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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조건 | 경제경영 2011-03-20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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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극한의 리더십

크리스 워너, 단 슈민케 공저/권오열 역
비전과리더십 | 2011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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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의 뿌리는 언제 어디서든 전쟁이었다. 귀족이 귀족일 수 있는 것은 귀족이 귀족의 자격을 갖는 것은 목숨의 대가였다. 남의 목숨을 요구할 수 있는 자는 언제나 자신의 목숨을 내거는 자이다. 자신의 목숨을 걸 때만이 남의 목숨을 내놓으라고 명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의 앞에 설 자격이 있는 자, 귀족은 전장에서 남의 앞에 서는 자들이 그 기원이었다.

가장 먼저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 자. 남보다 앞에 서서 죽음을 향해 돌진할 수 있는 자만이 남에게 목숨을 요구할 자격을 가졌다.

지금은 리더가 될 자격이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지지 않는다. 원칙적으로 누구든 리더가 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리고 리더가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세상도 아니다. 그러나 리더의 본질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

“리더십은 종종 불편하고 불쾌하다. 그것은 참을 수 없을 정도의 우울과 찰나의 영광으로 포장된 영광으로 포장된 위험하고도 고독한 역할이다. 때때로 리더십이 크나큰 만족감을 주며 삶을 풍요롭게 하는 여행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질은 그것을 스트레스와 피로로 점철된 고된 여행이자 심장마비의 지름길로 탈바꿈시킨다.”

“부도의 위험, 대단한 아이디어나 계획이 죽어나갈 때, 기대했던 승진이나 프로젝트가 물거품이 될때, 매출 목표가 바닥을 칠 때” 리더라면 벗어날 수 없는 실패의 두려움과 전장에서 겪어야 하는 죽음의 공포는 다르지 않다.

(이책에 인용된) 록히드마틴의 중역이 된 전직 해군장성은 이렇게 말한다. “전투에 참여한 사람은 이미 목숨을 내놓겠다는 약속을 한 겁니다. 내가 죽어야 하고 오늘이 그날이라면 그렇게 돼도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기업에서는 그렇지 않죠. 비즈니스 세계에서의 죽음은 자아의 죽음입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무엇보다 밤이나 낮이나 항상 자신이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이것이 그의 주된 일이다.” 예나 지금이나 남의 앞에 서는 자는 자격이 있어야 한다. 죽음을 받아들일 각오가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리더십에 관한 많은 책들이 전쟁사나 전략을 연구한다. 실패가 바로 죽음인 현장이기에 리더십의 본질이 극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그런 현장이 또 하나 있다고 말한다. “세계 최고봉을 향한 도전은 모든 리더가 직면하는 위험을 완벽히 파악할 수 있는 실험실이다. 이런 극한의 고도에서 성공이나 실패는 쉽게 측정되며 작은 실수 하나가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가른다. 우리는 고급 사무실을 벼랑 끝에 얼어붙은 눈 더미로 의자를 죽음의 지대로 그리고 당신의 유리로 둘러쳐진 회의실을 빙하로 둔갑시킬 것이다.”

군인이 언제든 죽을 각오를 해야 하듯, 히말라야 등반은 한 걸음 한 걸음이 죽음으로 가는 길이다. 사람들이 죽음의 공포에, 실패의 두려움에 얼어붙을 때 앞에 서서 죽음을, 실패를 인정하고 앞에 설 수 있는 자가 팀을 이끌 리더의 자격이 잇는 사람이라 저자들은 말한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앞장 설 때, 앞에 서서 걸음을 옮길 때 “고도가 높아질수록 더 멀리 볼 수 있다. 멀리 볼 수 있을 때 극복이 불가능해보였던 장대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오르막길이 아무리 험하고 위험하더라도 리더는 자신의 짐을 짊어지고 계속 올라갈 수 있다.”

그리고 멀리 보는 자로서 리더는 비전을 제시하는 자이다. 자신의 공포를 이겨낼, 자기 혼자 살려는 이기심을 누를 목표가 없는 팀은 마비된다.

“모든 장군과 함장들의 리더십 방식은 우리가 기업에서 만난 리더들보다 훨씬 더 열정을 중요시 했다. 군사훈련은 이 점을 분명히 한다. 곧 사기가 높은 군대는 그렇지 못한 군대보다 전투에서 더 많이 승리하며 때로 이것은 무기의 열세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 리더는 전투 전에 항상 병사의 사기를 점검한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이 군대를 지휘하든 산을 오르든 또는 팀을 이끌든 결정적인 요소는 바로 열정이다.”

리더는 팀원의 열정을 이끌어낼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이 땅에 사는 동안 뭔가 의미 잇는 것을 성취하고자 하는 인간의 내적인 욕망”을 끌어내야 한다.

히말라야 원정에서 팀에 문제가 일어나는 것은 원정이 끝나는 시점이 대부분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대부분의 원정팀은 올라갈 때가 아니라 내려가는 길에 문제가 생기죠.”
“하지만 우린 문제없잖아요. 의학상의 응급 상황이 두건 있었지만 모두 잘 처리되엇고요.”
“아녜요. 전 그 얘길 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 그룹에 대해 말하는 거지요. 좀 둘러보세요. 이건 더 이상 협력하고 도와주는 팀이 아니죠. 더 이상 열정도 없고요. 모두가 끼리끼리 파벌을 형성하고 온갖 것에 대해 불평과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하죠.”
그의 말이 옳았다. 이 그룹은 고효율팀에서 우리가 기업에서 흔히 목격하는 냉담하고 무관심한 분위기가 지배하는 팀으로 돌변했다. 도대체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대답은 간단하다. 이제 앞에는 통과해야 할 산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 앞에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 사라졌을 때 모든 팀원은 집단의 목표보다는 개인의 욕망을 앞세우고 본래의 이기적인 행동으로 돌아갔다.

어느 조직이든 협력을 위해 사람이 모인 것이다. 그러나 협력이란 희생을 요구한다. 어느 정도 희생할 것인가, 조직을 위해 어느 정도 이기심을 누를 것인가가 팀의 효율을 결정한다. “인간의 이기심은 더 위대한 열정이 이기적인 동기를 압도할 때만이 극복될 수 있다.” 자신보다 큰 무엇을 위해 일할 수 있다면 더 이상 이기심은 발동되지 않고 열정적이 된다. “많은 CEO들은 가장 암울한 상황에서도 그들의 회사가 살아 잇게 한 것은 바로 열정뿐이엇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동기부여 교육을 아무리 해봤자 직원들의 열정을 끌어낼 수는 없다. 열정을 끌어내는 것은 비전이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이책은 이런 식으로 히말라야 원정팀의 경험을 기업의 리더십과 비교하면서 리더십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집어나가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잇다. 앞에서 설명한 죽음을 수용하기, 비전 이외에도 오만, 영웅주의, 비겁함, 현실안주, 운 등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전체적으로 이책은 설득력이 대단하다. 저자들의 실제 등반경험과 기업을 상대로 한 컨설팅 경험이 잘 드러나 있고 실제 경험을 쓴 것이기에 생생한 이미지가 그려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생생함은 등반에 대해서만 그렇다. 등반경험의 교훈이 기업조직에 어떻게 적용되는가를 설명하는 부분은 일반론에 그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그런 결점에도 불구하고 등반경험의 생생한 이미지를 그리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이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그 이미지가 충분히 강렬하기 때문이며 이미지가 강렬하기에 자신의 현실에 적용해볼 기준이 되기 충분하기 때문이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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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스냅샷 | 인문/사회/역사 2011-03-18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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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한국학 그림과 만나다

정민.김동준 등저
태학사 | 2011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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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의 성격은 일종의 잡지라고 보면 된다. 비슷한 주제이지만 서로 논리적인 연결성은 없는 짧막한 글들을 모아 모자이크를 만드는 것이다.

이책에 실린 27편의 글은 필자도 다르고 소재도 모두 다르다. 그들을 하나의 책으로 묶어주는 것은 한국의 역사라는 울타리 외에는 없다.

잘 알려져있지만 내용을 아는 사람은 드문, 퇴계의 성학십도의 짧은 해설이 나오고, 거의 알려지지 않은 남명 조식의 도상이 소개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책의 아티클들이 그렇게 울트라 하드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절대 다수가 말랑말랑 소프트하다.

가령 다산이 그린 매조도가 왜 두점이 남아 있고 한 점에는 새가 두마리인데 왜 한 점에는 한 마리인가를 캐들어가는 아티클은 두마리가 그려진 잘 알려진 매조도는 시집가는 딸에게 준 것이고 한 마리가 그려진 매조도는 늙으막에 얻은 딸을 위해 그린 것이라는 것을 밝힌다. 그러나 그 딸과 생이별할 수 밖에 없었던 다산은 그 그림을 갖고 있을 수 없었고 지인에게 선물해 눈 앞에서 그림을 치울 수 밖에 없었다는 사연을 추적한다.

재미는 있지만 다산 정약용이란 거물의 사연이 아니라면 시시콜콜하다. 물론 그림에 그런 사연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으로도 꽤 의미가 있기는 하지만 좀스럽다고 까지 생각할 소재이다.

이책의 아티클들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대다수는 좀더 보편적인 내용을 다룬다. 고려시대 불화와 동시대 중국과 일본의 불화를 비교하는 아티클이나 정선의 금강산도를 읽어내리면서 당시 바위에 글을 새기는 관습의 권력론적 독해라든가, 영화 ‘왕의 남자’를 실제 역사와 비교하면서 비판적인 지식인으로서 조선시대 궁중광대를 읽는 아티클, 문중에 내려오는 기념화를 읽으면서 임진왜란 전후 조선의 전술이 어떻게 바뀌었는가를 보여주는 아티클 등은 보편적인 성격을 갖는다.

그러나 이책의 제목을 말해주는 성격의 아티클들은 보편적인 성격을 갖지만 좀더 사적인 레벨의 팩트를 다루는 아티클들이다. 책의 앞부분에 배치된 아티클들이 그런 성격을 잘 보여준다. 사대부들의 모임을 다룬 그림에서 당시 사대부들이 어떤 취미를 가졌었고 양반의 풍류라는 것이 실제 어떤 내용이었는가를 보여주는 몇 편의 글이 앞머리에 배치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어떤 ‘상업가’ 부인의 회갑연 기념사진을 파고 드는 글은 이책에 실린 아티클들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준다.

회갑연 기념사진이 다 그렇듯이 이 사진 역시 일가 사람을 모두 찍은 사진이다. 그러나 사진의 사람들은 ‘상업가’라는 말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한 가운데의 가장은 물론 뒷줄의 남자들도 관복을 입었고 여자들도 신분이 높다는 것을 나타내는 옷을 입었으며 하나 같이 용모가 번듯하다. 사농공상의 서열 바닥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이 글은 불일치를 파고 든다. 주인공의 가문을 추적하면서 가장 주인섭이 2품 가선대부까지 오른 고위관료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 고위관료가 상업가? 그런데 실제 주인공은 종로 요지에서 지전, 즉 종이가게를 운영했다.

이런 불일치가 어떻게 일어났는가를 추적하면서 저자는 구한말 몰락해가는 국권을 읽는다. 2품 고위직을 지낸 사람까지 자구책을 마련해야 할 정도로 국가의 힘이 약해졌던 시절을 읽는 것이다. 주인공의 아들들은 아버지처럼 상인이 되어 종로통의 상권을 장악해간다.

주인섭의 가문만이 아니었다. 무늬만 양반이 아니라 고위직을 지낸 실세 양반들이 상업에 뛰어든 경우가 당시에 꽤 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어쩌면 이들은 구한말 전환기의 향방을 그 누구보다 직시하고 가장 현실적으로 처신한 것은 아닐가? 왕실과 국가가 더 이상 자신의 신분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취한 마지막 자구책이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이들이 지금처럼 자신을 소개하는 명함을 만들었다면 아마도 ‘상인’이 아닌 ‘상업가’로 표기했을 것이다. 신분의 반전을 요구하는 시대에 꿋굿히 맞선 새로운 상인층이라는 자의식에서 말이다. 이재현과 주인섭의 사례는 과거에 누린 지위와 허세를 버리고 새로이 생업에 뛰어들어야 했던 구한말 관료들의 쓸쓸한 자화상이기도 하다.”

한장의 사진을 읽으면서 시대를 읽는 것. 이책의 아티클들의 성격이다. 이책이 읽는 그림들은 주인섭 가문의 회갑연 사진처럼 사연을 담고 잇다. 당시의 그림은 지금의 사진과 마찬가지이다. 어떤 일이 있을 때 그 일을 기념하고 기억하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 이책의 저자들은 그 그림들을 읽으면서 그림을 의뢰한 사람들이 기념하고 기억하려 했던 사연들을 읽는다. 그리고 사연들을 읽으면서 시대를 읽는 것이다.

그렇게 읽어낸 사연들은 이책이 다루는 그림들이 서로 아무 인연이 없듯이 제각각이다. 단지 과거 역사의 한 시점에 있었던 사연이라는 것 이외에는 아무 공통점이 없다. 그렇기에 이책의 아티클들은 순서 없이 아무데나 읽기 시작해도 어느 것을 빠트리고 읽어도 무방하다. 유기적인 연결이 없다는 말이다. 한권의 책으로 묶일 이유가 없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책으로 묶여진 27편의 글들은 하나로 묶여 과거의 이미지를 그려낸다. 그 이미지들은 서로 아구가 맞지 않는 모자이크를 만들 뿐이지만 과거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가를 구체적으로 그린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가 있는 책이 되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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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영 요점정리 노트 | 경제경영 2011-03-15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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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2020 새로운 미래가 온다

LG경제연구원 저
한스미디어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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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이라는 것이 결과를 놓고 보면 점치는 것보다 더 못하다. 전문가가 고른 주식의 주가와 원숭이가 다트를 던져 고른 주가를 놓고 보니 원숭이가 이겼다는 실험은 주식투자 서적에 꼭 인용되는 예이다.

다른 분야라고 그리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예측의 의미는 결론에 있지 않다. 예측을 하려면 먼저 현재를 살펴 미래의 결과를 바꿀 변수를 뽑아내야 한다. 그러면서 미래에 대한 기대를 만들고 미래를 준비해 전략을 짠다.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사실 현재를 꼼꼼하게 분석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남의 예측을 볼 때는 결론보다 그 결론을 내게 된 과정을 더 눈여겨 봐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측서들은 미래에 대한 말보다 현재에 대한 말이 더 많다. 그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책은 그런 점에서 예측서라고 할 수도 있고 아니라고도 할 수 있다. 이책 역시 예측을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 세계화는 어떻게 될것인지, 중국의 미래는? 신흥국들이 세계경제의 판도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 자원전쟁의 향방은? 스마트 시대는 시장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SNS, 컨버전스, 그린경영 등이 기업에 던지는 의미는? 디지털 네이티브가 기업조직에 어떤 변화를 줄 것인가?

이책이 다루는 주제들이다. 그러나 이책의 초점은 그런 주제들에 대답을 내놓는 것보다는 현재 우리의 시야에 들어와 있는 변수들을 검토하는 데 있다.

그렇기 때문에 주제들을 보면 새로운 것은 없다. 단지 이책은 미래를 만들어 갈 변수들을 종합해 놓는 것이 목적이다. 이책의 내용을 보면 다른 경제경영서들에서 다뤄지는 것들을 한권에 요약정리해놓은 성격이 강하다. 이책에서 다뤄지는 트렌드 키워드를 다루는 책이면 그 키워드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 키워드에 따라 환경이 어떻게 바뀌고 환경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다루니 사실 이책의 내용과 대차는 없다. 차이라면 분량의 문제이고 주제의 범위 문제이다.

그렇다면 이책의 의의는 그 많은 책을 다 볼 시간이 없을 때 한권으로 그 주제들을 모두 살펴볼 수 잇다는 데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책의 구성은 상당히 잘되어 잇다. 요약이 잘 되어 있어 그 분야에 대해 처음 들어보더라도 대강을 파악하는데 무리가 없게 잘 쓰여져진 아티클들을 모아놨기 때문이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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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울림 | 예술/문학/여행 2011-03-14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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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저/김이선 역
21세기북스 | 2011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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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베카 피죤(Rebecca Pidgeon)은 가수보다는 배우로서 더 기억된다. 재미있게도 가수로서나 배우로서나 그녀의 분위기는 유사하다. 우아하면서 자연스러운 외모처럼 가수로서 그녀는 거부감 없는 특유의 아름다운 멜로디에 어울리는 자연스러운 그녀의 미성은 고급 클럽에 어울리는 분위기를 갖는다.
피죤의 대표곡처럼 되어버린 'Spanish Harlem'은 오디오파일용 테스트 음반에 단골로 등장하는 곡이다. 그러나 그곡은 그녀가 쓴 것이 아니라 Ben E. King이 처음 부른 곡으로 끊임없이 커버되는 곡이다.

이 곡의 주제는 거리에 핀 장미의 아름다움에 대한 경탄이다. 베니 킹이 부른 원곡은 삭막한 거리에서 장미를 발견한 순간의 놀라움과 기쁨에 초점을 맞추며 리듬은 정서에 맞게 밝고 동적이다.
그러나 피죤은 가사는 그대로 두고 곡의 정서의 시제를 현재에서 과거로 옮긴다. 피죤의 커버는 살아있는 꽃에 대한 것이 아니라 책갈피에 박제된 장미를 보고 그 꽃이 살아 있을 때를 회상하는 것 같이 느껴지며 그녀의 건조하고 사색적인 쿨 재즈적 리듬처럼 정서적으로 정적이고 차갑다.

두 곡 중 어느 것이 아름다운가 물으면 누구나 피죤의 곡이 월등히 아름답고 말한다. 왜일까? 정서의 승화 때문이다.

피죤은 장미의 아름다움을 가사가 아니라 우아하게 변형된 멜로디나 리듬과 같은 음악형식의 아름다움에 의해 간접적으로 표현한다. 주제의 간접화는 보컬 정서의 억제로 구현되면서 아름다움이란 주제는 현재가 과거로 옮겨진다.

탐 맥크래( Tom McRae)는 음악이란 나비를 박제하듯 살아 움직이는 삶을 순간에 고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회상적이며 슬플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상하게도 좋은 음악, 뛰어난 음악은 압도적으로 회상적이다. 시간이 박제된 음악. 그런 음악의 매력은 듣는 이를 끌어당기는, 깊은 내면에서 끌어올려진 정서이다. 그러나 기쁨은 깊이 가라앉지 않는다. 내면의 깊이에 잠긴 감정은 슬픔이 대부분이며 그렇게 끌어올려진 감정은 깊은 울림을 갖는다.

(요즘도 교과서에 실리는지 모르겠지만) 황순원의 소나기는 문학에서 그런 울림이 어떤 것인가를 잘 보여준다. 잃어버린 것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이 그 단편을 아름답게 만들고 정서적 울림을 갖게 하는 힘이다.

이 단편집은 그런 울림을 갖는 기억을 이야기한다. “마음은 그 주인이 마음먹은 대로도, 마음먹고 싶은 대로도 움직여주지 않는다. 놓아버리고 싶어도 놓지 못하고(구멍), 버티려고 해도 무너지고(코요테), 잘하고 싶어도 잘되지 않고(아술), 잘하고 싶어도 잘되지 않고(아술), 곁에 남고 싶어도 떠나게 되고(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용서하고 싶어도 용서가 어렵고(강가의 개), 잡을 수 잇는데 잡아주지 못하고(외출), 입으로 말을 해도 귀로 듣지 못하고(머킨), 나아가고 싶은데 뒤돌아보게 되고(폭풍), 안하고 싶었던 일을 하게 되고(피부), 보며 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한다(코네티컷).”

이 단편집의 이야기들은 잃어버린 것들과 그 상실의 기억을 말한다. 그 이야기들은 특별하지 않다. 어릴 적 죽마고우의 죽음, 무능력한 아버지를 더 이상 참지 못하게 된 어머니의 결별, 아이를 가질 수 없는 결핍의 대리만족, 두 남자를 사랑할 수 밖에 없었고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햇던 여자의 상처, 용기가 없어 떠나보낸 어릴 적 사랑에 대한 후회, 어릴 때 죽은 아버지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자의 방황.

있을 법한 왠만한 사람이면 하나쯤은 겪었을 법한 평범한 이야기들이다. 이 단편집에는 황순원의 소나기 같은 극적인 스토리가 없다. 죽으면서 관속에까지 가져가야할 아름다운 기억도 없다. 이 책의 이야기들은 평범하다.

그러나 그 이야기들은 평범하면서도 특별할 것 없으면서도 깊은 울림을 갖는다. 피죤이 베니 킹의 드라마틱한 원곡을 평범하게 바꾸었기에 더 아름답게 되었고 더 깊은 울림을 갖게 된 것처럼. 이 단편집의 이야기들은 내면 깊은 곳에서 끌어올려진 것이기에 울림을 갖는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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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위기는 왜 반복되는가

로버트 라이시 저/안진환,박슬라 공역
김영사 | 2011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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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새로 창당된 독립당의 마거릿 존스는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독립당의 공약은 분명하고 단호했다. 불법이민의 강력한 단속은 물론 합법이민에 대한 대폭축소, 관세 인상, 미국기업의 해외투자 또는 아웃소싱 금지, 외국인의 미국투자 금지.

아직 놀라기에는 이르다. 미국은 UN과 WTO를 탈퇴하고 일체의 해외개입을 중지하며 해외, 특히 중국에 대한 채무를 동결한다.

적자를 내지 않는 한 기업은 직원을 해고할 수도 임금을 삭감할 수도 없다. 연방정부는 적자예산을 운영할 수 없다. 은행은 예대업무만 할 수 있으며 투자은행은 금지된다.

국민의 소득은 50만달러로 제한되며 그 이상에 대해선 100% 과세되고 25만 달러이상은 80%를 징수한다. 세금도피에 관해선 시민권이 박탈된다.

“여러분은 우리의 조국을 되찾기 위해 투표했습니다. 우리의 자유를 앗아간 정치가들로부터 우리의 직장을 배앗아간 외국인들로부터 애국심이 없는 부자들로부터 기생충 같은 이민자들로부터 이 나라를 되찾기 위해 행동했습니다. 이곳은 우리의 나라입니다! 열심히 일하려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좋은 직장과 높은 임금으로 보답해주는 나라입니다! 위만의 나라! 미국인만을 위한 미국입니다!”

히틀러의 등극을 연상시키는 충격에 당연히 미국의 기성정치권과 재계는 물론 동맹국들도 아연실색할 수 밖에 없다. 대선 다음날 다우존스 지수는 절반, 달러 가치는 30% 하락했다. 경제계 인사와 학자들 정치 컨설턴트들은 방송에 나와 충격과 공포를 전달한다. 그들은 모두 같은 질문을 던졋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저자의 2020년 대선 시나리오에 대해선 한가지 밖에는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설마. 저자도 그런 지경까지 갈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미국의 시스템이 그 정도로 엉성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200여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지만 미국은 한번도 혁명을 허용하지 않았다. 문제가 있으면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개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1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미국판 나치는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라 말한다. 다시 말해서 지금 개혁이 없으면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경제 체체는 무엇을 위한 것이고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학술적으로 말하자면 대불황은 끝났다. 그러나 충격의 여파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경제는 언제나 쇠퇴를 딛고 일어선다. 그보다 의미심장하고 흥미로운 질문은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느냐는 것이다.” 그 질문에 답하려면 근본적인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미국의 역사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두가지 가지고 잇었다. 그것은 공동체와 개인 사이에서 어느 쪽이 중요하냐에 대한 답이었고 불평등을 어느 정도까지 받아들이느냐에 대한 답이엇다. “현대 미국 자본주의의 제1단계(1890~1929)는 수입과 부가 점차 집중되는 시기였고 제2단계(1947~1975)는 번영이 더욱 폭넓게 공유되는 시기였다. 제3단계(1980~2010)는 다시 점진적 집중의 시기였다.” 저자는 이제 역사의 시계추가 공동체적 사고, 공유의 방향으로 돌아가야 하는 때라고 말한다.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는 방향전환을 시작해야 한다는 신호라고 저자는 말한다.

“너무 오랫동안 미국인들은 너무 많이 소비하고 너무 적게 저축햇다.” 가이트너 재무장관의 말이다. 이번 위기는 부채위기이다. 미국인들이 능력 이상으로 빚을 끌어썼기 때문에 부채의 거품이 터진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왜 미국인들이 그렇게 했는가는 묻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과소비는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지난 30년간 미국은 물론 세계경제는 번영을 누렷다. 문제는 중산층들이 그 번영의 몫을 나눠갖지 못했던 것이다. 번영의 결과는 거의 대부분 상류층에게만 돌아갔다.

“근원적 문제가 부상한 것은 사실 사실 미국 중산층들이 글로벌 경쟁과 노동대체 기술로 인해 이중고를 겪기 시작한 1980년경이엇다. 이때부터 미국은 자국의 노동인력이 급격히 달라진 환경에 더 잘 적응하도록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 노조에 권한을 부여하고 교육과 직업훈련을 개선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야 햇다. 그러나 그러기는커녕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갔다. 중산층이 번성할 수 잇는 일련의 새로운 정책들을 시행하는 대신 정치 리더들은 전지전능한 자유 시장에 대한 우세한 신념을 바탕으로 규제완화와 민영화를 수용했고 노조를 탄압하여 축소시켰으,며 부자들에게 세금을 깎아주엇고 사회안전망을 분쇄햇다. 이로 인해 미국인 대부분의 임금은 침체되었고 일자리는 더욱 불안해졌으며 소득 불균형은 점진적으로 확대되었다. 경제 성장의 혜택이 갈수록 더 작은 그룹에 돌아가 축적된 것이다.”

미국인의 실질임금은 지난 30년 동안 거의 오르지 않았다. 30년 동안 경제성장의 결과가 “동등하게 분배되었다면 2007년 일반적인 국민의 생활형편은 실제보다 60% 이상 나아졌을 것이다. 그 증가분은 어디로 갔을까?” 증가분의 행방이 이번 위기의 원인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대량 생산이 대량 소비와 동행해야 할 때 대량 소비는 다시 부의 분배를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기존의 부가 아닌 현재 생산되고 잇는 부의 분배 말이다. 그래야 국가의 경제 조직이 공급하는 재화와 용역의 양에 상응하는 구매력을 국민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그런 종류의 분배가 달성되기는커녕 거대한 흡입 펌프가 작동해 당시 생산되던 부의 점점 더 많은 부분을 소수의 손에 안겨주엇으며 이는 그들의 자본 축적을 도왔다. 대량 소비자들의 손에서 구매력을 앗아감으로써 자본가들은 그들의 축적 자본을 새로운 생산설비에 재투자할 근거를 세워주는 조건, 즉 자신들의 생산품에 대한 효과적인 수요까지 없애버린 셈이 되엇다. 결과적으로 마치 포커 게임에서 시간이 갈수록 소수의 플레이어에게 칩이 집중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다른 플레이어들 즉 여타의 국민들은 돈을 빌려야만 게임에 계속 참여할 수 있었다. 대다수 국민들의 신용이 바닥나자 게임은 중단되엇다.”

이번 위기에 대한 설명이 아니다. 1934년부터 1950년까지 연준의장을 지낸 애클스가 대공황의 원인을 설명한 것이다. 지난 30년 동안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 이번 위기의 원인이엇다고 저자는 말한다. 애클스가 지목한 공황의 주범은 ‘불균형의 심화’였고 이번 위기의 주범 역시 동일범이란 것이다.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역사는 반복되지는 않지만 운율이 맞기는 한다. 2007년에 이르던 그 세월 동안 중산층의 실질임금이 오르지 않거나 떨어진 탓에 그들이 구매를 계속할 수 잇는 유일한 방법은 다시 말해서 국가의 경제발전에 비례하여 생활수준을 높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더욱 많은 빚을 지는 길뿐이엇다.”

저자가 ‘대번영’의 시대라 말하는 시절이 끝난 1970년대 미국인들은 이전과 같은 생활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3가지 대응 메커니즘을 만들어냈다고 저자는 말한다.

첫째는 맞벌이로 가정의 총수입을 늘렸다. 그러나 “미국 가정들은 한계에 다다르기 시작햇다. 가계의 추가소득이 가져다주는 혜택으로도 가사나 자녀를 돌봐줄 사람을 고용하는 데 드는 비용을 충당하지 못하는 시점에 이른 것이다.”

두번째 메커니즘은 일하는 시간을 늘려 수입을 늘리는 것이다. 미국인의 노동시간은 일벌레로 소문난 일본인들보다 더 늘었다. 그러나 “역시 한계에 다다르고 말앗다. (투잡) 일자리를 더 구할 수 있다 해도 일할 수 있는 시간은 분명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남는 방법은 저축을 줄이고 빚을 늘리는 것이다. 금융선진국 답게 미국은 돈 빌릴 수단이 널려 있다. 신용카드는 넘쳐나고 대출도 쉽다. 그런데 때마침 집값이 뛰기 시작하자 주택은 야금야금 꺼내쓰는 돼지저금통이 되었다. 그러나 모든 거품이 그렇듯 부동산거품도 꺼지게 되어 잇었고 위기가 온 것이다. “그와 동시에 미국인들이 의지하던 마지막 대응 메커니즘도 사라지고 말았다. 사람들은 비로서 더는 과거와 같은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없다는 놀랍고도 끔찍한 현실을 직시하게 되엇다. 상류층의 풍족한 생활수준을 감안할 때 자신들도 마땅히 누릴 수 있으리라 생각한 여유를 소유하지 못하리라는 사실, 좀더 향상된 사람에 대한 기대를 충족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 대번영 시기에 경험한 여러 종류의 개선과 번영이 다시금 가능하리라는 예상이 틀렸다는 사실을 깨닫고 만 것이다.”

중산층의 수요는 사라졋다. 그러면 이제 수요는 어디서 만들어질까? 이제 악순환이 시작될 순서다. 부채거품으로 부양되던 경제에서 거품이 사라졌으니 남은 것은 꺼진 거품과 함께 경제도 꺼지는 것 뿐이다.

맞벌이와 과로, 빚까지 고통을 감내하며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미래에 대한 희망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메리칸 드림은 이제 드림에 불과하게 되었다. “중산층 미국인이 가장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무서운 사실은 ‘지금은 아니더라도 미래에는 물질적으로 더 나은 삶을 영위하리라’는 기대감을 포기하는 것이다. 미국인들은 끊임없이 위로 올라가고 자기 자신을 극복하고 더 나은 것을 쟁취하는 일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오랫동안 미국 중산층은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면 그들을 위해 그리고 그들의 자녀를 위해 더 나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고 믿어왔다. 더 나은 삶에 대한 의망이 가장 처참하게 부서진 시기는 바로 대공황 때였다.” 당시 미국인들은 엘리트들을 탓하고 체제를 탓하지 않고 ‘무능한’ 자신을 탓했다. 그러나 지금도 그럴까?대공황 시절 사람들처럼 인내심이 많을지 의문이라 저자는 말한다.

미래는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꺾일 때 그들은 눈앞의 부자들에게 분노를 느낄 가능성이 높다고 저자는 말한다. 나도 그들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할 때와 달리 그들처럼 될 수 없다고 느낄 때 그들과의 거리감이 생기고 그들이 누리는 것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더군다나 그들은 이번 위기의 원인이면서도 위기의 책임은 지지 않고 부담은 자신들에게 떠넘기면서 ‘그들만의 리그’의 정상에서 배를 두드린다면 무슨 생각을 해야 할까?

“경제 게임이 대기업과 부유층에게만 유리하게 흘러가리라는 증거는 대불황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하나 둘씩 쌓여가고 있었다. 노동조합의 붕괴, 인건비 절감, 사회안전망 축소 등. 더군다나 정부는 일런 제도들을 유지하거ㅓ나 되살리려는 의지를 눈곱만큼도 보여주지 않았다. 불량채권과 사모투자는 기업들을 파산시키거나 심각한 부채를 안겨주었고 근로자의 대량해고를 강요했다. 반면 대기업과 금융회사의 경영진과 트레이더들의 눈부신 연봉과 성과습, 더불어 부자들의 한계세가 감축되엇고 월스트리트에 대한 규제들이 폐지되었다.”

미국의 나머지를 희생해 자신들의 배를 채우는 은행가들, 미국은 그들만의 나라로 보인다. “그러니 경제 게임이 조작되엇다고 믿는다고 해서 어찌 대중을 비난할 수 있겠는가?” 은행가는 정치가가 되고 정치가는 은행가들과 어울리며 그들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에 익숙해진다. 유권자는 은행가들의 정치헌금으로 살 수 있는 숫자에 불과하다. 퇴직후엔 두둑한 보수를 받으며 은행가들을 위해 로비스트가 된다.

“흥미로운 민담이 있다. 부잣집 옆에 사는 농부가 있었다. 부자에게는 암소가 한 마리 있었는데 가난한 농부는 평생 뼈 빠지게 일해도 갖지 못할 가축이엇다. 농부는 하느님께 도와달라고 기도햇다. 하느님께 무엇을 원하느냐고 묻자 농부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웃집 암소를 죽여주세요.”

경제 게임이 자주 조작되는 러시아에서 농부들의 봉기는 대개 모든 사람을 일으켜 세우기보다는 부자들을 끌어내리는 쪽에 기울었다. 현재 추세가 바뀌지 않는다면 우리도 러시아 농부들과 비슷한 처지가 될지 모른다. 독립당이 암소를 죽여 버리는 것이다.”

저자는 암소가 죽기 전에 불균형이 바로잡혀야 한다고 말한다. 두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중산층이 공평한 부를 분배받지 못한다면” 경제의 수요가 회복될 수 없고 “성장 둔화와 호황, 불황을 오가는 매우 불안정한 경제사회가 그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이것은 부자들에게도 좋을 것이 없다.

둘째는 정치이다. 불평등이 바로잡히지 않는다면 극좌파와 극우파가 날뛰게 된다. 히틀러가 그 좋은 예이며 2020년의 시나리오는 현실이 될 것이다.

저자는 이를 위해 부가 더 공평하게 분배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를 위해 세제를 다시 분배를 위한 방향으로 바꿔야 하며 실업자를 위해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재교육 정책을 도입해야 하며 미래의 중산층을 위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등의 중산층을 위한 정책 프레임을 짜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정책틀이 자리잡을 수 잇도록 정경유착의 시스템을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소수가 부와 소득을 독점하고 다수가 그 나머지를 나눠 갖는 나라에서는 그 누구도 성공할 수 없다. 불균형은 단순히 경제적 성장만 잠식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날실과 씨실을 가르고 찢어버린다. 경제체제의 근간을 이루는 기본 합의가 깨진다면 국가는 무너질 것이다. ㅇ리가 성공을 거두고 권력의 정점에 이를 수 잇는 것은 오직 경제 및 정치체제가 안정되어 잇을 때만 가능하다. 그리고 이러한 안전은 사회 체제가 우리 모두의 이익을 위해 돌아가고 잇다는 대중의 믿음에서 비롯되낟. 그러한 믿음이 사라지면 모두의 행복과 안녕이 위협받고 결국 우리는 개혁을 택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합리적인 사람들이고 개혁이야말고 우리에게 남은 유일하게 합리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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