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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통 추리소% | 기본 카테고리 2020-05-23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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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살인의 쌍곡선

니시무라 교타로 저/이연승 역
한스미디어 | 2020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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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미스터리의 정수!

일본의 국민 추리 소설가의 초기 작품!

진부한 수사처럼 보이지만 옮긴이도 언급했다시피 이렇게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위 문구에 해당되는 일본 작가는 니시무라 교타로”,

1971년에 출간된 추리 소설 제목은 <살인의 쌍곡선>이다.

 

먼저 작가소개 부터! 이번 소설로 처음 알게 된 '니시무라 교타로'1930년 생으로 1961년 데뷔작 <검은 기억>을 시작으로 20197월 현재까지 출간 작품 수가 총 622편에 달하는 작가이다. 올해 나이 아흔이 넘었는데 아직도 소설을 집필 중이다. 그는 도쿄의 대형 전파탑 스카이트리의 높이(634미터)를 넘기고 싶다는 욕심을 드러낸 바 있다. 건강이 허락한다면 10권 정도는 가뿐하게 더 쓰지 않을까 싶다. 60년간 600편 넘게 썼으니 평균 잡자면, 1년에 10, 거의 한 달에 한 편은 썼다는 뜻이다. 한 달에 소설 한 편을 썼다는 건 놀랍다. 물론 작품성이 받쳐주니까 국민 소설가라는 칭호도 얻었으리라 본다.

 

일본 추리 소설 작가로 히가시노 게이고가 가장 유명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의 데뷔가 85년이니 니시무라 교타로는 한참 전에 이미 활동중이었던 것이다. 일본소설을 그리 많이 읽지 않아서 몰랐겠지만 우리나라에 덜 알려진 이유도 있다. 옮긴이의 말 마지막에도 이렇게 나와 있다.

"현지에서의 명성과 비교하면 국내에는 아직 덜 알려진 감이 있지만, <살인의 쌍곡선> 출간을 계기로 국내에도 니시무라 교타로의 이름이 널리 알려져 그의 작품을 더 많이 접하고 소개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이제 소설로 들어가 보자.

출간 년도가 1971년이니 경찰이 범인을 쫓는데 CCTV나 휴대폰 위치 추적 같은 건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러니 클래식하다는 말이 어울린다. 사건의 단서를 토대로 흩어진 퍼즐을 맞추듯 범인의 행적을 따라가는 수밖에 없다. 이런 정통 추리소설은 작가가 던져주는 힌트로 독자가 형사가 되어 같이 추리해 나가는 재미를 맛볼 수 있다. 독자가 예상한 사람이 범인이 맞는지, 주어진 단서로 다음에 벌어질 일을 추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더구나 이 책의 배경이 70년대이기 때문에 젊은 독자들의 경우 당시 일본의 문화와 일본인의 사고방식등을 엿보는 맛도 있다.

 

이 소설은 쌍둥이를 메인 트릭으로 삼는다. 그래서 소설 시작전에 작가는 아래 내용을 당부했다.

 

 

일란성 쌍둥이 형제인 고시바 가쓰오와 고시바 도시오는 강도행각을 일삼는다. 너무 똑같이 생겼기 때문에 둘 중에 누가 범행을 저질렀는지 헷갈리게 만드는 작전이다. 피해를 본 가게 주인들의 진술로 만든 몽타쥬와 동일한 얼굴한 사람을 보고 범인이라고 지목했으나 똑같이 생긴 다른 한 명이 나타나자 누가 진범인지를 지목할 수가 없게 되었다. 게다가 범행당시 장갑을 꼈기 때문에 지문으로도 확인이 안 되었으며 들통나기 일보직전까지 가도 그들은 너무나 태연자약했다. 이들의 범행은 소설 전반부에 이미 드러나 버린다. 경찰은 그들 중 한 명이 범인이라는 증거를 찾기 위해 잠복하고, 왜 저렇게 당당한지 추리하는데 고심한다. 그러다가 그들이 저지른 일과 동일한 내용의 시나리오 같은 글이 경찰서로 도착하면서 경찰은 더욱 갈피를 잡지 못한다

 

또 다른 사건 하나. 관설장이라는 눈덮인 산속 별장같은 숙소에 초대장을 받은 젊은이 6(남자 넷, 여자 둘)이 모인다. 그런데 그곳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유사한 내용이 전개된다. 모인 사람들이 한 명씩 살해되고, 남은 사람들은 서로를 의심하게 된다. 모인 첫 날, 한 명이 목메달아 죽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 때만해도 살인이 아니라 자살인 것으로 보였으나 그 방안에서 이런 카드가 발견되는데, 이 모양은 여기서 벌어지는 살인의 중요한 힌트가 된다.

 

 

물론 그들은 저 동그라미가 무슨 의미인지 모르며 범인이 던져준 힌트라고는 감히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리고 한 명씩 살해당한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읽은 독자라면 그 소설과 유사한 점을 찾아보며 읽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가장 의심이 가는 인물은 산장 주인 하야카와였다. 왜냐하면 미심쩍은 무료 초대장을 보낸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외부로 연락을 취하거나 그곳에서 벗어냐면 되지 않냐고 생각하겠지만 그럴 수 없도록 차단당해 버렸다. 전화선은 잘렸으며 산에서 운행가능한 설상차는 엔진이 망가지고 스키도 부서진다. 또 눈이 계속 오락가락 하여 맨몸으로 도저히 내려갈 수 없는 상황이 된다. 그러므로 고스란히 죽음을 기다리는 꼴이 된다.

 

소설은 이렇게 두 축으로 교차 전개된다. 이 두 사건이 어떤 연관이 있다는 것인지 고개가 갸웃거려졌고 어느 지점에서 만나게 될 지 궁금했다. 혹시 접점이 있었는데 놓친 건 아닌지 뒤로 갈수록 집중해서 읽게 되었다. 특히 산장에서 살인이 벌어질 때마다 남은 사람들끼리 서로를 의심하게 되면서 대체 남은 자들 중 누가 범인일지 궁금했는데 마지막에는 7명 모두 죽는다. 여자 두 명과 주인 하야카와가 살아있을 때 신기하게 전화가 연결되서 경찰에 신고되어 피해자의 가족과 신문기자들까지 현장으로 오게 되지만 악천후 때문에 신고후 이틀이 지나고 그 사이 모두 죽는다.

 

이때까지도 쌍둥이 강도사건과 산장 살인사건의 접점은 없었다. 도대체 두 사건의 연결 고리는 무엇이며 살인을 저지른 범인의 의도가 무엇인걸까? 산장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죽고 나니 범인이 누구인지 보다는 살해의도가 더 궁금해졌다. 상상력 부족한 나로서는 여기까지 드러난 힌트로는 추리불가였다.

 

이 소설에서는 경찰의 추리력이 빛을 발한다. 요즘 소설이나 영화에 나오는 무능력한 경찰하고는 다르다. 산장에서 살해된 여성 한 명이 그 곳에서 겪은 일들을 밤새워 써서 일지처럼 남겨놓은 것을 토대로 하나하나 맞춰나간 것이다. 그 내용에서 사라진 몇몇 부분과 현장에 남겨진 수상한 증거들을 토대로. 그 중 살해 현장마다 남겨진 동그라미 그림과 초대받은 사람들의 출퇴근 동선이 지하철 노선도(아래 그림)와 같다는 것에서 실마리가 풀린다.

 

 

 

이 리뷰에서 범인이 누구인지, 그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를 밝히면 소설을 직접 읽어보려는 이들에게 김빠진 사이다를 마시라고 하는 꼴이니 그럴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소설이 재미있다는 것만은 장담한다. 직접 읽으면서 형사가 되어 추리해 보고 범인을 찾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클래식하게도 이 소설의 교훈이 있다.

타인의 어려움에 처했을 때 방관자가 되지 말자는 것이다.

 ** 위 리뷰는 네이버카페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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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신인작가~ | 기본 카테고리 2020-05-20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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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콘크리트

하승민 저
황금가지 | 2020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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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콘크리트>는 황금가지 출판사 이벤트에 당첨되어 읽게 된 책이다. 소설 소개에서 여자변호사가 주인공이고 이혼 후 아들과 귀향해서 범죄사건에 휘말리게 된다는 내용을 읽고 구미가 당겼다. 여자가 주인공이라는게 맘에 들었고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궁금증이 일었다. 미스터리, 스릴러, 거기에 반전까지 있다니!!

500쪽에 달하는 길이지만 흡입력이 강하다면 하루만에 읽어낼거라 장담하며 책을 펼쳤다. 첫 장면부터 사건현장이었다. 불에 탄 길림마트에서 발견된 엄지 손가락은 앞으로 벌어질 암울한 사건들의 서곡이었다. 배경이 되는 '안덕'이라는 도시의 분위기부터가 음울하다. 쇠락해가는 도농복합도시이며 안덕은 그곳의 질서로 움직이는 곳이었다. 물론 그 질서를 핸들링하는 자는 주인공과 관련이 있다.

도시의 분위기를 어둡게 만드는데 큰 몫을 담당하는 것은 낮은 회색빛 하늘이다. 햇빛 쨍한, 화사한 날은 묘사되지 않는다. 늘 흐리거나 춥다. 여름이 오면 따사로운 햇살이 비추지 않을까? 아니다. 여름엔 장마와 태풍이 해를 가린다. 날씨 때문에 흐리고 우울한 분위기가 연출된 것만은 아니다.

냄새때문이다. 범죄소설이니 피비린내가 아닐까? 예측되겠지만 그것보다 역한 냄새는 비릿한 바다냄새다.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바다 냄새는 독자들이 범인으로 의심할 여지를 물씬 주는 인숙에게서 풍기는 역한 바다냄새다. 흔히 시나 소설에서 묘사되는 바다 비린내의 느낌은 긍정적이지만 이 소설에서는 인숙이 바닷물을 온몸으로 뚝뚝 흘릴 때 그의 혐오스런 외모와 거구의 몸에서 역함이 같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처음 마트가 불탄 이후 횟집, 골프연습장, 인력사무소까지 불이 나고 실종된 그 업체의 주인들은 모두 안덕의 실세이자 주인공 세휘의 당숙인 장정호의 후배들이었다. 장정호는 세휘에게 이곳에서 자리를 잡게 도와주겠다며 경찰보다 빠르게 정보를 캐든 범인을 잡든 해보라고 한다.

변호사 세휘는 이혼 후 아들과 고향에 내려와 사무실을 냈지만 이방인에 가까운 신세로 수임을 맡게될리 만무했다. 당숙이 약속한 지원은 너무나 유혹적이었고 한편 허황돼 보였다. 정계진출이라니? 당장 아들과 치매인 친정엄마를 부양하는 것도 버거운데 어불성설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후 집안을 보살펴 준 사람은 당숙뿐이었다며 고마워해야 한다고 입이 닳도록 칭송하는 엄마의 말에 못이기는 척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늪인 줄 모르고 발을 집어넣은 것이었다. 아름다운 꽃을 꺾으려 들어갔으나 되돌아 나오려고 몸을 움직일수록 들어온 지점에서 멀어지는 꼴이 되었다.

두번째로 횟집이 불타고 거구의 범인이벌이는 행각과 소설의 분위는 잠시 책을 덮게 만들었다. 너무 음울해서 내 기분마저 한없이 지하로 꺼져들어가는,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기분이었다. 뭔가 밝은 걸 보고 듣고 싶었다. 말랑하고 달콤한 이야기가 없을까 하며 책장을 훑어보았다. 시집을 꺼내 읽다가 타샤튜터의 정원 그림을 보다가 프리드리히 굴다가 연주하는 바흐 프렐류드를 듣다가 드라마 부부의 세계 막방을 봤다. 아후!! 사이다 한 캔을 따서 벌컥벌컥 들이켰다. 책을 다시 폈지만 얼마 읽지 못하고 잠들었다가 오늘 다 읽게 되었다. 이틀 걸렸다.

이 소설은 방화 발생 때마다 현장에 남겨진 손가락으로 다음 사건의 희생자를 추리하게 하는 큰 얼개를 두고 사이사이에 등장인물들의 사연을 집어넣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전체적 분위기는 위에서 설명한 대로이다. 중반을 지나 후반으로 갈수록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빨라졌다. 이제 진범이 나올 때가 됐는데, 과연 내 예상이 맞을까? 범인의 의도도 내가 예측한대로일까? 궁금했다. 몇장 남겨두지 않고 드러난 범인의 정체는 반전이었고 깜짝 놀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웠던 점은 범인에 대한 서술의 부족이었고 범죄의 당위성에 대한 설득력도 좀 부족했다. 물론 그 인물이 갑자기 짜잔하고 나타난 건 아니다. 초반부터 등장했고 존재감은 미미했기에 범인의 후보에 들지 않았던 인물이었다.

진범의 각본과 연출대로 세휘가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세휘가 처음부터 알콜 중독으로 휘청거리던 것은 복선이었다. 술에 조종당하던 세휘는 이제 또다른 존재의 힘에 의해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당숙은 사라졌지만 세휘는 당숙이 했던 약속대로 살 수 있게 된 셈이다. 이것은 그에게 해피엔딩인가, 아닌가. 제목처럼 단단한 콘크리트 세계에 갇혀버린걸까?

이 소설을 쓴 하승민씨의 이력은 작가와는 가까워 보이지 않는다. 이번이 그의 첫 장편소설이라고 한다. 촘촘한 구성과 영화장면을 보는 듯한 서술,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심리 묘사 등은 첫 작품이라하기엔 감탄스럽다. 차기작을 준비중이라는데 어떤 내용일지 기다려진다. 이번보다는 조금 밝은 스릴러였이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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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보다 어른이 읽어야 할 소설 | 기본 카테고리 2020-05-19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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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데미안

헤르만 헤세 저/전영애 역
민음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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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이에,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을 다시 읽었다.

부끄럽다.

중학생에게 이 작품을 읽힌 적이 있다. 대체 중학교 2,3학년 아이들이 뭘 알았겠는가? 내가 무어라 지껄였는지 기억조차 가물하다. 그래선 안 되었다. 만약 지금, 중학생이 읽는다고 하면 말리겠다. 어느 정도의 독서력이 뒷받침 되지 않는 이상, 유튜브를 즐겨 보고 호흡이 긴 줄 글을 읽어내지 못하는 중학생이 과연 싱클레어에게 공감할 수 있을까? 힘들다고 본다. 고등학생이 되면, 웬만한 책을 읽어낸 후에 시도해보라고 하겠다.

 

그럼 나는? 지금 이 나이에? 헤세의 작품 세계가 이해되는가?

10여년 전보다는 나은 것 같다.

그 때 어떻게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이번에 읽으면서는 부끄럽고 놀라웠다. 스스로 작품 이해가 잘 되지도 않으면서 지도했던 일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렸고, 나이를 한참 먹은 이제야 이 소설에서 말하는 인간에 대한 서술에 공감되어 놀랐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허용된 것과 금지된 것을, 자기에게 금지된 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찾아야 하는 거야. 실제 금지된 일을 한 번도 하지 않았어도 대악당이 되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지. 그것은 단지 편의상의 문제에 불과해!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판정해 내는 데 안일한 사람은 있는 그대로의 금지된 것에 복종하고 말지. 그에게는 그것이 쉽거든. 그렇지만 어떤 사람들은 자기 내부에서 그 금지된 것을 스스로 느끼기도 한단 말이야. 그들에게 금지되어진 일들을 다른 사람들은 매일 할 수도 있고, 그들에게 허용되어진 일들이 다른 사람들에겐 금지되어 있는 일일 수도 있는 거야. 요컨대 사람은 각자 독자적이어야 하는 거지.

위는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하는 말이다. 그는 마치 선지자처럼, 예언자처럼 말하곤 하는데, 위 내용 전에 금기와 악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종국에는 인간의 정의로 마무리 된다.

 

나는 불과 몇 년전에 깨달은 인간의 개별성에 대한 인식을 데미안은 이미 십대에 알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작가 헤세의 인간관이 투영된 것이겠지만...

사람은 독자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인간 존재에 대해 얼마나 믿음이 있어야 가능한 것일까. 그의 생각과 행동이 어떠하든 인정한다는 뜻이고 그런 독자성을 가지기 위해서 또한 인간이란 얼마나 꼿꼿한 존재여야 한다는 말인가.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판정해 내는 데 안일한 사람은 있는 그대로의 금지된 것에 복종하고’ 만다는 이 말은 또 얼마나 예리한가. 자신을 모르고 스스로의 생각을 판별하지 못하는 인간은 복종하는 존재가 된다는 것. 자신을 제대로 볼 줄 아는 이가 얼마나 될 것이며 나는 나를 바로 보는 인간인지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인간에게 있어서 자기 자신에게로 다가서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은 없다는 것을!’ 이라는 문장은 또 어떤가. 자신을 제대로 안다고 자부할 수 있는 자는 몇이나 될까. 자신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보고 그것을 키우려고 노력하라는 자기계발서식 사탕 발림에 넘어가 스스로를 말캉하게 보기 시작하면 객관적인 태도와는 점점 멀어지게 된다. 합리화는 버릇이 되는 것이다. 자신에게 다가선다는 것은 스스로를 비판할 수 있느냐는 말이다.

 

나는 자신에게 얼마만큼 다가가 보았나? 스스로를 벼랑 끝까지 밀어붙여 본 적이 있었나? 발가벗은 자신과 대면한 적은 있었던가? 대부분 답하지 못하겠다. 언제나 변명과 핑계는 구차했고, 어느 지점에서 멈추었으며 적당한 선에서 스스로와 타협하며 살았다. 그것은 습관이 되었고, 언제부터인가는 미리 선을 그어두었다. 한계를 정해놓았으며 그 근처까지만 도달해도 으쓱해 했다. 나는 몰랐다. 자신에게로 다가서는 일이 이다지도 어렵다는 것을 모르고 아는 척하며 살았다. 나이 들어 는 것은 대충 눙치고 넘어가는 거다. 자신조차 제대로 모르면서 세상 일 다 아는 듯 그것을 마치 관조적 태도인양 미화했다. 지금이라도 자신을 다시, 바로 보기를 시도해야겠다.

 

소설 <데미안>은 싱클레어라는 소년의 성장일기라고 해서 십대가 읽는 소설로 한정해서는 안 된다. 십대들이 싱클레어의 고뇌를 보며 자신의 성장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다. 오히려 어른이 읽었을 때 자신을 살피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소설은 독자가 처한 상황과 나이에 따라 다르게 읽힌다고 했다. 그러므로 어릴 때 이 책을 읽었던 성인이라면 꼭 다시 읽어보면 좋겠다. 십대의 성장에 초점을 맞춘 소설이지만 그보다 몇 곱절을 더 산 나이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고전이라 부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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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런 할머니, 있다!! | 기본 카테고리 2020-05-09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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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의 할머니에게

윤성희,백수린,강화길,손보미,최은미,손원평 공저
다산책방 | 2020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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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북스 매3책 이벤트의 세번째 책 <나의 할머니에게>를 받고 표지를 보니 전형적인 구부정한 할머니의 뒷모습이었다. 초록무성한 나무를 좇아 표지 위쪽으로 올라가보니 작가 6명의 이름이 있었다.

 

이름만 들어본 작가, 책을 읽어본 작가, 이름 첨 본 작가까지. 이런 단편집의 경우 골라 읽는 맛이 있다. 누구의 소설을 먼저 읽을까 머리를 굴리며 표지를 넘기고 속지를 한장 넘기니 작가들의 싸인이 있다. 예상치 못한 이런!!

선물받은 기분이라 어깨가 으쓱해졌다. 싸인을 이쁘게 한 손보미 작가의 소설을 먼저 읽어야지~ 하면서 <위대한 유산>을 골랐다.

그런데...

아, 이건 뭔가?

스릴러? 아니 공포물에 가까운데...

할머니 소재의 소설집인데, 분명 할머니가 등장하는데, 왜 따뜻한 정과 사랑이 넘치지 않는거지?

분명 이 소설집, 다산북스 직원이 재미있게 읽었다며 강추했는데...

결말도 기분이 과히 좋지 않았다.

맛 모르는 아이스크림 골랐다가 실패한 기분이었다.

(이 소설이 나쁘단 뜻이 아니다. 그저 예상과 달라 놀랐단 뜻이다.)

 

설마 다른 소설도 이렇진 않겠지? 다음으로 는 제목이 맘에 드는 걸로 고르자!

강화길작가의 <선베드>를 두번째로 읽었다.

아! 이번에도...

할머니는 등장하지만 주인공이 아녔다.

할머니의 손녀인 주인공'나'는 어떤 사안이 거슬리면 앞뒤 안가리고 흥분하는 스타일이다. 내용은 치매로 요양원에 입원해있는 할머니에게 방문해서 벌어지는 이야기였다. 거기서도 급흥분했다가 후회를 하게 되고 유방암 걸린 친구 명주가 같이 간 덕분에 컨트롤 할 수있게 된다.

소설의 마지막에 나오는 주인공의 상념을 보면, 결국 사랑하는 그녀들(할머니와 명주)이 떠날까봐 두려웠던 것이었다.

 

 

"모두 내 탓이라고 느끼리라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대하는 것을 멈추지 못하리라는 것.

할머니, 이런 게 살아 있다는 거야?

두 사람의 어깨에 머물러 있던 햇빛이 서서히 사라졌다.

허리가 아팠다."

p.101

 ↑↑ 각 단편 안엔 화가 조이스 진의 그림이 들어있다.

겨우 두 편 읽고 실망하긴 이르다!

<아몬드>를 재미있게 읽었으니 손원평 작가의 <아리아드네 정원>을 읽어보자! 제목도 이쁘니까 내용도 그럴거야~

그것은, 또! 나의 오산이었다!!

이 소설에도 인자한 할머닌 나오지 않는다. 넘쳐나는 노인들을 등급 매겨 관리하는 사회,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그곳에서 노인들은 잉여다. 저출산으로 인한 노동력 부족으로 이민자를 적극 받아들였고 그들의 2세가 사회의 젊은 층이 되었지만 양극화가 고착화된 사회에서 그들에게 젊음이란 축복이 아니었다. 오래 사는 것이 결코 좋은것만은 아니며, 계급및 계층 갈등을 다루는 이 내용들은 비단 근미래가 아닌 현실의 문제이다. 앞으로 더 심화 고착화될 사회 문제, 내게도 닥칠 미래를 보는 것 같아 입맛이 씁쓸했다.

세번째 소설까지 실망아닌 실망을 하다보니 그냥 읽자! 싶었다. 최은미 작가의 <11월행>은 친정엄마와 나, 그리고 딸이 함께한 템플스테이를 소재로 했고, 윤성희 작가의 <어제 꾼 꿈>은 할머니가 되지 못한 주인공이 여동생의 손주들과 놀아주는 이야기다. 이 두 소설은 내게 그리 감흥을 주지 못했다.

6편의 소설을 골라읽는 재미는 이제 한 편을 남겨두었고 기대없이 백수린 작가의 <흑설탕 캔디>를 펼쳤다. 어쩌다보니 마지막에 읽게 된 소설이었는데, 아~~~ 이러려고!! 이 소설에서 감동받으라고~ 이게 딱 네 취향이지? 하고 숨겨두었던 맛을 마지막에 뙇! 내놓은 듯했다.

<흑설탕 캔디>의 주인공 할머니는 권나실 여사! 할머니의 유품에서 일기장을 꺼내 읽어본 손녀가 그 일기 내용을 토대로 상상해보는 내용이었다. 권나실 여사는 며느리가 교통사고로 죽어서 손주들 챙겨주러 아들네 집에 들어가 살게 되었고, 그 아들이 프랑스 파리에 주재원으로 파견되어 같이 떠나게 된다. 그 곳에서 약 1년 간 프랑스 할아버지 브뤼니에씨와 시간을 가지게 된 내용이 주를 이룬다. 굳이 '데이트'라고 명명하지 않는 이유는, 권나실 여사가 남편이 죽은 후 오롯이 여자로서 남자와 함께한 시간들이었기 때문이다.

말도 통하지 않는 이국남자와 피아노를 매개로 가까워지면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각설탕 탑을 쌓으며 아이처럼 좋아라하는 늙은 남자의 정수리 위로 쏟아지는 부드러운 햇살을 보며, 삶에 대한 갈망과 미래에 대한 기대가 차오르는, 그 감정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를 깨닫는 권나실 여사.

오래전, 스스로 너무 늙었다고 느꼈지만 사실은 아직 새파랗게 젊던 시절에 할머니는 늙는다는 게 몸과 마음이 같은 속도로 퇴화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몸이 굳는 속도에 따라 욕망이나 갈망도 퇴화하는, 하지만 할머니는 이제 알았다. 퇴화하는 것은 육체뿐이라는 사실을. 그런 생각을 할 때면 어김없이 인간이 평생 지은 죄를 벌하기 위해 신이 인간을 늙게 만든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마음은 펄떡펄떡 뛰는 욕망으로 가득 차 있는데 육신이 따라주지 않는 것만큼 무서운 형벌이 또 있을까?

 

 <흑설탕 캔디> p.67

 

 

노인들이 흔히 "마음만은 이팔 청춘"이라고 말하듯 몸은 예전처럼 자유자재로 쓸 수 없어도 마음은 젊음 그대로라고!

쩍쩍 갈라진 땅에 단비가 내려 메말라버린 줄 알았던 사랑의 감정이 되살아나지만 그것은 늙은이에게 형벌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

늙었으니 어쩔 수 없지, 현실을 직시해야지! 라며 몹시도 현실주의자인양 말하는 젊은이는 자신에게만은 청춘이 영원할 거라 착각하기 때문이다. 곧 <아리아드네 정원>속 미래처럼 F유닛에 내던져질지도 모르는데...

이 소설집을 읽다보니 그동안 나는 할머니라하면 무조건 희생하고 가족들에게 무한 애정을 베푸는 존재로만 그려질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말도 안되는 고정관념이다. 인간은 제각각 다르며 개성적 사고를 하며 살아간다고 여겼으면서 왜 할머니를 천편일률적인 존재로 규정했는지... 나는 내가 규정한 할머니가 될까? 아닐 것같다. <아리아드네 정원>의 지윤을 보며 저렇게 되는 건 아닐지 섬칫해놓고선 말이다.

예상보다 일찍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어 둘은 이별하게 되었고, 브뤼니에씨에게서 받은 작별의 말은 대멍사 두 개와 동사 한 개라고 일기에 적혀 있었다. 손녀는 그 세 단어를 상상해본다. 나도 상상해봤다. 이 소설은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주인공 프란체스카가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적어놓았던 것보다 자세하지 않아서 좋았다. 할머니의 일기를 토대로 손녀가 예상하는 내용이지만 독자에게 자신의 상상력을 펼쳐볼 여지를 남겨두었기 때문이다.

작가노트에서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작가는 슈만의 "크라이슬레이나" 16번을 많이 들었다고 했다. 미츠코 우치다의 연주를 찾아들었다. 클라라를 향한 슈만의 사랑이 격정적으로 때론 서정적으로 우치다의 섬세한 손길로 그려졌다. 이런 곡을 들으며 썼으니 사랑스런 나실이 탄생할 수밖에 없었겠다.

백수린 작가의 희망사항이 잘 전달되었다고 꼭!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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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담 솔직한 사노 요코의 에세이 | 기본 카테고리 2020-05-05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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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그래도 괜찮아

사노 요코 저/이지수 역
북로드 | 2020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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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괜찮아>“100만번 산 고양이의 작가 사노 요코의 에세이집이다. 작가는 이미 2010년에 작고했고, 이 책은 1986년에 일본에서 출간된 책인데 이제야 한국에서 번역되었다. 역자 이지수씨는 옮긴이의 말에서 34년이나 지난 책을 번역하는 것은 퍽 쓸쓸한 일이라고 밝혔다. 사노 요코가 행간마다 숨겨놓은 마음들이 얼마나 뜨겁고 또 차가웠을지 짐작만 하며 번역했다고 한다. 작가가 살아있었다면 짐작하지 않고 직접 메일을 보내 물어볼 수 있었을 테지만 말이다.

 

일본에서 86년에 나온 책이기에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아주 옛날 일들이다. 작가의 어렸을 적 이야기부터 학창시절, 신혼초, 아들이 어렸을 때의 이야기, 지인들과의 만남과 헤어짐 등등. 그래서 오늘날 우리의 사고로는 선뜻 이해하기 어려워 고개를 갸웃하게 할 내용도 있고, 작가의 엉뚱하고 쿨한 성격이 드러나는 에피소드들도 있고,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적 정서들도 읽을 수 있다. 그래서일까. 어떤 것들은 직접 겪었다기보다는 한 편의 콩트같이 황당하고 웃긴 내용들도 있었다.

 

깊은 내막을 설명하지 않는 이야기들은 그 사이에 숨은 사연들을 상상하기에 충분했다. 역자처럼 독자들도 짐작할 수밖에 없고, 작가의 못 다한 이야기들은 독자의 상상력에 따라 제각기 다른 전개로 펼쳐질 수도 있겠다. 이 책의 내용들은 극적이거나 감동을 쥐어짜지는 않는다. 하지만 작가의 담담한 어조가 편안하게 읽기 좋았다. 그동안 사노 요코의 에세이가 여러 권 나왔지만 이번 책은 오래 전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또 다른 맛이 있어서 작가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책 내용 중 재미있게 읽은 몇 가지를 소개한다.

 

사람을 죽이면 안 돼” - p.117

전철에서 술 취한 야쿠자처럼 보이는 남자가 말을 걸었을 때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지만 작가는 무서운 마음과 호기심이 동시에 일어 그 남자에게 대답을 해준다. “누님, 사람을 죽이면 안 돼.”라며 자신은 그랬고 이젠 조직을 떠났다고 했다. 얼굴에 난 종기 때문에 곧 죽을거라는 그 남자에게 작가는 부스럼이라며 별거 아니니 병원에 가보라고 알려준다. 그들의 대화는 그 남자가 내릴 때까지 이어졌고 작가는 그가 내릴 곳을 알려주며 병원에 꼭 가보라고 당부하며 끝이 났다. 취객과 얽히고 싶지 않아 승객 모두 외면하는 전철안의 풍경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작가의 일행조차 잡지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작가는 다가와 옆에 앉은 남자와 말을 섞었다. 작가로서의 호기심이 낯선 남자에 대한 경계심을 누른 것이다.

 

미소라 히바리를 위해서입니다” - p.83

작가는 친구와 같이 땅을 샀는데 사기를 당해 일억엔(30년도 더 전에 일억엔이라니!!)을 날렸고 그로 인해 이혼이 더 빨리 이루어졌다는 내용이다. 사실 땅을 소개하던 부동산 업자는 사기꾼 같은 구석이 분명 있었음에도 작가는 계약을 하게 되었다. 그 이유를 친구에게조차 부끄러워 말하지 않았지만 이 글의 마지막에 밝힌다.

그 사기꾼 같은 부동산 업자의 미소라 히바리(일본의 유명한 가수 겸 배우)에 대한 때문이었다고. 그 불그죽죽한 얼굴의 탁한 목소리 모두가 거짓이었다 해도, 어쩌면 그의 만은 진짜였을지 모른다고 지금도 나는 생각한다. 작가는 부동산 업자가 히바리를 위해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했다는 말을 들으며, 열일곱 살의 그가 열다섯 살의 히바리를 위해 자신의 일생을 결정했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사기 당하고 돈 날리고 이혼까지 하게 되었지만 저렇게 생각할 수 있다니 대범하다고 해야 할지 쿨하다고 해야 할지... 어쨌든 대단하다! 싶다.

 

아까운 짓을 했구먼” p.168

작가는 열두살 때 막내 여동생이 태어났다. 남동생과 여동생이 한 명씩 더 있었지만 그 늦둥이를 유독 좋아했고 잘 챙겼다고 한다. 기저귀 빨고 엎어 키우고 학교까지 빼먹고 동생 유치원 앞에서 기다리면서 거의 키우다시피 했건만, 그 여동생은 아버지부터 가족들이 모두 자신을 구박했다고 기억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큰언니인 작가도 무서워했다며 이렇게 말한다.

 

언니도 되게 심술궂었어. 난 어두운 방에 들어가면 언니 얼굴이 자잘한 알갱이 같은 점이 되어서 공중에 떠 있었어. 그게 엄청 무서운 표정이었거든. , 어릴 때 형제 노이로제에 걸려 있었던 것 같아.”

 

어이쿠야! 등에 붙이고 다닐 정도로 엎어키웠더니 어찌 안 좋은 기억만 가지고 있는지... 아들 둘을 연달아 잃고 마지막으로 딸을 낳았다니까 동네 아저씨가 작가의 아버지에게 아까운 짓을 했구먼.”이라고 말한 것 때문에 작가는 아버지가 동생을 귀여워하지 않을까봐 더 동생을 챙겼는데, 동생은 사랑받은 건 다 까먹고 안 좋은 기억만 가지고 있으니 참 어이없었을 것 같다. 그러니 이 글의 제목은 아마도 중의적인게 아닐까? 남존여비 사상이 심했던 시대에 저 대사와 기껏 사랑줬더니 돌아온 동생의 대꾸에 대한 기막힘, 두 가지가 다 들어있는 것 같다.

 

이 책의 마지막 에피소드에는 병든 지인에 대한 글이다.

 

고생이든 가난이든 겪으면 된다. 하지만 있어줬으면 한다. 있는 것만으로 우리는 살아올 수 있었다. 가장 곤란할 때 나를 구해준 것은 저축이 아니었다. “괜찮아라는, 그 집 마루에서 당신이 해준 말이었다. 미치코에게도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눈부신 인생의 사건은 없었을지 모른다.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한 일만 겪으며 살아왔다. “괜찮아가 일천만, 일억의 저금보다 우리를 살려왔다.

 

우리의 인생에 뭐 그리 눈부신 일만 있는 건 아니다. 그저 그런 날들로 세월의 더께가 쌓여간다. 한 번씩 닥쳐오는 인생의 큰 파도는 겪어내면 된다. 그리고 괜찮아라는 한마디면 살아갈 수 있다. 누구는 돈이 최고라 하고, 누구는 건물을 가져야 최고라고들 한다. 그러나 작가는 그저 있어주는 것,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다면 그것으로 되었다고 한다. 괜찮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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