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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감-김성윤]대중은 항상 옳은 길을 가는가? | Memento 2017-03-25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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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덕후감

김성윤 저
북인더갭 | 2016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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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은 항상 옳은 길을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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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학문적 소양이 낮아서 이해를 올바르게 했는지가 의문이다. 나 스스로 이런 저런 책을 집어 들어 무작정 읽기는 하지만, 체계적으로 읽는다거나 정리를 한다거나 하는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기억하는 것도 그때그때 감상에 남는 정도, 혹은 이렇게 글로 남기거나, 인상 깊은 문구 정도만 내 것이 되는 편이다.

그렇기에 "대중문화"라는 것이 나에게는 생소하기만 하다. (애초에 "대중"이라는 개념에 대한 정의도 설명하지 못한다. 막연하게 느낄??뿐) 아마도 내가 대중문화라는 심오한 주제와 연관이 있었던 것은 대학시설 교양수업으로 몇자 주워들은 정도가 전부이지 싶다.

그렇기에 감히 책을 평하기에는 내가 너무 위축되었다. 다만, "대중문화"라는 것, 그리고 그것을 평한다는 것이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은 확실히 알았다. 작가가 다룬 일련의 주제들은 우리에게서 멀지 않다. 항상 우리가 (드라마, 영화, 기사, 사회현상....) 접하고, 항상 우리가 (연예, 스포츠, 가쉽거리...) 논하는 것들이 그 대상이라는 것이 인상 깊었다.

문득,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질문. "대중이 항상 옳은가?"

어느 비평가가 '이제는 대중과 싸우는 일이 진보'라고 쓴걸 본 적이 있는데, 이 말을 살짝 비틀자면 '이제는 나 자신과 싸우는 일이 진보'라는 생각이 강해지고 있다. p. 389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나 역시 내가 짧게나마 배운 학문에서 그랬고, 실제로도 작가 자신도 그런 고민지점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저러나 결국 역사의 원동력은 대중이이지만, 그들이 만드는 문화나 향유하는 것들이 항상 바른 길로 가는 것은 아닐테다. 그렇기에 짧은 글들을 모아 이 책을 펴낸 이유고, 자신과의 싸움이라 말하는 이유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대중에 일부인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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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만이 있은 후에야 바라는 바가 생기는 것처럼, 대중들의(뒤집어진) 소망은 당대 현실과의 관계에서만 의미를 지닐 따름이다. ‘정치적 무의식은 바로 이때 작용한다. 원래 이 용어는 문학평론가 프레드릭 제임슨의 책 제목이기도 한데, 그는 문학 작품에 나타나는 유토피아적 충동에 주목하면서 문학을 사회적 모순의 상징적 해결이라 규정한 바 있다. 현실에 대한 불만이 텍스트라는 상징적 공간에서 해결된다는 점에서, 그것은 무의식적이며 동시에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p. 8

팬픽의 등장은 또래들 사이에서 호모포비아를 진정시키는 데 기여했을 뿐 아니라, 퀴어씬의 이론적 관점을 전환시키는 중요한 구실을 했던 것이다. p.30

팬덤문화에 성정치적인 전복의 가능성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여기에는 기존의 남성성-여성성의 위계를 재생산하는 역설도 포함되어 있다. 실제로 이를 공수법칙이라 하는데, 이들이 생산해내 내는 각종 파생 텍스트들에선 사실 시각적 대상만이 남자들일 뿐, 공격적인 남성 역할과 방어적인 여성 역할이 반복되곤 한다. p. 34

멤놀 텍스트들은 지극히 즉흥적이며 집단적인 창작물이라는 점이다. p. 38

여성팬들에게 특정한 이상적 여성 이미지를 제공하고 동시에 남성 중심의 성윤리와 성문화를 위협하는 예의 워너비 현상에 견줄 만하다. p. 44 (...) 우리가 여태껏 알지 못했던 뭔가 새로운 감수성이 응축되어 있는 것이다. p. 46

이들의 팬심은 섹슈얼리티에 대한 우리들의 상식을 철저하게 무너뜨리고 있다. 어쩌면 소녀들의 성적 판타지란, 우리가 그동안 알아왔던 사랑이란 감정의 경우의 수가 얼마나 제한적이었던가를 깨우쳐주는 건 아닐까. p. 48

대중문화판에서 청량제 구실을 하는 삼촌은 우연한 문화적 산물이라기보다는 필연적이며 또한 역사적인 산물이라 할 수 있다. p. 51

오늘날 문화산업의 외부를 상상하는 것이 불가능해지면서 그들이 애초에 가졌던 문화적 취향이 아이돌 걸그룹으로 물화됐다는 점이다. p.54

새로운 문화가 등장하지 못한 사이 대중문화산업이 지속적으로 진화를 거듭해왔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p.55

기존의 여성 팬덤 연구가 세상 속 여성들 자신의 이해와 경험으로부터 시작하는 데 반해, 엄밀한 의미에서 그동안의 삼촌팬 비평은 당사자의 세계 감각을 자신의 출발점으로 삼아본 적이 절대로없다. p.69

문화적 실천 양상은 삼촌팬 현상을 단순히 시대적 퇴행이라고 치부하기 어렵게 만든다. p.80

탈권위주의적인 30대 남성 이미지의 형성, 사회병리적이지 않은 팬질 등으로 환언할 수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삼촌팬들이 젠더적인 위계질서에(부분적으로라도) 파열음을 내고 있으며, 사회적 팬질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아이러니를 도입하고 있다는 방증인 셈이다. 우리는 그들을 두고 섣불리 세대적 퇴행이라 말할 수 없다. p. 81

비록 가상적 관계이긴 하지만, 삼촌이란 언표는 문자 그대로 스타와 이성애적 관계보다는 가족적관계를 창출해 낸다. p. 84

현재까지도 반복되고 있는 삼촌팬심의 성애론적 논란은 두 가지 측면에서 난점을 내장하고 있다. 삼촌 개인과 집합적 삼촌 사이에서의 혼동, 그리고 분석적 추론과 인상적 유추 사이에서의 혼동이 그것이다. p. 91

사회지향적 실천이라 해서 그 자체로 정치적 실천의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 p.101

삼촌팬 현상은 한국에서 30대 남성이 아이돌 팬질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친밀성을 통해 아이돌 스타와 관계맺고 탈권위주의적인 남성성에 스스로를 동일화하며 사회지향적 의식으로 무장한 그들은 우리시대의 삼촌팬들이다. 그와 동시에, 친밀성이라는 고부가가치의 상품을 소비하고 남성적 권력을 교체, 계승하며 (적어도 문화소비의 영역에선) 정치적인 것을 상상하지 않는 것 또한 우리 시대의 삼촌들이다. p. 102~103

그동안 한국의 아이돌 음악산업의 발전은 상품영역이 아닌 것의 상품화외부불경제의 내부화로 특징지을 수 있다. p. 105

짝퉁문화는 문화적 민주화를 반영한다. p. 112

권위를 철폐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짝퉁이 원본의 권위를 소멸시키기는커녕, 외려 원본 자체의 희소가치를 돋보이게 해준 것이다. p. 113

대항문화의 부재, 바로 이것이 짝퉁문화의 정치 지형을 요약한다. 짝퉁문화는 철저하게 원본의 가치를 고양시켜주지 않는가. p. 116

흉내내기에 기반한 짝퉁문화는 제국과 체계와 지배문화에 의한 식민화 현상을 드러내주는 지표가 될지언정 그 자체가 정치를 담보하지는 못한다. p. 117

짝퉁문화의 지배적 원리는 흉내내기가 아니라 따라잡기 쪽으로 이동하는 듯 보인다. p. 119

지배계급과 자신을 구별지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따라잡으려는 상호작용체제가 도래한 것이다. 따라서 관건은 단 하나일 뿐이다. 포섭되든가 아니면 배제되든가. p. 121

따라잡기와 따돌리기의 게임 (...) 문화적 경쟁(전쟁이 아니라!)에 동참해줌으로써 계급구조 자체는 더욱 안정화 p. 122

잉문학 마인드(잉여+인문학 혹은 과잉+인문학) p.126

이벤트데이의 관행과 그에 대한 사회적 반응은 오늘날 기념일을 둘러싸고 기억의 정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p. 127

역사도 없고 공적이지도 않은 날이 사회적으로 기념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아는 세계가 끝났음을 알리는 전조일 수도 있다. p. 129

그 즈음에 유행하기 시작한 이벤트데이는 오늘날 우리가 공적인 것을 사유하는 데 있어서 어떤 한계상황에 직면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 과정에서 사회구성원들을 붙들고 엮어낼 만한 표상이 요동치면서 견고하기만 했던 집합적 동일성이 모호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p. 133

과거로부터의 추세가 아니라 불확실성, 그리고 견고한 기원이 아니라 유동적인 분산성으로 이해방식이 달라진 것이다. p. 135

기념일의 민간화가 대중들의 역능 강화와 발현으로만 이어진 게 아니라 집합적 시간감각의 공공성이나 보편성을 붕괴시키는 쪽으로 나아갔다는 점에 있다. p. 136

기념일의 민간화 현상은 사회에서 국가폭력을 떼어낸다는 의의가 있지만, 그 빈자리에 시장을 들였고 나아가 모든 것이 경제적인 것에 종속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p. 137

사적인 것이 가장 공적인 관심사가 됐다는 점, 따라서 상호작용과 결속 및 조직화 그리고 상징질서 등과 같은 사회적인 것들이 우리가 아는 세계로부터 빠져나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재편된다는 점 (...) 포스트모던 기념일은 우리가 어떤 집합적 시간을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오늘날 현대사회의 조직 원리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도 보여준다. p. 139

기념일이 오면 우리는 국민보다는 소비자로서 동일화된다. (...) 포스트모던 기념일이란 현대적 시간에 대한 집합표상인 동시에 오늘날 정치적 무의식의 징조인 셈이다. p. 140

도시공간의 소비자주의 원리가 지배적이면 지배적일수록, 이는 계급 형세의 배제적 속성이 증명되는 셈이며 동시에 그러한 배제의 관행이 더욱 가속화된다는 점을 의미할 뿐이다. p. 148

나는 그것이 애국주의와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는 평등에 대한 요구라고 판단한다. p. 169

평등에 대한 우리의 요구는 왜 애국주의적인 배타주의나 폭력주의로 환원되는 걸까. p. 170

대중문화는 현실이 아니라 대중들이 원하는 그림을 보여준다. (...) 그러나 대중문화는 단순히 대중들이 소망하는 것을 넘어 소망해야 하는 것을 보여준다. p. 184

미래에 대한 비전이 암울할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은 계속 회전되어야 할 때, 가장 채택하기 쉬운 방편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다. (...) 또 다른 방편은 현재를 좀 더 다른 시각으로 보는 것이다. p. 186

드라마에 사실은 있었을지언정 현실은 부족했다는 것이다. (...) 우리는 지금 진실이 아니라 사실을 추앙하는 세계에 살고 잇지 않은가 말이다. 알 만한 사람은 알 것이다. 문제는 참-거짓이 아니라 어떤 효과가 생기느냐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p. 206

대중문화는 우리가 알기 싫어하는 걸 절대로 건드리지 않는다. 어른들에게도 판타지는 필요하니까. p. 213

감각이 공포에 지배되는 순간 이성은 마비된다. p. 217

숭례문의 잔해더미가 남긴 것은 바로 형해만 남은 민족주의였다. p. 226

대한민국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알 듯이 한국의 지배블록은 무능력하다. 이들은 과잉된 권력이기만 할 뿐, 물질적으로 사회적 국가를 실현하는 데 관심이 없고, 정신적으로 민족적 국가를 유지하는 데도 관심이 없다. 그렇다. 무능력 이전에 관심이 없다는 게 더 맞는 말일지 모른다. 국격을 운운하고 국가에 대한 자부심을 고취하기 위해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면서 국민들의 복종심을 요구할 뿐, 국민들의 물질적 삶을 보장하거나 정신적 위안을 제공하는 데는 별 관심이 없다. 이미 누구나 다 그런 것처럼 각자도생의 길밖에는 없다. 시민들끼리 서로 도우면서 이 땅에서 버티는 수밖에 없다.

그런 까닭에 민족-국가라는 신화는 막을 내렸다. 숭례문 방화사건이 말 그대로 사건인 것은 민족과 국가 사시의 긴밀한 결합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폭로했기 때문이다. 그 시점부터 우리는 전혀 다른 세계를 살고 있는 셈이다. p. 227~228

믿으면 무릎 꿇어 기도하게 되고, 무릎 꿇어 기도하면 믿게 된다.’ 재차 강조하지만 신화는 대중의 열망에서 비롯된다. p. 250

중요한 것은 감각의 열림 이상으로 그 안에 무엇을 채워 넣을 것인가에 있지 않을까. p. 280

문화정치학은 기본적으로 권력의 규제, 재현의 사회적, 역사적 생산, 정치경제적 과정으로서의 생산과 소비, 역동적으로 구성되는 정체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지형을 보고자 함이다. p. 297

문화과잉의 시대란 사람들이 대중문화 덕분에 여타의 문제들을 해소할 수 있다는 허구적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정치와 경제의 전망이 불투명할수록 어쩐지 사람들은 이미지의 세계에 더욱 더 몰입하는 듯하다. 현실에선 불가능한 것들이 가상세계에선 가능해지는 환상적 경험을 할 수 있어서일 것이다. 하지만 직므 우리에게 필요한 건 우리 자신이 서 있는 현재 위치와 세계에 대한 감각을 의심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p. 339

응답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질문 자체가 중요하다. p. 342

문제는 이놈의 정치는 피하면 피할수록 반드시 돌아오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주인공의 탈정치적 성향이 정치적 표현으로 왜곡, 번역될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는 우리 모두의 운명과 다를 게 없다. p. 382

개인들의 자기표현에 따르는 욕망 실현의 합은 확대재생산하는 지배질서를 따라갈 수 없다고. p. 387

대중문화가 전도된 욕망을 비추는 객관적이고도 주관적인 체계p. 390

문제는 대중문화가 우리들의 집합적 소망을 변용하고 있는게 아닐까라는 것. 그리고 어쩌면 텍스트로 재현되기 전부터 이미 우리들의 소망 자체가 일그러져 있던 게 아닐까라는 것. p. 394

시쳇말로 꼰대가 된다는 건 자기-존재를 유지하려는 다급함에 세상의 변화에 애써 눈을 감고 세계를 다르게 이해할 길이 있다는 걸 부인한다는 뜻일 수 있다. (...)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기만적인 자기-동일성을 의심하고 그 같은 자기-비판을 통해 세계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터득하는 것일지 모른다. p. 398

싸움의 대상에서 자기 자신을 빠뜨린다면 우리는 더 큰 위험을 떠안게 될 것이다. p. 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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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 생존편-크리스텔 프티콜랭]나에게 쓰디 쓴 책 | Memento 2017-03-16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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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 생존편

크리스텔 프티콜랭 저/이세진 역
부키 | 2016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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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쓰디 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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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수십번 씩 도망가고 싶다.하루에도 수십 번씩 도망가고 싶다.

A라는 상황, B라는 사건, C라는 변수, D라는 기준, E라는 지시, F라는 감정.

그리고 A’,B’,C’,D’,E’,F’ ...... 그리고 다시의 다시. 다시의 다시......

결국은 감당하지 못하고 머리가 터지고 만다. 자포자기의 심정.

자신감을 가지고 의욕적으로 시작했건만, 매번 돌아오는 지점은 자괴감

자존심을 세우기는커녕 자존감만 갉아먹는 삶.

그렇다고 밥벌이가 지겹다고 버릴 수도 없는 처지이니 이어지는 신세 한탄과 어쩔 수 없지라는 자기 합리화로 버틸 뿐이다.

 

이 책은 읽는 내내 맞아 내이야기야!라고 했지만, 너무나도 읽기가 힘들었다. 내 입에 쓰기 때문이다. 생각이 너무 많은 사람들의 약점과 대응책에 대해 실전적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저자도 책에서 말한다. 본인도 설득하기에는 지친다고. 저자는 생각이 많은 것이 병이 아니라고 다만 다를 뿐이라고 했지만, 떠 먹여줘도 생각이 많아지는 것이 적 수준이 아닐까 싶다.

 

나도 지친다. 자신감과 자존심과 자만심의 외줄타기. 분명 때로는 아무 생각없이 과감하게 덤벼야 할텐데. 나 자신을 아껴야 할텐데......분명 좋은 책이고, 나에게 도움이 될 이야기인데......이다지도 씁쓸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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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함무라비-문유석]판사유감, 개인주의자 선언, 그리고 미스 함무라비. | Memento 2017-03-13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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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미스 함무라비

문유석 저
문학동네 | 2017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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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유감, 개인주의자 선언, 그리고 미스 함무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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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고대의 법이 있다면, 서양은 '함무라비 법전'이고, 우리나라는 고조선의 '8조금법'이 아닐까 한다. 이 두 법의 공통점은 계급사회임을 보여주고, 동해보복형(탈리오 법칙)이라는 점이 두드러진다. 특히 요즘 우리의 법감정은 법 앞에서의 평등, 받은 피해에 만큼 처벌을 원하는 감정이 강하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원칙으로 삼는 동해 보복이다.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절규가 이 시대를 지배한다고 믿고 있는(실재로도 그러한) 우리로서는 이러한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고대의 법 역시 "계급"이라는 차별에 따라 처벌하였음을, 동해 보복은 과거에도 없었고, 현재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법을 무서워하고 불신하게 된 것이리라.

 그렇기에 또한 '정의'를 외친다.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즉, 차이를 내포하고 있다. 차이를 인정하고, 차이를 기반하여 원칙을 적용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법감정과는 다를지라도, 그것이 올바른 법적용일지 모르겠다.

 이 대목에서 판사들의 고민이 시작하지않을까. 정의의 원칙. 국민들의 법감정. 그리고 기준이 되는 법. 법이라는 것이 지니는 태생적인 한계.


2. '미스 함무리비'는 없다?!

(수정-1 착오로 잘못 알고 있었던 내용을 삭제했습니다.)

 함무라비 법전에서 우리는 통쾌함을 느꼈을 것이다. 잘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단호히 명하는 법관의 모습과 그와 또 다른 인간적인 모습, 약자를 보듬는 모습에서 '정의'의 단면을 보았는지 모른다.

"법정에서 가장 강한 자는 어느 누구도 아니고, 바로 판사야. 바로 우리지. 그리고 가장 위험한 자도 우리고, 그걸 잊으면 안 돼." p.321

 법정에서 가장 강한 자는 판사다. 그렇기 우리는 때로 존경과 경의를. 때로는 두려움을 표한다. 그리고 바란다. 정의로운 판사. 우리의 편이 되어줄 판사를.

법이나 재판이란 건, 절박한 처지에 놓여 있는 다른 세계의 사람들에게 안온한 중산층의 도덕을 강요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 p.353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볼 문제다. 법관이 아무리 우리편(미스함무라비)일지라도, 실상 판단의 기준이 되는 '법'이 누구의 '법'인지를, '법'을 만드는 '입법자'들이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는 지를. 그렇기에 우리가 원하는 사이다 같은 판사, '미스 함무라비'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3.'상처입은 치유자'(p.221)

 결국 법도, 법관도, 우리가 가진 시스템도 인간이 하는 일이기에 한계를 가진다. 저마다 약점이 있고, 한계가 있고, 구멍이 있다.

"사법 서비스 역시 경제원칙이 적용되는 거야. 정의도 한정된 자원이라고." p. 66

"맞아요. 세상의 모든 시시비비를 끝까지 밝히는 건 불가능할지 모르죠. 선택과 집중이 필요할 수도 있어요. 그런게 그 기준이 액수의 많고 적음인가요? 뻔뻔한 불의가 자행되고 있는지 여부가 더 중요한 것 아닌가요? 소송 경제, 분쟁의 효율적 해결 다 필요하지만, 그전에 초등학생도 아는 정의를 제대로 선언하는 것이 우리의 근본 임무 아닌가요?" p. 71

"재판에서 공정성 자체보다 공정하게 보이는 외관이 더 중요하다는 유명한 말도 있잖아." p.272

"실제로 썩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야. 썩은 것처럼 보이느냐가 중요한 거지." p.277

 그렇기에 변화를 시도한다. 경제적 원칙을 따지기도 하고, 절차적 완결, 합리성을 따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 역시 정답인지 알 수 없다. 판사들은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밤새서 서류를 검토한다. 그러나 모두를 만족시키는 결과를 얻기는 어렵다. 이러한 과정에서 판사 조차 상처입는다. 본인의 삶에서, 재판과정에서, 그리고 그 결과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며. 

"지금 법원이 원고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저, 법보다 훨씬 현명한 시간의 힘이 이 가정의 상처를 치유해주길 기도할 뿐입니다." p.207

 문득 딱딱하고 어려운 판결문들이 간혹 판사들의 고뇌가 담긴 '기도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4. '책임지는 사회' 더 나은 시스템을 위하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지기 때문에 존엄한 것이다. 최소한 그것이 인간 사회의 약속이다. 

그런데, 나약한 인간을 수렁 속에 방치하는 사회는 어떤 책임을 지는 걸까. p.346

 우리가 판결하고 처벌하는 것은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지우는 것이다. 의도적인 경우도,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혹은 정말 부지불식간에도 한 행위가 누군가에게는 고통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순히 사이다 같은 '책임'지우기 만으로 우리 사회가 살기 좋아질까? 절대 아닐것이다.

 민원인, 분노에 찬 사람 대부분이 자신의 사정을 들어주지 않는 다고 느끼기에, 무시 당한다고 느끼기에더 분노 한다. 이들의 분노의 찬 메아리는 누가 책임져 주는 것일까? 사회가 책임져 주는가? 아니다. 우리에게 어쩌면 '정의의 심판자' 보다 '상처입은 치유자'가 더 필요한 지 모른다. 

나쁘거나 추한 사람들이 있는 게 아니라 나쁘거나 추한 상황이 있는 거다. 그런 상황은 누구에게나, 판사들에게도 올 수 있다. 그런 시기가 오면 원래 선량하고 관대한 사람도 독해지고 강퍅해진다. 그걸 생각하면, 인간에 대한 실망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숙명에 관한 문제가 된다. p.356~357

 세명의 판사와 주변인물들이 벌이는 법정 속에서 문 판사의 진지한 고민이 보인다. 그간 저작들이 녹아있는 소설과 본인의 코멘트들은 작게는 앞으로 사법부가 나아갸할 방향을, 크게는 "추한 상황"을 줄일 수 있는 "책임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방향타가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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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기억이란 참 묘해서 완결된 것은 곧 망각하고, 미완의 것은 오래오래 기억한다. p.193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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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경보기-강신주]다소 쓰기에 약이고, 강하게 비판하기에 비상경보 | Memento 2017-03-09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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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비상경보기

강신주 저
동녘 | 2016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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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쓰기에 약이고, 강하게 비판하기에 비상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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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간의 저작들은 보자면 강신주 작가는 사랑의 인문학자, 자본주의 비판자로 평할만 하다. 철학자로서 날카로운 지적을 통해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강도가 강하다. 언제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힐링캠프라는 tv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단호하게 "당신은 아버지를 귀찮은 존재로 생각하고 있다."라고 말했던 그 순간이 기억난다. 정말 "아버지를 사랑하는가?"라는 질문. 그때의 일침은 잊을 수 없다.


 그래서일까. 강신주 만큼 호불호가 갈리는 작가도 드물다 본다. 그의 책을 빠짐없이 보는 나 자신도 고민스러울 때가 많다. 표현이 강하고 명확한 경우에 조금만 엇나가도 납득하기 쉽지 않은 나로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상처를 자세히보고, 환부를 찢고 소독해야 한다는 그의 의견이 무섭기도 하다.


 비상경보기 역시 마찬가지다.

 때로는 이분법적이고 편협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러나 비상을 알리는데 있어서 맹탕이라면 의미가 없다. 경보음이 자장가소리라면 누가 놀라서 위기 상황에 대응하겠는가. 요란하고, 정확하고, 명확하고, 확실하게 알려줘야 한다. 정신차려 지금은 위기의 순간이야! 넋놓고 있다가는 죽는다!고.


 그렇기에 우리는 강신주의 이야기에 귀기울여 그의 책을 읽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잘못된 경보가 울린게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다. 진짜 사고가 났을 때 대처하면 큰 문제가 없지 않을까. 너무 시도 때도 없이 울리면, 양치기 소년처럼 필요할 때 무감각해질지 모른다고. 그러나 '경보'의 가치는 대비하기 위함이지 사고를 수습하고자 함이 아니다. 그리고 지금이 정말, 가장 위험한 순간인지 모른다.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그가 울리는 비상경보음을 주의깊게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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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자 선언-문유석]백마타고 오는 초인은 없다. 개인이 있을 뿐 | Memento 2017-03-08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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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저
문학동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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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타고 오는 초인은 없다. 개인이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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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사회는 다양성을 존중한다 한다. 왜 그런 것일까.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중 한 가지 큰 답을 얻은 경험이 있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이광재 사무총장이 강연 중에 한 말이다. “지방자치에서 지방정부는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배의 격실이다.” 정확한 문구는 아니지만, 취지는 이랬다. 타이타닉이라는 배가 침몰한 이유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 중에 하나로 유력한 것은 격실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양한 층위의 개별 지방정부가 격실로 작동하는 것. 그리고 격실과 격실(지방정부와 지방정부), 선장실과 격실(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상호보완이 타이타닉(대한민국)호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왜 개인주의자일까?

타이타닉과 격실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그 필요성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왜 개인주의인가. 이 복잡하고 급변하는 다층적 갈등구조의 현대사회에서는 특정 집단이 당신을 영원히 보호해주지 않는다. 다양한 이해관계에 따라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전략적으로 연대하고, 타협해야 한다. 그 주체는 바로 당신, 개인이다. 개인이 먼저 주체로 서야 타인과의 경계를 인식하여 이를 존중할 수 있고, 책임질 한계가 명확해지며, 집단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에게 최선인 전략을 사고할 수 있다. p. 33

정의롭고 인간적이고 혜안 있는 영웅적 정치인이 홀연히 백마 타고 나타나서 악인들을 때려잡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 아무리 기다려도 그런 일은 없을 거다. 링에 올라야 할 선수는 바로 당신, 개인이다. p. 36

 

격실은 정부차원에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한 사회가 건강하고 안전하기 위해서는 우리 개개인이 격실이 되어야 한다. 물론 선장(영웅, 정치인)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성을 제시해주기 때문에. 하지만 그 방향이 지상낙원이라도 가는 길이 험하여, 중도에 침몰한다면 모두가 죽는 길일뿐이다. <개인주의자 선언>의 문유석 판사도 말한다. 기다리지지 말라. 우리가 이 사회의 격실이 되어야 한다고.

그렇지만 우리는 이 격실(개인)을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 타이타닉호의 격실과 마찬가지로. 혹자는 후불제 민주주의라고 표현하기도 했듯이, 우리는 급격한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성취를 이뤄냈지만, 그 과정에서 외형만 성취했는지 모른다.

 

자본주의 체제이면서도 그 정치적 기본 토대인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제대로 체화하지 못한 이유도 제대로 된 순서를 밟지 못했기 때문 아닐까.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p. 141

 

권위주의적이고 군대식 사회, 공동체나 국가를 지나치게 우선하는 사회. 우리 사회는 개인보다는 단체와 조직을 우선하고,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며 적과 나를 구분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개인이 주체로 성장하기는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책 제목 <개인주의자 선언>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우리에게 메시지를 던진다. 본인 뿐 만 아니라 우리가 개인으로 바로서야 한다는 것. 그리고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공유하여 대화하고 토론하고 잘못된 생각들과 싸워야한다.(p.335)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이 사회에서 개개인이 주체가 되어 연대해야 한다.

우리는 큰 아픔을 겪었다. 그리고 전국의 모든 사람이 생중계로 지켜보았다. 국가가 책임을 회피하고, 개개인의 아픔이 무시되고, 낡은 진영논리, 잔인한 경제논리 속에 우리는 소중한 것들을 잃었다. “진실은 왜곡되고 더 나은 사회를 위한 고민은 배척당했다. 이어지는 국면에서 최소한의 밀실조차 공개할 것을 강요받았고 행복하고자애쓰는 것조차 로 처벌받았다.

그렇기에 우리는 개인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이기적인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 존중하고 연대하여 행복한 삶을 살기위해 우리가 서로 격실이 되어 주어야 한다. 이것이 문유석 판사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었을까.

 

우리 하나하나는 이 험한 세상에서 자기 아이를 지킬 수 있을 만큼 강하지 못하다. 우리는 서로의 아이를 지켜주어야 한다.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p. 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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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능력은 뛰어난 것에 있는 게 아니다. 쉬지 않고 가는 데 있어."라고 격려해주면서도, 끝에는 "그러니 얼마나 힘이

들겠어."라며 알아주는 마음. 우리 서로에게 이것이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p. 19 (<대장금> 중 대사)

왜 개인주의인가. 이 복잡하고 급변하는 다층적 갈등구조의 현대사회에서는 특정 집단이 당신을 영원히 보호해주지않는다. 다양한 이해관계에 따라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전략적으로 연대하고, 타협해야 한다. 그 주체는 바로 당신, 개인이다. 개인이 먼저 주체로 서야 타인과의 경계를 인식하여 이를 존중할 수 있고, 책임질 한계가 명확해지며,집단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에게 최선인 전략을 사고할 수 있다. p. 33

정의롭고 인간적이고 혜안 있는 영웅적 정치인이 홀연히 백마 타고 나타나서 악인들을 때려잡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아무리 기다려도 그런 일은 없을 거다. 링에 올라야 할 선수는 바로 당신, 개인이다. p. 36

인간의 내면에는 강제로 공개되어서는 안 될 최소한의 밀실이 있다. 국가형벌권의 대상이 된 자에게는 그 밀실이 

허용되지 않는다. 광장에 내걸릴 뿐이다. 그래서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다. 모든 것을 형벌로 다스리는 곳에 법은 

있으되 개인은 없다. p. 65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건 자랑이 아니라 권리 위에 잠자는 어리석은 자임을 자백하는 소리다. p. 81

나는 소박하게 그리고 다양하게 일상 속의 작은 행복을 채워가는, 그러면서도 마음이 가는 일에 주저 없이 자기 힘닿는 범위에서 참여하는 이들이 이끄는 곳으로 가고 싶다. 인류 역사에는 언제나 비극이 가득했지만, 그 어떤 불행한 시대에서도 인간이 행복하고자 하는 것은 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p. 83 ~ 84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끊어지고 빈곤이 대물림되는 사회는 역사가 증명하듯 근본적 기반이 흔들린다. 모든 곳에 희망이 있어야 사회가 유지된다. 이를 이해 형식적 평등을 넘어 실질적 평등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p. 124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p. 125

자본주의 체제이면서도 그 정치적 기본 토대인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제대로 체화하지 못한 이유도 제대로 된 순서를 밟지 못했기 때문 아닐까.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p. 141

결국 변한 건 세대라기보다 시대다. 인간은 누구나 주어진 여건하에서 행복을 추구한다. p. 159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될 것만 같다." 황현산 선생 p. 160

인간 세상에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가치중립적인 '팩트'란 없다. p. 177

우리의 본성은 전자발찌를 채워야 할 상습 전과자다. p. 178

데이 <세 황금문> 누구나 말하기 전에 세 문을 거쳐야 한다. '그것이 참말인가?', '그것이 필요한 말인가?', '그것이

친절한 말인가?' p. 181

'원칙'을 훼손할 수 없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러나 같은 것을 같게, 다른 것을 다르게 하는 것이 정의다. 원칙을

생명으로 하는 법도 꼭 필요한 경우에는 예외를 인정한다. p. 201

심리학이든 다른 어떤 학문이든 결국 인간의 여러 특성 중 범주화할 수 있는 보편성을 추출해서 보여준다. 문학은 

그보다 훨씬 풍부하게 인간의 개별성, 예외성, 비합리성을 체험하게 해준다. p. 206

실제로 의미 있는 변화를 도출하는 것은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 사이에서 열광적인 환영을 받는 과격한 목소리들이 아니다. 이는 오히려 반대 의견을 가진 집단의 반발과 결속만 강하게 만들어 의견의 양극화를 심화시킬 뿐이다. 한 진영 내부에 생기는 작은 균열에서 변화의 지점이 생겨난다. 그리고 이 균열을 만드는 것은 같은 진영 내의 온건하고 합리적인 사람들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작고 부드러운 '다른' 목소리들이다. 작은 균열들이 생기기 시작하면 선거와 같은 큰 세력 다툼의 시기를 전후하여 집단 내부에 극적인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생긴다. p. 218

이 사회에 공정한 기회가 있다는 메시지를 주기 때문이다. 그래야 노력하고 결과에 승복한다. p. 221

불편한 진실 자체에 도적적 잣대를 들이대어 왜곡하지 말고, 그 진실을 토대로 '어떻게 사회를 개선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p. 269

인간에 대한 불신을 전제로 하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은 권려에 대한 견제와 균형, 감시다. 눈먼 의리가 아니다. p. 286~287

사회 구성원들이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폭넓게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내면화하려면 끊임없이 대화하고, 토론하고, 잘못된 생각들과 싸워야 한다. p. 335

누군가에게는 미래가 이미 곁에 와 있는 현실인데, 누군가는 과거만 붙잡고 싸우고 있다. 미래는 그것을 상상할 수 있는 자들의 것이다! p. 361

'작은 책임으로부터 부담없이 맡을 수 있어야 한다.' p. 364

우리 사회는 '결과책임론'이 지배하는 사회다. p. 367

토머스 프리든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소장 "낯선 것에 대한 공포가 우리의 연대감을 이길 수는 없다." p. 369

우리 하나하나는 이 험한 세상에서 자기 아이를 지킬 수 있을 만큼 강하지 못하다. 우리는 서로의 아이를 지켜주어야

한다.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p. 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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