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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시옷들_ 살며, 사랑하며 | 나의 서재 2020-03-21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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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내가 사랑한 시옷들

조이스 박 저
포르체 | 2020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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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주한 하루 끝에 찾아온 시를 읽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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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주한 하루 끝에 찾아온 시를 읽는 순간!

마음을 울리는 명시를 읽으며 인문학적 소양과 교양 영어를 함께 익히다!

 

 

   거친 언어들이 난무하는 밤이다. 잠들기 전에 각종 시사 뉴스를 쭉 훑어보고 있노라면 머릿속이 피곤해진다. 코로나19로 인해 가뜩이나 심란한 가운데 가짜 뉴스로 선동질하는 사람들 하며 협조는커녕 이기적인 행동으로 방역 활동을 방해하는 사람들에 시끄러운 댓글까지. 내가 왜 또 이걸 보고 있나 자조하며 휴대폰을 내려놓고 책 한 권을 꺼내어본다. 인생의 길이 되는 세 가지 시옷들 즉, 사랑과 삶 그리고 시를 담은 책이다. 평소에는 시를 즐겨 읽지 않는 편이지만 요즘 같이 하루하루가 불안과 걱정으로 마음이 답답할 땐 복잡한 서사나 지식서가 아닌 ‘시’라는 언어를 빌려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침맞게 저자 역시 ‘말과 글이 난무하여 어떤 말과 글을 붙들어야 하는지 도통 알 수 없는 시대’에 시라는 길에 의지해왔노라 고백한다. 어쩌면 혼탁한 말과 고된 일상이 지배하고 있는 바로 지금이야말로 시가 가장 필요한 순간이 아닐까.

 

 

 

 

 

 

살아간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

 

 

   『내가 사랑한 시옷들』에는 저자인 조이스 박 교수가 엄선한 서른 편의 명시가 실려 있다. 대부분 20세기 근현대 영미권 시인의 시들로, 시가 익숙하지 않은 나에게는 모두 낯설지만 사랑의 언어를 담은 시, 나의 존재적인 가치에 의문을 품은 시, 삶의 여러 흔적들을 들여다보게 하는 각각의 시는 생각 보다 부담 없이 읽힌다. 특히 시의 각 앞 장마다 시인의 간단한 이력이 있어 그들의 삶이 시에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점은 시를 더 깊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더욱이 영어 원문을 먼저 읽고 해석된 시를 읽는 경험을 통해 영어와 우리말의 차이에서 오는 남다른 시적 언어의 감각까지 느껴볼 수 있다는 점도 이 책의 좋은 장점 중에 하나다. 무엇보다 각 시에 담긴 함의를 전달하고자 하는 저자의 깊이 있는 해석은 시와 적극적으로 교감하고 공감하는 것을 넘어서 그 자체로도 충분히 생각하게 하는 데가 있다.

 

 

 

뒤늦게 오나니 Delay

- 엘리자베스 제닝스

 

 

내게 쏟아지는 별들의 광채는

몇 해 전에 빛나던 빛. 지금 저 위에서

반짝이는 별빛은 내 눈으로는 결코 보지 못할 빛

그렇게 시간의 간극은 어쩌면 좋을지 모르는 나를 애태워

 

 

지금의 사랑은 그 첫 갈망이

다 소진되고서야 내게 도달할지도 몰라

충동적인 별빛은 사람이 쳐다보고 아름답다 해주기만을 기다려야 하고,

사랑은 도달할지라도 우리를 다른 곳에서 찾을지 몰라

 

 

 

   빛나는 별이 하늘에 한가득 보이던 시절, 사람들은 하늘을 가르는 수많은 별을 보며 그것을 운명이라고 믿었다. 지금 저 반짝이는 별빛은 어마어마한 시간과 공간의 간극을 뛰어넘어 내게로 온 것. 그러함으로 우리는 저 별에게서 나의 오늘과 내일의 나를 보았고, 오늘의 사랑과 내일의 사랑의 운명을 가늠했다. 서양에는 X자로 하늘을 긋는 두 개의 별똥별을 연인이 보면 두 사람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난다는 속설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통상 비극적인 사랑을 Star-crossed love라고 부르고, 셰익스피아의 <로미오와 줄리엣> 속 두 연인을 ‘별들이 어긋난 연인’이라고 일컫는다고.

 

 

 

   시인도 별을 보며 생각한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저 별이 실은 수백만 년 전에 시작된 빛이라는 것을, 수백 광년을 달려와 별빛이 우리 눈에 닿은 시점에는 그 별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또한 누군가 사랑으로 보낸 마음 하나가 다른 사람에게 닿지 못하는 아득함이라거나, 진정으로 온 마음을 상대에게 보내도 닿지 않거나 가서 닿더라도 왜곡되며, 이미 전해진 마음도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별을 보면 이따금 슬픔에 잠긴다. 적확한 시공간, 내가 쏘아 올린 마음을 받을 공간에 상대가 있어야 하는 그런 기적 같은 타이밍을 찾아 헤매는 존재, 바로 우리 자신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잊지 말아야지. 지금의 내 사랑은 그 수많은 시공간을 가로질러 나에게로 온 것이니까.

 

 

 

화자가 말하는 ‘가장 높은 봉우리’는 ‘섬’과 닮아 있다. 가시적인 높이를 따지자면 육지 위에 솟은 산이 더 높아 보이겠지만, 어마어마한 몸뚱이를 바다 깊숙이 감춘 섬이 육지의 산보다 거대할 수도 있다. 심연 아래 보이지 않는 산이 가진 외로움은 육지에 솟아난 산보다 훨씬 더 깊고 깊을 수 있다. 이처럼 인간은 누구나 ‘혼자’가 아닌 것처럼 보여도 다른 이가 헤아리기 힘든 외로움의 깊이를 감추고 살아간다. / ‘혼자인 것과 외로운 것’ 중에서 21p

 

 

가까이서 보면 그 누구도 아름답지 않다. 가까이 갈수록 결점이 보인다. 사랑의 딜레마는 “그립다, 그리워.” 부르면서도 정작 가까이 마주하게 되면 사그라지는 것에 있지 않았나. 내 안으로 불러들인 사랑은 언젠가 시들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시인은 사랑을 늘 저 멀리에 둔다. 그게 사랑을 유지하는 방법인 것처럼. / ‘멀리 떠나가지 마세요’ 중에서 36p

 

 

‘말로 하지 못하는 것들’은 영어로 ‘Things unsaid’라고 쓴다. “Things left unsaid.”라고 하면 ‘말하지 않고 내버려둔 것들’이 되어 더 의미심장해진다. 이따금 정말 큰 상실은 내버려둘 때가 있다. 강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내놓았다가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와 그 감정에 빠질까 봐 그러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터지지 않도록 참고 버티다 보면 점차 강해지는 느낌이 든다. 억눌러 참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말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 ‘말로 할 수 없는 것의 힘’ 중에서 88p

 

 

 

 

 

 

고독 Solitude

- 엘라 휠러 월콕스

 

 

웃어라, 그러면 세상이 너와 함께 웃으리니

울어라, 그러면 너 혼자만 울게 되리라

낡고 슬픈 이 세상에서 환희는 빌려 오는 것이고,

세상의 문제는 이미 충분하기 때문이다.

노래하라, 그러면 언덕들이 응답하리니

탄식하라, 그러면 그 소리는 허공에 흩어지리라

메아리들은 즐거운 소리에는 춤을 추지만

소리 내어 근심을 말하면 움츠러 든다.

 

 

 

   화려할수록 짙어지는 고독이 있다. 저자는 엘라 휠러 월콕스의 시 <고독>에게서 오늘날 소셜 미디어 속의 관계를 들여다본다. 내가 좋을 때만 ‘좋아 보이는’ 사람들이 머무르는 공간, 내가 잘나가고 멋져 보일 때 좋아요를 눌러주는 사람들이 더 많은 공간. 인스타그램은 그렇게 좋아 보여서 더욱 좋아지는 기제로 움직인다. 익명의 다수와 관계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이미지로 자신을 공여하고, 타인은 이미지로 우리를 소비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때로는 가벼운 관계가 주는 편안함도 있는 법이다. 모든 사람에게 진심일 필요가 없고, 모든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쏟을 수도 없다.

 

 

 

   다만 가벼운 관계 속에서 웃고, 노래하고, 기뻐하고, 잔치를 열되 때로는 진지하고 고요하게 마주할 수 있는 진짜배기 관계를 찾아야 한다. 일일이 설명하지 않고 받은 만큼 돌려주지 않더라도 서로에 대한 믿음 속 흔들리지 않는 관계의 중심이 필요한 법이다. 그렇다면 “I'm a little cyber fish, swimming through this vast sea of the Internet.” “나는 이 광대한 인터넷 바다를 헤엄쳐 다니는 작은 사이버 물고기야.”라고 생각하며 살자. 유선형의 존재로 흘러가는 것은 흘러가게 두고 가끔 빛을 받아 비닐이 반짝이면 황금 비늘이 생겼다고 우기면서. 그러나 뭍으로 올라올 때가 되면 다시 사람의 다리로, 중력을 견디며 걸어야 할 땐 또 미쁘게 걸으면서. 어떤가, 썩 괜찮은 생각 같지 않은가.

 

 

 

집단의 제도와 관습의 족쇄를 넘어서지도, 인간 종의 생물학적 특성을 벗어나지도 못하여 고군분투하는 지난한 과정은 인간 모두에게 주어진다. 그럼에도 나는 사랑이 없다면 고군분투의 과정이 없고, 이 과정이 없으면 성숙한 도약도 불가능하다고 믿고 싶다. 하나의 개체로, 한 명의 개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꿈틀꿈틀 쉬지 않고 움직이고, 이 움직임에서 저 움직임으로 짧게 이행하며 생존하는 것임을 시인이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생존의 움직임이 집단의 역사를 반복하는 개체로서 보잘것없이 보일지는 몰라도, 위대함은 종종 대수롭지 않은 것들 속에서 일궈내는 법이기도 하다. / ‘우리’라는 운명 앞에 ‘나’라는 개인 중에서 216p

 

 

영어에는 ‘water under the bridge’라는 표현이 있다. 똑같이 다리 아래로 흘러도 어제의 강물과 오늘의 강물은 다르기에 ‘이미 지나간 일’이라고 말하고 싶을 때 이 표현을 쓴다. 삶은 ‘다리 아래 물’이다. 그렇게 무상하다. 하지만 이렇게 무상한 시간 덕분에 쓰렸던 기억들도 점점 희미해진다. 마치 축복처럼, 찌르듯이 아픈 고통과 영원할 것 같던 슬픔도 시간의 흐름에 예각이 닳아 둔각으로 변할 수 있다. / ‘삶은 흐른다’ 중에서 235p

 

 

 

 

 

 

   한 장의 페이지를 펼쳐 입으로 소리 내어 읽어보는 건 하루를 마감하는 나에게 꽤 괜찮은 선물이 될 것이다. TV와 휴대폰을 끄고, 모든 소리로부터 차단된 공간 속에서 오로지 시와 글에 내 모든 감각을 떠맡겨보시라. 그러면 나의 고단했던 하루가 조금은 다독여질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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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The Power)_ 일어나라, 그대들은 강하다 | 나의 서재 2020-03-20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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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파워

나오미 앨더만 저/정지현 역
민음사 | 2020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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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젠더의 대립이 아닌 힘과 권력의 파워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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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소설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충격적이고도 대담한 판타지!

이것은 젠더의 대립이 아닌 힘과 권력의 파워게임이다!

 

 

   “Aje ni girl yen, sha! 그 여자애는 마녀야! 마녀가 이런 식으로 사람을 죽인다고!”

   누군가가 소리친다. 싫다고 거부하는 소녀에게 “너처럼 예쁜 여자는 칭찬을 들어야 마땅해.” 하고 지분거리던 남자가,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소녀를 주먹으로 치고 손바닥으로 후려갈기고 발로 걷어차는 것으로 훈육을 하던 남자가 쿵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쓰러진다. 하얀 빛이 번쩍거리는 순간, 그들의 온몸이 요동치며 경련을 한다. 나오미 앨더만의 소설 『파워』는 이렇게 시작한다. 어느 날 갑자기 몸에서 전류를 내보낼 수 있는 능력이 전 세계 소녀들 사이에서 급속도로 퍼져나간다. 이 현상은 각종 소셜미디어를 통해 순식간에 전파되고, 성인 남성을 제압할 수 있는 소녀들의 놀라운 위력은 곧 성인 여성들에게 내재되어 있던 ‘파워’까지 일깨워줌으로써 일시에 남성과 여성의 성 역할이 전복된다. 마침내 ‘그녀들’의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여성에게 힘과 권력이 주어진다면, 세상은 어떻게 뒤바뀔 것인가

 

 

 

   본격적으로 페미니즘이라는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에서 남성의 이데올로기로부터 탈출을 꿈꾸는 길리언 플린의 『나를 찾아줘』, ‘진짜’와 ‘가짜’ 페미니즘을 구분하는 이분법을 넘어서 여성들의 연대를 모색했던 윤이형의 『붕대 감기』에 이르기까지. 페미니즘 소설은 최근 몇 년 사이 사회 곳곳에 위치해있는 여성의 현실과 방향성을 제시하며 여러 가능성들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왔다. 여기에 나오미 앨더만은 세상의 판을 뒤집어버리는 놀랍도록 대담하고 충격에 가까운 판타지를 선보인다. 그녀는 아예 여성들의 손에 힘과 권력으로 상징되는 ‘파워’를 쥐어준다. 기존의 가부장적 질서와 대립되는 ‘가모장제’ 사회를 배경으로 새로운 세계 질서와 성 역할을 부여하여, 과감히 여성 중심의 세계관으로의 전환을 시도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오랫동안 계속 멀리에서 들려왔던 것 같다. 몽고메리테일러 부부의 집에 오기 전부터. 이 가정에서 저 가정으로, 이 손에서 저 손으로 옮겨 다닌 후로 언제 조심해야 하는지 위험을 경고해 주는, 저 멀리서 어렴풋이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 목소리가 말했었다. 너는 강하다, 너는 이겨 낼 것이다. / 49p

 

 

 

 

 

 

   소설 속에는 여러 여성들이 등장한다. 가족이 없는 16살의 소녀 앨리는 자신의 보호자이면서 늘상 폭력을 일삼는 몽고메리테일러와 그의 부인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마침내 운명의 날 밤, 파워를 이용해 몽고메리테일러를 살해한 뒤 도망친다. 앨리는 하나님 어머니의 목소리의 계시에 따라 한 수녀원에 다다르고, 그곳에서 여성들의 세상을 일으켜 세우기 위한 하나님 어머니의 뜻을 설파하며 ‘어머니 이브’라는 상징적인 인물로 거듭난다. 한편, 역사상 가장 강력한 파워를 지닌 록시는 자신의 눈앞에서 엄마를 죽인 자들을 과감히 복수하는 것은 물론, 앨리가 있는 수녀원의 공격하려는 무장한 경찰들로부터 이를 지켜낸다. 그녀는 앨리가 하나님 어머니의 계시를 실현시키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전사 중의 전사다.

 

 

 

정말로 강력한 힘이다.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딸아, 너에게는 항상 통제력이 있었다. 그러니 힘을 능숙하게 쓸 수 있어야 한다. 너는 기술을 배울 수 있다.

앨리가 속으로 말한다. 엄마, 어디로 가야 하지요?

목소리가 답한다. 이곳에서 벗어나 내가 보여 주는 곳으로 가거라.

목소리에는 항상 성경 같은 면이 있었다. / 58p

 

 

세상이 새로워질 필요가 없었다면 왜 하필 지금 파워가 나타났을까?

앨리는 생각한다. 새로운 질서가 필요하다고 하나님이 세상에 전하고 계시는 거야. 과거의 방식을 뒤집어져야 한다고. 예전 시대는 끝났다고. 예수님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바라시는 바가 바뀌었고 복음의 시대 또한 끝났으며 새로운 교리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 66p

 

 

 

 

 

 

   미국 소도시 시장에 불과했던 마고는 자신의 딸 조슬린(조스)으로부터 파워의 감각을 일깨운 뒤, 소녀들을 잘 훈련된 여성 군인으로 양성하기 위한 노스스타 캠프를 세우고 대주주가 된다. 그녀는 이제 대통령도 두렵지 않은 절대 권력자로 발돋움할 일만 남았을 뿐이다. 반면, 마고의 딸 조슬린은 여전히 자신의 파워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라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점점 권력의 꼭대기에 올라가려는 어머니로부터 벗어나 자유의지대로 살고 싶다. 늘 그런 부류는 있는 법이다. 자신이 가진 힘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할지 몰라 쩔쩔매는 그런 부류 말이다. 이와 달리 타티아나 모스칼레프는 부와 인맥, 전체 군대의 절반, 다수의 무기를 몰도바 국경지대 언덕에 위치한 성으로 가져가 여성들의 새로운 왕국 베사파라를 세운다. 그녀는 오래된 숲과 커다란 만 사이의 흑해 연안 지대를 통일하고 사실상 러시아를 포함한 네 개의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다. 해마다 수십 만 명의 여성이 인신매매로 팔려가던 땅은 이제 여성들의 땅으로 변모한다.

 

 

 

하지만 조스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이유를 아는 사람도 없고 감히 어떤 제안을 할 만큼 연구를 한 사람도 없다. 조스의 파워는 매우 변덕스럽다. 힘이 넘쳐서 그저 조명을 켜기만 해도 집 안의 두꺼비집이 멋대로 작동하는 날도 있고, 거리에서 다른 여자아이가 싸움을 걸어 와도 방어할 수 없을 만큼 무기력한 날도 있다. 자신을 방어하지 못하거나 방어하지 않는 여자들은 ‘담요’ 또는 ‘방전된 배터리’라고 불린다. / 90p

이브가 말한다. “두려워하지 마라. 믿는다면 하나님은 너희와 계실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하늘과 땅을 뒤집으셨다. 그동안은 예수가 교회를 지배하는 것처럼 남자가 여자를 지배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내가 너희에게 말하나니 여자가 남자를 지배한다. 마리아가 갓난아기인 아들을 사랑과 친절로 인도했듯이. 그동안은 그의 죽음이 죄를 씻어 주었다고 하였다. 하지만 내가 너희에게 말하나니 누구의 죄도 씻기지 않았고, 따라서 세상을 정의롭게 하는 위대한 일에 동참하였을 따름이다. 그동안 너무도 많은 부당한 일들이 행해졌다. 우리를 모아 바로잡고자 하심이 하나님의 뜻이다.” / 112p

 

 

 

   한편, 툰데는 파워를 쓴 소녀가 한 남성을 쓰러뜨리는 장면을 우연히 촬영해 온라인에 올린다. 이후 그는 파워의 힘이 미치는 곳곳을 추적하는 관찰자이자 전달자로, 소설 속의 유일한 남성 화자로 등장한다. 그는 파워가 누군가에게는 권력의 상징이 되고, 누군가에는 폭력의 힘이 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목격하면서 이 능력이 세계를 장악해서 이 세상을 완전히 바꿔 놓으리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는 동안에 부당한 남성 권력과 폭력으로부터 여성들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파워가 점차 여성이 남성을 위협하고 가해하는 수단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며, 이제 그는 이 사회 속에서 자신이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위치에 처해지기까지 한다.

 

 

 

“너는 약하고 우리는 강하다. 너는 선물이고 우리는 주인이다. 너는 피해자이고 우리는 승자다. 너는 노예고 우리는 주인이다. 너는 희생자이고 우리는 수혜자다. 너는 아들이고 우리는 어머니다. 인정하느냐?”

동그라미 안의 모든 남자들이 열성적으로 바라보았다.

“예. 예. 예. 제발, 지금. 예.” 남자들이 속삭인다.

툰데도 중얼거렸다. “예.” / 339p

 

 

 

 

 

  때문에 “만약 여성에게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면?”이라는 이 흥미로운 가설이 여성의 입장에서도 썩 유쾌하지 않다. 힘이 있는 자로부터 힘이 없는 자에게로 힘과 권력이 이동했을 뿐,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지옥과 광기가 그곳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까닭이다. 어머니 이브를 자처하던 앨리가 타티아나를 죽이고 스스로 권력 의지를 실현한 것처럼, 가장 강력한 파워를 지닌 록시조차 자신의 가족에게 배신을 당하고 타래를 빼앗겼던 것처럼, 우리는 휘두를 것인가, 휘둘릴 것인가. 그 선택 앞에서 자유롭지 못한 존재들이라는 사실만이 더 뚜렷해질 뿐이다. 이렇듯 나오미 앨더만의 『파워』가 젠더의 대립으로 시작해서 파워게임으로 귀결되는 과정을 보며, 중요한 것은 남성이냐 여성이냐가 아니라 평등하지 않은 힘의 존재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에 대한 이해가 먼저라는 생각이 든다. ‘젠더는 셸 게임입니다. 남자가 무엇입니까? 여자가 아닌 모든 것이 남자죠. 여자는 무엇입니까? 남자가 아닌 모든 것이죠. 두드려 보면 그 안이 텅 비었음을 알 수 있어요. 껍데기 아래를 보세요. 아무것도 없습니다.’던 닉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소설 『파워』는 비록 허구에 불과하지만 어쩐지 대변혁의 순간을 맞이할 먼 미래의 어느 순간에 미리 다녀온 듯한 묘한 기시감을 느끼게 한다. 그만큼 강렬하면서도 서글픈 공포의 잔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덕분에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진 나오미 앨더만을 알지 못했으나, 읽고 난 후에는 이 작가를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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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버그_ 진화하고 있는 글로벌 전염병의 위협과 딜레마 | 나의 서재 2020-03-16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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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슈퍼버그

맷 매카시 저/김미정 역
흐름출판 | 2020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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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전염병의 위협으로부터 인류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의료인들의 사투를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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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재앙으로 다가온 슈퍼버그, 그들의 경고에 당장 주목해야 한다!

글로벌 전염병의 위협으로부터 인류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의료인들의 사투를 그리다! 

 

 

   WHO가 마침내 팬데믹을 선언했다. 코로나19가 발생한 이래 전 세계 확진자 수가 12만 명에 달하며 피해 국가도 110개국을 넘어선 가운데, 앞으로 몇 주 혹은 수개월에 걸쳐 코로나 19의 영향을 받는 국가의 수가 상당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의학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수준이 낮은 국가는 감염이 일어나면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 있기에 우려가 된다. 문제는 아직까지 코로나 바이러스를 치료할 수 있는 뚜렷한 치료제와 백신이 없다는 점이다. 각국의 연구기관들과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한 국제간 연구 협력이 활발히 추진 중에 있으나 임상 실험을 거쳐 시판에 이르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전 세계는 현대의학 사상 가장 절박한 도전에 직면했다. ‘글로벌 전염병이 핵폭탄이나 기후변화보다 훨씬 더 위험한 재앙을 인류에게 가져올 것이라고 확신’한다던 빌 게이츠나 ‘2050년에는 3초에 1명의 인류가 슈퍼버그로 사망할 수 있다’던 경제학자 짐 오닐의 끔찍한 예언이 현실화되고 있으니 말이다. 2003년의 사스와 2012년의 메르스를 제외하고도 매년 슈퍼버그 감염으로 사망하는 건수가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보이지 않는 적과의 전쟁’에 직면했음을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질문 하나가 떠오른다. 의료 기술이나 위생 개념이 현저히 떨어지는 과거 시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오늘날, 우리는 왜 끊임없이 슈퍼버그의 위협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또 치료제 개발은 어째서 이토록 더딘 것일까. 『슈퍼버그』는 바로 이러한 질문에 해답이 되어줄 아주 놀랍고도 유익한 책이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는 슈퍼버그의 위협 앞에서 그가 내어놓은 이 보고서들은 현대의학이 당면한 현실과 미래를 보여주는 전 인류적인 메시지가 될 것이다.

 

 

 

 

 

 

슈퍼버그의 시대, 보이지 않는 적들과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

 

 

   얼마 전, 한 기사에서 낯익은 이름 하나가 등장했다. 바로 『슈퍼버그』의 저자이자 뉴욕 프레스비테리안 병원의 의사 맷 매카시다. 한국의 코로나19 검사 속도를 언급하면서 미국 보건당국의 대응 체계를 강하게 비판하는 내용의 기사였다. 그는 코로나19의 진단 키트조차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 미국 의료계의 현실을 꼬집으며 곧 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할 것을 경고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맷 매카시는 현재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는 슈퍼버그에 맞설 새로운 항생제 임상시험의 최전선에 서 있다. 그와 동료들은 슈퍼버그의 치명적인 위험으로부터 많은 생명을 치료하기 위해 험난한 여정을 겪고 있다. 책 『슈퍼버그』 속에도 이 위험천만하고 안타까운 현실이 답답하리만치 고스란히 담겨 있다. 슈퍼버그가 얼마나 가까이에서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지, 어째서 인류가 극도로 전염병에 취약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는지, 희귀 감염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목소리에서부터 치료법 개발의 딜레마에 이르기까지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그렇다면 슈퍼버그란 과연 무엇일까. 슈퍼버그는 강력한 항생제로도 치료되지 않는 변이된 박테리아를 의미한다. 책에 따르면 슈퍼버그는 1960년대 이전에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고, 1990년대까지도 산발적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그러나 의사들의 잘못된 항생제 처방 관행과 함께 항생제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상업적 농업이 박테리아들에게 우리의 소중한 약품들을 노출시켰고, 그 결과 박테리아들은 그 약효를 무력화시키는 법을 알아냈다. 즉,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항생제를 분해하고 파괴할 수천 가지 효소를 만들어냄으로써 박테리아들이 슈퍼버그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근래에 와서 슈퍼버그는 더 적응력이 강해지고 악성이 되었다. 다시 말해 점점 똑똑해지고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슈퍼버그와 항생제 내성 감염으로 인해 사망하는 수에 비해 그들을 치료하기 위한 약의 공급로는 거의 말라붙었다는 점이다. 제1차 세계 대전 시 감염병으로 고통 받고 죽어가는 수천 명의 부상병들을 구하기 위해 알렉산더 플레밍이 페니실린을 개발한 이후, 1950년대에 분자 생물학의 발전으로 간종 신약이 나오면서 항생제 개발의 황금기가 도래했지만, 오늘날 사용되는 약의 절반은 바로 1950년대에 발견된 것에 불과할 만큼 답보상태다. 더군다나 아무리 훌륭한 항생제라도 그에 대한 내성이 발생하기 때문에 과거에 썼던 항생제는 곧 무용지물이 될 지도 모른다. 현대의학의 발전 속도로 미루어봤을 때 약을 써야 하는 데도 적절한 약이 없어서 못 쓰고, 조만간 우리가 쓸 수 있는 항생제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맷 매카시의 말은 충격적일 정도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전문가 대부분은 미생물 혹은 실험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의해 생성된 분자로서 박테리아 감염의 예방과 치료에 사용할 수 있는 것들에 항생제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항생제로 인정받으려면 최소 한 종류 이상의 박테리아를 죽이거나 생장을 저지해야 한다. 박테리아를 죽이는 것을 살균, 박테리아의 성장을 억제하는 것을 정균이라고 부르는데, 살균제가 효과가 더 큰 경향이 있으므로 그 구분을 두고 옥신각신할 때가 많다. 일부 항생제는 기생충과 진균도 죽일 수 있지만, 바이러스에는 거의 효과가 없다. 그래서 의사들은 감기 환자에게 항생제를 잘 처방하지 않는다. 감기 증상은 대체로 바이러스에 의해 유발되기 때문이다(과학자들은 박테리아와 바이러스가 다르다는 것을 1930년대까지 인식하지 못했다. 바이러스는 식물, 동물, 인간, 박테리아 등 다른 유기체 내부에서 복제되며 대체로 항생제가 듣지 않는다). / 33p

 

 

어처구니없게도 시프로플록사신은 더 건강한 식육 및 가금육을 얻을 수 있다는 이유로 가축에게도 쓰였다. 동물에게 항생제를 무분별하게 쓰는 관행은 슈퍼버그 출현의 주요인 중 하나였다. 동물 안에 사는 박테리아들이 우리가 가진 최고의 약물들에 노출되면서 그것들을 피할 방법을 학습하는 까닭이다. 최근 18개 주에서 100명 이상에게 발병한 감염의 최종 원인은 예기치 않게도 강아지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감염된 개들 거의 전부가 애완동물 가게에서 팔린 것들이었고, 최소 한 차례 항생제를 투여 받은 이 개들 속에 살던 치명적인 슈퍼버그가 새 주인에게 옮겨간 것이었다. / 172p

 

 

 

 

 

 

   그렇다면 새로운 항생제를 만드는 일이 그토록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실제로 맷 매카시는 슈퍼버그 치료제로 달바반신이라는 항생제를 연구하며 임상시험을 거쳐야만 했는데, 그 과정 속에서 새 항생제 개발의 어려움을 연거푸 마주한다. 일단 까다로운 임상시험 규정을 통과해야 한다는 점이다. 과거 나치가 여성 강제 수용자들이나 감염된 병사들에게 인체 실험을 하고, 매독균 실험을 위해 터스키기의 한 마을이 집단 인체 실험에 이용된 사례를 교훈삼아 오늘날 임상시험은 보다 엄격한 규정 하에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규정을 통과해 승인이 떨어진다 하더라도 약을 시도해 볼 용의가 있는 적합한 환자를 찾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이다. 임상시험에 동의하지 않는 환자들도 있지만, 임상시험이 가장 필요한 환자들이 정작 참여 자격이 안 되는 역설적인 상황을 마주해야 할 때도 있다. 또 게르하르트 도마크의 설파닐아마이드가 다수의 어린이들을 사망에 이르게 했던 것처럼, 입덧 치료에 효과가 있다던 탈리도마이드가 사지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는 해표지증을 포함한 선천성 기형을 발생시켰던 것처럼, 항생제가 지닐 수 있는 위험성을 지적하는 FDA의 엄격한 기준을 인정은 하지만, 죽어가는 환자들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시간을 끄는 듯한 인상을 주는 복잡한 절차과정은 재고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개발 비용에 비해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항생제에 대한 투자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점 또한 문제로 지적된다. 한 경제학자에 따르면 ‘3,000만 달러를 낭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항생제에 투자’하는 것이라 말했을 정도이니,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제약 회사로썬 항생제 개발은 그리 매력적이지 않은 셈이다. 혹여 개발이 된다 하더라도 이미 약에 내성이 생겨버린 박테리아의 진화로 인해 효용 가치가 오래 유지되지 않는 것 또한 그 이유다. 덕분에 최근 면역력이 떨어진 환자들을 위협하는 사프로케테 클라바타의 표적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 관심을 둔 제약회사가 하나도 없는 점은 안타까운 일이다. 2011년 가을부터 2012년 사이에 프랑스 내에서 발병 사례가 30건에 달했음에도 말이다. 2001년에서 2003년 사이에 재고가 부족한 항생제가 148종이나 되는 바람에 전국의 의사들은 그보다 못한 치료제를 써야만 했다니 더욱 애석한 일이다.

 

 

 

   문제는 이처럼 미진한 항생제 개발로 인한 경쟁의 부재는 자연스럽게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서라면 도덕적으로 의심스러운 지시도 불사하는 CEO들에게 좋은 핑계거리가 된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신약 제조사들은 특허권을 복제약 제조사들과 경쟁하기 전에 12년에서 15년간 판매 독점권을 갖는데, 만약 복제약 제조사들이 생산에 나서지 않는다면 특허가 만료된 후에도 가격이 오를 수 있다. 실제 2013년부터 2016년까지 항생제 10종 중 1종이 경쟁 부재로 인해 가격이 90% 인상됐다고 하니 우려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항생제가 있다 한들 그들이 요구하는 비싼 값을 치를 수 없다면 무용지물일 테니 말이다. 새삼 재벌 기업의 후원과 지속 가능한 연구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록펠러 대학의 재력은 우리 분야의 곤궁을 경감시켜 주었다. 감염병 전문의가 미국 일부 지역에서 사라져가고 있을 정도로 이 분야는 현대 의학에서 소외되어 있다. 현재 의사 대부분은 자신이 행한 처치의 종류(그리고 비용)에 따라 보수를 받는데 감염병 전문의들은 실질적인 처치를 하지 않았다. 우리는 전문 자문을 제공하는 지적 전문의인데 의료수가제도는 우리의 자문에 대한 엄청난 수요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 감염병 분야는 두뇌 유출을 경험하고 있고, 그 정도가 해마다 심해지고 있다. 동부와 서부 연안 지역에는 아직 감염병 전문의들이 모여들지만, 중부 지역은 변화하는 의료 경제로 인해 큰 타격을 입었다. 젊은 의사들은 전임자들보다 감염 질환에 관심이 덜하다. / 235p

 

 

 

 

 

 

   최근 코로나19의 발생으로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다수의 의료진들이 생업을 포기하가며 지원을 왔다는 말에 울컥한 적이 있다. 현재 매일 발생하고 있는 확진자 수보다 완치자 수가 더 많아졌다는 희소식은 모두 그들의 노고 덕분임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비록 지금의 위기를 극복한다 하더라도 더 강한 슈퍼버그가 언젠가 나타나 우리의 생명을 또다시 위협하겠지만, 그들의 노고에 감사하고 연대하는 성숙한 시민으로서의 자세를 잃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 극복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런 의미로 『슈퍼버그』는 슈퍼버그의 위협을 경고하는 동시에 오늘도 슈퍼버그로부터 생과 사를 다투는 의료진들의 노고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의 우리에게 더없이 귀중한 책이다. 누구든지, 꼭 한번쯤은 읽어보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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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해빙(The Having)_ 부와 행운을 끌어당기는 힘 | 나의 서재 2020-03-13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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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더 해빙 The Having (40만부 기념 리커버 에디션)

이서윤,홍주연 공저
수오서재 | 2020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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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을 살 것, 마음가짐을 달리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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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 대한 고정관념과 불안으로부터 벗어나는 긍정의 힘!

지금 이 순간을 살 것, 마음가짐을 달리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첫째 아이가 올해로 여섯 살이 되면서 구체적인 이사 계획을 세워야 할 때가 왔다. 현재 살고 있는 곳 주변에는 아이가 다닐 수 있을 만한 학교가 있지 않은 까닭이다. 그래서 우리 부부가 유년 시절부터 자라고 성장해왔던 동네로 이사를 가려니 비용이 만만치 않다. 아무래도 대구에서도 가장 학구열이 높기로 소문난 수성구 내에 위치해 있다 보니, 현재 살고 있는 집과 같은 평수의 집임에도 불구하고 몇 배 이상의 집값이 필요한 것이다. 그간 아낄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아껴가며 열심히 산 것 같은데 어마어마한 집값 앞에서 드러난 우리의 형편이란, 그저 숨을 턱턱 막히게 할 뿐이다. 학교 다닐 때는 생활비 마련하느라,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한 뒤에는 학자금 대출에 결혼 비용을 마련하느라 젊은 시절을 다 보냈는데, 이제는 내 집 마련에 늘어날 아이들 교육비까지 감당하려니 막막할 따름이다. 정말 ‘돈 걱정’이라는 것을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날이 오기는 하려나. 훗날 우리 아이들에게 돈은커녕 빚만 물려주게 되는 건 아닌지 벌써부터 암담해진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부자 되는 법’을 일러준다는 책들을 보면 거리감이 든다. 그간 돈의 법칙과 부의 흐름을 이해하는 법을 일러주는 책도 읽어봤고, 똑똑한 소비 혹은 빚을 가장 효율적으로 정리하는 방법을 일러주는 책도 만나봤지만 현실은 늘 제자리걸음이고,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티는 것만으로도 버겁기는 마찬가지다. 통장 잔고가 조금은 더 ‘넉넉한’ 정도라면 모를까, 속된 말로 로또 벼락이라도 맞으면 모를까, ‘부자’란 말은 그저 남의 일인 게 분명하다. 그러다보니 ‘부자가 되는 가장 간단하고 효율적인 방법’을 일러준다던 이 책의 소개 글을 읽으면서도 선선히 마음이 기울지 않았다. 심지어 대한민국 상위 0.01%가 찾는 행운의 여신이자 해외에서 선출간된 최초의 자기계발서라는 표현조차 거창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정말 이 책을 읽고 나면 돈에 대한 불안이 사라질 수 있을까, 그저 작은 습관만으로도 부와 행운을 누릴 수 있을까. 무엇이 그토록 많은 해외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걸까. 그렇게 의구심만큼이나 강렬한 호기심이 나를 이 책으로 이끌었다.

 

 

 

 

 

 

‘있음’에 주의를 기울일 때 당신을 둘러싼 세계는 다르게 인식될 거예요

 

 

   책을 읽기 전에 『더 해빙』의 공동 저자인 이서윤, 그녀의 독특한 이력이 눈길을 끈다. 그녀는 사주와 관상에 능했던 할머니의 발견으로 일곱 살 때 운명학에 입문했다고 한다. 이후 주역과 명리학, 자미두수, 점성학 등 동서양의 운명학을 빠짐없이 익힌 그녀는 10만 명의 데이터를 시계열적으로 분석하여 부의 비밀에 주목했고, 이는 소문으로 퍼져 이미 고등학생 때부터 자신을 찾아오는 부자들의 자문에 응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렇게 연세대 경영학과와 서울대 행정대학원에 진학해 세상에 필요한 공부를 하고, 미국과 유럽 등지를 오가며 세계 각지의 운명학 대가들과 교류하면서 내공의 깊이를 더한 그녀는 깊은 통찰력과 혜안을 바탕으로 대기업의 오너와 주요 경영인, 대형 투자자들이 앞다퉈 자문을 구하는 ‘부자들의 구루’가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은 또 다른 저자이자 전직 기자 출신인 홍주연이 서윤을 만나 여러 차례 인터뷰를 하면서 부와 행운의 비밀을 배워가는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을까요?” 수많은 사람들이 서윤을 만난다면 가장 묻고 싶고 또 가장 듣고 싶은 대답이 아닐까. 숨을 죽이고 듣고 있는 홍 기자에게 서윤은 “Having”이라고 말한다. 서윤이 말하는 Having이란, 지금 여기에서 ‘있음’에 주목하는 마음가짐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느끼고 집중해야 할 것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바로 이 순간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흔히 쪼들린다거나 돈이 없다고 투덜댄다. 누가 봐도 괜찮은 중산층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돈은 늘 부족하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서윤은 ‘없음’의 렌즈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있음’에 초점을 맞추고 바라보라고 말한다. 그렇게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과 돈을 쓰는 순간에도 내가 이 물건을 살 수 는 돈을 ‘가지고 있음’에 감사할 줄 안다면 부는 저절로 다가올 것이라고 말이다.

 

 

 

“우리는 세상의 어떤 것도 있는 그대로 인식할 수 없어요. 그저 주의를 기울이는 것에 따라 세상을 인식하죠. 무언가를 원해본 적 있으시죠? 하얀색 운동화를 예로 들어보죠. 갑자기 온 세상에 하얀 운동화만 보일 거예요. 마찬가지로 ‘있음’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홍 기자님을 둘러싼 세계는 다르게 인식될 거예요. ‘없음’의 세상에서 ‘있음’의 세상으로요. 그 감정의 파장이 홍 기자님의 세상을 바꿔가죠.” / 53p

 

 

“진짜 부자는 돈을 쓰면서 그것을 기쁨으로 누릴 줄 알죠. 지금 주머니에 얼마가 있는지는 중요치 않아요. 돈을 쓰는 그 순간 Having을 하는 것이 핵심이에요. 그 감정 에너지로 돈을 끌어당기거든요. 아무리 작은 액수도 상관없어요. Having은 단돈 1달러라도 ‘지금 나에게 돈이 있다’는 것에 집중하는 데서 시작해요. 그 감정이 커져갈수록 돈을 벌 수 있는 내 능력에 감사하게 되죠. 돈을 벌어다 준 세상에게도 감사하게 되고요. 그렇게 더 큰돈이 돌아올 것을 아는 것, 그것이 진짜 부자의 마음이에요.” / 94p

 

 

“회장님, 큰 성공을 거두게 된 비결이 무엇입니까?”“하늘이 주는 세 가지 은혜가 있었습니다. 가난한 것, 허약한 것, 못 배운 것이 그것이지요. 그 은혜 덕분에 성공할 수 있었어요.”

“네? 하늘의 은혜라니요? 그건 모두 불행 아닌가요?”

“가난함 덕택에 성실함의 중요성을 일찍 깨달았어요. 허약하게 태어나서 건강의 소중함을 알고 몸을 아낄 수 있었고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중퇴했기 때문에 항상 배움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남들이 불행하다고 여기는 환경에서도 마쓰시다는 Having을 마음에 품었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 집중했고, 그것의 긍정적인 면을 보았다. / 96p

 

 

 

 

 

 

   책 속에는 Having을 실천하는 몇 가지 방법들을 소개되어 있다. 그 중 우리가 쉽게 해볼 수 있음직한 것이 ‘Having 모션’, ‘Having 노트’다. Having 모션은 일종의 신호등과 같다. 어떤 물건을 사고자 할 때 초록불(자연스러움, 편안함)을 느끼면 그대로 돈을 쓰고 빨간불(긴장, 불편함, 불안, 걱정)을 발견하면 행동을 멈추는 것이다. Having 노트는 ‘나는 가지고 있다(I have~)’로 지금 자신에게 있는 것을 적고 ‘나는 느낀다(I feel~)’로 자신의 감정을 일기처럼 써보는 것이다. 문장을 단순할수록 좋고 감사나 감탄의 표현을 덧붙여보기를 권한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써야 한다는 의무감에 시달리지 않게 한 주에 3, 4회 써볼 것을 제안한다. 점을 찍은 뒤 그것을 연결하면 전체의 흐름을 볼 수 있듯이 서윤은 이렇게 Having 노트를 씀으로써 하나씩 기록하다 보면 내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파악이 될 거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사람은 누구나 인생에서 2~5번 정도 퀀텀 점프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나게 되는데, 이 시기를 알고 활용해 부자가 되는 사람은 전체의 3%에 불과하다고 한다. 나머지는 그것이 기회인지도 모르고 지나쳐 버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Having 노트를 쓰다보면 나에게 찾아오는 퀀텀 점프의 기회와 좋은 흐름을 포착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잘 활용해볼 것을 추천한다.

 

 

 

“원래 큰돈이 들어오기 전에 돈의 흐름이 잠깐 막히곤 하죠. 많은 차량이 좁은 터널을 들어가기에 앞서 잠시 길이 막히는 병목현상과 유사해요. 그래서 답답하게 느껴지기 쉬워요. 하지만 이 기간을 잘 보내야 터널을 지난 뒤 몇 배의 돈을 더 벌 수 있어요. 기다리는 동안 Having을 잘 하면 그릇을 넘치게 채울 수 있겠지만, 아니면 절반 정도 채우는 것에 그칠 거예요.” / 152p

 

 

“우리의 미래는 밀가루 반죽과 같아요. 다양한 가능성으로 존재하죠. 우리가 관찰하고 인식하고 느끼는 에너지가 반죽의 모양을 형성하는 거예요. 그리고 완성된 반죽이 굳으면 우리 앞의 현실이 되죠. 다시 말해 쿠키를 어떤 모양으로 빚고 구워낼지는 우리 손에 달려 있다는 말이에요.” / 157p

 

 

“마음의 그릇도 마찬가지예요. 물컵이 갈팡질팡 흔들리는데 재물이 온전히 담겨 있을 리 없죠. 마음이 편안할 때 그 안의 물도 차분하게 머무르는 법이에요. 제가 만난 수많은 부자들은 대부분 돈에 대해 편안한 마음가짐을 유지하고 있었어요. 부자여서 마음이 편안한 것이 아니라 돈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안한 마음이 그들을 부자로 이끌었죠.” / 186p

 

 

 

 

  이렇게 『더 해빙』을 읽다보면 결국 부와 행운을 끌어들이는 가장 큰 힘은 ‘마음가짐’이라는 게 선명해진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 그 자체에 집중하고, 지금 흔들린다 해도 불안을 목적지에 도착하는 과정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영혼이 이끄는 대로 편안함을 따라 행동하다보면 부와 행운이 자연스럽게 다가오리라는 믿음이다. 더불어 자신의 잠재력을 마음대로 재단하거나, 평생 얼마를 벌 수 있을 것인지 미리 한계를 긋지 않는 자세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없음’이 아닌 ‘있음’에 주목하기, 일단 나는 거기서부터 출발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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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아내_ 누구도 알지 못하지만, 누구나 겪고 있는 | 나의 서재 2020-03-10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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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조용한 아내

A.S.A. 해리 저/박현주 역
엘릭시르 | 2020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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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한 ‘나를 찾아줘’와 대척점에 설 수 있는 아주 내밀하고도 절제된 심리 스릴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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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한 ‘나를 찾아줘’와 대척점에 설 수 있는

아주 내밀하고도 절제된 심리 스릴러다!

 

   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일, 가족, 사랑 혹은 수많은 것들 사이에서 수시로 열등감과 무력감을 느끼곤 한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극복 가능성을 채워줄 대상 혹은 상대를 찾아 끝없이 헤매는 존재들인지 모르겠다. 오스트리아의 정신의학자 아들러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행동과 발달을 결정하는 것은 인간존재에 보편적인 열등감·무력감과 이를 보상 또는 극복하려는 권력에의 의지, 즉 열등감에 대한 보상욕구’라고. 『조용한 아내』 속의 조디와 토드에겐 서로가 그런 존재였다. 명석하고 아름다우며 같이 있으면 안정감과 평온함을 느끼게 해주는 여자 조디, 상대가 편안한지 확인할 줄 아는 섬세한 배려를 지녔으면서도 활력으로 가득한 남자 토드는 각자가 지닌 불완전한 면모들을 상대로 하여금 채울 수 있었기에 서로를 갈망했다. 하지만 욕망은 다른 욕망으로 곧잘 대체되기 마련이고, 비록 비루한 현실이라 하더라도 일상이 모두 무너지는 최악의 상황이 아니고서야 쉽게 전복되지 않는다. 여러 번에 걸친 토드의 외도로 이미 그들의 관계는 진즉에 무너졌어야 마땅하지만 관계는 유예되고 일상은 지속된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다.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했던 ‘안정’과 ‘평온’이 위협받게 된 지금, 조디는 자신의 것을 지켜야만 한다.

 

 

 

 

 

 

사랑과 결혼에 관한 우울한 심리학

 

 

   『조용한 아내』는 이십 년간 이어온 가정에 위기가 닥친 한 부부의 이야기를 다룬 스릴러다. 소설은 조디와 토드의 시점을 교차 서술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부부의 극명한 시각차와 내밀한 결혼 생활의 현실은 바로 이 구성 안에서 극의 묘미와 극적 긴장감을 높인다. 아들러 심리학 연구자이자 심리상담사인 조디는 친구들과 낚시 여행을 가겠다는 말로 불륜 상대와의 여행을 감추려는 토드를 통해 외도의 낌새를 눈치 채지만 토드는 이를 알 리가 없다. 이미 조디는 그의 여러 번에 걸친 외도를 눈감아 준 바가 있다. 심리상담가인 그녀의 분석에 따르면 토드는 과거에 알코올 의존자인 아버지와 학대받는 어머니 아래에서 자라나 ‘감정을 말하지 못하는 불능과 권위에 대한 혐오, 충동적인 모험심은 사업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그의 끝없는 외도는 깊이 자리잡은 열등감을 반영’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또 하나 그녀가 확실하게 아는 것 중에 하나는 가정이 그에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토드뿐 아니라 대부분의 남자에게 ‘가정은 외도를 화려하게 만드는 대척점’이 되고, 외도란 그 정의상 ‘비밀이고 일시적이며 아무것도 약속되지 않는 것이고, 장기적인 관계에서 나오는 복잡한 일들로 이어지지 않기에 매력적인 것’이라는 점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녀는 그의 거짓 여행이 이십 년간 유지해온 그들의 결혼 생활까지 무너뜨릴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른 말로 하자면, 자신의 삶은 이제 정점에 이르렀으며 이십 년간 지속된 토드 길버트와의 부부 생활로 천천히 침식당한 청춘의 탄력성이 붕괴의 마지막 단계에 다다랐다는 사실을 그녀는 깊이 깨닫지 못하고 있다. 자신이 누구인지, 자아를 어떻게 실현해야 하는지에 관한 개념이 본인의 생각보다 훨씬 불안정하고 취약하다는 것도 알지 못한다. 그녀에게서 살인자의 모습이 튀어나오기까지 앞으로 고작 몇 달의 시간이면 충분할 텐데도. / 10p

 

예전에 조디는 토드에 대해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는 나의 약점이야. 나는 그 사람한테 약하지.” 그녀는 이 말을 일종의 합리화로서 자기 자신에게, 그리고 친구들에게도 했다. 남자를 위해 자기의 모습을 변형하는 것은 이제 환영받는 일이 아니고, 현대 여성해방의 관점에선 관계를 유지하는 방식도 아니다. 사랑이라는 제단에 자기의 가치를 바디는 것은 더 이상 이데올로기로서 유효하지 않다. 그럼에도, 도를 넘어선 관용이 널리 설파되지는 않을지언정, 두 사람이 일상적으로 몸을 맞대고 살며 생활의 전제로서 서로의 존재 방식을 호흡해야 한다면 필연적으로 어떤 유의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다. / 200p

 

 

 

 

 

 

   토드는 오랜 친구인 딘의 딸 나타샤와 아내인 조디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조디를 사랑한다. 오랫동안 건축 일에 골몰했던 그로서는 박사 학위에 석사 학위도 지닌 명석한 아내가 자랑스럽다. 언제든 그를 위해 정성껏 내어오는 요리와 분별력, 편안함과 위안을 제공하는 그녀는 심지어 여전히 아름답기까지 하다. 하지만 간혹 조디가 그보다 한 계층 위의 사람이라며 떠들기 좋아하는 친구들로부터 놀림감이 되는 것에 심기가 불편하다. 엄밀하게 계산된 대화를 나누며 적당하게 술을 마시고 저녁을 든 뒤, 불을 끄고 갓 세탁한 파자마를 갖춰 입은 채로 이불 속에 들어가는 이 비슷한 패턴에도 언제부턴가 흥미가 떨어졌다. 더욱 씁쓸한 것은 다른 부부들처럼 시끄럽게 말이 많고 싸우다 화해하기를 반복하기보다 항의를 하지도, 고함을 치지도 않는 그녀의 무거운 침묵이, 고집스러운 가식이, 그 안에 내재된 강인함이 그를 비집고 들어갈 틈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지만 나타샤는 달랐다. 우울증으로 한참 힘들었을 때, 그녀는 삶이라는 선물을 주었다. 한 남자를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감정 속에서 살게 했다.

 

 

 

소년 시절 그의 집에 평형감각이란 없었다. 항상 불확실한 동맹이 문제였다. 어머니는 그를 아버지에게서 보호했고, 아버지는 그가 어머니를 적대하도록 했으며, 그 자신도 혼란을 느끼고 충성이라는 감각을 변형시켰다. / 171p

 

 

어떤 사람들은 삶을 그렇게 보지 않는다. 가령, 조디는. 하지만 다른 사람의 규칙에 따라 나의 삶을 살 수는 없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디는 그를 높이 평가한다. 그의 성공, 그리고 약속을 실천하고 꿈의 영역을 걸어가는 그의 능력을 찬탄한다. 그는 조디에게 칭찬받는 게 좋다. 그녀의 칭찬은 몇 년간이나 그를 두둥실 떠오르게 하고 용기를 주었다. 또한 칭찬에는 그 자신을 약간 조절하고 궤도를 유지하게 해주는 엄격한 훈육 같은 것이 따라왔다. 그녀가 없었어도 그는 자기 길을 갈 수 있었을 테지만 그녀의 존재는 일종의 자동차 윤활유가 되어주었다. 모든 남자들이 그렇게 사랑받지는 않는다. 심지어 어머니의 사랑조차 타협의 결과였다. 어머니의 사랑은 죄책감으로 병들었고, 아버지에 대한 충성심으로 인해 다소 가로막히기도 했다. / 284p

 

 

 

 

 

 

   설사 외도를 한다 하더라도 이 평온한 관계가 유지만 된다면 조디는 토드를 용서할 생각이었다. 심지어 나타샤가 토드의 아이를 가지고, 그가 집을 나설 때만 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낙관적이었다. 하지만 전담 변호사를 통해 조디에게 퇴거 명령이 내려지자 그녀는 이 관계가 정말 끝에 다다랐음을 깨닫게 된다. 특히 그녀는 항상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여자, 잘 운영하는 여자였기에 그간 쌓아놓은 삶들이 한꺼번에 내려앉는 듯한 충격을 받는다. 결국 카드까지 모두 정지되고, 집에서 쫓겨날 지경에 이르러서야 그녀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나서야 할 때가 왔음을 실감한다.

 

 

 

   한편, 토드는 조디와 함께 살던 집을 나와 나타샤와의 결혼을 준비하는 중에도 나타샤와 함께하는 삶이 편안히 정착될지, 지금보다 안정되고 정돈될지, 무엇보다 조디와 함께하는 삶과 비슷할지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나타샤는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데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착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래저래 심란한 마음을 가누지 못하는 상태로 나타샤와의 약속을 깨고 일로나라는 웨이트리스를 만나러 가던 날,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과 마주하게 되는데…….

 

 

 

 

 

   『조용한 아내』를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나를 찾아줘』를 떠올리게 된다. ‘외도를 한 남편’과 ‘살해 혹은 남편을 곤경에 처하게 하는 아내’라는 가정 스릴러의 공식과 결을 같이 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나를 찾아줘』가 강렬한 서사와 엎치락뒤치락하는 긴장감 넘치는 전개로 매우 극적인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이라면, 상대적으로 『조용한 아내』는 내밀하고도 절제된 서사에 섬세한 문장, 심리학적인 접근으로 한 부부의 관계를 밀도 있게 접근한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있다. 그 누구도 부부의 속사정을 다 알지 못하지만, 누구나 겪고 있는 부부만의 고민들을 정밀하게 묘사하고 있는 점 역시 인상적이다. 여기에 불안정한 유년기의 가정환경이 한 개인의 자아 형성과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심도 있게 접근한다는 점에서도 이 책을 단순히 스릴러로 한정 짓기 아쉬운 이유다.

 

 

 

제러드: 그럼 당신이 처리해야 한다는 것, 그게 당신 일이라고 부모님이 당연히 여기는 것에 대해서는 어떤 기분이 들었습니까?

조디: 저로선 기분이 좋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네요. 전 그냥 어린애였는데 그런 권위와 책임을 갖게 되었으니까요. 그게 제게 힘을 주었던 것 같아요. 분명 저의 자아 이미지에 영향을 끼쳤을 거고, 물론 궁극적으로는 제 직업 선택에도 영향을 주었죠. 제가 라이언을 낫게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이요. / 275p

 

 

가운데 낀 딸로서 사는 기분, 부모님이 그녀에게는 별로 기대를 걸지 않았다는 사실, 그녀가 학교에서 우등생이 되고 전문가이자 주부로서 가치를 드러냄으로써 부모님에게 반항하려 한 것. 그녀에게 경쟁심이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여지도 없었다. 또한 그녀가 양쪽 부모에게서 하나씩 물려받은 기질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머니에게서는 가정을 사랑하는 기질. 그녀는 스스로 생각한 것보다도 더 원가족의 산물이었다. / 333p

 

 

 

   이 책이 영화화가 확정되면서 조디 역으로는 니콜 키드먼이 낙점되었다고 한다.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아름다우며 어딘지 비밀스러운 구석이 있는 조디 역으로 그녀는 무척 잘 어울리는 배우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강렬한 서사가 아닌 심리적인 내러티브를 강조한 이 소설이 어떻게 영화화될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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