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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근본주의의 파산 | 경제경영 2011-01-24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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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끝나지 않은 추락

조지프 E. 스티글리츠 저/장경덕 역
21세기북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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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에서 저자는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 내용의 상당부분은 다른 책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가 왜 일어났는가, 그 경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향후 전망은 어떻게 되었는가? 등등이 이책의 내용이다.

그러면 이책의 내용은 지금까지 거물 경제학자들이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해 쓴 책들과 어떻게 다른가? 사실 상당부분은 겹친다. 그 겹치는 내용은 그리 새로울 것이 없는데다 깊이 있는 내용도 아니다. 동료학자들을 위해 쓴 것이 아니라 일반인을 대상으로 썼기 때문이다.

이책의 가치는 깊이보다는 내용의 폭에 있다. 이책이 다루는 내용의 폭은 지금까지 나온 다른 책들보다 월등히 넓다.

예를 들어 다른 책들은 이번 위기 자체에 초점을 맞추며 좀더 거슬러 올라가도 닷컴 버블 이후 연준의 정책까지 이지만 저자는 70년대 통화주의의 등장과 신자유주의의 등장부터 이번 위기의 뿌리를 잡는다. 저자가 7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유는 이번 위기의 뿌리는 시장근본주의 때문이라 보기 때문이다. 흔히 신자유주의 또는 워싱턴 컨센서스가 세계경제의 교리가 된 이후 가장 큰 변화를 저자는 금융위기의 상시화라 보며 이번 위기는 그 절정이라 본다.

이번 위기는 시장근본주의의 파산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시장근본주의는 이번 위기로 지적으로 파산했다. 시장실패를 보완하기 위해 정부가 자본시장을 규제햇던 브레튼우즈 체제 하에선 금융위기가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 좋은 반증이라 말한다. 그 시절의 숨막히는 규제로 돌아가지는 않더라도 이제 규제를 절대악이라 말할 수는 없는 조건이 만들어졌고 금융규제 시스템을 제대로 만들 타이밍이라 저자는 말한다. 저자가 이책에서 말하고 싶어하는 것은 바로 규제 시스템의 구축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 위기와 같은 일은 다시 일어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이유는 금융규제의 정치경제학 때문이다.

“미국을 움직이는 실세들과 미국 대통령과의 관계를 구단주와 감독의 관계로 비유하곤 한다. 아시아의 정치지도자들 대부분은 정권을 잡으면 마치 새로운 구단주처럼 권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미국 대통령직은 구단주의 자리가 아니라 팀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한 감독과 같은 역할을 한다. 감독은 계약에 명시된 임기 동안 팀 성적을 올리는 것이 최대목표이지만 동시에 기득권을 잡고 있는 구단주의 입장을 헤아려야 한다.

이와 같이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국을 움직이는 실세들의 이해를 정책에 반영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미국 행정부의 현실이다. 즉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되건 월스트리트의 자본가들과 워싱턴 브레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점은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다.” (조명진)

저자가 우려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을 구체적으로 입안했던 것은 월 스트리트였다. 70년대 이후 규제완화로 월 스트리트는 가장 큰 혜택을 누렸으며 정치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이번 위기는 규제자가 피규제자에게 포획(capturee)되어 피규제자의 입맛에 맞게 시스템이 구축되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 저자는 말한다.

“그 동안 미국 행정부의 재무 관련 요직은 골드만삭스 출신들이 독식해왔다. 골드만삭스 출신 인사들을 보면 골드만삭스 회장을 역임한 루빈 재무장관과 볼튼 백악관 비서실장이 있다. 볼튼 비서실장은 골드만삭스의 CEO였던 행크 폴슨을 재무장관으로 부시 대통령에게 천거한 인물이다. 부시 행정부에서 국무차관을 역임한 로버트 졸릭은 골드만 삭스의 대표이사직을 맡았고 네오콘의 핵심 인물인 월 포비츠의 후임으로 2007년부터 세계은행 총재를 맡고 있다. “ (조명진)

피규제자가 규제자가 되는 시스템에서 과연 제대로 된 견제가 가능한가? 저자는 묻는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번 위기였다는 것이다. 규제자와 피규제자가 구분되지 않는 관계는 오바마 행정부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오바마 행정부는 금융위기의 책임자를 찾아내고 법정에 세우는 일에는 미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월스트리트를 길들일 필요성은 느끼지만 취임 이후 공언해온 금융 구조조정에는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다.” (조명진)

이번 위기를 넘기기 위해 미국정부는 수조달러를 월스트리트에 쏟아부었다. 구제금융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돈이 납세자의 이익을 위해서보다는 월스트리트의 이익을 위해 쓰여졋다는 것이 저자의 한탄이다. 월스트리트의 은행가들의 손실을 국민의 세금으로 보상해주는 어처구니없는 조치엿다는 것이다.

이번 위기로 미국식 자본주의는 세계적으로 신용을 완전히 잃었다. 그리고 이번 구제금융이 어떻게 쓰이는지 보면서 미국인들은 월스트리트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치게 되엇고 오바마 행정부 역시 신뢰를 잃었다.

저자는 이번 위기를 겪고 나서도 이런 위기가 재발하지 않도록 규제시스템은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라 전망한다. 이번 위기가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권력구조가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금융위기를 다룬 다른 책들과 이책의 큰 차이를 보이는 내용을 정리해보았다. 그 외에도 이책은 케인지언인 저자가 자신의 입장에서 주류 신고전주의학파의 시장근본주의와 그 영향을 받은 월스트리트와 월스트리트에 휘둘리는 워싱턴의 신자유주의자들을 비판하는 내용이 다른 축을 이룬다.

이책은 저자의 입장이 분명하기 때문에 쉽게 읽힌다 그리고 경제학 지식이 그리 많지 않더라도 대가가 쓴 책답게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쉽다는 점이 이책의 단점이기도 하다. 저자는 자신의 논점을 분명하고 단순하게 말들기기 위해 복잡한 현실을 과감하게 생략한다. 예를 들어 저자가 비판하는 워싱턴 컨센서스나 통화주의가 나올 수 밖에 없었던 배경이 있고 그 배경 위에서 이해해야만 저자가 말하는 시장과 규제의 균형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논점을 분명하고 쉽게 하기 위해 저자는 그런 복잡한 논리를 과감히 생략한다. 다시 말하자면 저자는 자신의 논적들을 지나치게 바보로 만든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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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월급의 상식 | 경제경영 2011-01-24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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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월급의 비밀

박유연 등저
카르페디엠 | 2011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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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이란 거창한 제목이 붙었지만 이책의 내용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소소한 상식들이다. 그러나 그 상식들은 힘이 세다.

이책이 다루는 내용들은 목차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맛벌이가 과연 유리한가? 왜 기사에 나오는 평균보다 내 월급은 턱도 없이 적은가? 월급은 성적순인가? 월급은 능력에 비례하나 연줄에 비례하나? 외모와 월급의 함수관계는? 임금피크제는 무엇인가? 등등

뻔히 아는 내용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어디선가 보았거나 읽었을 법한 내용들일 것이다. 이책의 내용은 그런 것들이다. 제목처럼 거창한 내용은 아니다. 그러나 알아두면 직장생활에 어딘가는 도움이 되고 잡담거리로도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가 감을 잡는데 도움이 되는 내용들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토막상식들이다. 그런 내용을 엮은 책이기 때문에 내용에 어떤 일관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급여와 관련된 여러가지 잡다한 상식을 한권으로 묶었다고 보면 된다.

그렇게 묶인 내용이기에 하나 하나의 항목을 깊게 파고 들지는 않는다. 한 항목에 4-5 페이지 정도가 할당되니 깊게 들어갈 수도 없다. 그러나 그 정도 지면이면 어느 정도 그 항목에 대해선 개괄을 할 수는 있는 분량이다. 실제 이책의 항목들은 제목에 내세운 사항들에 대해 짧은 지면에서 감을 잡을 수 있도록 상당히 요령있게 쓰여져 있다. 그러면서 난해하지 않게 쉽게 내용을 파악할 수 있고 읽는 재미를 주도록 잘 쓰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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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nxiety of Influence | 예술/문학/여행 2011-01-23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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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백석 평전

김영진 저
미다스북스(리틀미다스) | 2011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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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전이란 제목이 붙은 이책의 내용은 평전과는 거리가 멀다. 이책은 물론 백석이란 인간의 생애를 다루지만 이책의 관심은 백석이란 인간이 아니라 시인으로서 백석이며 백석이라는 시인이 만든 세계가 한국의 근대예술사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를 추적하는데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한다.

저자는 백석의 시가 강력한 영향력을 갖게 된 이유를 민족정신에서 찾는다. 김소월을 배출하기도 했던 평북 정주의 오산학교는 민족주의 교육의 산실이었다. 그 학교를 다닌 백석은 한민족으로서 자신을 자각하게 되었고 시를 쓰는 것을 민족운동으로서 의식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백석의 시는 얻은 것은 이념이요 잃은 것은 예술이라던 당시 사회주의 예술과는 달랐다. 백석은 민족은 그 언어에 살아있다고 생각햇으며 언어를 갈고 닦는 것이 민족을 살리는 길이라 생각했다고 저자는 본다.

“그 나라 말을 오해 보존하는 길은 오직 한 가지, 그 나라 문학을 높은 수준에 올리는 것이다.” 백석의 말이다.

백석은 한국어의 아름다움과 그 가능성을 자신의 시에 담는다는 사명감이 있었다. 그 좋은 예는 백석 시의 음악성이라 저자는 말한다. “바로 백석의 시는 시 그대로 노래하는 사실이다. 그래서 제자 강소천이 동요를 짖게 된 것이라는 점을 말씀해셨다. 백석의 시는 조선 말기의 판소리 어법과 맞는 형식이기도 하고 고려 말기에 존재한 외치는 소리 혹은 들판의 소리로도 불리는 사대부 집안의 한글시와도 유사하다고 했다.”

한국어의 강점을 살리는 시였기에 그리고 한국어의 매력을 발산하는 시였기에 백석의 시는 막강한 영향력이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그 언어의 마력은 다층적인 마력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백석은 시를 보는 사람들이 무지한 사람이든 지성인이든 그 시를 읽고 느끼는 사람들 모두를 만족시켰는데 1차원적으로 보면 그저 향토적이고 음식을 사랑한 인간적인 모습이 그려져서 좋아하는 것이고 2차원적인 해석을 할 수 잇는 사람들은 그 안에 표현된 인간을 관찰하고 감상할 수 있어서 기뻐하는 것이며 3차원적인 눈으로 시를 볼 수 잇는 사람들은 비유와 상징으로 가득 차 있는 백석 시에서 위로를 받는 것이다.”

그리고 백석 시의 그런 다층적 깊이가 그의 시가 해방 이후에도 시, 가요, 회화를 넘나들며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한 이유라 말한다.

한국어의 매력, 향토적 소재만을 다루었다면 1차원에 머물렀을 것이며 다른 예술가들에게 그렇게 강한 힘을 발휘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모더니즘 시의 대표적 시인이었던 김기림이 백석을 존경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상이 이책이 말하는 백석의 시세계를 요약해 본것이다. 그러나 실제 위에서 다룬 내용은 이책의 주 내용이 아니다. 이책의 주 내용은 그런 백석의 시세계가 작사가들의 가사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대중가요들의 가사와 백석의 시를 비교하며 보여주는 것, 근현대 시인들의 시와 백석의 시를 비교하는 것 등의 영향관계를 따지는데 거의 책의 반 이상이 할당된다.

백석과 한국 근현대 예술사가 더 어울리는 제목이다. 그러다보니 막상 백석의 예술 자체나 백석의 삶은 비중이 일천하다. 평전이라 고른 책에서 지루한 영향관계 고증을 왜 읽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평점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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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라는 공간 | 예술/문학/여행 2011-01-21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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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도쿄 카페여행 바이블

조성림,박용준 공저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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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퍼의 그림은 도회지의 고독과 불안을 그렸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렇게 평하는 사람은 고독은 나쁜 것이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고독은 쾌적할 수 잇다. 누구도 간섭하지 않고 간섭받지 않고. 호퍼 자신 함부로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않는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켰다. 호퍼의 그림에 불필요한 것은 없다. 그것이 가끔 공허하다는 말을 듣지만 공허한 실은 모든 것을 채우는 예감으로 가득하다.”

가장 미국적인 화가로 불리는 에드워드 하퍼에 대한 평이다. ‘Nighthwaks’는 하퍼를 말할 때 가장 흔하게 떠올리는 그림이다. 이 그림은 텅 빈 뉴욕의 거리를 배경으로 홀로 빛나는 바를 그린다. 등장인물은 4명. 바텐더와 연인 그리고 중절모를 눌러 쓰고 등을 보이는 남자. 그들 사이에는 어떤 관계도 없다. 그들 사이의 공간을 메우는 것은 가게의 조명뿐. 그 빛은 가게를 메우는데도 벅차다. 그 빛은 네 사람 사이의 공간을 채우는데도 힘에 겨워 어두운 거리를 비추기엔 역부족이다. 빛이 갇힌 그 공간은 텅 비었고 건조하다.

자신만의 공간에 갇힌 사람들. 빛이 모자란 하퍼의 세계. 바는 하퍼의 세계에 가장 잘 어울리는 공간이다. “도시에서 사람의 영혼은 돈도 물건도 아닌 마지막엔 같은 사람에 의해서 밖엔 위로를 받지 못한다.” 그러나 하퍼의 도시에선 기댈 사람이 없다. 하퍼의 도시는 혼자가 되어야 하는 공간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바는 특별한 공간이다. “미국의 바에는 오래 전부터 이런 얘기가 있다. 자살을 생각하는 남자가 마지막에 이야기 상대로 고르는 인간은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목사 또 하나는 바텐더” 바텐더는 손님의 이야기를 받아주며 무거운 마음을 받아낸다. “바의 카운터 판은 아주 두껍고 무겁다. 손님의 고독 미움 슬픔 괴로움 절망하는 영혼 그런 너무나 무거운 마음을 단단히 지탱하기 위해서이다.” 그렇기에 “바텐더는 아무리 괴로워도 그 얼굴을 손님에게 보여선 안된다 바란 손님이 비를 피하는 장소 우산을 내밀어야 할 바텐더가 우는 소릴 하면 어쩌냐. 바는 녹슬고 지친 손님의 마음을 빛나게 하기 위해 있다. 세상 모두가 손님의 적이라 해도 바텐더만은 마지막 한편이 되어야 한다.” (조 아라키)

빛이 모자란 도시에서 바는 사람을 빌릴 수 있는 섬이다. 사람을 빌리는 바에서 주인공은 손님을 상대할 줄 아는 바텐더이며 바텐더 이외의 다른 모든 것은 주변으로 물러나야 하며 어둡게 남아야 한다. 바에 비를 피해 온 손님을 받아주는 것은 바라는 공간이 아니라 바텐더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카페의 주인공은 공간이다. 카페에서 우리가 사는 것은 차도 음식도 아닌 공간 자체이다. 바가 사람을 빌려주는 접대업이라면 카페는 공간을 빌려주는 임대업이 본질이다. 그러므로 공간을 빌려주는 카페는 그 공간이 어떤 곳인가에 따라 좋은 카페와 그저그런 카페가 나뉜다. 그러면 우리가 카페에서 빌리는 공간은 어떤 공간인가?

“지유가오카의 한적한 분위기를 이끄는 일등 공신은 뭐니뭐니해도 그린 스트리트다. 지유가오카 역 남쪽 출구를 빠져나와 2분 남짓 걷다 보면 푸르른 녹음이 한껏 자태를 뽐내는 가로수길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이 그린 스트리트다. 아름다운 가로수들이 만드는 그늘 밑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을 쉽사리 만날 수 있다.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벤치 아래로 커피 한 잔을 들고 오면 이곳이 바로 노천카페, 또 유명 스위츠 숍에서 달콤한 디저트 하나 테이크아웃하면 바로 노천디저트카페가 되니 지유가오카는 동네 자체가 커다란 카페.

그러나 이런 분위기는 지유가오카 카페 문화 발전을 저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은 분명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일지도 모르겠으나 여성들이 열광하는 지역이라고 하기에는 분위기 좋은 카페가 상대적으로 굉장히 적다. 사실 봄이면 길가에 꽃이 피고 여름이면 가로수의 녹음이 짙어지며 가을이면 거리마다 단품이 넘실거리는 무료 노천카페가 있는데 굳이 답답한 실내에 앉아 잇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아마도 지유가오카에 주로 테이크아웃을 전문으로 하는 디저트 샵들이 많이 모인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거리 자체가 카페이기에 카페가 희귀한 곳. 저자가 생각하는 카페라는 공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도시의 모든 거리가 지유가오카 같을 수는 없다. 인사동에서도 쉬려면 카페를 찾고 찻집을 찾아 돈을 주고 쉬어야 하는 게 도시이고 공간이 사유화된 도시의 논리이다. 그런 도시에서 이상적인 카페는 어떤 곳인가, 저자는 이런 곳이라 말한다.

“내 또래 손님들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 사진을 찍어대던 첫 방문 때와는 달리 두 번째 고소앙과의 만남은 정취처럼 차분했다. 고즈넉한 다이쇼 시대 저택 그대로의 와관과 아담한 정원을 지나 들어서자 느껴지던 평온한 실내는 아직까지도 눈에 선하다. 평일, 그것도 월요일인 탓인지 관광객보다는 대부분 나이 지긋한 손님들이엇다. 모두들 누가 들을세라 조근조근 담소를 나눈다.

창가 옆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은 우리 이마 위로 신선한 바람이 기분 좋게 불어왔다. 갑자기 더워진 날씨가 무색하리만치 시원한 바람이. 평소 같았으면 사정없이 내리쬐는 도쿄의 오후 햇살에 눈을 찡긋거리느라 정신이 없었을 텐데. 신선한 바람 탓인지 고소앙의 커다란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마냥 기분 좋게만 느껴졌다.”

그 공간은 혼자 또는 나와 같이 온 누군가만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은 배경이어야만 한다. 그곳은 도시에서 물러나 쉬는 곳이며 무의미하게 시간을 낭비해도 좋은 장소이다.

“나는 모카 포트로 끊여 낸 커피와 바나나 2개가 총총 박힌 바나나케이크를 먹으며 천천히 시간을 즐겼다. 계속 흘러나오던 생소한 탱고 선율도 어느 새 익숙해져 모든 것이 편안했다. 누구 하나 나에게 신경 쓰는 이 없고 누구 하나 나에게 눈치 주는 이도 없었다. 모두 각자 자기 시간을 즐기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공간은 특별하다. 카페마다 자신만의 색이 있기 때문이다. “10평 남짓 되는 작은 공간은 정말 이름 그대로 방처럼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 카페는 운영하는 사람의 또 다른 방이라 생각한다는 이곳의 주인 사이토상의 말이 그대로 반영된 듯한 공간이다. 마치 옆집 언니네 놀러 온 듯한 착각이 들게 하는 아늑하고 작은 방이다.”

그러나 카페가 모두 같은 카페는 아니다. 저자가 찾는 카페는 그리 흔하지 않다. “가만 생각해보면 혼자 잇을 때, 애인과 함께, 친구와 함께 찾아가는 카페는 모두 다른 장소일 확률이 높다. 나는 주말을 제외하곤 거의 카페에 혼자 가곤 하는데 우리나라 카페에 가장 큰 불만은 바로 혼자 갈 만한 카페가 별로 없다는 것. 홍대 쪽의 몇몇 카페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여러 명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라 여자 혼자 가서 편안히 쉴 수 있는 공간은 그리 많지 않다.”

그렇기에 저자는 도시를 누비며 카페를 찾아 헤멘다. 이책은 저자가 꿈꾸는 그런 공간을 찾아 도쿄를 누빈 기록이다. 저자가 꿈꾸는 카페는 이런 곳이다. “전쟁터 같은 일상에서 고군분투하다 보면 가끔은 여자로서 ‘나’를 느끼는 순간이 절실해질 때가 있다. 내 취향대로 꾸며진 공간에서 좋은 음식을 먹으며 좋아하는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순간, 밑바닥을 쳤던 감성이 언제 그랬느냐는 듯 흠뻑 차올라 행복해지는 그런 순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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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기만의 경영학 | 경제경영 2011-01-18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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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CEO의 현실부정

리처드 테들로우 저/신상돈 역
아이비북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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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중반이었어요. 그 때는 목표도 없이 1년을 속절없이 보낸 후였지요. 고든 무어와 나는 내 사무실에서 우리 회사의 곤경에 대해 의논하고 있었습니다. 분위기는 침울했고…

나는 창밖으로 저 멀리 놀이공원에서 빙글빙글 도는 회전관람차를 바라봤어요. 그러고는 고든을 돌아보며 물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쫓겨나고 이사회가 새로운 CEO를 영입한다면 그는 뭘 할까요?” 고든은 주저없이 대답했어요. “메모리에서 손을 때라고 하겠지.”

나는 아득해지면서 그를 빤히 쳐다봤어요. 그러곤 말했죠. “그렇다면 당신과 내가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우리가 직접 그렇게 하면 안 될까요?””

우리가 아는 인텔이 태어난 순간이다. 1985년이면 IBM PC 덕분에 인텔은 CPU 시장의 강자가 되어 있었고 그 지위는 지금까지 이어질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호재에도 불구하고 인텔은 존폐의 위기에 있었다.

고품질 저가격을 내세운 일본업체들의 공세에 인텔의 메모리 부문은 벼랑 끝까지 몰려 있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밖에서 보기에는 인텔의 사정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떠오르는 CPU 시장의 지배자가 될 것이면서 왜 회사가 존폐 위기에 있는가? 그냥 메모리를 포기하면 되지 않는가?

그러나 안에서 본 세상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인텔은 메모리로 시작햇고 메모리는 그들의 정체성이었다. CPU는 어쩌다 팔리는 부수적인 제품일 뿐이었다. 회사의 핵심역량은 메모리 기술에서 나오기 때문에 메모리를 포기하면 회사의 미래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무어와 글로브의 대화는 불교의 선문답과 같다. 화두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한다. 다른 사람이 듣기에는 도대체 말이 안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두를 주고 받는 사람 사이에선 말이 된다. 한 방울만 떨어지면 넘치는 물동이 같은 상태에 있는 제자에게 물 한 방울을 더해 물이 넘치도록 하는 스승의 한 마디가 화두이다. 제자가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만이 던질 수 있는 말이다.

무어와 글로브가 대화를 하던 순간이 그렇게 물이 넘치기 직전의 순간이엇다. 그들은 인텔이 메모리 회사라고 믿어왔지만 몇 년동안 일본회사와의 경쟁에 밀리면서 과연 그럴까? 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을 것이다. 지긋지긋한 시장을 떠나 떠오르는 시장에 전념하면 안되나? 그러나 10여년을 버텨온 고정관념이 그런 질문에 반박하는 수십가지 이유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글로브가 무어에게 무심코 질문을 던졌을 때 그 고정관념의 합리화가 무너지려는 순간이 왔고 새로운 관점을 회사를 보는 순간이 불교식으로 말하면 깨달음의 순간이 온 것이다.

이상은 이 책의 인텔 챕터의 일부를 요약한 것이다. 무어와 글로브의 대화는 수많은 경영서적에서 나온다. 그러나 이책처럼 그 대화의 문맥과 그 대화가 나오게 된 심리적 역학을 자세하게 파고 드는 책은 없다. 바로 이런 디테일이 이책의 장점이다.

이책은 현실을 부정하는 자기기만, 특히 경영자들의 자기기만을 다룬다. 자기기만에 관한 책은 이책만이 아니다. 그리고 더 뛰어난 책도 얼마든지 있다. 예를 들어 작년에 번역된 짐 콜린스의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는 이책보다 더 뛰어나다.

이책의 저자는 경영사 학자이다. 그러나 경영사에서 대가로 불리는 챈들러와는 글쓰기의 스타일이 다르다. 챈들러는 경영교과서에 빠지지 않는 M형 조직 같은 개념들을 쏟아낸 학자이다. 그러나 그 개념들은 경영사의 풍부한 팩트와 함께 제시된다. 그의 책은 그렇기 때문에 역사의 이야기를 읽는 재미와 그 이야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개념을 이해하는 지적 즐거움을 모두 즐길 수 있는 드문 수작이다.

짐 콜린스의 책도 그러하다. 그는 자기기만으로 어떻게 위대한 기업이 무너지는가를 풍부한사례와 함께 제시하면서 구체적인 현실부정의 단계를 정식화해 보여준다.

이책이 다루는 내용은 짐 콜린스의 책과 그리 다르지 않다. 콜린스의 책처럼 성공한 기업이 어떻게 자기기만 (또는 콜린스 식으로는 오만)의 희생자가 되어 무너져 가는가 그리고 그런 자기기만 때문에 빠져든 위기에서 어떻게 정신을 차리고 빠져나오는가를 다룬다. 그러나 저자의 스타일은 팩트와 개념이 균형을 이루는 글쓰기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위에서 요약한 인텔의 사례와 같이 이책의 장점은 풍부한 디테일과 그 디테일을 드러내는 저자의 깊이 있는 분석력에 있다.

이책이 다루는 사례들은 대개 다른 책에서도 볼 수 잇는 사례들이다. 포드가 어떻게 GM에게 무너졌는가, 미쉐린이 어떻게 타이어 시장을 장악하게 되엇는가, A&P와 시어즈의 몰락, 위기관리의 교과서로 불리는 타이레놀 사건 등 경영서적을 꽤 본 사람이라면 처음 보는 케이스는 별로 없다.

그러나 위에서 본 인텔의 케이스처럼 이책은 다른 책에서는 만나기 힘든 디테일과 디테일에 대한 분석이 돋보이는 책이다. 경영자의 자기기만이란 주제에 관심이 잇다면 짐 콜린스의 책과 함께 읽어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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