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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의 작은 부엌칼] 기분 좋게 살면 된다, 담담하게. | 일반도서 2019-06-29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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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에밀리의 작은 부엌칼

모리사와 아키오 저/문기업 역
재승출판 | 2018년 03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나와 같은 실수를 하는 사람들, 그런 소시민들의 인생에서 얻는 공감. 어느새 온기로 가득차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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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 대결 구도나 미스터리 요소 없이도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이른바 “착한 소설”을 쓰는 작가 모리사와 아키오森?明夫. 이런 스타일의 소설은 아무래도 밋밋해서 재미가 없거나 청소년 권장도서처럼 교훈 일색으로 진부해지기 쉬운데, 모리사와 아키오의 작품들은 지루할 틈이 없다. 신기하게도. 별다른 사건이 일어나는 편도 아니고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전개가 계속되지도 않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지런히 책장을 넘기게 되는 것이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아마도 캐릭터의 생생함 때문인 것 같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 친근한 내 이웃 같은 사람들,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나와 같은 실수를 하는 사람들, 그런 소시민들의 인생에서 얻는 공감으로 인해 아주 가깝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에밀리의 작은 부엌칼エミリの小さな包丁] 역시 아름다운 자연을 품은 작은 해변마을 ‘다쓰우라龍浦’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따스한 이야기다. 멀리 가와사키, 요코하마, 미우라반도가 보인다는 이야기로 추측하자면 도쿄만을 끼고 있는 치바현(千葉?)의 어디쯤인 듯싶다. 도쿄에서 도망치듯이 이 마을의 할아버지 댁으로 15년 만에 굴러들어온 에밀리. 그녀의 상처 입은 마음은 깨끗한 자연, 친절한 마을사람들, 지혜로운 할아버지에 의해 조금씩 치유되어 간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함께 만드는 맛있는 요리는 에밀리가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 데 일조한다. 하도 오래 사용해 작아져버린 부엌칼을 날마다 갈면서 드디어 자신의 무기로 삼는데 성공한 것이다. 두 달이 못되는 여름 동안 서먹했던 할아버지와의 사이는 어깨가 맞닿을 정도로 가까워졌음을 깨닫는 에밀리의 마음은 이제 온기로 가득하다.


나 변했어.

할아버지 덕분이야.


주변을 바꿀 필요는 없어. 자신의 마음을 바꾸면 그게 곧 자신의 인생을 바꾸는 거다.

가능하면 기분 좋게 살아라.


할아버지의 주옥같은 말씀은 맑은 풍경 소리를 배경음으로 삼아 나의 가슴속으로도 슬그머니 들어온다. 힘들 때 콧노래를 부르면 세상을 바꿀 수 없을지라도 기분은 바꿀 수 있다는 말처럼, 하긴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린 문제다. 우연찮게도 이 책과 동시에 읽은 소설 [황금비늘]과 묘하게도 비슷한 면이 많았다. 이외수 작가의 이 작품은 정말이지 오랜만에 다시 접한 건데 낚시에 일가견이 있는 할아버지와 수도 없이 등장하는 ‘마음’에 대한 구절들이 겹쳐져서 나야말로 눈을 감으면 마음이라는 단어가 둥둥 떠다닐 지경이었다. 비슷한 생각을 지닌 작가들이기에 좋아하는 작품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나 보다.


마음心=속裏=우라浦=아름다움美.

요약하면 ‘마음=아름다움’이 된다.

마음은 아름다운 것.

- 모리사와 아키오 <에밀리의 작은 부엌칼> 中


언제나 마음 안에 촛불을 환하게 밝혀두고 살아가면 언제나 만물이 아름답게 보이고, 

언제나 만물이 아름답게 보이면 언제나 인생이 행복해지는 법이니라.

- 이외수 <황금비늘> 中


과거의 실패에서 배우지 않는 사람은 바보지만, 과거의 실패에 속박된 채 살아가는 사람은 더 바보다.

“인간은 행복해지기 위해 살아갑니다.”

두 권의 작품 속 구절이 이어지면서 내 마음에도 촛불이 켜졌다. 


그건 그렇고 만국 공통의 진리 몇 가지. 

여자의 적은 여자다.

가깝게 지낸다고 뒷담화하지 않는 건 아니다.

맛있는 음식은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


덧붙여 궁금증 한 가지.

과연 이 책에 등장하는 레시피 정말 맛있을까?

일본식 생선요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입에 맞을지는 조금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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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 아티스트] 스릴러의 새장을 열다. | 장르소설 2019-06-25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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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록 아티스트

스티브 해밀턴 저/이미정 역
문학수첩 | 2015년 08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여덟 살 소년에서 열여덟 살 금고털이로, 이후 스물여덟 살 죄수가 되기까지 10년 간격으로 커다란 전환을 몰고 온 마이클의 인생 이야기는 새로운 스릴러 소설의 장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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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봤을 땐 록 음악 이야기인 줄 알았다. [록 아티스트]. 헌데 Rock이 아니고 Lock Artist란다. 세상 모든 자물쇠를 여는 손을 가진 소년을 둘러싼 미스터리 스릴러로 ‘에드거상’ ‘대거상’ ‘알렉스상’ ‘배리상’ 등 스릴러 소설이 거머쥘 수 있는 모든 상을 휩쓴 작품이라고 한다. 음악소설도 좋아하지만 추리소설의 애독자인 나로서는 Rock이건 Lock이건 간에 매우 흥미진진한 책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시작부터 색다르다 싶더니 이것 정말 명품이다. 스티브 해밀턴(Steve Hamilton). 기억해두어야겠다. 플롯도 탄탄하고 흡입력이 대단해 다른 작품이 있다면 찾아 읽고 싶어졌으나... 없다. ‘알렉스 맥나이트 시리즈’가 있다는데 국내 출간소식은 왜 들려오지 않는 것인지...


이 작품의 포인트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 아쉬운 점이라면 주인공이 너무 가혹한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어린 나이에 이미 끔찍한 사건을 겪고 살아남은 소년이 또다시 어둠의 세계로 끌려들어가다니, 자신의 선택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마음의 상처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아이가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이미 9년의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고 있다는 이야기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주인공의 인생이 평탄치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예상할 수 있어도 범죄에 점차 깊숙이 빠져드는 과정이, 그와 관련된 사정이, 결국 감옥에 가게 된 상황이 너무나 촘촘하게 짜여서 쉴 새 없이 책장을 넘기게 된다. 주인공의 독백으로 전개되지만 사실 그는 어릴 때 사건의 트라우마로 말을 잃은 상태. 그 때문에 이야기는 묘한 긴장감을 품고 있으며, 그 어떤 말보다도 행동이나 감정이 강렬하게 표현되는 것이다.


주인공 마이클은 여덟 살에 부모를 잃고 삼촌에게 맡겨진다. 말을 못하게 되었기에 늘 혼자 조용히 지내는 그는 어느 날 자물쇠를 여는데 재미를 붙이고 놀라운 재능을 보인다. 고등학교 시절, 머릿속 기억을 그림으로 그려내는 재주를 발견한 덕에 친구도 연인도 생겼다. 그러나 운명은 그의 재능을 험난한 소용돌이 속으로 이끌고야 말았다. 사실 어떤 자물쇠도 열 수 있다는 능력은 범죄와는 필연적으로 맞닥트릴 수밖에 없는 것이겠지만. 그저 친구에게 자랑하고 싶었던 사소한 재주가 가택침입으로 연결되고, 그로 인해 만난 사랑을 지키기 위해 범죄조직의 볼모가 되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점점 조여드는 사슬을 풀고 범죄의 늪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는지, 긴박감 넘치는 현장을 함께 하는 동안 안타까운 주인공의 마음이 생생하게 전달되어 온다.


미시건에서의 열일곱 살 시절과 일 년 동안의 금고털이 떠돌이생활이 교차되며 드러나는 마이클의 과거에는 스릴과 액션, 로맨스까지 적절히 안배되어 있다. 읽는 재미가 없을 수가 없는 구성인 것이다. 게다가 주인공의 목소리를 앗아간 ‘그 사건’에 대한 미스터리는 막바지까지 밑바닥에 잘 감춰져 있다. 여덟 살 소년에서 열여덟 살 금고털이로, 이후 스물여덟 살 죄수가 되기까지 10년 간격으로 커다란 전환을 몰고 온 마이클의 인생 이야기는 새로운 스릴러 소설의 장을 열었다. 문득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경우의 형량은 어느 정도나 되는 지 궁금하다. 마이클의 경우 사정을 참작해서 25년이 10년으로 줄어들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그의 죄는 특수절도이려나? 처벌의 차이는 있겠지만, 요즘 사회적인 이슈가 되는 뉴스와 비교해볼 때 법률 체계에 대한 이치는 비슷한 것 같다.


그날 나는 평생 잊지 못할 중요한 교훈을 하나 배웠다. 법률체계가 규칙들의 커다란 집합이라고 생각했다가는 큰코다친다는 것이었다. 법률체계란 둘러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며 누구를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의논하는 사람들의 집합이다. 사람들이 결정을 내리고 나서 그 결정을 이행하는 데 필요한 규칙들을 끄집어낸다. 그들 반대편에 섰다가는 구제될 희망이 없다.

p.165


소년을 범죄의 길로 밀어 넣은 사람들이 과연 죄의식을 갖고 있을지 의문이 드는 가운데, 나도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인간임을 포기하는 인생이란 그 어떤 가치도 없다는 것. 때론 침묵이 더 많은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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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밤의 기적] 산타가 된 니콜라스 | 일반도서 2019-06-23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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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겨울밤의 기적

마르코 레이노 저/이현정 역
옥당 | 2009년 12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초록색, 붉은색, 푸른색, 보라색이 어우러지며 환상의 세상을 그려내는 북쪽의 겨울은 가슴 뭉클한 감동과 함께 삭막해진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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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산타클로스의 고향이 어디인지는 잘 몰랐다. 저 북쪽의 어디인가라고만 짐작할 뿐. 하지만 어린이들에게는 잘 알려진 마을일는지도 모르겠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산타클로스의 고향’인 핀란드의 로바니에미(Rovaniemi)는 전 세계 어린이들이 보낸 편지로 분주해진다고 하니 말이다. 핀란드 땅의 30%를 차지하는 북부 라플란드의 중심도시 로바니에미. 이곳 산타클로스 마을(Santa Claus Village)에 위치한 '귀의 산'이라는 뜻의 코르바툰투리 산에는 산타 할아버지가 산다. 핀란드의 작가 마르코 레이노가 쓴 [겨울밤의 기적 Joulutarina]은 이곳을 배경으로 주인공 니콜라스가 엮어가는 아름답고 애잔한 한편의 동화 같은 이야기다. 지금의 산타는 성 니콜라스(Saint Nicholas, 270~343) 대주교를 모델로 했다지만 어쩌면 진짜가 있었을지도 모를 일 아닌가. 그렇게 믿고 싶을 정도로 ‘코르바요키’라는 아주 작은 마을에서 니콜라스가 남긴 전설은 가슴을 찡하게 만든다.


“언젠간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코르바요키가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되는 날이 올 거예요! 세상 사람들 모두 코르바툰투리 산과 강 그리고 우리 마을 이 세 가지를 알게 될 거예요!”


스칸디나비아 북쪽 외딴섬에는 가난했지만 행복한 푸키 가족이 살고 있었다. 폭풍이 불던 밤 아픈 아기동생을 치료하러 뭍으로 떠난 부모님이 보트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혼자 남은 니콜라스를 데리고 간 코르바요키 마을 사람들은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않은 탓에 일 년씩 돌아가며 맡아 키우기로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을 떠나는 아픔을 견디기 힘든 니콜라스는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지만 타고난 착한 성품과 성실함으로 인해 마을사람들은 모두들 소년을 사랑한다. 여동생 아다가 인어공주가 되었다고 생각하며 크리스마스이브가 생일인 그녀의 선물을 준비하던 중 자신을 맡아준 사람들에게도 감사의 표시로 선물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는 니콜라스. 8년이 지나 마을의 형편이 곤궁해지자 나무 조각에 재능을 보이는 소년을 눈여겨본 목수 이사키가 데려가기로 한다. 어디에서 살건 니콜라스의 삶은 크리스마스를 중심으로 돌아가기에 마을에 아이들이 늘어갈수록 만들어야할 장난감은 더욱 많아지건만 몰래하는 선물은 해마다 계속된다. 바다에서 생명을 구한 사건을 계기로 평생친구가 된 에멜리만이 그의 마음을 이해하기는 해도 평생 자신의 삶을 일 년에 하루뿐인 크리스마스에 바친 니콜라스가 안타깝기 그지없다.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그날 저녁 운명이 꼬마 니콜라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이래, 니콜라스의 삶은 다시는 예전의 궤도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니콜라스에게 일어난 슬픈 운명은 어린이들에게 꿈과 행복을 안겨 주었다. 어두운 하늘에 불타오르는 오로라가 얼어붙은 바다 위까지 넘실거리는 그림자를 비추는 산타의 마을이라면 어떤 기적이 일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 초록색, 붉은색, 푸른색, 보라색이 어우러지며 환상의 세상을 그려내는 북쪽의 겨울은 가슴 뭉클한 감동과 함께 삭막해진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시즌에 맞춰 읽으면 더욱 생생하게 다가오겠지만 더운 여름날 마주한 크리스마스의 마법은 시원한 휴식 같은 시간을 선물했다. 찬바람 부는 겨울밤의 달콤한 핫초코처럼 마음에는 훈훈한 온기가 감돌고 새삼스럽게 주위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내 삶은 너무 이기적인 것은 아닌지. 베푸는 것과 돌려받는 것에 대해서도.


“사랑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항상 포함되어 있는 거야.”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베풀면, 우리가 베푼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돌려받게 된다는 걸, 우리가 알았으면 좋겠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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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난 친구들의 도쿄 표류기] 픽션보다 재미있는 논픽션 | 일반도서 2019-06-19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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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별난 친구들의 도쿄 표류기

다카노 히데유키 저/강병혁 역
미래인 | 2008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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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 만난 외국인들과의 에피소드. 외국인이건, 국제인이건, 같은 민족이건, 평범하건, 특이하건, 그런 구분을 짓기 이전에 누구나 ‘한 사람의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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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논픽션에는 별 흥미를 못 느끼는 나지만 이런 논픽션이라면 얼마든지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탐험 작가 다카노 히데유키(高野秀行)가 창안해낸 새로운 장르 ‘엔터테인먼트 논픽션’은 마치 소설을 읽는 것처럼 재미가 있는 논픽션을 뜻한다. [별난 친구들의 도쿄 표류기 異?ト?キョ?漂流記]는 [와세다 1.5평 청춘기 ワセダ三疊靑春記]와 [환상의 괴수 무벰베를 찾아라 幻の怪??ムベンベを追え]에 이어 세 번째로 읽은 책인데 역시나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한밤중에 이불 속에서 쿡쿡거리며 웃어본 게 얼마만인지. 누군가 옆에 있었다면 미친 줄 알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가지 않는 곳에 가서, 누구도 하지 않는 일을 하고, 그것을 재미나게 쓴다.”가 모토인 작가이기에 도쿄에서 만난 외국인들과의 에피소드를 쓴 이 작품에는 평범한 사람들은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외국인이건, 국제인이건, 같은 민족이건, 평범하건, 특이하건, 그런 구분을 짓기 이전에 누구나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관점에서 흥미롭게 풀어가는 저자의 이야기에 완전히 푹 빠져 읽은 책이다.


실비아에게 프랑스어를 배우게 된 저자는 그녀의 친구들과도 사귀게 된다. 일본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무도(舞蹈)에 심취해있는 그들을 보노라니 사람들이 인도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뭔가 깨달음이 있으리라 여기는 것처럼 무도의 서양인들은 일본을 인도화시킨 것이 아닐까 씁쓸해진다. (일본에서 인도인처럼 사는 프랑스인)


저자가 속한 탐험부원들은 콩고로 원정을 떠나기 전에 링갈라어를 배우려고 콩고인 제레미를 소개받는다. 결국 언어는 다른 사람에게 배웠지만 인연은 계속 이어져서 결혼식 축사를 부탁받은 저자는 대부분이 일본인인 하객들에게 그의 부모 이야기를 해준다. 가족이란 누구에게나 소중한 법이다. (콩고에서 사랑을 담아)


잦은 여행 때문에 소원해진 관계를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여자친구와 함께 스페인어를 배우기 시작한 저자.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진리에 따라 ‘연애의 자연 소멸’로 이어진 것이라 믿었으나 과연 그것만이 문제였을까? 관점의 차이는 외국인과의 사이에만 있는 게 아니다. (스페인어로 ‘연애의 자연 소멸’을 막을 수 있을까?)


콩고인 제레미의 형 동가라의 책을 번역해 졸업논문을 통과한 저자는 출간까지도 추진한다. 기쁜 마음으로 일본에 방문한 동가라씨를 안내하며 온화한 봄바다를 닮은 아저씨라고 생각했으나 조국의 역사에 대해 분노를 표출하는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고 놀란다. 그래도 그는 역시 천하태평 동가라 아저씨였다. (봄 바다 같은 동가라 아저씨)


그리스 여행 후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옆자리에 앉은 페루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저자는 오갈 데 없는 그를 집까지 데리고 온다. 일자리를 찾아온 우에키는 결국 취업비자를 받는데 실패하는데, 우에키 긴다로가 할아버지라고 신청한 사람이 백 명이 넘는다는 웃기면서도 안타까운 이유였다. (101번째 우에키 가문 페루인)


중국 다롄에서 만난 중국어 교사 루 선생의 아들이 일본 기업에 취직해 온다. 아버지를 닮은 체형에 록밴드처럼 차려입은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헤비메탈 도라에몽’이다. 사회주의가 싫어 일본으로 왔지만 캐나다로 이주를 고려하는 다후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 어쨌든 마음은 고국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다롄에서 온 도라에몽)


독재사회 이라크에서 살아보겠다는 생각으로 아라비아어를 배우려는 저자는 알리라는 풍채 좋은 청년과 교환 수업을 시작한다. 매제에게 얹혀사는 그를 위해 일자리를 알아보다 차별의 현장을 실감하게 되는 저자. 알리에게도 문제는 있었지만 자신의 나라에서 살 수 없는 망국민의 마음을 그 누가 알 수 있겠는가. (대부호 알리)


아프리카 수단에서 온 유학생 마후디는 맹인이지만 야구를 열광적으로 좋아한다. 시각장애자 외국인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저자는 밝고 똑똑한 그와 금방 친구가 되고, 야구로 의기투합한 그들은 도쿄돔으로 경기를 보러 간다. 인간은 언어와 상상력으로 ‘보는’ 것이 가능하다는걸 왜 깨닫지 못했을까. (도쿄돔의 뜨거운 밤)


저자 다카노 히데유키라는 사람은 엄청난 오지라퍼에 어마어마한 인맥을 지닌 인물이라고 생각되는데, 새로운 것을 찾아 과감하게 시도하고, 계획하면 바로 실행에 옮기는 추진력은 존경스러울 정도다. 무슨 일이든 미적거리고 생각만 하다 지레 포기해 버리는 나쁜 습성을 지닌 나로서는 어떻게 하면 그런 행동력을 갖출 수 있는지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공감 가는 이야기에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풍부해 웬만한 픽션보다 더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다. 외국인과 함께 있으면 도쿄가 Tokyo로 보인다는 표현이야말로 함축적인 주제가 아닐는지. 누구와 함께 보는가, 어떤 입장에 서있는가에 따라 보이는 풍경은 달라지고 받아들이는 자세도 변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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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이야마 만화경] 경이로운 판타지의 세계 | 일반도서 2019-06-15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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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요이야마 만화경

모리미 도미히코 저/권영주 역
문학수첩 | 2010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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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의 천재작가라 불리는 모리미 도미히코의 상상력이 빛나는 또 하나의 작품. 뜨거운 여름밤의 촌극은 어떤 서스펜스 스릴러보다 시원한 한 방을 날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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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온마츠리의 전야제라고 하는 요이야마의 하룻저녁 이야기를 그린 소설 [요이야마 만화경宵山万華鏡]은 교토의 천재작가라 불리는 모리미 도미히코森見登美彦의 상상력이 빛나는 또 하나의 작품이다. ‘천년고도(千年古都)’ 교토京都를 대표하는 가장 큰 규모의 마츠리(祭り)가 바로 ‘기온(祗園)마츠리’라고 한다. 수십만 명의 관광객이 모여든다는 이 7월 축제의 절정은 마을마다 공들여 만든 가마를 끌고 나와 거리를 행진하는 야마보코 순행山?巡行지만 그보다 더 화려하고 흥청거리는 기분을 맛볼 수 있는 것이 행진 당일에서 3일 전부터 진행되는 전야제라고 한다. 바로 전날은 요이야마(宵山)라 하고, 전전날은 요이요이야마(宵宵山), 전전전날은 요이요이요이야마(宵宵宵山)라 부른다니 듣기만 해도 신이 나는 명칭이다. 거리 곳곳에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줄줄이 등을 밝힌 노점상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흘러나오며, 특색을 살린 가마마다 제등식이 벌어지는 진풍경에 야릇한 흥분이 술렁이는 분위기라면 어디선가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듯하다. 그렇게 작가가 펼쳐 보이는 환상의 세계는 여름밤의 꿈처럼 훨훨 날아오른다.


같은 시간대를 배경으로 한 6개의 신비로운 이야기가 연작소설 형태로 전개된다. 포인트는 각 편마다 각자의 입장에서 겪는 요이야마의 요지경이 두 편씩 짝을 이룬다는 것이다. 축제를 구경하다 손을 놓쳐 서로 길을 헤매는 초등학생 자매, 요이야마에 놀러 온 남자와 그를 놀려주려고 거창한 촌극을 준비하는 학창시절 친구, 15년 전 요이야마 때 실종된 여자아이의 아빠와 아버지를 잃은 아들. 그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우연히 만나기도 하고, 스쳐지나가기도 하면서 야릇한 경험을 공유하는 만화경 같은 세상을 그리고 있다. 유쾌함이 흐르는 한편으로 애잔함이 깃든 이야기들이 서로 얽혀 들며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이다. 안 좋은 일이 벌어지지나 않을까 살짝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기묘한 사건과 안타까운 사연을 담고 있는 기온 거리를 빨간 유카타를 입은 여자아이들을 따라 달리다보면 어느 샌가 따스한 빛이 비추는 곳으로 나오게 된다.


모리미 도미히코의 팬이라면 한층 즐거울 듯한 요소도 몇 가지 찾을 수 있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에 등장했던 에피소드가 섞여 있다는 점도 반갑고, [다다미 넉장 반 세계일주]처럼 되풀이되는 날들이라는 설정도 흥미롭다. 잉어산(鯉山), 당랑산(?螂山, 사마귀), 초(超)금붕어, 마고타로 벌레(孫太??), 복고양이(招き猫), 시가라키 도자기 너구리(信?? たぬき), 유리 방울 속 금붕어, 커다란 붉은 잉어 풍선, 별별 신기한 물건들이 연이어 튀어나오는 마법의 세계로 끌려들어가 버라이어티 리얼 쇼를 구경하는 듯하다. <요이야마 금붕어>와 <요이야마 극장> 그리고 <요이야마 회랑>과 <요이야마 미궁>은 연달아 이어지지만 첫 번째 이야기 <요이야마 자매>의 짝인 <요이야마 만화경>은 맨 마지막에 안배되어있다는 점도 세심하게 짜인 각본일 것이다. 둥글게 이어진 세상 속에서 축제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하기 위해 쏘아 올리는 불꽃처럼 경이로운 판타지가 활짝 열리는 장이 바로 <요이야마 만화경>이기에.


“속이는 내가 나쁜 건지, 속는 네가 나쁜 건지......” 

“이런 일을 해서 무슨 의미가 있는데?”

“의미는 없어, 전혀. 하지만 머리의 천창이 열렸지?”

p.84


사실 가장 비슷하기로 따지자면 ‘하여튼 단순한 인간’인 <요이야마 금붕어>의 ‘바보’ 주인공에 가까운 나이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인물이라면 <요이야마 극장〉편의 무대장치 담당 고나가이를 꼽고 싶다. 그의 인내심과 노력이 가상하기도 하거니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대단히 제멋대로 구는 사람이지만, 그 결과 발생하는 고통은 감내한다. 

내 행위의 대가는 내가 치른다. 다만 불평만은 남보다 갑절로 하련다.” 

p.89


별 의미는 없는 일일지 몰라도 결국 열정이 만들어낸 최고의 촌극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심정이다. 짜증스런 일상에 부루퉁해 있던 누군가가 ‘인생은 의외로 즐거운 일이 이것저것 많은가 보다.’라는 생각을 갖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 일 아니겠는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한편의 소동극을 보고나니 나 역시 머리의 천창이 조금은 열린 기분이다. 뜨거운 여름밤의 열기와 천창으로 불어드는 한줄기 바람이 그대로 느껴지는 작품, 어떤 서스펜스 스릴러보다 시원한 한 방을 날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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