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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해야 할 이야기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 리뷰 2017-07-09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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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엘레나 페란테 저/김지우 역
한길사 | 2017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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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은 막장 드라마를 연상케 하는 면이 적지 않다. 신분 상승을 꿈꾸는 여자와 미성숙한 사랑 이야기, 복잡하게 얽히는 인간관계, 심지어 외설적인 장면까지. 나폴리 4부작 2권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은 그중 압권이다. 결혼을 앞둔 레누가 첫 책을 내고 들뜬 기분으로 출판 기념행사를 가지고 있을 때 레누가 오랫동안 짝사랑해온 상대이자 레누의 절친 릴라와 한때 연인이었던 니노가 등장하면서 소설이 끝났다. 


그러나 나폴리 4부작의 미덕은 막장 드라마를 연상케할 만큼 복잡한 줄거리와 스릴 넘치는 전개만이 아니다. 이는 니노와 재회한 후 한동안 마음을 정하지 못하다가 약혼자인 피에트로와 결혼을 택한 레누가 결혼과 임신, 출산 이후 끝없이 추락하면서 얻게 되는 깨달음을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나는 어떤 면에서는 지나치게 교육을 많이 받았고 어떤 면에서는 너무 무지했다." 레누의 첫 책은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만 평단으로부터는 찬사와 비난이 엇갈린 반응을 얻는다. 문단에서 명망 있는 남성들 대부분은 젊고 똑똑한 여성인 레누의 성취를 깎아내리고, 레누를 지지하는 몇 안 되는 남성들은 레누를 진심으로 칭찬한 게 아니라 레누의 몸을 탐했을 뿐임이 드러난다. 가혹한 현실에 상처받은 레누는 좋은 집안 배경과 신사다운 태도를 지닌 피에트로만이 자신을 지켜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결혼을 감행한다.


하지만 레누의 결혼 생활은 레누의 예상처럼 순조롭게 풀리지 않는다. 레누는 결혼과 동시에 임신을 하고 연달아 두 딸을 출산하게 된다. 피에트로는 레누에게 양육과 가사를 전적으로 맡기고 전혀 도와주지 않으며, 레누가 다른 가족이나 가정부와 집안일을 분담하는 것을 마뜩잖게 여긴다. 레누는 그제야 릴라가 남편으로부터 도망친 것이 불화 때문이 아니라 결혼이라는 이름의 감옥으로부터 탈출한 것임을 깨닫는다. 레누는 그동안 자신이 그저 남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살아왔고, 남성의 능력을 가지기 위해 노력했으며, 정작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한 노력은 한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절망한다. 



내 생각에는 남자가 여자를 가르치려 든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 같아. 그때 나는 아직 어렸기 때문에 나를 변화시키려는 프랑코의 욕망이 그가 나를 있는 그대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증거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어. 그는 내가 다른 사람이기를 원했던 거야. 아니,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는 단순히 여자를 원한 게 아니었어. 자기가 만약 여자라면 되고 싶은 가장 이상적인 모습의 여성을 원했던 거야. 프랑코에게 나는 자신을 여성으로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었어. 여성성을 취해 제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였고 자신의 전지전능함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였던 거야. (504쪽) 



레누는 여성주의적 성향이 강한(하지만 정작 자신의 아들은 각성시키지 못한) 시어머니의 도움으로 가정부를 구해 집안일에서 일부 해방되고, 그렇게 얻은 시간 동안 자기 자신을 위한 공부를 한다. 공부를 하면서 레누는 그동안 자신이 만난 남자들을 떠올리고 왜 그들과 잘 풀리지 않았는지 알게 된다. 그들은 레누를 보는 게 아니라 레누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보았다. 이때 또다시 니노가 나타나고 레누는 (남자들이 그러하듯) 니노에게서 자신의 욕망을 본다. 단 하루라도 좋으니 니노를 취하고 니노를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그동안 릴라는 성희롱과 성폭행이 빈번하게 이루어지던 소시지 공장을 벗어나 엔초와 함께 IBM 이탈리아 지사로 이직하는 인생 역전을 이룬다. 릴라는 레누가 니노와 만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레누에게 니노와 만나지 말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릴라의 뜻과 달리, 릴라의 경고는 피에트로와 니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레누의 마음을 니노 쪽으로 기울게 만드는 방아쇠 역할을 하고 만다. 


레누가 여성주의자로 각성하는 듯하더니 니노와 함께 떠나는 편을 선택한 건 아쉽지만, 그 또한 레누의 주체적이고 자발적인 선택이라면 어쩔 수 없다. 어차피 니노와 함께 떠나든 피에트로와 살든 나쁜 남자와 불행하게 사는 건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좋아하는 남자와 하루라도 더 같이 사는 게 낫지 않을까. 그것이 결국 또 다른 불행으로 이어진다 해도. 


언젠가 레누의 옛 연인 프랑코는 레누의 첫 책에 대해 "유치한 사랑 이야기와 사회적 신분 상승에 대한 주인공의 집착 뒤에 정말로 해야 할 이야기를 놓치고 있어."라는 평을 내린 바 있다. 내 생각에 이는 레누의 삶에도 적용할 수 있는 조언이다. 레누는 유치한 사랑과 신분 상승에 몰두한 나머지 '정말로 해야 할 이야기'를 놓치고 있다. 그녀의 욕망은 언제나 릴라로부터 비롯되었고 릴리만이 충족시킬 수 있다는 것을. 언제쯤 레누는 이 사실을 깨달을까. 어서 4권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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