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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전야? | 인문/사회/역사 2012-03-14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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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국의 전쟁

프랑수아 랑글레 저/이세진 역
소와당 | 2012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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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가 두 가지 잇다. 하나는 (2008) 8월초 러시아와 그루지야가 벌인 짧은 전쟁이고 다른 하나는 9 15일 리먼 브러더스 파산이다.” 두 에피소드는 탈냉전 시대의 종식을 보여준다.” (캘리니코스) 두 에피소드 중 리먼브러더스 파산은 이해하기 쉽다.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번 위기로 미국의 헤게모니가 무너졌다는데는 별다른 이의가 없다. 그러나 러시아와 그루지야의 전쟁은 설명이 필요하다.

 

공산권의 붕괴와 함께 찾아온 탈냉전시대는 미국 헤게모니의 정점처럼 보였다. 그 시절 미국의 세계전략 중 하나는 러시아를 봉쇄해 다시는 과거와 같은 슈퍼파워가 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엇다. 그러나 러시아는 다시 부활했다. 물론 러시아가 옛 소련이나 러시아 제국을 부활시키려 한다는 말은 옳지 않다. 옛 제국의 영역에서 러시아 중심의 제도적 구조와 지리적 관계구조를 새로 창출하고 있다는 말이 옳다. 세계수준에서 러시아는 이 새로운 지역적 파워를 이용해 미국이 우위를 잃고 있는 세계체제에서 일정한 구실을 하고 싶어한다.” 러시아-그루지야 전쟁은 러시아의 그런 전략이 통하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이 뒷배를 봐주던 그루지야에 전쟁을 걸 수 있었던 직접적 이유는 미국이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에 발이 묶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전쟁은 미국의 권력이 쇠퇴하는 훨씬 더 장기적인 지정학적 과정의 한 단계라 캘리니코스는 말한다.

 

부시 2세 정부가 추진했던 세계적 프라젝트를 논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이 프라젝트의 재앙적 실패야말로 여러모로 오늘날의 세계정세를 만든 결정적 요인이기 때문이다. 부시 2세의 프라젝트는 부시 1세와 빌 클린턴 정부의 노선을 더 과격하게 추진한 것이라 이해람이 가장 적절하다. 부시 부자와 큰린턴은 모두 옛 소련이 붕괴하면서 미국이 유일 초강대국이 되긴 했지만 세계의 경제력 분포가 바뀌면서 전보다 미국경제의 비중이 축소되고 동아시아의 비중이 확대되는 상황에 맞닥뜨렸다. 그러한 상황에서 부시 부자와 큰린턴 모두 2차대전 이후 확립된 국제 공조체제를 유지, 확대해 미국의 헤게모니를 굳히려 했다. 그러나 부시 2세정부는 미국의 양대 비교우위인 펜타곤과 달러의 힘을 부시 1세나 클린턴 정부 때보다 더 일방적이고 공격적으로 휘둘렀다.” (캘리니코스)

 

달러는 이번 위기로 무너졌다. 그리고 펜타곤도 이라크에서 무너졌다. “프리드먼이 쌍둥이 위기라 부른 2008년의 위기 때문에 부시의 프라젝트는 더욱 엉망이 돼 버렸다. 우선 부시 정부는 캅카스 지역에서 러시아를 도발해 또 다른 역풍을 자초했다. 냉전 종식 후 미국의 세계전략에서 한가지 핵심은 러시아가 약해진 것을 틈타 유럽연합과 나토를 동유럽으로 확장해 러시아를 포위하는 동시에 미국의 영향력을 유라시아 대륙 깊숙이 확장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세계전략은 그루지아에서 러시아의 저항에 부딪혔다. “이 사건은 많은 사람들에게 미국 군사력의 한꼐를 보여주는 징후일 뿐 아니라 지난 70년간 미국이 구축하고 점진적으로 확장해온 초국적 자유자본주의공간의 한계를 보여주는 징후로 읽혔다. 지금은 오직 미국만이 진정한 글로벌 파워다. 그러나 그 때문에 미국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자신의 역량을 더 넓게 분산해야 하고 폴 케네디가 제국의 과잉확장이라 부른 위험에 노출되었다. 러시아는 바로 미국의 과잉확장위기를 기회로 활용할 수 있었다. 금융위기로 미국의 헤게모니는 더욱 금이 갔다. 그것은 이라크의 재앙 이후 또 하나의 엄청난 상징적 타격이다. 잘 나간다던 영미식 자본주의가 별안간 자폭하면서 세계경제까지 함께 끌어내렷으니 말이다.” (캘리니코스)

 

금융위기는 더 직접적으로 미국의 패권을 약화시켰다. 앞으로 미국정부는 경제위기에 대처하느라 정치적, 경제적 자원을 소진하게 될 것이고 다른 문데 신경 쓸 겨를이 없을 것이다.” (캘리니코스)

 

그러나 미국 헤게모니는 아직 종식되지 않았다. 왜 일까? “위기가 닥쳤을 때 다른 경제체제들이 대부분 미국보다 훨씬 더 큰 타격을 입엇기 때문이다. 미국을 가장 소리 높여 비난하던 러시아와 베네수엘라는 완전히 찌그러졌다.” (닐 퍼거슨) 미국이 약해졌지만 그 약해진 미국조차 상대할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앞으로 수십년 동안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경제대국으로 남아있을 가능성이 크다.” (캘리니코스) 미국은 과거 그들의 경쟁우위를 보장해주엇던 것을 아직 잃지 않았다. 그 힘 덕분에 미국은 19세기 말에 비스마르크가 건설한 독일처럼 될 잠재역이 있다. 당시 독일은 유럽의 주요 국가들이 서로 맺고 잇던 관계보다 더 긴밀한 관계를 각각의 주요 국가와 맺은 유럽의 정직한 중재자였다. 말하자면 독일은 유럽 국가 체제의 허브였다.” (자카리아)

 

자카리아의 말은 미국은 경제위기로 약해지긴 했어도 여전히 국가 체제 속에서 극점을 차지하리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의식적으로 관리되는 강대국들의 합창곡을 계속 지휘할 수 있을” (캘리니코스)이란 말이다. 그러나 그 합창곡은 갈수록 불협화음이 될 공산이 크다. 그 이유는 미국이 중심에 있었던 그 허브의 그물망이 찢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캘리니코스 그루지야 사태를 중요한 사건으로 보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리고 러시아만 그 그물망을 찢고 나온 것이 아니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중국이다. 그리고 그것은 충돌의 전주곡이라 이책의 저자는 본다.

 

미국 헤게모니의 붕괴조짐은 중국에 엄청난 여파를 남겼다. 바로 중국이 자신의 힘을 깨닫는 계기가 된 것이다. (2010년 기준) 2년전부터 중국은 모든 영역에서 오만하게 자국의 힘을 시험해보고 있다. 영유권 분쟁 같은 쓸데없는 위신 세우기에 힘들 쏟는 것도 그 예이다. “중국은 세계경제위기를 계기로 자신의 패권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확신은 과거의 패권국이나 패권국 후보들과는 심리적 배경이 아주 다르다고 저자는 본다. “중국인들에게 지금의 성공은 단순한 발전이 아니라 일종의 복수다. 200년간 세계최고의 자리를 감히 찬탈했던 서양인들에 대한 복수이다. 오늘날 중국의 성공은 민족주의적 상처를 달래기는커녕 더욱더 그 상처를 자극한다. 그러한 성곡이 강대국이 되겠다는 의지를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중국이 과거에 누렸던 번영의 공백기는 이 정도 성공에 만족하지 못하게 한다. 모든 신흥강국들이 그렇듯 중국도 현재 세계의 패권을 쥔 미국이 자신의 앞길에 훼방을 놓는다고 생각한다. 중국이 마땅히 누려야 할 위상을 누리고 강대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지 못하게 미국이 수작을 부린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19세기 말에 독일이 영국이라는 당시의 강대국에 그러한 생각을 품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포위 컴플랙스는 평범한 중국인뿐 아니라 중국지도자들에게도 있다.”

 

저자는 그 콤플렉스가 피행망상이라 치부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 뿌리는 미국과의 관계가 시작된 40년전으로 올라가기 때문이다. “중미수교 40여년은 ‘9’로 끝나는 해마다 조금씩 더 복잡하고도 애매한 관계로 발전해왔다. 상대에 대한 감탄과 멸시, 상호필요와 성가신 의존성으로 이루어진 관계그 관계의 시작은 서로의 필요 때문에 시작되었다.

 

베트남에서 발을 뺄 궁리만 하던 닉슨에게 중국은 좋은 카드가 되어 주었다. 하노이를 지원하는 소련을 고립시켜 소련에게 타격을 주고 하노이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이용해 협상을 시작할 수 잇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중국 입장에서도 미국은 좋은 카드였다. 점점 사이가 나빠지던 소련 대신 손을 잡을 상대가 되어주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베이징은 미국과의 화해에서 유익한 교훈들을 끌어냈다. 우선 중국은 미국과의 알력 관계를 경험하면서 중국 밖의 세상을 다루는 법을 익혔다. 미국과의 관계는 중국에게 불리할 것이 없었다. 닉슨과 키신저의 태도는 중국인들에게 중국없이는 강대국도 제구실을 할 수없다는 생각을 굳혀주었다. 심지어 미국 대통령은 자기 나라에서 재선에 성공하기 위해 중국을 필요로 하지 않는가. 중국은 안심하고 문을 열었다.” 덩샤오핑은 미국의 기술력과 대기업들이 필요했다. 이때를 기점으로 중미관계는 그 성격 자체가 변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중국입장에서나 미국입장에서나 소련이라는 곰을 궁지에 몰기 위해 손을 잡을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경제적 계산이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그러나 그 관계는 중국입장에서 자존심을 끊임없이 건드려 댔다. 앞에선 중국만 인정한다고 말하면서 뒤로는 반역도당, 대만에 무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선거때만 되면 베이징에 날아와 사진을 찍고 돌아간다. 만리장성에 찍은 사진은 세계의 리더라는 이미지를 팔아 표를 사는데 그만이기 때문이다. 닉슨도 그랫고 카터도 그랬으며 중국을 빨갱이라 욕하던 레이건도 그랬다.

 

정말 우끼는 건 매년 최혜국대우를 갱신할 때이다. “중국의 대미 수출에 있어 가장 중요한 미국의 최혜국 대우연례 갱신은 봄마다 빠지지 않는 코미디엿다. 이 코미디의 1막은 클린턴이 위협을 하고 미 의회가 적의를 드러내면 중국이 초조해한다. 2막에 들어가면 로비가 기승을 부린다. 1973년에 중국에 진출한 미국 주요기업들의 모임으로 설립된 미중무역전국위원회를 비롯하여 수많은 단체들이 알력을 행사한다. 반체제 투사 몇 명 감싸겠다고 중국시장을 막아버렸다가는 미국 재계 전체가 위험에 빠질 수있다고 경고를 하면서 말이다. 3막에 들어가면 미국 행정부가 중국의 최혜국 대우를 한해 더 갱신해주고 그들의 후퇴를 감추기 위해 중국인들에게 훈계를 늘어놓는 식이다. 그러나 현실은 중국의 값싼 노동력을 십분 활용하는 미국기업들에게 클린턴이 그러한 특혜를 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정말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처음 수교를 할 때만 해도 중국은 강대국으로 미국을 대우해주었고 미국도 중국을 인정해주었다. 그러나 갈수록 미국은 중국을 아이 다루듯 인권이 어떠느니 설교를 늘어놓는다. 말만 그렇게 하는게 아니다. 은하호 사건같이 남의 상선을 불법으로 나포하고 나서는 자신들이 주장하는 혐의가 사실무근이라는 것이 밝혀져도 사과하나 없다. 힘 없는 것이 죄다.

 

은하호 사건은 중국인들의 새로운 두려움을 기정사실화했다. 그것은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이 독불장군 노릇을 하며 도발을 계속하리라는 두려움이엇다. 물론 소련의 붕괴로 중국은 무거운 부담 하나를 덜었다. 그러나 소련이 사라지자 천하는 미국의 것이 되었다. 이미 2년전에도 워싱턴은 걸프전을 자국의 이익에 이용한 바 있었다. 경제분야에서 중국은 이제 자국의 힘을 확신하고 상승국면을 타고 있었다. 그러나 외교분야에서 중국인들은 유일한 강대국, 그들이 전략적 수단을 써볼 여지가 없는 대상을 상대하고 있었다. 러시아가 혼란에 빠진 지금 미국을 상대하기 위해 누구에게 기대며 누구와 동맹을 맺는단 말인가? 자유주의 질서와 미국의 지배는 역사의 종말이라는 말이 나올만큼 서방사회를 안심시킨 반면 중국을 더욱 불안으로 몰아넣었다.”

 

1999년 베오그라드 중국대사관을 오폭한 사건은 중국을 드디어 폭발하게 햇다. “베이징에서 반미시위가 일어났다. 천안문 민주화운동 이후 최대규모의 시위였다. 1949년 이래 중국의 민족주의가 이처럼 대대적으로 폭발하기는 처음이엇다. 중국의 반미운동은 중국이 서양 특히 미국에 얼마나 깊은 원한을 품고 잇는지 잘 보여주었다.” 그 사건은 중국인들의 상반된 두 감정, 즉 치욕의 한 세기에서 얻은 열등감과 위대한 제국의 유구한 역사에 뿌리내린 극도의 오만함을 자극했다.”

 

이후 두 감정 중 오만함이 더 두드러지기 시작한다. “200년대 초 중국은 과거 1850년대에 이미 이룩했던 높은 생활수준을 되찾는다. 구매력 기준 국민소득은 서양의 20%수준이었?. 중국 역사상 생활수준이 가장 밑바닥까지 떨어졌던 때는 1975년 문화대혁명시기였는데 당시 중국의 구매력 기준 국민소득은 서양의 7.5%에 불과했다. 이러한 경제성과는 중대한 전략적 변화, 특히 미국과의 관계에서의 입장변화를 가져왔다. 우선 중국은 자율권을 얻엇다. 더욱 결정적인 또 다른 터닝 포인트가 있다. 중국은 서양의 경제모형과는 다르지만 효율성이 결코 뒤떨이지 않는 경제모형을 만들어냈다는 자각을 갖게 되었다. 중국의 경제적 상승은 워싱턴 합의를 활용한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2000년대 초에 자국의 힘과 성공에 대한 중국의 자각은 새로운 단계로 넘어간다. 이러한 계시와 자기에게 투사하는 이미지 덕분에 중국은 전방위적 외교에 나서게 된다. 이때 베이징은 중국의 약진이 불어일으키는 두려움을 잠재우기 위해 서양을 향한 새로운 컨셉의 선전공작을 편다. 화평굴기 즉 평화적 부상론이 바로 그것이다. 그 메시지의 의미는 명백하다. ‘강대국으로 나아가는 우리의 앞길을 방해하지 말라. 우리가 언제나 차지했던 그 위상을 되찾게 되더라도 세계의 안정을 위협할 일은 없을 것이다.’” 미국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뿐이었다.

 

그러나 미국과의 관계는 2008년 역전되는 듯했다. “중국은 미국을 호되게 후려친 글로벌경제위기를 희소식으로 받아들였다. 이 불황은 중국이 세계무대에 나서서 미국을 무릎 꿇릴 기회였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미국이 그동안 지은 죄대로 벌을 받는다 여겼다.” 그러나 남의 집 불구경이 아니었다. 수출이 타격을 받으면서 중국도 나름 호되게 당해야 햇다. 이후 중국이 미국을 대하는 태도는 달라진다. 더 이상 겁낼 필요도 없고 덕분에 피까지 봤으니 할말은 하고 살아야 했다.

 

2009“4월 중순 중국중앙은행자 저유샤오촨이 충격적인 발표를 했다. 그는 1971년 이후로 계속 변동하고 잇는 달러를 기분으로 하는 현 통화체제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따졌다. 저우샤호촨의 발언은 국제 금융계에 엄청난 파문을 몰고 왔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중미관계가 드러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발언은 미국의 세계경제 지배를 중국이라는 도전자가 정면으로 반박했다고 봐야 한다.” 그의 발언의 진의는 이런 것이었다. “달러화 때문에 자기네들이 가진 금융채권의 위험도가 커지고 그렇기 때문에 달러를 국제기준통화로 삼는 체제를 지지할 수 없다.” 다들 하는 생각이지만 중국은 이젠 그럴 말을 해도 될 때라고 본 것이다. 중국의 도발은 그외에도 여러 외교채널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오바마는 집에 난 불 때문에 중국과 불장난을 하고 싶지 않았고 그냥 모른 척 넘어가기만 했다.

 

미국과 중국은 충돌할 수 밖에 없는가? 현재로선 터무니 없다. 군사력이란 체급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의 국방비는 5년마다 두배로 불어나고 잇다. 베이징의 국방예산이 워싱턴의 국방예산을 뛰어넘는데는 10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2020년에는 중국이 대만을 침공한다 해도 미국의 힘으로 저지할 수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미국은 엄청난 적자의 제약에 매여 있으므로 중국의 전진을 저지하는데 필요한 투자가 부담스럽다.”

 

물론 체급이 같아진다고 싸우란 법은 없다. 더군다나 전통적으로 중국은 정복전쟁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역사를 살펴보건대 단기간에 군비를 확충하고서 정작 그 군비를 사용하지 않었던 나라는 없다. 나라가 닫혀 있을 때에는 자국의 안보에만 집중했다. 대만과 티벳에 대한 집착은 포위 콤플렉스로 해석해야 한다. 그러나 중국은 20년전부터 크게 개방되엇고 중국은 자국 영토를 둘러싼 광대한 바다를, 석유와 원자재가 이동하는 전략적 경로를, 그리고 이러한 성장의 귀중한 동력을 공급하는 국가들을 주시할 수 밖에 없다. 중국이 개방을 하기 전에는 이 나라의 주요한 이익지역은 대만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개방 이후에 이 지역은 동심원을 그리며 크게 확장되엇다. 중국이 자국에 없지만 꼭 필요한 상품의 수입에 의존하면 할수록 그 지역은 더욱 확장될 것이다. 해외에서 취득하는 광산, 기업, 인프라등의 자산이 늘어날수록 그러한 자산을 보호해야 할 필요가 생긴다. 미국도 자기네들의 경제적 이익을 보호해야 할 때에는 폭력을 동우너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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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여름 | 인문/사회/역사 2012-03-14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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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기후, 문명의 지도를 바꾸다

브라이언 페이건 저/남경태 역
예지(Wisdom) | 2007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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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고고학자들은 기후변동이 인간사회를 변화시켯다는 것을 그다지 믿지 않는다. 기후변동이 농경이나 문명 같은 중대한 발전의 주요한 원인이라 보는 환경결정론은 오래전부터 학계에서 금기엿다.” 결정론은 언제나 극단성 때문에 오류로 증명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환경이, 기후변화가 무시되어도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여기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생존을 위한 농경의 역학이다. 12천여년전 농경이 시작된 이래 사람들은 춥고, 습하고, 온난하고, 건조한 기후가 교대되는 주기 속에 살아왔다. 생존을 좌우하는 것은 농작물의 생산량과 다음해에 파종할 씨앗의 양이었다.”

 

인간도 먹어야 사는 동물이다. 인간 역시 먹이의 증감에 따라 인구가 결정된다고 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리고 그 먹이의 증감을 결정하는 가장 큰 변수가 기후의 변동이다. 그러나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기후의 변동이 식량의 증감에 영향을 주는 정도를 바꿀 수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그 능력을 취약성의 정도라 본다.

 

나는 인간이 장단기적 기후변동에 점점 더 취약해졌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기후변동에 대응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졌고 비용도 커졌다. 수만년 동안 인구는 거의 늘지 않았ㅆ고 모두 수렵과 야생식물의 채집으로 살았다. 생존하려면 기동력이 더 뛰어나고 기회를 잘 포착해야 했다. 하루를 살아가기도 불확실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기후의 충격을 완화하는 방법을 익히게 되었다. 이를테면 무리 전체가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든가 무리의 일부를 나누어 다른 지역으로 보낸다든가 원치 않는 음식도 먹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 취약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움직여왔다고 저자는 본다. 저자는 농업이 시작된 것 자체가 기후변화와 취약성의 정도를 높이는 사이클 때문이었고 역사는 그 사이클이 계속 강화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고 말한다.

 

농업이 처음 시작된 곳은 중동지역이다. 빙하기가 끝난 기원전 13000년 이후 서남아시아는 온난한 환경으로 바뀌면서 도토리를 품은 참나무 숲이 크게 늘었다.” 식용식물이 많아지면서 사람들은 이제 임시 근거지에 살지 않고 제법 큰 규모의 영구 공동체를 이루어 살았다.도토리와 피스타치오를 많이 수확했다. 그 두 견관는 무엇보다 저장이 용이했다. 도토리와 피스타치오는 한 장소에서 오랜기간 머물기에 충분한 식량을 생산했다. 그러나 풍요에는 대가가 따랐다.” 도토리를 먹을 수 있게 가공하는데 막대한 노동력을 지출해야 했다. 일곱시간을 투여한 뒤에야 가족이 며칠 먹을 음식재료를 만들 수 있었다. 도토리가 주식이 되면서 공동체의 생활이 달라졌다.” 긴 노동을 할 정주지가 필요해진 것이다.”

 

그러나 식량공급이 안정적이 되면서 인구가 급증했고 소폭의 기후변동에도 매우 취약한 한계환경을 유발했다. 그들은 환경적 취약성의 문턱을 넘은 것이다.”

 

기원전 11000년경 마침내 심한 가뭄이 닥쳤다. 북미에서 빙하가 녹은 민물(아가시호)이 대량으로 래브라도 해로 방출되엇다. “아가시의 녹은 물은 명분 농도가 짙은 멕시코 만류의 위로 떠올라 일시적으로 뚜껑처럼 작용하면서 난류가 식어 가라앉는 것을 막았다.” 대서양 순환이 멈춘 것이다. “추위는 1천년 동안 지속되었다. 1천년의 기간을 영거 드리아스기라 부른다. 북쪽이 다시 빙하로 변하고 대서양 순환이 차단되자 멀리 서남아시아에 즉각 기후변화가 일어났다.

마지막 빙하기처럼 차가운 역선풍이 다시 불었다. 서남아시아는 1천년동안 길고 심한 가뭄에 시달렸다.”

 

그리고 숲이 사라졌다.그러나 사회적 유연성과 기동성의 고전적 전략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았다. 오랜기간 평안하게 살았던 결과 촌락 인구는 300~400명으로 불어나 있었다. 인구 밀도는 떠돌이 생활을 하던 시절에 비해 훨씬 높았다.” 그러나 영구정착지는 더 이상 소용이 없었다. 식량사정만 더 악화될 따름이엇다.” 많은 촌락이 버려졌다.

 

물론 처음부터 버려진 것은 아니다. 뭔가 방법을 찾으려 했고 기원전 10000년경부터는 합당한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식물을 재배하여 수확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터키 동부에서 외알밀의 재배는 급속히 퍼져나갔다. 닭과 나비나물도 마찬가지엿다. 그밖에 에머밀, 완두콩, 렌즈콩, 아마 등도 아주 짧은 기간에 길들여졌다.” 그러나 그정도로는 늘어난 인구를 부양하기엔 부족했다. 사람들은 흩어졋다.

 

흩어진 곳에서 ,들은 야생 식물의 채집을 보충하기 위해 재배 실험을 계속했을 것이다. 몇 세대가 지나자 경작된 밭의 산출량이 늘기 시작했고 이 임시 전략은 곧 온전한 농경으로 변모했다. 영거 드리아스기가 끝나고 온난화가 재개되자 농경은 생활의 기둥이 되었다. 이윽고 기원전 9500년경 버려졌던 언덕에 새롭고 전혀 다른 거주지가 탄생했다.” 도토리와 피스타치오도 돌아왔다. 그러나 사람들은 더 이상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다. 농부가 되었기 때문이다.농업은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농업과 함께 취약성의 사이클이 다시 시작된다.

 

메소포타미아 남부는 경작 가능한 밭, 습지, 사구가 많으나 대부분은 염분이 섞인 황량한 사막이다. 강우량은 거의 없다. 자연의 극단적인 힘들이 사방에서 압박해오는 곳이다.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여름, 모진 겨울바람, 사나운 폭풍, 게다가 강물이 범람해 삽시간에 촌락을 쓸어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원래 이 지역이 그렇지는 않았다. ‘기원전 10000~기원전 4000년에 이 지역은 여름 기온이 높았고 강우량도 많았다. 당시 메소포타미아의 강우량은 지금보다 25~30% 많았을 것이다. 강우량의 대부분은 여름 몬순에서 나왔는데 강우의 상당 부분이 증발했기 때문에 전반적인 습기의 양은 일곱 배나 많았다. 소빙하기가 끝나고 갑자기 온난화가 재개되자 메소포타미아 전역에 목축을 병행하는 농경사회들이 퍼져나갔다. 메소포타미아 남부에 최초의 거주지가 등장한 것은 소빙하기가 끝난 기원전 5800년경이었다.”이 당시의 메소포타미아의 삶은 “1천여년 동안 작고 분산된 사회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그러나 기원전 3800년경 기후가 갑자기 건조해졌다. 실은 1천년전부터 서남아시아와 지중해 동부지역에 있었던 추세였다. 지구표면의 일사량이 줄어들었다. 동시에 서남아시아 몬순의 여름 강우량이 줄었고 경로도 동쪽으로 이동했다. 비는 양도 줄었을 뿐 아니라 시기도 늦게 내리기 시작해 빨리 그쳤다. 여름의 범람은 수학이 끝난 뒤에 발생했고 규모도 훨씬 작아졌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강우량에 상당히 의존해 농사를 지었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전적으로 관개시설에 의존해야 했다. 잉여식량은 없어졋고 오히려 식량부족에 시달렸다.”

 

농업이 시작되기 전이나 농업이 막 시작된 무렵이라면 방법이 있었다. 이동하는 것이다. 실제 메소포타미아인들도 그렇게 대응했다. 농업을 버리고 유목민이 되거나 고지대로 옮겨가 농업을 계속하거나 그도 저도 아니면 눌러앉아 수렵채집을 농업과 병행했다. 그러나 농업덕분에 늘어난 인구가 너무 많았다. 성공이 재앙의 원인이 되었다.

 

해법은 사회조직을 재편하는 것이었다. “이제는 1년 내내 관개가 필요했다. 수로를 통해 귀중한 물을 주변의 사막으로 돌릴 수 있는 위치의 더 큰 도시나 마을로 전략적이고도 현명한 이주를 감행했다. 우르처럼 성장하는 도시는 인간생활의 요충지가 되었다. 관개시설은 엄중하게 감독했다. 새로운 유형의 관리가 신전의 창고에 배치되어 농작물 생산량과 곡식 비축량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이때까지 물공급은 중앙정부가 아니라 가정과 사회의 관심사였으나 도시의 힘이 강력해짐에 따라 사정도 달라졌다. 수확기가 되면 신체건강한 모든 사람이 밭에 나가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며 농작물을 수확했다. 많은 관리들이 수확된 농작물을 세금으로 거두어 (가뭄에 대비해) 정부 식량창고에 비축했다. 사람들은 점차 국가를 위해 일하고 그 대가로 곡식을 받아 생활하게 되었다.”

 

기후사정은 더욱 악화되어갔다. 그러나 사회조직을 바꾼 대응은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다. “기원전 3100년경 남부 도시들은 세계최초의 문명권을 이루었다. 수메르 문명은 경쟁이 심한 도시국가들로 구성되었는데 각도시들은 고도 조직된 후배지를 거느리고 이웃한 도시들과 영토를 놓고 각축을 벌였다. 각 도시들은 관개수로를 단단히 방비했다. 물에 대한 권리와 관개된 토지가 평화와 전쟁을 가름하는 세상이었다. 도시가 생존의 수단이 되자 전역에서 도시화의 물결이 거세게 일었다. 기원전 2800년 무렵에는 수메르인의 80%이상이 도시에 살았다.”

 

도시화는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이었고 그것은 성공했다. 그러나 한가지를 해결했지만 동시에 취약성의 수준을 더 높였다.

 

기원전 2200년경 북쪽 멀리에서 대규모 화산분출이 일어났다. 지중해 동부의 방대한 지역에 그뒤 278년동안 지속될 가뭄이 시작된 시기였다. 아나톨리아 고지에는 비와 눈이 내리지 않아 강은 더 이상 범람하지 않았다. 가뭄은 비옥했던 하부르 북부 평원을 사막으로 바꿔놓았다.”

 

도시화는 이런 수준의 변화에는 견디지 못했다. “농업경제는 비틀거리다 이내 붕괴했다. 기원전 2000년경 도시에 사는 수메르인의 수는 50%를 밑돌았다.”

 

생존에 중요한 것은 규모다. 석기 시대의 소규모 무리는 새 사냥터를 찾아 이동하여 그곳에 최대한 머무는 방식으로 가뭄에 대처할 수 있었다. 또 농경촌락은 이웃 촌락에서 비상식량을 얻거나 교역 관계를 통해 알려진 물사정이 나은 지대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르 같은 대도시는 혹독한 가뭄의 파급효과로 인해 꼼짝없이 대규모 탈주와 기근을 겪을 수 밖에 없었으며 적응이나 회복이 쉽지 않었던 탓에 결국 붕괴하고 말았다. 소규모 재앙은 거뜬히 방어할 수 있을만큼 성장했으나 대규모 재앙에 대해서는 오히려 취약성이 더 커졌다.”

 

취약성의 사이클은 판돈이 더 올라가 로마시대에 재현된다. 로마는 야만족과의 투쟁과 함께 성장했다. 첫번째 적은 켈트족이었고 켈트족을 제압하면서 로마는 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저자는 켈트족과 로마의 대결을 기후대의 대항으로 해석한다. 켈트족의 농경은 대륙성 기후대에 적합했다. 대륙성 기후대가 남하할 때 켈트족도 같이 남하했고 로마는 이탈리아로 남하란 그들과 만났다. 그러나 기원전 300년경 대륙성 기후대와 지중해성 기후대 사이의 추이대가 이동하기 시작해 지금의 부르고뉴까지 북상했다. 그 결과 켈트 지역의 남쪽에 온난건조한 여름과 습한 겨울의 지중해성 기후가 자리를 잡았다. 많은 도시 인구를 위해 밀과 기장 같은 몇가지 작물을 광범위하게 재배하는 로마식 농경은 건조한 남유럽 환경에 매우 적합했다. 추이대가 북상함에 다라 고마의 힘이 급격히 증대했다. ‘로마의 평화는 북상하는 추이대를 따라가며 꾸준히 켈트족의 땅을 잠식햇다. 기원전 2세기 중반 켈트족의 땅은 로마의 속주가 되엇다. 온난한 기후 조건은 로마 제국의 전성기 내내 지속되었다. 로마의 장점은 3가지, 즉 잘 조직된 군대. 도로와 해로 같은 기반시설, 군대와 도시 주민을 먹여 살릴 수 있는 효율적인 농업생산력이었다. 이집트와 북아프리카를 비롯한 모든 속주들은 로마인들을 부양했다. 결국 모든 것은 사회의 주식이 된 곡물을 대량생산하는 능력에 달려있었다.

 

그러나 강력한 국가와 튼튼한 경제에 어울리지 않게 기후에는 놀랄만큼 취약했다. 문명의 조직도가 낮았더라면 오히려 제국은 기후의 압박을 거뜬히 이겨냈을 것이다. 일반적인 추위와 가뭄주기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 대규모 엘니뇨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유럽의 기후대가 크게 변동하고 그에 따라 기온과 강우량이 달라지자 로마의 지배는 큰 타격을 받았다. 500년에 서유럽의 날씨는 더 추워지고 습해졌으며 갈리아는 곡식의 대량생산이 전보다 훨씬 더 어려워졌다. 대륙성 기후대와 지중해성 기후대의 경계는 또다시 북아프리카로 내려갔다.”

 

산업혁명 이후 우리는 잠재적 격변에 적나라하게 노출된 시대로 성큼 들어섰다. 더구나 그 위험성은 지구를 온난하게 하고 극단적 기후변동의 가능성을 증대하는 우리 자신의 능력 때문에 더욱 커졌다. 만약 그린란드의 빙상이 녹으면서 그 많은 물이 북대서양으로 흘러들어 영거 드리아스기처럼 멕시코 만류가 갑자기 끊긴다면 어떻게 될까? 유럽은 수십년쯤 지나면 북극권 기후가 되지 않을까? 기후는 문명의 형성을 돕지만 자비로운 방식으로 돕지는 않는다. 충적세의 예측할 수 없는 기후 변덕은 인간 사회를 압박하여 적응하거나 사멸하게 만들었다. 기원전 10000년경 영거 드리아스기에 서남아시아에서 농경으로 전환한 경우처럼 성공적인 적응도 있었지만 가뭄으로 멸망한 티와나쿠처럼 실패한 사례도 있었다. 예전의 많은 문명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드물게 일어나는 대규모의 재앙에 취약하며 단기적 가뭄과 이례적인 호우 같은 작고 평범한 압박에 대처하는 능력만 나아졌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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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관점 | 인문/사회/역사 2012-03-14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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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넥스트 디케이드

조지 프리드먼 저/김홍래 역/손민중 감수
쌤앤파커스 | 201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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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의 내용을 간단하게 말하자면 미국 대통령을 위한 군주론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그렇듯이 이책은 통치자의 관점에서 세계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를 말하려 한다. ‘군주론은 권력을 어떻게 유지하고 행사하는가를 말한다. 당연히 그 독자는 권력을 가진 군주이다. 이책의 독자 역시 권력을 가진 자, 그중에서도 미국의 대통령을 독자로 한다. 그러나 그 독자의 성격은 미묘하게 다르다. 이책의 저자는 미국 내의 권력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제국의 권력을 논한다.

 

미국은 내가 저력(deep force)라 부르는 것을 가지고 있으며 이 저력이란 최고의 균형잡힌 힘이 되어야 한다. 균형잡힌 힘이란 경제력과 군사력, 정치력이 적절하게 상호보완적 총합을 이룬다는 의미다. 들어 유럽은 경제력은 있지만 군사력은 미약하고 토대도 얕다. 튼튼한 뿌리를 지녔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균형잡힌 힘을 찾아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이미 구소련이 붕괴된 이후 세계적 패권 다툼에서 미국과 경쟁할 국가가 모두 사라졌다. 이제 미국은 이런 상태를 좋아하든 말든 그리고 의도적이든 아니든 냉전을 극복하고 국제적인 패권국가로 떠오른 동시에 세계적인 제국이 되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로마제국이나 대영제국과 달리 미국의 지배구조의 비공식적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미국은 대양을 통제하며 경제는 전 세계총생산의 25%를 차지한다. 미국인들이 아이팟이나 새로운 식도락거리를 만들어내면 중국과 라틴아메리카에 있는 공장과 농장은 체계를 개편하여 새로운 주문을 충족시킨다. 이는 19세기 유럽열강들이 중국을 지배하던 수법이다. 그들은 절대로 공식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았으며 공식과 비공식의 구분에 아무 의미가 없을 정도로 중국을 개조하고 약탈했다. 미국은 상대국가에게 이익을 줄 때나 위협할 때만 한 발짝 움직인다. 이런 힘은 큰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지만 본성적으로 적댁감을 불러일으킨다. 미국은 상업공화국이다. 이는 미국이 교역을 통해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엄청난 부는 자원과 미덕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세계와 단절된다면 그것조차 유지할 수 없다. 따라서 미국이 규모와 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유일한 방안은자신이 제국이라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라 저자는 말한다.

 

저자가 생각하는 제국의 전략은 힘의 균형과 divide and rule로 정리된다. “다음 10년을 위한 미국의 정책에 필수적인 항목들 중 가장 우선시해야 할 것은 균형 잡힌 세계전략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고대 로마제국과 100년전 대영제국의 사례를 통해 배운 것처럼 말이다. 이들 구세대 제국주의자들은 주력부대를 동원해 세계를 지배하지 않았다(여기서 저자는 부시 2세의 거창한 실패를 암시한다). 대신 여러 국가들이 서로를 견제하는 상황을 조성한 뒤, 어떤 국가가 저항을 선동할 경우 주변의 다른 국가들을 통해 그 국가를 상대했다.”

 

패권국의 지상목표는 자신의 패권을 위협할 경쟁자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와 마찬가지로 제국의 패권 역시 경쟁자가 없어야 한다. 자신과 대등한(세계적 차원은 아니더라도 지정학적 요충지에 한정된다 하더라도) 상대는 행동의 자유를 제한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저자가 이책에서 제안하는 전략은 이렇다. “다음 10년 동안 미국은 이런 시도들 (저자는 부시의 헛짓을 말하고 있다) 때문에 발생한 고갈과 혼란에서 회볷하는 작업에 주력하게 된다. 그 첫번째 단계는 지역적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정책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이는 지중해부터 힌두쿠시 산맥에 걸쳐 현재 미군이 개입하고 있는 주요 지역들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지난 반세기 동안 이 지역에는 세 개의 고유한 지역적 힘의 균형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랍-이스라엘, 인도-파키스탄, 이란-이라크 사이의 균형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세 균형은 모두 무너졌다. 이스라엘이 균형의 한 축이 된 것은 저자가 말하는 힘의 균형 전략의 전형적인 예이다. 미국이 이스라엘을 파트너로 선택한 것은 유대인의 로비 라든가 어떤 음모 때문이 아니라 제국의 본능때문이었다. 냉전시절 중동에서 소련과 힘의 균형을 만들어야 할 때 불행히도 이집트, 시리아 등 지역의 핵심국가들은 소련을 선택했다. 미국으로선 이스라엘을 키워 균형을 맞추어야 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더 이상 이웃의 아랍국가들이 제어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며 심지어는 그 지역에서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내려고 시도하고 있다.” 저자는 이제 이스라엘은 미국의 짐일 뿐이라 말한다. 일찌감치 손을 썼어야 하는데 내버려둔 것이 지금의 상황을 만들었다는 말이다. 이스라엘과 거리를 둘 때이다. 나머지 두 균형 역시 미국 때문에 무너졌다.

 

파키스탄은 아프카니스탄 전쟁 덕분에 약화되었다. “아프카니스탄과 파키스탄이 사실은 하나의 실체이며 양측이 다양한 인종과 부족을 공유하고 있는 상태에서 정치적 국경선은 벌 의미가 없다는 좀더 근본적인 사실을 인식해야만 한다. 아프카니스탄 전쟁은 필연적으로 파키스탄으로 확대되어 내부 갈등을 촉진한다. 이는 파키스탄을 약화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알카에다와의 전투를 돕고 아프카니스탄에 주둔한 미군에게 협조하라는 압박을 받은 파키스탄이 얼마나 분열되느냐에 따라 인도와의 대치상태가 붕괴되고 그 지역에서 인도가 핵심새력으로 부상하게 될 것이다.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최우선 전략은 강력하고 지속가능한 파키스탅을 만드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라크와 이란의 균형 역시 미국 때문에 무너졌다. “그 지역에서 오직 두 나라만이 아라비아 반도 전체를 지배할 수 있을 만큼 크고 강력한 잠재력을 지녔다는 점이다. 그 두 나라는 바로 이란과 이라크다.” 그러나 이라크는 미국이 무너뜨렸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저자는 이란을 인정하라고 제안한다.

 

이란은 이미 지역 내에서 지배적 세력이다. 그리고 미국은 이란이 이웃에게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까지 막을 필요가 없다. 이란의 영향력이 보여줄 양상들은 지역적 계획에 대한 재정적 참여, OPEC의 원유생산량 쿼터 설정, 아라비아 반도 국가들의 내정 등과 같은 범위 안에 있다. 약간의 절제만 보여준다면 이란은 자신들의 원유가 시장에 도달하는 것을 보면서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우월한 위치와 경제적 이익을 누릴 수 있다.”

 

이란은 몇천년전의 페르시아 제국 시절을 아직도 자랑한다. 그런 나라가 실제 원하는 것은 그 지역에서 목에 힘을 주는 것 정도이니 그냥 인정하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란은 서남아시아란 더 큰 체스판에서 다른 말을 사용해 충분히 견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터키가 그 답이다.

 

이란에 대한 평형추 역할을 감당하고 지역 내에서 잠재적인 장기적 세력이 될 역량을 갖춘 유일한 국가는 터키다. 그리고 터키는 미국이 어떤 행동을 취하든 앞으로 10년 내에 그 지위에 도달하게 된다. 아랍 세계는 시아파 이란을 상대하는 데 필요한 대변자를 지속적으로 물색하며, 오스만제국 시절 터키가 아랍을 지배했던 쓰라린 역사에도 불구하고 수니파 터키는 최고의 후보자가 된다.” 이란과 터키의 대립은 오스만제국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니 새삼스러운 견해는 아니다.

 

미국과 장기적인 협력관계가 될 가능성이 있는 국가는 바로 터키다. 게다가 그들은 다른 지역에서도 미국에게 매우 가치있는 동맹자가 될 수 있다. 이는 러시아의 욕망에 대한 차단막 역할을 수행고 있는 발칸반도와 카프카스 지역에서 특히 터키의 엯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책의 내용이 감이 잡힐 것이다. 제국황제의 논리이다. 그러나 이책은 황제만 봐야하는 것은 아니다. 정상에서 내려다본 세상이 어떤지 실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황제의 생각은 황제만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그 위치에서 생각하고 결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느껴보기에는 충분한 책이다. 예를 들어 부시 2세의 이해할 수 없는 정책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저자의 해석을 들어보자.

 

흔히 레이건과 부시 2세를 극단주의자라 생각한다. 그의 정책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관념에서 나온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부시의 감세정책이라든가 재정팽창정책 등은 (레이건도 그렇게 하지 않았을) 공급주의 경제학의 극단론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지 W 부시의 논리는 지정학과 미국 내부의 정치에서 출발햇다. 그는 이슬람 전사들과 전쟁 중이었다. 그러나 군사개입에 따른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세금을 올리려 하지는 않았다. 대신 그는 경제를 자극하여 조세 수입을 증가시키는 방법을 원했다. 이론에 따르면 군사비 지출과 세금감면, 낮은 금리가 어우러질 경우 경제가 팽창하여 전쟁비용을 조달하기 충분한 정도로 세수가 증대된다. 만약 이런 공급 측면에서의 도박이 실패하더라도 부시는 2004년 대통령 선거 이전에 감행했던 증세가 정치적 기반을 약화하지 않은데 따른 이점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또 그는 선거가 끝나고 전쟁이 종결됐을 때 자신이 경제적 불균형을 처리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전쟁이 얼마나 오래 갈 것인지 얼마나 격렬하게 전개될지를 지독할 정도로 과소평가했던 거시다. 그 결과 부시와 연준은 경제적 불균형을 바로잡는 문제로 되돌아갈 수 없었다. 그리고 전쟁이란 목적을 위해 세웠던 경제정책에 계속 발목 잡힌 채 대통령 직무수행에 제약을 받았다.’

 

단무지로 통했던 레이건이 사실은 똑똑했던 것처럼 부시도 바보가 아니었다. 그러면 애초에 왜 전쟁을 시작했는가? 역시 지정학이 문제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빈 라덴의 목표는 이슬람권을 하나의 신정국가로 되돌리는 것이엇다. 그러기 위해선 기존의 체제를 흔들어야 하는데 빈 라덴의 분석에 따르면 이슬람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믿음에 어느 정도 공감하지만 그가 추구하는 목표들을 달성하기에는 그들의 지지가 너무 미온적이고 불충분했다. 자신의 계획을 추진하기 위해 그는 적어도 한 곳, 그리고 가능하다면 다수의 중요한 이슬람 국가에서 폭동을 유발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슬람 국가의 대중들이 그들의 정부를 압도적인 힘과 확고한 장악력을 가진 존재로 보는 한, 그것은 실현불가능했다.”

 

그래서는 그는 미국을 흔들기로 햇다. 그가 보기에 이슬람권 정부의 힘은 미국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그는 사실 그 정부들은 취약하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고 빈 라덴의 바람은 미국조차도 취약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함으로써 자신들의 정부가 강력하다고 생각하는 이슬람인들의 인식을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문제는 9/11이 이슬람의 심리를 겨냥한 것이엇지만 더 큰 충격을 받은 것은 미국인들의 심리였단 것이다. 실질적으로 알카에다는 미국에게 전략적 위협이 될 수 없다. 그냥 귀찮은 모기일 뿐이다. 그러나 미국인들 사이에 울려퍼진 심리적 경보음으로 인해 미국 정부가 당면한 전략적문제는 복잡해졋다. 침투력이 강하고 뿌리 깊은 불안감이 발생했을 때 정부는 반드시 이에 대처해야 하며 최소한 결정적 행동을 취하는 흉내라도 내야한다. 이 시기에 부시는 미국의 번영에 관한 국민적 자신감의 위기상태를 감당할 여유가 없었다. 알카에다는 9/11 테러가 이슬람 세계에 미칠 영향에만 집중한 나머지 그것이 부시에게 가할 정치적 압박을 고려하지 못하는 착오를 저질렀다그 결과는 별 쓸모도 없는 땅인 아프카니스탄에 대한 재빠른 공격이었다.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성공이었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은 완벽한 실패이다. 그럼 왜 부시는 그런 재앙 속으로 걸어들어갔는가? 저자는 중동의 지정학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테러와의 전쟁을 하려면 아랍 동맹국들의 협조가 필요햇다. 그러나 동맹국들은 미지근한 반응을 보일 뿐이었다.

 

부시 행정부는 심혈을 다해 사우디아라비아와 파키스탄이 좀 더 적극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공유하도록 압박했다. 이를 통해 미국이 중동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그곳을 중심으로 힘을 행사하는 전략을 구사하려 했다. 이것이 이라크 침공에 깔린 논리다. 군사적 행동은 즉각적인 결과를 초래하여 새로운 전략적 현실을 창조한다. 이런 현실은 특히 사우디아라비아를 위협하여 자국의 유전지대로부터 며칠 거리에 미군 기갑부대를 배치하는 상황으로 이어졋다. 그럼으로써 미국은 쿠웨이트와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시리아, 터키, 이란과 접해있으며 중동에서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국가인 이라크를 장악햇다. 이라크를 통제하게 된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단기 목표를 달성했다.” 그러나 애초의 의도는 외부로 힘을 과시하기 위한 기지로서 이라크를 이용하는 것이었음에도 보유한 모든 전력을 이라크 내부에 집중해야만 햇다. 점령의 실패는 전쟁의 성격마저 바꿨다. 전쟁의 목적이 이라크 자체로 바뀌었으며 궁극적인 목표 역시 중동지역에 새로운 전략적 현실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적절한 시기에 미군을 철수하는 것이 되었다.”

 

재미있다. 그러나 저자의 분석이 옳은가? 그건 따져봐야 한다. 저자의 주장이 맞으려면 미국의 경제력이 군사력을 떠받칠 정도로 미래에도 튼튼해야만 한다.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를 미국의 헤게모니의 끝이라 보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그런 의견은 틀렸다고 본다.

 

대공황 이래로 이처럼 파멸적인 사태는 없었다는 식의 말이 자주 반복된다. 그러나 이는 3중으로 틀린 말이다. 2차 대전이후에도 이와 유사한 붕괴가 세 번이나 더 있었다. 이것은 다음 10년을 예측하는데 중요하다. 왜냐하면 2008년의 금융위기와 비교할만한 대상이 대공황뿐이라면 미국이 가진 힘에 대한 나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2차대전 이후 이런 종류의 위기가 상대적으로 일반적인 현상이었다면 대공황과 비교하려는 주장이 지닌 의미는 줄어들 것이며 2008년의 금유위기가 미국에 엄청난 타격을 주었다고 주장하기도 어렵게 된다. 미국의 제국주의적 힘이 쇠퇴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이 정도 규모의 힘은 순식간에 붕괴되지 않는다. 한때 거대국가였던 독일과 일본, 프랑스, 영국의 국력이 쇠퇴한 것은 부채 때문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전쟁으로 경제가 황폐해지고 전쟁이 남긴 부산물 중 하나인 부채가 양산됐기 때문이다.”

 

맞는 말이다. 오일쇼크 직후 70년대도 만만치 않게 어려웠다. 저자의 입장은 이번 위기는 그냥 덩치만 큰 평범한 경제위기일 뿐이란 말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이번 위기가 헤게모니의 붕괴로 해석되는 이유는 위기 자체의 규모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징후이기 때문이다.

 

헤게모니 붕괴의 조짐은 저자가 언급한 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The great stagflation of the 1970s was deeply affected by the parallel crisisi of American hegemony which ensued from the escalation of the Vietnam War and eventual US defeat. As for the Reagan-Thatcher neo-liberal counterrevolution, it was not just, or even primarily, a response to the unsolved crisis of profitability but also-and especially-a response to the deepening crisis of hegemony” (Arrighi 2007)

 

신자유주의가 왜 70년대에 등장했는가에 대한 좌파의 설명은 이윤율저하 경향에 대한 자본의 반혁명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리기는 그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정치적이엇다고 말한다. 아리기는 50-60년대의 황금기는 군사 케인즈주의 때문이엇다고 본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은 그 시스템에 과부하를 걸어 무너트렸다. “’Stepped-up Vietnam War spending’ is said to be the reason for the sudden acceleration of price inflation in the US which, between 1965 and 1973, slowed down but did not stop the growth of real wages, This acceleration of inflation, in turn, is held responsible for the weakening of the competitive position of American manufacturers” 베트남 전쟁의 시기는 우연히 이윤율 저하 경향의 시기와 맞물렸고 “the costs of the war not only contributed ro the profit squeeze, but were the most fundamental cause of the collapse fo the Bretton Woods regime of fixed exchange rates and the precipitous devaluation of the US dollar that ensued.” (Arrighi 2007)

 

달러의 평가절하는 이윤율저하 경향의 부담을 경쟁자인 일본과 독일에게 전가하는 효과를 일으켰다. 그러나 아리기는 원래 닉슨 쇼크의 목적은 베트남 전쟁 비용을 전가하는 것이엇다고 본다. 다시 말해서 과거 제국들처럼 미국 역시 전쟁비용의 압박 때문에 헤게모니 위기를 겪었다는 것이다. “At least intially, the liquidation fo the gold-dollar exchange standard did seem to endow the US government with an unprecedented freedom fo action in tapping the resources of the world simply by issuing its own currency.” 그러나 디폴트를 선언하거나 실질적으로 디폴트인 화폐의 평가절하를 시도했던 이전의 제국들처럼 미국 역시 헤게모니의 위기를 벗어날 수 없었고 오히려 헤게모니의 위기를 더 악화시켰을 뿐이다. 1979--82년의 통화주의 반혁명은 바로 이것을 바로잡으려는 시도엿다고 아리기는 본다.

 

영국은 제국을 유지하는 돈과 병력을 모두 인도에서 끌어다 썼다. 해외에 무력투사를 할 때 영국이 동원한 병사도 인도인이엇고 그 투사의 비용도 인도의 호주머니에서 나왔다. 그러나 미국은 자신의 병력과 자신의 돈으로 제국을 유지했다. 베트남 전쟁은 그런 시스템의 문제를 폭로했다고 아리기는 말한다.

 

1970-82년의 통화주의 반혁명은 바로 그 제국의 비용과 관련된 것이라 아리기는 말한다. “The main reason why the monetarist counterrevolution was so strongly successful in reveresing the decline in US poweer is the it brought about a massive rerouting of global capital flows towards the US and the dollar.” 에드워드 시대 영국의 Belle Epoque는 자본수출 덕분이엇지만 1980년대 이후 미국의 Belle Epoque는 자본수입 덕분이엇다는 말이다. “An escalating foreign debt enabled the US to turn rhe deteriorating crisis of the 1970s into a belle epoque wholly comparable to, and in some respect far more spectaculr, than Britaion’s Edwardian era.”

 

그러나 자본수출의 금융화이든 자본수입의 금융화이든 금융화는 일시적인 해결일 뿐이다. 왜냐하면 금융화는 위기의 압력을 핵심에서 주변으로 전가하는 방법일 뿐이기 때문이라 아리기는 말한다. “Over time, financial expansions tend to destabilize the existinf order through processes that are as much social and political as they are economic. Economically, they systematically diveret purchasing power from demand-creating investment in commodities (including labor-poweer) to hoarding and speculation, thereby exacerbating realization problems. Politically, they tend to be associated with the emergence of new configurations of poweer, which undermine the capacity of the incumbent hegemonic state to turn to its advantage the system-wide intensification of competition. And socally, the entail the massive redistribution of rewards and social dislocations, which tend to provoke movements of resistance and rebellion among subordinate groups and strata, whose setablished ways of life are coming under attack.”

 

신자유주의 또는 금융화는 헤게모니 위기에 대한 해법이었다. 그러나 그 해법은 언제나 일시적이었고 지속가능하지 않았다고 아리기는 말한다. 그리고 이번 위기는 다시 아리기의 말이 옳았다는 것을 보여주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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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성장은 암세포의 철학이다 | 경제경영 2012-03-14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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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크래시 코스

크리스 마틴슨 저/이은주 역
미래의창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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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이 말하려는 것은 다음 문장으로 간단하게 정리된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물리적 한계가 존재한다. 그런데 경제 시스템이 작동하는 세상에는 마치 그런 한계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기는 게 문제다. 경제는 성장을 요구한다. 경제는 성장하고 있을 때에만 제 기능을 다한다는 의미다. 경제가 성장해야만 일자리가 창출되고 부채도 상환될 수 있다. 성장이 없으면 일자리도, 기회도, 그리고 부채를 청산할 능력도 아주 말끔히 사라지고 만다. 궁극적으로는 이것이 경제공황과 혼란을 유발한다.”

 

길지 않은 문장이다. 그러나 이 말만으로는 무슨 의미인지 분명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이게 무슨 말인지 알아보자.

 

저자가 문제삼는 것은 성장이 산술적 성장이 아니라 기하급수적 성장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경제성장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기업은 끊임없이 성장을 추구하고 지자체는 성장목표를 수립하고 주정부와 지방정부는 고도성장을 갈망하고 연방정부는 경제성장을 장려한다. 한편 연준은 완전고용을 핵심과제로 삼고 있다. 인구는 꾸준히 늘어나는데 신규 일자리는 경기팽창을 통해서만 창출되기 때문에 경제성장은 중앙은행 즉 연준의 지상과제가 될 수 밖에 없다. 연준은 또한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25 내외로 잡고 있다. 이를 뒤집어 생각해보면 통화공급량의 증가가 중앙은행의 목표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이쯤에서 다시 생각해보자. 인플레이션 목표치 자체는 비율로 표시돼 있다. 따라서 연준은 대놓고 통화의 기하급수적 증가를 목표로 삼고 있다고 공언하는 것과 다름엇다.”

 

그러나 기하급수적 성장은 유한한 세계에서 불가능하다. 기하급수적 성장의 좋은 예가 복리이다. “여러분의 선조가 약 2천년전에 먼 훗날의 자손을 위해 이자부 예금 계좌에 1센트를 예금했다고 하자. 이때 이자는 단 25라 하자. 예금 원년의 잔고와 1년 후의 잔고의 차액은 1센트의 100분의 2에 불과하다. 그러나 2천년이 지난 후의 예금 잔고는 1500조달러(2010년 전 세계 통화량의 20배 이상)으로 불어나 있을 것이다.” 은행들이 복리상품을 없앤 이유이다.

 

다시 말해 유한한 세계에서 영원히 기하급수적 성장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경제는 바로 그것을 전제로 한 시스템이다. 맑스는 그것을 자본의 무한축적이라 말햇다. 저자는 경제가 기하급수적 성장을 전제하는 이유를 통화시스템에서 찾는다.

 

통화는 두가지 유형이 있다. 첫번째는 은행 신용으로 대출의 형태로 창조된다. 은행 신용은 이와 연계된 부채액과 상쇄된다. 이 부채액은 원금 잔고, 그리고 이를 기준으로 발생한 금리로 구성된다. 역시 무에서 창조된 이 돈에는 이자가 쌓이기 때문에 원금 잔고가 상환된다 해도 이것이 통화공급량의 증가를 촉진한다. 이자는 시간에 지남에 따라 축적되는 돈이며 모든 것이 계획에 따라 순조롭게 진행되는 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자가 일정비율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본원통화가 두번째 유형이다. “본원통화 역시 대출을 통해 창조되며 이 두가지 통화가 어루러져 기하급수적으로 팽창되는 통화시스템이 구축된다. 실질적으로 이자부 대출을 통해 창조된 통화가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낸다.” 다시 말해 모든 달러(통화)는 부채를 기반으로 창출된다,”

 

우리의 부채기반 통화 시스템은 항상 일정 비율로 증가하기 때문에 시스템 자체가 기하급수적 속성을 지닐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통화는 자산에 대한 청구권에 불과하다. 통화가 기하급수적으로 축적될 때는 미래 경제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한다는 전제가 있다.” 다시 말해 현대 금융시스템은 영원한 팽창을 요구한다. 통화공급량이 지속적으로 증가(신용팽창을 통해)하지 않으면 채무불이행 사태를 포함해 온갖 문제가 생긴다.”

 

개인적으로는 맑스의 자본의 무한축적이 더 설득력 있는 설명이라 보지만(저자의 예는 원인이라기 보다 증상이다) 저자의 예도 경제성장이 기하급수적 성장을 전제한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충분하다. 그러면 왜 우리는 성장을 원하고 성장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인가?

 

산업혁명은 폭발적인 성장과 번영을 가져왔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빈곤선 이하의 삶을 산다는 이야기를 접하면 성장과 번영 간의 표면적인 상관성을 체감할 수 있다. 선진국의 거의 모든 국민이 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에는 대단한 부자들만 누렸던 것과 같은 수준의 번영과 안락함을 누리고 있지 않은가! 성장이 이런 번영을 선사한 것이라면 사람들이 그토록 성장을 숭배하고 갈구하는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성장과 번영은 같은 말이 아니다. 성장은 잉여의 결과이다. 예를 들어 우리 신체는 잉여 음식이 있어야 성장할 수 있다. 섭취한 열량과 소모한 열량이 정확히 일치하면 몸무게는 늘지도 줄지도 않는다.” 경제에서도 역시 잉여는 에너지의 잉여이다. ”경제 성장 여부는 줄리언 사이먼이 말하는 주요 자원즉 에너지에 좌우된다.” 물론 번영 역시 잉여의 결과이다. “생각지도 않았던 횡재로 가계수입이 10% 늘었다. 공돈으로 아이를 하나 더 낳아 키울 수도 있고(성장) 아니면 각자의 용돈을 더 늘릴 수도 있다(번영) 그러나 두 가지를 다 할 수는 없다. 성장과 번영을 동시에 실현하려면 둘을 다 지원할만큼 충분한 잉여가 있어야 한다. 즉 성장과 번영은 동의어가 아니다. 지난 수백년 동안 성장과 번영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을만큼 잉여 에너지가 항상 존재했기 때문에 두 개념을 같이 인식해온 면이 있다.”

 

다시 말해 성장이 기하급수적이란 말은 잉여에너지가 무한히 있을 것이란 말이다. 그러나 우주는 유한하고 에너지도 유한하다. 그러나 경제는 무한을 원한다. “경제학자들이 낭패를 보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경제를 진공 상태에 존재하는 어떤 것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경제학이 전제하는 세상은 무제한의 특히 자원 이용에 제약이 없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은 물론 있을 수 없다.

 

경제는 경제학자들이 생각하듯 닫힌 시스템이 아니라 열린 시스템이다. 오픈 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에너지가 소비될 때 아니 더 정확하게는 에너지가 소비될 때에만 개방 시스템 내에서 질서와 복잡성이 구현된다. 농축된 에너지를 취해 이를 덜 농축된 형태로 만든 다음 여기서 유용한 일 에너지를 추출하는 과정에서 열을 발생시킬 때 질서와 복잡성이 구현된다.” (복잡계 경제학에 대해선 부의 기원이 사실상 교과서이다)

 

우리 경제는 매우 복잡한 시스템이며 이런 복잡성은 지속적인 에너지 처리량을 바탕으로 한다. 개방 시스템에서는 에너지 사용을 통해 질서를 유지하고 복잡성 수준을 높일 수 있다.” 복잡성이 높다 또는 증가한다는 말은 에너지 투입이 많아진다는 말이다. “농업혁명 이후에는 건축설계, 미술, 음악, 음악, 법률 기타 오늘날과 같은 복잡한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직종이 생겼다. 이처럼 다양한 직종이 생겨나고 사회적 복잡성 수준이 높아진 것은 잉여 식량이 전문적 역할과 활동을 추진하는 에너지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복잡성은 만년전 농업이 시작되었을 때 그리고 산업혁명이 시작되었을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런 진화는 한 가지로 설명된다. 에너지를 더 많이 소비하는 방향으로 진화햇다는 말이다. “ 150년전에 시작되어 오늘날까지 계속된 세번째 사건(복잡성 수준의 폭발적 향상)의 촉발 인자는 무엇이었나? 그것은 물론 식량자원이 아니라 에너지였다. 고대의 태양광말이다.”

 

문제는 그 속도다. “우리는 150년 남짓 되는 짧은 기간에 번개보다 빠르게 수십억년 동안 농축된 에너지를 뽑아냈다. 복잡한 경제 시스템을 창조하고 유지하려면 일을 수행할 수 있는 에너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경제는 그 에너지가 무한하다는 가정으로 작동해왔다. 만일 에너지 공급이 중단되거나 감소한다면 우선 경제성장이 중지될 것이고 그 다음에 성장의 역전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이후 저자는 피크오일, 식량위기, 자원의 고갈 등에 대해 위에서 소개한 기하급수적 성장의 한계에 기초해 설명한다. 이책의 후반부에서 소개되는 내용이 새로울 것은 없다. 그러나 그 논의들을 한권에서 단순한 이론에 기초해 일관된 설명을 한다는 것이 이책의 장점이며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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