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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생이 온다-임홍택] 세대론 이야기의 한계 | Memento 2019-06-29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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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90년생이 온다

임홍택 저
웨일북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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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생들을 지나치게 대상화 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게 유일한 아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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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대론은 필연적으로 상대를 대상화 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즉 성장한다는 것은 자기만의 언어를 가지게 된다는 의미(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엄기호, p.13)”라면, 평가대상이 되는 청년세대들은 아직 본인들의 언어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절대적인 시간의 문제다. 따라서 동세대가 스스로를 평가하기가 어렵다. 젊은 세대를 분석한다고 한다면, 대부분이 어른 세대의 언어로 어린 세대를 평가하기 마련이다. 언어를 다르게 표현한다면 권력이다. 자기만의 언어를 가질 때 비로소 인간은 자기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읽고, 그 세상에 개입할 수 있다.(앞의 책, p.13) 정치권에서 왜 청년들의 이야기가 나오기 힘든가. 그들의 언어가 없기 때문이다. 목소리는 있지만, 그것을 정제하여 대변할 언어가 없기 때문이다. 언어와 권력이 없고, 항상 평가의 대상으로서 젊은 세대는 못마땅한 존재로 비춰지곤 한다. 기존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저자 역시 ”20세기 말부터 유행하는 청년 세대의 명칭은 거의 예외 없이 수동적이고 부정적(p.109)“이라고 말하며, 비슷한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90년생이 온다> 역시 같은 한계를 지닌다. 스스로의 표현이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의 이야기가 조직 관리나, 매출성향과 공략방안에 맞춰져 있다. 저자가 참조했던 자료들이 대부분 그와 관련이 있다. 특정 세대를 연구하는 이유가 실용적인 목적이 대부분이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아니면 저자의 목적이 거기에 있었는지 모른다.) 90년생들을 지나치게 대상화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저자가 스스로 발로 뛰고 노력해서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냈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주가 아니라 보조적인 이야기인 느낌이 든다. 자신의 논거를 뒷받침하기 위한 사례 정도로 말이다.

 

  물론 저자의 믿음에 공감한다. 다음 세대가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믿는다. 그들에게도 그런 믿음을 주고 싶다.(p.588~589)”는 생각이 책을 만들었을 테고, 많은 공감을 사는 이유겠다.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말에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지금의 90년대생들은 자신들을 사회 발전의 원동력으로 여기지 않고 특정 이상을 실현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단지 그들은 현 시대에서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p.67~68)” 이렇게 살도록 누가 만든 것인가?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너는 빠져라. 라고 가르친 어른들 세대가 아닌가? 먹고 사는 것 앞에서 누구보다 비겁해지는 모습을 본 이상, 그렇게 살아도 살아남기 힘든 세상임을 아는 이상. 특정 이상에 목숨을 걸 이유가 더 이상 없다. 그리고 그들만을 탓해서는 안된다.

 

  그래놓고 맺음말로 혼자 이룰 수 있는 건 없다고 말한다면, 기존세대의 언어로 은근히 협박하는 느낌이다. 우리가 너희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만큼, 너희도 우리를 이해해야 한다. “‘내가 이제는 새로운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자연스럽게 새로운 세대를 맞이하며 공존의 길을 찾는 일(p.19)”은 한 세대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언어를 온전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이야기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싶었다. 물론 나에게 이렇게 말고 다르게 분석할 대안을 제시하라면 할 말은 없다. 그런 능력은 없다.

 

  아쉽지만, 그래도 저자의 선의를 믿는 수밖에 없다. 꼰대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완벽한 탈출을 할 수 없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단지 스스로 꼰대일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개선해나갈 따름이다.(p.260)” 90년생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쉽고 빠르게 그들을 알 수 있는 책이다. 미래에 주역이 될 90년생들에게는 너희들도 언젠가는 기득권이 된다는 잔인한 현실을 알려준다. 더불어 90년생들에게 묻는다. 00~10년생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가. 어떤 모습이고 싶은가. 80년생 저자가 90년생을 이렇게 보았듯, 90년생들도 자신만의 세대를 만끽하고 새로운 이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세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되새겨 본다.


  군대에서 전역을 앞두고 회식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이제 곧 전역할 선임인 나에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솔직하게 말해주는 이벤트(?)였다. 회식자리에서, 웃으며 재미있게 들었다. 그 친구들은 무엇 하고 있을까. 생각해보면 그 친구들이 90년생이었다. 90년생들 본인들은 어떻게 읽었는지, 그 이후 세대들은 어떻게 볼지 궁금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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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낡아 사라지고, 다음 세대로 채워지게 될 것이다. 그 시점이 언제인지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내가 이제는 새로운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자연스럽게 새로운 세대를 맞이하며 공존의 길을 찾는 일일 것이다. p.19

지금의 90년대생들은(p.67) 자신들을 사회 발전의 원동력으로 여기지 않고 특정 이상을 실현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단지 그들은 현 시대에서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p.68

20세기 말부터 유행하는 청년 세대의 명칭은 거의 예외 없이 수동적이고 부정적이다. p.109

과거의 경험에 집착하는 기성세대보다 그로부터 자유로운 청년이 더 빠른 적응력을 보이고, 따라서 젊은 세대에게 삶의 방식을 배워야할 때가 올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살아본 적 없는 미래의 세계에서 우리는 모두 시간 속의 이주민인 셈이다. 이제 청년이 스승이 될 수 있다. (미국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 p.114

꼰대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완벽한 탈출을 할 수 없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단지 스스로 꼰대일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개선해나갈 따름이다. ... 우리는 꼰대를 벗어나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괴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p.260

새로운 세대의 변화는 기업들에는 보이지 않는 위협이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위험한 것이다. 그들은 특별한 움직임(p.501)을 보이지 않고, 매출과 이익 또한 급박하게 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실무자들이 장기적으로 고객이 떨어져 나갔다는 것을 발견하고 문제를 개선하려고 한다면 때는 이미 늦었을 것이다. p.502

90년대생들은 답한다. 우리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재미라고 말이다. p.522

앞으로는 점차 듣기 힘들어진 90년대생들의 의견을 어떻게 직간접(p.577)적인 참여로 이끌어내고, 이를 통해 그들의 성향과 감성에 맞는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해낼 수 있는지에 기업들의 성패가 달려 있다. p.578

기성세대가 되면서 느끼는 진리는 이 세상 속에서 나의 힘 하나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나는 기존 세대의 호의와 사회적 혜택을 통해 지금까지 자라왔다고 생각하고, 다음 세대가 더 나은(p.588) 세상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믿는다. 그들에게도 그런 믿음을 주고 싶다. p.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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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4권-박시백] 최소한의 도리 | Memento 2019-06-26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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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고화질] 35년 4권

박시백 글,그림
비아북 | 2019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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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요구 앞에 고개를 돌리지 않고 응답했던 사람들. 그들의 정신, 그들의 투쟁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것이 모든 것을 내던지고 나를 위해 싸웠던 선열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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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세대는 항상 고통 받습니다. 기득권이 아니기에 가진 것이 없습니다. 권리는 적지만 해야 할 의무는 많습니다. 게다가 늘 싸가지 없고, 게으르고, 도전하지 않는다고 야단 듣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다시 기득권이 되는 순간이 옵니다. 다시 반복합니다. 기득권이 된 청년세대는 다음 세대를 비난하고, 무거운 짐을 지웁니다.

  역사는 반복한다고도 말합니다. 엄밀히 말해서 동일한 역사적 사건은 발생하지 않습니다만, 비슷한 양상이 일어나곤 합니다. 역사에서 주인공은 사람이고, 사람의 본성은 잘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 때는 말이야!”는 변할 수 없는 본능인지 모릅니다. 정도의 차이겠지만 꼰대는 숙명인지 모릅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 해도, 결국 인간은 본인의 기준에서 세상을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청년세대와의 갈등은 인간이 본성에 따라 반복합니다. 그렇기에 역사에서 예외적인 순간들이 눈에 띕니다.

  35년의 제3권은 그 예외적인 순간들을 보여줍니다. 학생 대중이여 궐기하라!는 말에 예외적인 순간이 담겨있습니다. 위기의 순간, 나라를 잃은 그 지점에서 항상 골칫거리였던 청년세대의 위상은 전혀 다른 의미를 보입니다. 독립을 위한 동력이자, 새 나라의 미래가 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방정환 선생님께서 어린이 날을 만든 이유겠습니다.

어린 시절 이 시기의 학생 운동을 보고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우와 나는 과연 저렇게 행동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곤 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못하고 있습니다만.... 시대의 요구에 당당히 응한다는 일이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지금으로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문과 압박이 있었을 테니까요.

  누군가는 그저 국가라는 대의에 소모된 청춘들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박시백 화백이 머리말에 남긴 이야기를 곱씹어봐야겠습니다. 시대의 요구에 응하는 방법은 다양할 겁니다. 좌우의 스펙트럼으로 만으로는 역사를 볼 수 없음은 명확합니다. 항상 역사는 현재의 관점에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앞서 말한 꼰대처럼 말입니다.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임을 자각한다면, 결국 정도의 차이겠습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요.

 

"시대의 요구 앞에 고개를 돌리지 않고 응답했던 사람들. 그들의 정신, 그들의 투쟁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것이 모든 것을 내던지고 나를 위해 싸웠던 선열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이리라. 마찬가지로 우리는 나라를 팔고 민족을 배반한 이들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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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떠나며-이연식]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 | Memento 2019-06-23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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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조선을 떠나며

이연식 저
역사비평사 | 2016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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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다. 아의 목소리와 비아의 목소리 모두가 역사를 만든다. 이 책은 비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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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재 신채호는 역사는 아() 비아(非我)의 투쟁이라 말했다. 우리의 근대사는 필연적으로 아에 치중되었다. 일제의 식민통치에 저항해서 한국의 정신이 살아 있음을 알려야 했다. 독립 후에는 식민지의 피해를 극복해야 했다. 필연적으로 우리의 소리에 집중해야만 했다. 하지만 스스로에게만 집중할수록 우리의 시야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신채호의 말을 떠올린다면, 나만으로는 역사가 성립하지 않는다. 필연적으로 나 이외의 존재들의 소리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내가 보지 못하는 시간, 우리가 놓친 공간을 채울 수 있다. 그렇기에 <조선을 떠나며>는 식민지 말기의 비아에 대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역사의 효용 중 하나가 돌아보는 일이다.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노력이다. 결국 비아를 본다는 일은 비교를 통해 나를 더 풍부하게 알 수 있다.

  “패전은 반세기 동안 아시아를 호령한 일본제국에 총체적 균열을 가져왔다.(p.22)” 이런 상황에서 원초적 본능만 남은 조선의 일본인들에게” “식민 지배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조선인 사회의 목소리는 제대로 들릴 리 없었다. (p.23)” 그전까지는 인식하지도 못했던 조선인들의 존재가 패전 후에야 비로소 조선인의 존재를 강하게 인식하기 시작했고, 이내 그것이 생경한 공포로 다가왔(p.31)”. 일본인과 조선인의 가해와 피해’, ‘피해에 대한 보복이라는 악순환 고리는 패전 후 일본인의 귀환과 조선인의 귀환을 통해 이어지고 있었다. (p.244)” 여기에 미 군정의 적절하지 못한 대응 역시 한 몫을 했다. 미 군정은 관심이 없었고, 우리는 약했으며, 일본은 제 살기 바빴다. 피해는 결국 일반 사람들의 몫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적반하장의 태도를 살펴 볼 수 있다. 본인들도 전쟁의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것들 말이다. 분명 일본인들도 피해를 입었다. 책에서 말하는 대로 귀환민들을 광의의 전쟁 피해자(p.271)” 규정하는 것.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의 피해를 통해 전쟁 피해자로 자리 잡음으로 전후 배상을 최소화하고, 자신들의 내부를 단속하며, 식민지 피해국들의 입을 다물게 하려는 것이 전략이다. 식민 지배에 대한 반성은 근대 이래의 한일관계와 조선에서 보낸 자신의 삶 전체를 상대화할 수 있을 때 획득할 수 있는 관념이다. (p.23)” 연이어 터진 6.25 전쟁은 우리에게 반성을 촉구할 기회마저 날려 버렸다.

  조금 지루하고 딱딱한 내용일 수 있다. 하나 확실한 것은 전쟁으로 인해 한일 양 민족이 모두 피해를 입었, 피해의 정도의 차이는 논외로 하더라도 피해의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에 대해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다.(p.271)” “가해와 피해의 기억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먼저 이에 대한 해답을 양 국민이 납득 하고 공유(p.272)” 해야만 이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그래서 비아의 목소리를, 이 책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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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전은 반세기 동안 아시아를 호령한 일본제국에 총체적 균열을 가져왔다. 그것은 단순히 제국이 지배하던 영역의 공간적 분리나 지배 네트워크의 붕괴로 끝나지 않았다. 좀 더 중요한 문제로 부각된 것은 그동안 애써 감춰왔거나 제국의(p.22) 논리로 강제 봉합되었던 일본인 사회 내부의 잠재된 불신과 갈등이 패전을 계기로 뚜렷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특히 비상시국을 맞아 사리사욕과 개인의 보신만을 추구하는 사회 지도층의 낯 뜨거운 행태는 결국 민심의 이반을 가져왔다. 또한 그것은 오랜 기간 해외의 일본인 사회를 하나로 묶어낸 제국의 이념과 가치관을 급속도로 무너뜨렸다. 지도력과 상호 신뢰의 붕괴는 사회 구성원들로 하여금 위기감과 피해 의식을 고조시켰고, 급기야 극단적인 이기주의로 치닫게 만들어 곳곳에서 일본인 공동체의 해체를 촉진했다. 이제 나만 살겠다는 원초적 본능만 남은 조선의 일본인들에게 천황의 백성으로서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정제되고 균질화된 제국의 일본인 상을 기대하기는 어려워졌다. 상황이 이러하니 일본인을 상대로 식민 지배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조선인 사회의 목소리는 제대로 들릴 리 없었다. p.23

식민 지배에 대한 반성은 근대 이래의 한일관계와 조선에서 보낸 자신의 삶 전체를 상대화할 수 있을 때 획득할 수 있는 관념이다. p.23

언제부터인가 어른들은 조선인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야기 끝에는 이웃 일본인 집에 불이 났다거나, 동네 부잣집과 순사 가족이 차례로 화를 입었다는 심각한 대화가 늘 따라붙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른들이 부쩍 조선인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이는 조선의 일본인들이 패전 후에야 비로소 조선인의 존재를 강하게 인식하기 시작했고, 이내 그것이 생경한 공포로 다가왔음을 말해준다. p.31

남북한을 막론하고 일본인의 본토 귀환과 정착 과정은 강고한 지배체제 속에 숨어 있던 구 제국의 균열이 도처에서 드러나고 확대 심화되는 일련의 과정이었다. p.135

식민지 시기부터 패전과 해방에 걸쳐 복잡하게 얽힌 일본인과 조선인의 가해와 피해’, ‘피해에 대한 보복이라는 악순환 고리는 양 지역 간의 인구 이동을 통해 이어지고 있었다. p.244

(이소가야 스에지) “북한의 역사적 비극(한국전쟁)을 지켜보면서 대다수의 일본인은 자신들이 입은 고난을 군국주의 일본의 무모한 전쟁 행위에 따른 결과로 간주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전에 조선 민족에 대한 일본의 반세기에 걸친 박해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일본인은 얼마나 반성했을까. 그저 자신들이 조우했던 고난에만 매몰되거나, (p.264)은 조선 민족을 가해자로 생각하고 이들을 미워하며 조선을 떠나지 않았는지 ...” 그는 일본이 제국을 유지 확대하고자 또 다른 전쟁을 준비하고 도발하는 과정에서 조선인들이 일상적으로 감내해야 했던 다양한 피해에 눈을 감아버린 것, 그리고 이를 간과한 전후 일본 사회의 평화 이데올로기가 지닌 역사 인식의 오류와 허상을 날카롭게 짚어냈다. p.265

전후 일본 사회가 해외에서 돌아온 일본인을 광의의 전쟁 피해자로 자리매김 한 것은 이들의 궁상과 피해를 연합국에 호소해 전후 배상을 최소화하고, 은급법의 부활 등 차별적 원호행정에서 비롯된 사회집단 사이의 분열을 봉합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들이 내세운 논리는 아시아, 태평양전쟁 이전 그들이 자행한 식민 지배로 말미암은 구 식민지 사람들의 피해를 어떤 구도로 설명할 것인지, 그리고 전쟁으로 인해 한일 양 민족이 모두 피해를 입었다면 가해의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에 대해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다. 궁극적으로 한일 양국(p.271)이 가해와 피해의 기억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먼저 이에 대한 해답을 양 국민이 납득하고 공유해야만 할 것이다.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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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우석훈] 먹고사느라고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해왔다. | Memento 2019-06-1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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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

우석훈 저
한겨레출판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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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간적으로 사람들에게 너무 막 대해왔다. 먹고사느라고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해왔다. 모멸감을 참으면서 돈을 버는 시대가 너무 길었다. (p.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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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나요”, “무능보다 부패가 낫다


  생명체는 살기 위해 애쓴다. 가장 중요한 일이 생존이다. 일단 살아야 뭐라도 할 수 있다.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하지 않는가. 생존을 위한 분투를 욕하기 어렵다. 하지만, 사람 사는 일에 생존만이 전부는 아니다. 빵만으로 살 수 없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고 민주주의의 최강국(?) 미국에서도 그렇다하니, 한국만 빵을 따지는게 아닌가보다. 그래도 혼란스럽다. 배부른 돼지가 되느냐, 배곯는 돼지가 되느냐는 너무나도 쉽다. 배부른 돼지가 되느냐, 배곯는 사람이 되느냐는 고민스럽다. 특히 극한의 배고픔을 겪어본 사람들에게는 밥은 생존이다. 전전세대의 식민지 고난과 전쟁세대의 비극적 상처는 우리 사회에 뚜렷하게 나와 내 가족의 생존을 각인 시켰다. 국가가 우리를 지켜주지 못했기에, 스스로 살아남아야 했다.


  2018년 한국의 부패인식지수 전체 180개 국가 중에서 45위로 전년대비 6단계에 올랐다. 하지만, 아직도 경제 규모에 비하면 초라한 수준이다. 2022년에 세계 20위 권의 청렴 선진국에 진입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지만1) 회의적이다.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나요”, “무능보다 부패가 낫다는 인식은 아직도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게다가 스스로 생존해야 한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공정함은 거치적 거리는 선언문이다. 경쟁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경쟁은 공정하지 못하다. 그럼에도 공정하지 못한 경쟁은 왜곡된 자유시장주의에 비호아래 우리나라의 제1의 가치가 되었다. 공정하지 못한 경쟁은 각자도생의 지옥을 만들었다. 생존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 각인되어 있다.


  공정하지 못한 경쟁 속에서 생존을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다. 결과를 뽑아내고, 승리를 쟁취해야 한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죽고 살고의 문제다. 비정상적인 전시 상황이다. 이때 민주주의는 비효율적이다. 단일한 목표를 향해 의심 없이 달려가야 한다. 잠시 멈춰서는 순간 죽음이다. 아무리 강력한 독재자가 모든 사회를 군대식으로 개조했다하더라도, 자발적인 동의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 우리에게 각인된 생존의 문제는 예전에도 마찬가지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아직도 한국은 전쟁 중이다.

 

- 87년 이후


  영화 <1987>에서 보듯이 수많은 이들의 피와 땀으로 호헌을 철폐하고, 직선제 개헌을 얻어냈다. 절차적 민주주의를 얻어냈지만, 거기까지였다. 군부독재에 대항하기 위해 군대식으로 싸워야 했던 운동권이다. 그런 그들이 많은 분야에서 민주적 제도를 일구었지만, 머릿속에 각인된 생존은 여전히 남았다. 제도는 바꿨지만, 생존은 바꾸지 못했다. 사회는 아직도 군대식으로 돌아간다. 여기에 생활 속 민주주의는 요원한 일이다. 거기에 IMF는 생존의 경고등을 더 강하게 울리게 했다. 하루걸러 회사가 무너지고, 내 직장이 사라지는 시절. 저자는 경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적기였다 말한다. 하지만 저자의 지적 대로 무지했다. 위기의 상황에서 생활 속 민주주의? 가능할리 없었다. 그렇게 민주주의를 한 단계 성숙시킬 기회를 놓쳤고, 지금에 이르렀다.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는 우리의 새로운 과제를 직장 민주주의라 말한다. 지난날 절차적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보다 수월하게 이룰 수 있다. 직장 민주주의는 여직원들이 억지로 웃지 않는 것(p.37)”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조직 내부의 경쟁게임을 협력게임으로 전환시키는(p.108)” 장치를 도입하는 것이다. 이 일은 정부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가능하다. 직장 민주주의 인증제가 그 예다. 민주적인 직장은 폐쇄적이고 내부 경쟁적인 직장보다 효율이 높다. 기업은 내부의 경쟁을 완화하여 협업을 하기 위한 조직으로, 경쟁이 너무 심해지면 조직의 근본이 무너진다. (p.85)” 그렇기에 직장 내 민주주의는 회사의 생산성 향상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더불어 직장내의 다양한 문제와 소리에 대처할 조직이 필요하다. 노조가 필요하다. 한국에서는 귀족노조라는 표현이 있다일상에서 노조를 경험해 보지 못했고, 경험해 보더라도 우리의 직장과 괴리된 어용노조들이 가득한 세상이다노조의 간부들 역시 개별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을 하고 파벌을 형성하니 노조를 곱게 볼 리 없다. 노조가 있어도 문제가 생기지만, 노조가 없는 경우 그 문제는 몇 배로 증폭된다. (p.293)” 어용일지라도 최소한의 견제장치가 생긴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다. 민주주의의 주요한 원리가 권력분립을 통한 견제가 아닌가. 회사가 사장 개인의 소유물일지라도, 직원은 사장의 소유물이 아니다. 독립적인 개인이자, 살아있는 사람이다. 개인의 판단이겠지만, 감정적인 노조에 대한 생각과 실재적인 노조의 생각은 달라야 한다고 믿는다. 없는 것 보다는 낫다고 말이다.

 

- 사람 사는 세상을 기대하며... 말의 힘. 이야기하자.


  대한민국은 헌법 제1조 제1항에 명시하듯, 민주주의 공화국이다. 제도적으로 민주주의 국가다. 하지만 우리 생활에서는? 우리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직장에서는? 갑질, 태움, 과로사, 자살, 죽음의 외주화, 비정규직 등등 수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미미하고, 그 사이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다. 국가가 경제 대국이면 뭣하나. 내가 지금 죽어가고 있는데. 효율과 경쟁, 생존의 문제 속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에 대해서 너무 쉽게 눈을 감는다. (p.40)“ 한 간호사는 이렇게 말한다.

 

직장이라는 공간이 원래 이렇게 비인간적인 곳이었나. 만약 직장이 이처럼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곳이고, 그런 상황들을 감내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곳이라면, 직장은 민주주의 시민 사회에서 없어지거나 계몽이 필요한 마지막 공간일 것이다. -‘행동하는 간호사회김소현 간호사의 메모 중 (p.281)”

 

우리는 인간적으로 사람들에게 너무 막 대해왔다. 먹고사느라고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해왔다. 모멸감을 참으면서 돈을 버는 시대가 너무 길었다. (p.382)” 그 끝이 언제인지 알 수 없다. 저자의 주장과 달리 민주주의가 밥을 먹여주지 못할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생존하는데 분명 필요하다. 우리가 민주주의 공화국에서 계속 살고자 한다면. 그래서 저자의 주장을 고민해 볼만 하다. 이런 말들이 불편하거나, 공감가지 않을 수 있다. 정확한 언어는 감각적이지 않고, 감각적인 언어는 순간 공감을 일으키지만 해법으로 우리를 인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p.253)” 그럼에도 계속해서 우리는 떠들어야 한다. 떠들고, 시끄럽고, 소란스러운게 민주주의다. 결국 무엇을 하느냐보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얘기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세상을 바꾼다. (p.7)”

 

1) 부패인식지수 45...2022년 청렴선진국 가능할까?, YTN, 2019.02.18.,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tvh&oid=052&aid=0001254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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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정책 혹은 정교한 정책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무엇을 하느냐보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얘기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좋은 정책을 디자인하는 것이 국정 운영의 전부가 아니다. 공개적으로, 더 많은 토론을 하는 것이 진짜로 중요하다. (p.6) 많은 사람이 토론하고, 어느 정도 정서적?감정적 합의를 이룬 정책들이 진짜로 강한 정책이 된다. 그런 것들이 세상을 바꾼다. p.7

민주주의는 공장 문 앞에서 멈추지 않는다. 이것이 노동자 참여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 필요한 사회경제적 시스템의 또 다른 다리이다. 민주주의는 위계나 조직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명령이 높은 곳에서 오는 군대 모델이 아니라, 위에서 또 아래에서 오는 힘이 합류하는 지점에서 조직 내의 결정이 이루어지는 것을 뜻한다. _도널드 럼볼, <캐나다에서의 노동자 참여?>, <<오늘날의 산업 민주주의>> 논문집(1979) p.32

내가 생각하는 한국의 직장 민주주의는 간단하다. 여직원들이 억지로 웃지 않는 것,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p.37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에 대해서 너무 쉽게 눈을 감는다. p.40

박정희 이후로 한국 경제와 기업의 관계는 통제와 지원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는 기업을 통제하고, 그 통제를 잘 수행한 기업들에게 아낌없(p.75)는 지원을 주었다. p.76

우리 국민에 1등 국민, 2등 국민은 없지만, 우리 직장에는 1등 사원과 2등 사원이 존재한다. p.78

회사 그리고 직장의 문제는 오랫동안 한국 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치외법권 같은 것으로 남았다. 마치 박정희가 허리 아래의 일은 넘어가라고 한 것이 남자 권력자들의 치외법권이 된 것처럼 말이다. p.81

기업의 존재 자체가 시장 실패의 대표 사례다. 사람들을 모아서 조직을 이루고, 그 안에서 경쟁을 잠시 정지시키기 때문이다. 애덤 스미스의 표현을 쓰면 분업이다. 직원들끼리 경쟁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협동해서 분업하기 위해서 기업을 만든 것이다. ... 서로 경쟁하는 경우도 있지만, 시장에서의 경쟁에 비하면 협력을 전제로 하는 제한적 경쟁이다. 그런데 이 경쟁이 너무 심해지면 조직의 근본이 무너진다. p.85

일한 만큼 월급 받는다, 이건 과학이 아니라 이념이다. 국가 차원에서 보면 노동생산성 변동과 임금총액 변동이 일치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일 자체가 복합적이게 되면서 누가 성과를 냈는지 정확히 측정하기란 불가능하다. 내부 경쟁을 강화하면서 전체적인 성과가 높아지기를 바라는 것, 사실 이념에 지나지 않고, 모순에 지나지 않는다. 기업이라는 조직이 생긴 이유가 내부에서 경쟁을 제한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p.88

직장 민주주의는 조직 내부의 경쟁게임을 협력게임으로 전환시키는 장치 중 하나다. 내부의 더 많은 소통, 더 많은 협력 그리고 쌍방향적인 관계, 이런 것들이 직장 민주주의를 통해서 기대할 수 있는 결과다. p.108

큰 권력은 무섭지만, 작은 권력은 끈적끈적하다. 피해갈 방법이 별로 없다. p.124

너무 야박한 얘기일지도 모르겠지만, 우리가 만들어낼 앞으로의 직장은 일하면서 같이 밥 먹을 일이 없는 조직이어야 한다. 남자, 여자를 떠나서 같이 밥 먹자고 하는 사람들이 직장에서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시대로 가게 된다. p.178

사회과학의 언어(p.252)는 우리가 느끼는 안타까움에 비해 너무 무덤덤하다. 좀 더 감각적이며 인간적인 언어는 없을까? 잘 모르겠다. 정확한 언어는 감각적이지 않고, 감각적인 언어는 순간 공감을 일으키지만 해법으로 우리를 인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p.253

불편은 참을 수 있지만, 위험은 참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 우리가 깜박깜박 잊는 것들이 있다. 우리의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들이 행복해져야 우리도 안전해진다. p.280

직장이라는 공간이 원래 이렇게 비인간적인 곳이었나. 만약 직장이 이처럼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곳이고, 그런 상황들을 감내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곳이라면, 직장은 민주주의 시민 사회에서 없어지거나 계몽이 필요한 마지막 공간일 것이다. -‘행동하는 간호사회김소현 간호사의 메모 중 p.281

노조가 있어도 문제가 생기지만, 노조가 없는 경우 그 문제는 몇 배로 증폭된다. p.293

우리는 인간적으로 사람들에게 너무 막 대해왔다. 먹고사느라고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해왔다. 모멸감을 참으면서 돈을 버는 시대가 너무 길었다. p.382

그다음 세대에게 좀 더 인간다운 직장을 주는 일, 미래를 만드는 일이다. p.388

맥스민(max-min), 즉 가장 약한 사람들의 보호를 최대화하는 것 p.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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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팀은 왜 기본에 충실한가-패트릭 랜시오니] 삶의 태도에 대한 상식 | Memento 2019-06-09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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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직은 특정한 목표를 달성하고자 한다. 그 목표를 달성하는 일이 최우선의 가치다. 가급적이면 효율적으로 말이다. 조직을 구성하고, 평가하여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일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꾸리는데 필수적이다. 우리는 일생을 조직에 속해서 살아간다. 직장인이라면 하루의 대부분을 조직의 최하부 단위인 팀에 속해서 보낸다. 팀원들과의 관계가 인간관계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며, 때로는 가족보다 더 자주 보기도 한다. 간혹 팀의 기조를 가족같음을 표방한다. 가족끼리는 투닥거리고 싸우더라도, 싫더라도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팀의 구성원들끼리 가족과 같이 함께 가자는 의미겠지만, 실재 가족이 아니라 x ’ 같은 경우가 많다.


 


   가족을 운운하더라도 결국 조직은 가족이 될 수 없다. 조직은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존재의 이유다. 필연적으로 개인의 목표와 다르다. 관리자도, 팀원들도 모두 조직의 목표만을 위해 그 자리에 있는게 아니다. 서로 목표가 다르니 충돌할 수 밖에 없다. 결국 ‘x ’ 같을 수 밖에. 그렇다면 조직이 세포인 팀을 어떻게 꾸려야 할까. <최고의 팀은 왜 기본에 충실한가>팀워크에 해답이 있다고 한다. 조직을 팀플레이 능한 사람들로 채워야 한다는 것. 그렇다면 무엇으로 팀 플레이어를 구별할 수 있을까. 관리자들은 - 옮긴이의 표현대로, ‘호사분면을 통해 직원들을 파악한다고 지적한다. “‘싸가지가 있다, 없다가 사실 팀 플레이어의 중요한 역량임을 암묵적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p.10)”이다.

(https://subokim.wordpress.com/2011/05/20/mungbu-mungge/)

 

  이와 유사한 구분법으로 멍게, 똑게, 멍부, 똑부 구분법이 있다. 상사와 부하의 성향에 따른 궁합을 보여주는데, 궁합이 적합하다면 성과를 떠나서 적절한 팀플레이를 이룰 수 있다. 똑부 상사와 똑부 부하의 조합은 쉽지 않겠지만, 절친 궁합이나 평화를 이루기만 해도 조직은 자체로 굴러가기도 한다.


  반면에 저자는 적극적인 팀워크를 중시한다. 그리고 이 팀워크가 조직의 핵심요소임을 인정한다면, 조직의 핵심가치는 겸손, 갈망, 영리함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겸손은 실재보다 과대평가하지 않지만 자신의 재능과 기여를 과소평가하지도 않는(p.330)” 을 의미하며, 갈망은 주어진 과업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 그리고 필요하다면 그 이상을 달성하기 위해 관리 가능하고 지속 가능하게 헌신한다는 의미다.(p.333)” 영리함은 지식이나 지능적인 측면이 아닌 “‘타인에 대한 상식(p.335)” 의미한다. 이 세 가지 핵심가치는 “DNA에 새겨진 영구적인 성격이 아니라, 집이나 직장 등에서 경험하는 삶과 개인적 선택을 통해 개발되고 유지(p.343)” 된다. ,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말인데,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친절하고 지속적으로 직원에게 개선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p.409)”을 리더의 임무라 설명한다.


 저자의 분류법에 따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책에 나온다.)



  책의 대부분은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가치를 스토리화 한 픽션이다.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 저자의 목적에 맞게 창조된 회사와 세상에서 무엇인들 이루지 못할까. 경제학이나 이론과학이 현실에서 다르게 작동하곤 한다. 이론을 일반화하기 위해 완벽한 세계를 가정하기 때문이다. 실재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다양한 변수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공식이 그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저자의 스토리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 회사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고, 존재할 수도 없다. 저자가 말하는 핵심 가치도 마찬가지다. ‘건전하고 관리 가능함을 말하지만, 여기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없다. 자신이 비판했던 다른 평가 모델과 다를바 없다. 팀워크를 말하며 갈망이라는 가치를 말할때는 은근한 야근(? 혹은 추가적인 근무)을 권장하는 느낌을 받았다. 잘하고 싶은 마음을 적절하게 잘 표시하라는 건가. 이상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워라밸을 외치는 요즘 이상과도 다르고.

 

  어쨌든 일을 하자면 팀워크가 중요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겸손, 갈망, 영리함은 저자의 말대로 핵심가치임은 자명하나, 하나로 축약해보자면 상식 common sense’이 아닐까. 그 말이 그 말인지 모르겠지만, 삶의 태도에 대한 상식이 아닐까. 자신이 맡은 일을 책임진다. 다른 사람들과는 좋은 관계를, 그렇지 않다면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한다 등등. 결국 상식에 반하는 행동은 불협화음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보기에 따라 상식은 억압이다. 일반적이라는 말은 개별적이고 개인적인 사항을 배제한다는 의미다. 개인을 억누르고 상식을 받아들일 사람이 아니라면 조직에서 버티기 어렵다는 말을 풀어서 쓴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자신을 억누르고 상식을 받아들일 자신이 없다면 떠나라는 말을 완곡하게 표현하고, 이런 논리를 제공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너무 비뚤어진 생각일까. 소수의 천재가 조직을 이끌고 다수의 범재가 조직을 지탱한다고 보면, 상식을 가진 팀 플레이어들이 많아야 통제하기 쉬울 법도 하다. 그래야 예측 가능하고, 허락된 범위 내에서, 목표를 향해 움직일 테니까.

 

  멍게, 똑게 분류도, 옮긴이의 호사분면도, 저자의 밴다이어그램도 결국 완벽하지 않다. 일과 삶의 경계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는 개인의 선택이다. 조직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개인은 단순히 먹고 살기만 위해서 존재하지 않는다. 조직의 목표와 내 인생의 목표는 전혀 상관없다. 먹고 사는게 우선인지, 하고 싶은 일을 하는게 우선인지 용기를 가지고 선택하기 나름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겠지만, 즐길 수도 없다면 돈이라도 벌어야지. 기왕 한다면 팀플레이어가 되어서 제대로 해보고자 한다면 이 책은 좋은 선택이다. 상식이라는 것이 꼭 조직 생활이 아니라, 무리 지어 사는 사람이라면 필요한 것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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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들이 현장에서 호사분면으로 직원들을 바라보는 까닭은 싸가지가 있다, 없다가 사실 팀 플레이어의 중요한 역량임을 암묵적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p.10

이 책에서는 겸손, 갈망, 영리함을 팀플레이어의 중요한 덕목으로 꼽고 있다. ... 겸손은 좋은 팀 플레이어가 되기 위해서는 당연히 요구되는 자질이다. .. 두 번째 자질인 갈망은 팀의 정의를 동일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모인 집단이라고 볼 때 목표 달성의 (p.11)로서 팀워크에 역시나 필수적이다. ... 세 번째 자질인 영리함은 ... ‘타인에 대한 상식’, 즉 대인 관계를 잘 이해하고 그에 맞춰 적절하게 행동하는 능력 ... ‘지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p.12

관리자의 임무란 허울뿐인 역량 모델을 버리고 세 가지 요소를 통해 직원들이 이상적인 팀플레이어로 육성하는 것이다. p.14

만약 누군가가 조직 생활을 잘하기 위해 개발해야 할 자질 중 가장 유용한 것이 무엇인지 우선순위 목록을 만들어 달라고 말한다면, 나는 목록의 맨 위에 팀 플레이어가 되는 것이라고 적을 것이다. p.20

진정한 팀워크는 구체적인 행동을 필요로 한다. ... 숨김없이 자신을 드러내기, 건전한 갈등에 뛰어들기, 결정된 사항에 매진하기, 책임지는 문화 형성하기, 성과에 집중하기 등. (<팀이 빠지기 쉬운 다섯 가지 함정>) p.20

진정 겸손한 사람은 자신을 실재보다 과대평가하지 않지만 자신의 재능과 기여를 과소평가하지도 않는다. C.S.루이스는 겸손은 자기 자신을 낮춰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을 덜 하는 것이다.” p.330

갈망은 건강한 유형을 뜻한다. , 주어진 과업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 그리고 필요하다면 그 이상을 달성하기 위해 관리 가능하고 지속 가능하게 헌신한다는 의미다. p.333

팀이라는 환경에서 영리함이란, 간단히 말해 타인에 대한 상식을 의미한다. 이는 대인관계를 잘 이해하고 그에 맞춰 적절하게 행동하는 능력과 전적으로 관련이 있다. p.335

영리함이 반드시 좋다고만 볼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영리한 사람은 좋은 목적으로 혹은 나쁜 목적으로 자신의 재능을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사실 역사적으로 가장 위험했던 사람 중 몇몇은 영리하기로 유명했던 자였다. p.336

이 세 단어가 반드시 핵심가치일 필요는 없지만 팀워크가 조직 운영의 중심이길 바라는 조직(p.340)에선 이것이 필수적인 채용 요건임을 알게 됐다. p.341

세 가지 덕목은 DNA에 새겨진 영구적인 성격이 아니라, 집이나 직장 등에서 경험하는 삶과 개인적 선택을 통해 개발되고 유지되는 것이다. p.343

마음의 벽을 허물고, 신뢰를 구축하고, 생산적이지만 불편한 갈등 상황에 적극 참여하고, 처음에는 동의하지 않았더라도 집단이 내린 결정에 헌신하고, 성과 면에서 뒤떨어지는 동료들이 책임을 다하도록 격려하고, 자신의 이익보다 팀의 성과를 우선시하게 된다. 겸손하고, 갈망하고, 영리한 사람만이 거창한 코칭 프로그램 없이도 이 모든 것을 해낸다. p.344

정말로 필요한 것을 행하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직원들에게 상기시키겠다는 리더의 의지는 개선 절차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지만 자주 간과되는 경향이 있다. p.405

해결책은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친절하고 지속적으로(지속적이란 말을 두 번이나 썼다는 점을 명심하라) 직원에게 개선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리더가 지속적으로 그렇게 하면 직원들은 스스로 상황을 개선시키기 위해 노력하거나 아니면 회사를 나갈 것이다. 그러나 리더가 직원에게 솔직히 말(p.409)해야 하는 책임을 회피한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p.410

훌륭한 팀이 되려면 리더는 겸손, 갈망, 영리함의 결함을 즉각적이고 요령 있게 일러줘야 한다. p.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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