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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유진 스미스 W. Eugene Smith

샘 스티븐슨 저/김우룡 역
열화당 | 2003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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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이 한 말이다. '언젠가 스미스가 사진 대학에서 강의할 때 들을 기회가 있었다. 가으이 마지막에 가서 학생이 항의했다. 사진 얘기는 한마디도 없었고 강의 시간 내내 음악 얘기만 했다. 스미스는 한 인간에게 아주 소중한 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가치가 있다는 말로 학생을 진정시켰다."

유진 스미스에게 음악은 중요했다. 2차대전 때 종군사진가로 일할 때도 음악을 들어야만 했던 그에게 음악은 사진만큼이나 중요했다. 그는 종종 그의 사진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음악이엇다고 말햇다. "음악적 질서를 불어넣기 위해 내가 음악을 의도적으로 이용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오산이다. 간단히 말해 음악은 나의 스승이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관점이다. 모든 예술은 음악을 지향한다는 쇼펜하우어의 말이 아니더라도 공간의 예술인 사진에 시간의 예술의 관점을 접목한다면 많은 것을 배울 것이다. 그러나 사진 강의에서 사진은 말하지 않고 음악만 말한다는 것은 그에게 문제가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스미스가 대학에서 강의를 한 것은 미국의 저널리스트들이 대개 그렇듯 자신의 경력이 끝났을 때였다. 1960년대 내내 스미스는 대학과 강연회에서 강의를 했다. 그 당시 이미 스미스는 대가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아직 사십대 중반의 스미스는 애가조의 회고를 거듭하면서 마치 그의 경력이 이미 끝나 버린 것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학생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는다. ''라이프'에서 박하고 나오고서도 포토에세이스트로 활동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스미스는 머뭇거리다 이렇게 말했다. '글쎄..., 흠..., 그건 나도 잘 알 수가 없어요.'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 스미스 특유의 유머엿다. 학생들은 예상 밖의 이 대답에 크게 웃었고 스미스도 웃었다." 그러나 그의 유머는 그의 진실이었고 그의 웃음은 텅 빈 웃음이었다.

라이프의 촉망받는 사진기자였지만 스미스는 편집진과 갈등이 많았다. 물론 사진작가와 잡지사의 갈등이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고 스미스 만의 문제도 아니다. 라이프 등의 유력 잡지사들과 일했던 베르너 비숍은 잡지사와의 작업을 "끔찍했다"고 말햇다. "비숍은 자신이 생각한 바에 따라 문제를 최대한 강하고 분명하게 드러내고 싶어했다. 그러나 잡지사는 이익을 올리고 싶어햇다. '편집진과 다른 구매자들이 사진 속의 불쾌한 진실에 손질을 가하고 별 신통치 않은 이유로 톤을 약화하고 독자들에게 영합하기 위해 그것을 사소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을 때 그는 아주 기분 나빠 했다.' 사진에 대한 해석을 오도하는 왜곡된 설명과 기사, 엉망으로 잘리고 뒤집힌 사진들, 정치적 편향과 멜로 드라마적 이미지를 요구하는 취재지시 등, 편집과정에서 그의 사진과 관점에 가해지는 모욕에 비숍은 몹시 괴로워했다." (클로드 쿡맨)

언뜻 보면 스미스와 라이프 지의 갈등 역시 마찬가지로 보였다. 그리고 그 갈등은 비숍처럼 투덜 투덜 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편집권에 대한 도전으로까지 격상되었다. 스미스가 라이프의 잘 나가는 지위를 박차고 나온 것도 이상할 것은 없다. 그러나 비숍과 달리 스미스의 도전은 도가 지나쳤다. 스미스의 경우엔 잡지사로선 참을만큼 참았다고 두둔할 수 밖에 없다.

"스미스의 방식은, 언제나 첫 사진을 찍기 전 며칠 또는 몇 구간 그 지역을 유심히 관찰하고 그곳 사람들과 섞여 지내는 등 대상에 대한 사전 이해의 시간을 충분히 갖는 것이엇다. 촬영할 대상과 아주 친근해지는 한편으로 그 대상과 배경에 아예 녹아 들어감으로써 거부감이 없어지도록 최대한 노력한다는 태도였다. 객관적 태도를 냉정히 견지한다는 저널리즘의 원칙을 엎고 스미스는 어떤 경우에라도 대상과 자신의 거리감을 없애려 애를 썼다. 개인적 거리감이든 직업적 거리감이든 그에게는 없애 버려야 할 적일 뿐이었다. 스미스에게 한 장의 사진은 그가 보고 느끼고 겪었던 바로 그 이미지엿고 그것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보았던 그 순간 그대로를 생생히 경험하게 하고 싶었다."

이런 사진가이니 유명해지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다. 대학 졸업장도 없는 그가 라이프 지에 들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전쟁사진 때문이엇다. 그의 전쟁사진은 간결하면서 요점이 분명하면서도 생생하다. 아마도 그의 작업 방식은 병사들과 함께 전장을 누비면서 얻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의 작업방식이 문제엿다. "'라이프'에 있는 동안 쉰 건 이상의 프로젝트를 맡았지만 스미스와 잡지사와의 관계는 원만하지 못했다. 잡지의 편집진은 사진가의 역할이 네거티브를 만드는 것에서 끝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엇다. 스미스는 그 네거티브로부터 제대로 된 프린트를 만들고 그것을 지면에 배치하는 것까지 사진가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제대로 된 어떤 편집자가 시인에게 묻지 않고 시를 뜯어고칠 수 있단 말인가. 사진이 시와 달리 취급되어야 할 이유가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라고 편집진에게 요구했다. 기사 하나가 나갈 때마다 격렬한 갈등과 최후통첩의 말이 오갔고 어쩔 수 없는 최소한의 타협이 있은 후에야 겨우 지면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사진은 감동적이었고 아름다웠으며 수많은 독자들로부터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

거기까지였으면 어떻게 타협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미스의 집념 나쁘게 말하자면 편집증이 더 큰 문제였다.

예를 들어 “1952년의 작업인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와 1953년 작업인 ‘미시간 주의 이주 노동자’의 경우 스미스는 수개월을 들여 수백 점의 작품을 만들어 냈다. 잡지가 필요로 하는 것, 또 청탁한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이엇고 비용은 모두 ‘라이프’가 지불했다. 두 작업 모두 겨우 잡지의 몇 페이지를 채울 기사엿다.”

그의 작업은 놀라웠지만 그 작업의 뒤에는 인간의 폐허가 있었다. “라이프의 강력한 채널을 통해 스미스야말로 함게 일하기 불가능한 사람이라는 소문이 퍼져났다. 당시의 스미스는 잡지사가 기다리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프린트 하나를 만들기 위해 휴식 없이 며칠을 매달리곤 했다. 나아가 사진에 대한 이런 강박적 몰두와 약물 의존으로 일상생활 역시 황폐해졌다. 갈수록 작업실에서 보내는 날이 많아지고 네 아이들과 아내가 잇는 집에서는 점점 멀어졌다. 1950년 9월 그의 불후의 명작 ‘스페인 마을’ 작업 도중 지친 스미스는 팬티 바람으로 작업실 앞길을 돌아다니다 경찰에 체포된다. 그는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다 몇주간 치료를 받아야 햇다.”

가족을 팽개치고 나와 살던 맨해튼의 로프트에 자주 들렸던 드러머 로니 프리는 이렇게 말한다. “그는 마치 미친 과학자 같았다. 그가 자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앉아 잇는 것마저 본 기억이 없다. 언제나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그의 완벽주의 또는 강박증을 잘 보여주는 예는 ‘불타는 코크스와 춤을(1955)’일 것이다. “피츠버그 작업에서의 걸작 인화인 이 사진에서 “한 노둥자가 코크스 가마 위에 두껑을 덮고 잇다. 인간과 인간이 만든 문명 사이의 의문 가득한 관계성이 이사진에 드러나 잇음을 본다. 누가 누구를 지배하는 것일까. 그러나 이 사진의 압도적인 충격은 스미스 사진 인화의 아름다움에서 비롯된다.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다. 완벽주의자 스미스는 프린트 하나를 위해 버닝, 닷징, 블리칭을 평균 백오십 회가량 햇다고 한다. 때론 프린트 하나에 수일이 걸렸다. 이 사진을 보면 전설은 사실일 것같다.”

라이프를 박차고 나와 매그넘과 손을 잡은 후에도 그의 극단성은 도를 더해갔다. “매그넘에서 첫 작업은 피츠버그 시를 촬영하는 일이었다. 역사가이자 저명한 편집자인 슈테판 로란트가 피츠버그 시 이백주년을 기념하여 발간되는 대형 간행물을 시민 대표 자격으로 맡았다. 스미스는 이 간행물 가운데 현대 피츠버그 시에 대한 한 대목을 맡아 삼 주간의 예정으로 백 점의 사진을 만들기로 했다.” 그러나 스미스는 그의 작업방식대로 “첫 한달을 이리저리 도시를 배회하고 그 역사를 찾아 읽고 가능한 모든 것을 입력하는데 보냈다. 그리고 거의 한 해를 피츠버그 시를 찍는데 바쳐 만삼천 점의 네거티브를 얻었다. 라이프에서의 싸움과 다를 바 없는 전쟁을 로란트와 치른 후 스미스는 수백점의 프린트를 넘겨주고 작업을 마무리짓는다.” 그러나 피츠버그 프로젝트는 스미스 자신의 과업이 되어 이후 3년을 바치고도 마무리 짓지 못한다.

이러니 아무리 그가 대가임을 알아도 그에게 일을 맡기려 하지 않았고 스미스는 가난과 싸워야 했으며 60년대에 들어서면 과거의 영광을 되씹으며 대학 강의실을 떠도는 보따리 장수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사진기를 평생 놓지 않았다. 돈이 되건 안되건 알아주건 말건 찍고 또 찍었다.

“1975년 12월에 스미스의 주치의가 그의 상태에 대해 써 놓은 한 통의 소견서가 남아 잇다. 쉰일곱의 스미스는 이때 ‘당뇨병, 간경화, 심한 고혈압, 정맥류, 울혈성 피부염, 심혈관질환, 관상동맥질환 그리고 심장비대증’을 앓고 있었다. 주치의는 ‘금주’하라는 명령으로 자신의 소견을 맺는다.. 스미스가 의사의 소견을 마움에 두엇는지는 의문이다. 친구들은 스미스가 뉴욕을 벗어나 보다 안정되고 건강한 환경으로 옮기지 않으면 죽을 수 밖에 없음을 알고 잇었다. 거의 잠을 자지 않고 광적으로 일하는 습관, 알코올과 약물의존, 그리고 다른 여러 위험한 강박 상태가 그의 몸을 근 삼십년 동안 짓눌렀다.” 친구들의 주선으로 애리조나 대학의 강사직을 맡아 옮겨가게 된다. 그러나 일년을 넘지 못했다. 1978년 편의점에서 고양이 먹이를 사던 스미스는 심장마비로 급사한다. 쉰아홉이엇다.

매그넘 갤러리
http://www.magnumphotos.com/Archive/C.aspx?VP=XSpecific_MAG.PhotographerDetail_VPage&pid=2K7O3R139C2T&nm=W.%20Eugene%20%20Sm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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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외젠 앗제 Eugene Atget

게리 뱃저 글/정재곤 역
열화당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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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망의 업적은 근대 도시계획의 위대한 전설이 되었다. 황제의 지원을 업고 자본과 노동의 잉여를 광대한 공공사업계획으로 흡수하는 수단으로 무장한 그는 수도의 사회적 경제적 삶의 공간적 틀을 재조직할 일관성 있는 계획을 고안했다. 오스망은 ‘다양한 지역적 상황을 충분히 적절하게 조화시킬 수 잇도록 상세하면서도 전반적인 계획’을 추구햇다. 도시공간은 하나의 전체로서 파악되고 다루어지며 그 안에서 도시의 상이한 구역과 상이한 기능들은 상관관계를 맺고 활동하는 전체를 형성한다. 도시공간의 전체성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 때문에 오스망은 대도시 지역 내 공간질서의 합리적 진화를 위협하는 불균등한 개발이 진행되던 근교를 병합하기 위해 격렬한 투쟁을 벌여야 했다. 1860년대에 그는 끝내 승리했다.” (데이비드 하비)오스망의 승리 덕분에 우리는 모두가 아름답다 말하는 오늘날의 파리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게 마련이다.

“‘옛 파리(Vieux Paris)’는 회화적인 한 장르일 뿐 아니라 삶의 방식이며 이데올로기이기도 하다. 19세기 내내 산업혁명으로 프랑스에서는 변화가 불가피했으며 따라서 사진이 발명되기도 전부터 과거 ‘문화유산’에 대한 체계적인 시각자료 목록을 시큽히 마련해야 한다는 범국가적 과제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특히 오스망 남작의 도시계획으로 위협받는 지역을 기록하는 일이 급선무였는데 그 계획은 부르주아 계급의 신거주 지역 건설을 위해 옛 시가지 전체를 철거하는 것이었다. 프랑스의 문화유산에 대한 체계적인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초조함은 19세기 말 ‘옛 파리’ 운동이 생겨나면서 절정에 달했으며 급기야는 1860년대 오스망의 급진적인 재개발에서 살아남은 역사적 지역이 파리 시내 지하철 건설로 입게 될 피해를 최소호하하기 위한 위원회까지 설립도이ㅓㅆ다. 파리 시립역사도서관, 카르나발레 박물관, 국립도서관 등의 공공기관은 파리의 과거 모습을 담은 드로잉, 판화, 사진 또는 다른 형태의 자료들을 수집하려고 서로 경쟁햇다.”

이책의 주인공인 외젠 앗제의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이다. 그는 공공기관을 고객으로 ‘옛 파리’를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한 많은 사진가들 중 한 사람이었다. “그의 주된 작업은 어디까지나 건축물과 풍경을 찍는 것이었고 이 같은 작업 결과물은 십여장씩 개인 고객들에게 백여장씩 공공기관에 팔려나갔다.” 직업사진가로서 앗제는 당시’옛 파리’를 주제로 한 다른 사진가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앗제의 사진은 특별햇다.

고객인 공공기관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한 기록이었다. 사라질 건물과 거리의 객관적인 초상을 원했다. 그러나 앗제는 “건물 정면을 찍을 때도 마치 거리의 동상이나 호기심 많은 개구쟁이들 같은 불필요한 요소까지 화면에 등장하도록 내버려 두었기 때문에 고객인 공공기관의 신경을 자극햇다.”

예를 들어 ‘안뜰로 들어가는 입구, 드라공 거리, 렌가 50번지 (파리, 1899)’엔 전경에 고객의 입장에선 불순물인 삼륜거가 전경에 끼워져 잇다. 그러나 그 불순물 덕분에 앗제는 “동시대의 틀에 박힌 사진가들을 뛰어넘는다. 앗제는 ‘주제가 돋보이도록 화면을 고정시키되 그 주제가 놓여 있는 삶의 문맥을 배제시키지 않는 특별한’ 재능이 있었다.”

‘마스카리니 후작 저택, 샤를로가 83번지 (파리, 1901)’ 역시 앗제의 그런 재능을 보여준다. “마레가나 탕플가, 생 제르맹 등 현대화의 물결이 미치지 않는 지역에 밀집되어 있던 귀족들의 저택을 촬영하면서 앗제는 건축양ㅅ힉, 건물의 높이 및 중량감, 건축물을 장식하는 디테일 등에 역점을 두엇다. 이들 작업의 대부분은 상투적이다. 실제로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오로지 명확하고 중립적인 묘사만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앗제는 그다지 흥미로울 것이 없는 건축사진을 많이 찍었다. 앗제는 이 같은 작업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때때로 부주의하고 서툰 사진을 찍기도 햇다. 그러나 그의 전형적인 스타일을 보여주는 훌륭한 예라 할 수 있는 이 사진의 경우 정면에서 약간 비켜선 각도에서 대상을 촬영하는 그의 경향이 우아하기는 하지만 단조로울 수 있는 건물에 한층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단순한 기록을 뛰어넘는 앗제 사진의 성격은 평론가에게 ‘앗제의 문제’라 부르는 화두를 던진다. “그는 자기가 찍은 사진들을 기록자료로 관심있는 개인이나 공공기관에 팔앗고 그랬기 때문에 그의 사진들은 작가명으로 분류되지 않고 주제별로 분류되었다.” 그러므로 맥락주의적 경향의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은 “상업적인 사진장이일 뿐인 인물을 위대한 예술가로 보는 것은 고의적 오류라고 주장한다.” ‘앗제의 문제’는 앗제를 예술가라 부를 수 잇느냐의 문제이다.

앗제는 “20세기 사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사진가들 자신이 사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어떻게 사진을 찍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도록 만든 장본인이다.” 그러나 “수많은 사진가들이 앗제의 작품에 대해 실망했다. 모더니즘 사진이 지니는 형식미적 기준에 따르면 그의 작품에는 부족한 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앗제는 기록사진의 기준에 따라 작업했기 때문에 “그의 작품 대부분은 형식미에서 심한 불균형을 이룬다. 그렇기 때문에 흔히 예술사진가를 판단할 때 내세우는 기준, 즉 의도적인 형식미의 성공과 실패 여부, 스타일 전개 방식, 개인의 자발적 창작품인지 고객으로부터 주문받은 작품인지의 여부 등을 앗제에게 적용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러나 영혼이 없는 상업사진이라 치부하기엔 “그의 작품의 아름다움은 당혹스럽다. 앗제의 이미지들을 보는 사람은 상업적 의도에 전혀 손상되지 않은 아름다움에 매료된다. 그의 작품을 좀더 세심하게 관찰하면 지극히 단순한 목적과 단조로운 작업방식이라는 한계 속에서는 나오기 어려운 감동을 맛볼 수 있다. 그러므로 그의 작품을 볼수록 단순히 상업적 이유에서 시작된 작업이 시간이 가면서 더욱 광범위하면서도 개인적인 관점을 지닌 작업으로 발전해 나갔음을 느낄 수 있다”

“앗제는 대체로 거리를 매우 서정적인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으며 거리를 관찰하는 훈련이 되어 있고 오래 된 것들에 대해 특별한 감수성을 지니고 있으며 디테일을 찾아내는 눈을 지녓다. 그리고 이 모든 특성은 ‘거리의 서정’이나 ‘파리의 서정’이 아닌 앗제 자신의 서정이라고 불러야 할 시적 감수성 안에 하나가된다. 요컨데 너무 막연한 말일지 모르지만 ‘앗제의 파리’라 할 수 있는 무언가가 확실히 있다.”

앗제의 파리는 “동적이며 만져질 듯한 생동감이 느껴”진다. “앗제의 이미지를 관객들이 어떻게 바라보고 그 안으로 빨려드는지 관찰해보라. 우리는 사진의 공간을 소유하고 이를 되찾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이 들게 하는 사진가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앗제의 서정이 무엇인가를 알려면 우선 앗제 사진에서 무엇을 느끼는지를 말해야 할 것이다. “앗제 작품세계의 큰 특징은 대부분의 사진들이 눈 높이에서 지극히 평범한 시점으로 촬영되었다는 점이다. 그런 시점 때문에 앗제 작품의 상당 부분은 보행 경험을 담고 있는데 이 작품들은 대개 비교적 한가롭고 명상적인 산책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비슷한 이유로 앗제의 이미지에서 보이는 공간감 역시 비록 막힌 공간을 묘사하고 있을지라도 관람자들이 시각적으로 그 공간 속에 들어가거나 빠져 나오는 길을 택할 수 있게끔 함으로써 제한적이라기보다는 확산적이다. 또한 심리적으로 편안하고 내밀한 느낌을 제공하므로 그 공간에서 살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앗제의 사진은 “위안과 놀라움과 감동을 선사하기는 하지만 좀처럼 매혹시키는 법은 없다.” 앗제는 무대의 주연이 아니라 조연만 찍었기 때문이다. 앗제에게 도시는 “사람들이 움직이고 무언가를 소비하며 정신적인 휴식을 찾는 공간’이엇다. 그러나 앗제가 찍은 사진은 그 도시의 드라마 자체가 아닌 드라마의 배경인 미장센이었다. 건물에 사는 사람과 그들의 삶보다는 그 배경인 건물을 찍엇고 사람들이 사고 소비하는 자체보다는 그 대상인 상품들과 그 상품이 놓인 진열장을 찍었다.

무엇이 그를 그런 배경에 몰두하게 했을까? 더군다나 앗제의 사진작업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옛날을 다루는 영화에 보면 커다란 삼각대 위에 올려진 카메라에 고개를 쳐박고 천으로 얼굴까지 가리고 찍는 사진사를 보았을 것이다. 앗제가 들고 다닌 사진기는 그런 사진기엿다. 건물을 찍기 위해선 그런 커다란 사진기가 필요했다. “큼직한 뷰 카메라와 그에 딸린 올망졸망한 가방들을 끌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일이 얼마나 힘든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건축물을 찍는 데 알맞은 그런 장비 때문에 그의 사진은 공간의 깊이감과 가파른 원근감을 갖게 되었고 그의 주제처럼 건축적인 구성을 만든다. 앗제는 “무거운 장비를 들고 허리가 휘도록 작업하러 다녀야 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어디로 이끌지 알 수 없는 길을 닥치는대로 누비며 ‘無’에서 이미지를 창출하”려 했다.

“앗제가 무심하게 버려진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찍은 사진 들 중에 유난히 걸작들이 많이 잇다. 앗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다른 사진가들 같으면 이상하다고 여겼을 방식을 직관이 이끄는 대로 기꺼이 받아들여 작업했다는 점이다. 그의 작업은 사진적으로 말한다면 항상 ‘꽃을 만나면 걸음을 멈추고 꽃내음을 맡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특징이 있다. 존 사고우스키는 여러 차례에 걸친 앗제의 샤티용 방문을 두고 그가 기차역에서 간선도로를 따라 곧장 도심으로 걸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경치가 좋은 우회로인 페로탱가를 택함으로써 ‘페로탱가 (샤티용, 1915-1919)’ 사진에서 보이는 멋지게 굴곡 진 벽과 신비로 가득 찬 비밀의 문을 발견했을 뿐 아니라 그 밖의 많은 일급 이미지를 찾아냇다고 말햇다.”

“그의 가장 잘된 작품 몇 점을 찍은 곳으로 왠지 모르게 그를 항상 잡아끄는 도시 파리를 내려다볼 수 잇는 생클루 공원 언덕, 그곳 연못까지 무거운 촬영 장비를 끌고 올라갔을 때 그의 나이는 이미 예순여덞이었다. 앗제가 그 나이에 헤라클레스 같은 괴력을 요하는 일을 기꺼이 하게끔 이끈 원동력이 무엇일지는 짐작할 밖에 없지만 한가지 확실한 점은 그렇게 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는 것이다.” 편집자는 그 원동력이 소유욕 때문이었을 것이라 짐작한다.

“’저는 옛 파리의 모습은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소유하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옛 파리의 모습은 하나도 빠트리지 않았다고? 사실과 다르다. 앗제의 파리는 보행자. 노동자 계급, 좁고 지저분한 안뜰을 감추고 있는 전기 산업화 단계의 별볼 일 없고 미천한 파리엿다 ‘다른 사람들’의 파리가 아니더라도 그저 보통 사람들의 파리일 뿐이다.”

그가 찍은 보통 사람들의 파리는 “오스망과 황제가 의도했던 것이 무엇이든 간에 ‘위험한 계급’과 불건전한 가옥과 산업을 도심에서 추방하는 일”(데이비드 하비)때문에 밀려나 사라져 버릴 운명에 놓인 것들이었다. 오스망이 만든 “널찍한 거리를 거니는 부르주아의 파리나 부르봉 왕조의 파리는 앗제의 진정한 관심 밖이었고 그의 거대한 계획과는 무관햇다.”

앗제에게 사진은 그렇게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상상적 소유였다. “그것은 프루스트적인 의미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고자’하는 개인적인 추구이고 두번째는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정치적인 소유, 즉 자기가 속한 계급에게 프랑스의 문화를 되찾아 주고자 공공 문서 봐관소에 조심스럽게 자기만의 소리를 불어넣는 행위를 가리켰다.그러므로 앗제의 광범위한 테마는 여러 평자들이 결론지었듯이 단지 프랑스 문화유산의 목록을 작성하고 그것이 지닌 정신을 고양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화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뛰어난 감수성과 감각있는 눈으로 기록하는 것이었다. 앗제의 작품이 지니는 정령숭배적 경향이나 우울증, 사랑스러움 등은 모두 여기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그럴듯한 이야기를 해줄 인물, 그의 삶과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것이다. 이점이 앗제가 지닌 진정한 가치이며 역사적인 사실에 대해 시적인 답변을 제시하는 사진작업을 해온 모든 작가들에게 그가 남긴 유산이다.”

“앗제가 왜 그다지도 중요한지를 묻자 찰스 하벗은 다음과 같은 명답을 남겼다. ‘그가 서 있던 장소 때문이다.’”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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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경제경영 2011-07-10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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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쁜 보스가 회사를 살린다

조지 클루티어,사만다 마셜 공저/민영진 역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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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 다닐 때 기업가 과정을 수강한 적이 있다. 강의 첫날 담당 교수가 한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결혼한 사람은 일어서세요.'

절반가량 되는 학생들이 일어서자 교수는 강의실에서 나가라 말했다. 어리둥절한 학생들은 여기저기서 웅성거렸다. 그중 기혼 학생 한 명이 화가 나서 물었다.

'이유가 뭡니까?'
그러자 교수가 말햇다. '앉으세요. 학생은 강의를 들어도 됩니다. 그러나 내 말은 농담이 아닙니다.'

교수의 요점은 가족은 성공에 방해가 되므로 가족이 있는 학생은 이 과정을 수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사업에 전력투구하지 못하는 고객을 만날 때마다 그 교수가 한 말이 생각난다."

저자는 이해할 수가 없다. 중소기업을 상대하는 컨설팅업체 대표인 저자는 수십년 동안 많은 사업주들을 만나왔다. 그러나 그 회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아이들을 야구 연습장에 데려다 주기 위해 일주일에 세 번씩 일찍 퇴근하고 교회기금 모금행사 초대권을 만들고 친척을 마중하기 위해 공항에 나가는" 사람이 주인인가? 월급쟁이의 마인드다. "휴대전화는 고객들과 연락하고 현장에 나가 있는 영업직원들과 접촉하는데 쓰는 물건이지 튀근길에 무엇을 사갈지 묻는 데 쓰는 물건이 아니다. 사업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일로 일주일에 수십 시간을 낭비할 것인지 아니면 회사의 미래를 위해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회사에 나와 열심히 일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놀랍게도 사업주의 절반 이상이 주말에 일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돈을 많이 벌지 못한다고 불평한다."

성공하려는 사람이, 돈을 벌어보겠다는 사람의 자세가 아니다. 중소기업은 약자이다. 약자가 강자가 되려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부어도 될까말까이다. 그런데 월급쟁이처럼 사업을 해서 생존이나 가능할까?

저자는 사업이 되고 안되고는 모두 자신의 탓이란 자세없이는 절대 돈을 벌 수 없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상사보다 일을 더 잘할 수 있으며 인생을 좀 더 즐기고 싶다는 생각으로 작은 사업을 시작한다." 좋다. 그러나 일을 벌였으면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은 어떻게 주인이 되는가에 관한 책이다.

주인이 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최악은 망하는 것이다. 최악은 아니더라도 "사업체를 유지하고 직원들과 거래처에 돈을 주기 위해 노예처럼 일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삶을 돌볼 여유는 찾아볼 수도 없다. 이렇게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자는 우선 사업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부터 분명히 하라고 말한다. 사업은 돈을 벌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수익을 가장 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 사업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수익이다. 소규모 사업체가 진짜 수익을 올리려면 사업주가 사업에 100% 헌신해야 한다. 사업은 복잡하지 않다. 사업의 성패는 사업주가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가에 달려 있다."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우선 남 탓하는 버릇부터 고치자고 저자는 말한다. "직원들이 맡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은 사업주 탓이다. 회사의 모든 책임은 사업주에게 잇다. 무엇이 되었든 일이 잘못되었다면 사업주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업주가 제 일을 다 한다는 말은 회사의 모든 것을 알고 있고 장악하고 있다는 말이라 저자는 말한다. 회사는 돈 덩어리다. 그 돈을 책임지는 사람은 주인 외에는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

"사업주는 사업자금을 조달화려고 은행에 집까지 저당 잡힌다. 소규모 사업주들 가운데 70%가 회사를 위해 자신의 명의로 대출을 받는다. 가족이 보증을 서고 집과 은퇴 자금까지 담보로 내놓는다. 회사를 위해 집과 자신의 미래까지 내놓는 사람은 사업주뿐이다." 회사의 누구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사업주는 자신의 돈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회사의 모든 것을 알아야 하고 장악해야 한다.

"사업주 가운데 2/3 가량이 중요한 업무를 위임한다. 그런데 위임한 후에 관리를 철저하게 하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사람들은 일이 잘못된 다음에야 직원들이 지시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고 불평한다. 인사관리 세미나나 경영서적에서는 직원들에게 업무를 위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위임한 후에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그런 위임은 근무 태만과 다를 바가 없다. 사업ㅈ을 하면서 다른 사람이 자신의 일을 대신해주기를 기대하면서 사업이 제대로 될 리 없다.

위임하되 '통제광'이 되어야 한다. 직원들이 위임받은 업무를 제대로 이행하는지 꼼꼼하게 관리하고 일이 끝난 다음에는 제대로 처이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라.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사무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매일 야근하고 주말도 반납해야 한다. 그러나 그 대가로 최대의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로널드 레이건은 항상 이렇게 말했다. '신뢰하되 학인하라.' 우리는 항상 이렇게 말한다. '위임하되 확인하라.'"

저자는 이런 말을 듣는다면 사업주로서 성공한 것이라 말한다: "칭기즈칸과 일하는 편이 더 쉬울 것이다."

"일반적인 경영상식으로는 경영자가 직원들에게 권한을 위임해 직원들이 책임을 느끼고 일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러나 소규모 사업에서는 직원들이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나 돈이 없다! 일이 잘못된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다. 소규모 사업은 순식간에 망한다. 그렇기에 잘못된 일은 처음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경영서적을 보면 팀이니 신뢰니 하는 말이 많이 나온다. 그러나 저자는 마찬가지 이유에서 다 쓸데 없는 헛소리라 말한다. “비즈니스에서 팀위크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적어도 중소 규모의 사업체에는 팀이 필요 없다. 수익성이 높고 직원들이 잘 훈련된 큰 회사가 아니라면 팀을 두는 것이 오히려 사업에 방해가 된다. 사업주가 자신이 할 일을 팀에 미루기 쉽기 때문이다. 직원들은 사업주의 부하다. ‘동료’라는 말도 쓰지 마라. 직원들은 사업주가 요구하는 일을 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시키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동료라는 말은 이런 사실을 잊게 한다.”

과격하게 들리는가? 그러나 이런 말은 저자만 하는 것이 아니다. “사장은 모든 것을 성과로 평가받는 존재다. 아무리 훌륭한 비전을 가졌더라도 직원을 가족처럼 아끼는 따뜻한 마음이 있어더라도 성과가 없으면 실패한 무능력자로 전락하고 만다. 착하고 마음 따뜻한 사장이 있었다. 직원들에게 말 한 마디 건네도 정을 듬뿍 담아 마음을 전했고 어떻게 하든 한 푼이라도 더 주려고 노력했다. 직원들도 그런 사장을 믿고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사업이 생각했던 방향으로 풀리지 않아 위기가 닥쳤고 회사는 월급조차 몇 달씩 쳥겨주지 못할 정도로 자금난에 허덕이게 되었다. 그러자 그토록 가족처럼 믿고 사랑했던 직원들이 하나둘씩 회사를 떠났다. 이것이 사장과 직원의 관계다.” (장성덕)

저자는 독재자가 되라고 말한다. 살아남으려면 성과를 내려면 이익을 내려면 독재자가 되는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신뢰니 친밀함이니 따위는 여유가 있는 큰 회사에 맡기라고 말한다. “인기 따위는 소용없다. 직원들이 사업주를 좋아할 필요는 없다. 직원들은 사업주를 존경하고 두려워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가 컨설팅한 6000개 회사 가운데 사업주가 독재적이고 혹독한 회사가 그렇지 않은 회사보다 훨씬 더 뛰어난 성과를 올렸다. 회사를 운영할 때 인내심이나 예의가 중요하다는 말은 깨끗이 잊어라. 소규모 사업주는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낭비할 시간도 없고 무능한 직원 때문에 돈을 잃을 여유도 없다.”

이책의 내용은 중소기업이나 창업 분야의 책이면 대부분 나오는 내용이다. 그리고 자수성가한 중소기업업체 대표들이 쓴 책에도 많은 내용이 겹친다. 그러나 그런 많은 책들과 이책이 다른 점은 그림이 그려진다는 것이다. 대개 그런 책들은 여러가지 내용을 모아놓은 잡탕 같은 느낌이다. 책을 읽고 나서 하나의 그림으로, 창업자로서, 중소기업체의 사장이 어떤 사람인가를 하나의 분명한 그림으로 그려주지 않는다. 그러나 위에서 정리한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이책은 분명한 그림을 그리면서 중소기업을 운영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런 업체의 사장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말한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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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유전학 | 수신/심리 2011-07-07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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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성격의 발견

제롬 케이건 저/김병화 역
시공사 | 2011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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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당신의 조상들이 오랫동안 농부였다면 당신은 당당하게 서서 죽기보다는 무릎을 꿇고라도 살아남는 편이 더 낫다고 판단한 사람들의 후손이다.

농경은 엘리트증을 만들어냈고 그들의 권력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수렵채집인들은 멀리 떠날 수 있었지만 토지는 버리고 떠나기에는 너무 귀한 것이었다. 따라서 농부들은 권위에 굴복해야 했다. 옛 스타일의 독립적인 마인드, 즉 평등주의자들인 수렵채집인들 사이에서 잘 통했던 성격들('결국 사람은 사람이다')은 씨가 말랐다.

공격적이고 전투적인 사람들 역시 지배 엘리트증이 나타나기 시작하자 적응도에 손해를 입었을 것이다. 강력한 국가가 있을 때 공격적인 개인이 갖는 이익은 더 작아지고 법과 질서는 자기 방어를 위한 전투적 태도를 덜 필요하게 만들었다. 북적이는 환경 그 자체만으로도 과거에 선호되었던 몇몇 성격 형질들이 냉대받게 되었을 것이다. 낯선 사람과 만날 일이 자주 있는 사회에서는 높은 공격성에 대한 선호가 떨어질 것이다. 너무 자주 사우면 반드시 지기 마련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공격성을 유발한 대립유전자들의 빈도가 변했을 것이다. 강하고 오래 존속한 국가들에서는 특히 그랬을 것이다. 이는 곧 개체군이 전체적으로 더 순해졌을 것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여기에 일정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생각되는 유전자를 알고 있다. 그것은 DRD4(도파민 수용체 D4) 유전자의 7R(7-repeat) 대립유전자다. 이 대립유전자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와 관련이 있다.

세계 곳곳에서 차이는 있지만 상당한 수준의 다형성이 나타나는데 동아시아에서만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흥미롭게도 중국의 경우 7R 대립유전자들 자체는 매우 드물지만 7R 대립유전자에서 파생된 대입유전자들이 상당히 흔하다. 중국에서는 문화적 패턴 때문에 7R 대립유전자들을 갖는 사람들이 선택을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일본에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이 있는데 중국에서는 그런 돌은 뽑혀나가 멀리 내던져졌을 것이다.

농경으로 생긴 강력한 정부들이 사람들을 더 '길들였다면', 농경의 경험이 가볍거나 없는 집단의 구성원들은 오랫동안 농경문화를 경험한 집단의 구성원들보다 평균적으로 덜 복종적일 것이다." (그레고리 코크란, 헨리 하펜딩)

코카서스계와 몽골리안계의 유전자는 1/4이 차이난다. 그리고 그 차이는 두 인종간의 기질을 다르게 만들고 문화를 다르게 만들었다고 가정해도 그리 큰 무리는 아니다. 저자는 자신의 실험에서 두 인종의 차이를 확인한다.

저자는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아시아인과 코카서스인의 기질 편향 간의 차이를 암시하는 행동은 생후 몇 주 이내에 일찌감치 나타난다. 캘리포니아에 사는 아시아계 신생아들은 같은 지역에 사는 코카서스계 신생아들에 비해 조용하고 얼굴에 이불 등이 덮이더라도 덜 바둥거리며 울더라도 금방 그쳤다." 그러나 "코카서스계 아기들은 중국인 아기보다 더 불안정하고 더 쉽게 흥분하는 것으로 보였다."

저자는 이러한 차이를 유전자상\의 차이로 해석한다. 저자의 용어로 말하자면 (유전적으로 결정되는) 기질에서 아시아계와 코카서스계는 체계적인 차이를 보인다.

저자는 그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이렇게 설명한다. "아시아계와 코카서스계는 촉진자 부위에 위치한 유전자의 25%^가 다르다. 이런 대입유전자 가운데 하나가 뉴런 사이의 간극인 시냅스에서 세로토닌을 흡수하는 분자의 기초가 되는 구조적 유전자의 발현을 통제한다. 아시아계는 짧은 유전자라는 것, 즉 구조적 유전자가 발현되는 수위를 낮추는 대립유전자를 지닐 확률이 다른 인종보다 더 높다. 그 결과 세로토닌 운반자의 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세로토닌이 약간 더 오래 시냅스에 남는다." 그 결과 "시냅스에서 세로토닌이 과잉이 되는 동시에 인근 뉴런에 있는 세로토닌 수용체의 수가 줄어든다. 세로토닌은 웃고 미소 짓고 목소리를 내는 것 등 쾌감의 행동적 신호에 기여한다.

짧은 대립유전자의 존재는 사회적 행동에 영향을 끼친다. 짧은 대립유전자를 가진 원숭이에게 높은 지위의 수컷 원숭이 사진을 보여주면 경계심이 커진다. 인간 역시 화난 얼굴을 보면 더 크게 반응한다. 같은 종의 다른 구성원이 가하는 잠재적 위협의 신호에 유달리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 그런 개인은 복종적이거나 집단 규범에 순응하는 편향을 갖는다."

이런 유전적 편향은 위에서 길게 인용한 역사적 변수(오랜 농경과 높은 인구밀도 그리고 제국의 역사)에 의해 자연선택된 결과로 볼 수 있다. 그 자연선택의 결과는 위의 인용의 저자들이 말하듯이 인간을 길들인 결과로 볼 수 있고 그러한 결과는 '가축화'의 과정과 생물학적으로 유사하다. 이책의 저자 역시 비슷하게 본다.

가축화된 동물은 야생의 사촌보다 유순하다. 그런 기질은 "스트레스 호르몬 코르티솔을 생산하는 두뇌 회로의 활동이 활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의 실험에서 중국계 아기들은 코카서스계 아기들보다 불안을 덜 느꼈고 코카서스계보다 심장박동이 놀라울 정도로 안정적이었다.

가축화된 동물과의 유사성은 외형적 차이에도 나타난다고 저자는 본다. 가축화된 동물은 야생으로 사는 친척보다 "겁을 덜 내고 덜 공격적이며 코 길이가 더 짧다. 평균적인 아시아인이 평균적인 코카서스인이나 아프리카인보다 더 평평한 얼굴을 갖고 있다는 사실로 보아 생물학적 시각에서 아시아인들이 더 길들여진 편향을 갖고 있다는 즉 타인과 더 온화한 관계를 맺는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가족과 사회집단에 대한 충성심이 아시아인들의 핵심가치가 된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니다."

물론 집단 내의 차이는 집단 간의 차이보다 크다. 그러나 집단 평균의 차이가 개인간 차이보다 비교적 작더라도 그 차이는 기질적 편향의 체계적 차이로 나타나고 그러한 차이는 문화적 차이를 낳기에 충분하다고 저자는 생각한다. 유럽의 문화가 개인주의적이고 동아시아의 문화가 집단주의적인 차이는 그런 기질적 편향으로 해석으로 할 수 있다고 저자는 생각한다.

D4 유전자의 차이는 세로토닌 뿐 아니라 도파민 수용체에도 영향을 주어 충동성의 정도를 결정한다. "대다수 사람들은 4차례 반복되는 짧은 형태의 D4를 갖는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7차례 반복되는 긴 변종을 보유한다. 긴 D4는 도파민에 덜 민감하고 결과적으로 뇌의 도파민 생산량에 장애를 유발한다. 다시 말해 뇌 속에 존재하는 도파민이 보통의 경우보다 좀더 일을 많이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사람들은 도파민 파티를 시작하려면 일반인보다 더 많은 화학물질을 긁어모아야 하고 따라서 이들은 여분의 자극적 활동을 요구한다.” 문제는 도파민에 항상 굶주린 뇌는 도파민 즉 자극의 과잉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럭저럭 만족하는 일을 금방 지루해한다. 다시 말해 방황하는 이들 영혼은 더 많은 도파민을 만들어내기 위해 어디든 자극이 있는 곳을 찾아 헤매야 한다. 과속을 즐기는 운전자가 될 수도 있다. 안전을 위한 지침을 무시하거나 주먹을 치켜 올린 채 링안으로 뛰어들지도 모른다. 그 정도는 돼야 ‘평범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도파민은 순전히 기분전환용은 아니다. 도파민이 지나치면 흥분이 쉽사리 공포와 불안으로 바뀐다. 끊는 충동을 안겨주는 상황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공포만 안겨줄 가능성이 높다.” (닉 태슬러) (물론 코카서스계가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인용문의 저자는1/4 정도로 추정한다)

D4 유전자의 차이는 문화의 온도를 결정했다고 이책의 저자는 생각한다. 그 차이의 좋은 예로 저자는 불교의 열반적정(涅槃寂靜)과 노자의 상선약수(上善若水)를 말한다. 저자는 유럽의 철학자 가운데 그런 수동적이고 고요한 초연함을 찬미할 사람은 없다고 말한다. “욕망하거나 꾸짖는 일 없이 삶을 고요히 받아들이도록 권장하는 철학과 귀중한 목표를 얻기 위해 모든 장애를 적극적으로 넘어가기를 요구하는 철학 사이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 해 온 학자들은 대개 문화와 생태 환경의 역할만 강조해 왔다.” 그러나 “나는 두 그룹의 게놈이 기질적 편향에 영향을 끼침으로써 이런 각 이데올로기가 가진 차별적 매력에 작지만 진정한 기여를 했다고 주장하고 싶다. 신체의 고도 흥분 상태 및 불안, 죄책감, 새로운 쾌락에 대한 욕망으로 해석되는 신경화학을 지닌 사람은 더 고요하고 욕망에서 자유롭고 타인으로부터 초연해지라는 철학에 저항감을 느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매일 살아가는 평소의 감정 톤이 초연한 상태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 결과 대부분의 유럽인은 열반이라는 아시아적 관점을 불합리하고 불가능한 것으로 볼 것이다.

이와 달리 전형적으로 낮은 수준의 흥분을 특징으로 하는 의식의 소윺자들에게는 만성적 불안, 죄책감, 좌절된 소망 등을 인간 조건의 결정 요인으로 보는 철학이 별로 효과가 없어 보일 것이다. 이들은 강력하고 불쾌한 감정 때문에 방홰받는 삶에서 진정으로 해방될 가능성이 있다고 기대할지 모른다.

마약을 쓰는 중국인들은 아편을 선호하는데 그것은 기분을 이완시킨다. 이와 달리 코카서스계 사람들이 선호하는 마약은 코카인이나 암페타민인데 그것은 흥분을 증가시킨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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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꾼의 사진 | 예술/문학/여행 2011-07-06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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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에드 반 데르 엘스켄 Ed van der Elsken

흐립시메 피서르 글/이영준 역
열화당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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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 반 데르 엘스켄이 세계적인 사진가가 된 것은 Love on the Left Bank ‘(참고 http://www.guardian.co.uk/artanddesign/2011/feb/10/van-der-elsken-left-bank ) 사진집 때문이엇다. 사진집은 20세기 최고의 사진집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이 사진집은 사진집이라기 보다는 영화에 가깝다. 이 사진집의 스토리는 앤이란 인물이 이국적인 댄서가 되고 술 마시고, 추파를 던지고, 싸우고, 자고, 사랑에 빠지고 사랑에 환멸하는 것이 전부이다. 그러나 이 사진집은 실제를 찍은 것이 아니라 연출된 것으로 사진 소설(photo novel)로 분류된다.

 

그러나 그 사진 소설의 스토리는 앤을 연기한 밸리 마이어스(Vali Myers)의 실제에 가깝다. 전설적인 보헤미안인 그녀는 콕토, 즈네와 친구였고 2차대전 후 파리로 도피한 보헤미언들의 중심에 있었다. 사진집이 다루는 것은 엘스켄 자신이 속해있던 공동체의 이야기이며 그들의 세계였다.

 

"온갖 나라에서 모여든 그들은 이러저라한 이유로 전쟁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모두 바, 카레, 식당을 떠돌며 술과 마약에 취해 있었고 깊은 상처로 절망에 빠져 세상에 대해 부정적이엇다. 반 데르 엘스켄은 이들이 보여준 삶의 모습에 매료되어 사진을 찎었다. 간혹 그들이 내켜 하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그들 사이에 섞여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담배 피우는 모습을 찍었다. 그는 거기서 자신의 스타일을 찾았는데 인공조명, 연기, 반사 등이 분위기를 지배하는 그런 것이었다. 그는 열광적으로 춤추고 논쟁하고 식사하는 모습을 찎었고 덧없음 혹은 절망을 드러내는 듯 서로 껴안은 채 잠에 빠져 있는 모습도 찎었다."

 

자의든 타의든 주류에서 밀려난 주변부의 문화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엘스켄은 낸 골딘(낸 골딘에 대한 자세한 것은 이전 리뷰 참고)과 자주 비교된다. 실제 "낸 골딘은 엘스켄의 작품을 대단히 좋아했다. 두 사람 다 자신이 기록하는 세대에 속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낸 골딘과 엘스켄의 작업은 다르다.

 

낸 골딘의 작업은 자신의 대상에 대한 깊은 공감에서 우러나오는 따듯함이 있다. 엘스켄 역시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그렸고 그 공동체를 그리는 것은 자신을 그리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작업에선 따뜻함이, 공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엘스켄의 사진을 자신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사진을 찍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자기인식 때문이었다. 그의 사진에 나오는 인물과 상황은 항상 그의 감정을 반영한다. 이는 나르시시즘이라기보다 자기비하와 정반대되는 것이다. 엘스켄은 진정성을 추구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그는 카메라에서 자신을 찾았고 자신이 발견하고 싶은 것을 찍었다. 그렇기에 그의 사진은 강렬하다.  "그의 사진을 볼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인물들의 시선이다. 초기 작품 속의 인물들은 멍하니 다른 곳을 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 젊은 사진가는 꿈과 외로움, 자신의 세계에 침잠해 있는 남자, 여자, 어린아이를 관찰한다. 그들은 다른 것은 바라지 않고 오로지 '당신 자신을 보여 달라'고 하는 감독의 지시를 받는 배우가 된다."

 

엘스켄에게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그러므로 우연이 지배하는 세계와의 수동적인 만남이 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사진 찍는 방법이 사냥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는 멀리 있는 사냥감-인상적이고 아름다운, 혹은 기이한 사람들-을 점찍은 후, 망원 렌즈나 줌 렌즈로 천천히 따라가다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면 마지막에 광각으로 포착한다고 했다. 렌즈를 교체하는 일을 포함해서, 이 방법은 영화적이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그는 간간이 영화를 실험하고 있었고 영화는 그의 두번째 표현매체가 되었다"

 

그렇기에 그를 관음증 환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는 자신의 사냥감에게 언제나 '당신 자신을 보여달라'고 강요한다. 그렇기에 그는 다른 사진가들과 달리 관찰자로 머물 수 없었고 무대를 지배하는 감독이 되어야 햇다. 그의 이름을 알린 첫번째 사진집이 영화에 가까운 것은 당연하다.

 

갤러리

http://www.edvanderelsken.nl/index.php?page=f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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