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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짓들의 역사-로버트 에반스] 악덕을 즐겨라, 그리고 그것을 존중하라 | Memento 2021-01-27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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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나쁜 짓들의 역사

로버트 에반스 저/박미경 역
영인미디어 | 2017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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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덕은 인간과 문명, 세상을 구성하는 불가피한 존재다. 피하기만 해서는 알 수 없다. 결국 우리는 나쁜 짓들과 공존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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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되새겨보는 시가 하나 있다. 김남주 시인의 <어떤 관료>. 근면, 정직, 성실, 공정, 충성은 우리가 흔히들 말하는 미덕이다. 하지만 김남주 시인은 말한다. 이 미덕을 따르기만 하는 게 정답은 아니다. 그저 생각 없이 따르기만 할 때, 그 관료는 에 지나지 않는다. 긍정적인 성격도 마찬가지다. 긍정도 배신한다. 부정적인 성격은 이를 대비하게 한다. 최악을 가정하는 사람은 그 가정이 대부분 틀리기 때문에 늘 피곤하다. 하지만, 그러한 피곤함은 최악의 위기를 예방한다. 일기예보와 무관하게 우산을 늘 들고 다니는 일은 불편하고 쓸데없는 일이다. 하지만 기상청도 예상치 못한 이변을 대비하게 한다. 결국 우리가 아는 미덕과 부덕, 그것은 단순한 잣대로 나눌 수 없다. 미덕과 악덕은 지극히 인간의 잣대일 뿐이다. 자연의 잣대도, 신의 잣대도 아니다. 지극히 인간의 주관적인 생각일 뿐이다.

로버트 에반스의 <나쁜 짓들의 역사>는 이러한 악덕의 기원에 대해서 탐구한다. 우리는 얼마나 악덕과 함께 살아왔는지 잊고 있다. 미덕을 권장하지만, 미덕만으로 삶이 이뤄질 수 있을까? ‘나쁜 행동이 어떻게 문명을 발전시켰을까?’라는 책의 부제는 그게 아님을 미리 말하고 있다. 저자 로버트 에반스는 알아두면 재미있는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다루는 cracked.com의 편집장이자, 인기 작가다. 역사학이나 과학의 전공자는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흥미로운 내용을 재미있게 풀어내는 내공에 감탄했다. 무엇보다 책의 묘미는 작가의 실험정신에 있다. 책의 주제도 마찬가지지만, 악덕, 나쁜 행동의 기원을 따라가면서 자신의 몸을(때로는 지인들을) 대상으로 직접 그 행동들을 복원해 나가는 모습이 흥미롭다.

중독(, 음악, 약물 등), 뒷담화, 성매매와 성적 일탈 등은 일반적으로 허용하기 힘든 덕목들이다. 특히 술이나 약물, 성매매 등은 수많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다. 개인적으로도 몸을 망가트리고, 개인의 인생사를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그럼에도 인간은 이러한 부덕을 끊을 수 없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인간의 무수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악덕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니 사라질 수 없다. 악덕의 긴 역사를 볼 때, 우리의 유전자와 문화 어딘가에 새겨져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우리네 인생은 올바름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우리가 생각하는 올바름만으로 세상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올바름도, 삐딱함도 엄연히 세상을 구성하는 한 종류,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인지 모르겠다. 나쁜 짓들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나쁜 짓이라는 것도 지극히 주관적인 평가다. 자연이 아닌 인간의 주관적인 평가일 뿐이다.

청교도 혁명으로 호국경이 된 올리버 크롬웰은 호국경에 취임해서 청교도 도덕성에 기반한 엄격한 도덕주의를 지키도록 법으로 강제했다. 극장이나 운동 경기나 춤 등 청교도 입장에서 죄악시될 수 있는 행동들을 폐지했고, 대중음악마저 금지해 오로지 찬송가만 부를 수 있었다고 한다. (다양한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의 통치는 지속될 수 없었다. 결국 사람은, 그리고 세상은 선한 행동, 미덕만으로 살아갈 수 없었다.

미덕만으로 세상이 유지 될 수 없음은 명백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소 다른 사실을 배우고 있다. 역사란 합의를 이룬 거짓말 덩어리”(p.347)에 불과한지 모른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역사는 과거의 악덕에 가림막을 쳤다.(p.405)” 이 가림막이 오히려 악덕과 나쁜 짓들에 대한 편견을 키우는 게 아닐까. 없앨 수 없다면 함께 살아가야 한다. 피하기만 한다면 결국 올바르게 활용할 수 없다. 사실은 진실로 거듭나야 한다. 쉽게 인정할 수 없겠지만 나쁜 짓들은 오늘날 우리를 존재하게 만들었다. 저자는 말한다. 나쁜 짓들의 진실에 대해서. 악덕을 즐겨라, 그리고 그것을 존중하라.(p.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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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문자 그대로 좀 더 멋진 파티를 열기 위해 소도시를 세웠고 결국 도시를 건설하게 되었다. p.15

우리가 이전에 존재했던 어떤 사람들보다 더 취할 수 있다면, 우리가 거인의 어깨 위에(전임자들이 이룩해 놓은 것 위에 있는 것) 서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p.17

인간이 술과의 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은 술이 굶어죽을 확률을 낮추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인간은 직립 보행하고 이 타임 라인의 어느 지점에선가 우리는 술을 마시고 취하기 시작했다. p.31

소리를 물질로 분류하는 것이 처음에는 조금 어색해 보인다. 하지만 음파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원자는 질량을 가지고 있다. p.46

우리 뇌에서 도파민이 나오는 수문을 인공적으로 활짝 열어주는 것이 음악이다. p.48

뇌파 동조’ ... 특정한 마음 상태를 유발하는 주파수가 있다. 생각과 감정은 뇌파로 측정된다. 대개 마음 상태가 다르면 그에 따른 뇌파의 주파수도 다르다. p.61

원숭이들이 사회적 계급의 상층부에 있는 아름다운 원숭이를 보려고 맛있는 것을 포기한다는 점이다. 상대방을 대면할 기회를 갖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인간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원숭이들이 낯선 엘리트 사진을 응시함으로써 무엇을 얻을까? 또 우리 인간은 무엇을 얻을까? 바로 지식이다. / 플랫 박사는 높은 계급의 원숭이 얼굴을 보는 것을 (p.86)급 정보를 얻으려는 것이라고 했다. 원숭이들은 뛰어난 사회적 학습자들이다. 그들은 자신에 비해 사회적으로 훨씬 더 성공한 이웃의 얼굴(혹은 행동)에 좀 더 관심을 가짐으로서 배울 것이 있는지 본다. p.87

성공적인 사람을 모방하는 것은 진화적 이득이 따르기 때문에 우리가 관심을 가지면 우리 뇌는 그에 따른 보상을 한다. 그런데 일이 이상해지는 것은 그 충동이 우리 현대 세계의 문제점과 겹쳐질 때이다. p.90

유명인 숭배는 종교적 숭배가 내리막길로 접어들면서 상승세로 접어들었다. 이런 현상은 현대에 처음 나타난 것이 아니다. 고전 학자인 에릭 도드의 주장이 옳다면 B.C. 300년경 고대 그리스에서도 이런 현상이 있었다. p.99

신을 믿든 안 믿든 인간이라면 누구나 제일 큰 존재론적(p.100) 질문에 대한 커닝 페이퍼를 찾고 있다. p.101

처칠과 스탈린은 술 때문에 친해졌다. 나치로부터 서구 문명을 구하는 데 술이 한 가지 역할을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술은 문명을 붕괴시키기도 했다. p.136

우리 중 일부는 애초에 그런 꼴같잖은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다. 아주 옛날에 우리 종의 그런 찌질한 행동이 우리를 구한 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p.159

더닝-크루거 효과는 무능한 사람들이 실제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p.165

존슨과 파울러는 위험이 크면 클수록 과신의 가치가 점점 줄어든다는 점 또한 언급했다. 위험이 적을 때는 실패해도 그렇게 큰 타격이 없고 뜻밖의 횡재가 그만한 가치가 있다. 이것이 악플러들이 실제 현실에서는 잘 싸우지 않으면서 온라인에서 온종일 죽치고 앉아 자신의 무용담을 끝(p.168)없이 떠벌리는 이유이다. p.169

존슨과 파울러는 인간이 자신에게 거짓말을 잘 하는 존재로 진화된 한 가지 이유는 그래야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훨씬 더 믿을만하게 만들 수 있끼 때문이다. p.171

자아도취, 비아냥, 욕은 언제나 우리를 짜증나게 해왔다. 하지만 옛날 옛적에는 우리 종이 생존을 확보하려면 그것들이 필요했다. 과신은 우리 조상들로 하여금 호모 사피엔스가 전세계로 퍼져나가도록 위험한 기회를 붙잡게 만들었던 원동력이었다. 추한 모욕과 공격적 허세는 젊은 세대에게 물리적 충돌을 피하게 했고 남는 시간에 섹스를 하게 했다. 현대에 이런 행동은 우리가 받아들이기에 가장 짜증스러운 정도까지 왔다. 그래도 우리는 이런 행동이 인간 발달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 p.181

성 노동이 신앙의 동의하에 존속한 기간이 무려 3,000년 이상이다! 그러한 사실이 이상해 보인다면 그것은 현대에 와서 매춘을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역사 전반을 놓고 보면 오히려 법적 금지가 이례적이다. p.189

매춘은, 적법하든 그렇지 않든 문명화된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p.198) ... 낸시 허먼은 <일탈>이라는 저서에서 듀로크하임이 불법 행동이 사회에 일조한다고 보는 두 가지 목적을 이렇게 요약했다. “하나는 문화에서 옳고 그른 것 사이에 차이를 정의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제도적 틀의 압력으로 발생한 과도한 에너지를 배출하게 하는 안전판 역할을 하는 것이었(p.199).” p.200

매춘은 사회라는 직물 속에 직조되어 있다. 열심히 하고 억압된 문화의 굴레를 갑갑해하고 짜증내는 사람들이 있는 곳은 어디든 그것을 완화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성 종사자들이 있을 것이다. 수많은 인간 문화가 악덕과 스트레스가 서로 충돌하는 도가니 속에서 태어났다. p.200

섹스 거래는 대부분 치유보다는 성욕 해소의 역할이 더 많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 성장한 것으로 그것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적법한 치료 분야가 있다. 성 대행 행위라는 것이다. ... 의료적 성 종사업. p.203

듀르크 하임은 불법 행동의 세 번째 사회 기ㅤㅡㅇ을 사실로 가정했다. 그것은 사회 변화를 조장하는 역할을 한다.(p.203) “나쁜 행위가 존재할 때 집단 감성은 새로운 형태를 받아들이는 데 충분히 유연하다. 그리고 나쁜 행위는 때로 집단 감성이 받아들이는 형태를 결정하도록 도와준다.” p.204

매춘과 성 대행 사이의 핵심적 차이가 바로 그것이다. 환자들이 언제나 섹스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돈을 지불하고 원한다면 할 수 있다. 환자는 성 대행자에게 섹스가 포함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 치료비를 지불한다. 게다(p.205)가 그것은 당연히 섹스로 시작되지 않는다. 섹스는 치료라는 긴 과정의 클라이막스일 뿐이다. p.206

약물이 인간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이야기할 때 우리는 문화의 공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문화라는 요소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지도 않다. 화학 물지과 뇌에 대한 이야기를 할 뿐 뇌가 자란 곳, 즉 우리 사회가 약물 사용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처럼 생각한다. p.291

실제로 모든 대상자들은 다른 사용자들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 다양한 하위문화의 관습과 전통으로부터 적절(p.294)한 관행과 사회적 제재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말이다.” p.295

인간 사회에서 커피만큼 보편적으로, 혹은 거부감 없이 사용되거나 남용되는 약물도 없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그것에 흠뻑 빠져 있어 커피가 약물이라는 사실을 거의 잊고 지낸다. p.342

대개 모든 사람들이 윈스턴 처칠, 혹은 나폴레옹, 혹은 히틀러가 맨 처음 한 말이라고 책임을 전가하는 인용구 하나가 있다. “역사란 승자의 기록이다.” 혹은 다른 것으로는 역사란 합의를 이룬 거짓말 덩어리다.” p.347

나는 역사상 커피 베잇 식품의 다양한 발전이 이루어진 것이 카페인이 보편적으로 인정받는 약물로서 지위를 가지고 있는 것과 상당 부분 관련이 있다고 짐작한다. p.374

성적 도착이 진화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말하기에는 인간의 삶에서 하는 역할이 너무 크다. p.381

한 가지 가설은 우리 뇌가 터무니없는 것의 에로틱화를 점점 발달시켜 가는 것은 그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역병에 감염되지 않으면서 충동을 만족시키는 메커니즘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p.383

세기가 지날 때마다 우리 종에게는 에로틱 선택권이 점점 많아졌다. p.390

우리 종은 성 일탈에 신세를 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어떤 고등학교 교과서도 발 페티시와 바케트 딜도가 고대 인간들이 역병을 피하는데 도움을 주었다는 것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몇몇 문화에서 자위라는 개념 자체에 거센 공격을 퍼부음에도 불구하고 페티시는 인간 발달에 어떤 역할을 했다. p.390

학교에서 가르치는 역사는 과거의 악덕에 가림막을 쳤다. 약물이 역사의 위대한 사상가들에게 영향을 미친 것을 최소화했고 매춘과 모욕이 인간 발달에 미친 영향을 은폐했다. 어느 곳이건 주류 역사는 가장 건전해 보이고 가장 위험이 적은 버전을 내놓는다. / 단 하나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만이 예외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그것이 여성이 여성을 위해 만든 의료 도구라기보다 고대의 포르노물이라고 가르치는 것을 훨씬 더 좋아하는 것처럼 보인다. p.407

이산화질소와 에테르의 이야기는 이제 마약이나 환각제 분야에서 반복을 거듭하고 있다. 그것이 현대 합성 마약의 패턴이다. 주목할 만한 화학 물질이 발견되어 합성되면 과학자들이 안전하고 책임감 있는 최고의 사용법을 찾기도 전에 파티 약물로 먼저 사용된다. p.422

대부분의 다른 확각물질의 불법화는 우리 사회가 문화적 중량감을 키우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것이 문제이다. p.493

모든 악덕 뒤에는 충동이 있다. 우리는 건강하고, 세계에 대한 대응 능력을 향상시키고, 그리고 인간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식이 아니라면 세계에 무감각하고 그것과 점점 더 깊이 멀어지는 방식으로 충동을 충족시킬 수 있다. 이 책으로 바라는 것은 당신이 피우는 다음 담배를, 당신이 마시는 다음 술을, 당신이 파티에서 먹는 그 어떤 환각 물질을, 소모품 이상으로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 그것 뒤에 역사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라. 인간이 독창성과 발명의 무게를 더하고 난 다음에서야 당신이 그것을 쉽고 안전하게 즐길 수 있게 되었음을 생각하라. p.494

악덕을 즐겨라, 그리고 그것을 존중하라. p.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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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하와 칸타의 장-이영도] 확장하는 세계, 새로운 모색 | Memento 2021-01-26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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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시하와 칸타의 장

이영도 저
현대문학 | 2020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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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도 작가도 변한다. 상상과 꿈은 확장한다. 그게 꼭 좋은 뜻일리는 없지만, 그 끝에 이영도가 내놓을 세상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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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는 상상이라는 그리스어 판타지아에서 유래했다. 소설과 같은 문학작품 자체가 상상에 기반을 뒀음에도 불구하고, 판타지는 그 상상의 날개를 더 펼칠 수 있는 장르로 곽광을 받아왔다. 무엇보다 과학적 엄밀성이나 물리적 사실성에서 비교적 벗어나 작가 개개인의 세계관을 구축할 수 있어,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데 유리하다. <반지의 제왕>이 신화와 전설 등을 차용하여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냈다면, <해리포터>는 우리 현실 세계에 마법을 연결하여 신세계를 창조했다. 한국에서 전자로 유명한 사람이 있다면 단연 이영도를 꼽을 수 있다. <드래곤 라자>를 필두로 <플라리스 랩소디>, <눈물을 마시는 새> 등은 재미와 함께 철학적인 이야기가 곁들여진,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판타지 소설 작가 중 한명이다.

<시하와 칸타의 장-마트 이야기>는 폐허가 된 세상에서 다양한 환상종들과 생존경쟁을 펼치는 이야기다. 헨리라는 드래곤이 지키는 동물원에서 살아가는 열아홉 살 소녀 시하와 칸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폐허 속에서 살아남은 인류들은 환상종들에게 압도당한 채 버티고 있다. 동물원에서 드래곤이라는 강력한 존재에 의해 보호받으며 살 수 있지만, 인류는 결코 길들여지지 않는다. 마트로 진출해서 옛날의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지만, 이는 종 자체의 위기를 불러온다. 드래곤과 문학 유산, 시하와 탄생과 존재에 대한 고민은 인간에게만 해당한 것이 아니다. 환상종 역시 자신의 존재에 대해, 생존을 위해 치열하다. 그들의 투쟁은 판타지의 탈을 썼지만 실재로 우리에게 무엇을 던져주는가.

그간의 저작들과는 조금은 다른 느낌이다. 그간의 저작들이 <반지의 제왕>과 비슷한 계통이었다면, 현세계의 대멸망 이후라는 설정은 기존의 궤도와는 조금 다르다. 폐허 속에서 등장한 환상종들,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인류라는 설정은 그간의 이영도 식 장편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색다르게 다가올 듯하다. 다양한 신화 속 존재들을 차용해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능력은 변함이 없다. 다만 기존의 저작들이 여러 권에 달하는 긴 호흡에서 이뤄진 이야기들이라면, 이 책은 한권에 모든 것을 담아내야 했다. “소설의 설정은 나무의 뿌리와 같아서 방대하고 탄탄할 필요는 있지만 드러내어 밝히면 나무는 말라죽게 된다.(이영도)”고 말 했던 그의 발언을 생각해 볼 때, 비교적 불친절한 저작이 아닐까.

판타지는 상상을 넘어 시대의 꿈이다. 사람들은 판타지를 소비하며 산다. 꿈을 꾸기 위해, 고통스러운 현실을 잊고 새로 살아갈 힘을 얻기 위해. 꿈은, 판타지는 그렇게 삶의 일부가 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허황된 이야기, 재미만 추구하는 글이라고 매도한다. 어린애들 장난으로만 치부했다. 이는 꿈에 대한 부정이다. 삶에 대한 부정이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 장미도 필요하다. 세상은 이성과 논리, 과학으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 상상, 판타지는 장미로서 우리 삶을 풍성하게 한다. “판타지에 과학을 들이대면 남는 것은 허무뿐입니다. 소설은 리얼이 아니라 리얼리티를 다룹니다. 꿈에 과학적, 논리적 설명을 하려 들면 상당히 우스운 경우가(이영도)” 된다.

판타지는 빵도, 장미도 될 수 있다. 또한 꿈이 빵이 되는 세상이다. 그 옛날 꿈같던 신화, 이야기는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다. 영화가 되고, 게임이 되고, 상품이 되어 세상에 현현한다. 그렇기에 수많은 이들이 오늘도 판타지에 매달린다. 꿈을 실현하거나, 소비함으로써. “우리가 익숙하게 즐기는 환상 그 자체에 대해서 그것이 무엇인지, 우리의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좀 더 진지하게 모색(p.213)”하고 있다는 해설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는 이영도의 다음 저작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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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나 장수, 놀라운 매력 같은 소박한 것엔 관심이 없나 보군, 인간.” “누구 좋으라고,” “? 무슨 말이야?” (p.10) “그건 전부 자식을 위한 거잖아. 매력으로 좋은 짝을 찾고 건강으로 안전하게 자식을 낳고 장수로 오랫동안 양육한다,” 데르긴은 입술을 동그랗게 만들었다. “틀린 말은 아니네. 그런 식으로 보고 싶다면 유전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해야 정확하겠지만.” “자식이든 유전자든 남 좋으라고 살 생각 없어. 물론 널 위해 뭘 해줄 생각도 없고. 먹을 것 내놔. 안 그러면 지렁이와 요정 중에 어떤 것이 더 좋은 미끼인지-” p.11

쇠락의 상징 같은 악취나 숨 막히는 먼지, 진득한 웅덩이 따위는 사실 활발한 생명 활동의 증거이다. 악취는 왕성한 미생물 활동의 결과(p.49)이고 먼지의 상당수는 동물의 분변이나 생물의 죽은 세포이며 웅덩이는 그것들이 순환한다는 증거다. 곰팡이, 거미줄 같은 것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생명 활동의 기준에서 본다면 그런 것들은 쇠락은커녕 오히려 번성의 증거일 때가 많다. 사막이나 극지, 달 표면에는 그런 것들이 없다. 그래서 그곳들은 황량하지만 지저분하지는 않다. p.50

경고라는 놈은 그게 문제야. 겁을 주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리게 돼.” p.77

돌킨은 좋은 판다지 소설이란 현실 세계의 질서와는 유리된 2차 세계를 창작한 뒤 독자에게 진짜로 있는 세계처럼 신뢰를 주어야 한다고 했다. p.203

로즈메리 잭슨은 환상이란 오히려 현실에서 환상은 보이지 않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을 적극적으로 명명하고 형상화하고 그것이 현실의 문제를 적극적으(p.250)로 다룰 수 있는 전복성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렇기에 환상은 독자에게 필연적으로 낯선 무언가일 수밖에 없다. 독자가 환상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어디서부터 현실이고 어디서부터가 환상이며, 이러한 환상과 현실을 융합할 수 있는 중간 지점을 끊임없이 찾는, ‘환상의 변증법과정을 거쳐야 한다. p.206

대중문화에서 환상을 빼면 이제 아무것도 이야기할 수 없는 시대가 왔다. 고증을 중시하던(p.212) 안방 사극 드라마에서도 환상은 자신의 자리를 굳게 지킨다. 하지만 우리는 환상이 익숙할 뿐, 환상이 무엇인지 모른다. 이 소설의 의의는 우리가 익숙하게 즐기는 환상 그 자체에 대해서 그것이 무엇인지, 우리의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좀 더 진지하게 모색해보고자 제언하는 것으로 소임을 다하였다.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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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영혼-전성철] 균형 잡힌 '척'하는 보수 전도서 | Memento 2021-01-24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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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보수의 영혼

전성철 저
엘도라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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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설명하려다 보니. 지나친 단순화의 한계일까. 본인의 출신을 밝히며 균형 잡힌'척' 하는 보수 전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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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말한다. 이 책은 당신의 아들이 자라면서 당신과 이 대화(아버지는 왜 보수인가?)를 더 깊이 있게 이어가고 싶어 할 때, 그가 던지는 모든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하실 수 있게 하기 위해 쓰여 졌다.(p.6~7)”. 진보가 넘치는 세상(?). 보수가 정권과 가치를 잃어버린 세상에서 보수란 무엇인지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 진보주의자를 이겨내기 위한 전도서가 바로 전성철이 쓴 <보수의 영혼>이다. 그리고 자신이 한 때 민주당으로 강남()에 출마 했던 진보로서 보수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고민하고 보수주의자로 살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가 말하는 보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 그리고 자유가 가장 보장되는 곳이 시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법과 질서를 수호하는 게 보수의 중요한 임무다. 자유를 수호하고 시장을 지켜내기 위해서 법과 질서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바탕으로 보수를 독재나 수구와 구분 짓는다. 진보와의 가장 큰 차이점은 시야라고 주장한다. 보수는 사안을 거시적인 차원에서 접근하며, 진보는 미시적으로 접근한다. 또한 진보는 평등을 추구한다. 보수는 절대 나쁜 게 아니다. 그럼에도 어째서 진보가 인기가 있는가. 그것은 단순하고 명쾌하기 때문이다. 평등을 추구하는 진보는 약자를 돕는다는 명분이 있기에 쉽고 받아들이기도 편하다. 착한 사람이 되는 방법인데 누가 싫어하겠는가?

보수에 대해서 고민을 한 사람답게 아주 쉽게 풀어 썼다. 아무래도 알기 쉽게쓰려다보니 단순화할 수밖에 없었을 테다. 서론에서 나오든 자신의 어린 아들에게 설명하려면 다른 방법이 없다. 하지만 그 정도가 지나쳤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보수와 진보의 역할은 다르고, 둘 다 하나의 사회를 위해 꼭 필요하다.(p.151)”고 말하며 균형 잡힌 시각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실재로 세부 사항들에서는 전혀 반대의 느낌이다. 예를 들면 보수와 진보의 중점 차이를 들 수 있다. 쉽게 말해 보수는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본다는 정도의 의미였지 싶다. 의미는 충분히 전달되었지만, 보통 이런 표현은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다. 차라리 다소 어려운 단어로(?) 보일지언정 보수는 거시적 차원에서, 진보는 미시적 차원에서 접근한다고 말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자기도 모르게 본심을 표현한 게 아닌가 한다.

더불어 저자가 생각하는 보수의 가치, 선택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들이 어떤 결과를 유도할지 모르겠다. 시장은 늘 옳게 굴러가지 않는다. 우리 모두 그 결과를 직접 경험하고 있다. 선택의 폭이 무한정 넓어진다고 행복하거나 자부심을 가지지 않는다. 무한한 선택은 오히려 혼란을 야기한다. 또한 우리나라 노조 조직율은 11.8%(2018년 기준)인데, 이정도가 노조공화국이라는 표현에 합당할까. 오히려 10% 내외의 노조에게 휘둘리는 시장체제라면 너무나 무능한 것 아닌가? 대체고용권 확보가 정부 개입 없이 노사 평화를 이루는 마법 같은 제도(p.217)”라 주장하지만, 세상에 마법과 같은 제도는 없다. 균형 잡힌 시각인 척 말했지만, 진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확실히 알겠다.

보수와 진보 중 보수가 더 우선적 가치다. 왜냐하면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우선 먹고사는 것이다. 다른 모든 것은 그다음이다.(p.275)”라고 말하며 보수가 우선임을 말한다. 세상에는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사람이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다. 설사 먹고 사는 것이 최우선의 가치이더라도 그것이 보수만의 가치일까?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것은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한, 삶의 본질적인 문제이지, 이념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먹고 사는 것이 최우선인 우리 사회에서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는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다. 보수의 가치가 단순히 먹고 사는 것, 혹은 잘 사는 것에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지금이 진보의 가치가 실현된 세상인가? 보수의 가치가 실현된 세상인가?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기준은 없다. 저자가 보수의 가치를 쉽게 표현하려고 단순하게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좌우를 경험했다는 사람으로 균형감 있는 보수의 가치를 기대했다. 기대에 많이 미치지 못해 아쉽다. 다만, 저자의 마지막 제언에는 동의 한다. 보수든 진보든 어떤 이념이든 해당한다. “강하고 유능하다는 것은 두 가지다. 첫째, 이념적으로 충실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이념에 맞는 정책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이를 국민과 제대로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p.273~274)” 이념과 이상도, 소통도 없다면 보수든 진보든 망하는 건 공평하게 마찬가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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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여 년 미국의 역사는 한마디로 보수와 진보의 경쟁과 갈등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p.8

미국의 헌법 정신 중 특히 사람은 자기가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것을 가지고(p.8)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고 하는 명제에 많은 감명을 받았다. p.9

좋은 조직, 좋은 사회란 사람들에게 다양한 선택을 제공해주는 곳이다. p.27

자신이 필요한 것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자족에 대한 기대가 있다. 또 여러 가지 중에서 선택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주는 자존이 있다. 자부심은 바로 자족자존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어울릴 때 발생하는 심리 상태인 것이다. p.30

시장이란 한마디로 자유가 제도화된 곳이다. p.46

시장의 핵심 요건은 규칙을 지키는 것이다. ‘법과 질서는 시장을 옹호하는 보수의 핵심적인 가치 중의 하나다. p.55

진보란 한마디로 자유가 주어졌을 때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불평등을 교정하자는 이념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교정하려면 대부분의 경우 자유를 일정 부분 희생해야 한다는 점이다. p.61

우리 정치 시스템은 왜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이것은 한마디로 박정희 대통령의 개발독재의 유산이다. p.102

우리 국회에는 자유와 선택의 원리가 작동되지 않고 있다. ‘명령의 원리가 작동되는 독재 정권 체제인 것이다. p.109

좁게 보면 진보가 될 수밖에 없고, 넓게 보면 보수가 될 수밖에 없다. p.141

독재는 항상 전체주의를 표방하기 때문에 개인을 중시하는 진보가 될 수는 없다. 동시에 독재는 자유를 중시하기 않기 때문에 보수도 아니다. 다시 말해 독재는 독재일 뿐, 보수도 진보도 아니다. p.143

배고픔에 주로 신경 쓰는 집단을 우리는 보수라고 부르며, 보수는 자유를 통해 그것을 이루려고 한다. 반면 배 아픔을 주로 신경 쓰는 집단을 진보라고 하며, 이들은 자연히 평등을 지상 가치로 추구한다. p.149

보수와 진보의 역할은 다르고, 둘 다 하나의 사회를 위해 꼭 필요하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부분 민주국가의 헌법은 그래서 자유와 평등을 국가의 두 가지 핵심 가치로 설정하고 있다. 따라서 보수당과 진보당은 각각 헌법적 가치를 실현하는 두 개의 전위 부대라 할 수 있다. p.151

비경제 분야에서 진보가 어느 정도 개입해야 하느냐에 대한 생각에 따라 진보도 여러 부류로 나뉜다. 그러나 경제는 다르다. 경제에 있어 정부의 역할이 커져야, 명령의 원리를 많이 작동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 지도자는 모조리 실패했다. p.197

누구에게도 이래라저래라 명령하지 않는데 공동의 선이 이루어지는 곳, 그것이 바로 보수가 지향하는 세상이다. p.216

보수는 항상 법과 질서를 유지하는 데 높은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p.226

가장 좋은 세상은 모든 시민이 첫째, 자유롭고, 둘째, 선택할 것이 많고, 셋째, 그를 통해 자부심을 느끼며 사는 세상이다. p.232

진보의 존재 이유가 비교적 단순하기 때문에 표현하기가 쉬운 것이다. 가난하고 불쌍한 약자들을 돌보고 포용한다는 진보의 존재 이유는 그렇게 어려울 이유가 없고 어려울 필요도 없다. p.250

정치를 패싸움이 아니라 정책의 대결장으로 만드는 데 있어 가장 유용한 수단이 바로 정책 청문회. 미국 정치는 이를 가장 잘 활용하고 있는 곳이다. ... 우리나라 청문회는 대체로 국회의원이 사람들, 특히 공무원들 불러놓고 하는 곳이다. 청문회의 주된 목표가 증인들, 특히 공무원들을 조지는것인 경우가 더 많다. p.267

돈이 좋은 것은 그것이 선택을 사 주기 때문이다. ... 돈이 없는 사람에게도 선택을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정치의 몫이다. p.271

강하고 유능하다는 것은 두 가지다. 첫째, 이념적으로 충실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이념에 맞는 정책을 끊임없이 개발하고(p.273) 이를 국민과 제대로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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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강양구 외] 반복된 실수는 실수가 아니다 | Memento 2021-01-24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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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강양구,권경애,김경율,서민,진중권 저
천년의상상 | 2020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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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된 실수는 실수가 아니다. 노무현의 유산을 이은 정권이라면 그 정신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때가 아닐까. 이상마저 잃는다면 남는 건 최악의 경험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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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딴지를 건다. 우리는 단 한 번도 같은 나라를 경험해 본 적 없다. 당연하다. 이렇게 급변하는 세상에, 변화와 경쟁을 신봉하는 나라에서 같은 경험을 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역사는 반복한다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이 지닌 한계에서 유래한다. 인간은 어리석고, 잘못된 욕망은 우리의 눈을 가린다.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역사는 반복하는 듯 보이는 이유는 반복된 실수의 모습이 유사해 보이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다르지만, 현상은 유사하다. 이러한 현상들을 하나의 범주로 묶어낸다면 유사성이 보이고, 하나의 진단이 가능해진다. ‘민주주의는 어떻게 끝장나는가.’를 부제로 가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는 진단중 하나다. 한국 정치역사상 진보정권은 3번째 집권중이다. 어느 정도 경험과 역사가 쌓였다. 실수들의 묶음이 가능하고 이를 통해 현상을 살펴볼만하다. 책의 제목은 대통령의 말을 비꼬는데서 보이듯 그 수위가 높다.

지금의 진보정권은 노무현 대통령의 유산에서 비롯되었다. 대통령부터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등 대부분 그와의 인연을 전면에 내세운다. 여기에 본인이 옳다고 믿었고 그렇기에 타협하지 않았던 전 대통령의 모습은 출판물과 다큐멘터리, 방송 등을 통해 공고해 졌다. 많은 사람들이 (뒤늦게라도) 그의 옳음에 공감을 했고, 힘을 실어주었다. 이러한 인적, 정신적, 물질적 자본들을 자산을 바탕으로, 현 정권은 우월적 지위를 확보했다. 문제는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현 정권이 승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정권은 자신들이 잘해서가 아니라 상대가 더 못해서 정권을 얻었다.

문제는 여기서 부터가 아닐까. 정당 내에서 힘을 얻기 위해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유산을 취해야만 한다. 그래야 힘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힘을 얻고 난 후가 중요하다. 그의 유산을 넘어서려는 순간 기반을 잃고 만다. 노무현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이상 발전은 없다. 지금의 상황은 분명하다. 옳은 일을 위해서는 자신의 지지자들을 쳐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소위 대깨문으로 불리는 극성지지자들의 영향력이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전의 트라우마와 경험으로 철저히 무장해 있다. 우리가 옳으며, 옳은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는 끝까지 버텨내야 한다 믿는다.

정치는 자기편을 늘리고 적을 줄이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적이 너무 많았다. 그의 노선과 생각은 선명했기에 피아의 구분이 확실했고 피아의 투쟁이 강렬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옳다(부동산이든, 방역이든, 뭐든). 진짜 옳은지는 따져봐야 안다. 설사 오늘 내가 맞아도 내일도 그렇다는 보장은 없다. 항상 옳을 수도, 매번 옳을 수도 없다. 결국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사이, 도덕적 우월성을 바탕으로 한 판단들은 수 많은 적을 만든다. 적들은 상대가 오판하기를 기다린다. 적이 많다면 불가피한 상황이다. 타협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억지로 적을 만들 필요는 없다. 잘못을 인정하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자신들이 항상 옳지 않다는 사실은 염두 해야 하지 않을까.

다양한 사건들이 현 정권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일반 국민들 그리고 지지자들도 보기에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사건들이 생긴다. 의문에 대한 대답이 정무적 침묵판단으로 일관하고, 정치적 공학과 수사에만 그친다면 노무현의 유산을 이었다는 사람들은 몰락할 수밖에 없다.

도대체 무엇을, 어떤 유산을 물려받았다는 말인가. 말할 때 침묵하고, 침묵해야 할 때 실언한다면 100년의 정권창출은커녕 다음에 바로 몰락할 수밖에 없다. 정말로 노무현 정신을 이었는지, 아니면 노무현 정신의 껍데기만 이었는지 고민해야 한다. 본인들이 생각하는 옳음도, 정권도, 이상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다면, 다시 생각해 봄직하다. 최소한 이상이라도 지켜야 한다. 모든 것을 지키려다 보면 아무것도 손에 남는 게 없는 법. 보수가 자신들의 가치를 잃었을 때 촛불정국과 대통령 탄핵이라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순간을 경험했다. 진보가 자신들의 이상을 잃고 정권만 갈구하게 된다면 그때는 진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가 이뤄지지 않을까.

말도 안 된다고만 생각한다면 나아질 수 있는 건 없다. 어떤 얘기라도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다. 역사는 반복하지 않는다. 다만, 지난 역사에서 배운 게 없다면 그 양상은 반복된다. 계속되는 실수는 실수가 아니다. 반복된 실수는 없다. 결국 그게 실력이고, 그 사람의 정체성이다. 실수의 반복 끝에는 대한민국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순간이 기다리고 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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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저마다의 정치적 포지션이나 가치관에 따라 각 언론사들이 지향하는 나름의 어젠다를 갖고 있었습니다. 언론사 편집국은 그 어젠다를 세팅하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취재 활동을 통해 다양한 뉴스들을 생산했습니다. 하지만 포털 사이트가 주목받는 뉴스와 그렇지 못한 뉴스로 큐레이션하면서 뉴스 콘텐츠들이 모조리 포털 사이트의 주목 경제 속으로 수렴되어 버립니다. 그러다 보니 뉴스를 생산하는 기자들이나 게이트 키퍼 역할을 하는 데스크 모두, 뉴스 가치를 판단할 때 이 시가를 썼을 때 주목받을 수(p.21) 있을까? 없을까?’에 자신들의 모든 언론 활동을 맞추게 됩니다. ... 자신의 언론사 어젠다 세팅에 부합하거나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뉴스가 아니라, 사람들이 많이 볼만한 콘텐츠에 기자들이 눈길을 주기 시작하고, 데스크도 그런 기사를 발굴하라고 독려하면서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p.22

“<1987>에서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가해 통제한다. <멋진 신세계>에서는 즐길 거리를 쏟아 부어 사람들을 통제한다. 한마디로, 오웰은 우리가 증오하는 것이 우리를 파멸시킬까 봐 두려워했다. 헉슬리는 우리가 좋아서 집착하는 것이 우리를 파멸시킬까봐 두려워 했다.” -닐 포스트먼, <죽도록 즐기기>(p.9~11) / p.25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의견을 가질 권리가 있는 것이지, 저마다의 사실을 가질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 대니얼 패트릭 모이니핸 p.39

사실을 뜻하는 팩트(fact)의 어원은 라틴어 팍튬(factum)입니다. 팍튬은 제작된이라는 뜻이에요. 결국 사실을 제작되는 것이라는 얘기가 됩니다. ... 다시 말해서 저에게 사실이란 이미 일어난 일로서 변경할 수 없는 것이라면, 두 사람에게는 사실이란 얼마든지 제작할 수 있고 언제라도 변경할 수 있는 것인 셈이죠. p.44

미디어는 의식을 재구조화한다.” - 윌터 J. p.55

언론은 두 가지 기능을 하는데요. 하나는 팩트를 보도하는 거고, 다른 하나는 어젠다 세팅입니다. 진리에는 두 가지 정의가 있습니다 하나는 대응설적 진리(인신론적 진리)에요. “비가 온다”, 진짜 오면 참이죠. 이건 팩트의 문제입니다. 다른 하나는 아직 없는 걸 만드는 게 진리(존재론적 진리)라는 관념입니다. 예를 들어 스티브 잡스가 머릿속에 가지고 있던 게 현실이 됐잖아요. 진리란 이런 식으로 없는 것을 있는 걸로 만들어내는 거라는 겁니다. 이게 존재(p.80)론적 진리인데, 언론에서 하는 어젠다 세팅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우리 언론을 보면 이 부분이 과도하게 정치화되어 있어요. 왜냐면 자기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가게끔 이미 결론이 내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p.81

이런 행태를 거짓 등가성이라고 부르는데요. 저널리스트들이 균형을 진실과, 의도적인 중립성을 정확성하고 혼동하고, ‘양측을 모두 보여주라는 압력에 굴복한 결과인 거죠. p.88

음모론들은 인간의 의시을 과학에서 이야기의 시대로 되돌려 보낸 것인데, 이것은 단순한 퇴행이 아니에요. 현대의 음모론은 과학 이후의 이야기라, 고대의 신화와 달리 나름 합리적 추론과 과학적 논증의 외양을 갖추고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물론 합리적으로 사유하는 이들에게 그것들은 그저 사이비 논증과 엉터리 추론에 불과하지만, 거기에 빠진 대중을 설득하기 위해 그 오류를 일일이 지적하는 것은 매우 번거롭고 피곤한 일이죠. p.95

오늘날 보수와 진보의 스테레오 타입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보수60대 이상의 건물주라면, ‘진보50대 초중반의 대기업 부장 또는 임원이다. 60대 건물주가 20대에게 요구하는 것은(p.313) 높은 월세 정도로, 자산 소유를 기반으로 한 경제적 착취 관계다. 하지만 50대 초중반 고참 부장은 자녀들에게 경제적 교육 투자뿐만 아니라 사회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기업체 인턴 기회를 알아봐주는 등 사실상 경쟁자적 관계를 맺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이 60대 중반 건물주를 상대로 적폐 청산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설득력을 가질 리 만무하다. 비싼 월세는 화가 나긴 하지만 돈을 벌어서 지불하면 되는 문제라면, 교육과 노동시장에서의 불공정한 경쟁은 교육과 일자리라는 근본적인 기회및 그 결과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조귀동, <세습중산층사회>(p.263~264) p.314

사람들은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죠. 합리적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하는 동물(p.330)이에요. p.331

최근 10년의 한국 정치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사건은 노무현 대통령 서거라고 생각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도, 심지어 작년(2019)의 조국 사태도 결국은 노무현 대통령 트라우마의 결과라고 생각해요. p.343

박근혜 씨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저는 무척 절망하고 실망했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박정희에 대한 진정한 마무리, 극복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이번 사태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새로운 마무리, 극복의 계기가 되었(p.350)으면 좋겠는데요. ... 노무현 대통령이 지켜내고자 한 진보의 가치를 계승하지 않은 채, 그의 죽음만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아요. p.351

586세대가 주류 세력이 되었다는 것은 곧 그 세대를 대표하는 엘리트 계층이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기득권층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조국 사태는 그들이 그 동안 구축한 특권과 기득권을 2세에게 대물림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을 보여주고요. 586세대들은 아직도 자신들이 서민층이고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중상위층이에요. 이들이 사회의 헤게모니를 잡고 정치도 경제도 점점 장악하고 있어요. p.354

보수냐 진보냐는 태도의 문제라고 봐요. ‘바꿀 것보다 지켜야 할 것들이 많은 사람이 보수입니다. 이제는 지킬 게 너무 많은 이들이 저들인 거죠. 또 하나는 뭔가를 바꾼다고 할 때 그 개혁이 향하는 방향입니다. 바꾸는 그 행위가 사회 전체가 아니라 자기들의 기득권을 위한 것이라면, 그게 보수인 거죠. p.364

전 세계적으로 진보적 가치를 지향하는 정당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성찰과 반성 가운데 하나가 21세기 들어서 계급 정치의 의제, 즉 불평등 문제를 정면으로 직시하기보다는 피해 가면서 오히려 정체성 정치에 치중했다는 것입니다. 정체성 정치를 앞에 내세우면 얼핏 보면 오연을 확장할 수 있을 것 같죠. p.370

정치는 사회를 바꾸는 것이 목적이고, 권력을 잡는다는 것은 사회를 바꾸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한 것이에요. p.375

헤겔이 칸트에게 지적 질한 너는 뭍에서 헤엄을 배우고 나서 물속으로 뛰어 들거나.” p.394

칼 마르크스가 급진적이라고 하는 것은 사안의 뿌리로 가는 것이라고 했죠. 급진적(radical)이라는 말이 원래 뿌리를 의미하는 라틴어(radix)에서 온 거잖아요. 제대로 된 진보라면 우리 사회의 고통의 근원, 그 뿌리로 들어가 그것을 드러내는 역할을 해야죠. p.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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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B,C급 전범, 해방되지 못한 영혼-우쓰미 아이코] 전범이라는 사실, 조선인이라는 진실 | Memento 2021-01-19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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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조선인 B∙C급 전범, 해방되지 못한 영혼

우쓰미 아이코 저/이호경 역
동아시아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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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 친일부역자라는 사실 앞에 숙연해 진다. 식민지인으로서 고통받았을 그들의 삶에 대한 정당한 평가로 진실에 이르기를. 그길이 우리가 운명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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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사는 비극의 연속이었다.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순간에 목소리 한 번 제대로 내지 못했다. 대한제국 말기부터, 식민지의 고통에 이르기까지. 독립을 위한 투쟁에도, 신탁통치 결정부터 6.25 전쟁을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늘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휘청거려 왔다. 근대화의 지연과 국권 상실의 과정은 역사 무대에서 우리의 주도권을 상실하는 과정이었다. 해방을 맞이한 지금은 얼마나 바뀌었는가. 잃어버린 주도권은 여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미래를 얘기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식민지 사회의 유산 속에 살고 있다.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과거로 인해 여전히 지난날의 위기를 안고 살아간다. 국가와 민족은 그렇게 휩쓸려 오늘까지 왔다.

개인이라고 다를 바 없다. <조선인 BC급 전범, 해방되지 못한 영혼>은 험난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조국과 식민지 모국, 모두에게서 버림받은 개인을 그리고 있다. 조선인으로서 그들의 삶이 어떠했든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전범으로 단죄되었다. 삶의 궤적이 어떠했는지,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식민지 모국에서 태어나 그나마 나은 조건이라 믿었던 선택이 그들을 전범으로 만들었다. 식민지 모국은 그들을 전범으로 만들었고, 조국은 친일 부역자로 기억한다. 그렇게 전범이라는 사실은 남고, ‘이라는 진실을 잊혀졌다. 과연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역사는 사실만이 전부인가.

책은 조선인 BC급 전범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지적한다. 식민지인으로서 식민지 모국의 문화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일본제국군의 전진훈을 기초로 한 포로 경시 문화나 우월성에 대한 집착은 식민지 조선, 대만 사람들에게 스며 들었다. 식민지 국민으로서 최하층 대우를 받던 그들에게 전쟁포로라는 더 아래의 존재가 생겨난다면 과연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결국 전범으로 취급되어야 할 일본인들은 풀려났다. 포로 학대를 사실상 결정한 지휘부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고, 지원도 받지 못한 위험한 상태에서 강요받은 현장 근무자들은 전범으로 재판 받았다.

여기서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고향을 떠난 이역만리. 모든 곳이 연합군에 의해 점령된 곳에서 조선인, 대만인이라는 이방인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극히 제한적이었을 테다. 게다가 본인들이 일본인이라는 인식도 없었다. 본인들 역시 억울하게 끌려온 피해자들일 뿐이다. 하지만 연합군에게 일본인과 일본식민지인은 차이가 없었다. 그들은 모두 일본인으로 적이자, 잔혹한 학대의 실행자이며, 단죄해야 할 죄인이었다. 조선인 BC급 전범은 필요할 때는 제국의 위대한 신민, 버려질 때는 사라진 나라, 조선인으로 취급받아야 했다.

모든 조선인이 선하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모든 일본인이 악하지 않음 역시 마찬가지다. 조선인이 선하지 않다고, 일본인 역시 피해자라고 해서 서로에게 위해를 가하고 판단할 권리는 없다. 다만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흔들렸던 삶의 궤적은 온전히 판단 받을 기회는 있어야 한다. 졸속으로, 죽음의 순간까지 차별받았던, 식민지인들의 억울함은 공정한 평가위에 세워질 수 있다. 위해를 가했다면 처벌을 받고, 용서를 구하고, 받은 피해가 있다면 보상과 위로를 받아야 한다. 특히나 자신들의 운명과 관련 있는 중대한 문제는 항상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결정되었다(p.225)”면 더더욱 그렇다.

선택할 수 없는 것으로 차별하고 처벌할 수는 없다. 식민지에서 태어나고, 강제 징용의 위협 속에서 더 나아 보이는 선택지를 강요받았다. 주어진 선택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주어진 일을 했다면, 그 행위를 악으로만 규정하고 단죄만으로 끝을 낼 수 있을까. 전범과 친일부역자로 명명하면 끝일까. 분명히 그것을 사실일 수 있지만, 진실이라 할 수는 없다. 영웅은 시대의 한계를 극복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우리네 사람들은 영웅이 아니다. 시대의 한계, 시대의 악에 맞서 싸우기는커녕 그 앞에 좌절하고 만다. 그렇다고 시대의 악을, 개인의 악으로만 치환해서 처벌하는 게 합당할까. 그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그저 전부 운명이라 생각하고.(김귀호씨 유언)” 떠날 수밖에 없는 걸까. 운명 앞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걸까. 여전히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휘청거리는 현실 앞에서 과거의 미해결 과제를 돌이켜 본다. 운명의 처분 앞에 운명을 거부할 수 있는 힘은 함께 할 때 만들어질 수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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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의 죽음은 단지 포로수용소만이 책임질 문제는 아니었지만, 책임 문제는 현장에 집중되었다. 그 말단에 있던 조선인(지역에 따라서는 대만인) 군속에게 전쟁 책임이 집중되었다. p.12

BC급 전범자 중 유기형의 27%, 사형자의 11%가 일본인 조선인 대만인을 포함한 포로수용소 관계자라고 한다. 일본 국내뿐 아니라 대동아공영권전역에 설치되었던 포로수용소의 전체상과 그 실정을 밝히지 않고서는, 그 끔찍한 전쟁의 실태도 밝힐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전범재판이 무엇을 심판했는지 그 재판의 정체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p.17

천황의 전쟁 책임이 불문에 붙여진 것과 옛 식민지 출신의 사람들에게 전쟁 책임이 과해졌다는 것은 전쟁범죄재판의 정당성에 큰 의문을 남긴다. 그 재판에서 심판되었던 전쟁범죄란 무엇이었던가? 전후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어느 수준까지 전쟁 지도자들을 심판했고, 전쟁에 가담한 스스로를 질책했을까? 전후 조선인 전범 출신자들의 고독한 투쟁은 전쟁 책임에 무관심했던 일본인을 향한 고발이기도 했다. p.19

일본 군대에서 억압은 보다 낮은 사람, 약자를 향해 아래로 전가되어 간다. 조선인 군속은 그 억압 기구의 말단에 서 있었다. 그 밑에 황군이 목숨을 걸고 포획한 포로가 있었다. p.44

수많은 포로들의 죽음에 대해 패망 후 현장에 있었던 일본인 장교와 하사관, 조선인 군속들이 그 책임을 져야 했다. 그러나 몇 월 며칠까지 완성하라는 명령을 받았던 작업 현장에서는 그 어떤 것보다 명령이 우선이었다. 쓰지도 못할 비행장과 철도를 만들어서 많은 포로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은 대본영의 작전상 오류라고 할 수 있다. 장수업 씨가 포로 몇 사람을 때렸을 수도 있다. 허나 작전상 오류로 많은 사람들을 무의미한 죽음으로 몰아넣은 대본영의 책임에 비하면 장 씨의 잘못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장 씨는 창기 형무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같은 재판을 받았던 유동조 씨와 정은석 씨도 목숨은 건졌지만, 전범으로 감옥 생활을 해야 했다. / 명령을 내린 사람들의 전쟁 책임을 과연 철저히 평가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p.83

전범재판에서는 얼굴이 팔린 사람,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 큰 손해를 입었다. p.136

포로수용소는 당초부터 전진훈과 제네바 조야사이에서 태어난, 일본 군대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조직이었다. / 서러운존재였던 포로수용소가 실전 부대에게 걸핏하면 무시를 받았던 것도, ‘불필요한 것, 방해가 되는 것은 처분하라는 사고방식이 지배적이었던 당시 일본 군대 문화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일본군에게 포로는 본래 처분해야 하는 존재였다. p.171

시대는 완전히 폐쇄된 상황이었다. 스스로 인생을 선택할 수 없었던 청년들이 다른 길보다 좀 낫다고 생각해서 선택한 것이 감시원이었다. 이를 지원이라고 부르기에는 그 시대가 너무나 험악했다. 물리적으로 강제되어 끌려간 셈은 아니었지만 심리적으로는 강제적으로 끌려간 것이다. ... 포로수용소의 감시원 모집은 지원이라는 이름표를 단 강제 징용이었다. p.200

조선인들은 설마 전범 문제에 관해서만 일본인과 동등하게 취급받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자신들의 운명과 관련 있는 중대한 문제는 항상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결정되었다. 모르는 곳에서 자신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은 비단 이때 뿐 만이 아니었다. p.225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 놓인 시점까지도 차별받는 자의 서러움이 뼈에 사무쳤다. 부려먹을 때는 천황 폐하의 아들이라며 치켜세우고 쓸모없자 전서구 이하의 존재로 멸시한다. p.259

우리들은 말이지, 식민지에서 태어나 식민지에서 자라나 식민지 교육을 받고 노예 같은 취급을 당하면서 살아 왔어. 그러니까 네덜란드 사람이 인도네시아 사람을, 영국 사람이 인도 사람과 싱가포르 사람을 인간 취급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지. 영국 사람은 신사적이라든가 기품 있다고 말하는 놈이 있는데, 실제로 영국 사람들이 하는 짓을 보면 신사가 아냐. 아시아인의 피를 빨아먹고 살아 있는 거야. 사람의 피를 빨아먹으면서 일을 하지 않으니까 수프를 먹을 때 이렇게 먹어야 한다, 저렇게 먹어야 한다 따지는 거지. 매일 생활에 쫓겨 바쁘게 일하는 인간은 수프를 어떻게 먹든 상관없어! 인간이 다른 사람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게 신사인가?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고생(p.263)하고 똑같이 즐기면서 사회를 만들어 가야 인간인 건지. 나는 그 점을 지적하고 싶소! - 유동조 p.264

개인적으로 때렸느냐 때리지 않았느냐가 아니라 식량 사정이 나쁘고, 의약품은 부조하며, 위생 상태가 좋지 않은 억류소에 근무했다는 사실, 거기에다 일본군의 관습이 되어 버린 구타를 가한 점이 전쟁범죄에 해당한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p.273

포로 학대에 연합국 측이 해 온 항의에 대해 학대 행위를 하는 것은 조선인이며, 일본인이 아니라고 회답한 일본군. 조선인 감시원에게 처음부터 포로 학대의 책임 추궁에 대한 방패막이로서의 역할을 떠맡길 요량이었을 것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p.285

항명권이 없는 일본 군대에서 명령의 실행자로서 전범이 되어 버린 사람들이 A급의 조기 석방에 격한 분노를 느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레드 퍼지(Red Purge, 공산주의자 축출 운동)가 시작되고 경찰예비대가 발족하자, 전쟁 지도자와 협력자들에게 공직 추방 해제를 차례로 발표하였다. p.302

(평화) 조약 발효와 동시에 제11조를 실시하기 위한 법률 <평화조약 11조에 의한 형 집행 및 사면 등에 관한 법률>을 공포하였다. 일반적으로 법률 제103호로 불린다. 부칙을 포함하여 전문 40조로 이루어진 이 법률 맨 밑에는 천황 이름과 함께 도장이 찍혀 있다. 천황의 이름으로 일본 정부가 전범의 형 집행(p.317)을 실시한다는 것이었다. 천황의 전쟁 책임이 불문에 붙여졌을 뿐만 아니라 천황의 이름으로 침략 전쟁에 끌려간 일본인 조선인 대만인이 이번에는 천황의 이름으로 침략 전쟁의 책임을 떠안았다.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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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30 개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