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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콜리 해피엔딩_ 말랑말랑한 생의 맛, 웃어라 그대들이여 | 나의 서재 2019-02-10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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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멜랑콜리 해피엔딩

강화길,권지예,김사과,김성중,김숨,김종광,박민정,백가흠,백민석 등저
작가정신 | 2019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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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위선과 기막힌 반전의 묘미로 버무려진 말랑말랑한 생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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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의 문학을 관통하는 한국대표작가 29인의 짧고도 강렬한 삶의 단편들!

차가운 위선과 기막힌 반전의 묘미로 버무려진 말랑말랑한 생의 맛!

 

 

   고 박완서 선생을 기억하며 강화길 작가는 ‘글을 쓸 수 없다고 생각할 때면, 나는 늘 박완서 선생님을 떠올린다.’고 말한다. 김사과 작가는 ‘쥐보다 비천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도시의 인간들을 누구보다 사랑했다’고, 정용준 작가는 ‘박완서 작가는 그 자체로 한국 문단의 아주 중요한 꿈’이라 하였으며, 함정임 작가는 ‘탕아가 돌아올 수 있는 집, 안길 수 있는 어머니. 선생님은 소설의 어머니이고, 소설의 집’이라고 표현한다. 이처럼 소설의 가치를, 생의 진한 맛을, 사람다움이란 무엇인지를 스스로 보여준 박완서 작가의 뜻을 여전히 기억하고 그 발자취를 밟아나가는 후배 작가들이 많다는 것은 또 다른 방식에서 우리 문학의 자부심을 마주하는 일일 것이다. 때문에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29인이 뜻을 모아 박완서 문학의 향수를 나름의 방식으로, 존경과 애정을 담아 쓴 글들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낸 이 기획이 새삼 의미 있게 느껴지고 이후에도 지속가능한 것이기를 바란다. 한국 문학의 발전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1인으로서.

 

 

 

삶에 대한 섬세한 시선들, 그 날카로운 생의 묘사들

 

 

   <멜랑콜리 해피엔딩>은 박완서 문학의 뿌리를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해 29명의 한국대표 작가들이 모여 짧지만 강렬한 이야기의 힘을 담은 소설집이다. 생전에 박완서 작가가 쓴 콩트 형식의 짧은 소설만을 모아 엮은 <나의 아름다운 이웃>이 재출간됨과 동시에 나란히 선보이게 되어 의미가 더욱 크다. 특히 최수철, 조경란, 백민석, 백가흠, 김숨, 조남주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중견작가에서부터 우리 문학을 이끌어가는 젊은 작가들이 한 데 모였다는 점에 있어서 주목할 만하다. ‘박완서’라는 이름 아래에 이토록 다양하고 풍성한 이야기들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즐거운 독서가 되기에 충분하다.

 

 

 

 

 

 

   다정하지만 무능력한 남편을 맞아 하루하루를 고비처럼 느끼며 가족을 건사했던 외할머니를 추억하는 강화길의 「꿈엔들 잊힐리야」, 술김에 아들을 위해 비싼 레고 장난감을 샀다가 아내에게 환불해오라는 소리를 듣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부자의 쓸쓸한 모습을 그린 이기호의 「다시 봄」, 먹고 싶은 거 못 먹고 하고 싶은 거 못 하면서 오직 돈만 모았던 악바리 수부 이모가 가족들에게 보여준 헌신에 마음을 울컥하게 하는 조경란의 「수부 이모」 등 인간사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담아낸 이와 같은 작품들은 꼭 박완서 문학의 그것과 닮아 있다.

 

 

하지만 며칠 동안 선영의 마음은 빈대떡처럼 여러 번 뒤집혔다. 정작 안아줘야 할 사람을 안아주지 못하면서 늙어가는 인생, 후회하면 무엇 하나. 인생 뭐 있어? 늙은 어머니를 안아주지 못했던 허전한 품에 그의 어린 딸을 대신 안아주면 어때. 그리고 이제는 그녀도 누군가의 따스한 품에 안기고 싶은 생각이 스멀스멀 들었다. / 「안아줘」 중에서 32p

 

 

 

   우리 삶의 위선과 모순을 한 편의 시트콤처럼 엮어내 위트 있는 반전을 끌어내는 작품들도 단연 눈에 띤다. 수정 테이프를 찾으러 탐정을 찾아간 의뢰인이 오히려 탐정의 심부름을 하는 기막힌 상황이 연출된 손보미의 「분실물 찾기의 대가3-바늘귀에 실 꿰기」, 크리스천 전형으로 대학에 입학할 수 있다는 선생님 말씀에 부랴부랴 초등학교 때 세례를 받았던 기억을 더듬어 목사님을 찾으러 다녔다가 실패하자 이번에는 불교 인재 전형을 통해 주지 스님에게서 추천서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게 되는 엄마와 딸의 모습을 통해 입시과 진학의 우울한 현실을 위트 있게 그려낸 조남주의 「어떤 전형」, 이 세상 최고의 게으름뱅이로 불리는 구평모라는 인물을 통해 속도만능주의에 빠진 사회의 허와 실을 보여주며 기막힌 결말을 끌어내는 최수철의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자의 죽음」이 바로 그러하다.

 

 

 

만 원에 일곱 장 하는 돈가스는 ‘가정의 평화’라는 성찬식 풍경을 완성하며 저녁 식사로 준비될 것이다. 그들은 서로에 대한 미움을 감춘 채, 가엾고 무해한 자기 딸의 평화에 금이 가지 않도록 고기를 질겅질겅 씹을 것이다. 이것이 비극보다 오래가는 시트콤의 힘이라고, 나 자신의 인생이라고 그녀는 생각한다. 얼마나 산문적인가. / 「등신, 안심」 중에서 52p

 

 

민수 씨는 학창 시절에는 한 번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었던 4.19 시민혁명이나 5.18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당시의 열사들과 시대를 뛰어넘어 공감할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수줍은 성격인 그는 광화문 사거리로 뛰쳐나가는 대신, 애꿎은 고객센터 상담원에게 고함을 지르고 흐느끼기도 하면서 빠른 환불 처리를 애걸했다. / 「냉장고 멜랑콜리」 중에서 106p

 

 

‘과연 나는 누구인가. 남들의 말대로 나는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자인가, 세상의 부조리와 싸우려는 자인가, 허황되게 마비와 각성 운운하는 과대망상가인가, 아니면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우울증 환자인가, 그것도 아니면 그저 아내를 착취하며 무위도식하는 기생충인가.’ 그로서는 쉽게 대답을 얻을 수 없었다. 어쩌면 그는 그 모든 것이거나 그 모든 것이 아닌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대답이었다. /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자의 죽음」 중에서 302p

 

 

 

 

 

 

   한편으로는 박완서 작가가 여성 문학을 대표했던 만큼 우리 사회 속 여성들의 위치와 비애를 그려낸 작품들도 인상적이다. 쌍둥이를 키우느라 경력이 단절된 지혜가 이기적이라는 말까지 들어가며 자신의 경력을 되찾고 싶어 하는 우울한 현실을 그려낸 윤이형의 「여성의 신비」, ‘아라’라는 소설가를 통해 오랜 기간 그저 ‘여성적 소품’으로 취급당했던 문단의 편견을 꼬집으며 세대와 성별을 초월한 박완서 작가의 뒷모습을 따르고 싶다는 뜻을 직접적으로 밝히는 정세랑의 「아라의 소설」, 계약직 교수 채용 심사에서 잘 봐주십사하고 찾아온 윤석이 한때 자신을 버리고 더 좋은 조건의 민희를 만나 결혼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속물근성의 씁쓸한 맛을 되새기는 조해진의 「환멸하지 않기 위하여」등이 대표적이다. 비록 짧은 소설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여성 비하와 편견을 사실적이면서 현실감 있게 표현해낸 점이 마음을 끈다.

 

 

 

어떻게 보면 그런 ‘펑예’도 허공의 눈과 비슷한 거라고 여자는 말했다. 제목에 시한부임을 밝히고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너무 단단한 지반은, 어딘가 뿌리를 내리고 보관될 위험이 있는 지반은 부담스러우니까. / 「첫눈 마중」 중에서 152p

 

 

본의 아니게 이것도 저것도 결국 잘해낼 수밖에 없게 된, 사실은 하나도 부족하거나 무능하지 않은 여자들끼리 그런 일로 연락을 그만두게 되기도 한다는 건 얼마나 이상한가. 이제 지혜는 거기까지는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어떤 나이를 지나면 돌아오지 않는 것들이 세상에는 더 많다는 것을 수긍하게 된다. / 「여성의 신비」 중에서 172p

 

 

“그 시기만 지나면 그런 불안한 마음은 괜찮아지나요?”

민주의 질문에 박 선생은 아무런 말없이 웃더니, “엔딩이 어떻든, 누군가 함부로 버리고 간 팝콘을 치우고 나면, 언제나 영화가 다시 시작한다는 것만 깨달으면 그다음엔 다 괜찮아져요” 하고 말했다. / 「언제나 해피엔딩」 중에서 120p

 

 

 

 

 

 

   너무나 일상적인 것에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고, 말랑말랑하면서도 씁쓸한 생의 맛을 고스란히 전달했던 박완서 작가였던 만큼 그녀의 작품을 오마주한 오늘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서도 그 이미지가 은근히 드러난다. 그러면서도 박완서 문학을 답습하지 않고 저마다의 개성을 잃지 않으며 자신만의 시선으로 삶의 기민한 움직임을 포착해낸 그들의 작품은 이미 그 자체만으로도 좋다. 이왕이면 함께 출간된 박완서의 <나의 아름다운 이웃>을 먼저 읽고 난 뒤에 이 책을 읽어보면 더욱 그 느낌이 잘 전달되겠지만, 꼭 그러하지 않아도 충분할 듯하니 꼭 읽어보시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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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고 거대한 뜻밖의 질문들_ 우리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 나의 서재 2019-02-09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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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이상하고 거대한 뜻밖의 질문들

모리 다쓰야 저/전화윤 역
아날로그 | 2019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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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어디에서 왔고 왜 죽는가에 대한 불명확한 해답에 다가가기 위한 대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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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 인류학, 물리학, 뇌과학을 넘나드는 다양하고 재미있는 과학 이야기!

인간은 어디에서 왔고 왜 죽는가에 대한 불명확한 해답에 다가가기 위한 대담집!

 

 

 

   나는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으며 또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이에 대한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나와 남편의 얼굴을 반반씩 쏙 빼닮아 태어난 아기를 바라보았을 때, 늘 서글서글한 웃음을 지어주셨던 할머니가 더 이상 나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가 되어 죽음을 앞두게 되었을 때, 오롯했던 육신이 한줌의 재가 되어버리는 광경을 보며 가슴이 사무쳤을 때 나는 그러한 질문들을 마주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들은 나 한 사람을 비롯하여 누군가의 삶으로 증명하기에는 너무나 철학적이고 거대한 명제여서 제자리를 맴돌다가 이내 생각을 멈추게 한다.

 

 

 

   언젠가 철학과 수업에서도 이를 주제로 하여 토론을 벌인 적이 있었지만 어느 누구하나 명징한 해답을 내놓지 못했다. 어쩌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최첨단 과학을 연구하는 이과적 언어와 사고를 가져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답을 발견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발견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영원한 명제에 숨은 진실 한 자락을 엿보게 될 수도 있다. 바로 이러한 동기에서 비롯되어 <이상하고 거대한 뜻밖의 질문들>의 저자 모리 다쓰야는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과학계 지성과의 대담을 연재하기 시작하였음을 밝힌다.

 

 

 

   자칭 100% 문과형 인간임을 고백하며 대담이 제대로 이루어질지도 자신이 없다고 하면서도, 이 역시 명확한 해답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으면서도 치열하게 고민하고 거기에 이르는 과정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저자의 시도가 무척 흥미롭다. 제목의 그것처럼 정말이지 이상하고 거대한 뜻밖의 질문들의 연속이자, 나 역시 철저한 문과형 인간으로 과연 이 책을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우려가 앞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과 우주의 본질에 대한 과학자들의 다양한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기회이자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까지도 가능케 하는 의미 있는 시도로써 이 책은 또 다른 생각의 지평을 열어준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경계가 없는 ‘세계의 일부’다

 

 

   ‘인간은 왜 죽는가’에서 시작하는 이 책은 총 11장에 걸쳐 거대한 질문과 마주한다. 생물학자, 인류학자, 진화생태학자, 물리학자, 뇌과학자 등에 이르기까지 일본 과학계 최고 지성들과의 대담을 통해 ‘인간은 어디서 왔는가’, ‘진화란 무엇인가’,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누가 죽음을 결정하는가’, ‘우주에는 생명이 있는가’, ‘우주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가’, ‘나는 누구인가’, ‘뇌는 왜 이런 질문을 하는가’, ‘과학은 무엇을 믿는가’,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와 같은 주제를 이끌어낸다. 이들은 하나같이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대명제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린다. 너무나 복잡하고 때로는 엉뚱하리만치 장황한 질문 앞에서 그들도 ‘모르겠습니다’하고 난색을 표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마다 자신의 입장에서 혹은 현재까지 밝혀진 다양한 이론을 바탕으로 최대한 의미 있는 답변들을 해나간다.

 

 

 

“역설적이지만 생물에게는 그것이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스스로를 튼튼하고 견고하게 만드는 작업을 멈출 수 없었죠. 그러나 아무리 튼튼하게 만든다 해도, 결국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에 따라 질서가 파괴됩니다. 이를테면 조명 기구는 망가지기 전에 알아서 전구를 교환해야 합니다. 그렇게 일부를 늘 빛나게 하는 방법으로 어떻게든 살아남아 생명을 얻은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죽고 다시 만들어진다고도 할 수 있어요.” / 57p

 

 

 

 

 

 

   책에서는 다윈주의, 후성유전학, 양자론, 엔트로피, 텔로미어, 용불용설, 성선택설 등 우리가 어렴풋이 알고 있었거나 혹은 미처 알지 못했던 다양한 과학 이론들을 통해 각각의 주제들에 접근하려 한다. 생명은 연쇄적이어서 삶과 죽음은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라는 점, 인류는 암컷의 선택 즉, 성 선택이라는 이점과 직립보행을 통해 함께 진화했다는 점, 우리는 그 시대의 환경에서 계속 선택받아왔다는 점, 지구의 생물은 산소호흡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비로소 이만큼 진화할 수 있었다는 점과 그럼에도 죽음의 기원이 산소호흡이라는 설까지 과학을 잘 알지 못하는 나까지 빠져들게 할 만큼 매우 다양하고도 재미있는 과학 이야기가 펼쳐진다.

 

 

 

“인간의 뇌는 무게가 체중의 약 2퍼센트밖에 안 되지만, 하루에 소비하는 칼로리는 전체의 20퍼센트에 달합니다. 즉 에너지(비용)가 아주 많이 들죠. 연비가 나쁜 기관입니다. 그래서 식생활에 여유가 있는 동물이 아니면 신경계는 진화하지 않습니다. 즉 조건이 웬만큼 좋지 않으면 뇌는 진화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는 어떻게 뇌를 진화시킬 만큼의 여유가 생겼을까요? 이 문제에 대해 우리는 역시 공동 번식 사회였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129p

 

 

“절대 죽을 수 없다는 사정 속에서 발생하죠. 박테리아만 봐도 한가로운 듯 보이지만 사실은 아주 바쁘게 살아가고 있어요. 외부로부터 다양한 물질을 끊임없이 받아들이고 바쁘게 위험을 감지해서 대처하려면 에너지가 엄청나게 들어요. 왜 그렇게 바쁘냐 하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세포 자체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방대한 양의 에너지를 사용하면서 자신의 몸을 유지시키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그 시스템을 존속시키는 것 자체가 살아가는 원동력인 겁니다.” / 171p

 

 

 

   소립자에서부터 무한한 우주, 생명의 탄생과 인류의 진화까지 이 거대한 주제를 오가며 드는 생각은 우리 인류가 얼마나 각별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한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이 믿음이 얼마나 왜곡된 것이고, 불명확한 것인지를 반성하게 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지금까지는 생물들이 함께 살면서 다른 생태적 지위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세대를 거치면서 유전적 진화에 성공해왔던 것과 달리 어떤 생태적 지위를 지향할 것인지,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적응하는 장기적 과정이 없는 이 거침없는 환경의 변화가 미래의 인류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 것인지 우려하는 목소리에 모두가 집중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

 

 

 

“그렇죠. 뭔가를 보거나 느끼는 건 대상에 대한 일종의 섭동입니다. 즉 특정한 무엇의 동적 프로세스죠. 조금 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인식한다는 것은 왜곡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망막으로 빛을 받아들이거나 고막으로 공기의 진동을 포착해 그걸 뇌로 해석합니다. 그러니 있는 그대로 보일 리가 없습니다. 삼차원의 세계가 망막에 비친 시점에서 이차원으로 왜곡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기본적으로 눈앞에 있는 이 커피 잔의 ‘실물’을 볼 수 없습니다. 이것과 마찬가지죠. 보도한다는 행위도 사실을 왜곡하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자신이 이해할 수 있도록, 경우에 따라서는 무의식의 선호에 따라 왜곡하는 셈이죠.” / 335p

 

 

“인간은 기본적으로 모두 사이좋게 지내자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그런데 과거와는 다른 차원에 들어와버렸으니 앞으로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가 없죠. 진화론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혹은 우리는 무엇인가)’라는 명제에 관해, 전통사회의 상호부조 안에서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진화적 환경과 현대 환경의 엇갈림이 발생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미래에 무엇이 인간에게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하는 것이 인간행동진화론에서는 중요한 주제입니다.” / 125p

 

 

 

 

 

 

   <이상하고 거대한 뜻밖의 질문들>을 읽다보면 사실 과학은 ‘어떻게’는 설명할 수 있어도 ‘왜’라는 질문에는 본질적으로 답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결국 처음부터 저자의 질문들은 여전히 알 수 없고, 또 알 수 있을 리가 없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말한다. 어쩌면 ‘중요한 것은 정답이 아니다. 거기에 이르는 과정이다. 치열하게 고민할 것, 모순과 번민에서 눈을 돌리지 않을 것.’의 중요성을 넌지시 던진 저자의 이러한 시도들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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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이웃_ 기막힌 인생살이 속에 녹아든 삶의 가치들 | 나의 서재 2019-02-07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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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의 아름다운 이웃

박완서 저
작가정신 | 2019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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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흘렀지만 박완서 문학의 깊은 여운을 느낄 수 있는 짧은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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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감각에 대한 탁월한 묘사, 우리네 삶에 녹아든 다양한 인생의 가치들!

세월은 흘렀지만 박완서 문학의 깊은 여운을 느낄 수 있는 짧은 이야기들!

 

 

   2011년 1월 22일에 고 박완서님이 타계하신 후 어느 덧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1970년에 등단한 이래 수많은 장편소설과 소설집으로 가장 일상적인 것에서 삶의 가치를 재현해내고 어루만짐으로써 사랑과 낭만을 잃지 않으셨던 분이시기에 우리는 여전히 그 이름을 기억하고 추억한다. 비록 시간은 흐르고 흘렀으나 문학적 정취라는 것이 참으로 묘한 것이어서, 이토록 낭만이 귀한 시대가 되고 보니 더 그리워진다. 어쩌면 오늘날이야말로 딸에게 ‘너의 삶의 주인은 너’라고 끊임없이 일깨워주셨다던 박완서님의 어머니 같은 손길과 넉넉한 마음이 더 필요하고 간절해져서가 아닐는지.

 

 

 

이토록 낭만이 귀한 시대에

 

 

   <나의 아름다운 이웃>은 고 박완서 작가가 등단 이후 회사 사보를 통해 연재하던 48편의 콩트들을 모아 엮은 소설집이다. 1981년에 출판된 뒤 이번에 새로이 개정되어 재출간된 작품집으로, 박완서 작가의 8주기를 추모하기 위해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29인이 모여 박완서 작가의 콩트를 오마주한 작품 <멜랑콜리 해피엔딩>과 함께 나란히 선보이고 있어 주목을 끈다.

 

 

 

   특히 <나의 아름다운 이웃>은 1970년대 우리 이웃들의 삶과 애환을 때로는 날카롭게,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포착해낸 작가 특유의 문학적 정취가 진득하게 녹아든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1970년대 하면 나의 부모님이 한창 졸업 및 사회로의 진출 혹은 결혼을 생각할 시기로 짐작된다. 1984년생인 나에게도 그리 먼 시기가 아닌 까닭에, 편리한 가전제품과 아늑한 가구들로 꾸며진 아파트에서 자라났지만 부모님이 살았던 시골을 정서적 고향으로 삼으며 이를 오가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뜻밖에도 이미 박완서 작가는 자신의 소설 속에서 1970년대를 ‘낭만이 귀한 시대’라고 말한다. 낭만의 실종을 부르짖는 오늘날을 미리 내어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는 진즉에 삶의 곳곳에서 헛헛하고 씁쓸한 삶의 애환과 비애의 자국들을 느끼고 있었나보다. 4편에 걸쳐서 쓴「마른 꽃잎의 추억」에서는 한때 자신을 쫓아다니던 총각들과의 추억과 낭만을 찾는답시고 나섰다가 지난한 현실만 들추고만 중년 여인의 공허한 모습을, 아직은 사람이 발붙이고 살 아무런 여건도 마련되어 있지 않지만 장차 어마어마하게 발전할 영동 땅을 미리 내어다보고 평생 알뜰살뜰하게 모아놓은 돈을 들고 사러 나섰다가 번번이 퇴짜를 맞더니 어느 덧 감히 꿈도 꿔보지 못할 만큼 아득하게 높아진 땅값에 뒤돌아서는 문규의 뒷모습에서 쌉싸래한 인생의 쓴맛을 본다.「땅집에서 살아요」에서는 자신이 세상에서 없어진다 해도 좁쌀알이 없어진 빈자리와 별로 다를 게 없을 거라고 푸념하는 한 가장의 애환을, 「열쇠 가장」에서는 맞은편 앞 동에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남자가 담배를 피워 문 채 가스불에 찬밥을 볶고 있는 광경을 통해 점점 더 고독해지는 가장의 무게를 엿본다.

 

 

 

나는 공허했다. 고생고생해서 내 집을 장만하고 나니까 살림 재미는 이제부터라는 설렘은 고사하고 몸과 마음이 껍데기만 남은 것처럼 공허했다. 남부러울 게 없는 모모한 부인들이 거액 노름판을 벌이는 것도 혹시 이런 공허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미움보다는 이해가 앞서는 스스로의 마음이 소스라치면서도 좀처럼 그 공허감을 극복할 수는 없었다. / 「마른 꽃잎의 추억 2」 중에서 50p

 

 

도시로 나와서 성공한 축에 끼는 경수가 이 도시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고작 그 정도였다. 그러나 13층에서 내려다본 도시는 달랐다. 그가 임의로 조종할 수 있을 것처럼 앙증맞고 인공적인 진열장 속이었다. 그는 13층에서 도시를 내려다볼 대마다 13층의 높이를 그의 키처럼 착각했다. 그는 키가 아파트 13층만 한 거인이 되어 도시를 깔볼 수가 있었다. / 「땅집에서 살아요」 중에서 140p

 

 

“그래. 조국 분단의 설움을 가장 혹독하게 맛본 노화백은 말년에 저런 방법으로 화해의 꿈을 꾼 거야. 꿈을 꾸는 것조차 용기에 속했던 그 끔찍한 분단의 벽도 지금 현실적으로 허물어지고 있는 마당에 우리 사이에 그 알량한 학력의 벽, 빈부의 벽을 마냥 고집하기냐? 이 바보야.” / 「어떤 화해」 중에서 243p

 

 

 

 

 

 

   한편 여자란 마음대로 골라잡을 수 있는 상품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어머니의 생각에 길들여지고 있던 한 남자, 그럼에도 남자와 여자와의 아름답고 진실한 만남에는 간판처럼 주렁주렁 겉으로 내걸린 조건 말고 서로의 영혼 깊숙한 곳에서 불을 붙이고 끌어당기는 어떤 신비한 힘이 작용하리라는 것을 믿는 구석도 있는 또 다른 남자의「그 때 그 사람」, 「어떤 청혼」을 통해 당대의 결혼관을 엿볼 수 있다. 성적이 우세한 건 오히려 여학생 쪽인데 남학생들은 졸업 전에 취직이 된 마당에 여학생들은 아직 한 명도 취직이 되지 않은 현실에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교수님께 인사를 드리러 가서 이런 저런 조건 좋은 남자들을 소개시켜 달라며 이른바 ‘취집’을 꿈꾸는 여학생들의 모습에서 기막힌 아이러니를 발견하게 되는 「키 큰 신랑」역시 인상적이다. 특히나 이 땅의 여성들이 품고 있는 삶의 여러 애환들을 치밀하게 다룬 「아직 끝나지 않은 음모」, 「끊어진 목걸이」등의 작품들은 오늘날까지도 시사 하는 바가 많아 의미 있게 읽힌다.

 

 

 

‘시집이나 가지’ 하는 마지막 돌파구를 찾는 일에서나마 낙오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다소곳이 여자다울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일제히 한복을 떨쳐입은 속셈은 이렇게 치사하고 착잡했던 것이다.

당초의 속셈이야 어떤 것이었든 간에 스스로가 아름답게 보이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면서 남자들의 찬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은 행복한 일이었다. / 「키 큰 신랑」 중에서 35p

 

 

후남이는 거듭한 고배로 의식은 더욱 명료해져 눈 아래 거대한 도시, 그 갈피 갈피에 여자 길들이기의 아직 끝나지 않은 음모가 공룡처럼 징그럽게 도사리고 있음까지를 분명히 볼 수 있었다. “칼아, 되살아나렴.” 그녀는 주문처럼 이 소리를 외며 거듭거듭 고배를 들었다. / 「아직 끝나지 않은 음모 3」 중에서 100p

 

 

혜령은 구두쇠 올케가 처음으로 공개하고 아낌없이 선택권을 준 보석함을 보면서 노처녀 하나 시집보내야겠다는 이 집안의 갈망이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를 보는 것 같았다. 자신을 그 비싼 것들을 얹어주어서라도 하루빨리 치우고 싶을 만큼 값어치가 하락한 물건처럼 의식해야 한다는 건 쓸쓸하고도 고통스러운 노릇이었다. / 「끊어진 목걸이」 중에서 328p 

 

 

 

 

 

 

   ‘70년대에 썼다는 걸 누구나 알아주기 바란 것은, 바늘구멍으로 내다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멀리, 적어도 이삼십년은 앞을 내다보았다고’고 고백하며 ‘내가 보기에도 신기할 정도로 그 때는 약간은 겁을 먹고 짚어낸 변화의 조짐이 지금 현실화된 것을 느낀다’던 작가의 말처럼 2019년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전혀 낯설지 않은 감수성을 호출해낸다. 한창 페미니즘이 대두되어 우리 사회 속 여성의 목소리를 드높이고 있는 요즘, ‘여자란 여자로 길러지는 걸까? 아니면 여자로 태어나는 걸까?’를 고민했던 당시의 흔적들을 우리는 여전히 당면하고 있으며, 담 하나의 소박한 정으로 쌓았던 이웃 간의 담소가 내 위신으로 쌓아올린 아파트 층수의 높이에 막혀 소외되는 광경을 심심치 않게 겪고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48편의 짧은 이야기가 위로가 되고 깊은 여운을 주는 것은 여전히 사랑을 꿈꾸고 낭만을 잃지 않기를 바라며 결국 우리 모두 누군가의 ‘아름다운 이웃’이 되기를 바라는 희망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믿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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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당신들_ 베어타운 두 번째 이야기 | 나의 서재 2019-02-01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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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우리와 당신들

프레드릭 배크만 저/이은선 역
다산책방 | 2019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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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릭 배크만의 작품 중 단연 압도적으로 추천되어야 할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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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욕망, 인간의 본질을 유려하게 다룬 경이로운 작품!

프레드릭 배크만의 작품 중 단연 압도적으로 추천되어야 할 소설! 

 

 

 

   스틱과 빙판, 한 개의 퍽과 두 개의 골문, 이기고 싶은 욕망, 싸우고 싶은 욕망, 너희와 우리가 모든 걸 걸고 벌이는 대전. 이 단순해 보이는 스포츠가 한 도시의 존폐를 가르고, 누군가에게는 정치의 무대가 되며, 누군가의 삶을 산산조각 낼 수도 있을 만큼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움직이는 마을, 그곳은 바로 ‘베어타운’이다.

 

 

 

   <오베라는 남자>,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브릿마리 여기 있다>의 연이은 흥행으로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른 프레드릭 배크만이 지난 해 출간한 <베어타운>의 두 번째 이야기 <우리와 당신들>로 돌아왔다. 앞선 전작들이 주로 재미있게 잘 쓰인 ‘스토리텔러’로서의 면모를 보여줬다면 스포츠가 정치가 되어버리고, 비틀린 우정과 상처로 얼룩진 10대들의 상흔들을 음울하지만 서정적이면서 우아한 문체로 그려낸 <베어타운>은 그를 거장의 반열에 올리기에 충분할 만한 작품성을 지닌 소설이라 평가했던 나로서는, 두 번째 이야기 <우리와 당신들>이 보여준 이 압도적인 몰입감과 가슴을 파고드는 유려한 문장들이 선사하는 경이로움에 다시 한 번 흠뻑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자기 안에 혼돈이 있는 자만이 춤추는 별을 탄생시킬 수 있다

 

 

이것은 그 이후의 이야기, 어느 해 여름에서 겨울까지의 이야기다. 베어타운과 그 옆 마을 헤드의 이야기, 두 하키팀 간의 경쟁이 돈과 권력과 생존을 둘러싼 광기 어린 다툼으로 번진 이야기다. 하키장과 그 주변에서 두근대는 모든 심장의 이야기, 인간과 스포츠와 그 둘이 어떤 식으로 번갈아가며 서로를 책임지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의 이야기, 꿈을 꾸고 투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우리 중 몇 명은 사랑에 빠질 테고 나머지는 짓밟힐 테고, 좋은 날도 있을 테고 아주 궂은 날도 있을 것이다. 이 마을은 환희를 느낄 테지만 또 한편으로는 불타오르기 시작할 것이다. 끔찍한 충돌이 벌어질 것이다. / 15p

 

 

 

   <베어타운>의 두 번째 이야기 <우리와 당신들>은 전작에서 벌어진 사건이 있고 몇 달 후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온 마을의 자부심이자 존폐를 판가름할 정도로 ‘하키에 살고, 하키에 죽는’ 마을 베어타운은 몇 달 전, 절체절명의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팀의 에이스인 케빈이 단장의 딸 마야를 성폭행하게 된 일을 계기로 쓸쓸한 운명을 맞이하고 만다. 베어타운 하키팀의 주요 선수들은 옆 마을 헤드의 하키팀으로 옮겨가면서 뿔뿔이 흩어지고, 마을 역시 일자리도 미래도 없이 곳곳에서 상처와 증오로 으르렁댈 뿐이다.

 

 

 

   케빈에게 성폭행을 당한 마야는 이젠 더 이상 성폭행을 당하는 꿈을 꾸지 않지만, 꿈속에서 매일 밤마다 그를 죽인다. 동생인 레오는 누나의 상처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자책으로 밤마다 긁는 버릇이 생겼고, 언제든 복수를 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라도 하겠다는 듯 불안한 모습이다. 또 얼마나 어떤 끔찍한 일이 아이에게 닥쳐올까 상상을 하며 오늘도 그것을 피해갈 수 있기만을 바라는 마야의 엄마, 청소년팀의 떠오르는 샛별이었지만 케빈과 마야의 일을 증언하는 바람에 모든 것을 잃고 방황하는 아맛 등 모두들 그 날의 사건으로 저마다 깊은 상흔을 지닌 채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아이들이 아무리 나이를 먹더라도 아이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싶은 부모는 없다. 부모가 모든 걸 다 해주어도 아이들이 절대 모르는 이유는 무조건적이라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단어인지 이해하지 못해서다. 부모의 사랑은 감당할 수 없고 무모하며 무책임하다. / 19p

 

 

그 바보들은 베어타운 아이스하키단이 없어진 이유가 케빈 때문이 아니라 ‘그 추문’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그들이 보기에 중요한 건 케빈이 누군가를 성폭행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마야가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이다. 그녀가 없었다면 그런 일도 없었을 것이다. 남자들의 세상에서는 여자들이 항상 말썽이다. / 50p

 

 

 

 

 

 

   마야의 아버지이자 베어타운 하키팀의 단장인 페테르는 온갖 협박과 냉대를 당하면서도 해체라는 위기로부터 팀을 구해내기 위해 지역구 의회의 정치인인 테오의 조건을 받아들이고 다시 팀을 재건하기 위해 나선다. 스포츠는 스포츠일 뿐이지만 관심 없던 사람도 거기서 얻을 게 생기면 스포츠는 경제가 되고 정치가 된다는 말이 있듯, 돈과 권력 그리고 이익이라는 유혹 앞에서 아이들과 마을 사람들이 상처입지 않고 온전히 하키를 스포츠로만 대할 수 있을까. 소설은 스포츠가 경제가 되고 정치가 되는 순간 벌어지는 모순들을 날카롭게 파고들며 그 안에서 흔들리는 다양한 캐릭터와 강렬하고도 긴장감 넘치는 전개로 마지막까지 독자들의 숨을 조인다.

 

 

 

모든 것에는 한계점이 있기 마련이고, 다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고 하며 슬픔의 경우에는 그 반대라고 우긴다. 하지만 어쩌면 그게 아닐지 모른다. 발목에 납을 매달고 물에 빠진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있으면 서로의 구세군이 되기는커녕 가라앉는 속도만 두 배로 빨라질 뿐이다. 서로의 상처 입은 가슴을 보듬는 부담감을 결국에는 감당할 수 없게 된다. / 94p

 

 

지뢰밭

그대들이 걷고 있는 여기는 지뢰밭.

모든 단어가 폭탄이지만 계속 걸어가야 해.

발밑에서 조그맣게 ‘딸깍’ 소리가 들리고

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어버릴 때까지.

피해자의 가장 나쁜 점은 내가 그대들을 피해자로 만들었다는 것.

이제 나는 아무리 원해도 그대들을 치료할 수 없어.

죽은 사람은 난데 묻힌 사람은 그대들인 느낌.

그가 깨부순 사람은 난데 꺾인 사람은 그대들인 느낌. / 138p

 

 

 

   ‘우리는 대부분 마음속으로는 모든 이야기가 단순하길 바란다. 현실도 그렇길 바라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는 물이 아니라 얼음과 비슷하다. 어느 순간 갑자기 방향이 바뀌는 게 아니라 빙하처럼 조금씩 움직인다. 가끔 꿈쩍하지 않을 때도 있다.’는 소설 속 문장이 그러하듯 ‘제발 너희들이 온전히 링크장에 서 있기를 바라. 퍽 하나의 희열에 웃고 울 수 있는 그 단순함만 믿고 삶을 해피엔드로 이끌길 바라.’ 하고 응원하게 되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된다. 분명 우리의 삶이 그러하지 않듯 그들의 삶들도 단순하게 흘러가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간절히 바라게 되는 것처럼.

 

 

 

“남들처럼 하키 하나만으로 팀에서 자기 입지를 다지도록 내버려 둬. 앞으로는 어딜 가든 차별을 받지 않겠니. 여기에서만큼은 그런 일이 없도록 해야지.”

페테르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말문을 연다.

“코치님은 항상 ‘하키단 그 이상의 하키단’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잖아요. 우리가 지금 그런 조직이 되어야 하는 거 아닐까요?” / 412p

 

 

팀 스포츠를 좋아하게 되는 이유는 뭘까? 단체의 일원이 되고 싶어서일까?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유가 단순하다. 또 하나의 가족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애초에 가족이 없었던 사람에게는 팀이 가족일 수 있다. / 472p

 

 

 

 

 

 

   이렇듯 <우리와 당신들>은 ‘거짓은 간단하고 진실은 어렵다’는 이 명제 앞에서 오늘도 숱하게 흔들리고 방황하는 등장인물들을 통해 삶의 다양한 구조와 현실적인 문제들을 통찰력 있게 드러낸다. 특히 가족 사이에 틈새가 벌어지기 시작하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움직였던 이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을 통해 나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그래서였나. 나는 그렇게 책을 읽는 내내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싶고, 내 사람을 쓰다듬어주고 싶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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