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블로그 | 랜덤블로그 쪽지
Memento mori
http://blog.yes24.com/swordsou1
태그 & 테마링 | 방명록
검혼
읽은 책에 대해 끄적거리는 연습하는 곳입니다
프로필 쪽지 친구추가
1월 스타지수 : 별2,460
댓글알리미 비글 : 사용안함
전체보기
잡설
취중잡설
나의 리뷰
Memento
m o r i
살림지식총서
영화
태그
고궁을 나오면서 자살사건 눈사람자살사건 와장창 류근 상처적체질 notsure 달리봄 수동형인간
2018 / 05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월별보기
새로운 글

Memento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홍승은] 홍승은의 글쓰기, 나의 글쓰기 | Memento 2020-04-28 09:35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12419611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eBook]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홍승은 저
어크로스 | 2020년 02월

        구매하기

홍승은의 글쓰기가 그렇다면, 나의 글쓰기는 무엇일까.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나에게 글쓰기란 무슨 의미인가? 의미보다는 의무감이다. 어쩌면 의미를 남기고자 하는 최후의 발버둥일지 모른다. 이 블로그가 그렇다. 어떤 거창한 의미를 가지고 시작하지 않았다. 죽을 것 같이 힘들었던 순간. 심리 치료 중, 좋아하는 일을 해보라는 말에 무작정 서점을 찾았다. 그저 책 냄새, 잉크 냄새가 좋았다. 문득 잊고 살았던 독서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샀고, 뭔가를 끄적였다. 아마 그게 시작이었다. 내 안에 있는 생각들을 걱정 없이 토해내기 위해서. YES 포인트는 덤이었다. 글쓰기는 그렇게 아무런 의미 없이, 그저 시원하게 토해내기 위해 시작했다.

문제는 어느 순간 목적이 뒤바뀌기 시작했다. 그저 가끔씩 울컥거리는 내 안의 감정들을 토해내고, 기록하는 정도로 그쳤어야 했다. 그걸로 끝이어야 했음에도 손가락을 목구멍으로 집어넣고 억지로 토해내고 있었다. 최소한 A4 1장 분량은 토해내자. 그래야만 꿈(으로 포장된 허황된 목표)을 이루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듯했다. 그리고 덤이었던 YES포인트는 그 실적을 계량화 해 주었다.

깊은 숙취나, 장염에 걸려본 사람들은 잘 안다. 토 하는데 한계가 있다. 위액마저 토하고 나면 고통만 있을 뿐 더 이상 아무것도 튀어나오지 않는다. 그저 헛구역질 해대며 고통 속에 몸부림 칠 따름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던 놀이가 의무가 되는 순간, 즐거웠던 독서도 고통으로 다가온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누군가는 말할지 모른다. 그 고통의 시간이 당신을 성장케 할 것이라고. 하지만 반복된 고통은 병의 신호일 따름이다. 억지로 토해내면 ?현대인의 불치병인- 역류성 식도염에 걸릴 뿐이다. 코난 오브라이언이 말했다. ”니체는 너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너를 강하게 만들 뿐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그가 더 강조했어야 할 말은 그 정도 고통이면 정말 죽을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작년, 그리고 지금. 그 역류성 식도염과 위염, 비염으로 너무도 힘들다. 실재 삶도, 글도 더 이상 토해낼게 없는 순간 몸은 무너져 내렸다. 재가 되었고, 병원비만 우수수 깨져나갔다. 그래도 삶은 계속되어야 했기에, 돈벌이를 멈출 순 없으니. 그리고 다시 토해내고자 움직여 본다. 별다른 생각은 없다. 그저 토해낼 뿐. 누군가를 위해서도 아니다. 나를 위해서. 나에게 글쓰기란 아직까지는 그 정도다. 그래도 계속 써야만 할까?

---------------------------------------------------

타인과 연결될 때, 삶과 문장은 단단해 진다. p.2

서사가 부재한 곳에 정보만 남아요. 나에 대해서는 내가 가장 잘 말할 수 있기 때문에 글을 써요. 하나의 정보로 존재가 납작해지지 않도록, 제가 자유롭기 위해서요. p.6

어떤 글은 존재를 입체적으로 증명하지만, 어떤 글은 존재를 납작하게 만든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도, 읽는 사람에게도 그렇다. 글쓰기에서 가치판단이 적용되는 기준이(p.10) 있다면 바로 이 부분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의 고정관념을 재생산하는 글, 고유한 개개인을 하나의 덩어리로 뭉개는 글을 위험하다. p.11

내 경험을 말했을 뿐인데, 세상이 딸꾹질했다. p.14

적어도 성폭력에서 때린 놈은 발 뻗고 못 잔다.’는 말은 거짓이다. 때린 놈은 편하게 자지만, 맞은 사람은 모든 화살을 자신에게 돌리며 밤을 지새운다. p.16

내 세계를 타인에게 보이는 일, 타인의 세계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일. 타인과 나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p.20)에 고개 돌리지 않는 일. 나에게 읽고 쓰는 과정은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구체적인 수단이었다. p.21

성장 과정에서 우리는 언제나 두려움이라는 난관을 마주하게 됩니다. 가시화에 대한 두려움, 가혹한 시선과 비판에 대한 두려움, 고통이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 말입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죽음을 제외한 이 모든 두려움을 이미 침묵하며 지나왔습니다. -오드리 로드, <스스터 아웃사이더> p.37

글이 짓는게 아니라 살아내며 쓰는행위라면 시야가 좁거나 무례한 사람에게 권위를 줄 경우, 글뿐 아니라 삶이 막히는 위험에 처할 수 있다. p.58

질문에 대답하는 더 나은 방식 찾기. 질문을 다시 질문하는 방식. 그리하여 어떤 존재를 늘 질문으로 만드는 세상을 향해 우리가 질문하게 된다. -사라 아메드 p.71

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지만, 못된 여자는 어디든 간다. p.74

우리는 모두 이미지와 이야기의 세계에 살고 있고, 대부분은 이런저런 이야기에 상처받으며 살아간다. 운이 좋으면, 우리를 받아주고 축복해주는 다른 이야기를 찾거나 더 나은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리베카 솔닛 p.74

글쓰기는 단지 지난 시간을 기록하는 활동이 아니라 경험을 기반으로 끈질긴 사유와 해석을 이어가는 과정이다. 기존의 관념을 비틀어 존재를 자유하는 언어를 구사하고, 경험을 다각도로 해석할 때, 내가 쓴 글은 단지 개인적인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 답이라고 여겨졌던 상식에 글쓰기를 통해 질문을 더니면, 그 질문은 파장을 일으켜 누군가의 실제 삶에 자유를 선물할 수 있다. p.78

몸문화연구소의 임지연 교수는 죄책감이 부분적인 행위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는 감정이라면, 수치심은 전면적으로 자아를(p.88) 문제시하는 감정이라고 한다. p.89

들리지 않는 것, 말하지 않는 것,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많은 말을 한다. 문장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결정적인 한마디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어떤 단어를 입에 담지 않는 침묵에서 나온다. -찰스 백스터, <서브텍스트 읽기> p.92

고통을 스스로 언어화하지 못할 때 속이 썩는다는 말은 정확하다. 고통의 원인인 모든 부정의가 오로지 나라는 존재로 수렴되기 때문이다. p.97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꼭 가족이거나 연인일 필요는 없다는 걸 알면서도 사랑하는 만큼 이해 받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몰래 글을 쓰는 모습은 쓸쓸하다. 그 관계가 다른생각 자체를 막아버리진 않을(p.113)지 걱정되기도 한다. 각자의 고유한 자국을 존중할 수 있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세상에 하나뿐인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꾼이 될 수 있을 텐데. p.114

아마도 나는 네가 될 수 없겠지만, 그러나 시도해도 실패할 그 일을 계속 시도하지 않는다면,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나. -문학평론가 신형철 p.115

내가 쓰는 글을 통해 누구에게 힘이 되고 싶은지, 어떤 질문을 던지고 싶은지 스스로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면 따라오는 비난에 대해서도 조금은 의연해질 수 있었다. p.121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당신에게 큰 영향을 주지 못해요. 나를 망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나 자신이에요. 다른 말로, 나를 망칠 권리는 오직 나에게만 있어요. p.127

글이 삶을 관통해서 나올 수밖에 없는 거라면, 소수자의 위치에서 나오는 글은 언제나 보편성을 획득하는 데 실패할 테고 영원히 사적이라는 딱지를 뗄 수 없을지 모른다. p.133

내면적인 것은 여전히, 그리고 항상 사회적이다. 왜냐하면 하나의 순수한 자아에 타인(p.135), , 역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자 자신의 인류학자이다. -아니 에르노 p.136

대화와 글쓰기는 나와 타자의 소통이라는 점에서 닮았다. 다른 점이라면 대화에서는 즉각적으로 아록 물어줄 사람이 있지만, 글쓰기는 물어줄 사람이 없으니 내가 나에게 질문하며 써야 한다는 점이다. 읽는 사람이 라고 물을 만한 부분을 내가 먼저 보여주려는 노(p.148)력이 필요하다. p.149

나는 글의 고유성과 힘은 문장력 이전에 서사와 질문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내가 통과해 온 시간을 말할 수 있는 건 나 밖에 없기에 내 이야기를 쓸 때 글을 가장 고유해진다. p.149

자신으로 인해 슬픔을 가져야 했던 사람이 있었음을 잊지 않는 이들에게 우리는 기대를 건다. 자신의 경험을 배반하지 않는 그들 우리로부터 은 시작된다. -조한혜정, <글 읽기 삶 읽기> p.164

사라 아메드는 정의를 위해 싸운다고 해서 우리 자신이 정의로우리라는 보장은 없다며 망설여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촘촘하게 차별로 연결된 고통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조금 더 촘촘하게 사유하고 망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p.181

누군가를 풍경의 배경으로 여기는 것만큼 고유성을 지워버리는 간편한 방식은 없다. 글에 생기가 줄고 관점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면 나는 먼저 내 애정을 의심한다. 눈앞의 존재를 고정된 물체로 인식하고 있지 않은지 묻는다. p.188

글쓰기는 직사광선이 내리쬐는 맑은 길로 가로지르는 과정이 아니라 뿌옇게 흐린 길을 더듬으며 내 위치와 감정의 실체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관성적으로 쉬운(p.272) 길로 가려고 할 때마다 잠시 제동을 걸어 일부러 길 잃기를 선택하는 게 쓰기의 과정이 아닐까. 내 경험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거나 느낄 수 없는지 이리저리 각도를 바꾸어 살피고, 첫 판단을 버리고 낯선 시선을 탐색해가면서. p.273

자기 서사를 쓰는 일은 자서전처럼 모든 일대기를 쓰는 일이라기보다, 내 기억과 일상을 낯설게 보고 기록하는 일이다. 권태에 눌리지 않고 감각을 열어 지금을 살아갈 때, 과거와 지금의 경험에서 글감은 자연스레 떠오르는 게 아닐까. p.301

여유 없는 사람들은 천박할 수밖에 없고, 나는 그 점을 말과 글로 옹호한다. 상대가 천박해(p.319)서 불편하다면 내 소갈머리를 살펴야 한다. 천박을 옹호하려는 내 말과 글이 고상한 단어들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내 삶과 언어의 치명적인 한계다. 내가 그 사람들보다 덜 천박하다면 내 삶의 여유에서 비롯된 배운 년의 체면과 껍데기 때문이다.“ p.320-최현숙

세상의 모든 글은 콜라보이자 타인의 흔적이다. p.324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어떤 양형 이유-박주영] 죽이느냐 살리느냐 역시 쉽지 않다. | Memento 2020-04-26 13:26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12408529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eBook]어떤 양형 이유

박주영 저
김영사 | 2019년 07월

        구매하기

세상에 쉬운 판결이 어디 있으랴. 쉬운 선택이 있기는 한 걸까. 죽이느냐 살리느냐 역시 쉽지 않은 문제다.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업무를 하다보면 난감한 상황이 많다. 사정은 딱하나 법과 규정은 고정적이고, 해석이나 재량의 여지가 없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담당에게 아무리 빌고 애원해도 다른 방법이 없다. 법이나 규정이 잘못된 경우는 말해봐야 입만 아프다. 결국 담당자인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인데, 그것도 쉽지 않다.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처리해야 정의다. 형평성의 문제다. 나는 걸리고 너는 안 걸린다면, 그건 법치주의가 아니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쉽지 않다. 단순한 규정에도 예외는 항상 발생하기 마련이다. 사람의 삶이 똑같지 않듯이 각자의 사정 역시 다르다.

종종 강력범죄로 보이는데 판결은 터무니없이 약하게 나온 기사를 접할 때, 사람들은 분노한다. 법이 잘못되었다고도 하고, 판사가 문제라고도 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전관예우는 이러한 사법불신의 대표적 사례다. 실재로 그렇기도 하겠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아니라고 믿는다. “‘죽이느냐 살리느냐 To kill, or Not to kill’의 처지에 선 사람에게도 선택은 괴로운 문제(p.279)”라고 고백하는 판사들이 많음을 믿기 때문이다. 현직 비주류(?) 판사가 쓴 <어떤 양형이유>는 그래서 읽어봄직하다. 왜 그런 터무니없는 판결이 나올 수밖에 없는지를 고민케 한다.

사실 기사는 개개의 사정을 전달하지 않는다. 자극적인 내용과 정보만 전달할 뿐이다. 이를 보완할 방법이 없을까.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판결문이 있다면 2016헌나1”가 아닐까 싶다. 이 판결문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인용한 판결문인데, 생중계를 통해 전 국민에 공개되었다. 정치적 문제를 떠나서 판사들의 중노동을 통해 만들어진 판결문들이 이와 같이 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최대한 쉽게,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다면, 법에 대한 불신도 어느 정도 해소되리라 본다. 현대사회에서 법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렇다면 결국 법과 친해져야만 하는데 판결문에 대한 접근이 쉬워진다면 그만큼 어떤 양형이유에 대한 고민이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여기에 우리의 인식변화도 필요하다. 정의와 선함이 승리한다고 믿는다. 문제는 각자의 정의와 선함이 다르다. 저마다의 정의와 선함이 난립하는 상황에서 나에게 맞지 않는 판결은 부정의고, 악함이다. 그래서 우리는 법에 호소하고, 법정을 찾고, 공명정대한 판결을 요구한다. 하지만, “법정은 선악의 공론장이 아니다.(p.50)” “같은 것을 같게, 다른 것을 다르게 취급한다는 정의론은 사실상 알맹이 없는 이론이다. 세상에 같은 사례는 없다. 서로 유사한 것을 같은 범주로 묶어 같다고 선(p.370)언할 수밖에 없는데, 일반화하고 범주화하는 과정에서 벌써 정의는 훼손되고 만다. 다른 것을 같은 것으로 취급해야 하기 때문이다.(p.370)” “불법과 적법의 영역에는 선악이 개입될 수 없다. 선의에서 비롯된 불법도 있고 악의에 차 있지만 적법한 행위도 있다.” “선악은 양형에 다소 참고 될 뿐이다.(p.50)” 우리가 믿는 정의와 선함은 어느 곳에도 없다.

결국 방법이 없는지도 모른다. 좋은 법을 만들고, 뛰어난 판사를 고용하고, 좋은 제도를 만들더라도 모든 정의를 구현하고 선함을 지키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건가. 그럴 수는 없다. “국민은, 불복할 수 없는 상급심(p.13)”이다. 국민의 명령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더불어 국민인 우리 역시 깨달아야 한다. “법정이라는 무대에 오른 드라마에는 해피엔딩이 없(p.27)”, “법정은 모든 아름다운 구축물을 해체하는 곳(p.28)”이라는 것을. 법원에 없는 것을 요구한다면 그 역시 잘못된 명령이 될 테니 말이다.

---------------------------------------------------

국민은, 불복할 수 없는 상급심이다. p.13

법정이라는 무대에 오른 드라마에는 해피엔딩이 없다.(p.27) ... 법정은 모든 아름다운 구축물을 해체하는 곳이다. 사랑은 맨 먼저 해체되고, 결국 가정도 해체된다. 형사사건에서는 한 인간의 자유를 지지해준 법적 근거마저 해체시킨다. 재산을 나누고, 아이도 나눈다. 사랑의 잔해를 뒤적이고 수습하다 보면 법정이 도축장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법관은 굳어버린 사랑을 발라낸 다음 가정을 이분도체, 사분도체로 잘라내고 무두질한다. 법은 날카롭게 벼린 칼이고, 법관은 발골사다. p.28

폭력이 난무하는 곳보다 더한 공적 영역은 없다. p.36

사실관계가 증거, 특히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주로 따지는 영역이라면, 해석은 문자의 의미와 가치관, 감수성의 영역이다. 해석은 옷감과 비슷하다. 작은 옷에 억지로 몸을 욱여넣으면 단추가 터져버리지만, 옷감에(p.47) 신축성이 있다면 가능하다. 그러나 아무리 신축성이 있어도 담을 수 있는 용적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고무자루를 옷이라 할 수 없다. 이는 법의 외피를 둘렀을 뿐 규범이라고 부를 수 없다. 법과 같은 규범은 정해진 사이즈가 있어야 기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라지, 엑스라지, 44, 66이 법이라면 옷감의 신축성이 바로 해석의 영역이다. 사이즈를 해석의 최대치로, 신축성을 시대정신으로 비유할 수 있다. 그 시대상황이나 사회적 관습, 동시대인의 보편적 인식, 당대의 사회구조 등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정확한 법률해석을 할 수 없다. 시대정신이 법의 엄격한 해석을 요구하느냐, 아니면 유연한 해석을 요구하느냐에 따라 법의 해석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사실관계 인정이나 법률의 규범적 해석은 법원치과 선례 등이 누적된 경우가 많으므로, 법관들마다 중구난방의 결론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p.48

불법과 적법의 영역에는 선악이 개입될 수 없다. 선의에서 비롯된 불법도 있고 악의에 차 있지만 적법한 행위도 있다. 법정은 선악의 공론장이 아니다. 선악은 양형에 다소 참고될 뿐이다. p.50

법정증언은 진실된 피해자가 다시 마주치는 폭력적 상황이다. 그럼에도 진실된 피해자라면 견뎌야 한다. 힘들고 불쾌해서 증언을 못하겠다거나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갈 경우 유죄 입증은 점점 더 힘들어지고 변호인의 공격은 성공을 거둔다. ... 진실은 어눌하고 오락가락하며, 기억은 희미하고 게으르지만 대부분 시험대를 통과한다. p.53

혐오는 대부분 관념에 정주한다. 혐오의 대상을 관찰하고 그들의 삶 속으로 조금만 들어가보면 혐오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편견에 근거한 것인지 금방 깨닫게 된다. p.100

강만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다. 산재사건에서는 형벌도 낮은 곳으로만 흐른다. 기업이 크면 클수록 그 기업의 최고책임자에게까지 산재사고의 책임을 묻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p.133

편견은 진영을 만들고, 진영 속에서 강화되어 차별과 혐오를 낳는다. 집단 혐오는 사적 혐오를 정당화하고, 그 집단을 혐오하는 다른 집단을 만들어낸다. A처럼 가장 약한 개인과 집단부터 혐오의 대상이 되고 결국은 차례차례 조리돌림당한다. p.147

그러나 법의 영여에서 동정이나 연민은 위험하다. 인권은 시혜가 아니기 때문이다. 소수자에 대한 법적 보호를 시혜라고 보면, 그 시선은 언제 철회해도 무방한 것이 된다. p.153

법의 주된 기능은 선긋기에 있다. 적법과 불법을 경계로 국가권력으로부터의 보호 여부가 결정된다. p.154

햇볕은 감미롭고, 비는 상쾌하고, 바람은 힘을 돋우며, 눈은 마음을 설레게 한다. 세상에 나쁜 날씨란 없다. 서로 다른 종류의 날씨가 있을 뿐이다.”(존 러스킨) 세상에 나쁜 아이도 없다. 서로 다른 처지의 좋은 아이만 있을 뿐이다. p.218

결혼을 하고 시간이 흘러 깨달은 건, 결혼은 사랑해서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사랑에 대한 예지로 감행된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오래 연애를 했더라도 그 사람을 완전히 이해하고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은 천천히 커지고, 작게 시작해(p.229) 크게 여무는 것이다. 사랑이 식는다는 말도 이상한 말이다. 확 타올랐다가 식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욕정이다. 결국 결혼은 저 사람이라면 계속 새롭게 사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지에서 결정된다. p.230

기억은 법적 사실이라는 존재의 집이다. 기억이 없으면 사실도 없다. 기억하지 못하고, 기록되어 있지 않다면, 적어도 재판에서는 그날 그 일은 벌어지지 않은 것이다. 나의 실감만으로 내 존재를 입증하지는 못한다. 누군가 나를 기억하고 언급하지 않으면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적 존재는 물질이 아니라 기억과 이야기로 이뤄진다. 문제는 기억이 믿을 게 못 된다는 점이다. p.240

정을병은 단편소설 <육조지>(1974)에서 형사는 때려 조지고, 검사는 불러 조지고, 판사는 미뤄 조지고, 간수는 세어 조지고, 죄수는 먹어 조지고, 집구석은 팔아 조진다.”고 썼다. p.260

사느냐 죽느냐 To be, or Not to be’의 처지에 선 사람도 괴롭지만, ‘죽이느냐 살리느냐 To kill, or Not to kill’의 처지에 선 사람에게도 선택은 괴로운 문제다. p.279

소송은 타협의 지점 없는 일도양단의 장이다. ... 재판은 양자역학의 세계가 아니라 고전물리학의 세계다. p.279

가치는 상대적이고, 중요하지 않은 하찮은 가치란 없음에도 소송은 추어이나 생명 같은 계량할 수 없는 것을 형량해야 한다. p.286

모든 사안을 법대로 공평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법원칙이 법적 안정성의 문제라면, 유사해 보이지만 다를 수밖에 없는 각 사건에서 개별 사안에 따라 거기에 맞는 최선의 결론을 도출해야 하는 것은 구체적 타당성의 문제다. 어떤 법관은 법적 안정성이 정의의 영역이라면 구체적 타당성은 사랑의 영역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p.287

칼 포퍼의 지적처럼, 반증 가능성 없는 과학은 사이비이고 닫힌 사회가 곧 전체주의이듯, 화석화된 판사는 그 자체로 해악이다. p.289

이해나 공감이 경험에서 비롯된다면, 떨림과 감응은정성에 달린 문제다. 이해하고 공감하되 불 좋은 연탄마냥 뜨겁게 반응하지 않는다면, 쇳조각은 고사하고 달고나한 국자 녹여낼 수 없다. p.291

판사는 법이라는 바람을 맞으며 정의가 있는 곳을 가리키는 풍향계일 뿐이다. 풍향계가 갈팡질팡한다면 바람이 문제인가, 풍향계가 문제인가? 고장 난 풍향계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혐의는 오히려 정의에 있어 보인다. 정의는 동서남북처럼 고정된 방위가 없다. p.356

같은 것을 같게, 다른 것을 다르게 취급한다는 정의론은 사실상 알맹이 없는 이론이다. 세상에 같은 사례는 없다. 서로 유사한 것을 같은 범주로 묶어 같다고 선(p.370)언할 수밖에 없는데, 일반화하고 범주화하는 과정에서 벌써 정의는 훼손되고 만다. 다른 것을 같은 것으로 취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상황은 얼마든지 변주도고 무한히 확장된다. 이런 논리적 모순과 간극을 메우기 위해 규범과 해석은 열려 있어야 한다. 반증 가능성 없는 명제가 참이 아니듯 닫힌 규범과 해석은 위험하고, 정의에 반할 가능성이 높다. 법정형을 무겁게 하고 판사의 재량을 줄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p.370

법은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를 바로 찾게 하는 것이 국민의 건전한 법감정 내지 법의식인 것이요, 일단 제정된 법에 가치와 생명을 불어넣는 것도 법감정과 법의식의 힘이다.” 최종고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p.374

힘없는 정의는 무력하고,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다. 정의와 힘은 동시에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정의가 강해지거나 강한 것이 정의가 되어야 한다. 정의는 시비의 대상이 되기 쉬우나, 힘은 시비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정의는 강해지기 힘들다. 결국 강한 것이 정의가 되었다.” 파스칼 p.374

법감정은 단순히 격앙된 감정상태가 아니라, 힘이 약한 정의일 가능성이 높다. 들끓는 법감정은 곧 강해(p.374)질 정의 아닐까? p.375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1        
[긴즈버거의 말-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헬레나 헌트] 한국의 긴즈버그를 기대하며 | Memento 2020-04-19 22:04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12378473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eBook]긴즈버그의 말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헬레나 헌트 저/오현아 역
마음산책 | 2020년 02월

        구매하기

긴즈버그와 같은 법관이 우리 사회에 없는 게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거라 믿고 싶다.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겁이 많다. 걱정도 많다. 부정적이다. 항상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다. 걱정하고 고민하는 바를 얘기하면 보통은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말한다. 실재로도 그렇고. 그래서 나는 침묵을 택한다. 괜한 이야기는 피차가 서로 피곤한 일이다. 그것도 좋은 이야기가 아니라면 말이다. 누군가가 잘되고 있고 좋은 일이라고 말하는데 딴지를 걸고 우려를 표하는 일은 유쾌한 일이 아니다. 굳이 얘기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말하지 않아도 이미 다들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반대의견을 말하기 어렵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더라도 나처럼 스스로 자기검열을 하곤 한다. 게다가 소수자이자, 소수자의 권익을 위해 반대하고 싸우는 일은 절대로 쉽지 않다.

그렇기에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의 언행은 소중하다 올바름을 위해 어떻게 생각하고 말해야하는지를 그의 삶을 통해 배울 수 있다. <긴즈버그의 말>은 그의 삶에 대한 엑기스다. 법과 시민의 자유, 그리고 나의 인생으로 나눠진 챕터 속에서 그의 삶을 짐작해 본다. “유대인이고 여자인 데다 엄마였(p.65~66)”고 사회적 지위까지 이뤄야 했을 그의 삶은 절대로 평탄치 않았을 테다. 그녀가 앞장서 차별을 철폐해 온 지금도 워킹맘을 슈퍼걸이라고 부르는데 하물며 그 차별과 온전히 싸워온 그의 삶은 평탄치 않았을 테다. 그리고 온전히 그를 지지해준 배우자를 보면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 결혼을 하며 가정을 꾸리는 일에 책임감을 가져본다. 위대한 인물에겐 위대한 지지가 있는 법이다.

특별히 인상 깊은 점은 상대방을 인정하는 태도다. 그와 의견이 대립하는 스캘리아 대법관과의 오랜 우정은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한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데 어떻게 친구로 지낼 수 있냐는 물음에 스캘리아 대법관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생각을 공격하지 사람을 공격하지 않아요. 선한 사람들이 나쁜 생각을 갖고 있기도 하지요. 그 둘을 구분(p.181)” 해야 한다고 말이다. 두 사람이 친구일 수 있는 이유는 스캘리아 대법관의 올바른 생각 덕분이겠지만,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듯, 긴즈버그의 생각도 짐작케 한다.

최근에 이런저런 법률 서적을 뒤적여 본다. 촛불혁명, 사법농단 이후 부쩍 관심이 높아졌다. 많은 법조계 인사들의 고민들을 책을 통해 접하기는 했지만, 정작 우리는 그들의 판결문을 볼 기회가 드물다. 판사가 중노동을 들여 쓴 판결문임을 감안할 때, 우리의 삶과 이다지도 괴리되어 있다면 뭔가 문제가 있지 않을까. “판사는 그날의 날씨가 아닌 시대의 기후를 고려해야 한다.(p.41)”는 말은 그래서 의미 있어 보인다. 책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는 것도 분명 좋은 방법이지만, 본연의 임무인 판결문으로써 세상에 피력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듯하다.

전부는 불가능하겠지만 우선 가능한 한 쉬운 언어, 일상의 언어로 써야 할 테다. 그리고 판결문에 접근하는 경로를 다양하게 해야 한다. 법원 홈페이지에 주요 판결문을 게시하지만 사실 일반 대중이 얼마나 그 공지를 확인하겠는가. 그게 어렵다면 정기적으로 판결문을 소개하는 기사나 컨텐츠를 만드는 것도 좋겠다. 이미 하고 있다면 홍보라도 잘해야겠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올바로 판결하는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사법 불신이 높다.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의 방향을 가속(p.125)”할 수 있어야 하지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긴즈버그와 같은 법관이 우리 사회에 없는 게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거라 믿고 싶다. 좀 더 판결문제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 사회에도 긴즈버그와 같은 법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이것에 대해 서로 토론하고 논쟁할 수 있는 그런 사회로 발전하기를 기대해본다.

--------------------------------------------------

법은 모든 사람에게 그와 같은 조건(성별)을 부여해서는 안 된다. 법은 긴즈버그가 종종 말하듯이 자유롭게 너와 내가 되도록허용해야 한다. p.15

페미니즘에 대한 가장 간단하면서도 본질을 포착하는 설명은, 말로 토머스가 노래한 <자유롭게 너와 내가 되자>가 아닐까 싶다. ... 페미니즘 개념은 우리 모두 어떤 재능이 있건 각자의 재능을 자유롭게 개발할 수 있어야 하고 인위적인 장애물-단연코 하늘이 내린 것이 아닌 인간이 만든 장애물-에 가로막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p.20

법은 사회를 통치하기 위해 존재한다. 법은 사회를 위해 존재한다. 따라서 사회의 경험이 법에 반영되는 것(p.27)은 당연하다. 법이 사람들의 생활 방식에 관계없이 무미건조하게 논리적이라면, 그것은 성공적인 제도로 자리 잡지 못할 것이다. p.28

판사는 그날의 날씨가 아닌 시대의 기후를 고려해야 한다. p.41

우리의 법체계가 판사들의 다양한 배경과 경험으로 한층 풍요로워진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p.58

1959년에 컬럼비아대 로스쿨을 졸업했을 때 뉴욕의 로펌 중에서 나를 고용하려고 한 곳은 단 한군데도 없었다. ... 나는 세 가지 이유로 탈락이었다. 유대인이(p.65)고 여자인 데다 엄마였다. 첫 번째 이유는 한쪽 눈썹을 치켜세우게 했고, 두 번째 이유는 양쪽 눈썹을 다 치켜세우게 했으며, 세 번째 이유는 볼 것도 없이 나를 탈락시켰다. p.66

아메리칸드림을 ...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 지하철에서 보니 놀랍도록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의 신조는 에 플루리부스 우눔 E Pluribus Unum” 여럿으로 이루어진 하나이고, 그 핵심은 서로의 다름을 용인하고 더 나아가 인정하면서 끝까지 힘을 합치는 것이다. p.78

보다 정의로운 세상을 향한 기나긴 투쟁 속에서 우리의 기억은 가장 강력한 무기 가운데 하나다. p.82

거짓과 싸우는 길은 진실을 내세우는 것이라고 어느 위대한 법률가가 말했다. 그래서 누군가 거짓을 말할 때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이 아니에요. 사실은-그것이 무엇이든 간에-바로 이렇습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런 까닭에 최선의 견제는 거짓을 퍼뜨리는 사람들에 맞서고 그들을 비난하는 것이다. p.83

차별을 겪어본 사람은 타인이 겪는 차별에 공감하기 쉽다. 개인적 능력이나 사회에 대한 기여도와는 전혀 관계없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p.88

1960년대 후반에 되살아나 거세게 타오른 여성주의 운동은 여성의 바뀐 삶의 양식에 주목했다. 이렇게 사회 분위기가 바뀐 데에는 특히 두 가지 요소가 중요하게 작용했다. , 가내에서 재배하거나 생산하는 음식과 상품이 사실상 없어졌고 효과적인 피임법이 등장한 것이다. p.107남성과 여성은 대체 가능하지 않다. ... 어느 한쪽 성별의 부재는 경제적 혹은 인종적 집단이 배제될 때보다 배심원단의 공동체 대표성을 훨씬 더 떨어뜨릴 수 있다. p.117

1970년대 10년 동안 젠더 구분을 허무는 소송이 잇달아 제기되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나 때문이 아니다. 사회가 변했기 때문이다. 사회는 움직였고, 법원은 반응하는 기관이었다. 법원은 길을 이끌지는 못하지만 변화의 방향을 가속할 수는 있다. p.125

여성의 권리라는 표현은 다소 문제가 있다. 인간의 권리다. 법의 평등한 보호를 받을 모든 인간의 권리다. p.126

삶의 다른 시기에 서로를 보완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p.179

나와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게 그렇게 많은데 어떻게 친구로 지낼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스캘리아 대법관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생각을 공격하지 사람을 공격하지 않아요. 선한 사람들이 나쁜 생각을 갖고 있기도 하지요. 그 둘을 구분할 수 없다면 다른 직업을 찾아(p.181)봐야 합니다. 판사가 되려고 하면 안 돼요. 적어도 합의체 판사는 안 됩니다.” p.181

살아 있는 한 배운다. p.185

(어론과 대중의) 왜곡에 대처하는 방법은 청중이 누구든(p.185) 분노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교사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 진실을 보여줄 기회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왜곡임이 드러났을 때 그것에 항구적이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 사람들이 청중 속에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p.186

삶의 길을 갈 때 발자국을 남겨라. 나를 위해 길을 닦은 사람들이 있었듯이 내 뒤를 따라올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어야 한다. 후세의 건강과 안녕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사회가 나아갈 수 있도록 자신에게 주어진 몫을 다하라. p.191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2        
[펭아트 컬러링북-한국교육방송공사] 그 사람을 위한 최고의 힐링 선물 | Memento 2020-04-19 21:05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12378126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펭아트 #컬러링북

한결 저
한국교육방송공사 | 2020년 04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그 사람을 위한 최고의 힐링 선물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개인적으로 펭수를 즐겨보지는 않습니다. 간혹 그 분과 함께 보기는 했지만, 쉬이 질리는 그 분 성격에 영상을 더이상 찾아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펭수 아트북은 매우 좋아하더군요. 12색 색연필로는 펭수를 살리기 어렵다며 36색으로 새로 주문하기로 했습니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졌지만 너무나 만족해 하는 그 분을 보니 잘 산 것 같네요. 그 분의 힐링을 위해서 그정도는 감수해야겠지요!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2        
[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유현준]당신을 만든 공간은 어떠한가요 | Memento 2020-04-19 20:58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12378099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eBook]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

유현준 저
와이즈베리 | 2019년 02월

        구매하기

유현준의 별자리가 이렇듯, 나와 당신의 별자리는 희미한 별빛은 무엇인가요. 나를 만들고 나를 채워준 공간들을 고민해봐요.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공간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 모래 언덕이었다. 부모님께서 작은 공장을 운영하실 때다. 용도는 기억나지 않지만, 집근처 공터에 모래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아마도 건물을 짓기 위한 용도였겠지만, 나에게는 좋은 놀이터가 되어 주었다. 모래 언덕을 기어올라 혼자서 장난을 쳤던 기억이 난다. 공간에 대한 다음 기억은 두려움이다. 도시를 떠나 아버님의 고향집으로 이사를 했다. 당시 집은 개량되기 전의 기와집이었다. 도시의 이기를 벗어난 집이었다. TV는 전파조차 잡히지 않았고, 난방은 아궁이를 이용하는 시골집이었다. 당연히 화장실은 푸세식이었고, 집 주변 대나무 숲은 공포였다. 중간에 주택 개량을 통해 보일러도 놓고, 싱크대도 설치했다. 비록 추웠지만 욕실도 만들었고, 온수도 나왔다. 화장실은 그대로였는데, 종종 내가 기르던 강아지들이 빠져 죽어서 화장실만은 더더욱 무서워졌다. 간혹 도시에 사는 친척집을 가면 부러움을 감출길이 없었다. 시골의 탁 트인 공간이, 문명의 이기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이 너무도 싫었다.

그렇게 몇 번의 이사 끝에 도시에 살게 되었다. 독립하고 가난한 형편에 고시원, 반지하, 열악한 공간들을 전전하며 도시에서의 삶을 살다보니 예전 기억이 난다. 어느 집으로 이사를 가더라도 두 번째 공간의 두려움보단 못했다. 그때는 온통 풀색으로 뒤덮인 동네가 숨 막히게 느껴졌건만, 지금은 느낌이 다르다. 사실 항상 숨 막히지는 않았다. 아궁이 잔불에 고구마도 구워먹고, 밀도 구워 먹었던 기억. 내가 배설한 X에서 수박이 자라나서 애지중지 키웠던 기억. 가족여행 한 번 제대로 못해봤지만, 온 가족이 동네 산 정상에 올랐던 기억. 도랑에서 미꾸라지를 잡아서 추어탕을 해먹었던 기억... 동년배들과는 조금은 다른 경험과 기억들은 나만의 별자리가 되어 주었다. 그리고 그 기억과 경험들이 나를 있게 만들었다.

유현준 교수의 신작 <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는 개인적 공간에 대한 이야기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다. 희미한 별빛이다. 이 책은 희미한 별빛들을 연결해서유현준 만의 별자리를 만들려는 시도(p.440)”. 이 별자리를 따라가다 보니 기존의 저작들에서 유현준 교수가 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느낌이 온다. 사람이 도시를 만들지만, 도시도 사람을 만든다는 것. 우리 주변의 삶의 터전을 조금씩 바꿔 나가야 한다는 것. 한 번에 도시를 바꿀 수 없지만, 조금씩 나은 공간을 만들어 나갈 때 나은 내가 만들어진다는 이야기들 말이다. 공간에 대한 인식과 고민이 지금의 유현준을 만들었듯, 그렇게 유현준의 별자리를 바라보며 나의 별자리를 생각해 봤다. 예전에도 그랬듯이 현재의 공간을, 지금이란 시간을 너무도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녹색이 숨 막혔지만 지금은 그립듯이, 이 순간, 현재의 공간이 나를 만들고, 나의 희미한 별빛이 되어 줄 테다.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믿는다. 지금 이 소중한 내 공간, 이 순간들을 바라보며 그렇게 위안을 얻어 본다. 늘 좋은 선택만을 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차선을 선택하고 살고 있다고, 그리고 내 풍경, 내 별자리는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겠다고. 마치 SNS에 올라오는 포스트 같지만, 내용은 많은 것을 고민케 한다. 당신의 별자리는, 희미한 별빛은 어떠신지?

---------------------------------------------------

노스텔지어는 모두에게 각자의 집을, 고향을, 도시를 만든다. p.108

내가 즐겨 가던 가게가 사라지는 것은 일종의 수몰지역 난민이 되는 기분이다. 가게가 사라지면 나의 추억과 그 시절 그 시간도 함께 사라지기 때문이다. 홍대나 가로수길의 임대료가 비싸서 원주민 가게가 떠나는 것이 안 좋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p.114

버려진 공간은 소중하다. 이 공간들은 모두 여러분이 써주기를 기다리는 공간이다. 버려진 공간이 여러분의 상상력과 만나면 대단한 장소가 된다. p.125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 가장 많은 삶을 빚는 공간이다. 그곳이 좋아야 그 사람의 삶의 질도 좋아진다. p.132

김정운 교수의 정의에 따르면 리스펙트는 당신 이야기를 들어보고 내 생각이 틀렸다고 인정하고 나의 생각을 바꿀 수도 있는 상태라고 한다. p.161

디자인은 장식이 아니라 필연적인 이유에서 나올 때 아름답다. 몽당연필, 조각보, 마포대교의 난간 등을 보면 아름다운 디자인은 필연적인 이유에 앞서 아름다운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p.170

그래서 어느 곳이 되었건 이끼가 많은 곳은 특별하다. 이끼가 있는 공간은 이끼의 양만큼 소외되고 조용하고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p.203

예전에 살던 동네를 혼자서 가보는 것도 좋다. 그곳에 가면 물리적으로는 예전과 같은 공간이라도 다르게 느껴진다. 그 이유는 내 몸이 커져서다. 고안은 항상 사람의 몸으로느끼는 것이다. 예전에 내가 살던 곳에 가서 커져버린 나의 몸을 끼워 넣어보는 것은 마치 성장기에 작년에 입던 옷을 입고서 내가 얼마나 자랐는지를 알아보는 것과 마찬가지다.(p.220) 같은 크기의 몸이라도 마음이 커져서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러한 차이를 통해 지금의 내 현재 위치를 알 수 있다. p.221

계단은 관계를 쌓는다. p.222

건축에서 중요한 원리 중 하나는 감시를 받는 공간은 안전한 공간이 된다는 점이다. p.235

건축은 나의 위치에 따라 의미가 결정되는 상대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다. p.252

클럽은 사람이 인테리어다. 클럽 입구에서 들어오는 손님을 고르는 문지기가 인테리어 디자이너라고 할 수도 있겠다. p.258

배를 타야만 갈 수 있는 공간은 구분된 특별한 공간이다. 연결이 단속적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p.271

도시 속에서 우리에게 허락된 곳은 모두 움직여야 하는 공간뿐이다. 지금의 현대 도시민은 상어와 같다. 부레가 없어 물에 빠지지 않기 위해 계속 헤엄을 치고 움직여야 하는 상어처럼 우리는 현관문(p.281)을 열고 나오자마자 계속 움직여야 한다. 인도 위를 걷거나 차를 타거나 삼을 가거나, 도시 속에서 값을 지불하지 않고 앉아 있을 수 있는 자리는 두 곳이다. 도서관과 벤치, 그중 벤치는 야외 공간에서 앉아서 쉴 수 있는 곳을 제공한다. p.282

공간이라는 것은 이동하는 속도에 따라 같은 공간도 다르게 느껴진다. p.297

권력자들은 다른 사람을 옆에서 볼 수 있고, 아랫사람은 권력자를 볼 때 고(p.333)개를 돌려서 봐야 한다. p.334

삶에 대한 깊이를 더 느끼려면 죽음은 그림자처럼 따라와야 한다. 삶이 빛이라면 죽음은 그림자다. 그림자는 빛을 느끼게 해준다. 가끔씩 죽음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찾아가보는 것도 의미 있는 삶을 위해 좋을 것이다. p.365

보통 어느 사람이 그 도시에 애정을 느끼기 시작하는 시점은 도시의 도로망을 파(p.373)악하면서부터라고 한다. 도로망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나 타임스퀘어 같은 랜드마크 장소가 필요하다. p.374

옆자리에 누가 앉느냐는 그 공간의 성격을 만드는 결정적인 요소다. p.380

우리의 대학생활이 좋은 이유는 우리 진화의 시간 중 가장 긴 시간을 차지했던 수렵 채집의 시대와 가장 흡사한 시공간 경험이기 때문이다. 아직 대학 졸업 전이라(p.385)면 이 수렵 채집 시절의 공간을 잘 즐기기를 바란다. 취업하면 끝이다. p.386

거리는 갈등을 지우는 힘이 있다. p.405

비어 있는 커다란 공간을 쳐다보는 것은 머리와 가슴에 영양가 있는 음식을 주는 것과 같다. p.411

사람의 권력은 그 사람이 소비하는 공간의 체적에 비례한다. p.415

인생도 마찬가지다. 계획했던 길이 막히면 다른 길로 가면 된다. 그리고 그것이 모여서 새로운 평경이 되는 것이다. p.428

인생은 차선이 모여 최선이 되는 것이다. p.429

인생을 살면서 모든 순간이 아름다울 순 없다. 순간순간이 아주 가끔 아름다울 뿐이다. 울니 그 순간들을 이어서 별자리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 삶이 모두 대낮처럼 밝을 수 없고 약간의 별빛만 있다면 우리는 그 별빛들로 별자리를 만들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p.439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1        
1 2 3 4 5 6 7 8 9 10
진행중인 이벤트
트랙백이 달린 글
내용이 없습니다.
스크랩이 많은 글
내용이 없습니다.
많이 본 글
오늘 38 | 전체 46071
2005-12-30 개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