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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 더 나은 인류는 가능하다 | 리뷰 2016-11-27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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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저/김수영 역
황금가지 | 2012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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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지금으로부터 1만 년 전까지만 해도 지구 상에는 호모 사피엔스뿐만 아니라 네안데르탈인, 호모 에렉투스 등 최소 여섯 종의 인간 종이 살고 있었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왜 지금은 지구 상에 호모 사피엔스 딱 한 종만이 남은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인간 종을 대량 학살하거나 절멸(genocide)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호모 사피엔스보다 진화된 인간 종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을까? 그럴 경우 인류는 어떤 선택을 할까? 이 질문에 답하는 소설이 공교롭게도 <사피엔스>가 이스라엘에서 처음 출간된 해와 같은 2011년에 나왔다. 일본을 대표하는 추리 소설가 다카노 가즈아키의 <제노사이드>다. 미국 대통령 그레고리 번즈는 국가 안보국으로부터 콩고의 열대 우림에서 전 인류를 멸망시킬 위험이 있는 신종 생물이 출현했다는 보고를 받는다. 번즈는 위험이 더 커기 전에 신종 생물을 절멸하기로 하고 콩고에 특별 요원을 파견한다. 한편 일본의 약학 대학원생 고가 겐토는 얼마 전 급사한 아버지가 남긴 편지를 받는다. 편지에 따르면 아버지는 오랫동안 남들 몰래 폐포 상피 세포 경화증이라는 불치병의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었다. 치료제를 개발하는 프로그램을 만든 존재가 호모 사피엔스의 지능을 한참 뛰어넘는 신종 생물이라는 것을 알고 겐토는 전율한다. 


권력욕에 사로잡혀서 모든 정치적 투쟁을 승리한 인간은 정상의 범위에서 이탈한 호전적인 자질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면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그런 인간을 리더로 선출하는 시스템이 국민의 뜻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뽑힌 사람이야말로 집단의 의사를 체현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전쟁의 심리학은 권력의 심리학이라고 바꾸는 것도 가능했다. (pp.255-6) 


이 소설은 일반적인 일본 소설에 비해 스케일이 크다. 배경이 일본, 미국, 아프리카 대륙을 아우르고 등장인물도 수십 명에 달해 할리우드 액션 영화나 첩보 영화를 보는 듯하다. 줄거리는 크게 사람을 죽이는 '살인(殺人)'과 사람을 살리는 '활인(活人)'으로 나눠서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훨씬 쉽다. 먼저 신종 생물을 절멸하라고 명령한 미국 대통령 번즈와 그를 둘러싼 관료 집단과 군산복합체, 이들의 지원을 받는 아프리카 내 무장 집단은 살인을 추구한다. 이들은 자기 이익을 챙기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범죄를 조장하거나 전쟁을 일으키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자신들보다 뛰어난 인간 종이 나타났다는 보고를 받자마자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 것은 본능적인 선택이었다. 


한편 아버지의 유언을 받들어 불치병 치료제를 개발하는 겐토와 그를 돕는 한국인 유학생 이정훈을 활인을 추구한다. 이들은 자기 목숨이 위험한 데도 불치병으로 고통받는 환자 수십만 명과 그들의 가족을 생각하며 치료제 개발에 힘쓴다. 불치병에 걸린 아들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특별 요원 제안을 받아들인 조너선 예거는 처음에는 살인을 추구했지만 나중에 활인으로 돌아선다. 신종 생물을 보자마자 살해하라는 명령을 따르지 않고 오히려 목숨을 걸고 그를 지키는 모습은 무자비한 군인보다 자애로운 아버지에 가깝다. 


다른 민족에 대한 차별 감정을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올리는 사람들은 무언가 계기가 주어지면 그들 안의 잔인한 감정이 폭발하여 살인자로 돌변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어떤 마물이 스며들어 있는 것일까? 살해당한 사람들의 공포와 아픔은 어떤 것일까? 일본인의 무서움을 일본인은 알지 못한다. (p.171) 


누구는 자기 목숨을 지키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누구는 자기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활인을 추구하는 이유는 뭘까. 저자는 인간에게 내재된 잔인한 감정을 든다. 겐토는 어린 시절 할아버지와 큰아버지가 중국인과 한국인을 차별하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란 적이 있다. 중국인이나 한국인을 사귄 적도 없고 미워할 만한 일을 당한 적도 없는데 왜 차별하냐고 물었다가 오히려 꾸지람만 들었다. 겐토는 나중에 일본인들이 관동 대지진 직후 '조센징이 방화를 저지르고 우물에 독을 탔다'와 같은 유언비어를 믿고 조선인 수천, 수만 명을 학살한 사실을 알고 오싹했다. 그 자리에 할아버지와 큰아버지가 있었다면 대량 학살에 가담했으리라 생각했다. 


저자는 "모든 생물 중에서 인간만 같은 종끼리 제노사이드를 행하는 유일한 동물"이며 "인간성이란 잔학성"이라고 단정한다. 호모 사피엔스가 일찍이 지구 상에 있던 다른 인간 종을 절멸하고 유일한 인간 종이 된 건 지성이 아니라 잔학성 때문이다. 인간의 잔학성은 단순히 범죄를 저지르고 전쟁을 일으키는 데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을 피부색이나 국적, 종교, 지역, 가족 같은 분류로 구분하고 배척하는 것도 인간의 잔학성에서 비롯된다. 정치, 종교, 이데올로기, 애국심 같은 단어들은 인간이 더 나은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잔학성을 은폐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군산 복합체의 중심에 있다 보면 지배 논리란 것이 굉장히 단순하다는 사실에 놀라고는 했다. '공포'였다. 전쟁으로 돈을 벌고 싶은 정책 결정자는 다른 나라의 위협을 과장하여 국민에게 크게 퍼뜨리기만 하면 됐다. 판단의 근거를 국가 기밀이란 벽으로 감춰 버리면 매스컴도 확인 없이 이 위협론에 올라탔다. 그저 그것만으로 막대한 자금이 국방 예산으로 흘러들어 군수 기업 경영자들에게 갈 대가가 순식간에 뛰어올랐다. 그리고 국민들에게 심어진 공포는 국경 밖으로 전파되어 다른 나라도 미국을 따라서 군사 예산을 늘렸다. 이런 국가 간의 긴장은 의심 때문에 현실에 비해 훨씬 고조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진짜 전쟁으로 이어져 특정인만 이득을 얻는 무한한 금맥이 형성됐다. 게다가 위정자로서는 외적을 만들면 덤으로 지지율이 오른다는 이익이 생겼다. (p.462) 


그렇다고 저자가 인간의 잔학성을 옹호하고 적자생존, 약육강식 같은 말로 합리화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인간의 잔학성을 극복해야 '더 나은 인류'가 출현한다고 본다. '더 나은 인류'는 신종 생물만이 아니다. 대학원생 겐토를 보자. 공부에 대한 열의도 높지 않고 장래 계획도 불확실하던 겐토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신종 생물과 협력해 불치병 치료제를 만드는 데 성공하면서 예전과 확연히 다른 '더 나은' 인간이 된다. 저자는 신종 생물이 나타나 현생 인류가 있는 지구를 전복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겐토처럼 될 수 있고,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 다카노 가즈아키도 보자. 저자는 소설 속에서 관동대지진이나 난징대학살을 언급하고 일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한국인과 중국인에 대한 혐오 감정을 언급해 일본 내에서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많은 독자들이 '반일 작가'라고 저자를 비난했지만, 저자는 일본인 또한 제노사이드의 혐의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전한다. 할아버지와 큰아버지로부터 꾸지람을 들으면서도 조선인을 '조센징'이라고 부르지 않고 '조선 반도의 사람들'이라고 고쳐 말했던 겐토처럼, 비난 여론에 굴하지 않고 자국의 과오를 언급한 저자의 용기가 대단하다. <13계단>만 읽었으면 몰랐을 저자의 다른 면모를 알게 되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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