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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를 위한 현실주의-이주희]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 남은 자가 강한 것이다 | Memento 2019-10-06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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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약자를 위한 현실주의

이주희 저
MID 엠아이디 | 2019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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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 남은 자가 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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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황산벌>에서 김유신은 외친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 남은 자가 강한 것이다.” <약자를 위한 현실주의>는 우리에게 말한다. 우리는 강한 자가 아니다. 강한 자가 될 수도 없다. 그렇다면, 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다. 살아남는 것. 그 방법은 수 천 번의 외침 속에서 역사가 증명해 준 사실에 기초한다. 바로 정확한 과 스스로를 지킬 무기. 눈은 정확한 현실 인식을 의미한다. 무기는 제한된 현실 속에서 우리의 소리를 내기 위한 최소한의 무력을 말한다. “강자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존재이고 약자는 주어진 상황에 적응해야만 하는 존재 p.12”. 관건은 정확한 현실 판단과 주어진 상황에서 최악의 조건을 피할 수 있는 힘이다. 저자는 단호히 말한다. “약자일수록 운신의 폭은 더 좁아지고, 실패로 인한 대가는 더 혹독하며, 떨어져야 할 낭떠러지의 깊이는 더 깊어지기 때문"에 "진정한 현실주의는 강자가 아닌 약자의 것이어야 한다. p.14”

우리는 식민지 경험을 통해 조선시대의 사대주의를 극명하게 비판한다. 사실 사대주의 을 가렸고, 당파 싸움과 권력투쟁으로 인한 정치혼란은 스스로 무기를 폐기하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역사적으로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민중들이 떠안아야만 했다. 그 예들이 이 책에 가득하다. 대몽항쟁이나 병자호란은 왜 우리가 질 수 밖에 없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반면, 신라의 삼국통일은 기존의 생각과 조금은 다른 색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대동강선이 신라가 가진 실력의 한계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 한계 안에서 행동했다.” “덕분에 우리 민족의 영역이 한반도로 제한 되었지만 신라의 지도자라는 입장에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p.170”는 것이다. 그나마 거란과의 전쟁에서는 이득을 얻었지만, 이런 현실적인 기억들은 그닥 유쾌하지도 잘 떠오르지도 않는다.

그래서 일까. 우리는 유독 이런 과거와 현재의 상황에 냉정하게 판단하지 못한다. 과거의 사실에 대해서 지금의 입장에서 비판한다. 지금의 상황, 결론이 이미 나온 사실에 대해서 비판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법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상황 판단은 그 옛날 명분론에서 얼마나 나아 졌는가. 오늘날, 현재 우리는 어떤 눈과 무기를 가졌는가. 회의적이다. 우리가 조선의 사대주의를 비판하듯 훗날 후손들은 지금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기점으로 생각해본다면, 차이점을 알지 못하겠다. 여전히 우리는 약자고, 약자로서 주어진 현실 안에서 생존을 고민하고 있는지 의문스러울 때가 많다.

과거에는 대륙으로 진출하는 이민족의 배후지로 전략적 요충지였고, 지금은 대륙으로 진출하는 교두보이자, 해양으로 진출하는 전진기지를 담당하고 있다. 우리의 지리적, 전략적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더불어 사고방식도 변하지 않았다.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은 20세기 이후로도 한국을 계속 지배하고 있다. p.581” 적과 아군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만으로 현재의 시대에 대처가 가능할까. 정확한 눈을 가질 수 있을까. 물론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정치인, 기득권이야 알아서 살아남을 테다. 언제고 강화도로, 남한산성으로 피할 것이고, 여차하면 다리도 끊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약소국에서도 약자라면 좀 더 현실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여기에 더없이 정확한 증빙자료가 있다. “양다리나 눈치 보기라는 차원의 중립은 불가능하다. p.545” 우리의 전략적 위치상 강대국들이 용인해 줄 리 없다. 결국 중립의 중요성이 아니라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무기’p.624”가 중요하다. 자주국방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이 많다. 한 때 많은 논란도 있었다. 하지만 이를 포기하고 전적으로 외국 군대에만 의존하자는 주장은 선뜻 동의하기 힘들다. “좋은 군대가 있는 곳에는 항상 좋은 정부가 있다.”고 마키아벨리는 말했다. “강력한 국방력이란 결국 좋은 정부의 결과물이지 그 반대인 경우는 없다는 것 p.445”을 명심해야 한다. 좋은 나라,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길이 결국은 강한 무기를 가지는 지름길이다. 그것이 결국 좋은 눈을 가지게 하는 힘도 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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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자는 자지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는 것이고, 약자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 투키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p.8

강자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존재이고 약자는 주어진 상황에 적응해야만 하는 존재이다. p.12

약자야말로 권력정치의 현실을 강자보다 더 깊게 이해하고, 현실주의적으로 사고할 필요가 있다. 약자일수록 운신의 폭은 더 좁아지고, 실패로 인한 대가는 더 혹독하며, 떨어져야 할 낭떠러지의 깊이는 더 깊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정한 현실주의는 강자가 아닌 약자의 것이어야 한다. p.14

우리 역사의 경험으로부터 길어 올린 약자를 위한 현실주의무기라는 두 개의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p.19

위기의 시간이 지나고 소강상태가 왔을 때가 오히려 정신을 바(p.52)짝 차려야 할 때다. 특히 약자의 입장에 섰을 때는 더욱 그러하다. 이런 소강상태는 일종의 태풍의 눈과 같은 것이어서, 지금 상태에서 벗어나면 더 큰 태풍이 몰아닥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약자일수록 더 적극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 p.53

그는 신라가 가진 힘의 한계를 분명히 인식했다. 대동강선이 신라가 가진 실력의 한계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 한계 안에서 행동했다. 물론 이러한 김춘추의 선택 덕분에 우리 민족의 영역이 한반도로 제한되었다는 원망을 듣긴 하지만 신라의 지도자라는 입장에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p.170

토론이든 담판이든 대화를 주도하려면 상대방이 생각도 못하고 있던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해야 하는 법이다. p.252

외교는 현란한 입이 아니고 정확한 눈이다.’ - 깔리에르 p.255

원교근공은 강대국의 논리라는 것입니다. 강대국이 자기중심의 지역질서를 구축하고 세계 전략을 펼치는 수단인 거예요. 약소국이 이런 논리에 잘못 말려들면 오히려 라이벌인 강대국을 견제하는 또 다른 강대국의 도구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위험해지는 것이죠. 특히 강대국들 사이에 끼인 약소국들이 취해야 될 외교 전략의 기본은 원교근공이 아니라 원교근친이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원교근친이란 멀리 있는 나라와 교류하면서 동시에 가까운 이웃 나라들과 선림 관계를 구축해나가고 가꾸어 나가는 것이죠. p.322

마지막 순간에 힘을 발휘하는 것은 결국 폭력일지 몰라도 그 마지막 순간이 오지 않게 권력에 안정성을 부여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 안정성을 부여하는 것이 바로(p.349) 권이다. 현대적으로 표현하자면 폭력이라는 하드파워와 권위라는 소프트파워가 함께 작동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권력의 안정성이나 장기적인 유지라는 점에서는 소프트파워가 하드파워보다 훨씬 중요하다. p.349

좋은 군대가 있는 곳에는 항상 좋은 정부가 있다.” -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 <로마사 논고> p.442

강력한 국방력이란 결국 좋은 정부의 결과물이지 그 반대인 경우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키아벨리도 지적했듯이 사람들은 이 두 가지를 별개의 문제로 바라보는 실수를 쉽게 저지른다. 좋은 정부가 없어도 강력한 국방력은 가능하고, 이 힘만 있으면 어지간한 문제는 다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강력한 독재자의 존재가 외부의 위협에 효과적이라는 잘못된 믿음은 그런 실수 탓이다. p.445

양다리나 눈치 보기라는 차원의 중립은 불가능하다. 이런 식의 중립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인 강대국이 약소국의 중립을 용인해주어야 하는데 세상에 약소국의 중립을 좋아하는 강대국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양다리나 눈치 보기 차원의 중립은 오히려 약소국을 위기로 몰아넣는다. p.545

중립은 당사국 스스로의 힘으로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원한다고 중립국으로 남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p.550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은 20세기 이후로도 한국을 계속 지배하고 있다. 이는 미국과 북한 혹은 중국에 대한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20세기(p.581) 한국 역시 17세기 조선처럼 절대 강국인 미국에 의해 6.25 전쟁에서 살아남았고 이를 통해 오직 미국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도록 길들여졌다. 때문에 우리는 오직 미국의 방식만이 선하고 나머지 방식들 혹은 나머지 사회들은 악하다는 식으로 세상을 바라봐 왔다. ... 이렇게 되면 문제를 대화와 협상을(p.582) 통해서 건설적이고 평화적으로 타결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의심하게 되고 결국 평화적인 외교적 노력의 가치를 훼손하게 된다. p.583

중요한 것은 중립 그 자체가 아니다. 중립을 선택할 것인가, 동맹을 선택할 것(p.621)인가는 하나의 옵션일 뿐이다. 상황에 따라 어느 쪽을 선택하든 그것은 정말 케이스 바이 케이스. 중요한 것은 그 선택을 지켜낼 수 있는 이 있어야 한다. p.622

조선이 병자호란의 비극을 막지 못한 이유는 결국 중립의 부재때문이 아니다. ‘무기의 부재때문이다. 그런 점서에서 병자호란의 비극으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진정한 교훈 역시 중립의 중요성이 아니라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무기의 중요성일 것이다. p.624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간혹 이런 경험을 하게 된다. 내가 가지고 있던 상식과 전혀 다른 현실 혹은 사고방식과 만나는 것이다. 이것이 역사를 공부하는 가장 큰 이유이자 즐거움이기도 하지만 이런 경험은 아무리 반복되어도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다. p.628

이 책에서는 가능하면 한반도에 쳐들어왔던 강대국들의 입장에서 당시 상황이 어떠했는지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p.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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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대학의 조센징-정종현] 역사는 계속해서 살아 움직인다. 묻고, 대답한다. | Memento 2019-10-05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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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국대학의 조센징

정종현 저
휴머니스트 | 2019년 06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역사는 계속해서 살아 움직인다. 묻고, 대답한다. 너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지금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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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망각의 기록이다. 잊어버리지 못한 사실들만 기록한 불완전한 이야기다. 그래서 무엇을 기록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하다. 잊지 않고 역사에 남아야만 죽이 되건 밥이 되건 할 수 있다. 역사는 과거의 이야기를 하니 고루하고, 재미없다고들 하지만 역사만큼 역동적인 것도 없다. 시간의 틈 사이로 기록하지 못한 사실들은 계속해서 사라지고, 그것을 막고자 부질 없는 노력을 계속한다. 이 부질없는 노력들이 역사에 생동감을 부여한다. 역사는 생명과 같이 움직이고 변한다. 그리고 끝없이 덧붙여지고, 때로는 새로이 만들어진다.

<제국대학의 조센징>은 시간의 틈 사이에서 건져 올린 흥미로운 이야기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큰 분기점은 아마도 일제 강점기다. 식민지 경험은 남북한 모두에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주었다. 더불어 벗어 날 수 없는 경험이다. 애초에 우리의 경험과 기억을 무위로 돌릴 수 없다. 일본 식민지의 경험을 도덕적인 이분법으로 모두 이라 규정하고 그것을 적출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환상 p.296”이다. 가능하지도 않고, 가능하다고 해도 그 길이 정답인지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저자 스스로 이 책을 평한다. “일본 식민주의의 진정한 청산을 위해서라도, 제국대학이 한국 사회에 끼친 영향의 실상을 역사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논의는 그 작업의 작은 첫걸음이었을 뿐이다. p.297”

그렇다면 제국대학의 조센징은 누구였을까. “제국대학 유학생들은 총독부 식민 통치를 유지하는 관료의 수급처였으며, 관공사립 교육기관과 식민지 언론, 출판 및 경제계의 핵심 인사였다. “일본만이 아니라 식민지 및 남북한에서도 국가 엘리트 p.22”들로, 아직까지 그들의 영향력이 남아있다. 그 단적인 예가 바로 이회창이다. 또 다른 예는 전 국무총리 김상협이다. “구한말의 지주는 식민지 산업자본가를 낳았고, 그 산업자본가는 군사정권의 국무총리를 낳았다. p.54” 우리나라의 엘리트들을 둘러볼 때, 제국대학은 빠질 수 없는 코스다. 그렇다면 이들을 모두 친일로 규정하고 제거해야만 할 기억들일까.

좋은 배경을 타고난 것이 그 개인의 잘못은 아니. 하지만 그것의 역사성은 문제 삼아야 한다. p.153” “비난하기 전에” “유학을 통해 얻은 지식을 어디에 썼고, 어떤 길을 걸어갔는지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그럼에도 비판하려면 다음을 묻고 답할 필요가 있다. 그때 그곳에 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는 자신 있게 포기했을 거라고 답하진 못하겠다. p.86” 비난은 쉽다. 누구인들 지금 관점에서 독립운동을 못 하겠는가. 하지만 일제의 지배가 공고해져가고, 자신들 인생의 대부분을 원래일제가 지배하던 곳에서 살아온 사람이 수많은 이득을 포기하고 덤벼들 수 있을까. 그런 말을 과감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의 말한 사람의 삶 역시 어떠한지 돌아볼 일이다. 지금도 못 한다면, 그때도 못 했고, 미래에도 못 할 것이다.

그래서 어쩌자는 말인가. 다시 역사 이야기로 돌아온다. 역사는 역동적이다. 그 과정은 지루하고 승산 없는 싸움이다. 끝없는 서류 더미를 뒤지거나, 땅을 파는 과정은 지루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시간의 틈은 무한정해서 절대 메꿀 수 없다. 그럼에도 인간은 역사를 만들었다. 그 노력들이 끊임없이 질문을 불러온다. 나를 그 위치에 앉혀 놓고 묻는다. 너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내가 답한다. 그러면 다시 묻는다. 지금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역사는 계속해서 살아 움직인다. 묻고,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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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대학 유학생들은 총독부 식민 통치를 유지하는 관료의 수급처였으며, 관공사립 교육기관과 식민지 언론, 출판 및 경제계의 핵심 인사들이었다. 또 해방 이후에는 남북한 국가 건설의 중요한 인적 자원이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은 남북한 근대 학술의 기원이 되었다. 달리 말하면, 제국대학은 일본만이 아니라 식민지 및 남북한에서도 국가 엘리트 육성 장치였다. p.22

조선총독부는 식민지를 쥐어짰지만, 일본 자본주의의 폭발적인 팽창에 따른 수요 때문에 일제에 협조적인 식민지 자본가들에게 여러 특혜를 주었다. 이러한 정책은 식민지를 계급적으로 분할통치하는 데에도 효과적이었다. 경성방직의 성공은 일본 자본주의의 급격한 팽창과 총독부의 식민지 분할통치라는 외부 요건에 힘입은 바 크다. 민족을 내세우는 주술 속에서 우리가 가끔 잊곤 하지만, 식민지 체제에서 민족 모두가 같은 강도로 억압받은 것은 아니었다. p.42

구한말의 지주는 식민지 산업자본가를 낳았고, 그 산업자본가는 군사정권의 국무총리를 낳았다. 김연수-김상협 부자에게서 확인할 수 있듯이, 제국대학은 한국 사회의 지배 엘리트를 재생산하는 제도로도 기능했던 것이다. p.54

지금의 자리에서 총독부의 더러운장학금을 받았다고 비난하는 것은 손쉬운 일이다. 더 큰 지식을 구하려는 식민지 청년들의 꿈이 가난에 가로막혔을 때, 조선총독부의 장학금은 어쩌면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 같았을지도 모른다. 관비 유학에 대한 비난하(p.85)기 전에 그들이 관비 유학을 통해 얻은 지식을 어디에 썼고, 어떤 길을 걸어갔는지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그럼에도 비판하려면 다음을 묻고 답할 필요가 있다. 그때 그곳에 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는 자신 있게 포기했을 거라고 답하진 못하겠다. p.86

생활의 수단으로서 사무 지식과 행정 기술을 습득한 관료 계급의 생리 중 하나는 체제에 대한 비판을 회피하고 그것에 복종하는 것이다. 독립된 국가에서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식민지 체제(p.143)에서야 말해 무엇하랴? 그들은 동족에 대한 징용, 징병, 공출에 앞장선 사람들이다. 제국대학을 나온 우수한 두뇌와 유능함은 행정의 대상이 된 조선 민중에게는 큰 해악이었다. p.144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계층의 사람들은 현대사회 각 분야에서 두드러질 가능성이 더욱 크다. 이러한 좋은 배경을 타고난 것이 그 개인의 잘못은 아니지만, 그것의 역사성은 문제 삼아야 한다. 내게는 1997년과 2002년의 두 번에 걸친 대선 결과가 근 한세기 동안 공고하게 계속된 귀족적 기득권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의식적 거부로 여겨진다. p.153

루이 파스퇴르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 p.156

식민지에서 과학은 스포츠 내셔널리즘과 유사한 기능을 했다. 식민지 조선에서 세계적 과학자는 민족의 울분을 풀어준 스포츠 스타와 비슷한 방식으로 소비되었다. p.163

제국대학(유학)을 민족주의 토대를 둔 도덕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은 이광수 개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 사회는 이러한 관점에 아주 익숙하다. 물론 그 책임의 대부분은 제국대학 유학생들에게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유학생 대부분은 일본 제국-식민지 체제를 유지하는 데 기여했기 때문이다. 총독부 행정-사법 및 식산은행과 관립학교 등 식민지 국가 기구의 각 영역에서 그들은 제국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유용한 부품으로 작동했다.

그러한 사실을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부정적 요소 때문에 제국대학이라는 지식 제도와 관련된 근대 한국의 경험을 도덕적인 이분법으로 모두 이라 규정하고 그것을 적출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환상이다. 한국 근현대의 지식과 문화, 제도는 솜씨 좋은 외과의사가 좋은 세포만을 남겨두고 암 덩어리를 도려내듯, ‘일본적인 것혹은 미국적인 것을 발라내면 민족적인 것만 남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그러한 본질주의야 말로 가장 위험한 사고일지도 모른다.

모든 근대 문화는 식민지 문화라는 자크 데리다의 명제처럼 근대는 이질적인 것의 혼종 속에서 성립했다. (p.296) 제국대학이 근대 한국 사회에 끼친 영향은 적지 않아서 그것을 삭제하는 것은 근대의 형성에 작동한 가장 중요한 퍼즐을 없는 것처럼 취급하는 것이다. 일본 식민주의의 진정한 청산을 위해서라도, 제국대학이 한국 사회에 끼친 영향의 실상을 역사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논의는 그 작업의 작은 첫걸음이었을 뿐이다. p.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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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옳다-정혜신] 잘못된, 틀린 것은 없다. 너도 옳다. 그리고 나 역시도 옳다. | Memento 2019-10-05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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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당신이 옳다

정혜신 저
해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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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틀린 것은 없다. 너도 옳다. 그리고 나 역시도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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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옳다 : 정혜신의 적정심리학> 제목을 보는 순간, 저자를 아는 순간 이 책은 무조건 읽야만 했다. 여자친구와 자주 겪는 일 중 하나. 수 많은 남성들이 겪는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필요한 건 옳고 그름을 가려내고, 문제를 해결해 낼 수 있는 실마리를 얻는게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충조평판의 다른 말은 바른말이다. 바른말은 의외로 폭력적이다. p.494”

하지만 이 폭력을 멈추기가 쉽지 않다. 바른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은 그 사람에게 애정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충조평판의 대상이 아닌 사람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란 말이다. 하지만, 공감한다는 일은 여기서 멀어지는 일이다. 결국 마음가짐의 문제다. 충조평판을 한다는 것은 애정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거꾸로 내가 상대방보다 우위에 있다는 표현이다. 애정이 있어도 자기보다 윗사람에게는 하기 어려운 일이 충조평판아닌가. 애정이라는 핑계로 상대방에 우위에 서려는 무의식, 상대방을 통제하려는 행위는 진정으로 상대방을 이해하기 힘들게 한다.

이런 충초평판은 악순환을 만든다. 남에게도 그러하다면, 나에게도 충조평판을 하지 못할 이유가 있는가. 이러한 충조평판은 스스로를 자해하고, 상대방에게 이끌려 다니게 만든다. 먹고사는 힘은 자기를 지켜내는 힘에서 만들어진다. 자기 학대와 모멸을 스스로에게 강제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자해하는 사람이다. 국경을 침범한 사람이 무서워 그의 비위를 맞춰주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잠시는 목숨을 부지할 수 있지만 식(p.341)민지의 국민으로 비참한 삶만이 기다릴 뿐이다. p.342” 충조평판은 결국 자신이 아닌 역할에 충실하게 만든다.역할에 충실한 관계란 모름지기 주부란, 아내란, 엄마란, 며느리란 이러이러해야 한다. 모름지기 가장이란, 아빠란, 아들이란, 사위란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집단 사고에 충실한 삶이다. ... 평생을 살아도 그가 누구인지 모를 수밖에 없는 삶이다. p.416” 이런 삶을 산다면 공감하는 삶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

인간의 삶은 벽 그 자체다. 그런 점에서 모든 인간은 본질적으로 우울한 존재다. 그러므로 우울은 질병이 아닌 삶의 보편적 바탕색이다. 병이 아니라 삶 그 자체라는 말이다. p.141” 이를 인정하는 것에서 공감은 시작한다.공감은 누가 이야기할 때 중간에 끊지 않고 토달지 않고 한결 같이 끄덕이며 긍정해 주는 것, 잘 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다. 전혀 잘못 짚었다. 그건 공감이 아니라 감정 노동이다.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들어주다 보면 지친다. p.193” 진정한 공감은 언제나 나를 놓쳐선 안 된다. 언제나 내가 먼저다. 그게 공감의 중요한 성공 비결이다. p.200”

더불어 공감을 정서적 공감인지적 공감으로 나눈다면 그 비율이 2:8 정도로, 공감이란 것은 인지적 노력이 필수적인 일 p.206”이다. 그래서 계속 배워야 한다. “배워야 아는 고통, 배워야 공감할 수 있는 고통이 세상에는 더 많다. 그래야 최(p.207)소한 그런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지 않을 수 있다. p.208” “공감은 그저 좋아 보이는 외형에 대한 지지와 격려의 반응이 본질이 아니다. 존재 자체에 대한 주목 p.236”이어야 한다. 온몸을 갈아가며 자기 성찰을 하는 과정 p.398”이다.

결국, 자신을 대면하는 일이다. 공감은 스스로를 세우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쉽게 잊는다. 충조평판으로 세상을 헤쳐 가려 한다.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계몽이 아니다. p.519” 나 스스로도 마찬가지다. 나를 움직이는 방법, 그리고 나아가 사람들과 함께 하는 방법에 대해 조금은 실마리를 얻는다. 그 길은 멀고 험하겠지만. 당신도 옳고, 나도 옳다. 틀리거나 잘못된 것은 없다. 조금 다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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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증은 내게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일, 그 답을 얻기 위해 치열하게 갈등하는 시간을 건너뛰더라도 마음을 덜 불편하게 했다. 자격증은 내가 답을 가졌다는 징표처럼 느끼게 해줬다. p.33

자격증 있는 사람이 치유자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치유자다. 사람의 본질, 상처의 본질을 알고 움직이는 사람만이 치유자일 수 있는 곳, 그곳이 트라우마의 현장이다. p.40

사람의 삶에 마지막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외부적 환경이나 상황 등 그들의 조건이 아니라 그 사람 존재 자체다. p.40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것이 진정한 전문가적 시선과 태도다. 그런 토대 위에서 우리 모두가 자기 스스로를 돕고 가족이나 이웃도 직접 도울 수 있는(p.41) 적정한 심리학이 가능하다고 나는 믿는다. p.42

스타가 누리는 지위와 힘은 빼어난 재능과 고도의 촉을 바탕으로 자기 소멸의 경지에 다다른 이가 누리는 화려한 보상이다. 그게 스타의 본질이다. p.56

모든 아이가 다 다르듯 모든 노인도 당연히 다 다르다. 개별적 존재들이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들은 노인을 노인이라는 집단적 정체성이 전부인 존재로 바라본다. 노인이 아닌 어느 누구에게라도 그런 시선은 그 존재에 대한 폭(p.66)력이다. 누군가와 생생한 관계를 맺고 있는 유기체가 아닌 노인 일반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그 존재에 대한 무례다. 그 시선은 그의 개별성을 몽땅 휘발시킨다. p.67

자기 존재가 집중받고 주목받은 사람은 설명할 수 없는 안정감을 확보한다. 그 안정감 속에서야 비로소 사람은 합리적인 사고가 가능하다. p.70

자기 존재에 주목을 받은 이후부터가 제대로 된 내 삶의 시작이(p.73). 거기서부터 건강한 일상이 시작된다. p.74

한 사람이 제대로 살기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할 스펙이 감정이다. 감정은 존재의 핵심이다. 한 사람의 가치관이나 성향, 취향 등은 그 존재가 누구인지 알려주는 중요한 구성 요소들이지만 그것들(p.91)은 존재의 주변을 둘러싼 외곽 요소들에 불과하다. 핵심은 감정이다. 내 가치관이나 신념, 견해라는 것은 알고 보면 내 부모의 가치관이나 책에서 본 신념, 내 스승의 견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 감정은 오로지 . 그래서 감정이 소거된 존재는 나가 아니다. 희로애락이 차단된 삶이란 이미 나에게서 많이 멀어진 삶이다. p.92

일상의 외주화’ ... 아기 때부터 도리도리와 걸음마를 과외 교사가 가르치고 연인과 사랑하는 법조차 연인과 사랑하는 법조차 학원에서만 배울 수 있다면 뭔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된 것이다. p.123

이 땅에서 사는 일은 죽음 충동을 특별한 질병의 징후라고 여길 수 없을 만큼 일상적이지도 평화롭지도 않다. 모든 게 전투적이다. 불행이 이웃처럼 가깝다. ... 우리 사회에서 죽음이나 죽음 충동은 삶의 평범한 일부가 됐다. (p.125) ... 이런 상황에서 죽음 충동은 정신과 의사들의 진단서 안에 갇힌 특별한 의학적 영역의 사건으로만 볼 수 없다. 일상에 가깝다. 죽음은 수많은 삶의 사연 곁에 늘 함께 있다. 사연으로 가득한 개인들의 복잡한 상황과 갈등 곁에 항상 존재하는 것이 죽음이다. 그 개별적 사연과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죽음 충동이나 죽음에 대한 생각을 의학적인 질병인 양, 생물학적 원인의 우울증인 양, 건강하기 그지없는 몸에 이상하게 돌출한 이물질인 양 바라보는 시각은 잘못됐다. p.127

심각한 내 고통을 드러냈을 때 바로 그 마음과 바로 그 상황에 깊이 주목하고 물어봐 준다면 위로와 치유가 이미 시작된다. 무엇을 묻느냐가 아니고 나에게 집중하고 나의 마음을 궁금해 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치유이기 때문이다. p.130

인간의 삶은 벽 그 자체다. 그런 점에서 모든 인간은 본질적으로 우울한 존재다. 그러므로 우울은 질병이 아닌 삶의 보편적 바탕색이다. 병이 아니라 삶 그 자체라는 말이다. p.141

우울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다. 우울이라는 내 삶의 파도에 리듬을 맞춰 나도 함께 파도에 올라타야 할 타이밍이다. p.148

내 상처의 내용보다 내 상처(p.175)에 대한 내 태도와 느낌이 내 존재의 이야기다. 내 상처가 가 아니라 내 상처에 대한 나의 느낌과 태도가 더 라는 말이다. 내 느낌이나 감정은 내 존재로 들어가는 문이다. 느낌을 통해 사람은 진솔한 자기 존재를 만날 수 있다. 느낌을 통해 사람은 자기 존재에 더 밀착할 수 있다. p.176

충초평판은 고통에 빠진 사람의 상황에서 고통은 제거하고 상황만 인식할 때 나오는 말이다. 고통 속 상황에서 고통을 제거하면 그 상황에 대한 팩트 대부분이 유실된다. 그건 이미 팩트가 아니다. 모르고 하는 말이 도움이 될 리 없다. 알지 못하는 사람이 안다고 확신하며 기어이 던지는 말은 비수일 뿐이다. p.177

고통을 마주할 때 우리의 언어는 거기서 벼랑처럼 끊어진다. 길을 잃는다. 그 이상의 언어를 알지 못한다. ... 그때 필요한 건 내 말이 아니라 그의 말이다. 그의 존재, 그의 고통에 눈을 포개고 그의 말이 나올 수 있도록 내가 그(p.179)에게 물어줘야 한다. 무언가 해줘야 한다는 조바심을 내려놓고 지금 그의 마음이 어떤지 물어봐야 한다. 사실 지금 그의 상태를 내가 잘 몰즤 않는가. 물어보는게 당연하다. 내가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을 지각하고 인정한다면 그에게 물어볼 말이 자연히 떠오른다. p.180

내 고통에 진심으로 눈을 포개고 듣고 또 듣는 사람, 내 존재에 집중해서 묻고 또 물어주는 사람, 대답을 채근하지 않고 먹먹하게 기다려주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상관없다. 그 사람이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해주는 사람이 중요한 사람이다. 한 사람이 있으면 사람은 산다. p.183

사람은 그(p.184) ‘한 사람이라는 존재의 개별성 끝에서 보편성을 획득한다. 그러므로 한 사람은 세상의 전부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한 사람이고 한 세상이다. 그래서 누구든 결정적인 치유자가 될 수 있다. p.185

공감은 누가 이야기할 때 중간에 끊지 않고 토달지 않고 한결 같이 끄덕이며 긍정해 주는 것, 잘 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다. 전혀 잘못 짚었다. 그건 공감이 아니라 감정 노동이다.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들어주다 보면 지친다. p.193

공감은 상대를 공감하는 과정에서 자기의 깊은 감정도 함께 자극되는 일이다. 상대에게 공감하다가 예기치 않게 지난 시절의 내 상처를 마주하는 기회를 만나는 과정이다. 이렇듯 상대에게 공감하는 도중에 내 존재의 한 조각이 자극받으면 상대에게 공감하는 일보다 내 상처에 먼저 집중하고 주목해야 한다. 스스로에게 따스하게 물어줘야 한다. (p.199) 언제나 나를 놓쳐선 안 된다. 언제나 내가 먼저다. 그게 공감의 중요한 성공 비결이다. p.200

공감을 정서적 공감인지적 공감으로 나눈다면 그 비율이 2:8 정도로, 공감이란 것은 인지적 노력이 필수적인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p.206

배워야 아는 고통, 배워야 공감할 수 있는 고통이 세상에는 더 많다. 그래야 최(p.207)소한 그런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지 않을 수 있다. p.208

잘 모르고 우선 찬찬히 물어야 한다. 내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시작되는 과정이 공감이다. 제대로 알고 이해(p.212)할 수 있을 때까지 조심스럽게 물어야 공감할 수 있다. 그래서 공감은 가장 입체적이고 총체적인 파악인 동시에 상대에 대한 이해이고 앎이다. p.213

상처를 덧나게 하는 질문이 따로 있다기보다 상대방에게 던진 질문이 상대방(p.213)으로 하여금 나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거나 오해를 하고 있다는 증거나 나를 비난하는 의도를 품고 있다고 느껴졌을 때 사람은 상처를 받는다. p.214

과녁을 정확하게 한 질문이나 시선은 한 존재 자체를 그런 식으로 조금씩 흔든다. 성찰하게 한다. 마음을 열게 만든다. 과녁에 정확하게 닿은 공감적 대화의 힘이다. p.228

이야기하는 사람보다 듣는 사람이 이야기를 과녁에 맞게 바꿔주는 것으로 시작하는 게 더 수월하다. 듣는 사람이 상대방의 이야기를 세상사 이야기에서 그 자신의 얘기로 돌려주면 된다. 그러면 낯설어도 자기를 만나며 마음이 움직인다. p.231

공감은 그저 좋아 보이는 외형에 대한 지지와 격려의 반응이 본질이 아니다. 존재 자체에 대한 주목이어야 하고 그럴 때만이 그 위력이 오롯이 나타난다. p.236

문이 존재 자체라면 문고리는 존재의 감정이나 느낌이다. 공감 과녁의 마지막 동그라미는 존재가 느끼는 감정이나 느낌이다. 존재의 감정이나 느낌에 정확하게 눈을 포개고 공감할 때 사람의 속마음은 결정적으로 열린다. 공감은 그 문고리를 돌리는 힘이다. p.244

상처를 누르며 지내는 시간은 혼돈의 시간이다. 애증과 분노, 자책의 감정들 사이를 시계추처럼 움직이는 탈진의 시간이다. 널뛰는 감정에 휘둘리는 게 힘들어 방법만 있다면 그 시간을 끝내고 싶은 마음뿐이다. p.252

내 공감을 포갤 곳은 그의 생각과 행동이 아니라 그의 마음, 즉 감정이다. 존재의 느낌이나 감정이 공감 과녁의 마지막 중점이다. p.271

분노를 말할 수 있으면 분노로 폭발하지 않는다. p.280

상호성과 동시성을 잃으면 공감도 없다. ... 공감은 상대를 공감 해주는일이 아니다. 내 상처가 공감 받는 것에 예민하지 못하면 누군가를 공감하는 일에 대한 감각을 유지하기 어렵다. 나와 너, 양방을 공감하지 못하면 어느 일방의 공감도 불가능한 것이 공감의 오묘한 팩트다. 그래서 공감은 너도 살리고 나도 구한다. 그래서 공감은 치유의 온전한 결정체다. 이 온전함의 토대는 오로지 자기 보호에 대(p.312)한 감각에서 시작되고 유지되며 자기 보호는 자기 경계에 대한 민감성에서 시작된다. p.313

자기 보호에 민감한 사람만이 끝내 타인을 공감하는 일을 감당한다. p.314

나와 너 모두에 대한 공감의 줄임말이 공감이다. p.321

헌신성이란 덕목은 의외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경계를 쉽게, 소리 없이 허문다. p.327

관계에서의 상처는 경계에 대한 인식의 부재에서 비롯하는 경우가 많다. ... 사람을 바라보는 이런 게으른 시각은 큰 둑의 작은 구멍이다. 결국 둑 전체를 무너뜨린다. p.332

먹고사는 힘은 자기를 지켜내는 힘에서 만들어진다. 자기 학대와 모멸을 스스로에게 강제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자해하는 사람이다. 국경을 침범한 사람이 무서워 그의 비위를 맞춰주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잠시는 목숨을 부지할 수 있지만 식(p.341)민지의 국민으로 비참한 삶만이 기다릴 뿐이다. p.342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그 관계가 기쁨과 즐거움이거나 배움과 성숙, 성찰의 기회일 때다. 그것이 관계의 본질이다. 끊임없는 자기 학대와 자기혐오로 채워진 관계라면 그 관계는 끊어야 한다. p.343

서로의 사랑에 대한 욕구를 지겨워하지 않고 비난하지도 않고 정면으로 마주한 채 기꺼이 공급하며 공급받는 일은, 우리 모두가 자기 삶의 동력을 마련하는 일이다. 미룰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일이다. p.381

자신에 대한 성찰을 건너뛰고 타인의 마음을 공감하는 일로 넘어갈 방법은 없다. p.384

사람은 자기가 안전하다고 느껴야 자신이 놓은 상황을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니 공감에 제한을 둘 필요는 없다. 사람은 믿어도 되는 존재다. 사랑하는 사람의 유일한 역할이 그것이다. p.392

공감은 온몸을 갈아가며 자기 성찰을 하는 과정이겠지요. 내내 불편하게 자꾸 떠오르며 저를 깨우는 그 무엇이 제 몸을 갈아내며 성찰하는 과정이겠지요. p.398

좋은 대답과 결정이 자신을 지켜주는 게 아니라 자기에게 주목하고 공감해 주는 과정 자체가 자신을 끝내 보호하는 것이다. p.401

사람은 옳은 말로 인해 도움을 받지 않는다. 자기모순을 안고 씨름하면서 그것을 깨닫는 과정에서 이해와 공감을 받는 경험을 한 사람이 갖게 되는 여유와 너그러움, 공감력 그 자체가 스스로를 돕고 결국 자기를 구한다. p.402

타인을 공감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는 공감까지 가는 길 굽이굽이마다 자신을 만나야하는 숙제들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p.409

공감이란 제대로 된 관계와 소통의 다른 이름이다. 공감이란 한 존재의 개별성에 깊이 눈을 포개는 일, 상대방의 마음, 느낌의 차원까지 들어가 그를 만나고 내 마음을 포개는 일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도 내 마음, 내 느낌을 꺼내서 그와 함께 나누고 소통하는 일이다. 그렇게 서로의 개별성까지 닿지 않으면서 함께 사는 (p.415) 부부는 서로의 역할에 충실한 기능적 관계이기 쉽다. p.416

역할에 충실한 관계란 모름지기 주부란, 아내란, 엄마란, 며느리란 이러이러해야 한다. 모름지기 가장이란, 아빠란, 아들이란, 사위란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집단 사고에 충실한 삶이다. ... 평생을 살아도 그가 누구인지 모를 수밖에 없는 삶이다. p.416

누군가를 공감하기 위해 누가 재가 돼버리는 것은 공감이 아니라 감정 노(p.439)동이다. ... 공감은 한 사람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공감은 너도 있지만 나도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되는 감정적 교류다. 공감은 둘 다 자유로워지고 홀가분해지는 황금분할 지점을 찾는 과정이다. 누구도 희생하지 않아야 제대로 된 공감이다. p.440

똑같은 상황에서도 같은 감정을 갖지 않는다. 다르다. 그러므로 공감한다는 것은 네가 느끼는 것을 부정하거나 있을 수 없는 일, 비합리적인 일이라고 함부로 규정하지 않고 밀어내지 않는 것이다. 괌심을 갖고 그의 속마음을 알 때까지 끝까지 집중해서 물어봐 주고 끝까지 이해하려는 태도 그 자체다. 그것이 공감적 태도다. 공감적 태도가 공감이다. p.452

상처를 떠올리고 말해서 힘든 게 아니라 내 상처가 거부당하는 느낌, 거부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아픈 것이다. p.472

사람의 마음은 항상 옳다. p.483

공감이란 너와 너 사이에 일어나는 교류지만, 계몽은 너는 없고 나만 있는 상태에서 나오는 일방적인 언어다. 나는 모든 걸 알고 있고 너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들이다. 그래서 계몽과 훈계의 본질은 폭력이다. 마음의 영역에선 그렇다. p.493

충조평판의 다른 말은 바른말이다. 바른말은 의외로 폭력적이다. p.494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계몽이 아니다. p.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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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임건순] 그렇기에 바로, 지금, 여기서 | Memento 2019-09-23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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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

임건순 저
서해문집 | 2015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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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배운 제자백가는 초,,고를 거치며 역사와 도덕시간에 배운 엑기스들이 었다. 말이 엑기스지 사실상 맥락을 제외한 문장과 단어들의 조합이었다. 시험에 나오는 단어와 문장들을 외우며 졸음과 싸울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건가. 이 사람들의 사상과 고민들이 이 시대에 과연 유효하기나 한 생각인지. 그런 거창한 생각은 접어두고 당장에 내일 시험에 틀리지나 않았으면 했다. 공간과 시간의 거리가 먼 역사(사상)인데, 거기에 당장 필요하지 않은 지식이 머리에 들어올 리 없었다. 게다가 왜 그렇게 비슷해 보이고 재미는 없는지... 대학교에서 다른 관점을 배웠지만 한자를 번역하며 배워야 했기에 해석에 급급할 뿐이었다.

  제자백가를 새로이 보게 된 처음의 기억은 EBS 다큐프라임이었다. 신년특집 다큐프라임 <절망을 이기는 철학 : 제자백가> 6부작에서 제1묵자, 정의 없는 세상에 분노할 때편은 개인적인 충격이었다. 어린 마음에 나름 역사에 대해서 이것저것 주워들었다고 자부했건만, 생소할 따름이었다. 스스로의 필요성, 호기심에 따라 한 두 권씩 책을 주워섬기게 되었다. 춘추전국시대라는 절망적인 상황, 이 절망 속에서 사상가들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은 경이적이었다. “올바른 공동체란 무엇인가.”라는 고민을 가지고 올바른 공동체는 무엇으로 이뤄지는가.”로 투쟁하는 그들의 삶은 전혀 이질적인 생각이 아니었다. 과거의 고민은 아직도 유효하다. 올바름이란 무엇인가. 우리의 공동체는 올바른가. 우리의 공동체는 무엇으로 올바르게 할 수 있는가.

  전쟁으로 고통스러웠던 시기가 오히려 사상을 촉발 시켰다. 생존으로 고민하는 지금, 새로운 생각을 하기 가장 좋은 시기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오랜 생각들을 실천해보거나. 살기 쉬웠던 시절은 없다. 역사의 법칙들이 대부분 틀리고, 역사적 사실들이 오류투성이겠지만, 이 사실은 명확하다. 그렇기에 바로, 지금, 여기서 노력해야 한다. 바로, 지금, 당장 이룰 수는 없지만, 그러한 노력, 생각, 고민들이 공동체를 올바르게 만드는 힘이다.

  사람마다, 정치색마다 생각하는 바는 다르다. 지향하는 올바른 공동체도 다르다. 하지만 결과는 같다. 그것을 잊지 말고, 함께 하는 공동체, 진정한 엑기스를 모은 공동체가 되기를 고민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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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실용주의자 관중의 부유한 공동체

가난한 인민은 국가가 통치할 수 없다, 가난한 인민에게 국가에 순응하고 충성하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다.’ p.92

인간관계를 파괴하는 증오심을 얼마나 잘 통제하고 억제할 수 있느냐의 문제, 그것 역시 문명 수준을 판가름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p.120

관중 같은 인본주의 없는 실용주의자라고 해도 이렇게 사회의 생산력을 고갈시켜만 가는 한국 사회를 보면 최악의, 최저질의 실용주의 사회라고 할 것입니다. 아니 , 실용주의도 아니라고 할 것입니다. p.126

2장 인본주의자 안자의 여민동락 공동체

위정자는 측은지심을 기초로 하여 여민동락의 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정치 이상, 그말의 원조는 안자 p.170

6장 유묵의 장수 오기의 부자지국, 부자지병 공동체

국가를 둘러싼 울타리가 얼마나 튼튼한가 하는 문제 못지않게, 울타리 안에서 어떻게 통치가 이루어지고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하게 사느냐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p.342

7장 국가주의자 상앙의 국력 극대화 공동체

특별히 주목할 것은, 상앙은 인민이 법을 잘 알아서 그 법으로 관리의 횡포에 대항하고, 법으로 자기 권리를 주장하고 지킬 수 있도록 법치 체계를 기획했다는 것입니다. ... 법술지사들이 주장하고 실행한 법(p.425)치라는 것이 기존의 체제보다는 인민의 권익을 향상시키고 사회 진보와 선진화를 이끄는 것이었다는 사실 p.426

8장 대장부 맹자의 항산, 항심, 지식인 공동체

항산이란 안정된 생업, 일정한 생업의 기반인데요. 그것을 우선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일정한 생업이 있어야 항심이라는 한결같은 마음, 착한 마음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p.457 ... 인민에게 항산(생업)을 보장해주는 통치부터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p.458

9장 상대주의자 장자의 양생 공동체

그놈이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우린 지금껏 이런 교육만 받아왔습니다. 도구적 이성만을 특화하는 교육이지요. 항상 어떻게?’라는 질문만을 하게 하는 교육 말입니다. 하지만 이제 비판적 이성을 교육해야 합니다. 이런 질문을 던지게 해야지요. “왜 공부를 해야 할까?” “왜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할까?” “왜 돈을 벌어야 할까?” 그래야 무엇이든 상대화해볼 수 있고, 회의도 해볼 수 있습니다. 거리를 둔 채 바라보면서 정답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되지요. 또 무엇을 밖에서 강요하고 요구하든 선택지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그래야 자각적, 주체적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p.545

13장 구세의 선비 한비자의 민본주의 공동체

지도자의 성격이 강하고 유순하고, 그런 것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저 사람만 믿고 따르면 되겠구나하는 인식이 조직 구성원에게(p.788) 생겨야 지도자의 세가 확고해집니다. p.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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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의 아이들-타냐 스키] 연좌제, 역사의 방파제 | Memento 2019-09-22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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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법 제13조제3항은 연좌제를 금지하고 있다.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 연좌제는 동서양, 고래를 막론하고 시대를 지배해온 제도다. 1894년 갑오개혁 때 범인 이외에 연좌시키는 법은 일절 시행하지 마라(罪人自己外緣坐之律一切勿施事)”는 칙령을 통해 연좌제가 폐지되었지만, 전쟁과 이념 갈등 속에서 꾸준히 명맥을 이어오다가, 5공화국 헌법에 명시되었다. 연좌제의 역사가 오랜 이유가 있을 법도 하다.

단연 첫 번째 이유는 통치체제의 안정을 위함이다. 정적을 제거하고, 반란의 씨앗을 영구히 제거할 수 있다. 더불어 귀족과 민중을 통제하고 제어할 주요한 명분이자 수단이 된다. 매우 실용적인 이유다. 두 번째 이유는 생존을 위함이다. 첫 번째 이유에서 파생된 문화적인 측면이다. 연좌제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대상자들과 극단적으로 분리되어야 한다. 괜히 피 보지 않으려면 멀리 떨어져야만 한다. 나와의 관련성을 지우고, 격렬한 거부 반응을 보여야만 한다. 이것들이 문화적으로 각인되었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인간 본연의 성품(?)에 기인할 수 있다. 인간은 본인과 다른 대상은 본능적으로 거부하기 마련이다. 편을 가르고, 경계를 만들어 안정감을 얻는다.

그럼에도 연좌제는 완벽하게 작동하지 않았다. 패배는 곧 죽음이었지만, 반전도 있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지만, 연좌제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은 패자들은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복수를 통해 패자에서 승자의 영광을 되찾기도 했다. 연좌제가 폐지된 지금, 이러한 패자들은 우리 곁에 함께 숨 쉬고 있다. <나치의 아이들>은 이런 패자의 자식들, 과거라면 연좌제의 대상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SS와 게슈타포의 수장이자 홀로코스트의 제1 공적자인 하인리히 힘러부터 수용소 내에서 죽음의 천사로 불리며 잔혹한 생체실험을 했던 요제프 멩겔레의 자녀들의 삶과 행적을 훑어준다.

역사적 대죄인의 자녀들에게 책임만을 묻기는 잔인하다. 업보이자 운명이라면 달리 할 말이 없다. 분명한 사실은 부모를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없다. 대죄인의 자녀로 태어난 삶은 자신들이 선택하고, 행동한 결과가 아니다. 결국 연좌제 외에는 그들을 벌할 방법은 없다. 존재 자체가 문제라면, 그들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일까. 부모에게서부터 자신에게 이어진 역사적 책임 앞에서 어떤 태도를 지니고 살아야 합당한 것일까. 누가 그들에게 책임을 지울 수 있을까. 그들에게 책임은 있기는 한 걸까. 현대 역사의 가장 어두운 시기에 대한 책임이 있는 범죄자의 딸이고 아들(p.8)의 삶은 어떠해야 할까.

끝없는 갈등 속에서 선택적인 수용과 거부를 통해서 자신들의 삶을 꾸려야 한다. 아버지와 과거를 수용하고 현재를 거부하거나, 부모를 거부하고 역사와 현재를 수용하거나, 자신을 거부하고 새로운 세상을 수용하거나 가족의 역사를 무시할 수 없. “가족의 역사는 무거운 짐이다. (p.560)” “죄를 물려받지는 않지만 우리 조상의 죄로 생겨난 결과는 물려 받는다(p.479)” <나치의 아이들>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학살을 저지른 아버지와 대면한 자식들의 고통과 고뇌를(p.565)” 여실히 보여준다.

참상은 다른 형태로 다시 생겨날 수 있. 전 세계적으로 극단적인 정당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역사는 반복하지 않지만, 양상은 반복된다. 그렇기에 역사가 중요하다. “나치즘에 대해 후세에 완벽히 전달(p.557)”하여 역사의 방파제를 만들어야 하듯, 우리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옮긴이도 번역하면서 우리나라를 떠올렸다 한다. (p.568) 주요 친일파 후손들 역시 어떤 생각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개인정보 등 여러 가지 제약이 있겠지만, 흥미로운 주제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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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보다 무서운 건 평범한 사람들이다. p.8

프리모 레비 괴물들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들은 진정으로 위협적인 존재가 되기에는 그 수가 너무나 적다. 그런데 더 위험한 존재들이 있다. 바로 평범한 사람들이다.” p.22

인간들 사이에는 절대적인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사상에 중심적인 토대를 둔 나치즘 특유의 개념으로 말미암아, 이런(p.83) 남자들은 보편적인 도덕을 무시하면서도 스스로 도덕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p.84

자식들의 경우에는 정신적으로 방어하려는 성향이 유독 강하다. p.98

볼프 뤼디거 헤스에게 프랑크의 아들은 병리적인 사례였다. 그는 아버지에 대한 니클라스의 증오가 전적으로 추잡하다고 여겼다. 이와는 반대로 니클라스 프랑크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아버지의 무게로 인해 운명이 짓이겨진 볼프 뤼디거에게 동정심을 느꼈다. 니클라스 프랑크는 루돌프 헤스의 무기징역형을 두고 이 지점에서 헤스의 아들은 나보다 짊어져야 할 짐이 더 무거웠다. 그의 운명은 더 무겁다.”라고 생각했다. p.230

루돌프 회스 나의 소중한 아들 클라우스야, 너는 장남이란다. 너는 이제 이 넓은 세상에서 한 자리를 갖게 될 거다. 너는 살면서 자신의 길을 가야 한다. (p.406) 너는 훌륭한 능력을 지녔다. 그것을 잘 이용하려무나. 네 선한 마음도 간직하거라.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무엇보다 열의와 인간성이 너를 인도하도록 만들거라. 오로지 양심에 따라 너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법을 배우거라. 어떤 것이든 비판적인 정신 없이, 그리고 절대적인 진리로 받아들이지 말거라.” (p.407)

(라이너 회스)는 현재 극우 조직들이 히틀러의 독일 때보다 더 잘 조직되어 있고, 국가들이 역사로부터 어떤 교훈도 얻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p.420

우리는 죄를 물려받지는 않지만 우리 조상의 죄로 생겨난 결과는 물려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책임지는 자세로 행동하고 재산을 강탈당한 사람들에게 그들의 소유물을 돌려주는 것이 각자가 해야 할 일이다. p.479

빌리 브란트(독일 총리) “인간이 말로써 표현할 수 없을 때 할 수 있는 행동을 했을 뿐입니다.” p.551

노르베르트 프라이(역사가)가 강조하듯이, 역사와 홀로코스트의 영향을 견딜 수 있기까지는 몇 세대가 지나야만 할 것이다. 실제로 알다견뎌내다는 구분해야 한다. p.551

어쨌든 모든 이들은 나치의 자식이라는 사실과 대면해야 했다. p.555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나치즘에 대해 후세에 완벽히 전달하는 일이다. 참상은 다른 형태로 다시 생겨날 수 있으며, 새로운 극단주의가 부상한 것이 그 증거다. 히틀러는 다시 돌아오지 않지만, 그가 집권할 수 있게 했던 상황과 유사한 사건들이 생겨날 가능성은 매우 높다. 과거가 모든 방면에 걸쳐 있는 극단주의를 방지하는 방파제가 될 수 있을까? 히틀러 청년대에서 활동한 세대는 사라져가는 중 인데다, 그 이후로 이미 4세대가 지났다. 이제 그러한 사회적, 경제적, 법적 환경에서 나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를 생각하는 것은 더이상 금기시되는 일이 아니다. p.557

그들이 지닌 유일한 공통분모는 가족의 역사를 무시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가족의 역사는 무거운 짐이다. p.560

이 책은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학살을 저지른 아버지와 대면한 자식들의 고통과 고뇌를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이라는 관점에서 그리고 있다. p.565

이 글을 옮기면서 이따금 우리나라의 상황을 생각하곤 했다. 주요 친일파 후손들을 말하려는 것이다. 그들이 이 책에 등장하는 나치의 자식들과 비교할만한 점이 있을지 궁금했다. p.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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