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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물결과 전쟁 | 인문/사회/역사 2011-05-22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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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전쟁 반전쟁

앨빈 토플러,하이디 토플러 공저/김원호 역
청림출판 | 2011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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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0년 11월 24일 오후 5시에 세 배틀스타를 파괴한다는 계획이 세워진다. 달에서 발사한 미사일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상당수의 미사일이 배틀스타에 장착된 자동시스템에 의해 탐지되지만 어떤 미사일도 스테이션에 충격을 주거나 지구에 상당한 위협을 줄 것으로 보이는 궤도는 벗어나 있다. 이때 우간다 상공에 있는 배틀스타의 충돌추적 레이더는 2p.m.쯤에서 단일 경고를 포착한다. 당연히 컴퓨터는 궤도를 재확인하라는 요청을 받는다. 다음 시간에 세 스테이션 모두 자신을 공격하려는 발사체 여러 대를 포착한다.

한편 페루에 있는 배틀스타 사령관은 자신의 권한으로 목표를 향해 레이저와 키네틱 미사일을 발사한다. 하지만 배틀스타시스템은 한꺼번에 발사되는 미사일 15대를 감당할 수 있도록 설계되지 않아 사령관은 수많은 미사일 공격을 버텨내지 못한다. 사령관은 곧 방어에 빈틈이 생겨 몇 개의 미사일이 배틀스타를 명중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조지 프리드먼)

‘100년후’란 책에서 그리는 미래 전쟁의 서전이다. 이 책이 그리는 전쟁은 우주에서부터 시작된다. 역사적으로 바다를 지배한 나라가 세계를 지배해왔다. 세계의 물류는 바다로 움직이고 바다를 지배하면 물류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미래에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바다를 지배하려면 우주를 지배해야 한다고 프리드먼은 본다.

그러므로 진주만 기습이 그랬듯이 미래의 전쟁은 패권의 핵심을 공격하는 것으로 시작될 것이며 목표는 우주괘도에 떠 있는 군사기지를 공격하는 것으로 시작될 것이라 예상한다.

미래의 전쟁에선 무기체계도 근본적으로 바뀔 것이라 본다. 앞으로의 무기체계는 인구감소에 대응해 로봇공학에 의존할 것이며 석유대신 전기가 무기운용의 에너지가 될 것이라 본다.

중세 기사들의 갑옷처럼 파워슈트를 입은 전사들이 전장을 지배할 것이다.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사람의 판단력에 몸에 걸친 기계의 기동력이 더해져 걸어다니는 탱크가 될 것이다. 파워슈트의 에너지는 전기가 적합하다.

그러나 파워슈트를 운용하기 위한 전기는 막대할 것이다. 그러므로 전기를 얻기 위한 방법에도 혁명이 일어나 우주에서 태양열을 받아 전기를 만들고 전기를 마이크로웨이브로 변형 지구로 전송하는 방식이 군용으로 개척될 것이라 본다.

파워슈트의 가격은 물론 만만치 않다. 지금의 첨단 탱크의 가격은 우스울 정도이다. 전장의 주역인 파워슈트의 전사가 되는 것 역시 전투기 파일럿이 되는 것만큼 고된 훈련을 거쳐야 할 것이다.

전쟁의 승패는 그 전사들이 결정할 것이며 예전처럼 총만 쥐어주면 누구나 병사가 될 수 있는 세상이 아니므로 전장은 중세 기사들의 전투처럼 소수만의 무대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전쟁이 나도 보통 사람은 전쟁이 났다는 것만 알뿐 현실감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SF처럼 들린다. 그러나 상당히 현실적이기도 하다. 토플러가 이책에서 말하는 전쟁의 양상이 그대로 발전한다면 프리드먼이 말하는 전쟁이 현실이 될 것이다.

토플러는 걸프전과 함께 전쟁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패러다임의 내용은 제3의 물결이라는 것이다.

토플러가 말하는 ‘물결’이란 부의 생산방식을 말한다. 제2의 물결은 산업혁명과 함께 시작되엇고 그 내용은 기계를 사용한 대량생산이엇다. 경제가 산업화되면서 전쟁도 산업화되어 대량파괴가 제2물결 시대의 패러다임이엇다. “대량파괴는 대량생산의 치명적인 도플갱어였던 셈이다.” 그 패러다임의 정점은 핵무기엿다. 그러나 정보화란 제3의 물결과 함께 전쟁의 방식도 바뀌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변화는 베트남전쟁의 상처와 함께 시작되엇다. 사실상 패전이란 불명예와 함께 젊은 장교들 사이에서 뭔가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 된다. 그리고 그 장교들이 본 것은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에 이르러 제3의 물결이 만들어낸 새로운 기술, 아이디어, 사회형태가 제2물결 대량사회에 도전장을 던지며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GM이나 IBM같은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미국 군대는 철저히 제2물결 세계에 적함하게 조직되어 있었다. 중앙에 집중된 지휘부, 대량화, 선형적인 조즉운영 등을 특징으로 기업처럼 탑다운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베트남전만 하더라도 작전의 세세한 부분까지 백악관에서 지시를 내렸고 심지어 대통령 개인이 폭격 목표를 정하기도 햇다. 군대는 지나친 관료주의에 젖어있었고 하부 조직들 간 경쟁이나 알력도 심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북베트남군이 전형적인 제2물결식 전투를 걸어오면 대개 승리하는 쪽은 미군이엇다. 그러나 미군은 소규모 게릴라전, 즉 정글에서의 제1물결식 전앶에 대해서는 제대로 준비되어 잇지 못햇다.” 베트남의 트라우마는 이런 의문을 갖게 몰아세웠다. “북베트남군을 상대로도 승리를 거두지 못한 미군이 소련의 붉은 군대에 대해서는 승리할 수 있을까?”

새로운 교리가 필요햇다. 그 결과 ‘공지전투’라는 교리가 등장했고 걸프전에서 우리가 본 결과가 타났다. “적의 지휘 시설 파괴, 적의 통신을 교란해 적 지휘 체계 내의 정보 흐름을 찬단하기, 전투의 주도권 장악, 적진 깊숙한 곳을 타격하기, 적의 지원부대가 전투에 참여하는 것을 차단하기, 공중과 지상, 해상에서의 작전 통합, 연합작전 동조화, 적의 전력이 강력한 지점에 대한 정면공격 피하기, 무엇보다 적의 동태는 파악하고 잇되 우리으 공태는 적이 파악할 수 없도록 하기 등”

이런 것이 가능하기 위해선 막대한 정보를 다룰 수 잇는 시스템과 시스템 통합이 필요하다. “지식은 그 중요성에 있어 무기와 전술의 라이벌이 되었다. 지휘와 통제의 수단을 파괴하고 와해함으로써 대부분의 적을 굴복시킬 수 잇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와 같은 공격은 이라크군의 두뇌와 신경계를 파괴하기 위한 것이었다. 전쟁이 수술이라면 아마도 걸프전은 뇌과수술로 분류되어야 할 것이다.” 저자는 “두뇌력의 경제가 두뇌 기반의 군대를 만들었다’고 평가한다. “지식은 파괴의 중추적인 자원이 되었다. 이미 그것이 생산의 중추적인 자원이 된 것처럼 말이다.” 모로코의 저명한 사회학자인 파티마 메르니시는 걸프전에서 미국의 역할을 비난하면서 이런 말을 한다. “서방 군대의 우수성은 군사적 하드웨어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 군사기지가 그들의 연구실이고 군대는 연구원들과 엔지니어들 같은 지식인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라.”

토플러는 걸프전에서 드러난 전쟁의 패러다임 변화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그 전쟁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드러났는가를 자세하게 분석한다. 그리고 걸프전에서 나타난 패러다임 변화가 전쟁의 양상을 어떻게 바꿀지를 다룬다.

이상이 이책의 내용을 소개해본 것이다. 그러면 이책은 얼마나 유용할까? 이책은 걸프전이 치뤄진 후인 90년대 초반에 출판되었다. 이책에서 다루는 내용은 지금도 유효하다. 10년도 더 전에 쓰엿는데도 그 내용이 그리 낡지 않았다는데 놀랍기까지 하다. 물론 스마트 무기라든가 우주전쟁, 틈새전쟁, 로봇전쟁, 저강도전쟁, 비살상무기 등 저자가 이 책을 쓸 당시에는 새롭게 보인 것이 지금은 익숙하다 못해 진부하게까지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저자가 이책을 쓸 무렵 당시의 현실을 다루기 보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전문가들에게 물어본 내용으로 쓰여진 것이기 때문에 지금도 책의 내용은 유효할 수 밖에 없다. 그 전망에 따라 현실이 움직여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방향의 종점은 아마도 앞에서 언급한 프리드먼의 전망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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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케이션 실전 교과서 | 수신/심리 2011-05-19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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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몸짓의 심리학

토니야 레이맨 저/강혜정 역
21세기북스 | 2011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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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근래 바디 랭귀지에 대한 책이 많이 나왔고 몇권은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이책의 제목을 보면 아 이책도 그런 책의 하나이구나,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 짐작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이책의 원제는 ‘The Yes Factor’이다. 어떻게 하면 예스란 말을 끌어낼 것인가, 다시 말해 설득에 관한 책이다. 그렇다면 왜 ‘몸짓’이란 제목이 붙었는가? 트렌드에 끼어보려고? 그런 것같다. 그러나 꼭 그 제목이 틀린 것은 아니다. 이책의 상당부분은 몸짓에 대해 말해진다.

저자는 바디 랭귀지 전문가이다. 그러나 저자가 바디 랭귀지에 밝기 때문에 이책의 상당 지면이 바디 랭귀지에 할당되는 것은 아니다. 알다시피 커뮤니케이션에서 말로 전해지는 의미는 극히 일부이다. 나머지 대부분의 의미는 언어 이외의 수단으로 전해진다. 이런 사실은 예전부터 잘 알려져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라는 명칭으로 세가지 설득수잔을 이야기했다. 에토는 말하는 사람의 성품과 신뢰성으로 호소하는 설득방식이다. 그러므로 말하는 사람을 믿음직하게 보이게 하는 자질들이 강조된다. 두번째 설득 방식인 파토스는 듣는 사람의 감정에 역점을 두는 방식이다. 로고스는 특정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사실에 역점을 두는 설득방식이다.”

우리가 어릴 때부터 열심히 교육받은 것은 로고스, 말로 하는 커뮤니케이션이다. 그러나 같은 말을 하더라도 그 말을 누가 하는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그 말을 누구에게 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여기서 누가 누구에게라는 문제는 언어 이외의 수단으로 전달되는 의미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 예를 들어보자.

“고가의 식탁 세트를 주문한 나의 동료는 목소리 톤을 통해 상대방을 판단하고 이를 효과저긍로 활용했다. 애초에 판매원은 6주 뒤에 가구가 도착할 것이라고 했지만 가구는 제시간에 도착하지 않았다.

친구가 전화를 해서 묻자 판매원은 말했다. ‘아, 20주 정도 걸릴 겁니다.” 무슨 은혜라도 베푸는 듯한 어조엿다. 동료는 상대의 어조를 통해 그가 뭊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며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처음 들었던 말하고는 다르네요. 남편이 화가 많이 났어요. 주문을 취소해야 할 것같네요.” (누구에게나 핑계 삼을 사람은 있게 마련이다.)

그러자 판매원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바로장아야지요.” 남성 특유의 지배적인 말투, 조직의 우두머리처럼 한껏 힘이 들어간 목소리엿다. ‘이런 일이 생겨서 죄송합니다. 사과의 의미로 탁자 보호용 덮개를 드리겠습니다.” 친구는 판매원이 전통적인 남성성을 강조하며 우월한 위치에서 은혜르,ㄹ 베푸는 그런 역할을 좋아하는 사람임을 간파했다. 그리고 상대의 그런 특성을 활용하기로 했다. 식탁 세트를 90일 동안 기다리느니 보호용 덮개를 포기하고 말갰다는 말을 수화기 저편의 남자가 믿을까? 친구는 속으로 자문해보았다. 아무래도 좋은 방법이 아니다 싶었고 친구는 생각 끝에 난처해진 여자 역할을 하기로 했다.

“남편은 계약을 취소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좋죠? 도와주세요.” (누군가 약한 모습을 보이며 도움을 청하면 사람들은 흡족해하는 경향이 있다.)
‘좋습니다. 그럼 400달러를 깍아드리지요.”
“죄송해요. 400달러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거든요.”
“500달러?”
“제발 제 말을 들어주세요. 환불받지 않으면 남편은 폭발하고 말거에요. 도와주세요. 벌써 10주나 기다렸는걸요.”
“600달러?”
“남편이…”
“더 이상은 깍아드릴 수 없습니다. 집에 필요한 다른 가구는 없으세요?”
“글쎄요. 소파가 아쉽긴 하죠.”

결국 친구는 식탁 세트 600달러 할인에 새 소파까지 받았다. 왜일까? 남자의 목소리를 파악하고 기준을 정한 다음, 여기에 협상 스타일을 맞췄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다른 성격이엇다면 예를 들어 온순하게 사과하는 태도로 나왔다면 친구는 고압적인 자세로 나갔을 것이다. 핵심을 직설적으로 말하면서 “이봐요 찰리. 400달러를 깎아주겠다는 건데 나한테는 공평하다는 생각이 안 드네요.”

그러나 해당 판매원이 상황을 통제하고 지배하려는 ‘보스기질’이ㅏ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런 접근법은 효과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을 알고 친구는 남자가 원하는 역할을 해주기로 했다. 그녀는 자기한테 ‘진짜 문제가 있다고 말했고 ‘유능한’ 그에게 도움을 청했다.”

좀 긴 인용이었다. 그러나 이책의 성격이 어떤지 파악하는데 충분했을 것이다. 이책은 아리스텔레스가 말한 에토스와 파토스를 다룬다. 다시 말해 어떻게 내 말을 믿을만하게 들을만하게 만드는가, 상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어떻게 읽어낼 것인가를 다룬다.

물론 이책만 그런 것은 아니다. 많고 많은 커뮤니케이션 스킬 관련 서적이면 다 그것을 다룬다. 그러나 이책과 다른 책들이 다른 점은 위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상대의 큐를 읽어내는 동시에 내가 내보내는 큐를 어떻게 다듬을 것인가, 큐의 의미를 읽고 쓰는 방법에 대해 다룬다는 점이다.

위의 사례에서 그 큐는 말 이외에 그 말이 실리는 톤이었다. 전화상의 대화에서도 언어 이외에 읽어낼 수 잇는 큐는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이책의 대부분은 목소리만 들리는 상황이 아닌 얼굴을 맞대고 상대의 몸짓을 읽을 수 잇는 보통의 대면접촉 상황을 가정한다. 상대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인 것은 긍정인가 부정인가, 턱을 치켜든 것은 무슨 의미인가 호흡이 빨라진 것은 무슨 의미인가? 저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잇는가? 아니면 긴장하고 있는가?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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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너무 잘 났어” | 인문/사회/역사 2011-05-16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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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리오리엔트

안드레 군더 프랑크 저/이희재 역
이산 | 2003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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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19세기 이후 사회과학과 자매학문인 역사학을 이 한 마디로 요약한다. 제도로서 사회과학과 역사학의 역사는 200년이 조금 넘는다. 모두 19세기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학문들을 학문이게 하는 질문은 여전히 동일하다. 모더니티는 무엇인가? 모든 사회과학과 역사학의 질문이다.

물론 모더니티의 구체적인 이름에선 차이가 있다. 사회과학의 시조라 할 수 있는 애덤 스미스는 시장이라 했고 애덤 스미스를 재해석한 맑스는 자본주의라 했다. 맑스에 대한 반발로 자신의 학문경력을 시작한 베버와 뒤르켐도 나름의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그들의 질문은 모두 한 마디로 요약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유럽은 왜 이렇게 잘 났느냐? 한 마디라는 것이다.

편의상 모더니티의 이름을 자본주의라 하자. 19세기 이후 사회과학의 그리고 역사학의 질문은 자본주의는 왜 특별하고 어떻게 특별한가라고 정리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가 왜 유럽에서’만’ 태어날 수 있었고 어떻게 유럽은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는가? 간단하게 왜 이렇게 유럽은 특별한가란 질문에 답하려는 시도엿다. 그러나 저자는 그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한 세기 반이 넘도록 모든 서양인과 상당수의 비서양인은 이 모든 사건들은 서양의 주도로 서양의 울타리 안에서만 일어났다고 믿었다. 서양은 세계경제의 심장이엇으며 최소한 1500년 이후로는 자본주의 성장의 본산이요 원동력이었다. 자본주의는 한참 나중에야 ‘서양’에서 ‘동양’으로 ‘수출’된 것이다. 상당수의 서양인은 1000년 이후로 또는 그 이전부터 서양이 우위를 점했다고 주장하면서 유럽인만 가진 예외적 특성과 능력이 이런 발전을 가능케 했을 것이라고 넌지시 덧붙인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저자는 의문을 던진다. 저자는 그런 질문 자체가 반역사적이며 아무런 근거가 없는 헛소리일 뿐이라 말한다.

최소한 1800년까지 세계경제는 동아시아와 중국이 중심이었다. 이 사실에 대해 모더니티론자들은 무슨 말을 할 수 있는가? 이책의 질문이다. 이책의 제목인 리오리엔트는 두가지 의미가 있다. 사회과학과 역사학의 관점을, 근본문제의식을 다시 세워야한다(reorient)는 것과 그 재정립은 동양을 재발견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재정립은 분석단위의 문제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세계는 언제나 하나의 세계경제로 움직였으며 세계화란 말부터가 잘못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책에서는 아니지만 저자는 이전의 저서에서 세계는 하나의 경제권으로 청동기시대부터 하나의 시장으로 돌아갔다고 말한다. 유럽도 아시아도 그 일부였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세계경제라는 단위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브로델과 그 영향을 받은 월러스타인, 아리기의 작업은 그런 시도이다. 그러나 저자는 그들의 작업도 여전히 오리엔털리즘을 극복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저자 자신이 참여했던 세계체제론의 질문은 유럽의 세계-경제가 어떻게 전세계로 확대되었는가, 이다. 유럽 세계-경제의 역사가 바로 세계화의 역사라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분석단위가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세계체제론이 말하는 유럽의 세계-경제는 수천년간 존재해온 더 큰 세계경제의 일부였고 그 일부로서 볼 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세계경제라는 관점에서 볼 때 서구의 부상은 재해석되어야 한다. “세계경제의 판도변화는 1850년 아니 어쩌면 1870년 이후에야 실제로 가시화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점점 굳혀가고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서양이 우위를 점하는 기간은 한 세기에서 한 세기 반 가량 줄어들게 된다. 1800년 이후 얼마동안까지도 세계경제에서 중심적 지위는 아닐지언정 선도적 지위를 놓치지 않았던 아시아가 다시금 예전의 지위를 탈환할 채비를 갖추면서 세계경제의 판도에 또다시 변화가 일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아시아가 뒷전으로 밀린 것은 장구한 역사의 시간관념으로 보았을 때는 극히 최근에 일어난 일이다. 이처럼 세계의 역학구조가 재편되는 상황에서 현실을 제대로 보려는 뜻이 있는 사람은 기존의 역사서술과 사회이론을 아니 기존의 세계관을 버리고 새로운 시각을 도모해야 한다. 이 책의 제목을 리오리엔트라고 단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유럽이 세계를 만든 것이 아니라 세계가 유럽을 만들었다”는 것이 저자의 요점이다. 유럽의 부상은 “유럽 스스로 달성한 것도 아니고 합리성, 제도, 기업가 정신, 기술, 온난한 기후, 한마디로 유럽인이라는 인종의 유럽’예외주의’ 덕분에 이룩한 것이 아니다. 근세 유럽은 세계경제에서 다른 지역에 비해 더 중요하지도, 앞서 잇지도 않았다. 유럽은 또 세계경제나 세계체제를 감쌀 수 있을만큼 ‘핵심부’나 ‘중심부’에 있지도 않았다. 유럽이 ‘중심부’를 차지했다고 주장하는 ‘세계-경제’ 내지 ‘세계-체제’는 그 자체가 현실 세계경제의 전체에서는 아주 오랫동안 주변적이고 미미한 역할 밖에는 하지 못햇다. 1800년 이전에 세계경제에서 우세한 지위를 점한 지역이 있었다면 그것은 아시아였다. 당시 세계경제에서 ‘중심적’ 지위와 역할이 있었고 ‘여러 중심’ 중에도 서열이 있었다면 그 정점에는 중국이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16세기의 포르투갈이 17세기의 네델란드가 18세기의 영국이 세계무역을 좌지우지했다는 것은 헛소리이다.”

브로델과 월러스타인, 아리기가 분석하는 자본주의 또는 세계체제의 역사란 유럽이 어떻게든 세계경제에서 한자리 차지하려는, 더 구체적으로는 막강한 아시아가 주도하는 시장에 끼어보려는 눈물겨운 노력의 역사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 역사의 시작은 십자군 원정부터였다고 저자는 본다. 십자군 원정 이후 유럽 세계-경제의패권은 이탈리아 도시들이 잡았다. 그들이 아시아와의 무역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포르투갈이 뒤를 이엇고 어떻게 하면 중국으로 가는 단거리 항로를 찾을까 하는 시도가 컬럼버스의 항해였다. 스페인, 그리고 네델란드, 영국도 모두 아시아와의 무역 때문에 패권을 잡았다. 아리기 식으로 말하자면 아시아와의 무역은 유럽패권국의 mother trade였다.

유럽이 아시아 시장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수단은 아메리카의 은이었다. 저자는 이것을 ‘콜롬버스식 교환’이라 말한다. 유럽은 은을 주고 아시아는 상품을 주는 관계이다. 유럽은 은 이외에는 아시아에 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아시아 경제의 경쟁력(상품의 질과 가격)을 따라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유럽은 “남북아메리카와 아프리카를 제외하고는 전세계 대부분 지역과의 무역에서 적자를 보았다. 무역적자를 메우기 위해 유럽은 아프리카와 특히 (식민지인) 아메리카의 은과 금을 헐값으로 가져왔다. 유럽이 그 대신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에 준 것은 유럽에서 만든 것 아니라 아시아에서 수입한 상품이엇다. 유럽의 전체 수출품 중 금은이 차지하는 비율은 2/3를 밑돈 적이 한번도 없엇다.”

저자가 말하는 세계경제는 지금과 다르지 않은 논리로 돌아갓다. 싸고 좋은 물건을 만드는 경제가 흑자를 보고 경쟁력이 없으면 적자를 보는 것이다. 1800년전까지 항상 흑자를 본 것은 중국이엇고 유럽은 항상 적자를 보았다. 귀금속의 유출에 대해 불평한 것은 로마제국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세계경제에서 경쟁력의 위계를 1그룹: 중국, 2그룹: 인도, 서아시아, 동남아, 3그룹: 유럽의 순서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유럽이 지불한 은의 절반은 결국 중국이 가져갔다.

1그룹과 2그룹의 지배자들은 상업에 무관심하지 않았다. 특히 오스만제국과 무굴제국, 사파비 왕조 등은 세계경제에서 경쟁력을 키워 돈을 벌어들이는데 적극적이엇다.

“오스만은 레반트 무역망의 주역이었고 또 그 무역망을 통해 제국으로 성장했다ㅓ. 야심과ㅣ 영리 추구, 패권의식에서 오스만 제국은 유럽 각국과ㅣ 다를 바가 없었다. 하나의 국가로서 오스만은 이익을 추구하는 상인처럼 행동햇다 오스만인이 영토확장에 나선 것은 맹목적인 팽창욕 때문이 아니라 동양과의 무역을 독차지하려는 야심 때문이엇다. 고위 관리들은 술탄에게 국부 창출을 위해서는 정복전쟁에 나서야 한다고 부추겼다.

“종교적 수사학은 자국의 패권을 정당화하고 군부와 인민의 지지를 규합하고 타국의 주장을 무력화하기 위해 유럽-아시아 권역의 모든 패권국이 전략적으로 도입한 것이었다”

당연한 것이 오스만부터 무굴제국까지 제국의 재정을 지탱하는 것은 상업에서 얻어진 돈이엇기 때문이다.

“오스만 제국과 인도의 무굴 제국은 모두 무력을 중시하는 ‘화약제국’이었지만 그들에게는 훨씬 더 중요한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엇다. 모두 돈벌이에 혈안이 된 제국이엇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제국 내외에서 이루어지는 무역 없이는 존립할 수 없었다.”

중국 역시 다를 것은 없었다. 뭐라고? 서아시아나 인도, 동남아는 그렇다 치더라도 중국(그리고 일본)은 대항해시대에 해금정책(내지는 쇄국정책)을 펴지 않았나? 그러나 중국은 한번도 해외무역을 차단한 일이 없었다. 중농정책이 관철된 명대에도 광저우는 개항장이었고 그곳으로 들어온 은이 있었기 때문에 일조편법이 가능했다.

명나라가 세금을 은으로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은 세계시장에서 벌어들인 은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저자는 명나라가 멸망한 이유를 16세기 세계경제를 뒤흔들었던 은의 부족 때문이엇다고 본다. 은의 부족으로 재정이 붕괴한 것이 가장 큰 이유라는 것이다.

저자는 세계경제에서 어느 지역이 우위에 있는가를 아는 지표 중 하나는 인구와 도시화라고 말한다. 인구가 많고 도시화 비율이 높다는 것은 경제의 부양력이 높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명대 말엽 그러니까 17세기 초반 난징의 인구는 100만이었고 베이징 인구는 60만을 넘어섰다. 1800년 광저우와 인접한 자매시 포산의 인구를 합치면 모두 150만이었다. 이것은 서유럽의 모든 도시인구를 합친 것과 맞먹는 수치다.”

물론 중국의 무역관계는 다른 지역과 달리 자유롭고 평등한 상거래가 아닌 예치 이념에 따른 조공무역관계였다. 그러나 “중국조정은 상당히 현실적이었다. 중국은 남아도는 자국의 물자를 수출하는 대신 그보다 훨씬 효용가치가 크다고 판단한 막대한 양의 은을 해마다 조공국으로부터 받아들였다. 이러한 거래를 다분히 이념적으로 ‘조공’이라고 불렀다고 해서ㅏㅏ 그 본질적인 기능이 변한 것은 아니었다. 중국과 교역을 하기 위해서는 어쨌든 은의 형태로 ‘조공’을 바쳐야만 했다. 유럽도 예외일 수 없었다. 중국이 중심에 있고 그 주위로 조공국들이 여러 개의 동심원을 따라 배치된 위계구조는 지나치게 이념저긍로 보일지 모르나 이면의 현실을 정확하게묘사한다. 중국경제의 압도적 우위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조적 역할에 머물러 있던 인도와 동남아의 지위 등 다국간 무역체제 전체의 수지를 따져보면 중국은 결국 전세계의 은이 빨려드는 최종적인 ‘배수구’였다.”

막강한 제조업과 비단, 도자기를 자랑하는 중국이 은본위제를 채택했기 때문에 조공무역이 위력을 발휘한 18세기까지 세계경제의 화폐는 은이었다. “세계경제에서 만성적인 무역적자에 시달렸던 지역은 아메리카, 일본, 아프리카, 유럽이다. 아프리카는 금과 노예를 수출해 적자를 매울 수 있었고 아메리카와 일본은 자체 생산한 은을 수출했다.” 그리고 유럽은 식민지인 아메리카의 은을 팔아 세계경제의 입장권을 샀다. “유럽은 만성적인 무역적자를 메울 수 잇는 마땅한 생산품을 만들지 못했다ㅓ. 유럽은 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로, 아메리카에서 아시아로 아시아에서 아프리카와 아메리카로 세 지역의 수출품을 이동시키는 ‘관리자’ 역할을 하며 근근이 버텼다. (세계경제의 중심인) 아시아 시장에 팔아먹을 변변한 물건을 생산하지 못하던 유럽인은 은에 목을 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시아인은 유럽이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가져온 은말고는 유럽에서 아무 것도 사려 하지 않았다.”

“1493년부터 1800년까지 세계 은의 85%, 금의 70%는 아메리카에서 왔다.” 대항해시대라 불리는 시절 유럽이 유통시킨 대량의 은은 세계경제의 유동성을 팽창시켜 장기 16세기라 불리는 수백년간의 대호황을 이끌었다. 이 시기 전 세계적으로 인구가 팽창한 이유이다.

“17세기와 18세기에 아메리카산 은의 70%는 유럽으로 반입되었고 이 가운데 다시 40%는 아시아로 유입되엇다.” 이중 아메리카에 남은 대부분의 은은 밀무역을 통해 태평양을 건너 마닐라로 마닐라에서 광저우로 보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 아메리카의 은에 일본이 유통시킨 대량의 은도 세계경제의 유동성을 부풀리는데 단단히 한 몫한다. 예를 들어 “1592년부터 은 유입량이 눈에 띄게 늘어난 1639년까지 인도에서 유통되는 은의 양은 3배로 늘었다.”

유동성이 늘어나면 수요가 늘어난다. 그러나 수요가 늘어난다고 자동으로 공급이 늘지는 않는다. 늘어난 수요만큼 공급을 늘릴 수 있는 능력이 경제에 있는가에 따라 인플레가 일어나는가 아닌가가 결정된다.

유럽이 당시 겪었던 가격혁명은 유럽의 공급능력 이상으로 화폐가 폭증한데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유럽 이상으로 화폐가 폭증한 아시아에서는 그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다. 화폐의 팽창으로 늘어난 수요만큼 공급이 따라갔기 때문에 인플레는 일어나지 않았고(상품의 가격과 이자율은 안정되었다) 농촌구석구석까지 화폐경제화되면서 경제는 수요와 공급의 선순환을 일으키며 장기호황을 누렸다.

아시아가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산업의 생산력이 뒷받침되엇고 그 산업을 뒷받침하는 정치와 법제(예를 들어 소유권), 금융 등의 제도적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유럽은 그런 것이 부족했기 때문에 ‘가격혁명’을 겪었다. 저자는 당시 인도와 서아시아, 동남아의 금융업을 분석하면서 당시 진출했던 유럽인들의 제도보다 더 우월했다고 말한다.

정작 은을 들고 온 유럽”과 아시아의 무역은 (원격지 무역을 포함해) 분명히 늘고는 이엇지만 아시아의 지역무역 규모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1688년 영국 동인도회사의 이사로 있던 조슈어 차일드 경은 인도에 있는 항구 몇 군데에서 아시아 각지로 가는 물량이 유럽의 모든 항구에서 아시아로부터 받아들이는 물량의 열 배는 된다고 보고했다.”

당시 유럽은 세계경제의 강자가 아니라 분명한 약자엿다. 그리고 약자인 “유럽 인구가 세계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약 20%)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동안 아시아 인구의 비율은 6%나 늘었다. 1750년 현재 세계인구의 665에 약간 미치지 못햇던 아시아 인구가 세계 총생산의 80%를 생산햇다. 이것은 아시아인이 유럽인, 아프리카인, 아메리카인보다 생산혁에서 우위에 있었음을 시사한다. 이는 새로운 화폐가 유럽보다 아시아에서 생산에 더 큰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증거이다. 아시아 경제는 유럽 경제보다 더 유연하고 생산성이 높았다.” 그러한 생산성의 격차는 기술력, 경제제도, 금융제도의 우위에서 찾아진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무기, 조선, 인쇄술, 직물, 야금, 운송을 분야별로 점검하면서 아시아가 우위에 있었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렇다고 유럽이 제도적으로 우월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유럽이 아시아경제에 참여했기에, 더 발전된 시스템에 참여했기에 이후의 발전이 가능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본다. 그렇다고 자본가정신이니 하는 것도 헛소리라 말한다. “거미줄처럼 연결된 (명말청초 대만을 지배한) 정씨의 상업적 네트웤과 정치적 정보망은 강력한 맛수엿던 만주족 상단이나 네델란드 상단에 조금도 밀리지 않을 만큼 효율적이엇다. 조직면에서도 네델란드 동인도회사의 조직과 유사한 점이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도양에서도 상업활동으로서의 자본주의는 이미 보편화돼 있었다. 인도양의 원격지무역은 호칭이야 다를 수 잇지만 실질적으로 자본주의 활동이엇다. 방적공, 직조공, 양잠업자. 대장장이, 향신료 플랜테이션 소유주느,ㄴ 모두 가격 메커니즘을 통해 보상을 받았다. 원격지무역, 상업자본주의, 수출시장을 겨냥한 생산은 모두 긴밀한 관련이 있었다.”

그러면 어떻게 아시아를 유럽이 추월할 수 있었는가? 그 이유는 세계경제의 사이클 때문이엇다고 저자는 본다. 장기 16세기가 18세기에 내리막을 타면서 세계경제는 위기를 맞았고 아시아 경제의 몰락이 시작되엇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 메커니즘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경제의 팽창은 소득과 신분의 양극화 현상과 맞물리면서 경제 팽창을 낳은 과정 자체를 위축시켰다. 아시아의 정치적 경제적 불안을 낳은 주원인은 유럽에서 들어온 은이엇을 공산이 크다. 구매력과 소득이 커지면서 특히 아시아 지역의 국내시장과 수출시장에서 수요가 확대되었다. 이것은 소득의 분배를 점점 왜곡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여 서민들의 유효수요를 제한하면서 정치적 긴장을 고조시켰다.

오스만 제국, 인도, 중국에서 쇠락의 조짐이 본격적으로 가시화된 것은 18세기 후반, 특히 마지막 30년 동안이엇다. 가장 먼저 기울기 시작한 것은 페르시아였고 그 다음이 인도엿다. 섬유산업에서 경쟁력을 상실하면서 18세기 중반 이후 인도에서는 유입되는 지금보다 유출되는 지금이 많아지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변적 위치에 있던 유럽이 사이클의 하강국면에 있는 중심부를 따라잡을 수 잇는 상황이 만들어졌다고 저자는 말한다.

“서양은 어떻게 발흥했는가? 유럽인은 그것을 샀다. 처음에는 아시아라는 열차의 좌석 하나를 샀다가 나중에는 열차 전체를 사들였다. 가난한 유럽인이 아무리 삼등석일지언정 애당초 무슨 수로 경제열차의 승차권을 끊을 수 있었을까? 훔쳤든 강탈했든 벌었든 아무튼 거기에 필요한 돈을 손에 넣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발견한 금광과 은광이 자금줄 역할을 햇다. 유럽인은 은을 캐내, 정확히 말하자면 원주민을 시켜 더 많은 화폐를 ‘만들어냇다’” 결국 유럽인에게 “아시아 시장은 은 시장이었다. 유럽ㅇ인은 아메리카에서 한밑천 잡아 아시아경제의 카지노에 뛰어들 수 있었다. 그 카지노에서 유럽은 어떻게 이길 수 있었는가? 아메리카에서 금과 은을 무한정 끌어다 쓸 수 있었다. 이것이 유일한 이유다. 아시아가 갖지 못했던 유럽의 유일한 경쟁력은 아메리카라는 돈나무에서 나왔다. 하지만 그런 든든한 배경에도 불구하고 유럽은 오랫동안 아시아 경제 실제로는 세계경제란 카지노 테이블에서 푼돈이나 조금식 거는 꼽사리 도박꾼에 불과했다.”

“17세기의 일정 기간에 아시아가 은을 흡수환 것은 그리고 정도는 덜했지만 금을 흡수한 것은 무엇보다도 생산비용과 물가가 국제적으로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19세기 이후의 유럽은 가격 경쟁력을 갖게 된다. 그 이유는 “오랫동안 동양에 근거지를 두었던 기술혁신의 지리적 중심이 서양으로 이동했다는 거시적 차원에서 문제를 이해해야 한다. 유럽의 어떤 ‘남다른’ 특성과 요인이 산업혁명을 낳았는가는 본질에서 벗어난 질문이다. 산업의 중심축이 왜 동양에서 서양으로 이동했는가를 물어야 한다.”

중심축이 이동한 이유에 대해 유럽이 가격경쟁력을 갖게 된 이유에 대해 저자는 동양의 성공이 그 이유였다고 말한다.

유럽의 부상은 기계를 대거 도입하여 생산비용을 획기적으로 떨어뜨리는 데 즉 산업혁명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기계의 도입은, “노동절약적인 기계의 발명과 그 응용을 통한 기술의 진보는 북미와 같은 고임금 지역에서 기계가 그만큼 생산성을 높여주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흔히들 말한다. 산업혁명도 같은 논리로 분석할 수 있다. 영국 경제가 18세기에 이룩한 성장 가운데 80%는 순전히 생산성 향상으로 얻은 것이엇다. 유럽인은 세계경제의 치열한 각축구도에서 미국인보다 더 아시아인과 경쟁을 해야 했다. 그러나 유럽인은 상대저긍로 고임금/고비용 구조 속에 있었다. 유럽이 아시아에 팔아먹을 물건이 없었던 원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ㅓ. 아시아는 저렴한 노동비용을 앞세워 생산성과 경쟁력에서 유럽을 압도하고 있었다. 아시아 대부분 지역이 그랫지만 특히 중국과 인도는 인구가 희박한 유럽보다 인구/토지자원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문제엿다고 저자는 말한다.

아시아의 인구/토지자원 비율은 안그래도 높았다. 그러나 장기 16세기의 장기호황으로 그 비율은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치솟는다. 자원과 자본에 비해 노동력의 가격이 떨어지는 것이다. “기술발전은 노동절약적, 동력발생적 기계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많은 곳에서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유럽은 (저성장이 원인인) 낮은 인구성장 때문에 그만큼 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요구가 아시아보다 강햇다.”

“아시아 주요 국가에서는 게계경제와 지역경제의 활성화 덕분에 인구가 증가하고 부존자원에 대한 생산압력이 가중되었으나 소득의 양극화가 일어남으로써 대량 소비재에 대한 국내의 유효수요를 늘리는데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이런 구조와 과정이 노동절약적 동력발생적 기술개발에 자본을 투자할 가격 인센티브를 증대시킨 것이 아니라 생산의 임금비용을 끌어내렸다.”

아시아는 고차원적 균형의 함정에 빠졌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아시아와 중국은 “그때까지 풍부한 인간노동과 부족한 토지 그리고 다른 자원의 토대 위에서 수세기에 걸쳐 발전시킨 농업, 운송, 제조업 기술을 가지고 ‘갈 수 있는데 까지 갔다.’” 다시 말해 “높은 수준의 인구와 중간 수준의 기술이 균형을 이룬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소득분배의 불균형이라는 요인가지 감안하면 아시아는 기술투자에 더욱 불리한 입장에 잇었다. 소득 피라미드의 정상부에서는 국내제품의 생산증대를 위한 충분한 수요를 만들수 없었고 저소득층의 임금수준은 제자리걸음이거나 갈수록 낮아졋다. 생산과 인구성장을 궁극적으로 저하시킨 것은 바로 생산과 임금의 장기적 팽창이었다.” 다시 말해 아시아는 자신의 성공 때문에 몰락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아시아는 ‘제 무덤을 파고 잇엇다.”

그러므로 “1800년을 전후하여 기술진보는 아시아가 아니라 유럽에서 일어났다. 아시아는 유럽보다 인구성장률이 높았고 소득분배와 자본소유의 양극화현상이 더 심했기 때문이다. 물론 유럽보다도 인구/자원비율이 더 낮았던 (다시 말해 저차원의 균형에 빠진) 아프리카에서도 기술진보는 일어나지 않았다. 유럽과 달리 아프리카는 투자자본을 외부에서 끌어올 식민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시아의 쇠락과 유럽의 부상이 교차한 시점은 1750년 쯤으로 볼 수 잇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시기부터 아시아의 인구성장은 내리막을 걷고 유럽은 갑자기 빨라졋다. 그리고 “1800년 이후부터는 유럽의 빠른 인구성장이 노동절약적인 기술 보다 간편하고 저렴한 동력발생장치, 자원의 이용, 처리 혁신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했을 것ㅇ디다. 현실상황이 그런 방향으로 전개되기 위해서는 유럽 상품을 소호ㅘ할 시장이 해외로 크게 확대되어야 햇을 것이다.” 제국주의의 시작이엇다.

“19세기와 20세기에 유럽과 북미는 전 아시아가 처했던 위기를 이용할 수 잇엇다. 그들은 처음에는 수입대체산업을 육성하다가 얼마 가지 않아 세계시장을 노리고 수출산업을 장려하여 신흥경제지역으로 탈바꿈하는데 성공햇다. 이러한 성공은 그들이 글로벌 경제에서 주변적이고 비교적 ‘낙후’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따라서 그것은 결코 영원하지는 않다. 이 새로운 세계경제의 일시적 중심지들은 과거 세계경제의 중심지엿던 아시아가 그랫던 것처럼 절대적으로나 상대적으로나 사회, 경제가 위축되어 잇다. 반면 아시아의 사회, 경제는 과거의 힘을 되찾아 가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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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고통 | 예술/문학/여행 2011-05-11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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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낸 골딘 Nan Goldin

귀도 코스타 저/김우룡 역
열화당 | 2003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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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집의 표지는 방콕 게이클럽의 여장남자를 찍은 사진이다. 이책에는 뉴욕의 게이바의 여장남자들, 트랜스젠터, 호모 또는 가끔씩 레즈비언들의 초상과 그들의 성교장면이 등장한다. 그 사진들은 연출된 것이 아니다. 모두 사진작가의 친구들이다.

퀴어, 뭔가 어긋났다고 말해지는 그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따뜻하며 그들에게 공감을 숨기지 않는다. 사진집의 처음에 놓인 사진은 강가에서의 소풍을 찍은 것이다. 그 사진에는 케이크를 먹으며 즐겁게 웃고 잡담을 나누는 여장남자들과 여성이 담겨져 있다. 작가가 퀴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 사진처럼 따뜻하다. 이성애자들이라면 역겹다고까지 생각할 동성애자들의 성교장면도 비정상이란 느낌을 갖기 어렵다. 그녀는 그 사진들에서 비정상이 아니라 정상적인 아름다움을 잡아낸다.

그녀는 왜 그런 시선을 갖게 된 것일까? 물론 그녀가 동성애를 경험하긴 했지만 이성애자이기도 하다. 그녀가 레즈비언이 된 이유는 많은 레즈비언들이 그렇듯 남성과의 관계에서의 환멸때문이었다.

그녀의 출세작인) ‘The Ballad of Sexual Dependecy’가 출간되었을 때 표지에 쓰인 ‘침실에서의 낸과 브라이언(1983)’을 보자. 이 사진은 “책 전체의 시상을 대변하는 결정체라 할 만하다. 친밀한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고독하게 존재하는 두 사람과 남성과 여성 사이에 영속저긍로 존재하는 변증법을 완벽하게 묘사해내고 있다. 화면에 나타난 빛의 구성조차도 두 존재간의 거리감과 차이점을 강화한다. 골딘의 표정에는 남자와 좀더 접촉하기를 원하는 욕망과 함께 어떤 두려움이 동시에 나타난다. 둘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를 암시해준다.”

‘친밀함 안에 존재하는 끝없는 거리감’은 ‘The Ballad of Sexual Dependecy’의 중심주제이다. ‘침실에서의 남녀(1977년) 역시 같은 주제를 다훈다. “이 이미지에서는 남녀가 섹스 후 종종 느끼게 되는 기묘한 소외감과 소원한 분위기가 드러나 있다. 골딘은 이런 상황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물론 남녀관계에 대해 골딘이 그렇게만 인식하는 것은 아니다. ‘섹스 중의 스킨헤드족(1978)’이나 ‘쿠키와 빗토리오의 결혼식(1986)’, ‘키스하고 잇는 라이즈와 몬티(1988)’는 섹스에서 드러나는 연인사이의 일체감을 잘 포착한다. 그러나 작가는 자신이 포착한 일체감에 “이 에로틱한 마주함이 일시적인 것이며 실패로 끝나고 말 것이라는 어떤 불편한 느낌”을 숨기고 있다.

“골딘은 섹스를 영혼을 비추는 하나의 거울로 보았다. 그리하여 섹스를 사랑과 우정에 동반하는 고통과 기쁨의 보다 깊고 복합적인 관계성의 한 부분으로 여겼다.” 그러나 그 관계는 고독에 대한 해독제가 될 수 없다. 그녀가 찍었던 친구들이 즐겼던 마약처럼 일시적인 위안일 뿐이다.

그녀는 그런 시선을 어떻게 얻은 것일까? 어린 시절의 상처를 많이 언급한다. “얘기는 1960년대 초, 워싱턴의 별 특징 없는 한적한 마을에 살던 한 중산층 가정에서 시작된다. 아버지와 아버지와 네 자녀가 있었고 그 네 아이들과 함께 민권운동 집회에 참가하곤 하던 리버럴하고 진보적인 어머니가 잇었다. 당시 미국의 보수적인 분위기에 식상해 있던 전형적인 유태인 지식인 가정이엇다.

가족 모두를 보여주는 폴라로이드 사진이 한 장 남아 잇다. 어느 식당에서의 축하모임이엇던 것으로 보인다. 1964년이엇다. 바버라 홀리와 스티븐이 부모와 함께 앞불에 앉아 있고 그 뒤로 이제 갓 열살을 넘긴 낸시와 조나단이 서 잇다. 앨리스 밴드를 착용한 낸시는 가족 중 유일하게 카메라를 응시하지 않고 잇다. 당시 낸시의 꿈은 정신분석가가 되는 것이엇다. 언니 바버라 홀리는 낸시에게 마음으로 통하는 친구이자 삶의 한 본보기엿고 재능있고 열성적인 피아니스트엿다. 나른하고 즐거운 시골 생활이 일년간 이어졌다. 같은 또래 여자아이들처럼 ‘아메리칸 드림’에 빠져 잇던 시간이엇다. 그런 후 어둠의 시기가 찾아왔다.

1965년 4월 12일 언니 바버라가 끔찍한 방법으로 자살한다. 당시 열여덟이었다. 바버라의 죽음은 가족 모두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낸시의 부모들은 상실감과 죄책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엄청난 이 사실을 단지 부정하는 것으로 일관했다. 살아 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엇다ㅓ.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버라의 죽음을 이웃들이 모르게 하는 것이엇다. 낸시에게도 사고로 죽은 것으로 말한다. 그러나 예민한 낸시는 이미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다 알고 있었고 깊이 상처받게 된다. 어떤 경우라도 진실을 찾아내는 데 집착하고 만일 그것이 진실이라면 불편함이나 따분함, 체면 손상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는 그의 태도는 아마 이 사건에 연원하는 것 같다.낸시는 온갖 사람들과 온갖 사물들을 대상으로 격렬한 싸움을 벌인다. 그녀는 미국 정신의 어두움으로 존재하는, 그 ‘꿈’ 뒤에 감춰진 악몽인 당대의 거짓과 물질주의를 가장 미워햇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녀는 싸움에 지친 것 같다. 그녀가 사진경력을 시작할 때 주류는 미술계와 마찬가지로 추상적 구조가 지배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만의 싸움을 해나갓다.

그러나 그녀는 진실만 보는데 지쳐간 것으로 보인다. ‘부두에 서 있는 귀도(1998)’을 보자. “이탈리아 친구 중 한 사람을 찍은 이 사진은 인물과 풍경 간의 대조를 담아내려는 골딘의 새로운 추구를 보여준다. 보다 묵상적이고 부드러운 것에 대한 골딘의 기호를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어떤 특정한 작업 안에 들어가 잇지 않으면서도 골딘의 야외사진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는데 자연광을 교묘히 이용해 사람의 몸을 순수 추상처럼 묘사해내고 있다.”

그리고 ‘실버 힐 병원의 골든 리버 다리 위에서 찍은 셀프 포트레이트(1998)’를 보자. “최근의 이 사진은 골딘의 자화상과 새롭게 발견한 자연을 하나로 결합하고 있는 것으로 그 안에는 개인의 고독이 묘사되어 잇다. 골딘으로서는 매우 힘겨운 시기에 찍은 이 사진은 배경의 아름다운 금빛과 완전히 대조되는 고통스런 내면으로부터 만들어졋다는데 큰 의미가 잇다. 슬픔과 비밀을 간직하고 잇으면서 동시에 희망과 화해를 암시하고 잇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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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심리학 | 인문/사회/역사 2011-05-11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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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심리학으로 보는 로마인 이야기

강현식 저
살림출판사 | 2011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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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의 장르는 역사심리학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미 일어난 역사적 사실, 이책의 경우엔 로마의 역사를 심리학으로 설명한다는 말이다. 말은 이해가 가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이런 식이다.

“영웅이라면 많은 갈등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아주 대단한 적을 상대해야 할 것같다.” 그러나 로마건국신화의 로물루스 형제는 늑대가 키웠다는 특이한 출생 이외엔 그리 특별하지 않다. 형제가 로마를 세우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고난도 그리 특별할 것이 없고 그들의 행동도 영웅답지 않다. 동생을 쳐죽이는 비윤리성은 그렇다치더라도 폭군이 되어 원로원 의원들에게 살해당하는 결말은 무어란 말인가? 위대한 천년제국의 건국신화치고는 좀 그렇다. 로물루스 형제는 결코 영웅답지 않다.

왜 그럴까? 어차피 신화라면 다른 민족들처럼 그럴듯하게 포장할 수 잇지 않았을까? 왜 유독 로마만 그럴까? 저자는 로마인들의 집단무의식 때문이라 말한다.

“로마는 한 사람의 영웅을 원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의 뿌리가 되는 신화에서조차 건국 시조를 한 명이 아닌 두명, 혼자가 아닌 쌍둥이, 동생에게 인정받는 형이 아니라 동생을 죽인 형, 시민들에게 칭송받는 왕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암살을 당해도 더 이상 찾지 않는 왕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자신들의 성공은 뛰어난 한 사람의 영웅 때문이 아님을 천명한다. 이런 측면에서 로마는 다른 제국들과 구별된다. 많은 제국들이 한 명의 영웅과 함께 출현했다 사라졌지만 로마는 조직을 중심으로 움직였기 때문에 천 년 동안 지속될 수 있었다.”

로마사엔 많은 영웅들이 있었다. 가령 리델 하트는 한니발을 이긴 스키피오를 역사상 최고의 전략가로 평가한다. 카이사르도 역사상 어떤 영웅 못지 않다. 그러나 스키피오는 처음부터 끝까지 로마인들에게 인정받지 못했다. 한니발을 이긴 것도 이순신처럼 혼자의 힘으로 이룬 것이지 로마인들의 지원을 받아 이룬 것이 아니다. 카이사르의 최후도 스키피오의 운명 못지 않게 비참했다.

저자는 로마의 건국신화에서 영웅을 거부하는 로마인들의 집단무의식을 읽는다. 사람보다 시스템을 신뢰하는 로마인들의 성향은 원로원이란 시스템을 낳았다. 저자는 한니발에 맞서 절대적인 어려움을 딛고 연전연패를 최후의 승리로 만들 수 있었던 이유를 원로원이란 시스템의 우월성으로 설명한다.

공화정 시대 로마의 최고의결권은 사실상 원로원에 있었다. 원로원의 의사결정이 효율적이었기에 로마는 성공할 수 있엇다고 저자는 본다.

원로원은 집단이다. “집단이 개인보다 훌륭한 결정을 하려면 몇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의사결정은 먼저 문제가 무엇인지 정의하는 단계에서 시작해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토의하는 과정을 거쳐 의사결정을 하고 결정된 것을 이행하는 과정을 거친다. 집단의 의사결정은 집단내에 다양성이 살아있을 때 개인보다 뛰어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원로원은 다양성이 살아있었다. 여러 계층에 의석이 개방된 “원로원의 물갈이는 비교적 빠른 편이었다. 원로원의 구성권들은 원로 못지한게 신참도 많을 수 밖에 없엇다. 당연히 패기와 의욕이 넘치는 사람들, 다시 말해 분위기를 아직 파악하지 못햇거나 굳이 다른 사람의 눈칠르 볼 필요가 없는 사람들도 많앗다. 토의과정에서 다양하고 기발한 의견들이 제시될 수 잇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원로원이 승리한 가장 핵심적 이유가 아닐까.”

저자는 원로원의 개방성이 폐쇄성으로 바뀌면서 로마공화정의 몰락이 시작되었다고 본다. “기원전 200년부터 카르타고가 멸망한 해인 기원전 146년까지 54년 동안 집정관 수는 108명이 된다. 이들 가운데 과거에 집정관을 배출한 적이 없는 가문의 출신자, 즉 로마인들이 신참자라고 부른 사람의 수는 8명에 불과하다. 원로원 계급에 속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점점 고정되어갔다.” 원로원의 멤버가 그 사람이 그 사람이 되면서 원로원은 정체되었고 집단사고가 지배하게 되엇다고 저자는 말한다.

“2차 포에니 전쟁 때의 원로원과 이후의 원로원은 달랐다. 구성원이 바뀌지 않아서 폐쇄적이 되었고 자연스럽게 불필요한 친밀감만 발생하게 된다. 서로 얼굴을 붉히지 않기 위해 서로의 의견에 동조해 주는 것이다. 누가 새로운 의견이나 다수와 다른 의견을 내기만 하면 곧바로 공격의 대상이 되곤 했다.”

그러나 원로원의 정체는 로마공화정 몰락의 원인이라기보다는 증상에 가까웠다. 로마가 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모병제가 아닌 징병제로 국민개병제를 채택햇던 것이 한몫햇다. 당나라 군대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평화보다는 전쟁이 일상이엇던 로마에서 징병제는 사회를 무너트렷다. 징병자원인 시민이 전쟁터에 묶이면서 가계가 무너진 것이다. 물론 원로원계급도 징병대상이엇다. 그러나 그들은 전쟁터에 나가도 가계가 무너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전쟁의 과실을 쓸어담았다.

양극화는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이지만 양극화로 인한 징병자원의 부족은 징병대상의 하한선을 내리게 만들었고 로마군의 질을 떨어트렷다. 이대로는 로마가 망할 것이라 본 그락쿠스 형제는 개혁을 밀어붙였다. 그들의 개혁은 로마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정책들이었다. 그러나 원로원은 형제를 죽이면서까지 개혁에 저항햇다. 왜 그랫을까?

“로마의 원로원 귀족들을 비롯하여 경제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은 날마다 호황이엇다. 그런데 이 모든 경제적 이득은 로마라는 울타리가 존재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만약 로마가 이민족의 침입으로 무너진다면 아무것도 보장받을 수 없다. 그런데 로마라는 울타리 역할을 해주던 막강 군대가 허약 군대가 되어가고 도시에는 걸인이 넘쳐났다. 이렇게 계속 가다가는 울타리가 무너질지도 모른다.” 귀족이, 그들의 공화정이 유지되려면, 그들이 계속 ‘무임승차’를 하려면 평민층이 건재해야 한다. 그락쿠스 형제의 개혁은 그것을 위한 것이엇다. 원로원 계급을 무너트리는 ‘혁명’이 아닌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개혁’이엇다. 그러나 그들은 저항했다.

왜 그랫을까? 그락쿠스 형제의 개혁이 급진적이엇던 것은 사실이다. 속도를 너무 빨리 냈다. 그러나 형제는 합리적으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들의 개혁에 동의할 것이라 순진하게 생각한 것같다고 저자는 말한다. 인간은 합리적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다. 원로원 계급이 저항한 이유는 당장의 손실이, 개혁으로 평민층에게 내주어야 할 손실이 장기적인 이익보다 더 크게 보였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손실회피 성향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개혁이 힘든 것은 바로 이런 심리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예를 들어보자. “자유주의 시장경제에서 부유한 사람들로부터 많은 세금을 걷어 모두를 위한 특히 가난하고 약한 이들을 위한 서비스를 한다고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으로는 그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속마음은 다르다. 부유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부를 내놓지 않는 이상 누군가에 의하여 자신의 재산권이 침해당한다고 느낀다면 그 심리적 고통은 생각보다 훨씬 클 것이다.’

결국 그락쿠스 형제의 개혁은 실패했다. 공화정의 몰락은 확정되었고 카이사르는 로마가 존재하기 위해선 제국이 되는 수 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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