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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 연재] 성수의가 157 | 연재 소설방 2014-02-02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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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소리 뱉음과 동시에 잠시 비틀하는 것 같던 호걸개의 모습이 사도연의 눈 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희미한 잔상을 남기며 사라져간 호걸개의 모습에 놀란 사도연이 '어?'하는 순간에 호걸개는 이미 두자성의 손바닥에 뒷통수를 맡긴 채 길 안내를 받고 있던 파락호들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개방 비전의 취팔선보가 극성으로 발휘된 탓이었다.

"이 놈들이냐? 연이를 저렇게 만든게"
"어? 아! 예. 태상방주 어르신"

무언가 눈 앞에서 희끗하는 것 같더니 자신들의 앞에서 온전히 모습을 드러내는 호걸개를 보고 기겁을 하는 파락호들과 달리 두자성은 조금 놀라기는 했으나 이내 평정을 유지하며 곧바로 대답했다. 호걸개의 기색으로 보건데 잠시라도 지체할라 치면 고이 넘어가진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두자성의 오랜(?) 산적질 경험에서 저절로 형성된 재빠른 눈치가 호걸개의 취팔선보 만큼이나 극성으로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런 두자성의 재빠른 응답도 다음순간 들려온 날카로운 목소리에 묻혀 그 위력을 순식간에 잃어 버리고 말았다.

"비켜, 비켜요! 으윽, 앞이 안보여"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초혜였다. 기세등등하게 파락호들 앞에 나타났던 호걸개나 그런 호걸개의 비위를 맞추며 재빠르게 응답했던 두자성의 노력이 한순간에 별무소용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응? 그게 뭐냐?"
"거지 할아버지세요? 으윽, 앞이 안보여서 그런데 객잔 입구가 어디예요?"
"입구? 그야 네 녀석 앞 삼장 정도 쯤에 있다만"
"아휴, 그럼 이제 다온거네. 곧바로 삼장이라고 하셨죠?"
"그,그래"
"청청 언니, 잘 따라와"
"응! 걱정마"
"거지 할아버지, 옆으로 좀 비키세요"
"오,오냐. 그 놈 참"

잠시전의 기세등등했던 모습은 어디론가 떠나 보내고 대신 황당하다는 표정을 얼굴에 떠올린 호걸개는 마치 취팔선보를 막 배우기 시작한 개방의 일결제자들 처럼 비틀거리는 모습으로 객잔을 향해 걸어가는 초혜와 진소청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 보고 있었다.

"야! 초록이, 저게 다 뭐냐?"
"아! 예. 태상방주 어르신, 다름이 아니라 설지 아가씨가 성수신녀임을 안 사람들이 아가씨드리라면서 저렇게 들려 보낸겁니다요"
"그래?"
"예. 태상방주 어르신, 달콤한 냄새가 솔솔 풍겨 나오는 것으로 봐서 아마도 저게 전부 먹거리 같습니다요"
"먹거리라고?"

먹거리라는 소리에 갑자기 희색이 만면해진 호걸개가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두자성의 눈 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먹거리에 약한 거지답게 쓸데없는 곳에서 경악할만한 무공을 드러내는 호걸개였다.

"연아! 어서, 어서 올라가자꾸나"
"예! 할아버지. 헤헤"
"어허, 설지 넌 뭐하고 있는게야? 다들 어서 올라가지 않고"

갑자기 부산스러워진 호걸개를 보고 낮게 웃음을 터트린 설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옮겼다.

"호호, 알았어요"
"초록이 넌 그 물건들 잘 챙겨서 올라오너라"

사도연의 손을 잡고 객잔 입구를 지나 급하게 안으로 사라져 가는 호걸개가 일행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다. 호걸개가 이처럼 일행들을 재촉하는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앞서 객잔으로 들어간 초혜와 진소청이 자신들의 눈을 가릴만큼 무언가를 잔뜩 쌓아 들고 위태위태한 걸음을 옮기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많은 것들이 전부 먹거리라니... 거지의 본분이 이때 발휘되지 않으면 언제 발휘되겠는가?

한편 살기 까지는 아니지만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나타나 파락호들을 호되게 징치할 것만 같았던 호걸개가 고작(?) 먹거리더미에 홀랑 넘어가 사라져 가는 것을 보고 철무륵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참, 어르신 하고는..."

설지를 포함해서 백아와 호아 그리고 비아 까지 모두 객잔으로 들어가는 것을 바라 보던 철무륵도 곧바로 걸음을 옮겨 객잔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일행들 중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두자성을 비롯해서 세 명의 파락호들 마저 객잔 안으로 들어가 버리자 부산스러웠던 객잔 앞은 휙하고 지나쳐 가는 바람 한줄기와 함께 순식간에 휑해지는 것 같은 분위기에 빠져 들었다. 아마도 또 다른 객들의 발길이 이어져야 떠들썩한 분위기가 되살아나게 될 것이다.

"아휴! 힘들어"

객잔 이층의 창밖으로 가볍게 날아(?) 내려갔던 초혜가 뛰쳐나갈 때와는 달리 눈이 보이지 않을 만큼 잔뜩 쌓아올린 물건들을 양손으로 받쳐 들고 머리 꼭대기만 간신히 보인채 다가오자 남아있던 일성도장과 일행들은 다들 의아한 표정으로 그런 초혜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초혜 뿐만 아니라 진소청도 무언가를 잔뜩 들고 들어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모습으로 빈 탁자를 찾아 다가간 초혜와 진소청은 서둘러서 자신들의 품안에 고이 안겨져 있던 물건들을 조심스럽게 탁자 위에 내려 놓았다. 힘겹게(?) 들고 왔던 물건들을 내려 놓고 나서야 비로소 한숨을 돌리는 초혜와 진소청이었다. 의원이기는 하지만 내공을 지닌 무인이기도 했기에 그깟 물건들이 뭐 그렇게 무겁겠냐만은 초혜는 짐짓 힘든 표정을 지으며 양쪽 어깨를 번갈아 톡톡 두드려대었다.


"무량수불! 뭘 그렇게 많이 가지고 온게냐?"
"호호호, 그게 말이죠. 이게 전부 사람들이 설지 언니 먹으라고 준 것들이예요"
"응? 그게 무슨 말이더냐?"
"호호, 그러니까 사람들이 설지 언니가 성수신녀인걸 알고 나더니 설지 언니 먹으라면서 들려준 거예요"
"허허, 그랬구나. 무량수불!"
"켈켈켈, 뭣들하는게야? 사람들의 성의를 생각해서 어서 풀어 보지 않고"
"안돼요. 설지 언니가 먼저 풀어봐야죠"
"도사 할아버지, 스님 할아버지..."

조용하기만 했던 객잔 이층이 호걸개가 들어오면서 부터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뒤이어 호걸개의 손을 잡고 있던 사도연이 일성 도장을 비롯한 할아버지들(?)에게 들고 온 당과를 하나씩 내밀자 그때 부터 객잔 안은 훈풍과 함께 따뜻한 웃음 소리들이 추가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허허허, 고맙구나"
"아미타불! 허허허"

일성 도장과 혜명 대사는 사도연이 고사리 손으로 내미는 당과를 받고는 흡족한 미소를 베어 물었다. 물론 두 사람 다 사도연의 뺨에 난 붉은 손자국을 보았지만 호걸개와 달리 별다른 내색은 하지 않고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는 모르지만 설지가 잘 해결하리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혜아! 그거 풀어봐도 돼. 풀어 봐"
"응! 설지 언니. 알았어"

뒤이어 계단에서 모습을 드러낸 설지의 말에 초혜는 연잎으로 잘 묶여져 탁자 위에 쌓여 있는 꾸러미 중 하나를 골라 조심스럽게 풀어 헤쳤다. 연잎이 벗겨질 때마다 달짝지근한 향이 은은히 스며 나와 사람들의 코를 자극했으며 초혜의 조심스런 손길에 의해 연잎이 모두 제거되자 더욱 진한 향이 사람들의 코를 자극했다. 그리고 그렇게 모습을 드러낸 달콤한 향기의 정체는 다름아닌 잘 말린 과일이었다.

"우와! 말린 과일이다. 이거 설지 언니가 무지하게 좋아하는건데"
"햐! 맛있겠다"
"엥? 그럼 이게 전부 혹시 말린 과일인거냐?"

사도연과 호걸개의 반응이 극과극으로 나뉘어졌다.

"설지 언니, 나 이거 하나 먹어도 돼?"
"그럼! 먹어도 되지. 하지만 그전에 먼저 보령환 하나 먹어야지"
"응? 싫어!"

말린 과일들을 보며 눈을 반짝이던 사도연이 보령환 이야기가 나오자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뒷걸음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잽싸게 뒤로 돌아 계단을 뛰어내려 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사도연의 시도는 막 계단을 올라오던 철무륵에게 가로막혀 저지당하고 말았다.

"철숙부! 그 녀석 잡아"

설지의 외침과 함께 도망치려던 사도연의 뒷덜미가 철무륵의 커다란 손에 의해 잡아채인 것이다. 그리고 달랑 들려진 사도연의 몸은 자신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설지 앞에 사뿐히 놓여졌다.

"호호, 요녀석 어딜 도망갈려고, 설아! 보령환 하나 줘 봐"

잡낭(가방) 속에서 설아의 작은 머리가 쏙하고 올라 왔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잡낭 속에서 무언가 뒤지는 듯 작은 움직임이 있더니 잠시 뒤 설아의 작은 머리 대신 보령환 하나가 밖으로 그 모습을 드러 내었다.

"자! 아~ 해"
"힝, 싫은데... 맛없단 말이야. 철대숙 미워"

사도연의 몸을 달랑 들어서 옮겨 놓은 죄로 괜한 욕을 먹는 철무륵이었다.


"크하하, 이 놈아. 투정부리지 말고 얼른 먹기나 하거라."
"힝~ 아~"

마지못해 입을 크게 벌리는 사도연의 입속에 설지가 보령환 하나를 넣어 주었다.

"꼭꼭 씹어 먹어"
"응"

먹기 싫어하던 모습과 달리 입안으로 보령환이 들어오자 작은 입을 오물거려 의연하게(?) 꼭꼭 씹어 삼키는 사도연이었다.

"우웩! 맛없어"

마지막 부스러기 까지 모두 씹어 삼킨 사도연의 반응이 재미있어 지켜보던 사람들의 입에서 웃음 소리가 흘러 나왔다.

"호호, 자! 말린 과일이야. 이것도 꼭꼭 씹어 먹어야 해"
"응, 응! 알았어. 근데 이거 많이 먹어도 돼?"
"그럼, 먹고 싶은 만큼 먹으렴. 그전에 손 줘봐"
"응!"

사도연의 손을 잡은 설지가 보령환의 약효가 빨리 돌도록 하기 위해 미세한 진기를 불어 넣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사도연과 무언가를 작은 소리로 소근거리는 설지였다. 이 모습을 곁에서 바라 보던 화산파 장문인 유도옥이 나직히 감탄성을 발했다. 설지의 모습으로 미루어 보건데 분명히 진기도인을 하고 있는 것일텐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사도연과 대화를 주고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릇 진기도인이란 아차 하는 순간에 파탄지경에 다다랄 수 있는 것이기에 극도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것이었다. 그런데 설지의 지금 모습을 보면 평상시와 조금도 다름없는 모습으로 대화를 하면서 진기도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화산파 장문인인 자신 조차도 쉬이 행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자식들이... 빨리 빨리 안올라가"

화산파 장문인 유도옥이 나직히 감탄성을 발하던 그 순간 다시 객잔 이층의 계단 쪽에서 큰 목소리와 함께 부산한 움직임이 감지 되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파락호라는 물건들을 챙긴 후 일행 중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객잔을 향해 걸음을 옮겼던 초록이 두자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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