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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4 의 전체보기
테라피스트_ 무심히 지나가버린 것들, 진실은 그 사이에서 드러난다 | 나의 서재 2020-08-14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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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테라피스트

헬레네 플루드 저/강선재 역
푸른숲 | 2020년 07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섬세한 심리 묘사, 충격적인 반전, 마지막까지 몰입도를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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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리언 플린의 『나를 찾아줘』에 버금가는, 아니 이건 보다 더 우아하다!

섬세한 심리 묘사, 충격적인 반전, 마지막까지 몰입도를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소설!

 

 

 

   이제는 가정 스릴러의 공식이라고 할 수 있는 길리언 플린의 『나를 찾아줘』 이후, 최근까지도 사랑과 결혼에 관한 우울한 심리학과 서스펜스를 결합한 작품들이 대세를 이루는 듯하다. 부부의 극명한 시각차와 내밀한 결혼 생활의 현실을 극적으로 보여준 『조용한 아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코마 상태에 빠진 한 여인의 잃어버린 기억 뒤에 찾아온 소름끼치는 진실을 그려낸 『원래 내 것이었던』, 여기에 노르웨이의 길리언 플린이라 불리며 화제가 된 『테라피스트』는 이들 사이에서 정점을 찍는 듯하다. 전체적으로는 심리치료사인 주인공이 남편의 실종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의 전말을 좇아가는 단순한 구조이지만, 자신이 알고 있거나 혹은 기억하고 있는 것이 진짜 기억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데서 오는 극적 긴장감과 가족에 대한 트라우마, 불안으로 점철된 부부의 내밀한 관계를 섬세한 필치로 담아낸 점이 단연 인상적이다. 아무래도 작가 자신이 심리학자인 점은 심리 스릴러라는 장르의 성격상 매우 주효한 듯하다. 덕분에 우리는 심리학적으로 깊이가 있으면서도 굉장히 영리한 스릴러 소설 한 편을 만나게 된다.

 

 

 

 

 

 

중요한 것은 디테일이다

 

 

   금요일 아침, 건축설계사인 남편 시구르는 주말을 앞두고 친구들과 산장에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일찍 집을 나선다. 사라는 아직도 공사가 채 마무리 되지 않은 추운 욕실에서 잠을 깨우고 심리치료사로서 상담을 시작하기 위해 상담실로 향한다. 오늘의 상담 일정은 환자가 셋뿐이지만, 벌써부터 피곤한 느낌이다. 반에서 여왕 노릇을 하는 아이가 뒷줄의 제일 말없는 여자애를 깔보는 것처럼 그녀를 대하곤 하는 베라, 엄마를 화나게 하려고 자해를 하곤 하는 크리스토페르, 월드오브워크래프트 게임에 중독된 트뤼그베를 상담하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다. 얼른 일을 끝내고 시구르가 없는 집에서 느긋하게 화이트와인 한 잔과 치킨 샐러드를 먹고 싶을 뿐이다.

 

 

 

   그 사이 산장에 잘 도착했다는 시구르의 음성 메시지를 듣고, 스포츠센터에 다녀오던 그녀는 뜻밖의 전화를 받는다. 지금쯤 토마스, 얀 에리크와 함께 있어야 할 시구르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분명 잘 도착했다는 음성 메시지를 받았는데, 시구르는 곧장 토마스를 태우러 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처음에는 시구르의 친구들이 장난을 치는 것이겠거니, 하고 생각했던 사라는 이내 그가 실종된 게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충격에 빠진다. 하지만 놀라움도 잠시, 실종 사건은 곧 살인 사건으로 전환된다. 죽은 아버지 소유의 산장인 크록스코겐에서 그가 총에 맞아 살해된 모습으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하나같이 사소한 것들이다. 중요한 건 중요한 디테일을 가려내는 능력이다. 모든 걸 다 기억하면 중요한 것들을 떠올리기 어렵다-기억해야만 하는 것들을. / 15p

 

그는 거짓말을 했다. 그래서 뭐? 나는 그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내가 뭘 알지? 남자들이 거짓말을 한다면 그 첫 번째 대상은 그들의 아내가 아닌가? 사람들은 수천 가지 이유로 가장 가까운 이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나? / 56p

 

 

 

 

  사라는 남편의 죽음을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가운데서도 통제력을 잃지 않기 위해 예약된 상담을 진행하고, 자신만큼 시구르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고 장담하면서도 울지 않는다. 남편이 죽은 와중에도 철저히 직업윤리의식을 내세우고, 홧김에 남편의 마지막 음성 메세지까지 지워버린 일로 인해 도리어 수사관들로부터 곤경에 처한다. 그러는 사이 남편이 사라졌던 날 분명 그가 들고 간 게 틀림없던 도면통이 다시 나타나고, 냉장고에 자석으로 붙여놨던 사진들이 사라지거나 집 안에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리는 등 그녀의 신경을 자극하는 수상쩍은 일들이 발생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그녀는 점점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것과 실제 일어난 일의 경계가 흐려지는 것을 느낀다. 더 이상 무엇이 진실인지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만 것이다.

 

 

오늘이 끝나고 날들이, 이번 주가 끝나도 주들이 이어질 것임을 문득 떠올린다-나는 무수한 시간 동안 심리치료자로서 일을 계속하고 노트를 작성하고 약속을 정하고 치료하고 청소년들의 불안과 우울과 불만을 치유해야 할 것이다. 수없이 많은 평범한 날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가장 무서운 건 이거다-평범하고 무료한 날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해야 할 날들이. 그토록 무시무시하고 기나긴 날들이. / 154p

 

 

목요일 밤에 시구르는 내게 다음 날 아침 6시 반까지는 토마스를 태우러 그의 집에 갈 거라고, 그래야 일찍 도착해서 하루 종일 슬로프에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그 짧은 대화를 너무 많이 떠올린 나머지 그가 한 말과 그가 말했다고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것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기 시작한다. 그 대화에 관한 내 기억이 실제 일어난 일의 과정을 반영한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내가 언제나 과거에 대한 내 기억에 의지할 수 있었던 것처럼? / 248p

 

 

 

   작가 헬레네 플루드는 폭력성, 재피해자화, 트라우마를 전문 분야로 하는 심리학자답게 불안과 혼란이 가중된 사라의 심리 상태와 그 이면에 숨겨져 있던 가족의 트라우마, 이들 부부 관계의 진실까지 함께 교묘하게 배치함으로써 매우 영리하게 긴장감을 조성해나간다. 그러는 가운데 우리는 사라가 사람들의 심리를 치료하는 상담가임에도 불구하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악화시키지 않기 위해 외면하고, 모른 척 하고, 깊이 관여하지 않음으로써 정작 자신 내부의 문제는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는 데서 발생한다는 점을 서서히 깨닫게 된다. 어쩌면 사라를 비롯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관계의 문제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따귀를 맞은 것 같다. 시구르는 한 번도 내게 그런 식으로 말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내 남자친구를 악취처럼 감싸고 있는 이 광포함과 분노에. 들쑤시고 싶지도 않고 악화시키고 싶지도 않다. 그 안에서 발견할지 모를 뭔가를 알고 싶지 않다. 이건 시구르가 아니다. “나는 관여하고 싶지 않아.” 내가 말한다. “거실에 있을게.” 나는 그 방에서 나온다. 그를 내버려둔 채. / 234p

 

“아니, 모르겠어. 그냥-왜 한 번도 말 안 했어?”

그는 어깨를 으쓱한다.

“무슨 말을 해?”

그는 나와 코담배 얘기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아무 말도 할 필요가 없다. 나는 알아듣는다. 우리는 다시는 그것에 관해 얘기하지 않는다. / 283p

 

 

누구나 사랑받고 존경받고 싶어 한다-인간이라면 당연한 거다. 하지만 증오의 대상이 되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투명인간이 되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모습대로 상대가 나를 봐주지 않는 것-그래, 그것도 나쁘다-하지만 내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것? 숲속에서 비명을 질렀는데 아무도 대답이 없다면, 비명을 질렀다고 할 수나 있을까? 접시가 바닥에 떨어져 박살이 나는데도 남편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그 일이 일어나기는 한 것인가? 내가 차지하고 있는 공간, 나라는 그 작은 존재가 당신이 집과 침대를 공유하는 남자에게 인식되지 않는다는 것이 사실인가? 이건 차원이 다른 고통이다. / 285p

 

 

 

 

 

 

   이처럼 『테라피스트』는 사라가 느끼는 불안과 심리적 공포 그리고 그것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그 흔적을 쫓아가다보면 어느새 충격적인 사실과 반전을 맞이하게 되는 꽤 인상적인 작품이다. 첫 작품이라기에는 믿기지 않을 만큼 수준 높은 통찰력과 강렬한 이야기적 요소까지 두루 갖추었다. 올 여름,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끝 페이지까지 단숨에 몰아치게 되는 작품을 찾는다면 꼭 이 책을 추천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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