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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테일한 일러스트로 탱크의 탄생을 조명하다 | 역사 2020-06-10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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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탱크의 탄생

모리나가 요우 저/전종훈 역
레드리버 | 2020년 05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초창기 탱크에 대하여 외형뿐만 아니라 내부와 작동방식 등을 티테일하게 그림으로 설명해 주는 최고의 탱크 입문서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오래 전 초등학생 때 학교 등하교길에 규모가 꽤 큰 문방구가 하나 있었다. 문방구 창가에는 제2차 세계대전 전투 장면을 축소해 만든 멋진 디오라마가 있었는데 그 정교한 디오라마에 푹 빠진 나는 등하교길에 가던 길을 멈추고 문방구 창가 앞에서 넋을 잃고 디오라마를 바라보곤 했다. 그 디오라마 덕분인지 당시 용돈의 8할은 독일 병정 등 관련 프라모델을 구입하는데 썼던 기억이 난다(나이가 들어 생각해 보니 그 멋진 전투 디오라마는 문방구 주인아저씨의 뛰어난 상술이 아니었나 싶다). 어린시절부터 밀리터리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한때 장래희망으로 군인을 꿈꾸기도 했고 고등학생 당시에는 학업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슈퍼대전략"이라는 컴퓨터 전투 게임에 빠진 적도 있었다.

 그래서 나름 밀리터리 마니아 정도는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밀리터리에 대해서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모리나가 요우의 《탱크의 탄생》을 읽어보고 내가 알고 있는 밀리터리 정보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걸 느끼게 되었다. 


 탱크의 탄생》은 21만 구독자를 자랑하는 전쟁사×밀리터리 전문 유튜브 채널인 "건들건들"에서 건들건들 컬렉션 1호 타이틀을 가지고 직접 소개한 책으로 초창기 전차의 모습을 일러스트로 디테일하게 담은 만화 형식의 책이다. 

 책은 우리에게는 생소한 1차 세계 대전 당시 등장한 탱크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데 단순히 탱크 그림만 보여주는게 아니라 탱크의 내부와 작동방식 등을 통해 초창기 탱크들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디테일하게 그림으로 설명해 주고 있는게 특징이다. 책은 총 2부로 나눠져 있는데 1부는 무한궤도의 발명과 영국 탱크에 대해서 2부는 전차의 시작편으로 독일, 프랑스 탱크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다.

 저자 모리나가 요우는 전차나 비행기 같은 기계 구조물을 당장이라도 작동할 것처럼 생생하게 그려내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일본의 만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자신의 진가를 탱크의 탄생》에서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1부. 탱크의 탄생 1 무한궤도의 발명과 영국 탱크

<탱크 이전의 역사>

 전쟁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 왔다. 그래서 전쟁사는 어쩌면 인류의 발전과 괘를 같이 한다고 봐야할 것이다.

 책은 이런 이유로 탱크가 탄생하기까지 인류가 전차를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 왔는지를 본격적인 탱크의 등장에 앞서 설명해 주고 있다.

 고대 세계를 석권한 채리엇을 시작으로 유럽을 공포의 도가니로 빠트렸던 몽골 기병, 중세시대 기계 화살인 쇠뇌, 화승총을 묶은 리볼데퀸, 머스킷 총병에 대한 설명에서부터 차량 요새였던 후스파의 바겐부르크, 다빈치가 고안한 무적 전차와 삼단속사포, 진화를 거듭하던 화포, 근세로 넘어가면서 산업화에 따른 비약적인 무기의 발달을 보여주는 초기 기관총 퍼클 건, 개틀링포, 육상 및 해상용 중기기관인 코웬 머신 등 탱크가 탄생하기까지의 무기 발달을 깨알같이 설명해 주고 있다. 여기에 일본 작가답게 일본의 우차 '안진샤'소개는 덤이다.



  <탱크 탄생의 발판>

  전차라는 탈것은 적의 탄환을 튕겨내면서 거친 땅을 나아가야 한다.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경제분야 뿐만 아니라 전차 같은 무기분야에서 큰 발전을 이루는 계기가 되는데 보어 전쟁에서 사용한 영국의 증기 장갑 트레일러를 시작으로 증기기관에서 내연기관으로 변화, 거대 바퀴의 대두를 걸쳐 20세기 무한궤도의 실용화에 이르게 된다. 여기에서 탱크 탄생에 큰 일조를 하는 홀트 트랙터가 개발된다. 여기서 잠깐! 탱크가 탄생하기 전에 여러 발명가들이 발명한 장갑차가 세상에 선을 보이지만 군에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사라진다.(심스의 모터 워 카, 페닝턴 유선형 장갑차량 등)


 본격적인 탱크 탄생 이야기에 앞서 탱크가 탄생하게 된 배경은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이다.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의 페르디난트 황태자 부부가 세르비아 민족주의자 대학생이 쏜 총에 맞아 숨지면서 오스타리아가 세르비아에 전쟁을 선포하며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은 전쟁 초반 짧은 기간내에 프랑스를 점령하겠다는 동맹국 독일의 계획이 전쟁 초반 벨기에의 강한 저항과 영·프 연합군의 빠른 대응으로 독일군의 진격이 멈추면서 결국 독일군은 참호를 파고 영·프 연합군과 대치하면서 전쟁이 장기전에 돌입하게 된다.

 돌격으로 적의 진지를 빼앗았던 보병들은 기관총과 참호, 철조망 앞에서 시체의 산을 쌓아갈 뿐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영화 '1917'을 본 사람이라면 참호 속 장면이 떠오를 것이다.)

 당시 참호와 철조망으로 대치되었던 지역을 무인지대(No Man's Land)라고 일컬었다고 하니 전쟁에 참전했던 보병들에게 얼마나 무서웠던 상황이었는지 알 것 같다.

 이런 대치 상황에서 영국은 육상전함위원회를 만들어 참호전을 이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바로 탱크 탄생의 첫 발걸음이었다. 



 <탱크의 탄생>

 참호전 승리를 위해 무한궤도를 활용한 전차 개발에 몰두한 영국은 여러 시행착오 끝에 드디어 세계 최초의 전차라 불리는 '리틀 윌리'를 개발한다. 새로운 궤도를 장착한 '리틀 윌리'는 나름대로 만족스런 성능을 보였지만 1915년 9월 시험 주행에서 여러 문제점을 남기고 실용화에는 실패를 한다(개량형 리틀 윌리가 제작되었으나 실전에 투입되지는 않는다).


<세계 최초의 전차 리틀 윌리, 출처: 유튜브>


 1916년 1월 마침내 탱크가 등장한다. 제국 육상전함 '센터피드'인데, 영국은 '육상전함'이 비밀병기로서의 의미가 없어서 새 이름을 고안한다. 처음에는 'Water Carrie'로 했는데 줄여서 'W.C." 즉, 화장실호가 되는 바람에 '물탱크', 즉 오늘날의 "TANK" 라는 정식 명칭을 짓게 되었다.

  1916년 세계 최초의 '탱크' 생산이 시작되었다. 밀리터리 마니아라면 알 수 있는 마크I 탱크인데 처음에는 녹색, 노란색, 갈색, 핑크로 위장을 했으나 실전에서는 진흙투성이가 되어 바로 폐지를 한다. 여기서 마크 탱크의 포가 지금 우리가 아는 탱크의 포 위치와 다른 측면 포탑인 이유는 당시 탱크를 육상전함의 연장선으로 봤기 때문이었다고 한다.(처음에는 해군 주도로 탱크를 개발했다)

 처음 탱크를 개발할 당시에는 참호와 철조망 등을 무력화하는(넘어서는) 목적이 강했기 때문에 내부 승무원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엔진과 승무원간의 내부 구획 구분도 없었기에 전차병들은 소음, 진동, 배기가스에 노출되어 탱크를 처음 본 독일군의 공포와는 별개로 탱크 전차병들이 내부에서 느끼는 공포는 극에 달했다(전차병들의 훈련은 무기 부족으로 체조와 행진이 주훈련이었고 한 대뿐인 훈련용 탱크는 좌우에 돌출 측면 포탑이 없이 개방된 상태라 탱크 내부에서 내뿜는 열기를 알 수 없었다). 탱크 내부의 심한 소음으로 조종사와 조타수간 의사소통은 스캐너로 벽을 두드리면서 신호를 주고 받았다고 한다. 또한 외부와의 교신은 비둘기 두 마리를 이용한 전서구를 활용했는데 밤에는 비둘기가 잠을 자야해서 그마저도 활용이 불가능했다고 한다.


 <탱크의 첫 실전>

 1916년 9월 15일 솜 전투에서 드디어 탱크가 전장에 등장한다. 총 49대가 전장에 투입됐지만 출발 지점에 도착한 탱크는 32대였고, 독일군 진지까지 돌입한 탱크는 9대였다고 한다(중간에 고장이 나거나 길을 잘못 들은 탱크도 있었다고 한다). 처음 탱크를 목격한 독일군은 패닉상태였지만 대포에 명중하면 쉽게 망가지는 탱크의 모습을 보고 대응에 나서게 된다. 탱크의 출현에 전장에 있던 독일군들은 집속수류탄(즉석에서 수류탄 7개로 제작된 대전차 병기)이나 대전차총, 박격포 등으로 대응했다고 한다. 첫 전투에서 탱크가 큰 성과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영국은 당시 독일군에게 본토가 열기구와 비행기에 폭격을 당하는 어려운 상황에서 탱크의 출현은 국민들에게 큰 희망을 주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1917년 11월 캉브레 전투는 영국군이 대규모(약500대)의 탱크를 투입하여 성과를 올린 최초의 전투로 유명하다. 솜 전투 등에서 큰 성과가 없었던 탱크가 전쟁을 승리로 이끌 주요 무기라는 기대감이 사그라들기 시작할 시기에 탱크가 거둔 성과로 향후 전쟁의 패러다임을 바꿀 전투였다.【캉브레 전투의 결과는 영국(연합군)의 승리라고 보기는 어렵지만은...】



 2부. 탱크의 탄생 2 전차의 시작: 독일, 프랑스 편

 <프랑스 탱크>

 2부는 독일과 프랑스의 전차를 발명하기까지의 이야기와 함께 독일의 돌격전차 A7V와 프랑스의 전차 제1호인 슈네데르 CA와 야포를 탑재했던 전동전차 생샤몽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다.

 프랑스의 전차 개발의 시작은 영국과 조금 다르게 시작되었다. 영국은 참호를 무력화하는(넘어서는) 방향으로 전차 개발에 힘썼다면 프랑스는 참호 앞을 가로막는 철조망을 제거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전차 개발에 몰두했다. 프랑스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시대에 역행하듯 눈에 띄는 파란 옷과 붉은 바지를 입고 전술은 오로지 돌격뿐이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영국보다 빠르게 장갑 전투차량 개발에 힘을 썼으나 간발의 차이로 세계 최초의 전차 자리를 영국에 빼았기고 말았다.(후일담에 의하면 프랑스 전차 개발에 앞장 섰던 에스티엔느 중위가 영국으로 날아가 탱크 생산 연기를 제안했다고 한다. 자신이 개발한 탱크가 최초의 전차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것 같지만 대량 생산 후 한 번에 탱크를 투입해서 독일군이 미처 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공격하자는 생각이었다고 한다. 물론 이 제안은 영국에게 거절 당했다)

 프랑스 전차의 아버지인 에스티엔느 중위는 정부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해 한 제조사와 함께 슈네데르 CV를 개발한다.(프랑스 육군은 에스티엔느의 탱크 개발에 자극을 받아 또다른 탱크인 생샤몽 개발을 진행한다) 

 1917년 4월 16일 아침 프랑스는 120만 병력과 함께 슈네데르 CA, 생샤몽 전차 136대를 투입해 독일군을 향해 니벨 공세를 펼치지만 이미 영국군과의 전투에서 탱크를 경험해 내성이 생긴 독일군의 포격으로 인해 프랑스 탱크 136대 중 57대가 파괴되는 참패를 당하고 만다.(최강 야포 생샤몽에 대한 이야기는 리뷰가 길어져서 생략한다)



 <독일 탱크>

 독일군하면 사막의 여우라는 '룸멜 장군'이 떠오르듯 기갑사단의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1914년에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는 독일군에 장갑차량이 없었다.

 영국의 첫 탱크가 선을 보였을 때도 당시 현장에 있던 보병들의 육탄방어와 포격으로 막을 수 있어서 군 수뇌부가 전쟁 초기에는 탱크 개발에 대해서 미온적이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일부에서는 탱크 개발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고 수송제7과라는 독일 장갑차량 개발을 위한 조직이 탄생하게 된다. 여기에서 개발된 전차가 돌격전차인 A7V이다. A7V는 57mm 포 1문, 기관총 6정을 무장하고 기본 18명 최대 24명까지 탑승할 수 있는 전차였다고 한다. 다른 전차에 비해 승무원이 많았던 이유는 전차 성격이 전차전이 아닌 돌격부대를 태운 소위 전투 상자에 병사를 태우고 전장에 이동하는 목적으로 하는 돌격전차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A7V에는 내부에 튼튼한 손잡이가 있어서 병사들이 차내를 이동할 수 있도록 했고 차내에 라이플 보관대도 있었다고 한다.(A7V는 전부 수작업으로 제작되었고 총20대를 생산했다고 한다)



 <전차 대 전차>

 1918년 3월 독일군은 미군이 참전하기 전에 제1차 세계대전을 승리하기 위해 연합군을 향해 춘계 대공세를 펼치게 된다. 독일은 A7V 20대 중 15대를 참여시키는데 이동 도중 2대가 고장이 나서 13대의 A7V가 참여하게 된다. 이때 프랑스 아미앵을 공격하는 중간에 있는 빌레르 브레토뉴에서 세계 최초의 전차전이 벌어진다

 1918년 4월 24일 영국의 마크IV 남성형 1대와 여성형 2대(포가 있는 마크를 남성형, 기관총만 있는 마크를 여성형이라고 불렀다)가 독일군의 A7V 1대와 마주치게 된다.(함께 기동하던 A74 3대 중 1대는 중간에 폭탄 구멍에 빠져 이동을 못했고 2대는 뒤에 있다가 후퇴를 했다고 한다) 

 최초 전차전의 결과는 영국의 여성형 전차 2대는 독일군 A7V에 공격을 당해 금방 후퇴를 하고 이때 마크IV(남성형)가 포격하기 쉬운 장소로 이동해서 좌현에서 몇 발을 쏜 끝에 A7V의 주포 오른쪽을 명중시켜 포수 1명 전사, 치명상 3명, 경상 3명의 전과를 올린다. 인류 최초의 전차전은 영국의 승리로 끝을 맺는다.



 탱크의 탄생》은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등장한 탱크에 대한 이야기를 일러스트로 이해하기 쉽게 담은 만화 형식의 탱크 입문서로 저자 모리나가 요우가 탱크에 대한 오랜 연구와 함께 직접 현지 박물관에 가는 열정으로 단순히 탱크의 외형 뿐만 아니라 탱크의 내부와 작동방식까지 디테일하게 그려냈다. 탱크의 구조 뿐만 아니라 탱크를 만들기까지의 제1차 세계대전의 당사국인 영국, 프랑스, 독일 3국의 발자취도 볼거리다. 전쟁사×밀리터리 전문 유튜브 채널인 '건들건들'에서 자신있게 추천한 이유를 알 수 있을만큼 1차 세계대전 탱크에 대한 설명으로 최고의 책이라 생각이 된다. 다만 너무 많은 정보를 담으려다 보니 큰 판형임에도 불구하고 글씨체가 작고 다소 복잡해서 주의깊게 읽어야 하는 점은 유의해야겠다. 밀리터리나 전쟁사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우리나라도 모리나가 요우의 탱크의 탄생》처럼 잘 만든 밀리터리 책들이 많이 출간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영국 탱크 마크 시리즈, 출처: 유튜브>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주)북이십일 레드리버에서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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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투쟁의 역사를 만화로 만나다. 35년 3 | 역사 2020-03-23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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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35년 3

박시백 글,그림
비아북 | 2018년 0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역사. 일제강점기 35년 세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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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일제에 강제 병합된 1910년부터 1945년 해방까지 일제 강점기 우리의 역사를 다룬 박시백 화백의 35년 시리즈 중 2권, 4권이 운좋게 서평단에 당첨된 계기로 나머지 시리즈를 구입하게 됐다. 구입 후 바로 읽었으면 좋으려만 역시 미루고 미루다가 1년이 다 되어 <35년 3>을 책장에서 꺼내 읽었다.


  <35년 3>1921년부터 1925년까지 무단통치가 끝나고 문화통치가 시작되는 5년간의 시기를 다루고 있다. 박시백 화백의 대표작 <조선왕조실록>은 이야기 중간 중간 재미있는 삽화들로 흥미를 이끄는데 반해 <35년>은 우리에게 가슴 아픈 일제 강점기를 다루고 있는 관계로 다소 딱딱하게 설명하고 있어서 초등학생보다는 중학생 이상이 읽기에 적합한 책으로 보인다.(물론 초등학생은 읽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프롤로그에서 1920년 전반 당시 세계의 주요 역사를 설명해 주고 있어 전체적인 세계 흐름과 우리나라 상황을 연계해서 이해할 수 있게 해 주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파리강화회의에서 패전국 독일에 대한 가혹한 배상금 부과와 승전국이었던 이탈리아가 별다른 대접을 받지 못함으로써 불만이 커져가고 있었고, 러일전쟁 승리 이후 중국을 독점하려는 등 야욕이 커지고 있는 일본에 대해 미국 등 열강들이 경계심을 가지면서 워싱턴회의를 통한 군축 협의에 따라 주력함 보유 비율이 정해졌다. 한편 러시아의 볼셰비키 정부는 1922년 12월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소련)을 출범시켰고, 중국에서는 군벌 할거 체제를 국공합작으로 북벌을 하면서 군벌이 수습되는 분위기였다.

 


 일제강점기 우리나라는 1918년 쌀 폭등에 대한 일제의 무력 진압에 대한 비난과 1919년 3.1혁명으로 더 이상 무단통치는 안 된다는 일본 정가의 인식으로 조선 총독으로 사이토 마코토가 부임하면서 무단통치가 막을 내리고 문화통치가 시작된다. 문화통치가 시작되면서 무단통치의 상징이었던 관리, 교원의 제복 폐지와 유명무실했던 중추원 소집, 특히 총독부가 신문 발행 허가 신청 접수를 받으면서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이 창간하게 된다. 지금은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보수의 대표 신문이 되었지만 1920년대만 하더라도 민족지로써 비타협적 논조와 친사회주의 논조(동아일보)를 펴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신문사인 동아, 조선일보가 중앙일보와 더불어 조중동이라는 비아냥을 받는 것이 몹시 안타깝게 생각이 든다. 오랜 역사를 가진 신문으로써 이념 대립과 왜곡 보도가 아닌 사명감을 갖고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정확한 정보 제공을 할 수 있는 신문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일제는 문화통치를 통해 온건독립파 회유에 힘을 써 3.1혁명 후 상하이에서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을 책임졌고 2.8 독립선언서를 기초에 적극 참여했던 이광수, 3.1혁명을 사실상 기획하고 준비 과정을 총괄한 최린, 조선을 대표하는 문필가이자 학자였던 최남선 등이 일제의 회유에 친일의 길을 걷게 된다.

 근대문학사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이광수와 최남선의 작품들을 친일의 과오와 별개로 문학적으로만 평가를 해야 할지 그들의 작품을 학창시절 좋아했던 한 사람으로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한편 1920년대는 러시아와 만주에서 무장 투쟁이 조직적으로 활발하게 이루어져 홍범도 장군과 김좌진 장군이 이끄는 독립군 진영은 봉호동 전투,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에 막대한 피해를 주기도 하지만 무고한 주민들이 일제의 총칼에 살상 당하는 경신참변을 겪게 된다. 일본의 무고한 살상은 1923년 9월 일본 도쿄 대지진 때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킨다는 유언비어를 퍼트려 일본인들은 자경단을 조직해 조선인에 대한 무차별 살상으로 수천명의 학살로 이어진다. 아직도 전쟁의 과오를 뉘우치지 않고 사과도 하지 않는 일본을 보며 악화일로 상태의 한일 관계가 앞으로 차차 나아진다하더라도 일본의 속내를 계속 주시하며 포기하지 말고 올바른 한일 관계 정립을 위해 노력해야겠다.

 

 

 독립군 무장 투쟁과 더불어 본격적인 의열 투쟁이 벌어지는데 약산 김원봉의 의열단이 핵심 역할을 하게 된다. 박재혁의 부산경찰서장 암살사건, 최수봉의 밀양경찰서 폭탄 미수사건, 김익상의 총독부 폭탄 테러사건, 육군대장 다나카 암살 미수 사건 등을 거듭되는 실패와 성공 속에 의열단원의 용감한 투쟁은 계속 되고 1922년 신채호의 사상이 집약된 조선혁명선언은 의열단의 정신이 된다. 7년여의 의열단 폭력 투쟁은 민중을 깨우치는데 한계에 부딪히자 그동안의 암살파괴운동에서 대중적 무장투쟁으로 노선을 변경하게 된다.


  

  <35년 3>은 이외 러시아로 이동했던 한인무장부대의 내부 분열에 따른 자유시 참변, 임시정부 내 개조파, 창조파, 임정고수파의 내분, 밀정과 친일 경찰들의 행적, 우리에겐 영화로도 기억되는 박열과 부인 후미코의 무정부주의 투쟁 등 1921년부터 1925년까지의 5년간 일제강점기 투쟁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353> 박시백 화백이 오랜기간 자료 조사와 정리를 통해 그린 완성도 높은 대하역사만화로써 일제강점기를 소재로 한 여타 역사책에 결코 뒤지지 않는 가치있는 책이라 생각된다. 특히 부록의 연도표와 함께 인명사전은 만화에서 본 인물들을 다시 확인할 수 있고 그동안 잊혀졌던 독립운동가뿐만 아니라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생애가 잘 정리되어 있어서 역사 바로 잡기에도 도움이 된다. 만화로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아픈 역사를 이렇게 무게감 있게 다룰 수 있는 책을 만난 건 내겐 큰 행운이라 생각된다. 이 책을 중고생 뿐 아니라 많은 독자들이 읽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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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보면 세계사가 머리에 쏙쏙 ~~ | 역사 2020-03-12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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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그림 쏙 세계사

릴리스(김순애) 저
지식서재 | 2020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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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적 이미지의 힘을 느끼게 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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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 때 만난 세계사 과목 선생님 덕분에 세계사에 재미를 붙여서 학창시절 내내 세계사 과목은 좋은 점수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수업도 잘 가르쳐 주셨지만 미모의 여선생님께 점수를 잘 받아서 칭찬을 받고 싶은 마음도 컸던 것 같다. 아무튼 학창시절 나름 잘했던 세계사를 지금의 거의 잊어버렸다. 시험이 다가오면 종종 친구들이 시험에 나올 예상 문제를 내게 물어볼 정도로 다른 과목에 비해 세계사 과목만은 자신 있던 내가 왜 지금은 거의 다 잊어버렸을까?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학창시절 세계사 흐름을 이해하기 보다는 그저 시험을 잘보기 위해 주요 사건을 달달 외웠던 것이다.

 

 <그림 쏙 세계>를 처음 만났을 때는 겁부터 났다. 600쪽 가까이 되는 분량에 인류의 탄생부터 소련의 해체까지 광범위한 이야기라니 "과연 제대로 이해하며 읽을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러나 책 속 곳곳에 있는 300개의 이미지는 400만년 전 구석기 시대부터 2000년대 러시아 푸틴 대통령까지 시대별 주요 굵직한 사건들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림 쏙 세계사>는 회화, 조각, 사진, 도표 등 이미지를 따라가다보면  세계사 흐름이 한 눈에 이해할 수 있는 책으로 저자 릴리스는 외국인이라는 예상과 달리 중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쳤던 교사 출신으로 블로그 누적 방문자 수 500만 명이 넘어선 '릴리스의 명화살롱' 파워 블로그라고 한다.

 

 

 이집트 하면 피라미드, 스핑크스, 미이라가 떠오른다. 높이 137m에 쌓은 돌의 무게만 500만 톤에 가까운 피라미드는 많은 노예들이 애니메이션 <이집트 왕자> 속 장면처럼 간수들에게 채찍을 맞으며 건설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노예뿐만 아니라 평민들도 나일 강 범람 시기인 농한기 때 임금을 받고 피라미드 건설에 참여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10년 전 4대강을 살린다며 대규모 토목사업을 벌였는데 이집트 고왕국 시대(기원전 2086년 ~ 기원전 2181년)에도 국가적인 대토목사업을 벌였다는 것이다.

 1820년 테베 서쪽에서 발견된 네바문 무덤(기원전 1350년)은 이집트 벽화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품으로 평가를 받는데 기원전 1350년 경에 이렇게 완벽한 새의 모습과 사람(네바문 옆은 아내, 아래는 딸이라고 한다.)을 그렸다는게 당시 이집트의 높은 문화 수준을 느끼게 된다. 이 무덤 벽화는 이집트 왕실 서기였던 네바문이 늪지에서 사냥을 하는 모습으로 비옥한 습지에서 사냥을 한다는 것은 내세에 부활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 아름다운 작품은 이집트 주재 영국 영사였던 헨리 솔트가 무덤 벽화들을 떼어 내 여기저기 팔아서 무덤과 벽화가 많이 훼손되었다. 당시 제국주의 나라들의 무분별한 도굴로 고대 이집트의 찬란한 역사를 후손들이 제대로 알 수 없게 만들었는데 인간의 이기심과 어리석음의 결과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우리에겐 브래드 피트 주연의 영화 <트로이>로 기억되는 트로이 전쟁은 기원전 1200년경 미케네인과 트로이인이 충돌한 10년 전쟁으로 트로이 왕자가 스파르타 왕비 헬레네를 납치하면서 일어났다. 우리가 '트로이 목마'로 잘 알고 있는 이 전쟁은 그리스 연합군의 공격을 잘 막던 트로이가 그리스인이 두고 간 목마를 성안으로 들여 보내는 실수로 인해 목마 안에 숨어 있던 그리스 군사들의 기습 공격으로 패배를 하게 된다. 이 조각품을 아무 사전 지식 없이 감상 한다면 뱀과 사투를 벌이며 고통 받는 사람들의 형상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트로이 전쟁 때 목마를 성안으로 들이지 말라고 조언한 사제 리오콘과 그 아들들의 죽음을 극적으로 표현한 뛰어난 조각품이라고 한다. 죽어 가는 인간의 고통을 잘 보여주고 있다. 기원전 150년 작품을 기원전 40 ~ 30년에 복제한 작품이다.

 

 

 세계 3대 미녀를 지칭할 때 앞서 트로이 전쟁 때의 헬레나, 중국 당나라 현종의 왕비였던 양귀비, 로마 공화정의 몰락을 초래한 클레오파트라를 든다고 한다. 로마 공화정 말기 삼두정치를 하다가 종신 독재관이 되어 황제나 다름없는 권력을 누리던 카이사르의 마음을 훔친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는 기원전 44년 카이사르가 암살 당하자 카이사르의 충실한 부하였던 안토니우스를 유혹해서 강력한 지지 세력을 얻으려 하지만 결국 카이사르의 양자인 옥타비아누스에게 패배 후 인질로 잡히기 전 안토니우스와 함께 자살 했다고 한다(클레오파트라 죽음과 관련해서 여러 설이 있다). 이 그림은 카이사르가 암살 당한 후 새 로마의 지도자로 부상했던 인물 안토니우스를 유혹하는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만남>이라는 그림인데 화려하게 장식한 배를 탄 매혹적인 클레오파트라의 모습에 반한 안토니우스의 얼굴이 눈에 띄는 작품이다. 첫 눈에 반한다는 것이 이런 모습이 아닐까?

 

  

 무언가 열심히 열변을 토하는 남자 앞에 머리가 아픈 듯 앉아있는 왕과 왕비의 모습이 과연 어떤 장면일까? 이 그림은 엠마누엘 로이체가 그린 <여왕을 알현하는 콜롬버스>라는 작품으로 신대륙 아메리카를 발견한 이탈리아 탐험가 콜롬버스가 1492년 에스파냐 여왕 이사벨 1세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모습이다. 콜롬버스는 대서양 항해 계획을 세우고 여러 나라에 지원을 요청하지만 모두 거절 당하고 간신히 에스파냐 여왕 이사벨 1세에게 후원을 받아 탐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1492년부터 1504년까지 총 4회에 걸쳐 항해를 했던 콜롬버스는 신대륙의 한 섬에 도착했는데 이 섬을 인도로 착각했다고 한다(죽을 때까지 인도를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늘날 이 섬을 서인도 제도라고 부른다고 한다. 콜롬버스의 대서양 항해는 포르투갈과 에스파냐의 식민지 개척으로 경쟁을 하게 되는데 1494년 두 나라는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맺어서 지구 서쪽을 발견하는 땅은 에스파냐가, 지구 동쪽에서 발견하는 땅은 포르투갈이 갖는다는 내용으로 당시 아프리카와 신대륙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의 의사에 상관없는 식민지화되는 조약이었다. 이 조약은 훗날 강대국의 식민지 분할에 선례가 되는데 어린 시절 우리가 돌로 땅따먹기를 하듯 강대국들은 자기 마음대로 조약을 맺어 땅을 나누던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유럽은 16세기 루터의 종교 개혁을 시작으로 산업혁명,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으며 나날이 성장해 가고 있을 때 러시아는 1237년부터 1480년까지 200여년 간 몽골의 지배를 받으면서 유럽과 동 떨어져 있었고 16세기 유럽에서 이미 폐지되었던 농노제가 1861년까지 존재하고 있던 후진국이었다. 1682년 표토르 대제 통치를 시작으로 예카테리나 2세 등 강력한 통치자들이 있었지만 계속된 전쟁과 농노제로 인한 심각한 사회 문제로 주민들의 불만이 쌓여만 갔고 혼란스런 과정 중 로마노프 왕조가 막을 내리고 결국 레닌의 볼세비키 혁명으로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가 탄생하게 된다.

 위 그림을 보면 초라한 형색의 남자가 집안으로 들어오자 집에 있던 사람들의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 그림은 러시아 화가 일리야 레핀의 <예기치 못한 방문객>으로 유배지로 추방당했다가 돌아온 가장을 묘사한 그림이다. 알렉산드로 3세는 전제정치를 통해 당시 많은 자유주의자들을 시베리아로 유배를 보냈다고 한다. 시베리아의 그 추운 유배지에서 온갖 고생 끝에 초라한 형색으로 돌아온 아버지를 보고 어머니는 반가운 표정보다는 놀라서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고 아이들의 표정도 불안하거나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가장 없는 삶에 익숙한 가족의 모습이라고 하는데 당시 불안했던 러시아의 사회 상황을 잘 표현한 작품으로 아버지의 모습과 대비되는 가족의 모습이 씁쓸하고 안타까운 기분이 드는 그림이다.

 

  

 1940년 프랑스 파리를 점령한 히틀러가 에펠 탑을 배경으로 참모들과 기념 촬영한 사진이다. 제1차 세계대전 패배 이후 1919년에 맺은 베르사유 조약으로 막대한 배상금을 물게되자 독일의 불만은 커져만 갔고 배상금으로 부족해진 재정을 메우기 위해 과도한 화폐 발행은 초인플레이션으로 독일 국민들은 고통을 받게 된다. 1929년 미국의 대공황으로 미국이 독일에 대한 금융 지원이 끊기면서 독일경제는 더욱 암울해지며 이 혼란스러운 시기에 히틀러가 총통이 되면서 세계는 제2차 세계대전의 먹구름이 끼게 된다.

 1939년 9월 소련과 불가침조약을 맺은 독일이 폴란드를 점령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는데 1940년 5월 15일 독일 기갑사단이 프랑스의 마지노 선 장벽이 없는 아르덴 숲을 지나 프랑스로 진격을 하면서 결국 1940년 6월 14일 파리에 입성하게 된다. 전쟁 6주 만에 프랑스를 점령한 히틀러는 자랑스런 마음에 참모들과 함께 에펠 탑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는 잘 알고있지만 프랑스 파리 점령 5년 후 1945년 4월 29일 히틀러는 정부 에바 브라운과 베를린 지하벙커에서 동반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5,000만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고 이 중 민간인 사망자와 부상자가 많았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문화유산이 파괴되는 아픔도 겪었다. 한국전쟁을 경험한 우리도 전쟁의 참혹함을 잘 알고 있기에 제3차 세계대전은 인류의 멸망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서로 상생하며 공존할 수 있는 미래를 고민해야겠다.

 더불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조언을 우리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제3차 세계대전에서 무슨 무기가 쓰일 지 모른다. 하지만 제4차 세계대전에선 돌멩이와 나뭇가지가 무기로 쓰일 것이다"

 

- 어머니가 죽은 아들의 몸을 끌어안고 있는 모습이다. 작품 바닥에는 독일어로 '전쟁과 독재정치의 희생자들을 기리며'라고 새겨져 있다. 작가 콜비츠가 막내아들을 제1차 세계대전에서 잃은 뒤 제작했다고 한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손자까지 잃었다. 피에타, 케테 콜비츠 작 -

 

  <그림 쏙 세계사>는 기원전 2만 년경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를 시작으로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된 이후 독립한 국가들 지도>까지 광대한 세계사였지만 주요 역사적 사건마다 다양한 이미지를 따라가다보니 세계사의 흐름을 쉽게 이해하며 읽을 수 있었다. 기억에 남는 그림, 사진들이 많아서 리뷰에 다 옮기지 못한 게 아쉬울 정도다. 서구 중심적 역사관이 조금 아쉽지만 다음에 동아시아 역사를 중심으로 한 <그림 쏙 세계사 2권>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꽤 두꺼운 분량에도 불구하고 가독성이 좋아서 세계사에 관심있는 중고생부터 어른들이 읽기에 좋은 책으로 이미지 연상을 통해 주요 세계사를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시각적 이미지의 힘을 느끼게 한 내겐 유익한 독서였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지식서재에서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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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생 AK47의 역사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 역사 2019-08-16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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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AK47 : 매혹적이면서도 가장 잔혹한 도구의 세계사

래리 커해너 저/유강은 역
이데아 | 2019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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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진진한 AK47의 세계사에 흠뻑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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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많이 위축되었지만 한때 나라를 세울 정도로 위세를 떨치던 IS나 내전 중인 아프리카 내 반군의 소년병들이 작은 몸으로 소총을 들고 있거나 총을 쏘는 뉴스를 접하게 되면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었다. 내가 군 복무할 때 힘들었던 훈련 중 하나가 총기 훈련으로 서서 쏴, 앉아 쏴, 엎드려 쏴 등 기본 사격 훈련을 제법 오랜시간 받았었고, 과녁의 탄착군 형성을 위한 영점 맞추기의 어려움, 사격 후 매번 총기 손질을 했었다. TV 속 소년병들이 과연 전쟁 중에 제대로 된 사격훈련을 받았느냐는 별개로 무거운 총기를 자유자재로 들고 다니는게 이해가 안 갔던 부분이었는데 래리 커해너의 AK47을 읽고나서 그 궁금증은 금방 해소가 되었다.


 TV 속 소년병들이 들고 있던 총은 AK47이라고 불리는 돌격소총으로 많은 나라에서 닭 한마리 값도 안 되는 돈으로 살 수 있을 정도로 값이 싸고 움직이는 부품이 거의 없을 정도로 단순해서 관리도 필요없고 사용하기 편리해서 최소한의 훈련만 받으면 어린아이도 조작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브랸스크 전투에서 AK 탄생의 시작

 파괴적인 무기인 AK47의 설계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의 군인이었던 미하일 칼라시니코프이다. 칼라시니코프는 어릴 때부터 뭐든지 만지작거리기를 좋아하던 아이로 우연히 미제 브라우닝 권총을 하나 손에 넣은 후 분해와 조립을 여러번 했을 정도로 기계에 대한 손재주가 남달랐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은 1차 세계대전 당시의 참호전과 다른 전투방식인 전격전으로 폴란드, 프랑스를 침공하여 성공한 후 동맹국이었던 소련까지 전격전으로 침공하게 된다. 예상치 못한 공격과 번개 같은 진격으로 소련 지상군은 연전 연패를 당하고, 당시 브랸스크 전투에 투입된 칼라시니코프는 독일군의 우월한 기관단총에 동지들이 도살되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한 후 병원에서 치료 받는 와중에 새로운 소총 설계에 전념하게 된다. 그의 목표는 모양보다는 실용성을 중점으로 언제 어느 때든 작동하는 총기를 만드는 것이었다. 수십 차례의 수정과 조정을 거친 끝에 이 신무기는 AK47(아브토마트 칼라시니코바 47)이라는 이름으로 1947년에 생산 승인을 받았고, 100여 차례 수정을 거쳐 완성하게 된다.1956년 헝가리 부다페스트 시위에서 AK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는데 학생 뿐만아니라 시민, 경찰, 공무원 등으로 점차 확대되면서 총기를 드는 등 과격해지는 시위에 맞서 소련은 붉은 군대를 헝가리에 급파하게 되고 비좁은 골목 등 도시 환경에서 AK가 제 기능을 발휘하게 된다. 헝가리인 3000명과 소련군 720명의 사망자를 낸 채 이 반란은 진압이 되었다.

 미국은 그 당시 AK를 주목했지만 이 소련 무기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한다. 1794년 이래 미군 무기를 제조해온 스프링필드 조병창은 자신들만의 복잡하고 우수한 총기 개발에만 관심이 있었기에 가볍고 단순하고 관리하기 쉬운 이 파괴적인 총의 의미를 인식하지 못해 결국 향후 베트남 전쟁을 시작으로 여러 역사적 전쟁에서 큰(아픈) 교훈을 얻게 된다.





 AK 베트남, 아프카니스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등 세계 곳곳에서 활약

  독일, 일본에 원자폭탄 투하로 많은 사상자를 내며 막을 내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초강대국들은 직접 대결은 곧 핵전쟁의 절멸로 이어질 수 있기에 제3국을 통한 싸움이 대안으로 자리잡게 된다. 베트남 전쟁은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리전 성격으로 미국은 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며 베트남 전쟁에 발을 들이지만 최첨단 무기와 우수한 병력을 가지고도 밀림에서 벌어지는 근접전에서 AK에 맞설 수 있는 보병 무기가 없이 시작한 것은 미국의 패착이 되고 만다. 미국은  M14라는 소총을 보병 무기로 사용했지만 근접전에서 AK의 상대가 되지를 못했다. 베트남전쟁에 참가한 미군 일부가 자신의 소총보다 AK47 를 선호했다는 것은 그 반증이라 하겠다. 그렇다고 미국에서 총기 개발을 위한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유진 M 스토너가 AR10이라는 좋은 소총을 개발했으나 스프링필드 조병창은 외부인이 만든 AR10의 우수성에 당혹스러워하며 M14를 더 좋아 보이게 하기 위해 여러 실험적 방해를 하며 결국 M14를 계속 생산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신임 국방장관 로버트 S. 맥나마라의 출현으로 미국 소총 역사의 전기가 마련되는데 M14보다  AR15(AR10의 개량형)의 우수성을 알게 된 맥나마라는 1963년까지 M14 생산을 중단하고 AR15 생산을 시작했고 병기창도 해체하게 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M16도 이때 시험 사격 후 실전에 투입되게 되는데 실전 중 총이 막히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게 되면서 많은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결국 하급 기술의 소비에트 스타일인 AK와 첨단 기술의 미국 스타일인 M16의 대결에서 AK가 명성을 쌓게 된다. 베트남이 남긴 교훈은 단순하고 튼튼한 무기로 무장한 결연한 병사들이 M16같이 복잡하고 정교한 무기를 가진 잘 훈련된 군대를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게 되었고 베트남 전쟁 이후 전설적인 AK는 아프카니스탄, 아프리카 내전, IS 등 테러리스트 등에게 퍼져나가게 된다. 지금도 한창 내전 중인 아프카니스탄의 경우 1979년에 소련이 침공했을 때 무자헤딘이 소련 침공에 맞서 미국에 AK를 요청하면서 수십만 정의 AK가 CIA를 통해 들어가게 되는데, 결국 이 AK가 알카에다의 손에 들어가 미국을 겨냥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다. 소련의 아프카니스탄 침공은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철군을 하게 되는데 이 전쟁으로 소련은 재정적 큰 피해를 받게 되었으며 1991년 소련 붕괴의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소련은 냉전 당시 AK를 로열티 없이 공산국가들에게 설계도를 무상으로 넘겨져 중국을 비롯한 여러 공산 국가에서 AK 모델을 자체 생산했는데, 소련의 붕괴로 인해 소련의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된 바르샤바조약기구 국가들은 소련이 비축한 AK 수백만 정 뿐만아니라 자체 생산한 AK 모델을 싼 가격에 팔아치움으로써 중동뿐 아니라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등의 반군과 반정부 세력에 많은 무기가 판매되었다. 튼튼한 AK는 값이 싸고 구입하기가 쉬운 탓에 게릴라 전사들과 테러리스트들에게 완벽한 무기가 된 것이다. 아프리카의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 소말리아, 르완다 등에서는 AK의 맹위로 국가가 전복되고 내전이 계속 일어나고 있고, 남아메리카의 니카라과, 엘살바로르, 과테말라 등지에서도 AK를 중심으로 한 소형화기로 내전이 일어났다. 지금도 서반구에서 가장 규모가 큰 반정부 게릴라 집단인 콜롬비아 통합자위대 집단은 AK를 가지고 인권 침해, 납치, 폭탄 공격, 암살, 마약 밀래, 항공기 납치, 약탈 등을 일삼고 있다. 칼라시니코프가 독일의 침공에 조국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1947년 만들었던 돌격소총이 총기의 우수성(고장이 잘 안나고 휴대성이 좋다)으로 인해 지금도 세계 여러 나라에서 파괴적인 맹위를 떨치고 있으니 그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AK 치명적인 살상무기인가 대중문화의 아이콘인가?

 책 후반부는 UN의 소형화기와 경무기 통제 의제에 대해 자국의 총기 협회의 압력으로 반대에 나선 미국의 또다른 모습과 함께 이라크 전쟁 당시 사막에서 대결한 AK와 M16 이야기를 하고 있다. 물론 이라크 전쟁 당시에도 보병 소총에 한해서는 1947년에 첫 개발한 AK가 승자가 된다. 이라크 전쟁 당시 돌과 흙으로 위장된 출입구 바닥에 숨어있다가 잡힌 후세인 옆에는 AK 소총 두 자루가 놓여 있었다고 한다.

 매달 50달러의 연금을 받으며 수수한 아파트에서 조용히 나이를 먹어가던 칼라시니코프는 자국의 무기박람회에 얼굴을 보이며 유명 인사로서 러시아가 더 많은 군사 무기를 판매하는 것을 돕기 위해 몇 마디 거들며 일부 재정적 지원을 받는 게 다였는데, M16을 개발하여 로열티로 수백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미국의 유진 스토너처럼 자신도 경제적인 인정을 받고 싶어진다. 그러나 칼라시코프는 소총 설계에 대한 특허를 출원한 적이 없었고, 이미 20개 나라에서 자체적으로 생산되고 있어 로열티를 받는 것은 불가능했다. 

 AK는 예술가들에게 반어적인 표현으로 전쟁에 항의하는 상징으로 작품에 이 총을 집어넣으면서 치명적인 살상무기에서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서서히 자리잡게 된다. 새롭게 문화적 상징으로 올라선 AK의 지위를 활용하기 위해 칼라시니코프는 보드카 브랜드에 이름을 빌려주게 되고, 이 보드카는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나는 이제 전쟁에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내 군대인 보드카에만 관심이 있지요. 자리에 앉아서 우정의 건배를 나누고 싶습니다. 세계가 건배를 더 많이 하고 전투를 더 적게 한다면 더 좋은 세상이 될 겁니다."





 2013년 12월 23일 세상을 떠난 칼라시니코프가 1947년 첫 개발한 AK는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잔혹한 무기로 맹위를 떨치고 있다. 현재 생산 중인 AK를 생산 중지한다고 해도 재고뿐 아니라 고장이 잘 나지 않고 파기하기도 어려운 AK는 앞으로도 세계 곳곳의 내전과 분쟁, 테러리스트들의 테러에 이용되어 수많은 사상자를 낼 것이라고 한다.냉전이 남긴 치명적인 유산 AK는 땅 속에서 오랜기간 분해하지 않고 환경을 오염하여 지구를 병들게 하고 있는 플라스틱, 스티로폼처럼 오랜기간 세계 곳곳에서 잔혹한 살상도구로 우리 인류를 괴롭힐 것이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이데아에서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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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서 편안하게 박물관 둘러보기 | 역사 2019-08-06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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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방구석 박물관

제임스 M. 러셀 저/안희정 역
북트리거 | 2019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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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고 흥미롭다. 무엇보다 다양한 분야의 전시물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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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시절 친구들과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났었다. 유럽 여행 가기 전에 계획했던 것이 있었는데 주요 관광지 뿐만아니라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꼭 들러야겠다고 생각했다. 도보와 대중교통 이용, 패스트푸드 식사 등 짠물 투어를 하는 도중에도 영국의 대영박물관이나 자연사박물관,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등은 시간과 돈은 아끼지 않고 둘러보며 웅장한 규모와 수 많은 유물, 예술품들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여행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나중에 대학 졸업 후 취직하면 다시 유럽 여행을 떠나 좀 더 여유롭게 박물관을 보기로 마음 먹었었다. 취직도 하고 세월이 한참 흐른 지금 뭐가 바쁘고 여유가 없는지 아직 유럽 여행을 이루지 못하고 희망사항으로만 남아 있다.


<당시 유럽 배낭 여행 중 관람 후 가지고 온 영국 자연사 박물관 안내도>


 희망사항으로 남아있던 유럽 박물관 관람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니 제임스 M. 러셀이 지은  "방구석박물관"이다. 비록 직접 박물관을 관람하는 것은 아니지만 무더운 여름 시원한 선풍기 바람을 쐬며 방구석 의자에 앉아 읽는 "방구석박물관"은 나름 여름 피서 같다.(실제로 난  여름휴가 중이다.)

 방구석박물관을 둘러보기 전에 박물관 안내자인 저자 제임스 M. 러셀의 안내를 들어보자.


 
 이 책은 시기를 넘나들며 세계 전역의 고대 기기, 발명품 수백 가지의 이야기를 그러모았습니다. 최초의 망원경부터 석궁 발명, 그리고 에트루리아의 의치부터 고대 중국의 자동 시계까지 망라했습니다. 과거 기술의 발전을 엿보는 매우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입니다.
                                                                                                                                         - P.5 



 박물관 관람에 앞서 유의할 점은 박물관에 있는 모든 전시물을 보려고 마음 먹으면 한정된 시간과 수많은 관람객에 쫓겨 관람이 수박 겉햝기 밖에 안 되서 박물관에 다녀온 후 머리에 남는 것이 별로 없다.  미리 박물관 안내도를 상세히 읽어 본 후 평소 관심 있던 전시물을 유심히 보는게 도움이 된다.


 "방구석박물관"은 총6개 전시실로 이루어져 있다. 제1전시실 생활용품, 제2전시실 기계 및 기술, 제3전시실 미스터리한 것들, 제4전시실 군사무기, 제5전시실 의학, 제6전시실 과학기술이 전시되어 있다.



 제1전시실 - 생활용품 -


 - 전시품


 달력, 플라톤의 알람시계, 양봉, 자동시계, 초콜릿, 우산, 변기에 관한 짤막한 역사 이야기, 침대, 자물쇠와 열쇠, 가발, 증류주 제조의 비밀, 화장품, 소방대, 뼈 도구, 커틀러리, 냉장고, 면도기, 껌, 성과 관련된 물건들의 짤막한 역사, 알파벳, 오락용 카드, 정원, 접착제, 화폐, 성냥, 고무, 거울, 게임, 최초로 스키를 탄 사람


○ 가발(P.44) 

 요즘 스트레스가 많아서 머리가 좀 빠지는 것 같다. 그래서 아이들한테도 흰머리 뽑으면 100원 하던 일을 무기한 중단했다. 다행히 머리숱이 아직 많지만 주위 직장 상사나 지인 중 가발 쓰는 사람을 종종 봐서 나도 가발 쓰게 되면 어쩌지 하고 걱정 아닌 걱정을 하게 된다. 그래서 제1전시실 생활용품 중 가발이 눈에 들어온다. 

 가발하면 떠오르는 모습이 중세 유럽 왕이나 귀족, 음악가들이 쓴 가발인데 가발을 처음 만들어 쓴 곳은 이집트라고 한다. 고대 이집트인은 청결에 유달리 신경을 써서 하루에도 몇 번씩 목욕할 정도였는데 독특하게도 털이 없는 몸을 청결하고 문명화된 상태라고 여겨서 야생동물이나 털이 많은 사람들을 원시적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요즘 한창 뜨고 있는 유명 MC 전현무가 이집트 시대에 살았으면 원시적이라고 냉대 받았을 듯 하다. 이집트인들은 남녀 할 것 없이 모두 머리를 짧게 깍거나 완전히 밀어 버려서 뜨거운 햇볕에 화상을 입지 않기 위에 민머리 위에 가발을 썼다고 한다. 이때 가발은 천연 털이나 인조털로 만들었고 밀랍과 송진으로 가발이 흘러내리지 않게 고정시켰다고 한다. 이 당시도 신분이 높고 부자인 이들만 가발을 쓸 수 있는 시대였다고 하니 오늘날이나 그때나 신분에 따른 차별은 변하지 않는 듯 하다.


 제2전시실 - 기계 및 기술 -

 - 전시품


 증기기관, 등대, 금속 가공에 관한 짤막한 역사, 그리스의 기술, 바퀴, 선사시대 발명품, 열기구, 크레인, 스크루, 터널과 광산, 석유정과 시추공, 유리 제조법, 이동식 활자, 중국의 4대 발명품, 풍차, 잠수 장비


○ 중국의 4대 발명품(P.160) 

 요즘 한일 갈등으로 인한 무역전쟁으로 잠시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난 듯 했지만 오늘 미국 재무부에서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을 하면서 미중 무역갈등이 더욱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신흥강국으로 부상한 중국과 초강대국 미국간의 무역 전쟁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지는 모르지만 역사로만 따지면 200여년의 역사 밖에 안된 미국에 비해 중국은 무궁한 역사를 가진 나라이다. 오랜 역사답게 중국이 인류사에 남긴 중요한 발명품들이 있는데, 중국의 4대 발명품은 나침반, 화약, 종이 제조법, 인쇄 기술이다.

 한때 유럽에서는 중국의 4대 발명품을 유럽에서 처음으로 발명되었다고 널리 믿어왔는데 1530년대 이후에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선원들의 목격담이 퍼져 나가기 시작하면서 이 모든 발명품이 중국에서 이미 만들어졌음이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자석 나침반은 중국 한나라에서 만들어졌는데 초창기 나침반은 점을 치는 신기한 장치로만 여겨졌다고 한다. 화약은 서기 9세기 무렵 발명되었는데 처음에는 중국의 연금술사들이 불로장생을 가져다준다는 단약을 만들다가 우연히 화약을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해리포터 등 마법사가 나오는 영화들을 보면 마법 약을 만들다가 약제 비율을 잘못 해서 병이 터져 머리가 타버린 마법사 장면이 종종 나오는 것 같다. 종이는 우리도 잘 알다시피 서기 105년 무렵 중국의 환관 채륜이 발명했는데 뽕나무껍질, 고기잡이 그물, 삼베 등 각종 섬유질을 혼합하여 평평한 종이를 만들었다고 한다. 인쇄 기술은 당나라(618~907) 말기에 고안되었는데 제작 시기가 확인되는 최초의 책은 868년에 인쇄된 "금강경"이라고 한다. 목판 인쇄 기술은 이보다 한 세기 전에 개발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저자는 말하는데 우리나라의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751년 이전 출간된 거로 판명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쇄물인데 저자가 우리나라의 인쇄 역사를 확인하지 못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제3전시실 - 미스터리한 것들 -

 - 전시품

 
 나노기술, 다마스쿠스 강철, 리쿠르고스 술잔, 마야 블루, 바그다드 배터리, 깨지지 않는 유리, 콘크리트, 님루드 렌즈, 선 스톤, 안티키테라 기계장치


○ 바그다드 배터리(P.184)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은 북한, 이라크, 이란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2003년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제조를 이유로 미국과 영국 연합군이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이라크 전쟁이 발발한다. 이 때 고대 유물들이 많이 사라지는데 그 중 하나가 "바그다드 배터리"라는 신비로운 고대 유물이라고 한다.  사산왕조 시기의 유물로 짐작되는 바그다드 배터리는 높이 14cm 작은 테라코다 항아리로 안쪽에는 원통형 구리판이 있고, 그 안에는 철심이 꽂혀 있었는데 안쪽 표면 모두가 발견 당시 부식된 흔적이 있었다고 한다. 독일 고고학자 쾨니히는 사산왕조 사람들이 이 전류를 활용하여 도금을 하는 법을 알았을 수도 있다고 추측했는데 여러 전문가들은 전기를 활용하지 않는 도금 기법으로도 쉽게 만들 수 있었고 전류를 생산했다(직류 연결)는 증가가 없다는 이유로 반박을 했다고 한다. 한편 이 전지에서 나오는 가벼운 전류가 몸을 치료하는 데 쓰였을 것이라는 다른 의견도 있었다고 하는데 어떻게 설명하든지 이 전지는 고대 문명이 우리의 상상보다 훨신 정교한 기술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였지만 이 유물을 전쟁으로 인해 지키지 못하여 이제는 연구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가깝게는 is가 시리아 팔미라 박물관의 고대 유물인 사자상을 파괴한 것부터 멀게는 우리나라 고려시대 때 몽골의 침입으로 경주의 황룡사 9층 석탑이 파괴되는 등 세계 곳곳에 벌어지는 전쟁으로 인해 선조들의 유산이 어처구니 없이 사라지는 부끄러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제4전시실 - 군사 무기 -

 - 전시품

 
 광선 무기, 기관총, 무기에 관한 짤막한 역사 이야기, 크로스보우, 투석기(캐터펄트), 전함, 그리스의 불, 독가스, 갑옷과 탱크, 낙하산 


○ 광선 무기(P.210)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재미가 반감되는 영화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스타워즈다. 스타워즈 초기작 세 편은 개봉이 지난 후 봤지만 우주를 배경으로 전함과 전투기들의 전투씬과 함께 루크와 베이더의 광선검 대결은 동네에서 친구들과 장난감 칼로 하루종일 싸워도 질리지 않을 정도로 어린 시절 내게 최고의 영화 중 하나였다. 지금은 강대국들의 광선 무기 개발이 한창이지만 기원전 214 ~ 212년에 광선 무기가 처음 발명되었다고 하는데 믿어지는가? 고대 그리스의 뛰어난 철학자이자 과학자였던 아르키메데스는 '살인 광선'이라는 별명을 가진 광선 무기를 발명했다고 한다. 태양 광선을 모아 강력한 빔으로 바꾸어 주는데, 이를 이용하면 적의 목선을 불태울 수 있었다고 한다. 이 광선 무기가 실제 있었는지, 정말로 실현 가능한지에 대해 논쟁이 벌어졌고 그 동안 여러 실험이 있었는데 결국 실패를 하거나 실험 결과가 실망스러웠다고 한다. 누군가 고대의 광선 무기를 성공적으로 복원해 내기 전까지는 이 논쟁은 계속될 것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제5전시실 - 의학 -

 - 전시품

 
 외과 수술, 성형 수술, 해부학에 대한 짤막한 역사 이야기, 의료보험 제도, 의치, 마취제, 치의학에 대한 아주 짤막한 역사, 의수와 의족, 문신


○ 의료보험제도(P.260) 

 얼마 전 국내에 짧게 머물다가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고액 진료를 받고 출국하는 외국인들의 행태 때문에 문제가 되어 국민건강보험법을 개정하는 등 한동안 사회적 이슈가 되었는데 그만큼 우리나라 의료보험제도가 잘 되어 있다는 증거 같다. 의료보험제도가 처음 등장한 것은 기원전 4세기였다고 한다. 로마제국 시대에 부자들은 의사에게 돈을 지불하고 치료를 받았지만 일반 시민은 지역 시의회에 고용된 공공 외과의사들에게 치료를 받았는데 이것이 일종의 의료 보장 제도였다고 한다. 여기에서 웃픈 에피소드가 있는데 기원전 220년 무렵 그리스 출신의 의사 아르카가토스는 로마 최초의 공중 보건 의사로 임명되어 인두와 수술칼을 함께 쓰는 치료법을 빈번히 사용해 '사람 잡는 의사'라고 불리며 악명을 떨쳤다고 한다. 로마의 정치인 대카토는 그를 두고 '로마인을 학살하려는 그리스인의 음모'라고 믿을 정도였다고 한다. 한편 중국도 기원전 2세기부터 공공 의료 제도를 시작했다고 하니 "방구석박물관"의 단골나라가 그리스 아니면 중국 같다.


제6전시실 - 과학기술 -

 - 전시품

 
 자력, 염료, 대수학, 원자, 셈법, 지진계, 별자리표, 지도 제작, 살충제, 카메라옵스큐라, 숫자 영(0), 안경과 망원경, 장거리 통신에 관한 짤막한 역사 이야기


○지진계(P.295)

 드디어 마지막 전시실이다. 2017년 포항 지진 사태로 우리나라는 더 이상 지진 안전국가가 아니라는 걸 느꼈는데, 아직도 지진 피해를 받은 이재민 92가구가 임시구호소인 체육관에 남아있다는 뉴스를 오늘 보게 됐다. 하루빨리 주거 지원 등을 통해 이재민들이 일상으로 돌아오길 바란다. 그럼 지진계를 처음 사용한 곳은 어디일까? 놀랍게도 2세기 중국에서 세계 최초의 지진계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후한 시대의 과학 사상가 장형의 지동의가 바로 세계 최초의 지진계라고 한다. 장형이 지진계는 땅이 지진 때문에 흔들리면 용머리 모양을 한 튜브 8개 중 하나에서 청동구슬이 떨지게 된다. 그런 뒤 구슬은 금속 두꺼비의 입속으로 떨어지고, 그 위치로 지진파의 방향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이 지동의에 대한 확실한 역사적 기록이나 실물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작동 원리를 정확히는 알 수 없고 오늘날 과학자들이 당시에 언급된 몇 구절을 토대로 복원해서 만든 모형만 있다고 한다. 현재 과학자들의 해석이 많이 개입되어 있지만 많은 과학자들은 장형의 지동의가 근대의 지진계와 비슷한 기술을 사용했으리라고 추축한다고 한다.


 이상으로 "방구석박물관" 6개 전시실의 전시품 중 시간 관계상(리뷰 분량 관계상) 궁금했던 6개를 우선 둘러봤다. 제임스 M. 러셀의  "방구석박물관"은 6개 주제의 전시실의 다양한 전시품들을 통해 과거 기술의 발전과 기원을 경험할 수 있는 놀랍고도 흥미로운 소재의 책이다. 전시품들의 발명의 기원에 대한 출처가 명확하지 않아 아쉬웠고 일부 전시품은 자세한 설명이 부족한 감이 없진 않았지만 현재 우리들이 실용화하거나 연구 중인 기술들이 오래 전 선조들부터 이어져 왔고 미래에도 계속 변화 발전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우리 미래의 기술들은 디스토피아가 아닌 유토피아가 되기를 바라며 나만의 "방구석박물관" 관람을 마친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북트리거에서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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