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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사회-김민섭]“여기에 사람이 있다” | Memento 2017-11-07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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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대리사회

김민섭 저
와이즈베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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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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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다보면 불가피하게 대리하게 될 때가 많다. 담당이 휴가를 가거나, 혹은 사무실에 아무도 없거나, 있더라도 도움이 안 되거나. 결국 내 일이 아니지만 불가피하게 대리하게 된다. 이때 가장 어려운 점이 권한 문제다. 내 업무이거나, 혹은 내가 책임질 일이라면 주도권을 가지고 해결 할 수 있다. 막말로 망하면 내가 짤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대신할 때의 문제는 내가 책임지기도 어렵고 잘해봐야 본전이다. 대리가 끝나고 상황이 요상하게 돌아가는 경우 비난은 나의 몫이다. 그렇다고 수습하는 일도 쉽지 않다. 답답한 노릇이다. 매일 살아가는 직장, 비교적 작은 대여섯명의 관계도 이렇듯 머리가 아프다.

대리의 문제를 사회 전체에서 바라본다면? 사회가 복잡해지고 분화될수록 대리의 문제는 복잡해진다. 돈이 매개가 되고 대리의 존재는 희미해진다. 권한은 더 희미해지고 할 수 있는 일은 점점 더 제한적이다. 사전적으로 대리는 타인을 대신하여 어떠한 행위를 하는 것이란 의미다. 따져보면 역사는 대리의 역사다. 대리를 착취로 바꿔도 무방하다. 과거에는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를 대부분 노예나 식민지인들이 담당했다. 이를 공고히 한 것은 선민의식이라는 이념이었고, 신분제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매개였다. 지금은 자본주의라는 이념이 지배하고 있고, 돈을 매개체로 하여 동물, 기계(로 위장된 가난한 인간)가 담당하고 있다.

근대사회는 거대한 사기극이다. 누구나 주체가 될 수 있고, 주체가 되어야만 했다. 실상은 그 누구도 주체가 될 수 없음에도.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돈이 있어야만 주체로 설 수 있다. 그런데 돈을 벌려면 주체가 되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 3651년 동안 우리는 얼마나 주체적일까. 돈을 쓰는 그 순간만이다. 그 순간의 위안을 위해 우리는 얼마나 대리자로서 살아가고 있을까.

대리사회의 저자 김민섭은 대리노동의 현장 속에서 주체로 설 수 없는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대리운전사업은 우리 사회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정작 운전대를 잡고 있지만, 목적지를 선택하고 창문 하나 열고 쉴 수 있고 출발하고 멈추고 어느 업체에서 일하고 돈을 얼마나 받고. 어느 것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지점은 내 직업을 대리기사로 마음먹는 일 정도? 주체로서 선택지도 제한적이지만 정작 문제는 결과는 모두 개인의 책임이다. 일을 하는 것도, 사건사고가 나는 것도. 허울뿐이지만 주체적인 존재이니까. 책임은 있지만 권한은 희미해지고, 계약서는 있지만 내가 계약서를 바꿀 수 없다. 주체로 설 수 없는 시스템, 서로 주체로 대하지 못하는 현실, 동류이지만 동료가 될 수 없는 상황. 그나마 저자는 주체적인 소리를 낼 수 있기에 다행일까.

동류이지만 동료가 될 수 없는현실에, 저자는 말한다. “여기에 사람이 있다. 괴물과 싸워 이기 위해서는 서로 공감하고 이어지려는 노력. 그것만이 해결책은 아니지만 유일한 치유책이 아닐지. 거창하게 시스템을 바꿀 수 없지만, 현재 우리 삶에서 버티고 살아갈 유일한 방법이다. “여기에 사람이 있다.” “어느 곳에도 사람이 있다.” <지방시>이후 르포르타주를 써나고자 하는 삶의 방향을 보며, 오늘도 묵묵히 대리사회를 살아가는 저자에게 응원을 보낸다. 더불어 대리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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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스스로 주체라고 믿지만 실은 거대한 타인의 운전석에 앉아 있는 대리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p.5

외면하고 침묵하는 것으로는 그 무엇도 나아지지 않는다. 온전한 나로서 사유하고, 또 주변의 또 다른 나를 주체로서 일으켜 세워야 한다. p.15

모두가 존중할 만한 각자의 삶을 영위하고 있을 것이라는 전에 없던 자각, 노동은 그러한 성찰을 가능케 했다. p.23

소통은 주체가 된 이들의 논리를 확인하고 강요하는 수단이 된 지 오래다. ... 우리는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부터 시작해 교사, 직장 상사와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을의 공간에서 순응하는 방법을 주로 배웠다. p.46

국가 시스템에 효율적으로 통제되면서도 자신을 주체로 믿는, 동시에 사유하지 않고 모든 현상을 바라보는 국민은 지금의 국민국가가 지향하는 대리사회의 이상향이다. 그렇게 대리국민이 된 이들은 국가를 위한 싸움에 스스로 나선다. 국가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국가에 대한 비판을 자신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인다. ‘자신들의 국가를 위해, 그에 순응하지 않는 이들과 몸소 싸워나간다. ... 국가라는 단위를 벗어나더라도, 그러한 시대의 논리를 몸(p.47)에 새긴 개인들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들은 자신이 속한 조직의 시스템에 순응하지 않는 개인들을 주저앉힌다. p.48

우리는 순응하는 몸에 익숙해진 개인들이다. 국가/사회 시스템에 편입되어 있는 한 그것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욕망을 대리하는 대리인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자신을 둘러싼 구조와 마주하고, 주체가 되어 사유해야 한다.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불평해야 한다. 그것은 한 개인이 가진 사회적 책무이자 다음 세대를 위한 성찰이다. p.48

호칭을 결정할 자유를 빼앗겼을 때부터 나의 신체는 이미 나의 것이 아니었다. p.69

스스로 한 발 물러서서 타인의 눈으로 자신의 공간을 바라보는 일은 절대로 패배가 아니다. 오히려 괴물에 잡아먹히지 않은 주체들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행위다. 그러고 나면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행동과 말은 통제되더라도 사유하는 주체로서 존재할 수 있다. p.104

일상은 한없이 평온하다가도 어느 날 이렇게 가혹하게 다가온다. p.135

가족은 끊임없이 서로를 위한 대리로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나는 너를 위해, 너는 나를 위해, 우리는 너를 위해, 그렇게 끊임없이 주체와 대리의 경계를 넘나든다. p.141

내가 일하는 이유는 나의 가족과 함께 행복하고 싶어서다. 그런데 도와주러 나온 아내가 목이 마르다는데 고작 그것에 과민하게 반응했다. 나도 마음이 아프다. 물 값을 아끼고 뛰어다니는 것은 나 혼자서만 하면 그만이다. 나의 할머니는 차비 몇 백 원을 아끼겠다고 몇 정류장을 걸어 다녔다. 나의 어머니도 그랬다. 덕분에 나는 행복했나 보다. p.143

안의 주체는 여성으로, 바깥의 주체는 남성으로, 그렇게 공간에 따른 역할을 나눈 것처럼 보이지만 여기에서 고착화되는 것은 주로 여성이다. p.160

그렇게 서로를 대리하면서, 그리고 주체의 언어로 상대방을 상상하면서 우리는 가족이 된다. p.161

사회는 우리를 대리인간으로 만든다. 나아가 소중한 사람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게 한다. 그러한 대리사회의 욕망은 결국 모두를 집어삼키고, 주체로서의 자리 역시 빼앗는다. p.182

그런데 부부는/가족은 한 동이의 물을 함께 지고 버티는 존재다. 하지만, 강태공도 허생도 물동이를 지려고 하지 않았다. 조금만 버티면 그것을 내려놓게 해주겠다면서 그 역할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물이 가득 찬 물동이를 홀로 위태롭게 지고 있던 한 여인은, 결국 그것을 놓아버렸다. 물을 쏟은 책임은 우선 자신의 역할을 외면한 이들에게 있다. p.198

삶의 무게는 힘겹지만, 어떻게든 그 누구도 넘어지지 않아야 한다. 당신도 나도 잘 버텨내기를 바란다. p.200

노동의 관계도는 가장 간단하게 구성되어 있다. 사용자와 노당자가 계약의 주체로서 서로 연결되어 있으면 그만이(p.225).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용자는 그 중간에 대리인을 끼워 넣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주체로서 감당해야 할 여러 책임에서 벗어난다. p.226

노동자의 주체성을 강탈하는 동시에 그 빈자리에 주체라는 환상을 덧입히는 것이다. 그것이 일상화된 사회에서는 자신을 주체로 믿는 대리가 된 노동자만이 존재한다. 어쩌면 열정 착취보다도 한 단계 진화한 방식이다. 노력뿐 아니라 행복과 만족까지도 강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을 영혼 착취라고 규정하고 싶다. p.227

우리가 상상해야 할 우리는 아직 너무나 많다. p.229

갑과 마주하려는 을의 앞을 막아서는 것은 또 다른을이다. 그들은 한 걸음 물러서거나 밀려난 을에게 너는 이제 더 이상 우리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갑의 욕망을 대리하는 대리인간이면서도, 자신을 그 공간의 주체로 굳게 믿는다. 자신들이 괴물이 되었음을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분노는 주변의 을이 아닌 저 너머의 갑을 향해야 하고, 공고하게 구축된 시스템에 닿아야 한다. 모두가(p.233) 돌아서서 갑과 마주하고, 대리사회의 괴물과 싸워나가야 한다. p.234

동류이지만 동료가 될 수 없는 사이였다. p.237

우리 사회 어디에서나 마찬가지다. 을의 앞을 막아서는 것은 또 다른 을이다. 반드시 폭언이나 폭력을 수반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전쟁의 수행자가 된다. 내 주변의 목소리를 외면하거나 그와 나 사이에 선을 긋는 것 역시, 갑의 욕망을 대리하는 행위인 것이다. p.239

말조심은 을이 아니라 오히려 갑이 더 해야 하는 것이었다. 글을 쓸 때 쉼표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것처럼, 말을 할 때도 그렇게 조심을 해야겠다. 의미 없는 단어로, 몸짓으로, 타인을 불편하게 하지 말아야겠다. p.242

언젠가부터는 타인의 자살을 두고 그래도 그러면 안 되지라고는 도저히 말을 못하겠다. (p.250)것을 순간적인 잘못된 판단으로 폄하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그가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생각하면 먹먹해진다. p.251

가족적 우애가 노동에 대입되는 것은 전근대적인 폭력이 되기 쉽다. 그 과정에서 많은 비상식이 상식으로, 비합리가 합리로 탈바꿈하게 된다. p.254

오히려 우리가 아는 가장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조직일수록, 개인의 노동에 대한 대가를 늦게 지불한다. p.267

사람의 인연은 쉽게 끊을 수 없으니 누가 먼저 용기를 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곧 잊고 있던 선을 기억해 내고 서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대리기사로서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오래 기억하고 싶은 날이다. p.296

그저 핸드폰에서 간단한 클릭 몇 번을 하는 것으로 자신이 해야 할 그 무엇을 타인에게 대리시키면서, 그 기계 너머에 사람이 있음을 잊는 것이다. p.308

사실 노동의 본질은 대리. 우리는 스스로 하기 어렵거나 귀찮은 일을 타인에게 대가를 주고 대신하게 한다. 하지만 과정의 수고로움은 잘 드러나지 않고 결과만이 남는다는 점에서 노동(p.313) 그 자체는 대개 은폐되기 마련이다. p.314

우리는 그들을 요정이나 기계가 아닌 사람으로 호출해야 한다. 기계 너머의 타인을 상상하기란 점점 어려운 일이 되어가지만, 결국 그들을 주체로서 고양시키는 일은 역시 사람의 몫이다. p.318

중심부나 주변부에서는 보이지 않는, 그 경계에 있는 이들에게만 보이는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균열이다. 조직의 시스템이 가진 어느 균열이 희미하게나마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조금 더 중심부에 다가서게 되면 그것을 곧 바로잡겠다고 마음먹는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경계에서 멀어질수록 그 균열은 점차 보이지 않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경계를 완전히 벗(p.322)어나고 나면 그 시스템이 완벽하다고 믿게 되는 것이다. ... 함께 우리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던 그들이, 어느새 그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저 경계에서 한 발 나아간 것뿐인데 마치 자신이 비판하던 시스템의 대리인이 된 것처럼 사유하고 말한다. p.323

스스로 물러났다면 지금 나의 삶은 조금 더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그동안 나아가는 법만 배워왔지 물러서야 한다고는 그 누구도 일러주지 않았다. 그것은 어느 공간에서의 패배를 고백하는 것이고 경쟁에서 도태된다는 의미와도 같다. 무엇보다도 우리에서 이탈해 고립되기를 선언하는 것이기도 하다. p.324

누구도 가르쳐준 바 없지만, 결국 우리는 한 걸음 뒤로(p.326) 물러서야 한다. 밀려나기는 쉽지만 물러서기는 어렵다. 그것은 공간의 주체만이 할 수 있는 행위이고 절대로 패배가 아니다. 그러고 나면 시스템의 균열이 보다 선명하게 보인다. 그 균열의 확장을 통해, 그동안 자신의 욕망을 대리시켜 온 대리사회의 괴물과 마주할 수 있다. 그때부터는 사유하는 주체가 된다. 여전히 행동과 언어는 통제될지라도, 정의로움을 판단하는 주체로서 일으키는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강요되는 천박한 욕망을 거부할 용기를 얻는다.

우리 모두는 경계에 있다. 다만, 한 걸음만 물러설 용기를 가지면 된다. 대리인간으로 밀려날 것인지, 스스로 물러서고 다시 나아오는 주체가 될 것인지,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p.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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