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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의 문화유산답사기 국내편 세트

유홍준 저
창비 | 2012년 09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우리 국토 전체가 박물관이요 문화유물의 보물고임을 깨우쳐 준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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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적인 답사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며 인문서 최초의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300만부 판매를 돌파한 데 이어, 2012년 제7권 제주편 ‘돌하르방 어디 감수광’이 출간됐다. 전면컬러로 개정된 1-5권에 더해 2011년 출간된 제6권 ‘인생도처유상수’와 함께 전7권의 세트로 구성되었다.

 

제1권 남도답사 일번지
제2권 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
제3권 말하지 않는 것과의 대화
제4권 평양의 날은 개었습니다
제5권 다시 금강을 예찬하다
제6권 인생도처유상수
제7권 돌하르방 어디 감수광

 

우리 국토 전체가 박물관이요 문화유물의 보물고임을 깨우쳐 준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시리즈의 저자. 덕분에 `박경리의 토지가 한국의 정신적 GNP를 올려놓았다면 유홍준은 우리나라의 면적을 열 배는 넓혀놓았다'는 평을 얻었다.
그가 미술사에 빠져 들기 시작한 것은 1972년. 군 복무 중이던 유홍준은 재미 삼아 미술사 서적을 뒤적이다가 아예 푹 빠져들어, 휴가만 나오면 박물관을 찾아가 살았다고 한다.
유홍준은 박물관에서 평생의 반려자를 둘이나 만났다. 하나는 평생 그의 직업이요 낙이 된 미술사 연구였고, 다른 하나는 그의 아내였다. 게다가 그의 아내는 답사여행을 핑계로1년에 서너달씩 집을 비우는 유홍준을 변함없이 이해하고 성원해 줬다. 이처럼 박물관으로부터 신세를 많이 진 유홍준은, 그러나, 신세진 바를 글에 쏟아부어 미술사와 문화 유산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폭발시킴으로써 톡톡히 신세를 갚은 셈이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는 국어 교과서에도 실렸다. 출간 후 불과 4년 만인 1997년 봄 학기부터 중학교 3학년 용 국어 교과서에 1권의 서두인 「월출산과 남도」가 실리게 된 것이다. 생존 작가의 작품이, 그것도 이처럼 빨리 교과서에 실린 것도 전례를 찾기 힘든 `사건`이다.
유홍준은 서울대 미학과 3학년 때 3선 개헌 반대시위에 적극 가담했다가 무기정학을 당한 적이 있었다. 어렵사리 복학했지만 민청학련 사건에 또다시 연루돼 7년형을 선고 받았다. 결국 형집행정지로 풀려나기까지, 그가 `분에 넘치는 들꽃 같은 평창색시'라고 표현한 그의 아내는 결혼도 하기 전에 꼬박 1년 동안 옥바라지를 해야 했다.
덕분에 1984년 홍익대 대학원 졸업 직후 건국대 미술사학과 전임강사로 발령받았다가 24시간 만에 취소당했다. 최종 승인과정에서 복권이 안됐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그 해 곧바로 복권이 됐지만 그는 이 일로 몇 년을 더 시간강사로 떠돌아야 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쓰기 전까지 그는 `겨레미술공부방'을 운영하는 의식 있는 미술평론가요, 문화유산답사회를 만들어 전국을 버스 타고 누비던 극성스런 소장학자였다. 답사여행 때마다 버스 안에서는 걸쭉한 입담의 유홍준이 펼쳐내는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입말본`이 대인기였다.
그러던 1991년, 「사회평론」이라는 진보적 시사문화지가 창간되면서, 당시 창간 멤버였던 안병욱 교수가 `너 맨날 버스에서 떠드는 얘기, 글로 한번 써 봐라`고 부추기는 바람에 연재를 시작했고, 2년 뒤 이것이 책으로 묶여져 나오면서 전 국민의 필독서가 되었다.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까지 잡지 「공간」과 「계간미술」 기자를 거쳤다. 글을 쓰면서 술을 끊은 대신, 바둑을 둔다. 실력은 아마 3단. 유홍준이 직접 붙인 그의 집 당호도 `수졸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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