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트는 '해변의 사나이'라고 불리는 한 인간을 그 예로 들어 보이곤 했다. 그 남자는 사십 년 동안이나 바닷가나 수영장 가에서 여름 피서객들과 할 일 없는 부자들과 한담을 나누며 보냈다. 수천수만 장의 바캉스 사진들 뒤쪽 한구석에 서서 그는 즐거워하는 사람들 그룹 저 너머에 수영복을 입은 채 찍혀 있지만 아무도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며 왜 그가 그곳에 사진 찍혀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아무도 그가 어느 날 문득 사진들 속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나는 위트에게 감히 그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그 '해변의 사나이'가 바로 나라고 생각했다. 하기야 그 말을 위트에게 했다 해도 그는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모두 '해변의 사나이'들이며 '모래는 - 그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 우리들 발자국을 기껏해야 몇 초 동안밖에 간직하지 않는다'고 위트는 늘 말하곤 했다. pp.75-6
201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의 문호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이다. 나는 노벨문학상 수상작 하면 어렵다는 편견이 있는데, 이 책도 내 편견을 깨지는 못했다. 책을 적어도 세 번은 읽었고, 그것도 모자라 <이동진의 빨간책방>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1,2부를 몇 번이나 반복해서 들었는데 아직도 이해가 잘 안 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소설이 길지 않아서 다시 읽기에 부담이 없었다는 정도? 대체 이런 소설을 읽으면서 단 한 번에 줄거리를 이해하는 동시에 큰 감명까지 받는 사람은 어느 정도의 독서 내공을 갖춘 것일까?
파리의 사립 탐정 기 롤랑이 기억상실증으로 인해 잃어버린 과거를 찾는 비교적 단순한 줄거리이지만, 기 롤랑의 과거로 짐작되는 인물은 물론 그가 사랑했던 여인으로 추측되는 여인도 여러 번 바뀌어서 긴장의 끈을 놓치면 안 된다. 마침내 알게 되는 그의 과거는 또 얼마나 비극적인지. 행복하지만은 않았던 과거라도 찾으려고 발버둥치는 그의 모습과, 그 결과 굳이 끄집어내지 않았어도 되었을 아픈 추억을 떠올리며 괴로워하는 그의 모습이 대조되어 안타까웠다. 인간이란 존재는 우주 전체를 놓고 보면 해변의 모래알마냥 하찮고 부질 없는데, 왜 애써 살고 사랑하고 과거를 기억하려 하는 것일까. 읽는 동안에도 힘들었지만 읽고 난 후의 여운을 추스르는 일도 결코 쉽지 않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