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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껴 읽을래요 《다정한 매일매일》 백수린 저 | 비문학 2020-12-01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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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다정한 매일매일

백수린 저
작가정신 | 2020년 1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살구 에이드. 래밍턴 케이크. 요구르트 아이스크림. 살래요. 살아있어줄래요? 다정한 매일매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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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 에이드를 한 잔 준비하고

래밍턴 케이크를 하나씩 집어먹으며 보다 만 영화를 보고 싶은 주말.

요구르트 아이스크림 위에 다진 아몬드와 과일을 송송 올려 한 입. 오늘 같이 추운 날엔 당신과 함께 보낸 어느 더운 날 오후가 문득 생각나서. 그냥 한 번.


살래요.

살아있어줄래요?

다정한 매일매일을.







사실 따뜻한 글을 외면해왔다.

내가 쓰지 않아도 대신해서 써줄 누군가가 있겠지, 하고.

난 좀 더 뾰족해져야지. 그래서 나를 지켜야지, 하고.

그런데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읽지도 쓰지도 않았던 글이 어느새 내 품 안에 있다. 이 포근함이 낯설지 않다. 오도카니 내버려 두었던 내 마음을 간질이는 문장들.

별자리 운세처럼, 내가 눈을 두기만 하면 이 책은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에게!







만약 책에 생명이 있다면 이 책에선 분명히 모과나 살구 향이 날 것 같다. 《다정한 매일매일》은 백수린 작가님의 첫 산문집이다. 책과 빵 그리고 글을 쓰는 이의 마음에 관한 짧은 글들이 모여있다. 책을 추천받는 느낌으로 읽다가도 어느새 바움쿠헨이라는 나무 나이테 모양 빵이 먹고 싶어졌다가 독서 일기를 쓰고 싶어지기도 하는 신기하고 편안한 책.


이 책의 교정원고가 도착한 날은 비가 온 날이라 작가님은 부랴부랴 일을 보고 집으로 서둘러 가셨다고 한다. 현관문 앞에 놓여있을 원고가 혹시라도 비에 젖진 않았을까 걱정하면서. 그런데 도착해보니 비를 피하러 온 길고양이 한 마리가 원고 위에 앉아 있었다. 원고 봉투는 "고양이의 온기가 묻어 따뜻했(p.5)"고 원고는 멀쩡했다고 한다. 책의 첫 장, 작가의 말에 실린 에피소드인데 이 책의 인상이 딱 이 느낌이다. 꼼지락거리면서 올라오는 온기에 마음이 따스해지는 느낌.


벌써부터 새해 목표가 하나 생겼다. 첫째는 작가님이 소개해 주신 책들 읽기.

앨리스 먼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켄 리우 같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이름이 있어서 반갑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내가 읽어보지 못한 책이었다.


말하자면 지금 나와 이 책들의 관계는 백수린 작가님을 사이에 두고 어색하게 악수를 주고받는 사이다. "어, 여기서 또 뵙네요!" 반가운 인사를 (주고받는 상상을) 했던 켄 리우 작가의 《종이 동물원》만 빼고. 내가 직접 만나보고 작가님의 글을 다시 읽어 봐야겠다. 책이든 사람이든 막 소개받았을 때와 사귀고 나서 인상이 달라지듯이 새로운 발견을 할 것 같아 두근거린다.


그중 가장 먼저 읽고 싶은 책은 소설 쓰는 마음(p.67)에 소개된 《파스칼 키냐르의 말》이다.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글을 쓴 프랑스 작가 파스칼 키냐르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책이라고 한다. 조금씩 쓰다 보면 나아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는 풋내기로서 작가님도 나와 비슷한 고민하시는구나 싶어서 위안이 되었다. 바로 상상 속에선 블록버스터 액션 로맨틱 코미디 영화 느낌이 났던 글이 정작 밖으로 꺼내 보면 영화 포스터 조각보다도 납작한 이 현실에 대한 고민이다.



인물들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한 번에 가주는 법이 없고, 몇 번이나 상상했던 근사한 장면조차 언어의 옷을 입혀놓으면 내 머릿속의 그것과는 조금도 닮아 있지 않다. 내가 써놓은 것과 쓰고 싶은 것 사이의 간극 때문에 괴로울 때면 나는 파스칼 키냐르의 말을 떠올린다.


언어는 그것을 갖고 있지 않은 자가 뒤늦게 얻는 것입니다. 언어는 상실의 자리만 있을 뿐 다른 자리는 없어요. 언어는 항상 인류를 저버리고 떠나는 중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언어의 결여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경험입니다.

68쪽.


새해 둘째 목표는 작가님이 소개해 주신 빵도 찾아 먹어 보기. 오페라, 구겔호프, 아마레티, 콜롬바 같은 처음 들어보는 빵이 많아서 이 책을 읽기 전엔 항상 검색 엔진을 켜두었다. 하나같이 다 맛있어 보였다. (칼로리 괜찮을까?) 이건 새해 목표라기보단 버킷 리스트 맨 밑으로 슬쩍 내려둬야겠다. 히히.




문장을 읽었을 뿐인데 그 사람과 친분을 쌓고 있다는 착각이 들 때가 있다. "당신은 나를 모르지만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아요.(p.88)" 백수린 작가님에겐 기시 마사히코의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이 그런 책이라고 한다. 나에겐 이 책, 《다정한 매일매일》이 그렇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님의 옆에 앉아 이야기를 듣는 상상을 한다. 남몰래 쌓아본다, 작가님과의 특별한 우정을.


세상 어딘가에 나와 공명하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위안이 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오래전부터 많은 작가들과 이런 식의 특별한 우정을 남몰래 쌓아왔다.

88쪽.



소설을 쓰고 싶은 열망이 부드럽지만 단단한 돌멩이처럼 가슴속에 박혀 움직이지 않는다면, 우리가 할 일은 좋은 소설을 쓸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을 견디며 관찰한 것들을 묵묵히 계속 써나가는 것뿐일 테다. "나는 내가 쓴 글에 실망할 게 틀림없다는 생각을 담담히 받아들"이면서.

101쪽.




산책을 나온 솜사탕 같은 강아지를 봤을 때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느려지듯이 이 책을 읽을 때는 시계 초침조차 움직이기를 거부한다. 손가락은 책장을 쓰다듬기만 할 뿐이다. 여기 좀 더 머무르고 싶다고 속삭인다. 나에게 다정하지 못했던 날들의 안부를 묻는다.






이십 대의 나는 자신감이 정말 없었고, 타인에게 나를 드러내는 걸 공포스럽게 생각하는 편이었다. (…) 그것은 모두,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은 세상에 없다는 이상하지만 강한 믿음에 내가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146쪽.


올해는 존재의 가치를 증명해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처럼 억지로 거창한 목표를 세우지 않으면 어떨까? 마치 내일이면 세상이 끝장날 것처럼 모든 일을 당장의 손해와 이익으로 계산하지도 말고. 싫어하는 노래를 다른 사람들이 부른다고 해서 억지로 따라 부르지 않는다면, 고통을 쉽게 외면하거나 누군가의 상처에 대해 가볍게 말하지 않는다면. 새해에 당신과 내가 들여다보았으면 하는 것은 오직 마음. 빈집처럼 쓸쓸하지만 마시멜로처럼 달콤하고, 쿠키 조각처럼 바삭거리며 쉽게 부서지거나 구멍 뚫린 양말처럼 초라하다가도, 털실 뭉치를 닮은 강아지의 엉덩이처럼 둥글고 따뜻해지는 마음, 마음, 마음들.

58쪽.



이 책을 읽는 사람에게, 고양이가 앉았던 자리만큼의 온기가 되어주었으면. 이상하고 슬픈 일투성이인 세상이지만 당신의 매일매일이 조금은 다정해졌으면. 그래서 당신이 다른 이의 매일매일 또한 다정해지길 진심으로 빌어줄 수 있는 여유를 지녔으면. 세상이 점점 더 나빠지는 것만 같더라도 서로의 안부를 묻고 안녕을 빌어줄 힘만큼은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 있을 것이므로. 그런 마음으로 당신에게 이 책을 건넨다.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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