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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디스트 윈터-데이비드 핼버스탬] 우리는 아직도 전쟁의 칼날위에 서있다. | Memento 2018-01-14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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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콜디스트 윈터

데이비드 핼버스탬 저/정윤미,이은진 공역 저
살림출판사 | 2016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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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직도 전쟁의 칼날위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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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학교에서 세계대전이라 배웠지만. 어떤 차원에서의 세계대전인지 피상적으로만 들었다. 냉전의 본격적인 서막을 알리는 양진영간의 대리전이라는 것. 그리고 UN을 비롯한 주변 강대국들이 직간접적으로 참가한 전쟁이라는 것을 문구로만 배웠다. 무엇을 배웠건 우리에게 특히나도 중요한 것은 '남침'과 '북침'을 구분하는 일이다. 남북 모두 군사정권 하에서 아직도 (북한은 아직 그대로) 그 잔재가 남아있는 상황에서 '피아'를 구분하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 사실 북쪽에서 침략했기 때문에 '북(한의)침(략)'으로 이해하나, '남(쪽으로의)침(략)'이나 다를바 없다 싶기도 하지만. 기존에 알려진대로 한국전쟁은 '애치슨 선언'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북중소의 오판을 유도했고, 북한의 침략으로 전쟁으로 시작했다. 이정도가 이 전쟁에대해 확실하게 아는 바다.

데이비드 핼버스탬의 <콜디스트 윈터>는 좀 더 알아야 할게 많다고 나에게 이야기 한다. 이 전쟁은 표면적인 전투나 냉정이 아니라 각 국가의 치열한 정치적 측면, 특히 미국 내의 다양한 정계 변화에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국이 주변 강대국들의 미묘한 관계, 미국 내 정치적 관계에 따라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 알 수 있다. 애초에 미국이 국민당에 대한 로비에 굴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에치슨 선언에 따라 일본만을 최후의 보루로 생각했다면, 오늘날 한국의 운명은 어떠했을지.

전쟁에 참가한 사람들은 많은 희생을 치렀다. 미국 역시 마찬가지.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복잡 미묘한 정치적 사안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참가한 미군들은 정작 어떠한 대의명분 보다는 본인의 정치적, 군사적 입지를 위해 싸우는데 희생되지 않았나 싶다. 대표적인 예로 맥아더장군. 맥아더 장군에 대해서 피상적으로만 생각했다. 전쟁영웅,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한국을 구한 영웅. 하지만 그 역시 치밀한 계산에 따라 이뤄진 것임을 깨닫자 좀 더 다르게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추웠던 전쟁. 이전의 세계1차, 2차 대전과는 달리 미국의 태평양 정책의 시초가 된 전쟁이 아닐는지. 덕분에 우리는 지금의 한국을 이룩했지만, 참으로 아슬아슬하고 위험한 순간들이었음을. 지금도 그 칼날위에 서있음을 느낀다.

(정말 리뷰를 잘 써보고 싶은 책이었지만...더 시간을 끌다가는 까먹을 것 같아서 대강이나마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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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은 소규모 전쟁이 대규모 전면전으로 확대되는 것에 개의치 않았던 미 극동군 총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에게 보내는 일종의 경고사격이었다. p.27

한국전쟁에는 단층선(p.61)이 있었다. 단층선의 한 면은 야전부대가 직면하는 전장의 위험과 현실의 세계고, 다른 면은 안일한 명령만 쏟아내는 도쿄 사령부에 있는 환영의 세계였다. p.62

인민군이 38선을 넘어 전면적으로 남침을 감행했을 무렵 맥아더 장군은 일본의 정치 발전에만 관심을 두고 패전국을 더 평등하고 민주적인 사회로 만들기 위해 몰두하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의 일본은 사회적, 정치적 봉건주의와 경제 및 군사적 근대화가 혼재된 특수한 상황이었다. p.136

나이가 많든 적든, 그리고 전투 사령관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 상태가 좋았든 나빴든 상관없이, 그의 막대한 정치적 자산은 하나의 상징과도 같았다. 오랜 군 생활을 하는 동안 그에게는 뛰어난 경력이 뒤따랐지만 그에 못지않게 과오도 많았다. 너무 쉽게 자만심을 드러내 훌륭한 지휘관과는 거리가 멀었고 자신의 실패를 다른 사람이 감수하게도 했다. p.140

호머 헐버트 “한국의 실패는 자신의 여건을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무시한 결과다.“ p.142

1945년에 시작된 한국과 미국, 정확하게 말하면 남한과 미국의 동맹은 냉전의 산물이었다. 둘은 다분히 군사적인 관계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그리 편안한 관계는 아니었다. ... 양국 관계의 상호 가치와 이해를 강화시키는 것은 냉전 체제뿐이었다.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기꺼이 (p.143) 막아야 할 세계 공산화의 위협이 없었다면 미국이 한국에 신경 쓰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 1950년 6월 이전 오래전부터 한반도 주변의 막강한 이웃 나라들은 모두 경쟁국에 대한 방어 수단과 경고 차원에서 한국을 침략했다. p.144

로저 마킨스 “미국은 늘 ‘자기 사람’이라고(p.155)여기며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외국 지도자와 상대하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변화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p.156

한국전쟁 동안 양 진영이 범한 많은 착오 가운데 공산 진영에서 범한 가장 어처구니없는 판단이 있다. 바로 미국을 위시한 서구 민주주의 진영이 북한의 남침을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대한 판단이었다. p.194

애치슨은 위상이란 “힘이 비친 그림자로 전쟁을 억제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p.195

원대한 전략과 비전으로 대처했지만 불행히도 부분적으로는 동시대의 다른 중요한 문제들을 소흘히 하는 대가를 치른 셈이었다. 권력의 관점에서 식민지 시대의 종말을 맞이하여(p.201) 동맹국들을 어떻게 지원하고 대처해야 하는가는 시급하지 않은 주변 문제로 치부되었다. 동맹국들은 식민지 국가들로부터 군사 및 정치적으로 도전을 받고 있었다. 워싱턴은 때로 공산주의라는 보호막으로 위장한 저개발 국가들의 민족주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소흘히 했다. 실제로 전혀 다른 성격의 위협을 가하는 두 가지 형태의 공산주의가 있었다. 하나는 적군으로 동유럽을 휩쓸었던 강경 소련 공산주의였고, 또 하나는 제 3세계에서 반식민지 세력들이 선언한 공산주의였다. p.202

남한군이 무너지자 트루먼에게는 장제스의 제안이 임시방편이나마 솔깃하게 들렸다. 애치슨은 장제스 부대를 투입하면 중국 공산당이 개입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p.218

대원수 맥아더는 역사라는 무대에서 세계라는 관객을 대상으(p.222)로 연기하는 배우였다. 그래서 늘 극적인 행동을 하느라 분주해 보이는 다분히 과장된 인물이었다. p.223

맥아더는 타고난 연기자였지만 어딘지 모르게 답답해 보였다. 전혀 통제하거나 조정할 수 없는 현실 세계에서, 더구나 이전 시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적과 직면한 상황에서 모든 것을 너무나 주도면밀하게 계산하며 조정하고 통제하려 했다. p.226

군에서는 항상 책임과 충성, 조직에 대한 존중, 명령 준수와 자신의 욕구 사이에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충성은 조직과 상관의 명령을 존중하고 준수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아서 맥아더와 더글러스 맥아더는 군인으로서 이런 중요한 기준들을 지키지 못했다. p.258

1951년 늦가을에 다음 회계연도 국방부 예산을 책정한 결과, 한국전쟁 발발 전에 130억 달러로 추정했던 금액이 무려 550억 달러로 늘어났다. 그로부터 여러 해가 지난 뒤 애치슨은 프린스턴 대학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그 순간을 회고했다. “사실 한국이 우리를 살린 겁니다.” p.450

한국전쟁은 이제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 때보다도 내분이 심해진 중국이라는(p.482) 거대한 나라와 밀접하게 연결된 문제였다. 따라서 트루먼 정부는 한국전쟁에 지원군을 파견하면서 중국 공산군의 개입 여부를 예의주시해야만 했다. 그러나 대통령과 정부 핵심 인사들의 걱정과 달리 막상 전장에 투입된 고위 장교들과 맥아더는 오히려 그런 상황이 벌어지기를 내심 기대했다. p.483

“유능한 장교는 위험한 순간이 닥치기 전에 미리 예상을 하고 부대원들을 능숙하게 다루는 법을 알아. 그저 자기 잇속만 챙기거나 승진에 도(p.630)움이 되는 것만 관심을 갖는 게 아니라 부대원들 모두가 승진하거나 훈장을 받게끔 만들어주지.” p.631

다들 하루라도 더 연명하기 위해 도망(p.635)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동료들 앞에서 겁쟁이 같은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뒷걸음치려다가도 동료들을 실망시키고 불명예를 떠안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들이 전장을 떠나지 않고 계속 싸운 이유는 오직 그것뿐이었다. 그동안 배운 것처럼 조국을 위해 싸워야 하며 공산주의는 반드시 타도해야 할 대상이라는 생각은 전투가 시작되는 순간 이미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p.636

프리먼 “모든 상황이 너무나 고통스럽소. 죽을힘을 다해 싸우고 있지만 대의명분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라오. 모든 게 다 부질없고 허망하게 느껴지는구려. 한국이라는 나라를 ‘해방’시킨다는 명목으로 이 전쟁을 하고 있지만 시실 우리는 이 나라를 파괴하고 있소. 전쟁 중에 희생되는 사람들은 인민군보다 이곳 현지 주민들이 더 많은 게 현실이오. 한국인 중에 미군의 지원을 고맙게 생각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소. 모두들 우리를 너무 증오하고 있어서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처지라오.” p.661

북한 같은 전체주의 제체의 문제점 중 하나는 좋지 않은 소식이 고위 관료들에게까지 정확하게 전달되기 어렵다느 넞ㅁ이다. 물론 민주주의 체제에서도 이런 문제점이 나타날 수 있지만 북한처럼 상하구조가 아주 확실한 곳에서는 더 심각하다. 나쁜 소식은 위로 한 단계씩 올라갈 때마다 살균기에 넣었다 뺀 것처럼 확연(p.707)하게 변해버린다. p.708

인민군의 남침이 있은 직후 제7함대를 대만해협에 보낸 결정은 운명을 바꿀 만큼 결정적인 행동이었지만 미국 정부는 미처 그걸 깨닫지 못했다. 마오쩌둥은 해전이나 공중전으로는 미군을 앞설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한국에서 미국과 맞붙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라면 대규모 육군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대만해협을 헤엄쳐서 건널 수는 없기에 중공군은 압록강을 걸어서 건너는 쪽을 택했다. 미군이 대만해협에 경계선을 긋는다면 한국은 마오쩌둥이 경계선을 긋기에 훨씬 더 편리한 지역이었다. p.740

여러 해에 걸쳐 냉전이 심화되면서 세상을 흑백논리에 따라 양분하는 상투적인 표현들은 북쪽으로 진격하라는 명령에 더욱 힘을 실어주었다. 사실 당시는 여러가지 정황상 흑백논리를 벗어난 사고가 절실히 필요한 때였다. 그러나 예전과 다를 바 없는 게 늘 불만스러운 상황에서는 부분적인 성공에 만족하기 어려운 법이다. 특히 군사적인 성공은 더 그렇다. p.744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그 결과를 책임져야 하는 입장이 아닐 때 훨씬 더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p.759

젊은 나이에 <타임>지 종군기자로 활약했던 프랭크 기브니의 말을 빌리자면 "인천은 지금까지 미국이 맛본 승리 중에서 가장 값진 것이었다. 이로 인해 맥아더 장군은 완전히 신격화되었고 뒤이은 끔찍한 패배마저도 다 이해할 만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p.764

마오쩌둥의 행동을 이해하려면 그를 그저 혁명을 계획하고 이끌어가는 사람으로만 보아서는 안 되고 중국을 지키려는 사람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했다. 마오쩌둥은 국내외에 있는 수많은 적들이 항상 혁명을 방해하려 한다고 믿었기에 그들보다 먼저 손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p.783

양측이 상대방을 제대로 모르고 있었던 탓이다. 그 시대를 아우르는 묘비명을 만든다면 미국과 중국이 어느 정도 스탈린의 손아귀에서 놀아났다는 표현을 뺄(p.805)수 없을 것이다. p.806

스탈린과 마오쩌둥 그리고 이들이 이끄는 공산주의 국가들 사이에 존재한 긴장감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으며 마오쩌둥의 집권이 가까워질수롥 긴장감은 더욱 고조되었다. p.806

마오쩌둥을 비롯하여 그들 모두는 한국전쟁을 개별적인 문제가 아니라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진영 사이에 벌어진 더 큰 규모의 긴장 상태로 인식했던 것 같다. 즉, 이들은 이번 참전이 단지 한국을 돕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아시아 지역에서 세계 혁명을 촉진하기(p.833) 위한 것이라 믿었다. 특히 미국이 중국 국경 바로 옆에 대규모 군부대를 주둔시키는 것을 결코 허용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p.834

메이스는 전쟁에서 제일 힘든 것은 바로 두려움이라고 생각했다. 두려움은 용감한 군인이나 소심한 군인을 가리지 않고 모두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쉽게 전염되어 전투를 치르기도 전에 부대원들의 사기를 꺾어버리기도 한다. 바로 이 때문에 지휘관들은 부대 분위기가 두려움에 휩싸이지 않도록 애를 쓸 수밖에 없다. 훌륭한 지휘관은 어차피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걸 인정하고 최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부대의 사기를 높이는 데 힘을 쓴다. 반면 나약한 지휘관은 두려움이 부대원들의 마음속을 파고들어 곪을 때까지 아무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지휘관 밑에서는 용감하게 싸우던 병사들도 겁이 많은 지휘관을 만나면 이리저리 달아나기 바쁜 겁쟁이가 된다. 훌륭한 지휘관은 그저 전략을 잘 짜는 재능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고 앞장서서 전투를 이끌어가는 자신의 의무와 특권을 매일 충실히 이행한다. 이렇게 할 때 그 부대에 필요한 모든 요소가 하나도 빠짐없이 갖춰지는 법이다. p.984

군인들이 말하는 용기는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 전쟁터에서의 용기와 군 체제에 맞서는 독립적인 태도는 전혀 별개의 것으로 두 가지 고루 갖춘 인물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p.1121

햄버거는 군인으로서 자신이 자리를 걸고 상관의 명령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만큼이나 큰 용기가 필요한 행동인 것이다. p.1148

그들에게는 전쟁터가 전부였다. 그곳은 좁고 잔인하기 그지없는 데다 그들이 자라면서 배웟던 것들과는 아무 연관이 없는 세계였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전쟁터에서는 아무도 선택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평범하고 평화를 사랑하며 법을 잘 지키던 시민들이 어느 날 갑자기 싸움에(p.1251) 노련한 전사로 둔갑하는 과정은 그 누구도 명확히 설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 벤 저드라는 어린 보충병은 제23연대에 배정되자마자 나이가 많고 전투 경험이 풍부한 선배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지평리 전투가 벌어지기 전이었다. "인민군이나 중공군을 어떻게 알아보나요? 그놈들은 어떻게 생겼습니까?" 그러자 선배는 이렇게 대답했다. "일단 보면 알 수 있어."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쌓여야 한다는 뜻이었다. p.1252

모든 전쟁은 어떤 식으로든 일종의 계산 착오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하지만 한국전쟁은 양측 군대가 내린 모든 결정이 하나같이 잘못된 계산에 근거한 것이라는 점에서 독특했다. p.1490

사회가 성장하려면 좋은 방향으로든 나쁜 방향으로든 발전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어차피 누구나 시행착오를 겪고 성공뿐 아니라 실패를 통해서도 교훈을 얻기 마련이다. 하지만 북한은 비판도 실수도 허용(p.1510)하지 않았다. p.1511

미국은 식민지 정책을 펼칠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으며 한국 현대사를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주먹구구식으로 밀어붙이다가 크고 작은 실수를 연발했다. 특히 미국은 한국이 가진 저력을 너무 과소평가했다. 예전에 한국을 짓밟았던 나라들과 비교해도 미국은 트별히 나은 점이 없었다. p.1516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미국인들이 기꺼이 조국의 젊은 피를 한국 땅에서 흘리고자 했으며 정복자나 제국주의적인 포부를 안고 한국을 도와준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이었다. (완전히 반공산주의에 입각하여 나온 행동이었다.) 냉전이 약화되자 미국은 한국 사회에서 발생하는 민주적인 충동에 맞추려고 노력했다. p.1517

한국전쟁 자체보다는 한국전쟁을 둘러싼 미국의 국내외 정치상황과 한국 땅에 와서 고군분투했던 미군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통해 역사의 현장을 복원해낸 책이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 책은 한국전쟁의 기승전결을 다룬 여타의 책들과 뚜렷하게 구별된다. 그리고 이러한 접근법 덕분에 독자들은 뜻밖에 자신의 시야가 탁 트이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한국전쟁은 남북한 간에 벌어진 단순한 내전이 아니라 미국, 소련, 중국, 일본이라는 지정학적 관계와 냉전이라는 당시 국제정세 속에서 발발한 세계전쟁의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p.1666

한국전쟁의 기원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 역시 주목할 만하다. 남침이냐 북침이냐는 논란을 떠나 저자는 딘 애치슨 미 국무부장관ㅇ니 1950년 1월 12일 내셔널 프레스 클럽에서 한 연설에서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이 시작되었다고 지적한다. p.16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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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구한 13인의 경제학자들-한정주] 조선을 구한이라는 역설적 제목 | Memento 2018-01-10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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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조선을 구한 13인의 경제학자들

한정주 저
다산초당 | 2011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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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구한이라는 역설적 제목. 그러나 세상을 우리를 구할 그들의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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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역설적이다. 사실 18세기 개혁의 시대가 좌절로 끝나고, 보수와 반동의 시기를 거쳐 일제 강점이라는 고통의 시기를 보낸 우리 근현대사를 본다면, 조선을 구한 13인의 경제학자들이라는 말이 우습게도 보인다. 왕정의 한계겠지만 정조의 사망이 모든 개혁의 흐름을 바꾸었다. 개인적으로도 많이 안타깝다. 반면 그 개혁이 얼마나 제한적이고 한계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한 사람에게 목메고 있는 허약한 개혁이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그럼에도 저자가 "조선을 구한"이라고 말한데는 내가 말한 안타까움도 함께 있는 것 아닐까. 어쨌거나 조선은 망했지만, 한국은 그 뒤를 이어 세계사의 한 페이지를 지키고 있다. 어찌보면 지금 그때의 개혁가들을 떠올리고 이런 책을 구해 읽는 일은 당대의 문제가 아직도 풀리지 않았거나, 재현되고 있음을, 현재가 위기의 시대임을 사람들이 어렴풋이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더욱 당시의 실학파나 개혁가들의 사상을 바라보며 지금을 돌이켜 보는 것이리라.

경제 전문 월간지 <이코노미플러스>에 연재한 글들이라 간략한 소개와 중요한 내용만 담았다. 저자의 지적대로 우리의 학문 저변이 '서양' 위주로 되어 있다. 이에 우리 내부적으로 가지고 있는 '경제'에 대한 인물들을 소개하고자 했다. 교과서에서 배웠던 '자생적인' 자본주의, 근대화의 씨앗이 조선에 이미 내재하고 있었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들이다. 여기에 해당할 만한 조선의 대표적인 경제학자 13인을 추려서 소개한다. 정약용이나 박지원, 박제가, 유형원 등 유명하고 쟁쟁한 인물 외에 채제공이나 빙허각 이씨 등 비교적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도 소개한다. 그들의 사상이 어떻게 조선을 구하려 했는지, 우리 역사의 궤적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보여준다. 다만 저자가 밝힌바 경제학자로서의 모습, 인물들의 사상에 대해 개략적으로 훑어 낸 글이기에 자세한 내용을 알고자하면 별도의 공부가 필요하다.

"경제학이란 학문은 결코 서양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다. (p.8)"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경제학이란 '재화가 인간 생활에 가져다주는 이로움'을 논하는 학문(p.343)"이라면 이는 동서와 시대를 막론하고 끝없이 되풀이되는 학문이다. 서양은 중세라는  틀을 깨고 강대한 물질문명의 힘을 이루었듯이, 조선도 왕정과 성리학이라는 한계를 넘어서는 일이 불가능하기만 했을리 없다. 다만, 우리 역사에서 이들은 대부분 뜻을 이루지 못했다. 체제 내에서 시기를 만나 그 뜻을 펼치기도 했지만, 종래에는 조선을 구하지 못했다. 대부분 재야인사로서, 유배지에서 본인들의 뜻을 책으로나마 남기고 후대에 전할 뿐이다. 이들이 힘을 가지고 개혁을 하지 못한 일이 단순히 조선만의 문제 였을까. 대안을 모색한다는 일은 비판 의식을 기본으로 한다. 현재의 모순을 인식해야 한다. 이는 시대와 불화하는 가장 빠른 길이다. 저마다 시대와 불화했기에 비판의식을 키운 것일 수도 있고, 비판의식을 키웠기에 시대와 불화했을 수 있다. 계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의 문제다. 결국 개혁이라는 속성이 가지는 한계가 아닐까. 개혁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지만, 힘을 가지려면 결국 시대와 화합(야합?)해야 한다. 또한 개혁은 필연적으로 본인이 가진 힘을 나눠야 한다. 힘이 있어야 개혁을 하지만, 개혁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힘을 나눌 수 밖에 없다.

혁명과 개혁은 반동과 보수를 동반한다. 그래서 정조 사후 극심한 반동과 보수를 겪는다. 세도정치로 조선이 망하는 기틀이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이런 노력은 무의미한 것일까. 저자는 이들의 학문이 '동학 농민운동'과 '개화파'라는 실질적인 운동으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잘 알려진대로 모두 실패했지만. 개혁과 보수는 계속해서 진자 운동을 할 뿐이다. 그 진자운동 역시 영원하지 않다. 계속되는 운동 속에서 시간은 흐르고 시계는 낡아간다. 그리고 한계에 도달하면 시계는 부서지고 새로운 역사, 새로운 시계가 만들어 진다.

 13인의 경제학자가 조선을 구하려 했지만, 그 노력은 아쉽게도 실패했다. 하지만 그 진자운동 덕분에 우리는 새로운 시계 속에 살아가고 있다. 지금 새로운 시계 역시 똑딱똑딱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다. 성리학의 폐쇄성과 오랑캐라도 배울건 배워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을 보며, 지금 우리는 당시를 한심하게 여긴다. 하지만 당시 13인들이 한국을 본다면 무엇이라 생각할까. 세상이 바꼈다고 볼까. 아니면 아직도 비루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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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전(錢)'자를 양과쟁일금(兩戈爭一金, 두 개의 창이 금을 다툰다는 뜻)이라고 한다. 돈이 있으면 위태로운 것을 편안하게 할 수 있고 죽을 사람도 살리는 반면, 돈이 없으면 귀한 사람도 천하게 되고 산 사람도 죽게 한다.  - <규합총서> (봉임칙-자모전) p.118

"총명함은 무딘 글만 못하다."라는 말을 떠올리고 '기록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잊어버렸을 때 도움이 되겠는가?'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모든 글을 보고 그 중 가장 중요한 말을 가려 뽑아 적고 따로 내 생각을 덧붙여 다섯 편의 글을 지었다. - <규합총서> (서문) p.122

"법이 훌륭하고 제도가 좋다면 오랑캐라도 찾아가서 스승으로 섬기고 배워야 한다." 박제가 p.159

단순하게 말하자면 경제학이란 '재화가 인간 생활에 가져다주는 이로움'을 논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p.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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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지식총서148_위대한 힙합 아티스트, 김정훈 저] | 살림지식총서 2018-01-10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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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위대한 힙합 아티스트

김정훈 저
살림출판사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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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너무나도 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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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말했던가. 30 이전까지 들었던 음악은 30 넘어서도 계속 같은 취향의 음악만 듣게 된다고. 아마도 음악적 스펙트럼이 굳어서 듣던 노래와 유사한 노래만 듣는 다는 말이겠다. 그래서 소싯적에 다양한 음악을 듣기 위해 억지로라도 "힙합" "랩" 을 들으려고 무던히도 애썼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의 음악적 스펙트럼은 이내 굳어 버렸다. 음악을 고를 때 딱히 취향이 있는 사람도 아니다. 무던한 편이다. 다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항목이 두 개 있다. 우선 가사가 중요하고, 다음으로는 너무 시끄럽거나 요란하지 않아야 한다.

 "힙합"이나 "랩"은 분명 가사가 좋은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내가 알아 들을 수 없으면 아무리 좋은 가사라도 알 수가 없다. 게다가 시끄럽고 요란한(혹은 하다고 믿는) 경우가 많다보니, 도무지 친숙해 지기 어려운 먼 세계의 음악이다. 하지만 전세계에 수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음악이라면 뭔가 끓어오르는 것이 있지 않았을까. 나에게 그 부분이 없거나 약한게 아닐까. 이런 궁금증에 덥썩 집어들었다. 사실 크게 와닿거나 지식적으로 충족되기는 짧은 분량이다. 그럼에도 닥터 드레나 에미넴이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무엇이 많은 사람들을 열광케 하는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아마도 불량한 이미지로 각인되어 나에게 편견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 바른생활 사나이(라 믿는)에게는 멀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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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내 음악에 항상 폭력이 동반된다며 불평, 불만을 토로해. 성행위 묘사나 여성 비하 발언은 나쁘다고 말하지.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그들부터 긍정적인 메시지에는 별 관심조(p.39)차 없어 대중들의 이중적 특성이지. 만약 내가 폭력적인 것을 수반하지 않으면 그들은 재미없다며 거들떠보지도 않아." (p.40)

"난 원래 백인 쓰레기다. 과거의 내 삶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은 철저히 음악적으로 그려진다. 그냥 그것을 듣고 재미나게 마음껏 즐겨라. 더 이상 거기에 토를 달지 말라."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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