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블로그 | 랜덤블로그 쪽지
Memento mori
http://blog.yes24.com/swordsou1
태그 & 테마링 | 방명록
검혼
읽은 책에 대해 끄적거리는 연습하는 곳입니다
프로필 쪽지 친구추가
11월 스타지수 : 별1,973
댓글알리미 비글 : 사용안함
전체보기
잡설
취중잡설
나의 리뷰
Memento
m o r i
살림지식총서
영화
태그
고궁을 나오면서 자살사건 눈사람자살사건 와장창 류근 상처적체질 notsure 달리봄 수동형인간
2020 / 04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월별보기
새로운 글

Memento
[경성의 건축가들-김소연] 잘 몰랐던 이야기를 알아가는 즐거움 | Memento 2020-04-08 00:49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12324312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eBook]경성의 건축가들

김소연 저
루아크 | 2017년 04월

        구매하기

잘 몰랐던 이야기를 알아가는 즐거움. 그리고 그 시절 내가 어떻게 살아갔을까를 상상해보는 재미.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어디서 살 것인가>에서 유현준 교수는 사람과 건축은 불가분의 관계라고 말하며, “건축과 사람은 별개의 존재가 아니고 서로 연결되어 상호 영향을 주면서 의미를 규정한다.(p.7)”고 말했다. 또한 건축물은 시대정신을 반영(p.119)” 하기 때문에, “건축 공간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비춰볼 수 있다. (p.21)”고 말했다. 여기에 비춰볼 때 김소연 대표의 <경성의 건축가들>은 우리나라 근대 건축의 시작을 알아보기에 가장 적합한 책이다. 제목 그대로 사람과 건축물을 한 번에 살펴 볼 수 있다. 사람을 통해서, 그들이 세운 건축물을 통해서 그 시대를 상상케 한다.

이 책이 재미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일제강점기라는 특수성 때문이다. 사농공상이라는 구체제의 위계질서가 살아있지만, 일제에 의해 모든 것이 바뀌고 있던 혼란한 시기. 게다가 당시에 지어진 대부분의 대형 건축물은 식민통치를 위해 설치되는 상황을 감안하면, 건축가라는 개인 역시 혼란스러웠을 테다. 국가와 민족, 조국의 현실을 고민하지만, 일본을 통해서 신기술을 배워야 했던 그 시절의 복잡한 감정을 떠올려 본다. 저자가 박길용씨를 저자가 평가 한 말은 건축가를 떠나 당시의 시절을 관통해 살았던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 아닐까.

 

몸은 친일이라는 환경에 있었고, 마음은 조선인의 염원을 품었다. 의식은 제국을 향한 동경과 식민지의 콤플렉스에 흔들렸다. 식민 교육, 식민 권력, 식민 자본을 바탕으로 성장한 그 시대 건축가의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내면이었다. 자본과 권력은 가까이 있지만 정작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없는 식민지 건축가의 운명이기도 했다. p.55”

 

이렇게 방황하는 건축가를 살펴보는 일은 매우 흥미롭다. 결국은 혼란기, 나라를 잃은 시기에 누구나 겪었을 일이다. 만약에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고민해 본다. 건축가는 기술인으로서 차별받던 인식이 오히려 친일의 궤적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근거가 되었던 아이러니까지 생각해보면 단순하게 친일과 반일, 민족과 반민족의 범위는 협소해 보인다. 자기들만의 폐쇄적인 구조가 오히려 성역을 만든 걸까. “건축 바깥의 문제를 끌어안으며 사회적인 존재로 성장하는 속도는 느(p.153)”렸다는 날선 비판에 이어, 저자가 소개한 임화의 이야기가 인상 깊다. 우리는 어쩌면 친일을 너무 단선적으로만, 당위적으로만 생각하고 있는지 고민해 본다. 내가 그 자리, 그 순간에 있었다면 어떤 모습으로 그 시절을 살았을까.

 

가령 이번 태평양 전쟁에 만일 일본이지지 않고 승리를 한다, 이렇게 생각해보는 순간에 우리는 무엇을 생각했고 어떻게 살아가려 생각했느냐고. 나는 이것이 자기비판의 근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남도 나쁘고 나도 나쁘다 이게 아니라, 남은 다 나보다 착하고 훌륭한 것 같은데 나만이 가장 나쁘다고 감히 긍정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자기를 비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임화. p.377

 

개인적으로 한국 근대사와 일제 강점기에 관심이 많다. 아픈 손가락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대기 때문이다. 서구 신식문화를 수용하며 새로움을 배워나가는 설렘과 식민지인으로서 좌절할 수밖에 없는 시기. 이 양가적인 감정 속에서 우리 조상들은 아주 가끔의 희극과 수많은 비극을 썼다. 그리고 내가 모르던 새로운 이야기를 추가해 준 저자에게 감사하다.

--------------------------------------------------

박길용은 앞과 뒤가 달랐다. 앞에서는 일본인이든 조선인이든 두루두루 인정을 받고 인맥을 쌓은 성공한 건축가였다. 뒤에서는 격렬하지는 않지만 그 나름의 방식으로 조선인의 정체성을 끌고 나갔다. 그것이 3.1운동에 대한 부채의식 때문인지, 종로에서 일본인과 대치하며 삶을 버(p.54)텨온 조선인의 근성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 몸은 친일이라는 환경에 있었고, 마음은 조선인의 염원을 품었다. 의식은 제국을 향한 동경과 식민지의 콤플렉스에 흔들렸다. 식민 교육, 식민 권력, 식민 자본을 바탕으로 성장한 그 시대 건축가의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내면이었다. 자본과 권력은 가까이 있지만 정작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없는 식민지 건축가의 운명이기도 했다. p.55

내가 생각하는 박길용의 최고 업적은 이런 것이다. ‘최초유일의 신화가 아니다. 그는 최초유일이라는 영향력으로 차별받던 조선인 건축가들을 품었다. 그들과 함께 건축 안과 밖을 넘나들었다. p.56

사농공상의 관념이 존재하던 시대에 건축가를 미장이로 알던 사람들도 수두룩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인식이 건축가에게는 오히려 보호막이 되었다. 양날의 칼처럼 건축가도 그 보호막 뒤에서 과학과 기술의 중립성이라는 함정에 빠지곤 했다. 건축 안의 문제는 예민했지만, 건축 바깥의 문제를 끌어안으며 사회적인 존재로 성장하는 속도는 느렸다. p.153

시대상은 보여도 시대의식은 보이지 않는 삶은 오래 기억되지 않는다. p.204

장기인은 용어가 지식이고 사상이라고 믿었다. 건축용어는 설계, 시공, 구조, 설비, 재료, 법규, 전통건축 등을 모두 포함한다. 그만큼 여러 분야의 건축 지식을 섭렵하게 된다. p.243

자기비판이란 것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깊고 근본적인 문제일 것 같습니다. 새로운 조선 문학의 정신적 출발점의 하나로서 자기비판의 문제는 제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자기비판의 근거를 어디에 두어야 하겠느냐 할 때 나는(p.376) 이렇게 생각합니다. ... 가령 이번 태평양 전쟁에 만일 일본이지지 않고 승리를 한다, 이렇게 생각해보는 순간에 우리는 무엇을 생각했고 어떻게 살아가려 생각했느냐고. 나는 이것이 자기비판의 근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남도 나쁘고 나도 나쁘다 이게 아니라, 남은 다 나보다 착하고 훌륭한 것 같은데 나만이 가장 나쁘다고 감히 긍정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자기를 비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임화. p.377

건축은 사물이 아니라 사연이라는 것을. p.380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1        
[386세대유감-김정훈,심나리,김항기] 386세대 개새끼론을 환영하며 | Memento 2020-04-08 00:42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12324294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eBook]386 세대유감

김정훈,심나리,김항기 공저/우석훈 해제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07월

        구매하기

386세대 개새끼론을 환영하며, 앞으로 건전한 논의를 위해 지속적인 후속작이 나올 수 있기를. 비단 우리세대가 아니라 미래세대를 위해서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누군가는 아프니까 청춘이랬다. 또 누군가는 내가 다 해봐서 안다고도 했다. 또또 누군가는 알바비를 떼여 보는 것도 값진 경험이랬다. 일본에서는 코로나도 인생의 값진 경험이랬다. 그렇다. 젊은 세대는 그래도 싸다. 늘 게으르고 무능하고 10새끼다. 나이가 차도 부모 등 쳐먹기 바쁘다. 88만원에 만족하며 알바를 전전하며 빈둥거린다. 모험심과 자립심이 없다. 그래서 중동으로, 해외로, 나라가 텅텅 빌 정도로 떠나지 못한다. 안정적인 공무원에 목숨을 건다. 결국 가진 것은 포기다. N포 세대. 별 수 있는가. 우리를 그렇게 정의한 사람들이 기득권이고, 이 사회의 지도자들이다. 권한은 없고 의무만 잔뜩 이다. 가진 것은 쥐뿔도 없는데, 앞으로 가질 수 있다는 희망조차 없다. 단군 이래 최대의 스펙을 가진 세대라지만 부모세대 보다 나아질 기회가 없는 최초의 세대. 그것이 지금의 세대다.

이 책이 반가웠다. 젊은이 개새끼론에 대항해서 우리에게 어른들에게 한 방 먹일 수 있는 언어를 주었기 때문이다. 감히 386세대 개새끼라고 말할 수 있게 했다. 이러면 꼭 너는 부모에게 그런 말을 하냐.’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우선 나는 댁과 같은 부모님을 둔 적이 없다. 거기에 우리 보모님은 그런 이득을 대부분 취하지 못한 분이다. 두 번째로 이해한다. 사람은 자기를 욕하면 당연히 싫다. 반대로 젊은이들이라고 아니었겠는가. 다만 그들에 대항하고 반박할 언어와 힘이 없었을 뿐이다. 386세대는 모든 것을 독점하고 있다. 정치, 경제, 문화, 우리 사회의 전반을 휘어잡고 있다. 그들의 논리와 언어가 너무도 공고하기 때문에 우리의 언어는 그저 어린아이의 푸념으로 비친다. 그래도 표는 필요하고, 돈은 벌어야 한다. 그러니 불만 갖지 말고, 청년 비례로 공천 몇 개 줄게. 청년 정책? 그래 예산 배정해 줄게. 그래 너희들이 돈을 써야지. 몇 개씩 던져줄 뿐이다. 우리가 똥개인가? 뼈다귀 몇 개 던져주는 그런 집지키는? 개새끼 눈에는 개새끼만 보이는 법이다. 그러니 나 역시 그렇게 부를 수밖에.

그렇다고 너 죽고 나 죽자 식으로 치고 박고 싸우자는 건 아니다. 책 제목대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미필적 고의를 가지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은 고통스럽고 소모적이다. 하지만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한다. 특히 누군가 부당하게 이득을 취했다면, 어떤 이가 상대적 피해를 받고 있다면 말이다. 그 인과를 분석해서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래야만 반복하지 않는다. 이는 우리 세대가 피해자라는 주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남이가로 덮어둔 결과가 어떠한가. 이대로라면 우리 세대 역시 미래 세대에 빨대를 꽂고, 부모 세대가 했던 과오를 물려줄 뿐이다. 그 결과는 충분히 예상 가능하지 않은가. 모자란 자원을 두고 아귀다툼을 하는 사회는 스스로 무너질 수밖에 없다. 굳이 빨갱이를 찾아 나서지 않아도, 그런 사회에는 빨갱이가 넘쳐나게 될 것이다. 아니 그런 사회를 만들고, 방조한 사람들이 빨갱이가 아닐까.

기득권을 내려놓는다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선의에 기대하기도 어렵다. 아니 불가능에 가깝다. 알고 있다. 그렇다고 그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도 없다. 괴물과 싸우다보면 나도 모르게 괴물이 되어버린다. 늘 조심해야 한다. 그렇다면 뭐 어쩌란 말인가. 아무소리도 하지 말고 그냥 우리 차례가 올 때 까지 앉아서 기다려야 하나? 아무 소리도 하지 말고? 싸우지도 기다리지도 못하는 우리는 어찌해야 하면 좋단 말인가. 누구라도 좋으니, 다음 논의가 어서 나오기를 기대한다. “세상이 나아질 수 없다고 믿게 된 당신과 나에게 작은 희망의 불씨(p.25)”를 기다린다.

------------------------------------------------------------

부디 이 책이 세상이 나아질 수 없다고 믿게 된 당신과 나에게 작은 희망의 불씨를 안겨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p.25

명실공히 386세대는 2019년 현재 대한민국을 주무르고 있다. 생애 주기로 봤을 때 50대가 가장 무르익은 시기라 한다면 당연한 측면도 있다. 그렇지만 50대의 사회적 역할이 무거운 만큼 시대와 함께 사회 주도 세력은 끊임없이 교체된다는 사실 또한 당연하다. 그러나 1987년 민주화운동을 전후해 20대부터 사회적 목소리를 키워온 386세대는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앞 세대가 쓸쓸히 퇴장한 자리를 넘겨받은 뒤 40대에도, 50대에도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30, 40대의 그들에게 주어졌던 자리가 지금의 30, 40대에게는 대물림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p.38

386세대가 오롯이 자신들의 희생만으로 독재를 물리치고 민주화를 쟁취했(p.56)다고 믿는 것은 오만한 채권자적 태도다. 1987년 거리에는 80년대 학번을 가진 20대 대학생만 있지 않았다. ... 민주화는 살아남아서 현재의 사회 중심 세력이 된 386만의 전리품이 아니다. 기성세대의 지원과 시민들의 저항, 죽음으로써 역사가 된 적지 않은 386 동료들이 함께 모여 거둔 성공이다. 그러므로 20대가 사회적 모순과 부조리(p.57)에 눈감는다고 손가락질할 것이 아니라 이들이 왜 스펙 쌓기에 몰두하고 연봉 높은 대기업 정규직 취직에 열을 올리는지에 대해서 함께 고민해야 한다. p.58

청년을 위한 정치는 정치적 수사일 뿐이다. 청년을 위한 예산은 이름만 거창하게 붙었다 결국 쪼그라들고, 정치 신인조차 키우지 않고 있다. p.58

망탈리테(mentalite)란 사회를 특징짓는 한 이난 집단의 습관적 사고 양식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집(p.67)단심성을 통해 그 집단에 속한 사람들의 행동을 꿰뚫어 볼 수 있다. p.68

386세대에게 그런 코호트 효과의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첫 번째로, 군사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주의를 이뤘다는 자부심을 꼽을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배양된 조직화 능력, 함께 어깨를 걸고 밀어붙이면 끝내 이뤄낼 수 있다는(p.70) 낙관주의도 빠뜨릴 수 없다. 반면에 괴물과 싸우면서 닮아간 권위주의, 자부심이 변질돼 나타난 우쭐함과 함께, 실행보다 말이 앞서는 공허함도 386세대 안에서 풍겨난다. 앞서 말한 교조적 성향도 코호트 효과에 따라 드러난 특징이다. 그러나 가장 큰 특징은 따로 있다. 한국 사회에서 너무나 오랜 기간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점이다. p.71

386세대는 당시 1인당 평균GDP보다 20% 더 높은 월급을 받았지만, 80년대생은 20% 더 낮은 월급을 받은 것이다. 그만큼 사회가 인정하는 청년 노동의 대가가 형편없어졌다고 봐야 한다. p.103

지난 20년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이 있다. 80년대생들을 채용해 월급 주면서 일을 시키는 상사의 대부분이 60년대생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요즘 청년 노동의 대가를 386세대가 산정한다. p.103

시대는 세대를 규정한다. p.112

시대가 부여한 운은 세대마다 달랐다. p.112

386세대가 장기 집권의 서막을 성공적으로 열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능력이 유독 특출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성공은 시대적 요행 외에도 윗 세대의 정치적 고려, 그리고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 시대적 상황이 그들의 빠른 성장을 견인했다고 할 수 있다. p.122

세대란 시대를 넘어서는 존재할 수 없다. 세대는 시대 위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p.122

실패의 경험 없는 승리에 대한 확신, 조직력을 바탕으로 한 강고한 투쟁력, 타협하기 어려운 상명하복의 교조적 문화, 다른 목소리를 포용하지 않는 적대적 계파주의가 이른바 386 DNA로 자라났다. 자나 깨나 민주주의를 원했던 386세대가 진정한 민주주의자로 남을 수 없는 한계는 이런 DNA 때문이 아닐까. 당시 이들은 피와(p.148) 눈물로 민주주의를 쟁취하려 노력했을 뿐, 민주주의를 즐겁게 향유하는 법을 익히지는 못했다. p.149

성유보(민주화운동가)1987년 민주화 성공 요인

정치적 리더십의 역할 2. 민주개헌이나 독재타도 혹은 고문반대와 같이 간명하고 보편적

목표를 대중에게 제시(p.171) 3.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와 미국의 압력 등 외부 조건이 맞아떨어짐 4. 학생운동이 대중노선으로 선회 p.172

과거의 헌신으로 오늘의 영광을 보상받는 것이 정당한가는 따져봐야 할 일이다. 모든 세대는 각자 살아가는 시대의 무게를 나눠서 견디고 있기 때문이다. p.175

학원 없는 학창 시절을 보내고 상대적으로 수월하고 평등하게 대학 문턱을 넘었던 386세대가 지옥 같은 입시 경쟁 체제를 만들어낸 셈이다. p.214

386세대의 부동산 불패 신화가 독재정권의 정책 덕분이었다는 점은 역설적이다. 박정희 정권이 만든 청약제도와 분양가 상한제, 그리고 노태우 정권의 주택 200만 호 건설정책과 1기 신도시 계획의 합작품이 386세대 한 사람 한 사람의 경제적 토대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 돈이 부족하다면, 주택금융규제의 완화 흐름이 이를 보완해 주기도 했다. 부동산 정책의 3종 세트인 공급과 금융, 세제 가운데 세제를 제외한 나머지 2개는 특혜에 가까웠다. p.241

이 정도로 노동시장이 유연해지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사회안전망이 갖춰져야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결과는 질 낮은 일자리의 양산, 그리고 더 나은 계층으로 올려주는 사다리 붕괴로 이어졌다. p.270

직업에는 귀천이 없을지 모르겠으나 고용에는 확실히 있다. ... 그리고 고용의 귀천은 세대별로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p.281

세상이 변화하는 것을 보고 싶다면 당신이 보고자 하는 그 변화 자체가 되어라. -마하트마 간디 p.283

꼰대는 갑질, 헬조선과 맞닿아 있다. 이들은 모두 공정하지 않음을 문제 삼는다. 왜 공정하지 않은가. 걸핏하면 법대로 해를 외치지만 법과 제도가 원칙대로 작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바쁘고 급하면 언제든 우리 사회 갓길에서 전력질주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고 생각하는 기득권들이 너무도 많다.(p.287) ... 스스로가 저항의 대상이 되는 게 무척이나 낯선 꼰대들은 이들의 법대로 해봐정신에 움찔하지만, 결국 요즘 것들은...’이란 푸념으로 사태를 마무리 짓는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라는 말은 아름답다. 아름다운 것들을 쉽사리 손에 잡히지 않는다. p.288

세상의 절반과 다른 절반이 피 터지는 싸움을 하는 세상에서 저출산은 필연이다. p.300

386세대는 일종의 이익집단적 성격을 지닌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는 특히 386세대가 한 사회의(p.325) 제도를 만드는 정치 영역에 일찌감치 진출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럼에도 386세대의 삶이 녹록하지 만은 않다고 말하는 것은 빈곤율 40%가 넘는 부모 세대와 체감실업률이 30%에 육박하는 청년 세대 사이에 끼어 있기 때문이다. ... 사회안전망 구추과 분배정의 실현을 외면하고 노동 없는 이익, 즉 지대추구에 몰두하며 살아온 과거의 시간들에 대해 책임져야 할 운명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p.326

먹고사는 걱정을 덜게 된 데에 산업화세대가, 민주화 달성에는 386세대가 유독 큰 주인의식을 가진 것과 마찬가지로 세상이 이 지경에 이른 데에 더 큰 책임의식을 가져야 할 세대가 있을 터다. p.329

우리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크고, 가장 강력한 세대라 할 수 있는 386세대를 바라본다. 가난과 전쟁 탓에 못 먹고, 못 입고, 못 배운 부모 세대 등에 올라타 독재자가 허용한 효율과 성장의 과실을 맛보며 10대를 보내고, 두 번째(p.329) 독재자가 교육의 평등을 설파하며 내건 교육개혁조치의 수혜로 20대를 열었던 386세대. 이어 반독재자가 내민 200만 호 아파트 건설 카드와 청야공장 덕에 일찌감치 내 집 마련의 기회를 얻어 중산층에 진입했으며, IMF 외환위기의 파고조차 비껴간 운 좋은 세대. 시대가 선사한 거듭된 운을 실력이라 믿으며 불운한 뒷세대에게 우리는 안 그랬다노오력을 강조하는 이 사람들 말이다. p.330

털끝만큼의 권력이라도 있다면 한 톨도 낭비할 수 없다는 집착, 옳은 것과 그른 것의 경계가 흐릿한 지대에서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는 염치, 결국 불의보다 불이익에 민감해진 우리 사회 양심의 모습을 386세대는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이 정도쯤이야하는 허술한 양심의 벽은 지난 30년간 시대가 부여해준 호의와 그 속에서 이룬 성공스토리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그건 반칙이야라고 외치는 목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이다. p.362

패러다임의 전환이라 부를 만한 변화가 곳곳에서 터지고 있다. 기후변화와 자연재해, 공유경제, 인공지능, 테러리즘, 성평등, 개인과 국가의 갈등에 이르기까지 우리 모두 어느 것 하나에 익숙하지 않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너희(p.367)들이 뭘 알아로 표현되는 실패 경험 없는 승리에 대한 확신이 발붙일 자리가 없다는 말이다. 패러다임 전환은 한마디로 단절이다. 단절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닌 가보지 못한 길을 가며 오류를 끊임없이 개선함으로써 극복될 수 있는 것이다. p.368

1987년도에 그들이 패러다임 전환적 승리를 거둔 것은 그들의 눈이 과거나 현재가 아닌 미래에 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사람은 남은 생의 길이만큼 내다볼 수 있다는 말이 있다. 386세대는 새 시대의 첫차가 먼 미래를 내다보며 출발할 수 있도록 구시대 막차의 마지막 칸을 붙든 고리를 끊어야 한다. p.368

인간은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가해자의 성격을 띤다. 이슬을 먹고 살지 않는 한 어떤 생명을 빼앗아야 생존할 수 있다. 자신이 가해자임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어떤 윤리를 만들어갈 수 있을지를 계속 고민해야 한다. -후지이 다케시(일본인 한국 현대사 연구자) p.375

가해자임을 인정하는 것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라고 후지이 다케시는 덧붙여 설명한다. 그의 말대로라면 가해자는 없고 온갖 종류의 피해자들만 난무하는 사회에서 책임이 설 자리는 없다. 우리 사회는 늘상 가해자가 명백한 사안이더라도 피해자의 귀책 사유를 찾는 데 혈안이 된다. p.376

이 모든 게 우리 헌법이 규정하는 사회적 기본권, 즉 사회권의 범위 안에 있으며, 이는 궁극적으로 우리의 인간다운 삶을 지키기 위한 국가의 약속이다. 사회권은 이를 유린당하고 있는 우리의 청춘을 붙들어줄 기둥이며, 인간다움을 지켜줄 보루다, 이 정당한 권리를 가로막는 주체가 국가든 특정 세대든 간에(p.390) 배려나 양보를 기대하지 못한다면 저항의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저항은 당사자가 할 때 가장 힘이 세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나를 대신해 싸워주지 않는다. p.391

평등하고 공정하며 정의로운 세상은 30여 년 전 386세대가 눈물 흘리며 바랐던 그 세상과 다르지 않다. 그들이 바랐던 혁명이 아직 매듭지어지지 않은 현재 진행형이라면, 세대 독점의 해소는 비록 늦었지만 혁명의 완결로 가는 길일 수 있다. 이제는 혁명의 열정을 뽐내는 주체가 아니라 염치와 배려의 미덕을 풍기는 혁명의 지원군으로서 말이다. p.395

70년대에서 80년대에 사회의 향방을 놓고 벌어진 이 오래된 갈등은 21세기에 오히려 더욱더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다. 이 갈등은 좀 넓게 틀을 잡고 보면 한국식 진보(뭐가 진보인지는 잘 모르겠다.)와 한국식 보수(도대체 성조기를 흔드는 외국 보수를 본 적이 없다!)의 이념전쟁처럼 보인다. 그러나(p.397) 개개인의 삶을 중심으로 보면 먹고살고 승진하기 위한 개인들의 처절한 생존투쟁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 싸움은 아무리 강렬해도 별로 새롭지는 않다. 70년대와 80년대에 기원을 둔 과거 회상적 전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어느 쪽이라도, 소수의 승자가 많은 것을 차지하게 되어 있다. 20대로서는 자기의 게임도 아니고, 재미도 없다. p.398

세력으로서는 이제 한국에 남은 게 별것 없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3김 시대가 결국 두 사람이 대통령을 하고 나서야 종료된 것처럼, 386 시대가 그들끼리 돌아가며 마지막까지 버티는 것 아니겠는가. p.424

몇 년 전의 헬조선의 눈총이 유신시대에게로 갔다면, 이제는 386에게 갈 차례다. 유신세대든 386이든, 획일성과 집중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 , 그럼 해법은 뭘까? 쉬워 오비지는 않지만 결국에는 다양성이라는 방향이 거의 유일한 해법이 아닐까. 과잉, 과소 대표의 해소와 지역, 세대, 젠더 등의 변수를 다양하게 만들어내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부드러운 방법이다. p.426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지혜의 시대, 영화로 더 나은 세상을 꿈꾸다] 창작의 효과 | Memento 2020-04-05 19:10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12311550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eBook]영화로 더 나은 세상을 꿈꾸다

변영주 저
창비 | 2018년 09월

        구매하기

창작의 효과, 변영주에게 영화가 있다면 나에게는 무엇이 있을까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저자는 영화란 명백하게 사회에 종속적인 대중예술(p.15)”이라고 정의한다. 결국 좋은 사회가 좋은 영화를 만든다. (p.13)” <영화로 더 나은 세상을 꿈꾸다>는 말은 좋은 영화를 만드는 사회를 꿈꾼다는 말일테다. 그렇다면 저자가 느끼는 좋은 영화를 만들어내는 좋은 사회란 무엇일까. 대의명분, 앞으로가 아닌, “지금 잘 안 되는 이유가 뭔지(p.60)”아는 사회,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는 사회(p.68), “어떤 대상에 대해 잘 모를 때는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이 위험하다고 생각(p.88)”하는 사회다. 이런 사회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라는 질문을 통해서다. 올바른 질문 해야만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무엇이 문제인지, 무엇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지. 그래야만 올바른 연대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구체적으로 무엇 때문에 힘든지가 분명해야 연대가(p.113)” 가능하다는 말이다. 나를 알고 적을 알아야 싸우든지 연대를 하든지 하는데, 우리는 길을 잃고 있다.

저자는 창작은 “‘나는 어떻게 살고자 하는가.’라는 결기와 나는 무엇을 사랑하는가.’라는 태도(p.9)”에서 시작한다고 말한다. 이를 통해 “‘를 설명할 수 있어야 우리를 볼 수 있고, ‘우리를 봐야 사랑에 빠지는 무언가와 만날 수 있다.(p.10)”고 말한다. 창작은 우리’,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찾아가는 행위로 정의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 내 마음의 호수를 말과 글들로 가득 채워야 한다. 거기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잡히는 고기(문장)를 모조리 먹어치우라고 말한다. 먹는데 그치지 말고 폭식하라고 말한다. 그래야만 호불호를 알 수 있고, 그러다보면 그 물고기들이 위장 안에서 하나의 문장을 만드는데 그게 바로 내 이야기가(p.84)”되어 창작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저자에게는 그것이 영화였을 테다. 자신이 살아갈 방식,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영화 속에 녹여냈을 테다. 그리고 그것으로 자신을 규명하고, 우리를 확인했을 테다.

저자에게 영화란 세상을 좀 더 바르게, 좋게 만들기 위해, 보다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지치고 힘들 때 위로를 얻는 시간(p.139~140)”이라고 정의한다. 영화를 통해서 자신과 우리를 규명하고, 영화로 연대를 한다는 말일테다. 그가 만든 여러 영화들(애석하게 본적은 없다.)이 그럴 테다. 더 나은 사회, 더 좋은 영화, 연대. 덕분에 나도 고민해 본다. ‘는 누구인지, ‘우리는 무엇인지.

 -----------------------------------------------------------

창작이란 나는 어떻게 살고자 하는가라는 결기와 나는 무엇을 사랑하는가라는 태도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고 믿는다. p.9

를 설명할 수 있어야 우리를 볼 수 있고, ‘우리를 봐야 사랑에 빠지는 무언가와 만날 수 있다. p.10

좋은 사회가 좋은 영화를 만든다. p.13

영화는 명백하게 사회에 종속적인 대중예술입니다. p.15

다큐멘터리는 영화가 어떤 시선을 가져가야 하는가를 제대로 보여주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p.37

우리는 항상 분노의 표적을 결정하잖아요. 뭔가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순간 그 불공정에 대해 연구하고 분석하지 않아요. 표적을 정하고 전진할 뿐이지요. 그러면 매번(p.48) 누군가를 괴롭힐 수 있지만 어떤 것도 바꾸진 못해요. p.49

왜라는 질문의 답에 따라 우리의 관계는 바뀌어요. 소통의 목적도 바뀌고. 저는 우리가 살면서 어려움을 겪는 이유 중 하나가 이런 식으로 끈질기게 소통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언제나 대의명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요. 59

인생을 살면서 어떤 경우든 앞으로 잘해가지고 안 돼요. 지금 잘 안 되는 이유가 뭔지 알아야지요. p.60

자기연민에 빠지는 순간 우리는 괴물이 됩니다. 세상에서 자기가 가장 불행하기 때문에, 너무도 억울하고 분하니까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놀랍게도 사람들은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 원인을 찾거나 거기에 대항하는 데 열정을 쏟지 않아요. p.68

여러분, 자기의 불행이 특별하다(p.70)고 생각하지 마세요. 우리는 곁에 있는 사람만큼 불행해요. 더 불행하지 않아요. 그러니 나처럼 불행한 사람 잡아먹지 좀 마세요.’ p.71

사람은 성과를 낸 만큼 숙제와 쓰레기를 남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성과와 숙제, 그리고 쓰레기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지요. 중요한 건 숙제와 쓰레기를 잊어버리면 안 된다는 겁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내 호수 속에 있는 그 거지 같은 문장에 대해 의심해야 합니다. p.75

창작자가 되고 싶다면 우선 폭식부터 해야 해요. 죽어라고 먹는 거지요. 호수에 낚싯대를 들이대서 오늘 잡힌 물고기를 전부 먹어치우는 거예요. 계속 먹어 치우다보면 그 물고기들이 위장 안에서 하나의 문장을 만드는데 그게 바로 내 이야기가 되는 겁니다. p.84

여성적인 것은 세상 모든 약한 것들과의 연대이다.” (p.85) ... ‘여성적(feminine)’이란 여성주의적(feministic)’인 것이 아니라 단지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남성보다 약한 것들을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신경 쓰게 된다는 의미임을 깨닫게 된 것이지요. p.86

제가 생각하는 약한 것들과의 연대란 어떤 대상에 대해 잘 모를 때는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 이건 내가 모르는 거야, 겪어본 적이 없는 거야. 그러면 굳이 친해지려고 하기 보다 더 어려워하면 돼요. 모르는 사람과 친해질 수 없잖아요. (p.88) ... 우리가 살면서 하는 실수의 대부분은 모르는 것을 어(p.89)려워하지 않아서 생깁니다. p.90

문학은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으로 나를 밀어 넣는 역할을 합니다. 내가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그런 일을 겪은 사람을 보는 거지요. p.94

우리가 왜 매번 지냐면 이것들을 하나로 뭉뚱그려서 보기 때문이에요. ‘, 나 진짜 힘들어.’ 이렇게만 보면 집니다. 그러면 어느 누구와도 연대하기 힘들어요. 구체적으로 무엇 때문에 힘든지가 분명해야 연대가 되는데 그냥 힘든 걸로는 연대가 안 돼요. p.113

차별에 대처하는 방안은 없지만 고난을 이겨내는 방안은 이것입니다. 언제나 그 고난들을 분리해내는 거예요. 나의 고통이 뭉텅이가 아니라 제각각이라고 생각하면 이겨낼 수 있습니다. p.113

익숙하지 않은 것을 억지로라도 먹는 경험을 쌓다보면 익숙하지 않음과 싫음의 차이를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p.126

제게 영화란 세상을 좀 더 바르게, 좋게 만들기 위해, 보다 많은 사람(p.139)들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지치고 힘들 때 위로를 얻는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위로를 드리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p.140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지혜의 시대, 뉴스로 세상을 움직이다-김현정] 어머니와 가짜 뉴스 | Memento 2020-04-05 19:07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12311539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뉴스로 세상을 움직이다

김현정 저
창비 | 2018년 09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단순한 사실이 아닌 종합적인 진실에 다가갈 수 있도록 뉴스를 보는 훈련. 그것만이 가짜뉴스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어머니니께서 요즘 유트브에 빠지셨다. 집에 와이파이를 설치해드렸기 때문이다. 그간 어머니는 우리 사회가 제공하는 즐거움에서 비껴서 계셨다. 그 원인 중 하나가 나였다. 나에게 요구하신 적도 없으시지만 나도 드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조금 많이 늦었지만 어머니께 세상과 소통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열어 드렸다. 늘 그렇듯, 뒤늦은 반성과 행동은 늘 대가가 따른다. 요즘 어머니는 가짜 뉴스(?)에 빠지셨다. 엄청나게 심각한 오류를 저지르시거나 하지는 않으신다. 어머니의 성격상 그럴 분은 아니시다. 다만 지인들의 카톡을 통해 퍼지는 뉴스의 특성상 나에게도 자주 전달을 해주신다. 최근의 뉴스는 마스크 괴담이었다. 존재하지만 교묘하게 존재하지 않는 교수의 이름을 타고 퍼진 뉴스였다. 애초에 나는 믿지 않았지만, 거짓이라고 정정 보도를 어머니께 전달 드리기 까지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 그래도 나를 생각해서 보내주신 이야기인데, 거기에다가 어머니! 잘못 아셨어요! 그건 가짜입니다!”라고 말하는게 자칫 어머니와 나의 소통을 막는 길이 아닐까 걱정했다. 기우에 불과했지만 걱정스러운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다.

나 역시 가짜뉴스에 자주 속고는 한다. 특히 예전에는 심했었다. (그렇다고 지금이라고 뭘 잘안다는 건 아니다. 다만, 그런 식의 이야기를 더 경계할 뿐이다.) 찬찬히 생각해본다면 조잡스럽고 믿기 어려운 이야기임에도 문자와 SNS를 통해 전파되는 뉴스는 진짜처럼 보였다. 무엇보다 비교해서 볼 얘기가 없었기에 혼자서 진위를 따지기는 불가능했다. 게다가 지금과 같이 혼란스러운 상황, 공포가 지배하는 시절에는 더더욱 알기 어려웠다. 얼마 뒤 해당 뉴스를 퍼뜨린 사람이 체포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뉴스는 나 자신이 상대방과, 나아가 세상과 좀 더 원활히 소통하는 데 필요한 아주 중요한 도구 (p.29)”이지만, 그 도구를 이용해 뭔가를 꾸미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리고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은 뉴스의 본 기능, 세상과의 소통을 막아서기도 한다. 내가 어머니와의 소통을 걱정했던 것처럼.

결국 자기만의 내공이 생겨야 한다. 어머니께 찬찬히 설명을 드렸다. 우선 상식에 비춰 판단해보자고. 그리고 뉴스나 유투브가 정답은 아니라고 말이다. “뉴스는 현재의 기록이자, “과거의 기록을 참고하여 미래를 예측 할 수 있게 도와주는 나침반(p.29)”이다. 다만 어머니는 과거의 기록이 적은 만큼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기회가 적었을 뿐이다. (그것은 내 잘못이기도 하다.) 이럴 때는 모든 걸 의심해보는 수밖에 없다. 매우 피곤하고 어려운 일이다. 잦은 실패를 동반한다. 그럼에도 속지 않으려면, 휘둘리지 않으려면 그럴 수밖에 없다고 차근히 설명 드렸다. “‘사실이 곧 진실을 의미하지는 않(p.47)”는다고. 차근차근히 어머니만의 기록을 쌓아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어머니께서는 마음이 불편하셨는지 표정이 어두워지셨다. 아무렴 자신이 믿고 있는 사실에 대해 아니라고 하면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도 어느 정도 이해하는 하셨는지 고개를 끄덕이셨다.

긴 대화 끝에 또 다른 이야기를 꺼내 드셨다. 어머니께서는 요즘 젊은 친구들이 잘못된 교과서로 배워서 나라가 위태롭다고도 하셨다. 나라가 공산주의가 되면, 교회도 못 간다고 하셨다. 내가 되물었다. “어무니, 그럼 나도 빨갱인가 보네요?” 그렇게 긴 대화는 어물쩡 끝나버렸다. 아직은 시간이 필요하다. 어머니도, 나도. 거기에 대해서는 정답이 없다. (물론 빨갱이라는 프레임은 정답이 아니라고 나는 믿지만) 누구라도 안 그럴까. 가짜 뉴스건, 프레임을 건 뉴스건, 진실을 밝혀질 테다. 나도 어머니도 단순한 사실이 아닌 종합적인 진실에 다가갈 수 있도록 뉴스를 보는 훈련(p.59)”이 필요한 건 마찬가지다. “길게 갈 자신을 갖기 위해서는 마음의 여유가 중요(p.120)”법이다.

------------------------------------------------------------

우리는 왜 뉴스를 보고 듣고 알아야 할까요? 사실 뉴스를 몰라도 사는 데에 큰 지장은 없습니다. 심심산골 어르신들이 신문도 잘 안 읽고, 인터넷 뉴스를 전혀 안 보아도 사시는 데 아무 지장이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세상과 원활한 소통을 하고자 한다면 얘기는 아주 달라집니다. (p.28) ... 뉴스는 나 자신이 상대방과, 나아가 세상과 좀 더 원활히 소통하는 데 필요한 아주 중요한 도구입니다. p.29

뉴스는 현재의 기록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기록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뉴스를 보며 과거의 뉴스를 떠올리고, 미래의 뉴스를 예상할 수 있게 합니다. 다시 말해 과거의 기록을 참고하여 미래를 예측 할 수 있게 도와주는 나침반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p.29

사진과 뉴스 모두 사실, 즉 팩트(fact)입니다. 그런데 사실이 곧 진실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p.47

맥락에 대한 이해 없이 한 장면만으로 모든 진실을 알 수 있다는 생각은 위험한 착각입니다. 한 컷의 전후 상황과 프레임 바(p.58)깥에서 벌어지는 일을 파악함으로써 단순한 사실이 아닌 종합적인 진실에 다가갈 수 있도록 뉴스를 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p.59

뉴스를 제대로 읽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의심만 하는 것이 아니라 프레임을 깨고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프레임을 깨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선입견을 벗어던지는 것이고, 그 선입견을 벗어 던지기 위해 중요한 것은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p.61

길게 갈 자신을 갖기 위해서는 마음의 여유가 중요합니다! p.120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강자의 조건-이주희] 생존을 위해 우리가 고민해야 할 부분들 | Memento 2020-04-04 00:02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12304291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eBook]강자의 조건 : 군림할 것인가 매혹할 것인가

이주희 저
MID 엠아이디 | 2015년 07월

        구매하기

강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 우리가 고민해야 할 부분들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헤겔은 인류 역사를 관통하는 보편적인 법칙과 원리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반면 야콥 부르크하르트는 이러한 법칙이나 체계를 부정했다. 개인적으로 후자의 생각에 동의한다. 복잡한 학문적 진위를 따지고 논쟁하는 일은 능력범위 밖의 일이다. 짧은 식견으로 생각하자면, 역사에서 동일한 조건, 동일한 인물들에 의해 동일한 사건이 발생한 적이 없다. 애초에 불가능하다. 역사라는 실험실의 특성상 과학실험처럼 동일한 조건하에 재현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이것이 역사라는 학문의 특성이다. 학문의 특성상 어느 정도의 체계화, 법칙화를 통해 기본 뼈대를 잡는 일은 불가피하겠지만, 이것이 어떠한 수학 공식처럼 모든 사건에 동일하게 적용할 수 없다. 따라서 <강자의 조건>에서 말하는 조건에서 말하는 조건들(“‘강대국관용적이고 포용성이 높은 국가이다.”)은 절대적인 법칙이 아니다. 책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 말하자면, 강대국은 비교적 관용적이고 포용성이 높다는 말은 참이다. 하지만, 관용적이고 포용성이 높다고 해서 강대국인 것은 아니다.

그럼 <강대국의 조건>은 무의미한 책인가. 그건 아니다. 앞서 말 한대로, 이 조건이 무조건 강대국을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역사적 사건들을 살펴봤을 때 주변 상황이나 시대적 상황보다 우월한 경우 강대국으로 부상할 확률을 높여준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가능성의 문제다. 강대국의 조건이 전적으로 관용과 포용성에 기인하지는 않는다. 주변 상황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기존의 강대국이 약해지는 계기가 있다거나, 주변보다 우위에 있어야 한다. 더불어 상대를 압박할 수 있는 압도적인 군사력이나 경제력이 뒷받침 되거나, 최소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계책은 있어야 한다. 여기에 지리적인 이점이 필요할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역사는 순전히 에 따른 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게으른 사람의 변명이다. 가능성과 확률의 문제를 고민하기 보다는 운으로 치부해 버리면 판단하기 편할 따름이다. 숫자로 계량화 할 수조차 없는 이 확률과 가능성은 이러한 조건들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구체화 할 수 있을 뿐이다. <강대국의 조건>은 여기에 충실한 책이다.

만약 이러한 노력들의 성과로 조건들을 완벽히 파악할 수 있다면, 법칙과 원리 규명이 가능할까. 아이작 아시모프의 SF소설 <파운데이션> 시리즈에 등장하는 심리역사학이 등장하지 않는 이상 영원히 불가능하다. 아니 심리역사학이 등장하더라도 불가능하다. 앞서 말한 역사학의 특성 때문이다. 그리고 이 특성은 인간의 특성이기도 하다. 역사는 기본적으로 인간을, 인간의 삶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다. 둘의 관계는 분리해서 생각 할 수 없다. 그렇기에 같은 특성을 지닌다. 첫째 불완전하다. 역사도 인간도 완전하지 않다. 역사는 기억과 망각을 기본으로 하고, 인간은 인지 능력에 한계가 있다. 완전하지 않다. 또한 역사와 역사의 소재인 인간 모두가 고유하고, 유일무이하다. 거기에는 어떠한 시대적인 경향성, 지역적인 특성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불변의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정리되지 않은 헛소리가 너무 길었다. 학문적으로 따지고 들게 아니라면 흥미로운 내용이다. 확률이고 법칙이고 따지기보다 그냥 하나의 사실로 봐도 무방할 듯하다. 강대국은 여러 조건들의 조합으로 만들어지지만, 결국 그 국가를 유지하는 견실한 사회를 기반으로 한다. 견실한 사회는 무엇으로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실험은 인간이 존속하는 한 계속 될 것이다. 그간의 실험보고서로 본다면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우리를 되돌아본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떠해야 할까 생각하게 한다.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생존을 하려면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할까. 그리고 어떤 사회와 함께 해야 할지 고민의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인류역사 속에 존재했던 강대국들의 공통점이다. 수학용어를 빌어 표현하자면 충분조건이 아니라 필요조건을 찾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다. 그런 목적에 비추어 본다면 강대국에게 있어서 다양성관용보다 더 필요한 조건은 존재하지 않는다. p.9

나와 나의 공동체가 발전하는 데 있어서 상대방을 이롭게 하는 것이 나에게도 유리하다면 그렇게 하는 게 실용적인 것이다. 두 개의 공동체를 합쳤을 때를 단순계산식으로 표현하면 1+1이 된다. 이때 남들의 지위를 떨어뜨리는 것은 1+1의 결과물로 1.5를 만드는 셈이다. 1.5가 되었으니 0.5만큼 이득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1+1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3이 되었을 때로 생각한다면 사실은 엄청난 손해를 본 것이다. 로마인들은 이 시너지효과를 중시한 셈이다. 그래서 대등하게 패자들을 받아들였고, 이를 통해 시너지효과를 일으켜 이탈리아를 제패해 나갔다. 로마인들이 관용적인 태도로 패자를 받아들인 것은 그들이 도덕적인 민족이어서가 아니다. (p.97)히려 그들이 실용적인 민족이었기 때문이다. p.98

로마는 자신을 멸망직전까지 몰아넣은 적국의 후손까지 황제로 받아들일 수 있는 나라였던 것이다. p.130

몽골군은 사실 몽골인만으로 구성된 군대가 아니었다. 몽골군은 그들이 정복한 지역 어디에서나 새로운 동맹자들을 자신의 군대에 합류시켰다. 순수한 몽골인만의 집단이 아니라 무수한 이방인이 원래 몽골인에 결합한 집단이 몽골군의 실체였던 것이다. p.174

초원의 가난한 유목민에 불과했던 몽골족을 세계에서 가장 앞선 기술력으로 무장시킨 힘은 바로 이방인들을 거리낌 없이 받아들일 줄 알았던 몽골제국의 관용이었던 것이다. p.194

건강한 개방성에 도달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인간이 이렇게 자유로운 사고를 가지지 못하는 것은 불안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판단력, 자신의 의지, 자신의 자유로운 선태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자신과 혈연적으로, 혹은 지역적으로, 때론 종교적으로 공통점이 많은 사람들에게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p.203

징기즈칸은 싸움이 끊이지 않던 초원을 통일하는데 그치지 않고 특유의 개방서와 관용정신에 입각해서 초원의 모든 씨족과 부족을 아우르는 새로운 민족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리고 이 개방성과 관용정신은 그의 후계자들에게도 이어져 앞서 본 것처럼 몽골을 세계제국으로 성장시켰다. p.218

신이 인간에게 다섯 손가락을 주신 것처럼, 인류에게 행복을 추구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주셨다. 너희들에겐 경전을 주셨고 우리에겐 예언자를 주셨다. 우리는 예언자의 말씀 아래 보호받는다. 그리고 평화롭게 지낸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방식에 맞게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 뭉케칸 p.226

역사상 가장 방대한 영토를 지배했던 몽골제국. 제국이 인류에 남긴 것은 단지 엄청난 넓이의 영토를 지배했다는 기억만이 아니었다. 문명의 전달자 몽골제국이 있었기에 유럽은 잠에서 깨어나 근대를 시작할 수 있었고, 아시아와 아프리카도 다른 문명의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진정한 의미의 세계사는 몽골제국과 함께(p.252) 13세기에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그 세계사를 만든 힘은 서로 다른 문화를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고 융합했던 몽골제국의 관용이었다. p.253

이런 영국 해군의 혁신이 오히려 결핍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영국 해군에서 보병이 적함에 뛰어드는 전술을 적용하지 않고 포격전에 치중했던 것은 애초에 영국에 믿을 만한 보병이 없었기 때문이다. 주철대포를 개발한 것도 청동대포를 만들 만한 자원이 부족하고 재정도 풍족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반면 스페인은 자신이 잘하는 분야에 대한 집착 때문에 혁신의 기회를 놓칠 수 밖에 없었다. 세계 최광이란느 보병의 위력을 지키기 위해 포격적이라는 새로운 기술에 무관심했고 대포(p.367)의 개발도 덜 열성적이었다. 이렇게 혁신에 대한 무관심으로 인해 스페인 함대는 레판토 해전의 빛나는 승리 이후 불과 17년 만에 낡은 유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자신이 이미 잘하고 있는 것에만 집착하는 인간의 낡은 사고를 비웃는 것처럼 혁신의 속도는 항상 인간의 예상을 뛰어넘는 법이다. p.368

스페인의 종교적 불관용이 미친 영향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스페인도 주철대포의 효용성에 주목하고 주철대포 기술을 도입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스페인의 종교재판이 주는 공포 때문에 기술자들은 한 사람도 스페인으로 건너가지 않았다. 혈통과 종교의 순수성과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새로운 기술의 결합이란 양립하기 어려운 법이다. p.368

항상 국가적 기억은 후대에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강력한 국가적 기억은 실제 사건에 충분한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1588년 이후 바로 대단한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스페인은 엘리자베스 여왕 시절에 세 번 더 침략을 시도합니다. 세 번 모두 아주 위험했죠. 하지만 영국은 과거를 돌아보며 장기적으로 미래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이 중요한지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니콜라스 로저, p.372

1588년 이후 영국은 위대하고 강력한 해상국가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믿습니다. 백 년 동안 스스로에게 이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려줍니다. 그리고 드디어 이야기가 현실이 됩니다. 1714년 영국은 매우 뛰어난 해군력을 갖게 됩니다. 1588년이 아닙니다. 해상을 장악하는 데 120년이 걸렸습니다. 스스로에게 계속 이야기했기 때문입니다. 계속 사실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세계를 보는 방식을 만들었끼 때문입니다. 실제로 영국은 이루어 냈습니다. 무적함대에 대한 승리는 영국이 위대한 해상 국가라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이는 사실이라기보다는 문화적 해석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신념입니다. p.376

종교재판은 분명 인종청소와 종교적 불관용, 다양한 인구 정화의 일환입니다. 너무 학문적이고 세세한 것을 제외하고 13세기 이단에 맞서 교황이 시작한 종교재판과 15세기 말인 1478년에 스페인이 시작한 스페인 종교재판을 구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폴 프리드먼, p.412

이교도에 대한 관용은 톨레도를 정치, 문화, 산업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p.427

두 가지 방법을 통해 초강대국의 지위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한 가지는 순수한 군사적 지위입니다. 몽골의 칭기즈칸은 순수한 군사적 이유로 초강대국이 되었습니다. 군사적 패권을 통해 초강대국의 지위를 노리는 경우입니다. 초강대국이 되는 다른 방법도 있습니다. 경제적 패권입니다. 다시 말해 가장 강력하고 활발한 경제를 뜻합니다. 17~18세기에 강력한 군사력을 갖고 있긴 했지만 네덜란드는 절대적으로 우세하지는 않았습니다.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항상 프랑스가 더 군사적으로 강력했습니다. 스페인이나 오토만 제국이 더 군사적으로 강력했다고 주장하는(p.479)이들도 있습니다. 최고의 역동적인 경제는 네덜란드를 매우 강력하게 만들었습니다. ... 아마 네덜란드는 최초의 경제적 초강대국 사례일 겁니다. ... 어떻게 경제적으로 강력해질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지리적 이점 때문이 아닙니다. 종교적 관용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쉽게 네덜란드로 이주했습니다. 다양한 문화와 다양한 경제적 기량을 가진 여러 사람이 모여 네덜란드가 경제적 초강대국이 되게 만들었습니다. 원자재가 없는데도 제조업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유럽에서 제일가는 항구가 없는 데도 운송업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p.480) 일종의 다문화주의입니다. 대단한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인 다문화주의가 17세기 네덜란드가 진정한 초강대국이 되게 만들었습니다. 다음 세대의 유명한 사상가가 이 교훈을 받아들입니다. 일례로 위대한 영국 사상가 존 로크는 이민에 관한 조약을 작성했습니다. 조요에 상관없이 영국에 오려는 모든 이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이 모든 기술을 가지고 오기 때문입니다.” 스티븐 핀쿠스 p.481

네덜란드의 모든 국민은 평등한 환경에서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종교, 신념, 정치적 의견, 인종 또는 성별 등의 어떠한 배경에 바탕을 둔 차별도 금지되어야 한다.”

헌법 1조는 그 나라 헌법이 지향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를 드러낸다. 그런 점에서 네덜란드 헌(p.488)법은 실로 독특한 1조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다른 어떤 가치보다도 관용을 제1의 가치로 내세우기 때문이다. 아마도 17세기뿐 아니라 지금 이 수난에도 네덜란드인들에게는 관용이 그 어떠한 가치보다도 중요한 가치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p.489

관용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는데 현재의 기준으로 그 시대의 관용정도를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동 시대의 다른 국가들에 비해서 더 관용적이었는가 아닌가를 보아야 한다. p.534

엄청난 인력이 안정적으로 유입되는 현상은 북미 대륙의 원주민인 인디언들에게는 매우 큰 불행이었다. 원주민의 인력에 의존하지 않고도 국가의 성장과 발전에 아무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인디언들은 미국이라는 국가의 형성과정에서 배제되었다. 쫓겨나고 학살당하는 것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운명이었다. 이것이 어쩌면 상대적 관용이 지닌 잔인한 면일 것이다. p.537

자유는 끊임없는 투쟁이라고 합니다. 자유는 끊임없는 투쟁이라고 합니다. ! 주여, 너무 오랫동안 싸우어왔습니다, 이제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자유는 끊임없는 죽음이라고 합니다. 너무 오랫동안 죽었습니다. 이제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이제 자유로워 져야 합니다. p.573~574, 마샬 간즈

민권운동이 성공적이었던 이유는 텔레비전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비폭력은 카메라가 촬영할 때만 가치 있는 전략입니다. 끔찍한 공격을 당했는데 증인이 아무도 없다고 생각해보세요. 모든 게 허사입니다. 누군가 증인이 있을 때 비폭력이 중요해집니다. ...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p.591, 사무엘 로버츠

자의적 차별에 근거한 어떤 사회도 생산적이지 않습니다. 궁극적으로 모두에게 있어서 말이죠. 궁극적으로 사람들의 신념과 이상적인 공정한 행동을 이끌게 됩니다. 민주주의와 자유시장 혹은 노동력을 보유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공정한 경쟁의 장이 없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이를 알아차리기 시작하면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고 현명한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규정을 준수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런 점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의적인 피부색이나 성적 취향 혹은 종교가 더 중요합니다. 그러면 아무도 공정한 경쟁을 믿지 않게 됩니다. 사람들은 서로 차별하며 조작된 경쟁이라고 말할 겁니다. 열심히 일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득을 봅니다. 경쟁이 자기에게 유리하게 조작돼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죠. 모두에게 좋지 않은 일(p.608)입니다. 이런 식으로 좋은 제도를 만들 수 없습니다. 저자를 만들려고 애쓰는 셈입니다.” 사무엘 로버츠, p.609

남의 나라에 가서 성공한 자랑스러운 우리 민족의 신화는 요즘도 사그러들줄 모른다. 미국에서 세계은행 총재로 취임한 김용 총재도 한때 대단한 화제가 되었고, 올랑드 대통령이 임명한 프랑스의 플뢰르 펠르랭(한국명 김종숙) 문화부 장관도 남의 나라에서 성공한 자랑스러운 한(p.615)민족의 DNA로 화제를 모았다. 그런데 이 두 케이스에서 정말 대단한 것이 우리 민족일까? 그 우수한 인재들이 누구를 위해 일하고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대답은 자명하다. 정말 대단한 것은 사실 그 우수한 인재들을 자기 나라에서 성공하게 만든 미국과 프랑스인 것이다. p.616

혁신도 관용이나 개방성이 없이는 발을 붙이지 못하는 법이다. 낯선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양한 사고방식과 문화를 뒤섞어야만 진정한 혁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 우리 안에 이미 들어오고 있는 다문화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는가는 단지 도덕적인 문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생존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p.617

지금까지 살펴본 2,500년의 역사는 말하고 있다. 강대국을 만든 리더십의 실체는 힘이 아니다. 관용과 개방을 통한 포용이다. “제국은 말 위에서 건설되었지만, 말 위에서 다스릴 수는 없다.”는 몽골 제국의 오랜 경구는 묻는다. p.619

우리 시대에 우리는 커다란 위기의 순간을 맞으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전재와 평화의 이슈, 번영과 침체의 이슈 등 중대한 이슈에 대한 토론으로 점철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이슈가 미국 자신의 감춰진 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경우는 드뭅니다. 또 성장이나 풍요, 복지나 안보가 아니라, 사랑하는 조국의 가치와 목적과 의미에 대한 도전을 받는 것도 드문 일입니다.

미국의 흑인들에게 평등한 권리를 줄 것인가 하는 문제가 바로 그러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모든 적을 무찌르고, 부를 두 배로 늘리고, 별을 정복하더라도, 이 문제에 대해 평등하지 못하면, 우리는 국민으로서 또 국가로서 실패한 것입니다....... 흑인의 문제란 없습니다. 남부의 문제도 없습니다. 북부의 문제도 없습니다. 오로지 미국의 문제가 있을 뿐입니다 오늘 밤 우리는 민주당원이나 공화당원으로서가 아니라 미국 국민으로서 이 자리에 모였으며, 이 문제를 해결할 미국 국민으로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것, 즉 피부색이나 인종, 종교나 출생지 때문에 사람의 희망을 부정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할 뿐 아니라 미국을 부정하는 것이며 미국의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바친 고인들을 욕되게 하는 일입니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인간의 권리에 대한 이러한 숭고한 시각이 번성하려면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려야 한다고 믿었습니다......헌법은 인종이나 피부색 때문에 투표할 수 없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 앞에서 이 헌법을 지지하고 수호하겠다고 맹세를 했습니다. 이 맹세에 따라 이제 행동해야 합니다.

나는 투표할 권리를 막는 불법적 장벽을 제거하기 위한 법안을 수요일에 의회에 상정할 것입니다. 이 법안은 흑인들에게 투표권을 부인하는 데 이용되어 온 투표권 제한 규정을 연방, 각 주, 각 시군 등 모든 수준의 선거에서 폐지할 것입니다. 이 법안은 아무리 교묘하게 시도하더라도 헌법을 속이는 데 사용할 수 없는 단순하고 동일한 기준을 세울 것입니다. 이 법안은 주 관리가 유권자 등록을 거부하는 경우 미합중국 정부 관리가 유권자를 등록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것입니다. 이 법안은 투표권의 행사 가능 시점을 지연시키고 지루하고 불필요한 소송을 제거할 것입니다. 마지마으로, 이 법안은 적절하게 등록된 유권자에게 투표가 금지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설사 우리가 이 법안을 통과시킨다 하더라도, 싸움은 끝난 것은 아닙니다. 셀마에서 일어난 일은 미국 모든 지역과 모든 주에 미치는 훨씬 더 큰 운동의 일부분이었습니다. 이는 미국의 흑인들이 미국 국민으로서의 삶의 모든 축복을 누리기 위해 펼친 노력이었습니다.

그들의 명분이 바로 우리의 명분이 되어야 합니다. 해로운 편협과 불의의 유산을 극복해야 하는 사람은 흑인 뿐 아니라 우리 모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함께 승리할 것입니다.

B.존슨_미국 36대 대통령(p.594~596)_‘미국의 약속연설 중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1 2 3 4 5 6 7 8 9 10
진행중인 이벤트
트랙백이 달린 글
내용이 없습니다.
스크랩이 많은 글
내용이 없습니다.
많이 본 글
오늘 504 | 전체 42069
2005-12-30 개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