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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출장 | 독서일기 2019-07-20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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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미술 출장

곽아람 저
아트북스 | 2015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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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3월에 처음으로 이 블로그에 독서 리뷰를 올리기 시작했는데, 벌써 76권의 책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들이 쌓였습니다. 책 목록을 훑어 보니 제 취향은 참 종잡을 수 없습니다. 소설, 에세이, 경영, 경제, 인문, 사회, 과학, 요리, 컴퓨터 등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열심히도 읽었네요. 앞으로도 이렇게 꾸준히 읽고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평생 남들 모르게 수십 개 이상의 블로그를 만들어 보았는데 이렇게 오랫동안 유지된 것은 처음이라 쭉 가고 싶은 마음도 크고요.


 아티스트를 인터뷰하고 미술시장과 전시회를 취재하러 간 출장이었지만, 나를 성장시킨 건 취재의 결과물이라기보다는 취재 과정의 부산물들이었다. 머나먼 타국에서 자신을 만나러 온 기자에게 인터뷰이가 정선해 내놓은 말들, 그들이 보여주는 행위들은 잠시 인상적이지만 여운 깊은 감동을 남기기는 어렵다. 고급 레스토랑의 준비된 상차림보다 아주 배고팠던 날 길을 지나치다 포장마차에서 사 먹은 호떡 맛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것과도 같은 이치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인터뷰나 아트페어, 혹은 전시회보다는 그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겪은 일들에 초점을 맞추려 애썼다. (p.7)


 이번에 읽은 책은 곽아람 기자의 『미술 출장』입니다. 곽아람 기자는 전에 리뷰를 올렸던 『결국 뉴요커는 되지 못했지만』의 저자입니다. 그 리뷰의 말미에 다음번엔 같은 저자의 『모든 기다림의 순간, 나는 책을 읽는다』를 읽겠다고 했는데 이 책을 먼저 읽게 되었네요. 『미술 출장』은 저자가 신문사의 미술 담당 기자로 일하면서 작가들을 인터뷰하고 미술 전시 및 경매 현장을 취재했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쓰인 책입니다. 미술에 대해 몰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인데요, 위의 인용부에서 알 수 있듯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부분보다는 그 뒤쪽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잘 그리는' 작가를 좋아했다. 꼼꼼하고 정직하게 일하는 작가가 좋았다. 현대미술의 태반은 세 치 혀를 잘 놀린 결과이자, 사기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데이미언 허스트의 트레이드마크인 그 '땡땡이 그림'이라니. 흰색 캔버스에 색색깔 동그라미를 찍은 그 그림들은 심지어 조수들이 그린다지 않는가. (p.18)


 사실 바로 위의 인용부가 이 책 전체에서 가장 공감이 갔던(...) 부분입니다. 물론 아름답고 훌륭한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들도 많지만, 때로는 굉장히 기이하고 난해한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이 등장하기도 하죠. 이런 예술가들이 인정을 받고 엄청난 가격에 작품을 파는 것을 보면, 예술이란 건 다 사기라고 소리치고 싶어집니다. 특히 이 뒷담화의 주인공 데미안 허스트는 죽은 동물을 포름알데히드에 넣어 전시하는 작품들로 유명합니다. 삶과 죽음을 다루는 예술가라는데, '이름 참 잘 붙인다'는 꼬인 생각만 하곤 했죠. 책에 실린 인터뷰는 좋긴 했으나 아직 저의 이 꼬인 생각은 요지부동입니다.


 이 책에는 데미안 허스트 외에도 제프 쿤스, 프랭크 게리, 로버트 인디애나 등 세계적 예술가들과 함께한 인터뷰도 많고, 흥미로운 이야기도 참 많습니다. 하지만 제게 가장 좋았던 부분은 크리스티의 경매사 안드레아 피우친스키의 인터뷰였습니다. 이 인터뷰는 애초에 예정된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 더 좋았습니다. 원래 저자는 크리스티의 CEO를 인터뷰하러 홍콩에 갔는데, 급한 일로 CEO가 인터뷰를 취소해 버려 대안을 찾은 것이 바로 경매사, 안드레아 피우친스키였습니다. 당시 그녀는 크리스티 소속 국제 경매사 열다섯 명 중 '탑 5'에 꼽히는 인물이었다네요.


 경매사라는 직업 자체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다소 생소합니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경매장에서 경매를 주관하며 작품을 파는 역할을 하죠. 저도 경매 현장을 본 적이 전혀 없지만, 안드레아 피우친스키의 인터뷰를 통해 언젠가는 꼭 구경이라도 하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습니다. 경매장에서 사용하는 망치에 대한 뒷이야기도 정말 재미있었고요.


 단 한 번도 미술품 경매를 본 적이 없었던 나는 많은 것들이 궁금했다. 가장 궁금한 건 '망치'였다. 경매사의 망치를 영어로 'gavel'이라고 한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망치질하는 연습도 하나?" 지금 생각해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그 질문에 안드레아는 성심성의껏 대답했다. "그럼, 하지. 정확하고 절도 있는 망치 소리는 경매라는 '드라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니까. 망치 소리란 한 품목의 경매 종료를 알리는 신호야. 소리가 너무 크면 귀에 거슬리고, 너무 작으면 들리지 않지." 그녀는 "낯선 경매장에 서야 할 때는 단상의 재질과 걸맞은 망치 소리를 찾기 위해 녹음기를 돌려가며 연습한다"라고 덧붙였다. (p.59)


 책이나 영화를 통해 제가 전혀 알지 못했던 세상을 접하는 일은 정말 즐겁습니다. 그리고 『미술 출장』 역시 제게 그런 즐거움을 안겨준 책이었습니다. 덕분에 미술에 대한 다른 책들도 많이 찾아보게 되었어요. 미술과는 전혀 관련 없는 삶을 살고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흥미만으로 제 삶의 폭을 확장하는 경험은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삶의 소중한 행복입니다. 곽아람 기자의 다른 책들, 『모든 기다림의 순간, 나는 책을 읽는다』나 『그림이 그녀에게』는 또 어떨지 궁금합니다. 언젠가 리뷰를 쓸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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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리 인 시즌 | 독서일기 2019-07-16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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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심플리 인 시즌

이소영 저/김현정 사진
북아지트 | 2019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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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플리 인 시즌』은 제가 아주 좋아하는 종류의 책입니다. 제철 과일을 이용한 다양한 레시피, 책으로 보기만 해도 향기가 올라오는 것 같은 아름다운 사진, 소소하고 다정한 글의 조화. 실패할 리가 없겠죠? 이 책의 저자 이소영, 김현정 님은 인시즌을 함께 운영하고 있으신데요, 인시즌은 한국에서 나는 우수한 농산물을 이용해 건강하면서도 맛이 뛰어난 제품을 만드는 회사입니다. 카페와 스몰 키친도 함께 운영중이고요. 사실 저는 텐바이텐을 통해 인시즌을 굉장히 옛날부터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의 '인 시즌'이 그 '인시즌'인 것은 책을 받고 책날개의 저자 소개를 읽은 후에야 알았어요. 그냥 제가 좋아하는 종류의 책이라 읽으려고 했던 건데, 알고 보니 오래전 좋아했던 브랜드의 책이었던 것이죠.






 이 책의 내용은 계절별로 분리되어 있는데요, 지금은 여름이기 때문에 저는 여름 부분부터 먼저 보았습니다. 특히 7월은 매실, 살구, 자두의 달이라 하네요. 저는 이번 여름에 아직 매실과 자두밖에 먹어보지 못해서 살구 레시피가 특히나 반가웠습니다. 가장 먹고 싶었던 음식은 사진의 주인공, 살구 아몬드 브레드! 밀가루보다 아몬드 가루가 더 많이 들어가서 빵 자체에 고소한 맛이 나면서 제철 살구즙이 빵 위에 빼곡히 물들어 새콤달콤하다는데... 이 설명만 들어도 입안에 침이 고입니다. 저 요리 정말 못하는데, 이번 여름엔 참지 못하고 시도할지도 모르겠어요.






 또 제가 좋아한 부분은 9월의 과일, 배입니다. 특히 제가 인시즌을 처음 인지했던 것이 배 잼을 통해서였기 때문에 더 반가웠어요. 배를 이용한 레시피도 다양하게 소개되어 있는데, 특히 배는 다른 재료와 함께하는 레시피가 많네요. 배 고구마 타르트, 모과 배 청, 오미자 배 청 등 모두 먹어보지 못한 맛입니다. 당연히 배 잼 레시피도 소개하고 있는데요, 배는 수분이 많은 과일이고 대부분의 과일에 있는 펙틴이라는 성분이 없어 빵에 발리는 제형의 잼을 만들기 힘들다고 해요. 그래서 사과를 함께 넣어 잼을 만듭니다.


 『심플리 인 시즌』을 다 읽고 나니 앞으로 제가 겪을 많은 계절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만 조금씩 바꿨을 뿐 계절 자체를 크게 인식하며 살지는 않았는데, 이제 더 민감하게 느껴보려 노력해야겠어요. 그 과정에 인시즌이 함께하면 더 좋겠죠? 인시즌 온라인 샵에 가 보니 현재 자두 잼, 오디 잼, 살구 잼 등이 나와 있네요. 이 책을 통해 다시 옛 인연을 만났으니 조만간 주문해서 계절의 맛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느끼며 행복을 나누면 참 좋겠습니다.



*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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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기 좋은 이름 | 독서일기 2019-07-11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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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잊기 좋은 이름 (리커버 에디션)

김애란 저
열림원 | 2019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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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문장에는 꽃술 위 꽃가루마냥 시공이 묻어난다. 글쓴이가 원고를 꾸리는 동안 맡은 냄새, 들은 소리, 만난 사람, 겪은 계절이 알게 모르게 배어난다. 눈에 보이지 않되 파도의 운동에 관여하는 명백한 힘처럼, 먼 데서 큰물을 잡아당기는 달처럼 그런다. (p.227)


 며칠 전 김애란 작가님의 산문집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예스24 홈페이지 메인에서 접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취해야 할 행동으로 옳은 것은? 당연히 바로 주문하는 것이지요! 언제나 책 읽는 속도가 책 사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저이지만, 이 책은 받자마자 바로 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쁜 분홍색 표지, 하얀색 띠지, 분홍색 가름끈, 딱 가지고 다니기 좋은 무게와 판형, 내지의 재질, 본문의 글꼴과 줄간격, 여백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라곤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글이지요.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하는 글. 저는 이런 글을 만나기 위해 그렇게나 책을 사나 봅니다.


 연필 쥔 손에 힘을 주면 책에 흐릿한 홈이 파인다. 그 홈에는 내가 어느 문장에 줄 그은 순간 느낀 시간과 감정이 고인다. 그래서 가끔 그 홈이 물고랑 밭고랑 할 때 '고랑'처럼 느껴진다. 나와 나 자신을, 현재와 과거를, 우리와 타자를 잇는 먹 고랑처럼.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그 선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 이야기도 언젠가 두보의 시구처럼 누군가의 삶과 만나게 될까? 그럴 수 있다면 좋겠다. 그 스침이 혹 꽃잎 한 장의 무게밖에 갖지 못한다 해도. 이야기의 이어달리기, 이야기의 배턴터치가 계속되길 빈다. 대부분 연필이 길고 둥근 이유도 실은 그 때문이지 않을까 상상하면서. (p.254)


 이 책을 다 읽은 후에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지만 그것들은 제 안에 잘 담아두기로 하고, 여기서는 책에 관해서만 이야기할까 합니다. 작가님은 책을 읽을 때 연필로 밑줄을 그으며 읽으신다고 합니다. 한때 저도 작가들의 흔적이 가득 담긴, 온갖 밑줄과 메모로 가득한 낡은 페이퍼백에 대한 로망이 있기도 했습니다. 제 책장에도 그런 책들이 가득해서 가끔 아무 책이나 꺼내도 제가 읽었던 흔적을 볼 수 있는, 과거의 나와 조우할 수 있는 그런 것에 대한 로망이었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은 저에게는 맞지 않는 옷이었습니다. 우선 위에서도 이야기했듯 저는 책 읽는 속도에 비해 책 사는 속도가 압도적으로 빠르고, 책장은 한정되어 있으니 웬만하면 읽은 책은 바로 중고서점에 팔거나 다른 사람에게 주는 편입니다. 당연히 밑줄을 그어 제 흔적을 남길 수가 없죠. 그리고 저는 사실 낡은 책보다는 깨끗한 책을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서점에서 막 배송된 따끈따끈하고 깨끗한 새 책을 보면 기분이 정말 좋거든요. (이건 너무 당연한가요?) 아무튼, 저는 이런 성향이지만 또 이 책을 읽으니 예쁜 연필을 하나 사서 스윽― 스윽―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긴 해요. 결국 결말은 예쁜 연필이 책상 서랍 한구석에 처박힌 모습일 것이 뻔하지만요.


 『양철북』과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이 책 덕분에 저의 "긴급! 빨리 읽어야 할 책!" 리스트에 올랐습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는데, 책에 인용된 부분이 충격적일 만큼 좋아서 빨리 읽고 싶어요. 『양철북』은 저의 리뷰에 자주 등장하는 "언젠가 읽어야 할 책" 리스트에 올라 있었지만 번호도 받지 못할 만큼 뒤에 있었는데, 이번에 급속 승진을 달성했네요. 읽은 후에 김애란 작가님의 글을 다시 읽으면 어떤 기분일지 정말 궁금합니다. 이 블로그에 곧 올라올 수 있겠죠? (제발!)


 정말 좋은 책을 만나면 저는 주변에 추천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극히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때로는 직접 사서 선물을 하기도 하고요. 『잊기 좋은 이름』은 제가 직접 사서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드는, 그런 책이었습니다. 이번 여름, 저처럼 집 앞 카페에서 수박주스를 먹으며 이 책을 천천히 음미하신다면 참으로 행복한 계절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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