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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의 진화 | 경제경영 2011-06-17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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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10년 후 미래

대니얼 앨트먼 저/고영태 역
청림출판 | 2011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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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번역 제목처럼 10년후에 어떨 것이라는 예측을 하지는 않지만 단기나 장기가 아니라 중기적으로 세계경제의 변화방향을 예측하기 때문에 번역서의 제목이 그리 틀린 것은 아니다.

이책이 그리는 미래는 지금과 비슷하기도 다르기도 하다. 우선 저자는 지금까지의 세계화가 더 심화될 것이며그 세계화의 방향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중심으로 미래의 모습을 그린다. 이번 위기로 세계화가 좌초되지 않을까란 우려가 있었다. 19세기의 세계화가 1차대전으로 산산조각나고 대공황으로 사망했듯이 이번 금융위기가 세계화를 죽이지 않을까란 우려였다.

이번 금융위기가 심각했던 이유 중 하나는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묶였기 때문이었으니 그리 큰 비약이랄 수는 없다. 그러나 세계를 움직이는 엘리트들은 세계화의 중단을 원치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중단되지 않을 것이라 저자는 가정한다.

그러나 앞으로의 세계화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양상일 것이라 저자는 가정하며 세계화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가 이책의 내용이다.

우선 저자는 세계시장의 플레이어들 간에 계층화가 뚜렷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이번 위기로 분명해진 것은 세계경제의 중심이 아시아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G20 내지는 G2란 말은 그러한 권력이동을 말한다.

그러나 저자는 앞으로도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선 저자는 주요 플레이어들 중 중국과 EU의 몰락을 예측한다.

저자의 입장은 지금까지의 China Bashing가 그리 다르지 않으니 그리 주목할 것은 없다. 그러나 저자의 분석에서 한가지 주목할 것은 딥 팩터란 시각이다.

저자가 말하는 딥 팩터는 언뜻 보면 어려울 것은 없다. 경제성장은 노동투입, 자본투입 그리고 생산성(TFP)의 곱셈이다. 생산성을 보통 주류경제학에선 기술로 설명한다. 같은 노동량과 자본량을 투입하더라도 그 결과는 생산성 즉 노동과 자본을 활용하는 효율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효율의 차이가 왜 나는지 설명하기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기술수준으로만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제도학파가 말하는 제도(institution) 개념이 어느 정도 설명력이 있다. 재산권이 확립되어 있는가. 법치주의가 통하는가, 정부는 효율적이고 부패하지 않았는가 등 보통 문화란 말로 설명하던 개념을 시장에 적용한 것이 제도란 개념이다.

저자가 말하는 딥 팩터의 개념은 제도란 개념과 유사하다. 저자는 딥 팩터의 차이가 그 국가의 경쟁력을 결정한다고 본다. “20세기 후반에 일본은 미국과 동일한 수준의 딥 팩터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성장의 벽에 부딪혔다. 시장은 미국만큼 경쟁적이지 못했고 기업환경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관료제도는 일처리 속도가 느리고 민첩하지 못했다. 일본은 미국과 동일한 국가군에 편입되지 못했고 결국 모든 잠재력을 동원해도 미국을 따라잡거나 앞설 수 없었다.”

저자는 중국도 같은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 예측한다. 결국 중국은 2류에 머물 수 밖에 없다고 저자는 본다.

마찬가지 이유 때문에 저자는 EU의 붕괴를 예측한다. EU의 붕괴는 그리 낯선 예측은 아니다. 유로화가 도입되었을 때부터 하나의 유럽이란 이상이 비현실적이란 지적은 자주 나왔고 유로화의 폐지에 대해서도 많은 말들이 있었다. 이번 남유럽 사태는 바로 상징이다. 저자는 EU 회원국간의 딥 팩터의 차이 때문에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충돌할 것이고 EU는 유명무실화될 것이라 예상한다.

중국과 EU를 분석하면서 세계시장에서 플레이어들간의 차이는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이라 저자는 본다. 그런 차이의 심화는 과거의 남북문제를 새로운 차원에서 부활할 것이라 저자는 예측한다. 저자의 용어로 하자면 경제식민주의와 브레인 드레인의 업그레이드이다.

지금까지 세계화는 국가간의 격차는 좁히고 국가내의 격차는 넓히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앞으로의 세계화는 다를 것이라 저자는 본다. 우선 자원부족, 인구학적 재앙 때문에 지난 30년과는 다를 수 밖에 없다.

자원부족과 노동력의 부족은 경제성장에 치명적이다. 해법은 있다. 자원과 인력이 넘치는 곳에서 가져오면 된다. 중국이 그동안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원을 선점한 것이 그 해법의 한 예이다. 저자는 그런 방법을 경제식민주의라 말한다. 물론 과거 제국주의 시절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 지배에는 아무 관심이 없고 단지 그 나라의 자원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원을 가져오는 대가도 분명 지불한다. 문제는 자원부국인 나라들이 거의 그 돈을 제대로 활용할 능력이 없다는 점이다. 결국 그 돈은 낭비될 것이고 그 돈에 중독된 기형적인 구조를 낳을 것이라 저자는 본다. 과거 제국주의 시절과 결과에선 그리 다를 것이 없다고 저자는 예측한다.

자원부국들은 인구부국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인구는 활용되지 않는 잉여노동력일 뿐이다. 고령화 저출산이란 폭탄을 안고 있는 나라들은 그 인력을 수입하기 위해 경쟁할 것이라 저자는 본다. 낯선 것은 아니다. 실리콘밸리의 활력은 인도와 중국 등에서 온 인재들에 힘입었다. 그러나 앞으로 실리콘 밸리와 같은 현상은 세계적 차원에서 강화될 것이라 저자는 본다.

경제식민주의와 브레인 드레인은 딥 팩터에서 우위에 있는 국가가 열위에 있는 국가 위에서 실질적으로 착취하는 결과를 낳는다.

물론 경제식민주의와 브레인 드레인은 세계화의 공식적인 질서가 될 수는 없다. 저자는 공식적인 질서에서도 차이는 노골적이 될 것이라 본다.

세계시장의 공식질서는 WTO이다. 그러나 사실상 도하 라운드의 사망으로 WTO 체제는 뇌사 상태이고 앞으로도 부활할 수는 없을 것이라 저자는 본다. WTO 체제가 정체되면서 나타난 현상은 FTA의 폭증이었다. 앞으로 이런 흐름은 경제블록화로 나타날 것이라 저자는 본다. 경제블록화는 만장일치인 WTO 체제와 달리 실제 경제적 실력이 발언권에 그대로 드러날 것이고 실제 경제적 힘과 이익에 따라 현실의 경제질서가 재편되면서 지금보다는 더 효율적인 시장질서가 만들어질 것으로 저자는 본다. WTO의 이상주의를 벗어던지는 것이 더 현실적이란 말이다.

저자는 금융시장도 지금과는 달라질 것으로 본다. 이번 금융위기로 지금까지 방임했던 금융시장을 그대로 놔둬서는 안된다는 합의가 이뤄졌다. 문제는 규제시스템이 만들어진다고 시장이 그 규제에 따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법망의 헛점을 찾는 수준에서 벗어나 아예 금유거점을 규제가 허술한 곳으로 옮기는 현상이 강화될 것이라 저자는 본다. 저자는 그것을 금융 암시장이라 부른다.

금융 암시장은 규제에서 벗어난 시장이므로 지금까지보다 더 불안정할 것이다. 그리고 금융 암시장에 방대한 자금이 몰릴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금융 암시장의 영향력은 클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영향력이 큰 만큼 시장붕괴의 악영향도 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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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문명 | 인문/사회/역사 2011-06-16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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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문명의 붕괴

제레드 다이아몬드 저/강주헌 역
김영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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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은 여러가지 이유로 무너진다. 이 책은 그 중에서 한가지, 환경파괴로 무너진 문명만을 다룬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현재 우리의 문명이 무너진다면 환경파괴로 무너질 가능성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이책은 역사서가 아니라 과거를 돌아보며 지금을 생각해보자는 의도로 쓰여졌다.

그러나 그런 주제를 다루는 책은 많다. 그 많은 책 중에서 이책은 시장에서 독보적인 대접을 받는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이책의 구성에 있을 것이다. 저자의 전작인 ‘총 균 쇠’처럼 이 책은 간단한 가설을 제시하고 그 가설을 여러 사례에 적용해보면서 그 가설의 의미를 분명히 하고 가설을 증명해나가는 형식이다. 역사학자의 방식이라기 보다는 과학자의 서술이다. 저자가 역사학자가 아닌 생물학자이니 당연하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서술방식 덕분에 두꺼운 책이 명료해지고 의미가 분명하기에 재미있어진다.

저자의 가설은 단순하다. “과거 사회의 붕괴는 약간의 차이가 잇지만 큰 줄기에서는 유사한 과정을 밟은 듯하다. 인구 폭발로 관개 시설, 이모작, 계단식 밭 등 농산물 생산을 늘리기 위한 집약적인 수단을 동원해야 했고 처음 선택한 우량한 땅에서 주변의 땅까지 농지를 확대해야 했다. 점점 늘어나는 굶주린 배를 채우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처럼 지속불가능한 수단의 동원으로 환경 피해가 뒤따랐고 그 결과 주변에 개발한 농지가 다시 버려졌다. 식량 부족과 굶주림, 부족한 자원을 두고 다툰 민족들 간의 전쟁, 환멸을 느낀 민중의 모반 등이 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다. 결국 기아, 전쟁, 질병 등으로 인구가 줄었다. 대신 사회는 정치, 경제, 문화의 다양성에서 전성기 때의 힘을 상실했다. 소련의 몰락을 생각해보면 충분하다. 과거 사회들은 인구 수와 힘에서 정점에 이른 후 급속히 기울어졌다. 이런 급속한 몰락은 주민들에게 충격이었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죽거나 다른 보금자리를 찾아 떠났다.”

복잡계 이론에 따라 저자의 가설을 다시 설명해보자. 사회를 열린 시스템이라 생각해보자. 사회란 시스템이 유지되려면 외부에서 에너지가 계속 들어와야 한다. 그 에너지의 유입경로를 경제라 부른다. 에너지의 유입량이 늘어나면 시스템이 활성화되고 사회의 규모도 늘어난다. 규모가 늘어나면 에너지는 그만큼 더 필요하다. 문제는 환경이 그 사회가 필요한만큼의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가의 여부이다. 저자는 다양한 과거 사회를 분석하면서 많은 사회들이 환경의 한계 이상으로 에너지를 뽑아내면서 경제가 무너졌고 경제의 붕괴는 사회에 충격을 주고 정치에 충격을 준다. 시스템이 이 충격을 버틸 수 없는 한계에 이르면 갑작스런 파국이 오고 사회는 붕괴하면서 시스템은 카오스로 돌아간다.

시스템에 충격이, 다시 말해 스트래스가 가해진 상태에서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따라 파국은 올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사회의 구성원들이 문제를 인식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할 대책을 만든다면, 그 대책이 성공한다면 파국은 오지 않는다. 또는 다른 사회와 교역으로 환경이 제공할 수 없는 에너지를 가져올 수 있다면 파국은 오지 않는다.

물론 저자는 복잡계 이론에서 말하는 시스템의 개념으로 사회를 분석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저자의 가설은 위와 같이 재해석해도 무방하다.

저자는 자신의 가설을 다섯가지 변수로 정리한다. 예를 들어 마야의 경우를 보자. “사회적 붕괴 요인으로 제시한 다섯가지 요인 중에서 마야 사회는 네가지 조건을 충족한다. (첫째) 그들은 삼림 파괴와 그에 따른 (토양) 침식으로 환경을 홰손햇다. (둘째) (환경파괴에 더해진) 기후 변화, 즉 가뭄도 마야의 붕괴에 한 몫을 햇다. (셋째) (악화된 자원사정 때문에 일어난) 마야 사회 내에서의 내홍도 큰 역할을 햇다. 끝으로 정치, 문화적 요인 특히 왕과 귀족이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힘쓰지 않고 (악화된 자원사정을 더욱 악화시키면서) 경쟁적으로 전쟁을 치르고 기념물 건립에만 몰두한 것도 마야를 붕괴로 몰고 간 중대한 원인 중 하나였다. 다섯 사지 요인 중 남는 것은 외부 사회와의 우호적인 교역이다. 그러나 이 요인은 마야 사회의 부침에 큰 역할을 하지 못한 듯하다. 흑요석, 옥, 황금, 조개껍질 등을 수입하기는 햇지만 흑요석을 제외한 나머지 셋은 반드시 필요한 수입품이 아니었다.”

이책은 마야와 같은 과거 사회만 다루지는 않는다. 문명의 붕괴를 다룰 때 빠질 수 없는 이스터 섬이나 마야 등을 다루는 부분은 이책의 반 정도에 불과하다. 오히려 르완다 내전이나 아이티, 도미니카 공화국, 호주와 같은 동시대의 사회를 분석하는 지면이 약간 더 많다. 이책의 관심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저자의 분석틀은 과거 사회에도 현재 사회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며 강한 설명력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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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의 의미 | 인문/사회/역사 2011-06-15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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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블랙 스완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저/차익종 역
동녘사이언스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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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들은 이러한 시스템을 ‘복잡계’라 부른다. 시스템 내부의 역동성을 간단하게 설명하기 힘들고 대부분은 예측마저 거부하기 때문이다. 생태계든 주식시장인든 복잡계의 변화는 대개 완만하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재앙과도 같은 사건이 연달아 빠르게 진행된다. 당연한 말이지만 복잡계는 외부에서 관리하거나 설계하기 극도로 힘들다. 또한 뉴튼이나 아리스토텔레스로 대변되는 고전적인 접근법의 물리학으로는 복잡계를 설명할 수 없는데 전통 물리학은 세상을 기초 단위로 쪼갤 수 있으며 이런 요소들로 모든 것을 조합할 수 있다ㅓ는 생각에 바탕을 두기 때문이다.

복잡계 과학자들은 ‘복잡계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창 밖 내다보기!’라고 간단히 대답한다. 구름, 산, 강 들이 한데 뒤섞여 우리 세계의놀라운 풍경을 만드는 모든 것은 예측 불가능한 상호작용에서 빚어진 결과이다. 대다수 물리학자들이 의지하는 에너지 법칙이나 운동법칙으로는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설명할 수 없다. 이를 위해서는 저변에 숨은 보다 복잡한 논리로 도약해야 한다. 다소 반항적인 물리학자들은 이런 유머를 자주 인용한다. 축산농가가 젖소의 우유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이론물리학자를 고용했다. 그 물리학자는 농장을 방문해 농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후 몇 년간 소식이 없던 그가 어느 날 답을 찾아냈다며 돌아왔다. “이렇게 가정해봅시다. 구형(球形)의 소가~~” (조슈아 쿠퍼 라모)

저자는 둥근 소의 세계를 ‘평범의 왕국’이라 말하며 울퉁불퉁 살아있는 소의 세계를 ‘극단의 왕국’이라 말하며 극단의 왕국은 검은 백조의 세계이다.

저자는 두 왕국의 차이를 러셀의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 “칠면조가 한 마리 있다. 주인이 매일 먹이를 가져다준다. 먹이를 줄 때마다 ‘친구’인 인간이라는 종이 순전히 ‘나를 위해서’ 먹이를 가져다주는 것이 인새으이 보편적 규칙이라는 칠면조의 믿음은 확고해진다. 그런데 추수감사적을 앞둔 어느 수요일 오후, 예기치 않은 일이 이 칠면조에게 닥친다. 칠면조의 믿음은 수정을 강요받는다.”

러셀의 비유는 귀납법의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칠면조의 논리에는 문제가 없다. 천일 동안 먹이를 받아먹었으니 천 하루 째에도 그럴 것이라는 칠면조의 생각은 관찰을 통해 얻은 증거와 그 증거가 뒷받침하는 논리의 결과이다. 그러나 칠면조의 논리는 “가치가 0이 아니라 마이너스이다.” 세상이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칠면조의 논리가 성립되는 영역을 저자는 평범의 왕국이라 부른다. 칠면조의 논리가 언제나 틀린 것은 아니다. 저자는 ‘블랙스완에 대비하라’에서 우리의 세계를 확률분포에 따라 4분면으로 나눈다. 칠면조의 논리는 세개의 분면에서 잘 또는 그럭저럭 문제없이 작동한다.

저자는 이 세개의 분면을 평범의 왕국이라 부른다. 이 왕국에선 평균의 법칙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 왕국에선 천 하루째의 극단적 사건은 나머지 천일의 사건들의 평균에 묻혀 의미가 없어지는 곳이다. 그리고 그러한 확률분포를 정규분포(normal distribution)이라 한다.

정규분포에서 평균을 벗어난 값은 평균과의 차이가 클수록 확률이 희박해진다. 그러므로 평균은 세계의 ‘기대값’이 되며 확률적으로 세계의 현상은 그 기대값의 근사치라 생각할 수 있으므로 세계의 불확실성은 고려할 필요가 없어진다.

“최대값이 평균에서 그리 멀지 않다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변수를 다룰 때에는 가우스적 접근법(정규분포)을 충분히 채택할 수 있다. 큰 폭의 변동을 낮추는 요인이 있다거나 큰 관측값을 막는 물리적 한계가 존재한다면 그 환경은 평범의 왕국에 속한다. 평형상태에서 벗어나더라도 곧바로 이를 (평균으로) 되돌리는 강력한 복원력이 존재한다면 역시 가우스적 접근법을 채택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가우스적 접근법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바로 이런 까닭으로 대부분의 경제학이 평형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평형 개념은 여러 이점을 갖고 잇지만 그중에서도 경제 현상을 가우스적으로 간주하게 한다.”

그러나 문제는 ‘창 밖의 세계’는 정규분포를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불확실함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의 바람대로 세상이 확실하기를 바란다. ‘무의미한(부조리한) 세상에서 의미를 찾는 것은 인간뿐이다’는 사르트르의 말은 의미 즉 확실성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란 뜻이다. 그러나 사르트르의 말처럼 세상은 그렇지 않으니 문제다. 세상이 그렇지 않고 우리의 지식이 틀렸다면 그뿐이다. 시지프스처럼 세상이 끝날때까지 돌을 올리건 말건 그 사람의 문제니까.

문제는 그 시지프스들이 자신의 바위를 ;과학’같은 그럴듯한 말로 꾸밀 때이다. 시지프스들이 세상이 그렇다고 생각하며 그린
지도에 따라 우리가 행동할 때 그럴 때 세상은 불확실한 것에 그치지 않고 위험해진다. 그런 지도는 없느니만 못하다. 저자는 그에 대해 ‘질병’이라고 의사가 일으킨 질병이라고 지적힌다.

“의학에 대해 생각해보자. 의학이 생명을 구하기 시작한 것은 겨우 `100년밖에 안되었다. 사망률 하락은 치료 발전보다는 위생 의식의 등장이나 항생제의 발견으로 인한 측면이 더 크다. 의사들은 통제라는 착각에 빠져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적절한 선택일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으면서 오랜 시간 많은 환자들을 죽였다.

치료자에 의해 야기된 피해를 의미하는 醫)因)性에 대한 연구는 널리 알려지지 안ㅇㅎ았다. 나는 의인성이 의학계 밖에서 사용된 사례를 보지 못했다. 의인성은 계몽주의에 의해 과학이 오만해진 이후 재발견되었다. 안타깝게도 조상들이 더 잘 알았다. 우리가 지식의 한계와 대가를 알지 못한다면 지식으로 할 수 있는게 하나도 없다. 계몽주의 이후 과학은 운 좋게도 물리학 화학, 공학에서 잘 작동했다. 그러나 과확에 의해 어떤 피해가 발생할 수 있고 실제로 어떤 피해가 발생햇는지에 대한 과학적 의인성 연구를 수행하면 우아함을 포기해야 한다.” 세계는 우아하지 않다. 세계가 우아하게 보이는 것은 우리가 그렇게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우아함의 대가로 우리는 위험해지고 목숨까지 잃을 수 있다.

“1874년 12월 오스트리아 학파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는 다섯번 째 노벨 경제확상을 수상했다. 하이에크는 자신의 수상 소감문 제목을 ‘지식의 허울’이라고 지었다. 그의 연설문은 비단 경제학적 관점에서만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복잡한 현상을 단순한 듯 취급하고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을 분명하고 체계적인 구성을 갖춘 개념인 듯 다룬다면 이보다 더 위험한 행동은 없을 것이가고 하이에크는 생각했다. 그는 이렇게 말햇다. “훨씬 광범위한 분야에서 과학적이라는 외양을 갖춘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경우 이로 인해 파생될 장기적 위험을 걱정하는 것은 지극히 합당한 일이다.”

저자가 이책에서 하고 싶은 말은 불확실한 세계를 확실한 지도로 그리는 그런 위험한 태도를 갖지 말자는 것이다. 칼 포퍼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 1권에서 플라톤을 2권에서 맑스를 공격한다. 포퍼가 그들을 공격하는 이유는 불확실한 세계를 확실하게 만들려는 그들의 태도 때문이다. 저자가 공격하는 위험한 태도 역시 대상은 동일하다. 저자는 포퍼의 선례를 따라 그런 태도를 플라톤적 태도라 부른다.

“어떤 목적지와 거기에 도달하기 위한 지도를 혼동하는 경향, 즉 순수하고 정교한 형식에만 초점을 맞추는 태도를 나는 그의 사상(성격)에 따라 플라톤적 태도라고 부른다. 플라톤적 태도는 수학의 삼각형, 사회적 개념, 유토피아(‘원리에 따른’ 청사진으로 세워진 사회), 민족성 등등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플라톤적 태도가 우리 마음 속에 똬리를 틀고 있으면 우리는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 대상이나 무너가 깔끔하지 않고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은 도외시해 버리게 된다.”

저자는 그런 플라톤주의자들을 헛똑똑이 더 심하게는 로크의 미치광이라 부른다. 그리고 그런 태도에 반대하며 자신의 태도를 회의적 경험주의라 부른다. 그러나 플라톤적 태도는 우리의 본성이다. 그런 태도를 버리기는 힘들다. 그렇기에 저자는 ‘적재적소에서 바보가 되자’고 말한다.

“작은 교훈이란 이렇다. 인간은 안간다워야 한다. 인간답다는 것에는 자기 일에 지적으로 어느 정도 자만한다는 사실이 포함되어 있음을 인정하자. 이런 사실에 부끄러워하지 말라. 언제나 판단을 유 보하겠다고 애쓰지도 말자. 자기 견해를 갖는 것, 그것이 인생이다. 예견을 피하지도 말자. 이제까지 내가 늘어놓았지만 나는 더 이상은 바보가 되지 말라고 권유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적재적소에서 바보가 되라는 것이다.

우리가 피해야 할 것은 거창하고 위험천만한 예측에 쓸데없이 의존하는 것이다. 우리의 미래를 위협할 지 모른 ㄴ 거창한 주제도 멀리하자. 작은 일에 바보가 되어도 좋지만 큰 일에는 금물이다. 경제 예측가나 사회과학 분야의 예측가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말라(그들은 단지 연예인일 뿐이다). 다만 놀러가는 날의 날씨는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돌아오는 휴일의 나들이를 위해서 날시 예보는 무슨 일이 있어도 들어맞아야 한다. 그러나 2040년 사회보장 상황에 대한 정부의 전망치는 귀담아듣지 말아야 한다. 이야기가 그럴듯한가가 아니라 잘못되었을 경우의 해악이 얼마만한가를 기준으로 믿음을 분류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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農者天下之大本也 | 인문/사회/역사 2011-06-15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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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총, 균, 쇠

재레드 다이아몬드 저/김진준 역
문학사상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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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네 백인들은 그렇게 많은 화물들을 발전시켜 뉴기니까지 가져왔는데 어째서 우리 흑인들은 그런 화물들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 저자의 뉴기니인 친구의 말이다.

인류학 개론서면 빠지지 않는 소재가 화물숭배(Cargo Cult)이다. 태평양전쟁 때 뉴기니는 미군의 주요거점이었다. 미군 수송기가 자주 드나들 수 밖에 없었고 비행기가 와 화물(cargo)을 내려놓고 떠나면 온갖 좋은 음식과 물건이 나오는 것을 보고 원주민들은 종교를 만들었다. 미군처럼 차려 입고 가짜 관제소에 가짜 활주로를 만들어 의식을 거행하면 비행기가 친히 화물을 “내려주신다”고 믿는 종교이다.

화물숭배는 서구의 물질적 부를 처음 본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그 부를 얻을 수 잇을까 고민한 결과이다. 예전처럼 마술과 종교적 의례를 행하면 신들과 조상님이 그 부를 줄 것이란 생각이었다. 그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그런 방법이 효과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화물숭배는 사라졌다. 종교가 사라진 곳에 의문이 남았다. 그들은 어떻게 그런 부를 갖게 된 것일까?

여러가지 설명이 있었다. 많은 설명들은 결국 ‘백인님들’이 너무 잘나서 그렇다는 말의 동어반복일 뿐이었다.

그러나 정말 백인들이 잘난 것일까? 조류학자로서 뉴기니의 자주 드나들었던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본래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뉴기니인들의 사회에서 33년 동안 그들과 함께 일하면서 얻은 결론이다. 뉴기니이들과 처음으로 일을 시작할 때부터 나는 그들이 평균적인 유럽인이나 미국인보다 지능도 높고 빈틈없고 표현력도 풍부하고 주변의 사물이나 사라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고 느꼈다. 합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흔히 두뇌의 기능을 나타낸다고 판단되는 일, 이를테면 낯선 곳에 가서도 그곳의 전체 모습을 금방 파악하는 능력 등에서 그들은 서구인들보다 상당히 능숙해 보인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서구에서 사산되지 않고 태어난 신생아들은 자신의 지능이나 유전자와는 상관없이 이제는 치명적인 질병으로 죽는 일도 거의 없고 대부분 무사히 성장하여 자식을 낳는다.” 그러나 “전통적인 뉴기니인들은 살인, 만성적인 부족 전쟁, 각종 사고, 먹거리 조달 등의 어려움으로 높은 사망률을 감수해야 했다. 지능이 낮은 사람들보다 높은 사람이 그런 높은 사망률의 각종 원인들을 무사히 피하기가 쉽다.”

그 뿐만이 아니다. 서구인들이 바보 상자 앞에 매달려 보내는 시간에 뉴기니의 “어린이들은 다른 어린디들이나 어른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함께 노는 등 어떤 능동적인 일을 하면서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보낸다.“

개인들의 능력으로는 두 사회의 차이가 설명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뉴기니인 친구의 질문에 어떤 답을 할 것인가? 저자는 ‘운’이라 말한다. 서구인들이 아니 유라시아인들이 더 유리한 환경을 타고난 운이라 저자는 말한다.

“애덤 스미스에게 자본이란 ‘필요한 경우 미래의 언젠가 사용하기 위해 비축, 저장한 일정량의 노동’을 뜻한다.” 비축할 것이 없는 수렵채집 사회에선 자본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잉여를 낳는 농업은 자본을 만들 수 있다. “일단 자본이 등장하자 혁신의 속도가 곧바로 빨라졌다. 초기 수익이 전혀 없는 프로잭트에 시간과 자산을 투입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렵채집인을 보자. 용광로를 건설하고 도끼 한 개를 만들 만큼의 구리를 힘들여 천천히 제련할 시간적 여유가 거의 없었다. 그러는 동안 굶어죽고 말았을 것이다. 설사 그렇게 만든 도끼를 판매할 시장을 찾을 수 있다고 해도 말이다.” (매트 리들리) 농업이 있었기에 ‘화물’을 만들어낼 조건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농업만으로 뉴기니인들이 ‘화물’을 못 만든 이유가 되지 않는다. 뉴기니는 중동, 중국, 인도와 함께 독자적으로 농업이 시작된 지역이다. 뉴기니인 친구의 질문에 대한 답은 뉴기니와 (화물을 만들어낸) 유라시아 지역의 농업이 어떻게 달랐는가, 이어야 한다.

“식량 생산은 많은 지역에서 토종 곡류와 콩류가 결합된 형태의 작물화로부터 시작되었다. 가장 낯익은 예들을 찾는다면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밀 보리와 완두콩 렌즈콩의 결합, 중앙아메리카에서 옥수수와 몇 가지 완두류의 결합, 그리고 중국에서 벼 기장류와 메주콩을 비롯한 잠두류의 결합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유라시아 특히 비옥한 초승달 지대는 다른 지역들과 달랐다. 이 지역에서 작물화된 밀 보리 등은 작물화되기 전의 조상식물 때부터 “이미 먹을 수 있었으며 야생 상태에서도 수확량이 많았다. 재배하기도 쉬워서 그냥 뿌리거나 심는 것으로 충분했다. 성장속도도 빨랐으므로 뿌린 후 몇 달 만에 추수가 가능했다.” 밀 보리에 필적할만한 작물은 중국에서 작물화된 벼 뿐이다.

중동지역은 이런 식물군의 잇점 덕분에 농업이 빨리 시작될 수 있었고 처음부터 경제적이었기 때문에 기술혁신이 빨랐다. 그리고 잉여를 기반으로 정치조직의 혁신도 빨랐다.

“밀과 보리의 신속한 진화를 신세계의 중심 곡류인 옥수수와 비교해보자. 옥수수의 조상일지도 모르는 야생 식물은 돼지 옥수수이다. 식량으로서 돼지옥수수는 수렵 채집인들에게 별다른 매력이 없었다. 야생 상태에서 야생 밀에 비해 생산성이 낮았기 때문이다. 또한 종자는 거기서 발전된 옥수수보다 훨씬 조금 열렸고 그나마도 먹을 수 없는 딱딱한 껍질에 사여 있었다. 그러므로 돼지옥수수가 쓸모 있는 농작물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생식 생태에 파격적인 변화가 일어나서 종자에 대한 투자를 크게 늘리고 그 돌 같은 껍질은 떼어버려야 했다. 적어도 그 크기로부터 현대의 크기까지 다시 수천년의 세월이 더 걸렸다는 것만은 명백하다. 밀과 보리의 즉각적인 장점들과 돼지 옥수수의 문제점들 사이의 이 대조적인 차이는 곧 신세계와 유라시아에서 인간 사회의 발전 양상이 서로 달라졌던 일에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중동지역은 쉽게 작물화할 수 있으면서 생산성도 높은 식물이 유난히 많았다. “블루믈러는 세계에 존재하는 수천 종의 야생 벼과 식물 중에서 종자가 가장 큰 56종을 가려내어 일람표를 작성햇다. 자연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랄 수 있는 이 종들은 모든 벼과 식물의 중간값에 해당하는 종자보다 적어도 열배 이상 무거운 종자를 가진 것들이었다.

이 식물들은 비옥한 초승달 지대를 비롯하여 유라시아의 지중해성 기후대에 속하는 몇 지역에 압도적으로 집중되어 있어 그곳의 초기 농경민들에게는 선택 폭이 엄청나게 넓었던 셈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훌륭한 56종의 벼과 식물 중에서 자그마치 32종을 독차지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식물만이 아니다. 소와 말같이 인간의 노동을 대신할 수 있는 가축이 될 수 있는 대형포유류 역시 유라시아에서만 존재했다. “가축화된 포유류의 중요성은 대형 육서 초식동물의 종수가 놀라울 만큼 적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대형’이라는 말을 체중 45Kg 이상이라고 정의한다면 20세기 이전에 가축화된 대형종은 모두 14종에 불과하다. 고대 14종의 야생 조상들은 지구상에 고르게 분포되어 있지 않았다. 남미에는 1종 밖에 없었다. 북미, 호주,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는 단 1종도 없었다. 고대 14종 중에서 13종의 야생 조상은 모두 유라시아에 국한되어 있었다.”

유라시아 환경의 이런 장점은 가장 넓은 땅덩어리란 점 때문이다. 그러나 유라시아의 장점은 땅이 커서 다양성이 높다는 것만이 아니었다. 땅의 방향도 문제엿다.

“일부 지역은 다른 지역들보다 식량 생산이 시작되기에 더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듯이 식량 생산 전차의 난이도 역시 세계적으로 크게 달랐다. 식량 생산이 가장 신속하게 전파되었던 경우는 동서 축 방향이다. 그와 반대로 식량 생산이 가장 느린 속도로 전파되었던 것은 남북 축 방향이다.”

유라시아 대륙의 축은 동서 방향이고 아메리카와 아프리카는 남북 축이다. 동서축이 유리한 이유는 비슷한 위도를 따라 동식물이 전파되기 쉽기 때문이다. 위도가 비슷하면 환경도 비슷하다. “같은 위도상에 동서로 늘어서 있는 지역들은 낮의 길이도 똑깥고 계절의 변화도 똑같다. 그리고 일치하는 정도는 좀 덜하지만 질병, 기온과 강우량의 추이, 생식지나 생물 군계 등도 서로 비슷한 경향이 있다.”

“가축과 농작물이 전해진 뒤에는 역시 비옥한 초승달 지대나 그 부근에서 생겨난 발명품들도 따라왔다. 그 속에는 바퀴, 문자. 금속 기술, 젖짜기, 과실수, 그리고 맥주와 포도주 제조 기술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농업의 힘은 식량 생산으로 인구가 훨씬 조밀해지기 때문에 생겨났다. 열 명의 비무장 농경민이 한명의 비무장 수렵채집민과 싸운다면 분명 농경민이 유리ㅗ하다. 또 농업의 힘은 결코 비무장 상태에서는 생기지 않는다. 농경민들은 더 나은 무기와 갑옷을 가졌으며 일반적으로 더 강력한 기술을 소유했다. 또한 그들의 중앙집권적 정치체제에는 문자를 알고 정복전쟁에 더 유능한 엘리트 계급이 있었다. 그리고 농경민들은 더 지독한 병원균을 내뿜었다.”

이책의 제목이 정해진 이유이다. 농경은 총과 쇠란 군사적 우위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그뿐 만이 아니었다. 유럽인의 아메리카 정복에서 보듯이 그보다 질병이 (핵폭탄보다) 더 강력한 무기엿다.

저자는 우리가 아는 거의 대부분의 전염병은 농경과 함게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인구밀도가 높아지니 전염병이 만들어질 좋은 조건이 된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강력한 이유는 가축이라 말한다. 저자는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전염병은 우리가 가축화한 다른 사회적 동물의 병균에서 진화된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농경과 전염병의 역사는 같다.

병균과 함께 “기술은 무기와 운송이라는 형태로 일부 민족들이 영토를 확장하고 다른 민족들을 정복하는 직접적인 수단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술은 역사에 있어서 가장 광범위한 경향의 주된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어째서 총포류, 바다를 건널 수 있는 배, 철제 기계류 따 따위 발명한 사람들은 아메리카 원주민이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사람들이 아니라 유럽인들었을까? 이러한 불균형은 인쇄기에서 유리, 중기 기관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중요한 기술적 진보에서 나타나고 있다. 어째서 그 많은 발명품들이 모두 유라시아에서 만들어졌을까?" 이 역시 유라시아의 동서축과 유관하다고 저자는 생각한다.

“확산을 통해 발명품을 가장 잘 습득할 수 잇었던 사회는 주요 대륙에 속해 있는 사회엿다. 기술은 이들 사회에서 가장 신속하게 발달했다. 직접 만든 발명품뿐 아니라 다른 사회의 발명품까지 흡수하여 기술을 축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중세 이슬람은 유라시아의 중앙부에 위치해있었으므로 인도와 중국의 발명품들을 입수했고 고대 그리스의 지식도 물려받았다.”

역사는 “기술의 혁신에서 지리와 확산이 담당하는 역할을 잘 보여준다. 확산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기술을 습득하는 일이 적어지고 기존의 기술을 잃어버리는 일은 많아진다. 각 지역의 기술들이 새로 생기거나 유지되기 위해서는 그 지역의 발명품 뿐 아니라 다른 지역으로부터 확산되어 들어오는 각종 기술도 필요했다. 그렇기 때문에 기술이 가장 신속하게 발전한 대륙은 확산에 대한 지리적 생태적 장애물이 적은 대륙들이었다.”

“각 대륙의 면적, 인구, 확산의 난이도, 식량 생산의 출발 시기 등에서 나타난 이 같은 차이에 따라 기술 발전의 차이는 더 크게 벌어졌다. 왜냐하면 기술은 자가 촉매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라시아는 처음부터 상당히 유리한 입장에 있었지만 1492년에 와서는 더욱 엄청나게 앞서가고 있었다. 그것은 유라시아인들의 지능이 탁월해거가 아니라 유라시아의 지리적 요인들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내가 알고 있는 뉴기니인들 중에는 잠재적인 에디슨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그들은 그 천재성을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서 필요한 기술적인 문제들을 해겷하는데 활용했다. 즉 축음기를 발명하는 문제도다는 뉴기니의 정글에서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은 채 살아남는 문제에 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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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스완’의 의미 | 인문/사회/역사 2011-06-12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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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블랙스완에 대비하라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저/김현구 역
동녘사이언스 | 2011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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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책자는 저자의 전작인 ‘블랙 스완’에 대한 오해를 풀기 위해 쓰여졌다. “’블랙 스완’은 중대한 인식론적 한계, 즉 개인적 집단적 차원에서 지식에 대한 심리적 철학적 한계를 다룬다. 나는 이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전작에서 자신을 소개하라면 ‘한가지 문제에만 집중하는 게으른 독서가’라고 할 것이라 했다. 저자가 말하는 ‘한 가지 문제’가 바로 그가 말하는 인식론적 한계이고 검은 백조는 그 상징이다.

저자가 말하려고 한 것은 우리 지식의 한계를 알자는 것이고 저자는 철학전통에 따라 자신의 입장을 ‘회의적 경험주의’라 말한다. 그는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기 위해 복잡계 이론을 동원해 자신의 입장과 대립하는 전통을 공격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열심히 보았지 손가락이 가리킨 달은 보지 못한다고 저자는 생각한다. 이책은 저자의 답답함 때문에 쓰여졌다.

“나는 전문가들이 ‘블랙 스완’의 메시지를 이해할 때 직면하는 어려움을 간략히 언급할 것이다. 놀랍게도 평범한 독자, 아마추어, 내 친구들은 어려움을 덜 겼었다.” 전문가들은 “전문 용어들을 살펴보고 선입견들과 재빨리 연결시키면서 빠르고 효율적으로 읽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향은 ‘블랙 스완’에서 표현된 생각들을 기존 틀에 구겨 넣는 결과를 초래했다. 나의 입장이 회의론, 경험론, 본질론, 실용주의, 포퍼적인 반증주의, 나이트적 불확실성, 행동경제학, 지수법칙, 카오스 이론 등으로 환원될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블랙 스완’의 내용은 분명 그런 용어들로 설명된다. 그러나 저자가 그런 내용들을 동원한 것은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이지 입장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려는 것은 ‘세계가 존재론적으로 불확실하고 우리는 인식론적으로 그 불확실성을 알 수 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라는 실천론이 저자의 관심이다. ‘블랙 스완’에서 저자의 입장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을 고르라면 여기저기서 동원된 이론들이 아니라 그 이론들의 의미랄 수 있는 ‘바벨 전략’이 오히려 적당하다.

월스트리트의 현자라 불리는 저자가 말하려는 것은 이론이 아니다. 세상이 어떠하니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란 물음에 답하는 것이 저자의 목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블랙 스완’을 과학 서적도, 사회과학 서적도, 경제서적도 아닌 철학책이라 부른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철학이란 요즘 우리가 보는 강단의 무기력한 공론이 아니다. 그가 말하는 철학이란 렐레니즘 시대의 스토아 학파와 같이 삶에 대해 묻는 철학이다.

그러므로 이 소책자는 ‘블랙 스완’ 이후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잇지 않다. 단지 자신의 주저가 오해받고 잇다는 답답함이 이책을 쓴 이유이다.

이책의 목적이 그렇기 때문에 이책은 ‘블랙 스완’을 읽지 않은 사람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 책 곳곳에서 볼 수 있듯이 이책에는 블랙 스완의 몇장에서 말한 내용이 어쩌고, 그에 대해 사람들이 말한 내용이 어떻다. 그런 내용이 주를 이룬다.

그렇기 때문에 이책은 ‘블랙 스완’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도 별 의미는 없다. 그러나 블랙 스완을다시 읽어봐야 겠다거나 블랙 스완의 내용이 가물가물 하다거나 다시 그책의 내용을 되새기겠다는 사람에겐 의미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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