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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굿바이 부동산

단이사오 저/박재현 역
사이몬북스 | 201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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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일본의 거품경제가 무너지기 전까지 어떻게 거품이 키워졌는지 그리고 그 거품이 왜 그리고 어떻게 무너질 수 밖에 없었는지를 센 마사오란 사람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노래하는 부동산황제라 불렸던 센 마사오는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무작정 상경해 유명 작곡가의 문하생으로 들어간다. 힘겨운 무명 시절을 보내던 그의 노래가 우연히 히트하게 되었을 때 그는 그렇게 번 돈으로 지방도시 근처의 임야를 구입한다.

이후 그는 그 임야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땅을 사고 거기에 건물을 지은 후 다시 그것을 담보로 부동산을 매입하는 식으로 자산을 늘려간다. 거품이 꺼지기 직전 전성기에 그의 자산 규모는 2-3000억엔에 달하게 된다.

그러나 그 자산의 시작은 어디까지나 처음에 자기돈으로 구입했던 임야에 불과하다. 인기가수가 된 그는 가수생활을 하면서 번돈을 부동산에 투입하고 꼬박꼬박 임대료가 들어오는 도심의 임대건물을 주로 매입하기는 하지만 그런 식으로는 자산을 불리는데 끌어댄 부채의 이자를 감당하는 정도이다. 부채의 총액은 한창 때 자산규모의 80%에 달했다.

그렇더라도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한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가 부동산을 매입하기 시작한 70년대에도 부동산 가격은 오르기만 햇고 나카소네 내각의 경기부양책과 80년대 후반의 거품경기 때도 부동산은 오르기만 했다.

그가 주로 임대용 건물을 매입했고 엔고를 이용해 하와이, 홍콩, 런던의 호텔, 리조트 등 수익형 부동산을 매입하기는 했지만 부채를 감당할 수익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어마어마한 부채를 감당하는 것은 부채보다 오르기만 하는 담보가치였다.

물론 아무리 부동산이 오르기만 하는 때라도 그런 막대한 부채를 아무나 끌어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부채를 조달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가수였기 때문이다. 가수생활을 하면서 소속사 경영진과 접촉하고 그 경영진들의 인맥을 따라 재계와 금융계의 거물들을 만날 수 있었고 유명가수라는 지명도는 그 자신이 인맥을 만드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는 그 인맥을 통해 매물에 대한 정보을 얻고 대출을 조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빚으로 쌓아올린 제국은 역시 정상적일 수는 없었다. 거품이 한창이던 80년대말부터 그의 빚의 연금술에 이상의 조짐이 나타난다. 주로 시중은행의 1금융권에서 조달되던 자금이 2금융권에서 나오기 시작한다. 은행들이 더 이상은 무리라고 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거품이 꺼졌을 때 그의 자산은 부채보다 가치가 떨어지게 되고 그의 부채는 불량채권으로 전락한다. 그리고 그에겐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된다.

이상이 이책의 내용이다. 거품이 만들어질 때면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이야기이다. 이책은 그 흔한 이야기를 한 사람의 사례에 집중해 자세히 보여주는데 목적이 있다. 어떻게 부동산에 눈을 뜨게 되고 인맥을 어떻게 만들고 활용했으며 융자를 어떻게 활용해 어떤 물건을 샀는가 등이 상세하게 다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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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는가? | 인문/사회/역사 2010-09-21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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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디지털 세계의 앨리스

이요훈 저
이파르 | 2010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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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인터넷과 모바일이 없으면 ‘평범한’ 하루를 보냈다고 느끼지 못하는 세대에 관한 책이다. 얼마전에 나온 ‘대한민국 컬처코드’란 책도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같은 주제를 다루는 두책은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두책 모두 인터넷과 모바일이 일상이 된 2000년대 세대의 행동양식을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 컬처코드’는 학자가 쓴 책답게 3인칭의 전지적 시점으로 2000년대를 회고한다. 그러나 이책의 시점은 1인칭이며 일관된 의도를 가지고 쓴 것이 아니라 블로그에 썼던 글들을 한권의 책으로 묶은 것이기 때문에 대상을 전체적으로 묶는 시선을 갖고 있지 않으며 자신의 경험을 기준으로 대상을 설명한다. 그러나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책은 일관된 저자의 견해 위에서 쓰여져 있다.

“TV에서만 보던 김주하 앵커는 ‘나 여기 못 있겠어요’하고 문 열고 나갔다가 ‘죄송, 실수였어요’하고 다시 문 열고 들어오기도 한다. 모 그룹 회장님은 자주 농담을 하고, 김연아 선수는 한번 들어오긴 했는데 별로 말은 안 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로봇은 계속 ;이.런.글.이.올.라.왔.습.니.다’하고 떠들고 한쪽에선 목소리 높이며 토론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와중에도 나는 ‘휴대폰이 보이지 않아요, 징징징’하면서 사람들에게 하소연하고 있고… 이것이 트위터다. 누구나 아무 때나 들어가서 노닥거릴 수 있는 4차원 카페. 사실 트위터의 팔로잉은 카페에 들어가 ‘아는 척’하는 것과 똑같다. 카페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들 대부분은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러다 팔로잉하면서 우리는 ‘아는 척’을 시작한다. 그러다 진짜 친해지기도 하고, 알기는 알아도 데면데면하게 지내는 사람도 있게 된다. 사실 카페 바깥의 세상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다른 이들과의 관계를 조금 더 좁혀졌다는 것 정도일까.”

인터넷이니 블로그니 트위터니 새로운 것이 나올 때마다 세상이 개벽을 한 것처럼 떠들어대지만 금방 시들해진다. 결국은 그것들은 도구일 뿐이고 그 도구를 쓰는 사람은 여전히 그대로이니 실제 변하는 것은 없다. 물론 그 도구가 새로운 만큼 달라지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이란 도구는 2002년 월드컵 응원을 낳았고 대통령까지 낳았으며 촛불집회를 키웠다. 우리는 그것을 ‘네티즌의 힘’이라 부른다. 그러나 “네티즌의 힘을 얘기하면 할수록, 그것의 힘이 커지면 커질수록 우리는 아주 단순한 사실 하나를 마주하게 된다. 자신이 어떤 억울한 일을 당해도 정치에 엄청나게 불만을 가지고 있어도 말도 안되는 사기를 당해도 그것을 해결해줄 시스템이 대한민국에는 없다는 지극히 당연하서 이젠 다들 문제로도 여기지 않는 사실을. 이들이 인터넷이란 공간에서 자신의 울분을 토해내고 자신의 생각을 밝히며 여론을 만들어가는 이유는 그런 이야기를 할 다른 시스템이 대한민국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네티즌의 힘이 사회를 이끄는 힘으로 등장한 것은 네트워크가 세계에서 제일 발달한 나라여서가 아니다. 이 사회가 그것을 풀어줄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

2000년대의 변화는 그런 시스템이 수단이 등장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 가를 보여주는 것일 뿐 인터넷의 힘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터넷 이전과 이후는 다를 것이 없는가?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오히려 저자는 우리는 인터넷과 모바일이 만든 ‘이상한 나라’에 살게된 앨리스 세대라고까지 말한다. 저자는 그 근거를 온라인 게임에서 찾는다.

“신전에 신이 거주하는 것이 아니라 신전을 통해 신이 나타난다.” 하이데거의 말이다. “그리스 로마의 많은 신들은 이제 사라지고 하나의 유일신이 들어선다. 그 유일신의 명령에는 형상을 세우지 말라는 말이 있었다. 교회는 새로운 세계를 건설한다. 그것은 신상이 배제된 대신 건축 그 자체의 틀 속에 신의 신성함을 경험하는 세계였다. 로마네스크 양식은 그 세계가 구축되기 위한 첫번째 시도였다. 그것은 소박한 양식이었고 그것은 엄격하고 딱딱한, 죽은 자를 기리는 납골당 같은 분위기의 건축들이었다. 편안함과 안락함을 찾아볼 수 없는 그저 ‘말씀이 육신이 되는 신비’의 인상을 준다는 목적만을 가지고 있었다. 고딕양식은 황폐하고 잔혹했던 환경의 한가운데서 만들어진 양식이었다. 신이 사는 하늘에 닿으려는 뾰족한 건물 안의 기둥과 기둥의 사이에는 수천 조각으로 나누어진 스테인드 글라스가 배치되었다.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매혹적이고 아름답게 변한 빛들의 잔치 속에서 사람들은 신의 황홀경, 천국의 세계를 맛보았다.”

언제나 예술은 광장의 예술이었고 언제나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꿈을 꾸게 한다는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예술을 광장에서 몰아냈고 광장에서 개인의 밀실로 쫓겨난 예술은 목적이 사라졌다. 단지 개인을 위한 오락거리이며 장식일 뿐 그 이상이 아니게 된 예술은 자본주의에 저항했다.

“낭만주의는 시민적 자본주의 세계, 즉 ‘환상을 상실한’ 세계에 대한, 그리고 사업과 이윤에 대한 열정적인 저항이었다. 그러나 예술을 위한 예술이란 구호는 결국 예술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패배의 선언에 다름 아니었다. 패배한 예술은 아무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을 그리며 시스템화된 미술 유통 사장의 구조 속으로 깊숙이 침잠했다. 그렇다고 사진과 영화가 새로운 세계를 열어보이지도 못했다. 그것은 사람들의 삶에 깊은 영향을 주고 있지만 결국” 밀실에서 시간 때우기를 위한 수단으로 생존할 뿐이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과 함께 예술은 변화의 시기를 맞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제 예술이 만드는 ‘환상’은 “만들어지거나 재현되는 것이 아니라 생성된다. 아무리 완벽한 가상이라고 해도 거기에는 전달하고 하는 어떤 원본이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예술은 이 원본의 전달자임을 항상 자임했다. 예술은 항상 수용자와 원본 사이의 매개자로 존재해왔다. 작품에 대한 질문은 작품이 나타내고자 하는 원본에 대한 질문이 된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의 이미지는 원본이 없다. 그 자체가 원본이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원본이 없는 예술을 저자는 게임이라 말한다. “영화나 사진은 수용자에게 그저 보여질 뿐이다. 그러나 게임의 공간은 수용자에게 직접 제시된다. 우리는 눈 앞에 있는 공간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 그것은 가상으로 존재하는 실상이다. 애초에 원본을 가지고 잇지 않으니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필요가 없고 중용한 것은 낯선 그 공간에 적응하기 위해 공간의 규칙을 배우는 것이다. 디지털 게임의 세계는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세계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이제 수용자의 마음은 작품 바깥에 놓인 것이 아니라 작품 안에 있게 된다.”

감상되는 것에서 수용자가 직접 작품 속에 뛰어들어 체험하는 것으로의 전환, 저자는 그것을 예술로 받아들일 수 잇다면 게임도 예술이 될 수 잇다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가 우리가 앨리스 세대라고 말하는 것은 바로 개임의 공간과 같은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 말하려는 것같다.

게임의 경험, 그 자체가 실상인 공간의 경험, 그것이 우리가 사는 이상한 나라의 실재가 아닐까? 라고 저자는 말하려는 것같다. 댓글을 달고 채팅을 하고 모두 상대방이 가정되는 행위이다. 그러나 그 상대방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실재의 인간이 아니라고 해서 문제가 될까? 물론 오프에서 만날 수 있고 인맥이 될 수 있으며 애인이 되기도 하는 관계로 발전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니터의 관계는 존재론적으로 오프와는 별개로 받아들여지고 거기에 그치는 것이 더 일반적이다. 그렇다면 그 모니터에만 존재하는 상대방의 존재론적 지위는 무엇인가? 게임의 경험과 다르다고 할 수 있는가? 저자가 말하려는 이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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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링컨 | 인문/사회/역사 2010-09-19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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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링컨

프레드 캐플런 저/허진 역
열림원 | 201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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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특이한 책이다. 링컨에 대한 전기는 수도 없이 나와있다. 그러나 이책 같은 전기는 나오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이책이 대상으로 하는 것은 링컨의 생애가 아니라 링컨이 읽고 썼던 종이들이다.

의아해질지도 모르겠다. 문인도 아니고 학자도 아니고 정치가에 대한 책이 그가 읽었던 그가 썼던 것에 관한 것이라니?

그러나 저자는 최소한 링컨에 관한한은 그런 책이 써질만한 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링컨의 힘은 그의 언어능력이었고 링컨의 정치적 힘은 그 언어로 말해지는 메시지에 신념때문이었기 때문이라 말한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링컨의 출신은 보잘 것없었다. 일자무식의 서부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가방끈이라고는 아예 없었던 아버지보다 나은 것이라고는 기초적인 산수와 읽기/쓰기를 가르치는 시골학교를 2-3년 다닌 것이 전부였던 링컨이었다. 부모도 이웃들도 링컨이 아버지와 달리 살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들 링컨이 아버지와 달라질 수단을 발견한 것은 짧은 가방끈이 준 능력. 읽고 쓰는 능력이었다.

어린 시절의 사르트르가 그랬듯이 어린 링컨은 언어의 매력에 빠져들었던 것같다. 어린 시절 학자집안인 외가(슈바이쳐는 가까운 친척이었다)에서 컸던 사르트르는 책에 포외된 환경에서 컸고 그런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책의 매력을 숨쉬며 자랐다. 그러나 책이 가리키는 세계가 아니라 책 자체에 빠져 성장한 후에도 실제 세계보다 말이 만든 세계에 갇혀 관념의 세계에 살았던 사르트르와 달리 링컨에게 책은 수단이었다. 아버지와는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길을 알려주는 수단이었다.

지금과 달리 책이 귀하던 시절이었기에 어린 시절 링컨이 구할 수 있었던 많지 않은 책들을 외울 정도로 읽었다. 저자는 그렇게 링컨이 구할 수 있었던 책들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자세히 분석하면서 링컨이 그책들에서 어떤 것을 배웠는가를 자세히 설명한다.

링컨이 읽었던 책들은 성경과 17세기 영국에서 학생들을 위한 독본으로 편집된 명문선들이었고 셰익스피어, 번즈, 바이런과 같은 작가의 작품들이었다. 저자는 링컨이 그런 책들을 통해 17세기 계몽주의의 사고방식을 링컨이 체화한 것으로 설명한다.

예를 들어 성경을 외우다시피 했지만 링컨은 계몽주의의 이신론을 평생의 신념으로 갖게 된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도 그랬고 당시 교양있는 계층에선 널리 받아들여졌던 종교관이었으니 이상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링컨의 어린 시절 청교도적인 환경에서 독학으로 그런 신념을 갖게 되었다는 것은 특기할만한 일이다. 링컨이 책을 통해 자신의 사고를 독자적으로 구축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링컨의 독자성은 그의 문체에도 나타난다고 저자는 말한다. 미국인의 언어로 미국인의 삶을 처음 다룬 문학가는 마크 트웨인이다. 마크 트웨인이 최초의 미국적 작가로 대접받는 것은 그가 미국인의 삶을 미국인의 구어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크 트웨인 이전에 미국인의 언어를 글로 구사한 사실상 최초의 작가는 링컨이었다.

저자는 문장가로서 링컨과 같은 대통령은 전무후무했다고 말한다. 링컨은 자신의 연설문은 스스로 작성했다. 물론 링컨처럼 글재주가 있었던 대통령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문이나 재선 취임연설문처럼 후대에 남겨지는 명문을 작성한 대통령은 없었다고 말한다.

링컨의 문체적 특징은 링컨이 어린 시절 이웃들이 구사하던 구어적 표현이 많고 그들의 언어적 습관처럼 간결하고 명료하다는 것이다.

그러한 문체는 링컨 스스로 만든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문체가 가능했던 것은 그가 독학을 했기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영국식의 정규교육을 받았다면 그런 문체가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자는 링컨의 그런 문체가 가능했던 이유를 그의 기질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라 암시한다. 저자는 링컨이 우울하고 사색적이었다고 말한다. 그런 기질 때문인지 링컨은 원고 없이 즉흥연설을 하지 못했고 (유머감각은 뛰어났지만) 감정적으로 감동시키는 재주는 없었다.

당시 휘그당의 스타였던 “클레이의 연설 양식은 정확한 단어 선택과 친밀함과 당당함의 조합을 바탕으로 했다. 그의 연설은 때로 오만하게 느껴졌고 구어나 일화 같은 것은 거의 없었다. 이러한 방식은 정확성과 형식성의 조합, 하원이나 상원과 같은 공식적인 단체 앞에서나 중요한 때에 하는 연설이라는 인상을 주는 것에 강점이 있었다. 클레이의 연설은 논리적 주장과 사실적 증거보다는 매끄러운 흐름과 수사적 구조에 의지했고 항상 권위 있는 사람의 주장이라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클레이는 링컨과 달리 합리적인 분석보다 달변을 더 중요시했고 공적 담화에 적합한 양식을 썼으며, 자신의 카리스마적인 존재와 극적 연설로 깊은 인상을 주었다. 클레이의 연설은 자신감을 과시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에 특히 효과적이엇고 과시적 표현은 그의 연설에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었다. 클레이는 설득을 할 때조차 명령조로 말했다. 미 공화국의 1인자였던 클레이는 자신의 우월함, 자석처럼 때어놓을 수 없는 자신의 존재와 말로 사람들을 이끌었다.”

그러나 링컨은 그가 존경했던 클레이와 정반대의 스타일이었다. 변호사로서 정치가로서 링컨의 호소력은 클레이와 달리 못 생겼다는, 키가 커서 오히려 우습게 보인다는 그렇기 때문에 친근하게 가깝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비존재감 때문이엇고 보통사람들과 같은 구어로 말하고 유머를 섞어 쉽게 말하고 일화를 섞어 말하는 스타일이었으며 논리로 상대를 설득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스타일은 정치는 설득과 이해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즉 언어의 힘으로 움직인다는 그리고 언어가 담는 진실의 힘이 통한다는 링컨의 신념과도 잘 어울리는 것이엇다. 그리고 그러한 언어의 힘에 대한 신념이 링컨의 정치적 힘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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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시대에 잘 오셨습니다 | 인문/사회/역사 2010-09-13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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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예고된 붕괴

드미트리 오를로프 저/이희재 역
궁리출판 | 2010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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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이 왜 붕괴했는가는 지금도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소련의 시스템이 더이상 지속가능할 수 없었기 때문에 무너졌다는데는 다들 동의한다.

단지 논란이 있는 부분은 고르바초프의 개혁이 왜 좌초했는가에 대한 것이다.

소련이 무너졌을 때 미국은 의기양양했다. '역사의 종말'이란 책까지 나오면서 이제 세계는 미국의 것인양 축배를 들었다. 그러나 이책의 저자는 과연 미국이 이긴 것인가? 라고 묻는다.

저자는 냉정의 두 라이벌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닮은 점이 많았다고 말한다.

고르바초프가 서툰 개혁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소련 시스템의 문제를 미국 역시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소련이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었던 것은 "기존의 자본을 유지하고 보수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생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소련의 문제는 많았다. 시스템의 재생산이 불가능하게 된 것은 경제학자들이 흔히 말하듯이 효율성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중앙에서 모든 것을 통제하는 계획경제는 자본재와 군수산업에는 효율적이었다. 그러나 소비재와 농업에는 재앙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경제의 비효율성이 소련을 무너트린 것은 아니라고 본다.

미국과 소련 모두 과학과 기술, 진보를 죽어라 믿었다. 모든 문제는 과학과 기술의 진보와 함께 해결된다는 낙관주의도 똑같았다. 그리고 이념적 경직성도 둘 다 똑같았다. 소련은 계획경제라는 이념 때문에 시장을 외면했고 미국은 반대로 시장이란 이념 때문에 계획이 더 효율적인 분야에도 시장을 고집했다.

예를 들어 소련 시절의 교육과 의료는 미국보다 더 질이 높았다. 미국은 의료까지 시장에 맡긴다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 덕분에 말도 안되는 의료제도를 가지고 있으며 시장적응자를 만든다는 교육의 목표는 스스로 생각할 줄 모르고 글조차 읽지 못하는 교육실패자들을 양산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소련의 시스템에 치명적이었던 것은 시장의 효율성과는 다른 문제였다고 본다. 적어도 소련의 시스템은 소비재와 생활수준은 낮았지만 기본생활은 보장이 되었었다. 그러나 그 낮은 수준의 보장조차 불가능해진 것이 문제였다는 것이다.

1980년대 초 소련은 막대한 재정적자와 무역적자 그리고 그 적자를 메우기 위해 빌린 외채에 시달리고 있었다. 결정타는 1980년대 저유가로 타격을 받고 적자에 시달리면서 석유생산에 투입할 재원 자체가 고갈되면서 1980년대 중반 석유생산고가 정점을 찍고 하강하면서 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때부터 시스템은 사실상 무너졌다. 그러나 관성에 의해 몇년 정도는 버틸 수 있었지만 소련이란 정치 시스템이 사라지면서 우리가 알듯 소련은 석기시대로 돌아갔다.

당시 소련의 참상은 '추운나라에서의 나날들 ( http://www.joara.com/view/book/bookPartList.html?book_code=328297&sl_category=novel )'이란 중편에 잘 그려지고 잇다. 이 소설에선 기본적인 생활보장이 되지 않을 때 사람들이 생존에 필요한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어떻게 변해가는가,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마피아가 등장하게 되는가를 설득력있게 그려나간다.

저자는 미국 역시 그런 붕괴를 겪게 될 것이라 본다. 미국의 문제는 소련과 마찬가지로 석유와 다른 천연자원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낭비구조라고 말한다.

미국의 쌍둥이 적자는 80년대 소련의 상황과 미국의 상황이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은 싼값의 석유가 없으면 유지되지 않는 나라이다. 담배 하나 사러갈 때도 차가 필요한 나라에 석유를 구할 수 없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미국은 70년대 이후 석유의 절대다수를 수입하고 잇다. 그러나 쌍둥이 적자의 문제가 터져 달러가 폭락하는 일이 일어난다면(저자는 상당히 개연성이 높다고 말한다) 석유를 더 이상 수입할 수 없게 될 것이고 미국의 시스템은 붕괴할 것이라 말한다. 미국 역시 소련 붕괴 이후의 상황과 다르지 않은 상황에 처할 것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그런 상황에서 미국인이 얼마나 잘 버틸 수 있을까 묻는다. 러시아인들보다 훨씬 못할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견해이다.

시스템이 무너졌을 때 장점은 단점이 되고 단점은 장점이 된다. 미국의 시장시스템은 분명 자원활용에 있어서 소련의 시스템보다 효율적이다. 그러나 그 효율성 때문에 시스템이 붕괴했을 때 미국은 소련보다 더 큰 재앙을 겪을 수 밖에 없다고 저자는 본다.

예를 들어보자. 9.11 사태가 일어났을 때 미국 제조업과 유통업은 심각한 문제를 겪었다. 도요타 시스템에 따라 필요한 재고만 가지고 있었던 것이 타격이었다. 9.11 사태로 국경의 물류속도가 정체되면서 효율적인 시스템이 비효율적인 시스템으로 바뀐 것이다.

붕괴가 일어났을 때 러시아인들은 바로 그 비효율성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계획경제의 비효율성 때문에 국영기업들은 자체적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데 익숙해있었다. 원료가 언제 올지 알 수 없으니 원료를 기회가 있을 때마다 확보하는 습관이 있었고 소비재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직원들을 위해 소비재를 쟁였었고 주택, 교육, 의료까지 회사가 책임졌었다. 갑자기 시스템이 붕괴했을 때 그런 자급자족적인 습관은 독립영지를 만드는데 도움이 되었다.

개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소련 시절 빵만은 국가가 죽을 힘을 다해 조달해주었다. 그러나 다른 모든 것은 부족했다. 러시아인들은 텃밭에서 먹을 것을 길러 조달하는데 익숙했다.

소련 시절 돈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없었으니까. 필요한 것이 있으면 돈이 아니라 인맥으로 구하는데 익숙했고 시스템이 붕괴한 이후에도 인맥에 기대 서로 필요한 것을 교환하는 석기시대가 왔을 때 더 잘 적응할 수 있었다. 마피아는 그런 인맥을 따라 발전한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시장에 의존하는 미국에서 시장시스템이 붕괴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것이 이책의 질문이다. 저자는 매우 비관적이다.

이상이 이책의 요지를 간추려 본 것이다. 이책의 내용은 얼마전 나왔던 '석유종말시계'란 책과 비슷한 문제를 다룬다. 석유가 구하기 어렵게 될 때 시스템이 어떻게 무너질 것인가?란 질문이다.

그러나 석유종말시계는 점진적일 것이란 전제에서 사회의 시스템이 적응해나갈 것이라 본다. 그러나 이책의 저자는 시스템은 적응하지 못하고 소련처럼 붕괴할 것이라 본다. 쌍둥이 적자라는 거품때문이다. 거품은 서서히 무너지지 않기 때문이다.

점진적 적응일지 붕괴일지 알 수 없다. 아니면 대체에너지가 개발되어 석유의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다면 두가지 시나리오 모두 맞지 않을 수도 잇다. 어느 것이 맞을지는 두고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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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낭비하지 마라 | 경제경영 2010-09-12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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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위기 경제학

누리엘 루비니, 스티븐 미흠 공저/허익준 역
청림출판 | 201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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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해 많은 책이 쏟아져 나왔다. 세계적인 경제학자들의 책도 적지 않다. 읽은 것만 해도 아타리, 실러, 아글리에타의 책들이 그중의 일부이다. 그러나 루비니의 책은 지금까지 나온 책들 중에서도 특별하다.

우선 루비니의 이책은 분량에서 다른 책들을 압도한다. 이책은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행과정에 대해 어느 책보다 폭넓게 다룬다.

물론 글로벌 금융위기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에 대해선 이제 상식에 가깝다. 이책의 원서가 나온 2009년에도 그것은 상식이었다. 그러나 이책 이전에 나온 책들은 아직 사건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시점이 아니었고 위기가 아직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이책이 갖는 시야의 폭을 가질 수는 없었다.

이책에서 저자들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어떻게 발생했고 정책당국의 대응은 어떠했으며 어떻게 정부의 대응에 의해 사태가 진정국면에 이르게 되었는가를 자세하게 그려나간다.

물론 저자가 다루는 내용은 이미 익숙한 것들이고 낯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3년간의 사태를 다시 정리해 개관한다는 점에서 이책은 지금까지 나온 책들 중 단연 최대의 폭을 자랑한다.

저자는 이번 위기가 과거의 금융위기들과 그 성격에서 전혀 다를 것이 없다고 말한다. 금융위기는 민스키가 말하듯 어디까지나 거품이 커지고 거품이 터지는 단순한 사이클을 따를 뿐이라는 것이다.

이번 위기가 달랐던 것은 세계화 때문에 전 세계의 금융시장이 하나로 묶여있었기 때문에 그 충격파가 어느 위기보다도 거대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번 위기가 대공황과 비교되는 것은 대공황 역시 세계화로 세계경제가 만들어져 있었던 시기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번 위기에선 대공황이 재현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정부들의 의지가 강력햇고 재빠르고 강력한 조치들이 있었기 때문에 대공황과 같은 사태로 발전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저자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일어났다고 말한다.

대공황의 충격은 너무나 거대했기 때문에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선 안된다는 합의가 쉽게 이루어졌고 그 합의에 따라 제도적 개혁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선 위기가 재빨리 진화되었기 때문에 그런 합의가 이루어지기 어렵게 되었다는 역설적인 상황이 만들어졌다.

저자는 이번 위기의 원인이었던 글로벌 불균형은 균형을 찾아 조정될 수 밖에 없을 것이고 그 결과 미국의 경제적 패권은 무너질 것이고 달러의 지위도 무너질 것으로 본다. 그러나 그 과정은 결코 순조롭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위기는 그 과정에서 계속 재발될 것이다.

문제는 지금이 아니면 앞으로 일어날 위기들의 충격파를 줄일 제도적 장치를 만들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몇가지 규제개혁이 필요하다고 본다. 우선 문제가 된 증권화 상품들의 표준안을 만들고 파생상품을 공개적인 거래소에 등록하는 장치와 같은 금융의 투명성 제고를 위한 개혁이 필요하며 이번과 같이 단기적 이익을 쫓는 현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금융업체의 보수체계를 회사의 장기적 이익에 연동되도록 만드는 조치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번 사태에서 중앙은행들이 망해야 할 회사들을 구제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 문어발 불사(too interconnected to fail) 문제를 풀기 위해 글래스-스티컬 법과 같은 제도가 다시 부활되어 거대금융사들을 분할해 작게 만들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책은 지금까지 나온 어떤 책들보다 더 자세하게 이번 위기를 개관하고 있다. 후에 이번 위기에 대한 기본서적을 꼽는다면 이책이 포함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저자의 목적은 경제사를 쓰는 것에 있지는 않다. 저자의 목적은 위에서 요약한 개혁이 왜 필요한지를 말하기 위해 이번 위기가 왜 일어났는지를 설명하고 그런 사태가 재발하지 않기 위해선 어떤 개혁이 필요한지를 말하기 위해서 이책을 썼다. 저자는 대공황의 비극으로 만들어진 규제 시스템이 그후 80년의 안정을 제공했듯이 이번 위기는 그런 제도적 안정을 만들 기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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