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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 연재] 성수의가 161 | 연재 소설방 2014-03-02 12:06
http://blog.yes24.com/document/7606079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더니 지금 경동각의 심정이 딱 그러했다. 이런 미친 놈들이 어디 건드릴데가 없어서 천하제일가라는 성수의가의 가솔들을 건드렸단 말인가. 거기다 성수신녀의 제자라니... 점입가경으로 이어지는 두자성의 말을 들으면서 말문이 턱하니 막히는 것은 둘째치고라도 당장 자신들의 앞날 부터 걱정해야 할 처지에 빠졌다는 것을 그제서야 실감하는 경동각이었다.

흑사방의 정현 지부 소속이라고는 하나 선량한 양민들을 등쳐 먹는 무리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자신들이 감히 천하제일가인 성수의가를 건드리고도 무사할 수 있으리라는 것은 언감생심,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였던 것이다. 안휘성 임안에서 태어난 경동각은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던 열두살 시절에 그저 주먹 하나만을 믿고 파락호 생활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로 부터 꼭 스무해만인 지난 해에 간신히 흑도방의 정현 지부를 맡게 되었을 때 현판을 올려다 보면서 얼마나 가슴벅차 했던가? 더불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던 그 때를 떠올리자니 갑자기 눈에서 한줄기 분루가 떨어졌다.

밑의 아이들 단속을 제대로 하지 못한 자신의 탓도 있겠지만 어렵게 올라선 지금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던가? 양민들을 괴롭히는 일을 그리 마땅찮아 하면서도 반발을 우려하여 아녀자들을 핍박하는 행위 까지 그저 모른 척하고 두 눈을 질끈 감아 주었던 것은 다 그런 이유에서 였다. 그렇게 자기 휘하 파락호들의 눈치를 봐 가며 때론 다독이면서 어렵게 현상 유지를 하던 경동각이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이렇게 드러나고 말았다.

지금 이 순간 경동각의 머리 속에 떠오른 생각은 해서는 안될 일은 물론 어지간한 일 까지 죄다 눈을 감아 버렸던 그동안의 처신이 커다란 후회로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거느리던 아이들을 나몰라라 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허면 어쩌시겠소? 이 미천한 놈의 목숨으로 사죄하리까?"
"응? 목숨이라고? 호! 파락호치곤 제법 기개가 있는 놈이었구나. 허나 네 놈의 처분은 내 권한이 아니다. 막내 아가씨와 나는 설지 아가씨의 명을 받고 네 놈들을 잡으러 온 것 뿐, 네 놈들의 처분 까지는 내 알바가 아니다는 그런 이야기다."
"서,설지 라는 그 아가씨가 성수신녀이신게요?"

"잘 알고 있구나. 그래, 바로 그 분이시다"
"허면 내 그 분을 찾아 뵙고 죄를 청할테니 아이들은 그만 풀어주시오"
"쯧! 그 놈 참! 막내 아가씨, 어찌 할까요?"
"어쩌긴요. 전부 데려 가요. 연이가 다쳤는데 한 사람만 데려 갔다가 무슨 불벼락이 떨어질 줄 알고"

그렇게 말하면서 과장되게 몸을 부르르 떠는 초혜였다.

"그,그렇겠지요? 하하."

"설지 언니가 알아서 할테니 전부 데려 가요"

"옙, 막내 아가씨. 들었느냐? 지금 부터 일렬로 줄을 지어 나를 따른다. 혹시라도 도망을 가려고 쓸데없는 눈치를 보는 놈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양쪽 다리를 모조리 분질러 줄테니 알아서 처신들 하거라."

한편 그 시각, 흑사방 정현 지부의 무너진 누각 앞에서는 시전 상인들과 더불어 제법 많은 사람들이 흑사방의 내부를 향해 고개를 들이밀고 환호를 터트리고 있었다. 초혜의 봉황후에 놀라 달려왔던 사람들이 가장 먼저 본 것은 녹색 옷을 입은 장한이 여기저기 번쩍 번쩍하는 것 같더니 순식간에 수십명의 파락호들을 모조리 쓰러뜨리는 모습이었다.

스스럼없는 패악질은 물론이고 평소의 행동거지에서도 질이 좋지 않기로 소문난 파락호들 때문에 몸살을 앓았던 많은 사람들은 너무도 손쉽게 그런 파락호들을 때려 눕히는 두자성을 보자 가슴 속이 후련해지는 것 같은 대리만족과 함께 그 움직임이 실로 경이롭다는 생각을 다들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다 그런 사람들 속에서 누군가 '파락호들에게는 저 양반이 그야말로 사신이구만'하는 말이 흘러 나왔다.

그리고 그 말에 크게 공감한 시전 상인 중 하나가 '그렇다면 저 양반이 녹광사신이구만'이라며 호응을 했다. 설지에게서 받은 초록이라는 애칭이 녹광사신이라는 별호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었으며 녹림의 녹광사신 두자성이 처음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순간이었다

"이보게 비켜서게, 녹광사신과 아가씨 께서 나오시네"
"얼른 얼른 비켜서시게들"
"이제 보니 녹광사신이라는 저 분도 인물이 훤출하구만"
"하하하, 그러게 말일세"

"하하, 자네 딸을 소개시켜 드리지 그러는가?'
"예끼! 이 사람, 우리 같은 미천한 사람들과 녹광사신이 어디 어울릴 법이나 하단 말인가?"
"응? 그렇게 되나? 하하하, 미안허이"

사람들이 좌우로 갈라지며 열어준 길을 따라서 흑사방 정현 지부를 나서던 초혜의 귀에 왁자지껄한 소음 속에서 유독 녹광사신이라는 말이 많이 들려 왔다.

"응? 녹광사신이라고?"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살피던 초혜가 녹광사신이라고 말을 하는 이들이 전부 초록이 두자성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호호, 초록이 아저씨, 드디어 아저씨에게도 별호가 생겼네요. 녹광사신이라고"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여기 이 분들이 죄다 아저씨더러 녹광사신이라고 하시잖아요. 안 들리세요?"
"그,그게 저를 가리키는 말입니까요?"

그렇게 말하면서 두리번거리는 두자성을 향해 좌우로 갈라선 사람들이 엄지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그제서야 비로소 자신을 보고 녹광사신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확인한 두자성은 감격에 겨워 연신 사람들을 향해 포권을 취해 보이며 걸음을 옮겼다.

"하하, 막내 아가씨, 사람들이 소인더러 녹광사신이라고 하는군요."
"그렇다니까요. 축하해요. 녹광사신 나리"
"어,어이쿠, 나리라니요, 천부당만부당입니다요, 막내 아가씨. 그냥 초록이라고 부르십시요. 전 그게 더 좋습니다요'
"호호호, 알았어요. 초록이 녹광사신 아저씨!"
"하하하"
"호호호"

사람들이 만들어준 길을 따라서 정현 지부를 나선 초혜와 두자성의 뒤로는 수십명의 파락호들이 경동각을 선두로 줄지어 서서 따라 가기 시작했다. 끙끙거리는 신음 소리를 흘리며 죽을상을 하고 고개를 푹 숙인채 따라 가고 있는 파락호들과 너무도 해맑게 웃음을 터트리는 초혜와 두자성의 모습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아울러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빠른 소문은 그들이 지나치는 사람들에게서 간간히 박수 소리가 터져 나오게 하고 있었다.

"막내 아가씨. 이거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데요. 사람들이 이렇게 좋아할 줄 미처 몰랐습니다."
"그러게요. 아무래도 그동안 흑사방에서 패악을 너무 많이 부렸나 봐요"
"죽일 놈들..."

초혜의 말을 듣고 뒤 따라 오는 파락호들을 향해 고개를 홱 돌린 두자성의 눈에서 화염이 이글거리는 듯 했다.

"아 참! 막내 아가씨!"
"예? 왜 그러세요?"
"저기..."

"호호. 어려워 말고 말씀해 보세요"

"예. 막내 아가씨. 다른게 아니라 저도 그거 좀 배울 수 없나 해서 말입니다요"
"예? 그거라니요?"

"봉황후, 봉황후 말입니다요"
"아! 그거! 호호, 배우고 싶으세요?"
"물론입니다요"

"음, 알려드리는건 어렵지 않은데 저 혼자 만든게 아니니까 설지 언니에게 먼저 물어보고 알려 드릴게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요. 막내 아가씨"
"호호. 그러다 설지 언니가 안된다고 그러면 어쩔려고 그러세요?"

"예? 그,그러면..."
"호호호, 농담이에요. 설지 언니도 반대하지 않을테니 걱정마세요."
"휴! 예. 막내 아가씨. 헌데 진짜 반대하시면 어쩝니까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초록이 아저씨 께서 배우겠다고 하면 반대하지 않을걸요. 철대숙을 지켜 드릴려면 제대로 무공을 익혀야 한다며 비급 까지 만들어 드렸잖아요"

"아! 그런거라면 걱정마십시요. 이 두자성이 죽는 그 순간 까지 총표파자님을 지켜 드릴겁니다요"

앞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호언장담하는 두자성의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순간이었다. 한편 천룡객잔의 이충에서는 떡하니 뒷짐을 쥔 사도연이 설지 주위을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화기애애한 정담이 이어지고 있었다.

"켈켈켈, 이 놈들 화상을 보아하니 꼭 죽을 날을 받아 놓은 놈들 같구나, 설지야 이 놈들을 어쩔 셈이냐?"
"생각중이예요. 지부장을 끌고 오면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해 볼게요."
"켈켈켈, 마음대로 하거라. 어차피 이 일은 성수의가의 일이 아니더냐."

"예. 거지 할아버지... 그보다는 도사 할아버지께 여쭤볼 것이 있어요"
"무량수불, 내게 말이냐?"
"예. 도사 할아버지, 궁금해서 그러는데 청청 언니와 혜아에게는 도명을 내려주지 않으실거예요?"

"응? 도명?! 허허허, 소청아 도명을 받고 싶은게냐?"
"예. 도사 할아버지. 설지 아가씨는 물론이고 저와 혜아는 무당과 소림을 사문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허허허, 그랬더냐. 고마운 일이로고..."
"아미타불! 진소저 고맙소이다. 허허허"

구대문파의 일원일 뿐만 아니라 당금 강호 무림의 최고 정점에 올라 있는 무당과 소림이었다. 그런데 그런 무당과 소림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일성 도장과 혜명 대사가 성수의가의 세 여인들이 무당과 소림을 사문으로 여기고 있다는 소리에 더없이 기꺼워 하는 표정들을 하며 흡족한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그래, 너희들이 원한다면 무당의 최고 어른으로 그깟 도명 하나 내려 주지 못하겠느냐, 어디보자..."

일성도장이 자신의 입으로 그깟 도명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무당파의 도명이 그깟 것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본산 제자들이 도명을 받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속가의 신분으로 도명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무당파에서 직접 무공을 배운 속가 제자들이라고 하더라도 대부분은 도명을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속가 제자들 중에서도 간혹 도명을 받는 이가 완전히 없지는 않았다. 무공이 뛰어나며 인품 또한 그에 못지 않다고 검증된 극히 소수의 속가 제자들이 그동안 도명을 받아 왔었던 것이다.

"무량수불, 도명이라면 현진과 같은 현자를 사용하면 되겠고... 그렇지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소청아!"
"예. 도사 할아버지"

"네게는 이름의 마지막 자를 따서 현청이라는 도명을 내려 주마"

"예. 도사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더없이 진중한 태도로 도명을 받는 진소청의 모습에 다시 한번 흡족한 미소를 머금은 일성 도장이 계속해서 말했다.


"어디보자. 그러면 초혜는 현혜라는 도명을 사용하면 되겠고 설지 너에게는 현지라는 도명을 주마"

"예? 저도요?"
"왜 싫으냐?"
"호호호, 아니예요. 현지, 현지라..."
"그럼 언니들이 전부 도사가 되는거야?"

한쪽 옆에서 오리 고기 한쪽을 쭉 찢어 비아의 입속에 넣어주고 있던 사도연이 핼쑥한 표정으로 갑자기 불쑥 끼어 들었다. 따르던 언니들에게 도명이 주어진다고 하니까 어린 마음에 겁이 덜컥났던 모양이었다. 언니들이 전부 도사가 되어 산속으로 훌쩍 들어가 버리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리라.

"호호호, 왜? 이 언니들이 산속으로 훌쩍 떠나 버릴까봐 그러는거야?"
"응! 아니지? 그렇지?"
"호호호, 우리가 연이 너를 두고 가긴 어딜 가니"
"헤헤헤, 다행이다"

그런 사도연을 바라 보는 설지는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면서 가슴 한켠이 아릿해지는 것만 같았다.

"그냥 무당파의 속가제자로 도사 할아버지께 도명을 받는거야."
"헤, 좋겠다."

조금 전까지 겁에 질렸던 표정은 온데간데 없이 잔뜩 부러워하는 모습을 보이는 사도연이었다. 하지만 이는 설지가 어떻게 해줄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사도연의 사문은 엄연히 성수의가였기 때문이다.

"허허허, 설지가 반대하지 않는다면 연이 네게도 이 할애비가 도명을 하나 지어 주마. 어떻겠느냐?"
"우와!"

일성 도장의 마지막 말은 반색하며 좋아하는 사도연을 향한 것이 아닌 설지에게 하는 말이었다. 이에 잠시 동안 생각에 잠겼던 설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괜찮을 것 같아요. 연이가 저렇게 좋아하니 말릴 수도 없을 것 같고 무엇보다도 무당파의 무공 일부가 어떤 식으로든 연이에게 전해질텐데 무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본가에 있는 숙부와 할아버지도 반대하지 않으실 것 같고요, 어때? 연이 너는?"
"헤헤, 난 무조건 좋아"

"허허허, 그러면 그렇게 하자꾸나. 어디 보자. 연이는 현자배 아래의 청자를 쓰면 되겠구나. 그래, 청연! 청연이 어떠냐?"
"우와, 고맙습니다. 도사 할아버지, 헤헤헤"
"허허허, 그렇게 좋으냐?"
"예~"

"무량수불, 하지만 연아, 아니 청연아, 한가지만은 꼭 명심해야 하느니라.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도명을 받은 이로 무당의 이름을 부끄럽게 하는 일은 절대로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예~ 도사 할아버지'

무당의 이름을 부끄럽게 해서는 안되다는 말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했겠지만 씩씩하게 대답하는 사도연에게 따뜻한 미소를 지어 주는 일성 도장이었다. 한편 도명이 오가는 자리에 앉아 있는 혜명 대사의 머리 속은 지금 이 순간 상당히 복잡하게 돌아 가고 있었다. 진즉에 장문 사형에게 법명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을 하는 후회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서둘러서 법명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야겠다는 생각 까지...

하지만 그런 혜명 대사의 생각은 더이상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초혜의 낭랑한 음성이 생각에 빠져 있던 혜명 대사를 깨웠던 것이다.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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