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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 연재] 성수의가 148 | 연재 소설방 2013-12-01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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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윽"

한차례 억눌린 신음을 토하면서 흑의 경장 차림의 사내 하나가 비칠비칠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사내의 전면에는 여인이라고 부르기에는 아직 조금 모자른 듯한 절색의 소녀 하나가 얼굴 가득 미안한 표정을 떠올리며 서있었다.

"어머! 괜찮으세요?"
"크윽, 괜,괜찮소이다. 손속에 사정을 두어 고맙소이다"
"헤헤, 괜찮으시다니 다행이예요. 그럼 다시 할까요?"
"흐윽, 자,잠시만, 잠시만..."
"으응?"

다급히 거절하면서 한걸음 뒤로 물러나는 흑색 경장의 무인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는 다름아닌 초혜였다. 그리고 낭패한 모습의 흑의 경장 사내는 다름아닌 천마신교의 흑룡대주인 추자의였다. 천마신교가 마화이송단에 합류하는 조건으로 설지가 제시했던 비무의 당사자가 오늘은 초혜와 추자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을 마화이송단의 많은 무인들이 지켜 보고 있었다.

마화이송단에 천마신교가 합류하고 나서 진소청과 초혜가 흑룡대와 벌이기 시작한 비무는 이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후기지수들에게는 상당한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처음 비무가 시작될 때만 하더라도 그리 많은 이들이 비무를 주시하지는 않았었다. 그저 호기심에 이끌린 몇몇 후기지수들만이 관심을 가지고 비무를 지켜 보았던 것이다. 그런데 언제 부터인가 비무를 지켜 보는 것만으로도 무공 증진에 상당히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가 후기지수들 사이에서 퍼지기 시작하면서 점차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많아졌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종내에는 비무가 벌어지기 시작하면 대부분의 후기지수들과 문파의 중진들 까지 하던 일을 팽겨쳐 두고 비무를 지켜 보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리고 그런 상황은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초헤와 추자의의 비무가 시작되자 마자 후기지수들을 포함한 많은 무인들이 두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면서 뭐라도 하나 더 건질려고 눈에 핏발 까지 세워 가면서 지켜 보고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휴~ 이제 되었소. 초소저, 다시 시작합시다"
"헤헤. 그럼 다시 갈게요"

짐짓 즐겁다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을 한 초혜가 다시 추자의를 향해 적수공권으로 덤벼 들었다. 반면에 초혜를 맞이하는 추자의의 손에는 눈이 시리도록 시퍼렇게 날이 서있는 장검 하나가 들려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게 보이는 보검에 맞서는 것이 적수공권이라고 한다면 누가 보더라도 보검의 우세를 예상하게 될터이다. 하지만 비무를 지켜보는 무인들의 눈 앞에서 지금 벌어지는 상황은 예상과 달리 보검을 든 추자의가 형편없이 밀리고 있었다.

태극권 아닌 태극권으로 날이 시퍼런 보검에 맞서며 주먹을 내지르는 초혜의 공격을 맞아 추자의는 공격은 커녕 연신 뒷걸음을 치면서 방어하기에도 벅차보였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연신 뒤로 밀리던 추자의는 결국 공격 다운 공격 한번 제대로 못해보고 초혜가 내지른 일권에 적중당하여 꼴사납게 바닥에 나뒹굴고 말았다.

하늘을 지붕 삼아 땅바닥에 드러누워 버린 추자의의 가슴이 거친 숨소리와 함께 심한 기복을 보이는 것으로 보아 체력적으로 한계치에 다다른 듯 보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추자의의 표정에서 한가닥 만족의 미소가 피워 오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우왓! 초혜 언니가 또 이겼다"
"호호. 그러게 우리 연이 말대로 혜아가 또 이겼구나"
"설지 언니! 초혜 언니 무공이 태극권이지?"
"맞아, 무당의 태극권이야"
"정말 멋있어. 나도 저거 배울래"
"태극권을?"
"응, 응! 초혜 언니 보니까 정말 정말 멋져"

쓰러진 추자의를 향해 가볍게 포권을 하고 뒤돌아 서려던 초혜는 사도연이 발하는 감탄성에 흐뭇한 미소를 얼굴 가득 그렸다. 하지만 얼굴 가득 미소를 떠올린 채 사도연을 향해 보무도 당당히 걸음을 옮기려던 초혜는 갑자기 날아온 비수 하나에 격중 당해 휘청거리며 쓰러질뻔한 상황에 직면하고 말았다.

"저런 무식한 권법은 배워서 어디다 쓸려고?'

'무식한', '무식한'이라는 설지의 말이 초혜의 가슴에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콕 박혀 들었던 것이다.

"설지 언니!"
"응? 아하하, 들었니? 들었구나, 미안, 미안"
"씨! 태극권이 뭐가 무식해?"
"무량수불! 허허허"

초혜의 항변에 맞춰 일성 도장의 입에서도 의미를 알수 없는 도호와 웃음 소리가 흘러 나왔다. 하지만 설지의 말이라면 하늘이 노란색이라고 해도 철썩 같이 믿고 따르는 사도연은 이내 풀죽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가 보기에는 멋있게 보이는데... 정말 무식한거야?"
"그럼, 자고로 여자는 무공이든 뭐든 조신하고 예쁜 것들만 골라서 해야 하는거야"
"응? 예쁜 것들? 무공도 예쁜 무공이 있어?"
"그럼 있지. 이 언니가 보여줄까?"
"응!"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사도연을 따뜻한 미소로 바라 보던 설지가 예쁜(?) 무공을 보여 주기 위해 막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이었다. 바닥에 드러누워 숨을 고르고 있던 추자의가 때마침 힘겹게 일어나서 초혜를 향해 포권을 하며 입을 여는 바람에 설지는 하려던 행동을 잠시 미루고 주춤거려야 했다.

"초소저! 고맙소이다. 소요나찰이라는 별호가 전혀 과장되지 않았다는 것을 이 추모가 오늘 다시 한번 느꼈소이다"
"예? 소요... 뭐라고요?"
"허! 모르셨소? 하긴 다른 이의 별호는 잘 알아도 정작 자신의 별호는 모르는 수도 있는 법이니까... 초소저! 초소저의 별호가 바로 소요나찰이외다"
"소요, 소요나찰이라고요??"

초혜가 자신의 괴상한 별호를 듣고 잠시 황당해 하는 그 순간에 몇사람이 키득거리면서 웃기 시작했다. 당연히 그 웃는 사람들 중에는 설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설지 언니! 이게 무슨 소리야? 내가 왜 소요나찰이야?'
"응? 호호호, 그러게 숙모께서 뭐라고 하셨니? 조신하게 행동하라고 하셨잖니?"
"아이 참! 그건 나도 아는데 소요나찰이 뭐냐니까?"
"호호호, 설마 벌써 잊은건 아니겠지? 박산현에서 잘린 팔,다리를 들고 헤헤거리던 네 모습을..."
"응?"
"호호호, 그날 그런 네 모습을 보고 꼬맹이 도사가 불현듯 소요나찰이라고 중얼거렸다는 것 아니겠니, 그게 그렇게 된거야. 호호호, 아! 걱정 하지마, 그래도 정파에서는 소요나찰이라고 안 부르고 소요선자라고 하는 것 같더라. 호호호"
"응? 초혜 언니가 나찰이었어?
"호호호"
"허허허"

사도연이 기어코 마지막 비수를 날리며 치명적인 공격을 감행하자 지켜 보던 설지와 사람들은 마침내 커다랗게 웃음을 터트리고야 말았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딱 한사람만은 사색이 되어 급히 일성 도장의 뒷춤으로 숨어 들고 있었다. 바로 소요나찰이라는 별호를 은연 중에 초혜에게 붙여 버린 장본인인 현진 도사였다. 그러나 그런 현진의 행동은 조금 뒤늦은 감이 있었다.

날카로운 비수 두 개에 격중당하면서도 주위를 살피고 있던 초혜의 시선에 현진의 행동이 고스란히 포착되었던 것이다. 다음 순간 사람들의 웃음 소리를 뚫고 딱하는 경쾌한 소음 하나와 그에 맞춘 비명 하나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악!"

이형환위를 무색케 하는 동작으로 한순간에 사람들의 시선에서 사라졌던 초혜가 어느사이엔가 일성 도장의 뒤에 당도하여 숨어 있던 현진 도사의 앞 이마를 작은 손가락으로 가격했던 것이다.

"뭐? 소요나찰? 너 죽을래?"
"크윽, 초사저, 비겁하게 갑자기 암습하는게 어디 있습니까?"
"뭐? 암습? 이게 죽을려고, 정말 암습 한번 당해 볼래?"
"아, 아닙니다"

양손을 들어 올려 황급히 손사래를 치며 뒤로 물러나는 현진 도사를 향해 주먹을 들어 보인 초혜가 씩씩거리면서 큰 걸음으로 물러 났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기도 하거니와 생각해 보니 소요선자, 아니 소요나찰이라는 별호도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찰이었어?'하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 보는 사도연의 시선이 탐탁치 않기는 했지만...

"설지 언니! 이제 보여 줘"
"응? 아! 그래 보여 줘야지. 가만 밍밍 이 녀석이 어디 있나? 밍밍! 밍밍!"

화를 삭힌 초혜를 바라 보며 다시 한번 키득거렸던 설지가 사도연의 재촉에 보여주려던 예쁜 무공을 보여 주기 위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러자 장내에는 초혜와 추자의의 비무를 지켜보던 아까와는 또다른 기대에 찬 열기가 사람들 사이에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돌연 설지가 밍밍을 찾기 시작하자 의아한 시선을 서로에게 주었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장내의 모든 이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한혈보마로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서 제일 팔자 좋은 당나귀 밍밍의 종적을 시선으로나마 찾아 나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면사에 가리워진 듯 자세한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성수신녀의 무공 실체가 이 자리에서 한자락이나마 벗겨지게 되었다는 기대감이 큰 파장을 일으키며 사람들로 하여금 일심동체를 형성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기 싫었음인지 잠시 후 풀숲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당나귀 밍밍이 불쑥 튀어 나왔다. 그리고 곧바로 설지 쪽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밍밍, 뭐하고 있었어?"
"푸르릉"
"그래? 알았어, 술 훔쳐 먹으면 안돼, 알았지?"
"푸릉,푸르릉"
"호호호, 알았어. 묵아가 필요해서 불렀어"

밍밍과 요상한 대화를 주고 받던 설지가 밍밍을 향해 가볍게 손짓을 하자 밍밍의 등에 안장 처럼 자리잡고 있던 커다란 가죽 주머니에서 검 하나가 날아 올랐다. 그 모습은 사람들이 보기에 마치 허공섭물 처럼 보이기는 했으나 자세히 보면 무언가가 조금 달랐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지만 설지와 교감을 나눈 묵혼이 설지가 이끄는 기운을 따라서 스스로 날아 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절대 고수들이 시전하는 허공섭물과는 어딘가 모르게 조금 다른 양상으로 허공을 가로지른 묵혼이 마침내 설지의 손안으로 날아 들었다. 그리고는 오랜만이어서 기분 좋다는 듯 웅혼한 검명을 웅웅 토해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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