동물의 세계!

 

 

  이 책은 내셔널지오그래픽 키즈에서 새롭게 만든 신개념 과학 사전으로, 기존의 동물도감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독특한 구성이 눈에 띈다. 이제껏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동물에 관한 흥미로운 정보와 이슈를 한 데 모아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무엇보다 단숨에 시선을 사로잡는 생생한 동물 사진의 퀄리티와 독특한 서체는 읽는 재미를 더한다. 덕분에 아직 글을 읽지 못하는 3살 된 아이도 책의 선명하고 화려한 색감에 흠뻑 빠져들게 된다.

 

 

 




 

 

 

 

  책 속에는 세상에 이런 일이!’라고 놀랄 만한 정보들이 무려 300가지나 된다. 새처럼 짹짹 소리를 내는 치타, 자기의 침을 퉤퉤 뱉어서 둥지를 만드는 동굴칼새, 간이 몸무게의 4분의 1을 차지할 만큼 무거운 백상아리, 의사소통을 위해 적어도 24가지 소리를 낼 수 있는 닭, 한 시간에 최대 1200마리의 모기를 먹어 치운다는 박쥐까지. 이제껏 우리가 잘 모르고 있었던 동물들의 기상천외한 정보들을 알려준다. 어떤 종류의 물고기들은 자기가 눈 오줌으로 다른 물고기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굴은 수컷이었다가 자라면 암컷이 된다고 하니, 이 또한 참 신기한 일이다. 이처럼 책에는 동물의 독특한 습성뿐만 아니라 동물 고유의 특성을 연구해 인간의 삶을 이롭게 한 사례들도 소개한다. 일본의 어느 공학자는 오랜 기간 올빼미의 비행을 연구해 그 원리를 응용하여 신칸센 초고속 열차를 시속 300킬로미터 이상 빠르게 달릴 수 있는 방법을 발견했고, 어느 과학자는 벽에 찰싹 달라붙는 도마뱀붙이의 발을 연구해 초강력 테이프를 개발했다고 하니 새삼 동물과의 공생이 얼마나 인간에게 유익한지를 깨달을 수 있다.

 

 

 



 

 

 

 

  『기발하고 괴상하고 웃긴 과학 사전동물 편외에도 공룡 편’, ‘우리 몸 편도 함께 출간되었다고 하니 더욱 기대된다. 코로나19로 인해 아이와의 외출이나 동물원 구경도 마음처럼 하기 어려운 요즘, 이 책으로 하여금 재미있는 동물 탐험 여행을 떠나보시길 추천 드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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