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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전쟁과 자유주의 양심 | Basic 2018-12-02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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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평화의 발명』 『 유럽사 속의 전쟁』에 저자의 삼부작 의 최종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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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8개국 베스트셀러 《도리스의 빨간 수첩》, 할머니가 손녀에게 전하는 따뜻한 이야기. | We welcome you here Lord 2018-12-02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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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출판사의 블로그

 

《도리스의 빨간 수첩》 서평 이벤트 참여법  

  

선정인원 : 5분

 

기간 :  ~ 2018년 12월 4일(발표 12월 5일 수요일) 

참여법 : 본 게시물을 스크랩한 URL과 기대평을 남겨주세요.  도서 세부 내용은 아래 내용을 참고하여 주세요. (다른 서평 이벤트와 중복으로 선정된 경우, 도서를 발송하여 드리지 않습니다.)

  

문예출판사 온라인 담당자 문예남 올림.

*^^*

 

 

 

 

저자 인터뷰 영상 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vVMkNRHDhJs

 

 

 

도리스의 빨간 수첩

소피아 룬드베리 저/이순영 역
문예출판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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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더 해피엔딩 | 영화가 왔네 2018-12-02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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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한 번 더 해피엔딩

마크 로렌스
미국 | 2015년 04월

영화     구매하기

공전의 히트를 친 단 한 편의 시나리오를 쓴 남자.
지금은 퇴물 작가가 된 주인공이 재기를 하려고 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초반부는 경쾌하게 시작되고, 계속 이어지는 이야기는 웃음을 주었고,
클라이맥스로 가면서는 삶에 대한 예찬을 안겨주는 상쾌한 영화였다.

일이 급한 시나리오 작가 마이클스는 북동부의 명문대학 빙엄턴 문과대학의 시나리오 강좌를 한 학기 급하게 맡게 된다.

영화가 시작하면서 자막에 뜨는 배우들 이름에서 ‘J K 시몬스’가 나오는 순간 빵 터졌다.
<위플래쉬>의 폭군 플레쳐 교수와는 정반대의 순둥이 교수의 모습에 깨알 재미를 주었다.ㅋ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미국에서 영화에 대해 갖는 애정들을 드러내는 모습과, (우리와 달리) 시나리오 작가가 최고의 예우와 존경을 받는 모습들을 <한번 더 해피엔딩>에서 여실히 느꼈다.

최고의 시나리오가 나오기까지는 힘든 과정이 많지만,
한 작품이 나오고 영화화되면 그것을 계속 인용하고,
레퍼런스로 삼고, 즐기는 그런 영화문화가 부러웠다.

새삼 깨달은 것이 미술, 음악과 달리 문학에서는 ‘대기만성형’의 작가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예술이란 것.
그리고 시나리오 작가에 있어서도 그것은 적용된다는 걸
<한번 더 해피엔딩>은 나에게 알려줬다.

<초원의 빛> 작가는 65세에 이 작품을 썼고 실베스타 스텔론은 잡화점 직원이었고, 예수는 30세까지 목수였다는 것.

절망보다는 무한 희망을 얘기하는 결론이 다분히 상업영화답지만, 설득력이 제법 있었다.

휴 그랜트 특유의, 자기를 비하하면서도 타인을 배려하는 영국 남자의 아이콘으로서의 여전한 모습도 반가웠다.

그러고보면 휴 그랜트의 자전적인 모습도 캐릭터에 많이 반영이 된 것 같다.
휴 그랜트는 행운아인 것 같다. 늘 자신의 캐릭터와 개성을 살려주는 영화와 배역을 만나는 듯 하다.

원제는
각색 이나 퇴고를 의미하는
REWRITE 이다.

마크 로렌스 감독은 《그 남자 작사 그 여자 작곡》에서도 휴 그랜트와 유쾌한 호흡을 맞췄었다.

마크 로렌스 표 로맨틱 코메디는 언제나 흥겹고 산뜻했는데 신작도 만들어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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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운규 《조선 영화의 길》春史 | 영화가 왔네 2018-12-01 0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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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조선 영화의 길

나운규 저
가갸날 | 2018년 04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숨은 역사를 알게 되었다.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나운규는 일제강점기 시대에 영화인으로 활동했던 영화 배우이다.
1926년 상영한 <아리랑>이라는 영화는 전설로 전해지는 작품이다. 오래되기도 하고 식민지라는 어두운 때에 만든 필름이라 원본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언론과 소문을 통해, <아리랑>은 당시에 한국영화가 이룰수 있는 최대의 작품성을 이루었다고 연구자들은 추정한다.

무엇보다도 아리랑은 지금 우리의 노래 《아리랑》이 OST로 사용된 작품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이 노래를 만드는데 참여한 사람이 나운규이다.
영화를 뛰어넘어서 우리의 문화유산을 창조한 인물로서도 기억해야 할 분이 아닐까.

책 【조선 영화의 길】은 나운규가 남긴 모든 형태의 글을 단행본에 담아낸 최초의 책이다.
이 책을 통해서 전설로만 알던 나운규라는 배우, 문화예술인의 면모를 많이 알 수 있었다.

나운규는 1902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출생했다. 이 책으로 처음 안 것은 나운규도 독립운동을 했었다는 사실이었다. 전국적인 규모로 봉기한 3·1만세운동을 회령해서 주도한 나운규는 이후에 독립군 비밀조직에 가담했다. 그러다가 체포되어 2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나운규의 호 ‘춘사 春史’는 감옥에서 얻었다고 한다.

잘 모르는 이들이라면 암울한 시기에 ‘왠 영화?’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당시에 소설가들이 소설을 썼듯이 나운규는 영화를 촬영하고 연기했음을 알았다.
모든 예술장르가 제한을 받았는데 영화라는 매체는 대놓고 검열을 받았다.
나운규는 상징과 기법으로 우회하려고 애를 썼지만 그럼에도 자주 일제 기관에 불려가서 심문을 받아야 했다.

본 책은 가갸날 출판사의 『일제강점기 새로읽기』 시리즈의 한 작품이다.
펴낸이들은 이 시리즈를 통해서 일제강점기 시대에 활동한 이들의 글을 가감없이 담을 것을 최우선 목표로 함을 밝힌다.

나는 이 기획 의도가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쉽사리 어떤 필터를 끼우고 일제강점기 시대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게 아닌가 싶었다.
행동 하나하나, 말 하나하나가 다 이런 뜻이라고 귀결을 시키는 그런 관점은 성숙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런데 <조선 영화의 길>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좀 고전을 했다. 앞서 말한대로 책의 제작 의도에 충실해서 설명이나 해석 없이 나운규의 글을 그대로 실었다.
예스러운 표현들은 현대적으로 바꾸긴 했지만, 최대한 원본 原本의 결을 살렸다.

타임 머신을 타고 가서 나운규를 옆에서 바라보는 느낌이 든다.
아니면 시대극 한 편에 동참하는 기분.
호감을 갖고 펼쳐 읽기 시작했지만 영화인 한 명을 있는 그대로 만난다는 게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그러다가 적응하고 편안해지면서 책에 빠져들 수 있었다.

가장 놀라웠던 건 나운규는 아주 원칙적인 사람이었다는 거였다.
영화배우로서 최고의 연기를 선보이고 싶어하는 사람.

이것이 왜 놀라웠는가.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때에 노골적으로건 은밀하게건 탄압을 받는 영화인으로서 ‘기본’을 견지했기 때문이다.
시대를 잘못 타고났다는 억울함에 마냥 한탄하지 않는다.
그저 생계를 위해 일본이 감시하는 영화를 기계적으로 촬영하지도 않았다.

나운규는 시대의 예술인이고 교양인이었다. 3.1 운동 이후에 일제는 유화정책을 병행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서양의 최첨단 문물이 적잖이 조선으로 유입되었던 듯 하다.
그 속에는 서양의 영화라는 문화도 있었다.

나운규는 당시의 서양의 영화를 동시대로 보면서 더욱 자신의 영화 열정을 불태웠다.
선구자다 개척자다 말을 하는데, 이건 정말 리얼 선각자였다.
한국영화의 초석을 다졌다고 볼 수 있다.
언젠가 EBS 강연을 들었는데, 일제의 검열에도 불구하고 이때 우리의 영화산업도 일정한 수준을 성취했다. 비록 그것이 한국전쟁, 분단, 독재정치로 말미암아 자연스럽게 이어질 순 없었지만.

연구자에 따르면 일제강점기의 수준높은 연극, 영화인들 중에 상당한 수가 월북, 납북 되었다. 그래서 북한의 영화산업을 살찌우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나운규의 사상과 꿈은 원대했다. 비록 서양의 스펙타클하고 완성도 높은 작품들에 이를 수는 없으나, 우리 조선도 언젠가는 해방이 되고 그러면 훌륭하고 감동적인 영화를 만들리라는 꿈을 꾸었다.

나운규는 1937년 8월 9일에 서른여섯의 젊은 나이로 타계하기까지 꾸준히 영화들을 만들고 출연했다.
작업을 하면서 객혈을 하고 졸도를 하면서 건강이 악화되어 죽음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일반 대중들도 안타까워한 것이었다.
나운규는 당시에 민중에게 큰 사랑을 받는 대표적인 영화배우였다.

시인 윤동주의 죽음에 시인 정지용이 헌시를 쓴 것을 읽으면 그 슬픔이 절절히 전해오곤 한다. 같은 시인으로서 전하는 애통함이 배가되는 것이다.

책속에는 나운규의 죽음을 아까워하는 이들의 글과 말을 실은 신문기사들이 나온다.
한 페이지를 빼곡이 채운 부고 기사는 수십년이 흐른 지금 읽어도 생생해서 놀랍다.

한편으로 나운규와 친분이 있었다고 하는 심훈 소설가의 이 글은 가장 심금을 울리는 글이었다.

『한겨울에 다다미방에서 외투 하나도 변변히 걸치지 못하고…
팬에게 그만한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으면서도 그의 사적 생활은 비참에 가까운 것이었으니, 사랑하는 아들을 잃고 장례도 잘 못한 채 토굴 속 같은 현상실 한구석에서 밤을 세우는
그의 커다란 눈을 본 사람이면 그가 얼마나 영화에 대한 정열을 가진 사람인지 엿볼 수 있다.』

한편, 예전 신문의 특유의 고아한 문체들은 어두운 시대 배경임에도 신기함을 전해주었다.
서른살이 다 된 사람에게 호칭을 군 君이라고 신문에 쓰는 게 이채롭다.

「나운규 군은 9일 아침 경기도 경찰부 고등과에 호출되어 취조를 받고 돌아왔다.
그가 이번에 고등과에 호출을 받은 이유는 …문제의 영화 <두만강을 건너서>라는 영화 내용이 불온하다는 소문이 있어서 그리된 모양이다.」
《매일신보》 1928. 4. 10


나운규는 신문과 잡지에 인터뷰를 하고, 자신의 여행기를 싣는 작가기도 했다.
<조선 영화의 길>은 간접적으로 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잡지가 출간되자 마자 폐간되었다는 일화는 당시에 일제가 얼마나 언론을 통제했는지를 알려주었다.

그냥 전설적 존재나, 영화 역사책에서 몇 줄로 접하던 나운규라는 인물.
그가 얼마나 뜨거운 청년이었고, 조선에서 영화를 부흥하려고 애쓴 배우인지를 알았다.

당시의 글을 최대한으로 뉘앙스를 살려서 오롯하게 실은 방식은 신의 한수 였다.
읽을 때는 사극을 보듯이 읽었는데, 책장을 덮고 나면 무언가가 뭉클하게 전해 온다.

한번쯤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소설가 이 상이 요절하지 않고 더 생존했다면 얼마나 명작들이 더 탄생했을까 하고.

나운규는 영화를 찍으면서 온전하게 행복해 본 적이 없었다.
뜻과 꿈이 원대하나 조선이 남의 나라의 지배를 받기에 원천적으로 민족의 영화를 만들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일제의 온갖 검열과 탄압을 지혜와 奇智로 피해가면서, 주어진 상황에서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고군분투 했다.

우리는 결과만을 놓고 역사의 인물을 평가내리는 일이 많다.
읽으면서 나운규의 아리랑, 단 한 편이라도 원본 필름이 전해졌다면 얼마나 좋을까 너무 안타까웠다.
그의 열정과 재능과, 조선에 대한 사랑이 쏟아부어진 한 편의 작품이 《아리랑》이었다.

증거가 없기에 후손인 우리들은 실체를 파악할 수 없다.
하지만 나운규를 비롯해서 그 때 연극을 하고 영화를 했던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암울한 속에서 ‘예술과 문화’를 만들어내려고 했던 것이 눈물겹게 느껴졌다.

식민 통치를 받고, 누구는 폭탄을 던지는데 소설이나 시, 영화는 하찮은 거라고 여길 수도 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암울한 때일수록 이런 창작 활동이 조선인들의 정서와 마음을 달래줄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문득 영화 『동주』에서 한 대사가 떠오른다. 독립운동에 동참하겠다는 동주에게 송몽규가 건넸던 말.
“늬는 시를 계속 쓰라. 총은 내가 들테니까.”

조선 관객도, 만드는 이들도 모두가 안다. 극장에 걸리는 상영물이 일제의 가위질을 당했음을.
그럼에도 오뚜기처럼 영화를 계속 만들고, 언젠가 독립할 조국을 꿈꾸면서 은밀하게 영화에 소망을 불어넣은 나운규의 모습은 결코 작지 않게 느껴졌다.

결과가 전해 오는 것은 아니고, 글과 언론을 통해서 남았을 뿐이지만
이러한 ‘사소한’ 역사도 귀중하게 대하고 싶어졌다.

엄청난 쾌거나, 큰 흔적을 남긴 거사도 중요하지만.
어쩌면 그런 큰 일도 작은 행동, 일상적인 일들이 모여서 결집되어 이루어진 게 아닐까.


한국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일거양득의 지식도 얻으며 읽은 책이었다.

<조선 영화의 길>, 나운규 지음, 가갸날 펴냄, 2018.
부제는 「나의 삶 나의 영화」이다.

나운규의 장례식은, 동료 영화인들과 팬이 모인 가운데 단성사 극장에서 영결식을 거행했다고 한다.


(매일신보 기사에서)

고故 나운규 씨는 우리 조선 영화계에 제일인자로서 활약하였던 만큼, 명성같이 빛나는 존재였다. 씨는 가슴에 뛰는 피를 우리에게 보였고, 넣어주려 애썼다. 그리하여 우리들의 열정을 끓게 하였고, 주먹을 부르르 떨게 하였다.
그러나 모든 것에 제한을 당하고 있는 우리들이라, 만족할 만한 것을 내놓지 못하는 씨의 가슴은 쓰리고 아팠다. (…)
아! 고 춘사 春史의 그 끓는 듯한 정열을 곱게 받아 그의 미완성한 뜻을 이룸으로써, 그의 영혼이나마 위로하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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