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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박찬국]철학은 어렵다. 하지만 실천이 더 어렵다. | Memento 2018-10-18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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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

박찬국 저
21세기북스 | 2017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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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어렵다. 하지만 실천이 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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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전에도 쓴 글이 있지만보고서를 쓰는 일은 고통의 연속이다워낙 글을 중언부언 못쓰기도 한 탓이지만숫자를 활용한 통계에 미숙하기 때문이다보고서라는 것이 개개를 다루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거시적이고 일반화한 내용을 다룬다수치와 통계로 현실을 분해하여 해석하고 거기서 일반적인 법칙을 추려내어 방향을 정한다그렇게 함으로 복잡다단한 현상에 대응할 기초를 세우는 일인데필연적으로 현실과 거리가 생긴다분해한 숫자와 통계일반적인 법칙을 조합한다고 해서 본래의 개별적인 상황이 되살아나지 않는다소고기를 부위별로 해체했지만 그것을 모두 내 뱃속에 집어넣는다고 해서 소가 내 뱃속의 풀을 뜯어 먹으며 살아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이는 보고서 쓰기에만 국한되는 일이 아니다현대기술문명에서는 모든 사물과 존재를 변환 가능한 에너지원으로 본다인간도 마찬가지다그래서 이 시대의 존재자들은 존재를 상실하였다심지어 위기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궁핍의 시대’, ‘위기상실의 위기의 시대를 노동과 그 대가인 대용물로 버티고 있다이 상실의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가박찬국 교수의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는 하이데거의 사상을 쉽게 풀어서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하이데거의 사상은 어렵기로 유명하다대학생 시절의지 충만 도전했다 좌절한 기억이 생생하다저자는 쉽게라고 말했지만 내가 너무 힘을 주고 읽으려 해서인지 쉽사리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첫 도전 때 가벼운 마음으로 읽다가 중도에 포기했었기에이번에는 노트를 꺼내들고 정리를 시도했다내가 올바르게 이해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나름 거칠게 요약을 해보자면현대기술문명사회에서 존재자들은 존재(성스러움)을 잃어버렸고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시적 이성을 회복해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말이다이 시대의 궁핍(현대과학기술문명)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시인으로서 지상에 거주하는 것이 하이데거의 답이다늘 그렇지만 철학은 우리 곁에 있다고들 한다이를 주장하는 책들 역시 꽤 보았지만 역시나 체감이 잘 가지 않는다다만성스러움을 회복하는 일에 근본기분 경이불안경악이 필요하다는 부분은 얕게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동물과 달리 인간은 삶을 짐으로 느끼는 것을 넘어서 그 짐을 어떻게 하면 가볍게 할 수 있을지어떻게 하면 삶을 즐겁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p.154)” 하는 존재인데현대인들은 자신들이 주체라는 착각 속에 살아가고 있다현대인들은 노동과 향락에 젖어 의지 내지는 탐욕의 노예로 존재를 망각한 채 고통 받고 있다고독감무력감허무감은 그렇게 우리를 찾아온다. “우리네 인생은 고독감과 무력감 그리고 허무감에서 벗어나려는 노력(p.173)”이라 본다면현대사회가 우리에게 제공하는 대용물과 향락은 고독감무력감허무감을 벗어나고자 하는 인간의 근본욕망을 충족시켜 주지 못한다이누이트 족이 늑대를 잡을 때늑대는 자기의 피에 도취되어 죽음에 이른다우리의 모습이 바로 딱 그 모습이다.

여기서 의 의미가 중요하다시는 시어를 통해 존재의 소리를 구체화(p.207)”한다시를 통해 존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자신 안에 깃들게 하는(p.208)”일을 통해존재를 회복할 수 있다는 말이다사람이 이러한 상태에 도달하게 하는 근본기분이 있는데경이불안경악이다개인적으로 근본기분의 힘은 낯설게 보기라고 느겼다평범한 꽃이라 평소에는 보지 못했지만 어느 순간 그 꽃이 찬란하게 눈비시며 눈에 띄는 경우가 있다아니면 늘 똑같은 일상에서 주변사람이 죽어갈 때 자신의 죽음을 상상하며 불안에 떠는 때가 있다일상을 다르게 보거나강한 충격에 의해서 달리 보이는 경우다그 순간 우리는 존재를 낯설게 본다다른 방면으로 바라보고존재에 대해서 고민한다. “깊은 겨울 밤 사나운 눈보라가 오두막 주위에 휘몰아치고 모든 것을 뒤덮을 때야말로 철학을 할 시간이다.(p.248)” 위기의 순간 우리 모두 철학자가 되고시를 읽고정체성을 고민하며더 나은 삶을 찾는다이 순간우리가 지상에서 시인으로 존재하는 순간이 아닐까사역을 있는 그대로 실현하는 순간이 바로 이 위기의 순간이다그래서 하이데거가 위기상실의 위기를 걱정한 것이 아닐까 싶다.

늘 그렇듯 철학은 어렵다하지만 실천이 더 어렵다존재자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다나를자연을주변사람들을 존재 그대로 감사한다는 것이자연을 벗 삼고그대로의 나를 찾아 세상과 조화한다는 일이오늘도 노동의 굴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동료를 수단으로 대하고나를 찾는 사람을 처리해야 할 일로 보고사람들의 선의를 내 자신의 에너지로 소모하는 자신을 돌아본다누군가의 딱한 처지가 해체 되어 보고서의 작은 숫자 하나로 소멸되는 것을 바라본다자연 속에서고요한 정적 속에서 살기에는 향락에 너무 중독된 것일까너무 멀리까지 와 버린 것이 아닌가거대한 의지와 욕구 앞에서 내가 어떻게 존재를 찾을 수 있을까아니 찾더라도 유지는 가능한가두렵다그렇다오늘도 이런저런 글들을 호기심 삼아 읽고잡담으로 소일하며고요한 정적에서 한 걸을 멀어진다희미한 내 존재에 대해 고민해본다나는 지상에서 시인으로 사는가경영인으로기술자로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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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물들이 순전히 기술적인 요구의 관련점 안으로 사라져버린다이제는 그러한 관련 안에 들어설 수 있는 것만이 중요하다아니 그런 것만이 '존재하는것으로 통용된다여기에 주체가 그리고 저기에 대상이 아니라욕구와 욕구충족의 수단이라는 두 극 사이의 연관만이 있을 뿐이다.” p.32

고대와 중세시대에 이룩된 기술적 진보즉 마차와 풍차 등은 삶을 편리하게 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그러나 현대인들에게 있어 과학기술은 도구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삶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궁극적으로 의존해야 할 우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이런 의미에서 오늘날 과학과 기술은 일종의 신적인 존재가 되었고현대는 종교와(p.52) 가장 무관한 시대인 것처럼 보이면서도 가장 종교적인 시대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p.53

근대과학은 세계를 '양화 가능한 에너지들의 연관체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봅니다이러한 과학적인 세계이해는 결국에는 인간마저도 다른 사물들과 마찬가지로 한갓 '계산 가능하고 기술적으로 처리되어야 할 에너지'로 간주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p.54

근대의 과학은 '사물을 정복하고 만물을 보편적으로 지배하는 하나의 방식이다따라서 현대과학의 응용은 더 이상 과학에 대해서 외적인 것즉 과학에 부가된 것이 아닌 과학 자체의 본질이 되었다' p.56

현대인들이 거대한 착각에 사로잡혀 있다. ... 인간은 기술 문명의 어떠한 주체도 아니면서 자신이 주체라고 생각하는 착각... 현대기술문명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것은 세계를 기술적으로 소유하고 지배하려는 의지’ 내지는 탐욕’ p.57

현대인들이 기꺼이 탐욕의 노예로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그것은 바로 자신의 심신을 혹사하는 대가로 받는 물자들에 도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p.58

노동과 향락은 현대인들이 삶을 살아가는 모습입니다그러나 하이데거는 노동과 향락으로만 이루어진 삶은 어떠한 무게와 존엄도(p.61) 갖지 않는 공허한 무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p.62

이 시대의 위기를 사람들이 깨닫지도 느끼지도 못한다는 것 자체가 바로 오늘날의 위기가 갖는 근본적인 심각성이라고 보았습니다이러한 사태를 하이데거는 위기상실의 위기라고 부르며. p.62

비교의식이 일상을 지배함에 따라 타인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자신의 권태를 메우는 수단이 되거나 다른 사람의 흠을 들추어 그들보다 자신이 우월하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호기심이 되기 쉽습니다또한 타인에 대(p.75)해 우리가 하는 말 역시그 사람에 대한 아무런 애정이나 진실성이 깃들어 있지 않은 잡담이 되곤 합니다. p.76

우리는 항상 기분 속에서 존재합니다. p.88

장미는 이유 없이 존재한다그것은 피기 때문에 필 뿐이다장미는 그 자신에도 관심이 없고 사람들이 자신을 보는지도 묻지 않는다.” -안겔루스 질레지우스 p.107

타인의 시선이 불편한 이유는 라는 존재가 그들의 평가하는 대상으로 완전히 전락해버리기 때문입니다. p.117

죽음은 이런 의미에서 일상적인 삶의 자명성을 파괴해버립니다그리고 그 어떤 세상의 가치로도 환원될 수 없는수수께끼 같은 우리의 유일무이한 존재에 직면하게 합니다. p.134

삶을 짐으로 여길 수 있는 존재는 우리 인간뿐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p.153

(셸링) “모든 동물은 슬픈 얼굴을 하고 있다.” p.154

동물과 달리 인간은 삶을 짐으로 느끼는 것을 넘어서 그 짐을 어떻게 하면 가볍게 할 수 있을지어떻게 하면 삶을 즐겁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우린느 간혹 삶을 경쾌한 유희로 느끼며 웃곤 합니다. ‘인간만이 웃을 수 있는 존재라는 말은 이런 의미에서 나온 것이겠지요. p.154

동물의 세계는 본능적인 조절장치에 의해 제한되어 있는 닫힌 세계인 반면인간의 세계는 본능이 약화되고 이른바 생각하는 능력인 이성이 깨어남으로써 열린 세계가 되었습니다. ... 이와 동시에 인간은 동물이라면 절대로 가질 수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힐 수 있습니다파스칼은 끝없이 펼쳐진 우주를 보면서 이 무한한 우주공간의 침묵이 나를 두렵게 한다.”라고 말하기도 했지요. p.159

(쇼펜하우어)개는 인간적인 허위를 갖지 않는 지적인 존재다. p.161

인간의 삶이 가지는 비극과 영광은 인간이 동물과 100퍼센트 동일하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오히려 인간은 동물과 100퍼센트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동물에게는 사치로 밖에 보이지 않을 고독감과 무력감과 허무감을 느낍니다. p.166

우리네 인생은 고독감과 무력감 그리고 허무감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그렇기에 인간을 근본적으로 규정하는 욕망은 식욕이나 성욕보다는 고독감과 무력감 그리고 허무감에서 벗어나려는 욕망입니다이 욕망은 심지어 생존욕에 해당하는 식용은 물론 번식욕에 해당하는 성욕까지 규정합니다. p.173

하이데거는 현대를 두고 과거의 신들은 떠났지만 새로운 신들은 아직 오지 않은 시대라고 말합니다. p.188

시인은 시어를 억지로 지어낼 수 없습니다그는 침묵 속에서 존재가 정적의 소리로서 울리는 것을 듣고그 존재로부터 증여되는 것을 이야기합니다따라서 시인의 말은 사물에 대해 시인이 주관적으로 느낀 것을 표현하는 도구가 아닙니다시인은 침묵 속에서 존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시어를 통해 존재의 소리를 구체화 합니다시가 존재의 소리를 구체화하는 것인 한시는 항상 자신 속에 꿰뚫을 수 없는 깊이와 신비를 간직합니다. p.207

언어는 존재의 집’ ... ‘존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자신 안에 깃들게 하는 시어’ p.208

경이라는 기분은 모든 존재자의 고유한 존재가 열리는 존재의 소리와 인간의 말 사이에 일어나는 화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하이데거는 근본기분을 존재의 소리가 인간에게 전해지는 통로라고 생각합니다. ... 시를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 시를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지배하는 근본기분에 사로잡히면서 그 시에서 발해지는 존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p.210

신들은 우리의 경건한 사유와 삶 속에서야 비로소 세계에 임재할 수 있다. p.215

세계에 대한 과학적 파악과 기술적인 지배를 통해 행복을 실현하려 할 때 우리는 오히려 불안과 초조를 느낀다이러한 느낌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물질적인 대용제를 생산하는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다. p.243

깊은 겨울 밤 사나운 눈보라가 오두막 주위에 휘몰아치고 모든 것을 뒤덮을 때야말로 철학을 할 시간이다.” p.248

소로는 사람들이 자연을 파괴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보았습니다. p.265

(소로)사물에 대한 사랑이나 공감에 기초를 두지 않는 한 그것에 대한 진정한 이해는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이때의 사랑은 사물과 인간이 서로 의존해 있다는 사실서로를 존중해야 한다는 사실그리고 인간의 정신과 사물이 서로 완벽하게 호응한다는 사실에 대한 인정입니다. p.266

(소로)지나친 전문화는 자연과 사물의 정기에 대한 통일적인 감각을 상실한 채 죽어 있는 세부지식만 양산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p.268

가치가 계산될 수 없다는 점이야말로 그것들이 모든 비교를 뛰어넘는 존엄성을 갖는다는 사실을 시사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p.275

(하이데거는그는 오늘날 우리의 삶에서 무엇이 주가 되고 종이 되어야 하는지를 분명히 하려고 했습니다. 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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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 혀-권정현]음식은 삶에 대한 태도를, 과잉은 소설의 재미를 | Memento 2018-10-16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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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칼과 혀

권정현 저
다산책방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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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은 삶에 대한 태도를, 과잉은 소설의 재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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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에 있어서 여러가지 즐거움이 있다는데 그 중 하나가 식도락이라 한답니다. 음식을 먹는 다는 것은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궁극의 아름다움에 도달하는 행위"이자, "신의 선물(p.136)"이란 의미겠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함께 이야기하는 행위는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 입니다. 단순하게 생존을 위해서 먹는 일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친밀감을 쌓고 사회적 활동을 하는데 이 보다 더 인간다운 방법은 없습니다. 흔히들 '식사는 하혔어요?', '다음에 식사 한 끼 같이 하시죠.'라는 말로 인사를 하는데, 이런 인사말들이 개인적으로 먹고 살아남는데만 국한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게 아닐까요. 사회를 구성하고 살아가는 인간에게는 필수적인 행위란 뜻입니다. 때에 따라 사랑의 표현이자, 숭고한 희생의 모습이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일까요. 저는 먹는다는 행위란 삶을 대하는 태도와 밀접하게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평소에 식습관을 본다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성격이 어떠한지를 대충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먹는 걸 크게 중시하는 편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굳이 주어진 맛있는 음식을 거부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굳이 꼭 저걸 먹어야한다는 식의 강력한 의지는 표현하지 않는 편입니다. 그냥 주는 대로 먹습니다. 안먹으면 배고프고, 그러다보면 살 수 없으니 치뤄야 할 일로 대합니다. 찬찬히 맛을 음미하지도 않고, 허겁지겁 삼키키 급급합니다. 그러다 보니 대화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일에 익숙하지 못합니다. 하나의 과업으로 효율성 있게 먹어 치웁니다. 설겆이 거리는 최소한으로, 잔반 역시 최소한으로. 그렇다보니 라면, 패스트푸드가 주종을 이루며, 정성스러운 식사는 대량의 설겆이를 남긴다고 믿습니다. 어떻게 대충 어떤 사람인지 보이실까요? 이는 일하고, 살아가고, 남들과 함께 사는 일에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너무 개인적인 경우입니다만. 그렇다보니 늘 쫓기는 느낌으로 산다고 해야할까요. 세상사에 누구보다 스트레스 받으며, 누구보다 삼아남으려 애씁니다. 생명체라면 누군들 그러지 않겠습니까만, 귀찮은 일을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다만, 해야할때는 효율성 있게 칼을 써서라도 최소한의 생존은 확보합니다. 이런 면에서는 누구보다 치열합니다.

 제7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인 <칼과 혀>를 보며 이런 잡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존과 음식, 칼과 혀. 이 적절한 조합 말입니다. 식민지 만주국이라는 배경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덕분에 한중일 동아시아 삼국이 소설에 모일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각자의 음식을, 저마다의 생존을 도모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지배자와 피지배자, 장교와 병사, 민중과 투사, 먹는 이와 먹히는 이들 사이의 얽히고 설킴이 역사적 배경과 잘 맞아 떨어집니다. 이 설정과 분위기가 '음식'을 통해서 나타나고, 앞서 장황하게 말한대로, 각 인물들이 취하는 삶의 태도와 인물의 성격을 짐작하게 합니다. 소설의 분위기는 어둡습니다. 패망전의 만주국, 혼란한 시기를 관통하는 만큼 배꼽 잡고 웃으며 읽을 소설은 아닙니다.

 칼과 혀라는 제목과 음식이라는 주제에 맞게, 작가는 음식과 요리 묘사에 큰 신경을 썼습니다. 오히려 이런 묘사나 요리에 대한 태도가 지나치게 과장되었다 느껴지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과잉된 묘사가 이 소설의 힘이라 봅니다. 덕분에 소설 속 인물들이, 한중일의 차이가 더 선명하게 부각되고 첨예하게 대립한다고 느낍니다. 팩션소설의 특성(?)상 결말이 예상되고, 이 소설 역시 그 경로를 따르지만 인물과 설정, 배경과 소재를 이끌어가는 소설에 흠뻑 빠질 만 한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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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은 죽음을 부른다는 걸 견장에 힘만 줄 줄 아는 자들일수록 알아야 한다. 나는 이토를 관통한 안의 총소리 따윈 절대 듣고 싶지 않다. p.23

"한 접시의 요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접시에 담긴 요리사의 진심이다. 모든 일에는 흥하고 망함이 있다. 너희들이 매 순간 중심을 잃지 않을 때, 우리를 위협하는 제국주의자들의 힘도 무뎌지는 것이다. 그러니 집으로 돌아가거든, 자신이 오늘 하루 소꼬리를 잘라내는 데 썼던 그 칼이 진정으로 필요한 곳이 어디인지 고민해보기 바란다. 소꼬리 찜은 전쟁이 끝난 뒤 다시 배우자!" p.56

전쟁이 나면 멍청한 남자들일수록 으레 그래야 하는 것처럼 세상의 모든 정의를 짊어지고 불속으로 뛰어들길 주저하지 않잖아? 그건 때가 되면 규칙적으로 여자들에게 찾아오는 이름 모를 일본 병정들이나, 남부식 권총 하나로 세상의 부조리를 끝낼 수 있다고 믿는 내 오빠나, 도마 하나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첸이나 모두 매한가지야. 그래서 난 사내들을 믿지 않아. p.98

"우리 고향에선 음식이 곧 목숨이었다. 음식을 먹는 시간은 최대한 간략하게 줄여야 했고 낭비는 허락되지 않았지. 무사나 군주들일수록 겸양의 미덕을 보여야(p.113) 했거든. 밥을 축내는 노인네들은 수침심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제 어금니를 부러뜨렸어." p.114

전황을 보고받을 때마다 나는 죽음과 삶 사이에 끼인 수많은 생명들을 생각한다. 죽음을 앞둔 운명만큼이나 절박하고 아름다운 것은 없다. 식탁에 차려진 갖가지 산해진미가 아름다운 이유도 그것이 누군가의 입으로 들어가 소화될 운명이기 때문이다. 소멸되지 않는 장식품은 아무런 미적 가치가 없다. 극락사의 반가사유상이 아름다운 이유도 그것이 긴 세월 동안 조금씩 부패해왔기 때문이다. 언젠가 그것의 몸엔 녹이 잔뜩 슬고 미소는 기괴하게 일그러질 것이다. 그러기에 시시각각 변하는 그 미소를 사랑할 가치가 있다. p.126

"옳으신 말씀입니다. 요리가 가진 최고의 기능은 침묵이죠. 인간들이 세 치 혀로 감히 만평할 수 없도록, 그들을 침묵 속에 빠뜨려야 합니다. 더불어 아는 척을 조금 더 하자면..." "하자면?" "음식을 먹는다는 건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궁극의 아름다움에 도달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혀와 위가 우리의 뇌에 가져다주는 행복, 단순하기까지 한 그것을 만끽하는 신의 선물이기도 하지요." p.136

나라는 몸은 무엇이며 나라고 믿는 이 생각은 무엇이며 내가 겪었다고 믿는 과거는 무엇이며 나는 어느 인과를 통해 낯선 신경 한 귀퉁이에 버려져 있는 걸까. 내 오빠는 무엇을 위해 싸우는 걸까. 차나무에 앉아 아침 이슬을 매달고 지리하게 먹이를 기다리는 염낭거미의 반에 반만큼이나 삶은 의미가 있을까? 온종일 먹이를 기다리는 시간만큼이나 우리의 삶은 간절할까. 오빠처럼 거창한 명분은 결코 생각해본 적이 없어. 거창한 명분을 가진 자들일수록 모양과 크기에 집착하는 법이잖아. 종종 삶의 가장 진실한 알갱이를 잃어버리기도 해. p.148

그러면서 사내들은 단련이 되는 것 같아. 몸속의 피가 밖으로 빠져나와 그들에게 죽음을 가르치는 그때에. p.150

개가 허공을 보고 짖을 때 노인네들은 귀신을 보고 짖는 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개가 허공에 떠다니는 냄새를 맡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죽은 자의 냄새일 수도 있고 사물의 단순한 냄새일 수도 있다. 냄새가 흩어지지 않고 떠다닌다는 건 그만큼 그 맛들이 단단한 힘으로 뭉쳐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요리를 먹기 위해 식당으로 들어설 때 손님들은 먼저 코를 통해 그것을 찾는다. 그다음 눈이 그것의 모양과 색을 구분하고 마침내 혀로 평가를 내리는 단계로 나아간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개처럼 사슬에 묶여 있는 나는 인간보다 확실히 개에 가깝다. p.213

내 눈을 탐했던 적을 증오의 대상이 아니라 혀에 와 닿는 맛으로 경험했던 그 날, 나는 커서 결코 군인 따위는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적을 죽이다가 끝내는 자신마저 그 죽음 속으로 밀어넣어야 하는 미련함, 대상에 대한 자유로운 품평을 강제당한 채 통일된 동작으로 뜨겁게 고개를 숙여야 하는 획일화된 세계에 대(p.234)하여 나는 어린 나이임에도 환멸을 느꼈던 것 같다. p.235

가끔 인간의 삶과 죽음을 관통하는 문 하나가 저 부엌 어딘가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어느 부엌이든 문을 열(p.246)고 들어가면 주린 배를 채울 무언가가 숨어 있게 마련이지. 죽이고 죽는 전쟁쯤은 잠시 잊어도 좋은 그곳. p.247

"집중, 집중! 너희들이 무슨 생각으로 요리 병과로 지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요리사는 요리사이기 이전에 가장 현란한 마술사가 되어야 해. 알겠어? 마술사와 요리사 모두 손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 다만 마술사는 상대의 눈을 속이지만 요리사는 상대의 혀를 속여야 해. 맛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아. 모든 사물은 그대로 있을 뿐이지, 거기에 의미를 부여한 게 맛이야. 의미란 공통의 관습에 따라 좌우되기도 하고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의미를 부여받기도 하는 거고. 유능한 요리사는 그런 개인의 습성, 집단의 습성을 빠르게 간파하여 그들의 혀를 속일 수 있어야 해. 마술사들이 젊은 연인들을 앉혀놓고 모자 속에서 빨간 장미를 뽑아내듯이, 필요할 때 필요한 맛을 대령하는거지. 곧 죽어갈 머저리들에게. 응, 알겠나?" p.256

사람의 표정은 때로 미래를 짐작케 한다. 그것은 한 집단의 미래도 마찬가지다. p.257

썩어가는 것들일수록 더 깊은 맛을 풍기지. 인생도 그렇다. 너의 무엇이 너를 간절하게 하느냐? 그것이 없다면 요리는 겉치레일 뿐이다. p.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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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스미노 요루] 너의, 나의 췌장은 안녕하신지? | Memento 2018-10-15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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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스미노 요루 저/양윤옥 역
소미미디어 | 2017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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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나의 췌장은 안녕하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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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 영화로 개봉한 책은 잘 사보지 않습니다. 특히 책보다 영화를 먼저 본 경우라면 긴 시간이 흐른 후에나 읽어 봅니다. 영상의 힘은 생각보다 강력해서 책 속의 묘사가 영화와 겹치면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영화(애니)를 본 적은 없지만, 예고편이나 이야기를 어디선가 많이 들었기 때문에 망설였습니다. 췌장을 먹겠다니. 이 기괴한 제목에도 불구하고 수 많은 사람이 읽고 호평했다니, 다수의 의지를 믿고 췌장 탐험에 나섰습니다. 내장 고기를 좋아하는, 죽음을 앞둔 유쾌한 여학생과 고립되어 책과 벗삼는 내성적인 남학생 간의 췌장 스토리인데, 평가에 따라 연애소설 일 수도, 성장소설 일 수도, 둘 다 일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췌장'이라는 점만 빼면 특별하게 눈에 띄는 점은 없어 보입니다. 순수한 사랑, 학창 시설의 이야기, 인기녀와 비인기남의 조합은 식상한 소재입니다. 간혹 보이는 악평은 이 점을 명확하게 지적합니다. 성장소설 측면에서도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소재 역시 흔하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그럼에도 이 소실이 인기가 있는 이유가 뭘까요. 불륜이라는 소재가 흔할지라도 <마담 보바리>나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이 위대한 예술이 되어 읽히듯, 이 책도(고전이 될 거라는 생각은 없지만) 그런 힘이 있어 보입니다. 아슬아슬한 재미라고 해야 할까요.

 개인적으로는 첫 번째는 여주인공의 태도 였습니다. 인상 깊었습니다. 사실 남주인공과의 관계 시작이 어떻게 정당성을 얻느냐가 관건인데, 하필 박찬국 교수님의 책(<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를 읽던 중이라 연관지어 생각이 났습니다. 하이데거의 철학을 쉽게(?) 해설해 주는 책인데 근본기분인 '불안'에 대해 읽다가 문득 여주인공을 떠올렸습니다. 제가 바르게 이해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꿈보다 해석이라는 억지 춘향식 느낌인지 모르겠지만, 제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인간은 삶을 짊으로 여기는 존재'로 죽음에 대한 불안을 안고 살아갑니다. 이 불안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느끼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일상에 매몰되어 세상적 가치에 따라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갑니다. 하지만 여주인공은 시한부 삶을 살며 '죽음이라는 불안'을 통해 '존재' 자체를 그대로 보게 됩니다. 자신의 남은 삶, 남주인공을 비롯한 주변 지인들을 있는 그대로 대하고자 합니다. 자신 역시 있는 그대로 쾌할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모습에서 어떤 '경의'를 느꼈다고 해야 할까요. 이런 태도는 남주인공 역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게 합니다. '죽음'이라는 매개가 일상의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많은 예술, 문학 작품의 힘은 일상을 새로보게 하는 것인데, 저 역시 '불안'을 느껴야만 경의를 보게 될까요. 스스로와 타인을,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게 할까요. 아닐 겁니다. 과분한 의미 부여일지 모르겠지만, 소설은 저에게 물었습니다. 네가 만약 모월 모시에 죽는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 너와 절친한 사람이 자신의 죽음을 숨긴채 내 옆에 살아가고 있지는 않을까. 이런 대입은 나만이 아니라 소설을 읽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덕분에 죽음의 불안을 대신 체험하고, 새로이 저를 돌아 보았습니다.

 두 번째는 남주인공이 사는 삶에 대한 변화의 궤적에 대한 로망입니다. 수 많은 피상적 인간관계에서 피로감을 느끼며 삽니다. 히키코모리까지는 아니지만 외부와의 관계는 최소화 한 채 대용물(남주인공의 경우에는 책)에 매몰되어 자폐적인 삶을 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외롭습니다. 스스로 인정하지 않더라도. 언제고 닫힌채로만 살 수 없습니다. 알을 깨고, 껍질을 벗고 나와 더 큰 세계로 나가야 합니다. 성인이 된 채로 유아복을 그대로 입고 살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남주인공은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알아주는 여주인공을 우연히 만납니다. 이를 계기로 고립에서 해방되어 가는 과정은 관계단절 속에 살아가는 우리의 판타지를 자극하는게 아닐까 합니다. 지금 외롭고 힘들지만 진정한 나를 알아봐주는 누군가(게다가 쾌활하고 멋진 내 반쪽일지 모르는 사람이라면)가 나타나 나를 구원해 주지 않을까! 그래서 주인공들이 함께 보내는 시간들이 더 아름답게 보이고, 췌장이 기이하게 느껴지지 않고, 누군가 췌장을 먹고 싶은 사람을 기다리게 만드는게 아닐까 합니다.

 정통 문학 작품이 아닌 라이트 노벨이라 거부감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췌장이라는 저자의 기괴한 취미에 눈쌀이 찌푸려 질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게는 삶과 죽음, 관계와 단절, 불안과 경이를 느끼게 해줬습니다. 제 옆에 있는 사람을 돌아보게 했습니다. 내가 아낀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지, 그들도 나를 있는 그대로 보아주고 있는지. 내 췌장은 건강한지. 소설을 본 다른 분들의 췌장은 어떠하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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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르는 건 아니지만. 이를테면 비밀을 알고 있는 클래스메이트도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어?" "......없지는 않다, 라고 할까." "근데 지금 그걸 안 하고 있잖아. 너나 나나 어쩌면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그런 의미에서는 너나 나나 다를 거 없어. 틀림없이. 하루의 가치는 전부 똑같은 거라서 무엇을 했느냐의 차이 같은 걸로 나의 오늘의 가치는 바뀌지 않아. 나는 오늘, 즐거웠어." p.24

말은 때때로 발신하는 쪽이 아니라 수신하는 쪽의 감수성에 그 의미의 모든 것이 내맡겨진다. p.91

모든 인간이 언젠가 죽을 사람처럼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 나도, 범인에게 살해된 피해자도, 그녀도, 어제는 살아 있었다. 죽을 것 같은 모습 따위, 내보이지 않은 채 살아 있었다. 아, 그렇구나, 그게 바로 어떤 사람이든 오늘 하루의 가치는 모두 다 똑같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p.107

그녀의 삶에 대해 감성적이 되는 것은 단순한 우월감일 뿐이다. 그녀보다 내가 먼저 죽는 일은 절대로 없다고 확신하는 오만함일 뿐이다. p.108

곧잘 '집에 돌아올 때까지 소풍'이라고 말하지만, 집에 돌아와 '평소의 식사를 할 때까지가 소풍'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p.210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랑에 빠진 사람이 맹목적이라는 것은 소설 속 얘기로서 알고 있는 것일 뿐, 실제 사람의 마음을 접해보지 못한 내가 살아있는 인간의 행동을 파악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었다. 소설 속 등장인물과 실제 인간은 다르다. 소설과 현실은 다르다. 현실은 소설만큼 아름답지도 않고 정확히 맞아 떨어지지도 않는다. p.255

"좋아, 말해줄게. 실은 벚꽃은 꽃이 떨어지고 그 석 달쯤 뒤에 다음 꽃의 싹이 생겨나. 하지만 그 싹은 일단 잠드는 거야, 날씨가 다시 따뜻해지기를 기다렸다가 한꺼번에 피어나려고. 즉 벚꽃은 자신이 피어나야 할 때를 지그시 기다린다는 거야. 어때, 멋있지?" 그녀의 말을 듣고 나는 꽃의 습성에서 의지를 감지하는 것은 지나치게 억지스러운 것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실은 꽃가루를 날라줄 벌레나 새를 기다리는 것뿐인데, 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나는 굳이 그 얘기는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약간 다른 시점에서의 의견이 생각났기 때문이다.(p.294) "그렇군, 네 이름으로 딱 어울린다." "아, 예뻐서? 부끄럽네." "그게 아니라 봄을 골라 피는 꽃의 이름이, 만남이나 사건을 우연이 아니라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너의 이름으로 딱 맞다는 얘기야." p.295

"산다는 것은 ......" "......" "아마도 나 아닌 누군가와 서로 마음을 통하게 하는 것. 그걸 가리켜 산다는 것이라고 하는거야." p.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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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강상중]사표와 로또, 그리고 나다움 | Memento 2018-10-13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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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강상중 저/노수경 역
사계절 | 2017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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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에 사표를 쥔채 살아가는 직장인을 위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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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쓸데없는 가정이나 상상을 자주 하는 편입니다. 이를테면 우리 집이 엄청난 부자였다면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와 같은 망상이 주입니다. 지금의 저라면 어딘가에 단출한 건물을 짓고 사설 도서관(을 빙자한 개인 서재)을 운영하며 틀어박혀 살고 싶지만, 조금이라도 어렸을 때를 떠올려 본다면 허세 가득한 식충이에 지나지 않았을까 생각 합니다. 우리집이 부유하지 않고 오히려 가난하기에, 그 가난이 나를 바르게 인도한 것이 아닐까하며 망상의 끝에 지금의 모습을 다시 보곤 합니다. 너무나도 우스운 정신 승리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부자이지 않기 때문에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합니다만, 많은 사람이 그러하듯 만족하지 못하고 하루하루 버티는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거 이대로 살아도 괜찮을까라는 막연한 불안감을 가진 채 말입니다. 누군들 아니겠습니까만은 로또를 소중히 손에 쥔채 망상에 젖어 출퇴근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요. 아! 밥벌이의 지겨움이란...
 어쨌거나 삶에서 필요한 것을 얻으려면 ‘일’이란 걸해야 하는데, 이게 묘하게도 본말을 전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매일 일터를 떠나 집으로 오는 게 과연 나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일을 다시하기 위한 추진력을 얻기 위해 쉬러 집으로 가는 건지 혼란스럽습니다. 이때 강상중 교수의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은 눈에 딱 띄는 책입니다. 제목만 봐도 늘 본말이 전도되는 일상에 시원한 해결책을 줄 만한 느낌이 들지 않나요? 하지만 늘 그러하듯, 조금만 읽어보면 실망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저자 스스로 그런 솔루션은 없다고, 이 책은 HOW TO를 말하는 책이 아니라고 단언합니다. 거참. 그럴 거면 제목을 왜 이렇게 지었나 싶습니다만, 저자는 어르듯 이야기 합니다. 일에 대해 고민함으로 나를 지키며 일하는 관점이나 힌트 혹은 실마리를 얻어 보자는 건데, 220여 남짓한 짧은 분량으로 그게 가능할까라는 의심만 들었습니다. 살짝 오기가 생겨서 그래 얼마나 대단한 이야기를 하나 들어보자는 심정으로 덤볐습니다.
 그리고 인정해야겠습니다. 저자의 말대로 큰 힌트, 관점, 실마리를 얻었다고 말입니다. 우선 저자는 나를 지키며 일하는 방법으로 세 가지로 요약합니다. 변화와 역경의 시대, "'비상시'가 일상화된 사회(p.9)"에서 어떤 자세로 일을 바라볼 것인가? "'일의 의미를 생각해볼 것', '다양한 시점을 가질 것', '인문학을 배울 것'(p.13)"입니다. 확실히 지름길은 아닌 것 같습니다. 첫 번째로 일의 의미라는 게 먹고살 수단이기도 하지만, ‘사회로 들어가는 입장권'(p.28)이자 '나다움'을 표현(p.35)하는 방법이라 말합니다. 다분히 사회적인 표현입니다. 여기에는 타인의 인정과 자신의 인정이라는 동기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이 없다는 것은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고 “인간의 본질적인 정신성이라는 측면에서도 고려해(p.34)”한다고 말합니다. 실업이란 어쩌면 사회와 자신으로부터 거부당하는 상황이며, 해고란 사회적 살인일 수 있다는 오랜 생각을 곱씹어 봅니다. 실업이란 것을 우리는 수치와 숫자로만 파악한 것이 아닌지, 실재 우리 개인들에게 미치는 거시적인 경제적, 과학적 요인에만 주목하여 실재 개인이 겪는, 사회에 미치는 세부적, 정신적 영향을 간과한 것이 아닐까요. 생을 이어가려면 어쨌건 일을 해야 밥벌이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는 아무 ‘입장권’이나 쥐지는 않습니다. 이게 가장 일을 함에서 어려운 점인데, ‘나다움’을 표현하는 문제입니다. 흔히들 자아실현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세상은 “모두 평등하고 어떠한 장애도 없는 자유로운 상태입니다. 그러니 "자, 여러분 모두 자유롭게 자기 자신을 표현해보세요"라며 '되고 싶은 나'를 마음껏 추구하는 것으로 승부를 내라고(p.50)” 독려합니다. 애초에 나다움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면 문제가 덜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대부분의 경우 이것을 잘 알지도 못하는 상황입니다. 게다가 “효율이나 성과를 바라는 직장(p.42)”에서 내가 그런 짓을 하게 내버려 두지도 않습니다. 사실 인간은 “거의 차이가 없으니 개인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다른 사람보다 훨씬 잘하기란 쉽지 않”고, “그래서 지엽적인 부분에서(p.50)“ 필사적으로 경쟁을 합니다. 이 경쟁의 내면화, 자아실현이라는 명제가 우리를 절망으로 내몰고 있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무언가를 극복하기 위한 에너지라는 면에서 볼 때, 어쩌면 장애물이(p.49)“없이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계가 우리에게 고통을 줄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이 고통을 어떻게 활용해야할까요.
 여기서 자연스럽게 두 번째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나다움’을 추구하기 위한 충고로 “하나의 일에 전부를 쏟아 붓지 않는 것, 스스로를 궁지로 내몰지 않는 것이 중요(p.42)”하다고 말해주는데, 이 역시 두 번째 충고의 핵심이라 생각합니다. 나다움이라는게 하나가 아니고, 내가 바라보는 나와 남이 바라보는 나가 있을 것이며, 그것 역시 하나가 아닐 겁니다. 또한 어느 것도 올바른 나일 수도, 그른 나일 수도 있죠. 황희정승의 정신처럼 그래 네 말도, 그래 네 말도 옳다 처럼 느껴질지 모르겠습니다. 앞서 저자의 표현대로 지엽적인 부분에서 필사의 경쟁을 하느라 절망에 내몰리고, 급변하는 사회에서 경주마와 같이 앞만 보고 달린다면 필시 구렁텅이에 빠지고 말겁니다. 다양한 관점은 현재 세상에서 창의성의 근본이기도 하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도 필수적인 사항입니다. 다양한 관점을 통해 “자연스러움을 알고 그에 꼭 맞는 삶의 방식이나 일의 방식을 모색(p.57)”할 수 있지 않을까요. 여기에서 마지막 실마리가 풀립니다. ‘인문학’을 배워라! 왜? 일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고, 나의 자연스러움을 깨닫고, 다양한 관점을 확보하여 ‘나다움’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문학은 ‘나’를 만들기 위한 건축 재료인 셈입니다. 이 건축 재료에는 고전이라는 말린 것과 요즘 유행하는 날 것이 있는데, 이를 적절하게 조화하여 본인에 맞게 튜닝해야 합니다. 이러저래 늘어 놓고 보니 역시 로또가 빠를려나요.
 매번 사표를 마음에 품고 사는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는데 좋은 거름을 얻었습니다. 저자가 말한대로 인문학을 배워야하는, 독서를 해야하는 이유와 일맥상통하겠지요. 저와 비슷한 고민이 있으신 분이라면 제목에 한 번 속아보시는 것도 괜찮지 싶습니다. 어쨌든 지금 입장권을 얻었고, 그 입장권으로 ‘나다움’을 찾고는 있지만 쉽지는 않네요. 결국 때를 기다려야 할텐데... 그때까지 제 몸과 정신이 버텨줬으면 좋겠네요. 그전에 ‘나다움’을 찾아내야 그나마 다행일텐데. 여러분의 일터, 당신의 나다움은 어떠신지요? 저는 퇴근하면서 일에 대해 생각하며 로또나 하나 더 사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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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미래를 내다보기 어려운 불확실성의 시대, 역경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

다. '비상시'가 일상화된 사회라고나 할까요. 그러니 이제 일에 관한 기존의 '매뉴얼'을 그대로 적용하기가 어려워졌습

니다. 우리는 바로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p.9
학력이란 교육기관에서 학생을 선발할 때 그 학생이 필요한 학습 능력 가지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수단으로, 이는 누구

든 노력하면 유명 대학의 간판을 딸 수 있다는 일종의 평등주의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가문이나 혈통 같은 배경과는 상

관없이 학력이라는 필터만 통과한다면 누구나 사회적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일종의 신화가 예전에는 살아 있었던

것이지요. 이 학력의 연장선상에 놓인 것이 바로 취업입니다. ... 일이 과연 내게 어떤 의미인지 굳이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저(p.11) 취업을 목표로 삼고 그에 적합한 행동을 한다면, 결국에는 내 생활이 풍요로워질 거라 여기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 버블경제의 붕괴로 이러한 '학력 사회 모델'이라는 프레임은 무너졌습니다. ... '개인 경력 모

델'이 주류가 되었습니다. 이제 기업은 학력이 높은 사람보다는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어떤 상황에든 유연하게 대처하며

스스로 자기 활동을 적절히 운영할 수 있는 인재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비지니스 퍼슨'(p.12)은 개개인이 일을

수행하는 능력을 갈고 닦아 자신의 가치를 계속 높여야 합니다. p.13
이 변화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 자세로 일과 마주하면 좋을까요? ... 바로 '일의 의미를 생각해볼 것', '다양

한 시점을 가질 것', '인문학을 배울 것'인데, 이들은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p.13
정치학의 핵심은 '사회 의사' 역할에 있지 않나 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가 병이 들었을 때 무슨 이유로 어디가 나

빠(p.25) 졌는지를 진단하는 것이지요. p.26
정치학자란 '사회의 감정사' 같은 역할. p.27
'일이란 사회로 들어가는 입장권' ... '당신을 이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합니다'는 증서, '여기를 출입해도 좋아요'라는

프리패스와도 같은 것이라 할까요. p.28
직업이 없다는 것은 사회의 일원임을 인정하는 증명서가 없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정체성의 위기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 '내가 있을 자리를 찾아 사회적 사명을 획득하는 것이 바로 일'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정리해고가 무기

력증을 낳는 다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p.33) ... 오늘날 일본 사회의 실업이나 취업 재수생 문제를 그저

경제 활동이라는 측면에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본질적인 정신성이라는 측면에서도 고려해야 합

니다. 실업으로 인해 무기력증에 빠지고, 나와 사회의 관계를 허무하게 느끼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그들의 정신적인 황

폐함은 분명 세사에도 여러모로 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p.34
사람은 사회에서 자기 자리와 역할 이외에도 일을 통해 구하고자 하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나다움'의

표현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먼저 사회에 내가 앉을 자리를 만들고자 합니다. 자리가 완성되면 이제는 거기

에 있는 모두와 동일하지 않은 나, 자기만의 개성과 장점을 내세우기 시작합니다. 사회로 들어가는 '입장권'이자 '나다

움'을 표현하는 것, 이 둘은 마치 세트처럼 사람이 일을 구하는 이유가 됩니다. ... 일이라는 사회 참여 행위는 반드시

'타자의 승인' 혹은 '타자의 주목'이라는 요소를 동반합니다. 사람은 일을 통해 그렇게 되기를 강하게 원합니다.

(p.35) ... 바로 이 부분이 어려운 지점입니다. 우리는 일을 통해 사회로 들어가는 입장권을 얻습니다. 단지 입장권을

얻는 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면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상관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일을 통해서 '나다

움'도 표현하고자 하기 때문에 어려워지는 것이지요. 이는 많은 사람이 일을 구할 때 망설이게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 너무 신중해지는 바람에 도리어 일을 얻을 기회를 놓치거나 결과적으로 '나다움'을 발휘하기 어려워지는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p.36
'나다움'에 두 가지가 있다 ... 하나는 스스로 알고 있는 '나다움'입니다. ... 다른 사람이 보았을 때의 '그다움'도 있

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나다움'은 종종 자기 자신만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도 많지만, 다른 사람이 본 '그다움'은 객관

적이며 정곡을 찌를 때가 많습니다. p.37
불확실한 시대인 만큼 일자리를 구하는 것 자체도 쉽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어느 때보다 더욱 효율이나 성과를

바라는 직장에서 '나다움'을 추구하기란 몹시 어려운 일이겠지요. 그렇다면 이런 중압감에 짓눌리지 않기 위한 처방전

은 없을까요? 그 처방은 바로 하나의 영역에 자신을 100퍼센트 맡기지 않겠다는 태도입니다. 일에 임하는 자세도 그렇

고, 삶의 방식도 그렇습니다. 하나의 일에 전부를 쏟아 붓지 않는 것, 스스로를 궁지로 내몰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p.42
무언가를 극복하기 위한 에너지라는 면에서 볼 때, 어쩌면 장애물이 있는 편이 사람을 열심히 노력하게 하는 측면이 있

지 않나 합니다. (p.49) ... 다양한 장애와 족쇄가 있던 옛날이 어떻게 보면 정신적으로는 편했던 것이지요. ... 지금

은 모두 평등하고 어떠한 장애도 없는 자유로운 상태입니다. 그러니 "자, 여러분 모두 자유롭게 자기 자신을 표현해보

세요"라며 '되고 싶은 나'를 마음껏 추구하는 것으로 승부를 내라고 합니다. 그것이 자아실현이라고들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도망가지도, 변명하지도 못하는 몹시 괴로운 상황이 아닐까 합니다. 애초에 거의 차이가 없으니 개인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다른 사람보다 훨씬 잘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넘버원'이 되기도 몹시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 그래서 지엽적인 부분에서(p.50) 필사적으로 겨루고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보자'며 욕심을 내게 되지요. ... '이것

도 하고 저것도 하자'라며 제한 없이 많은 것을 실현하려 하는 바람에 결국 그 욕심으로 스스로 망가지게 생겼습니다.

p.51
자연스럽기 위해서는 자신의 내적 동기에 진정으로 귀 기울(p.54)일 필요가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가치가 있다고들 하

니 학습하는 모방 단계를 넘어 (그 일이) 나만의 동기와 사명감에 얼마나 부합하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이는 내면의 가

치를 발견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목적의식과 뜻이 바탕에 없다면 아무리 다방면에 재능이 있다 해도 일을 통

해 진정한 만족을 느끼지 못할 것이며, 또 진정한 의미에서 뛰어난 성과를 내지도 못할 것입니다. p.55
자연스럽다는 것은 '부족함을 안다', '자족한다'는 말과 가까울지도 모르겠습니다. ... 사람이 노력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과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포함하여 나 자신을 인정하는 것, 스스로를 알고 그런 나를

긍정하는 것이 바로 자연스러움입니다. ... 우울증에 걸렸거나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이들은 어쩌면 자기애가 강

하고, 어떻게 해서든 자신을 높이려 애쓰는 (p.56) 사람들일지도 모릅니다. 또 어떻게 보면 나를 긍정하지 못하고, 나

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므로 자연스러움을 알고 그에 꼭 맞는 삶의 방식이나 일의 방식을

모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p.57
원래 인간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있는 그대로의 타자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

한 자신을 다시 있는 그대로의 타자에게서 인정받아야 합니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통해 성립되는 사회는 본래 그러

해야 합니다. 있는 그대로 존재하면서 동시에 상호 자유롭게 개방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위축되었던 창조성의

문 또한 열릴 것입니다. p.58
'사람은 걸어 다니는 식도란다' 즉 사람은 살아 있는 한 먹을 것을 구해 음식을 만들어 섭취하고 또 배설하는데, 이를

되풀이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부자건 배운 사람이건 가난한 사람이건 결국 다 똑같다는 말이지요. p.62
인간이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훌륭한 존재이지만, 동시에 서로 상처를 주고 속이고 엄청난 실패를 하기도 하는 믿을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런 존재가 무리를 지어 사회를 이루고, 관계를 맺으며, 다양한 시스템과 제도가 만들어

지고 그러한 것들이 길게 이어져 '역사'가 됩니다. 사람은 어떤 종류의 이유로 무언가를 행하고 그 결과 일정한 성과를

얻고, 그렇게 하여 또 다른 형태로 마주하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인간의 역사란 이것의 반복입니다. p.74
"인생이란 힘들 때도 있는 거다. 그럼에도 사람은 즐길 수 있다."라고요. 아니, 즐겨야 한다고, 그것은 오히려 우리의

의무라고 했습니다. p.85
'모든 일에는 때가 있나니'(전도서 제3장) ... 초조해하거나 방심하지 말고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살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p.89
인간의 비극은 '미래를 예측하고 싶어 한다'는 것과 '기억한다'는 것에서 기인합니다. 과거를 아쉬워하고 미래를 불안

해하기에 마음의 병을 얻게 된(p.90)다는 말이지요. ... '때'가 기다려준다는 안심. 그것이 있기에 사람은 '지금, 여기

'를 열심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p.91
'나란 지금까지 만나온 사람들의 일부' p.92
독서의 효용은 우선 내가 처한 상황을 바르게 이해하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거나 혹은 실패의 원인을 찾는 데 매우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독특한 발상일지도 모르겠(p.107)지만 지금은 내일을 예상할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이므

로 미래를 예측하는 건 불가능할지라도 만일을 위한 대비로서 책을 통해 과거의 여러 사례를 배워두면 좋습니다. p.108
독서의 두 번째 효용으로는 '의사체험'(p.109) ... '자기 내 대화' (p.113)
오랫동안 살아남아 계속해서 널리 읽히는 책 ... '말린 것' (p.114) ... '날 것'이란 ... 지금 유행하는 현상이나 최신

의 사상, 리얼 타임으로 움직이는 정보 등을 다루는 책 ... 지성의 건강이라는 측면에서 멀리 내다본다면 기초(p.115)

가 되는 부분은 '말린 것'을 통해 견실하게 취하는 것이 좋겠지요. 그런 후에 필요에 따라 '날 것'을 받아들이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 '날 것'의 액츄얼리티를 '말린 것'의 지성으로 재빠르(p.116)게 튜닝하여 이 시대에 일어나는 다양

한 문제의 배후에 감춰진 인과관계를 간파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p.117
앞으로 우리 사회에 적합한 사람은 '반 발짝 앞서가는 리더'가 아닐까 합니다. p.183
역사란 과학적인 진실에서 빚어지는 세계가 아니라 가치 판단과 의미 부여를 통해 만들어지는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

절대로 그러하다'는 '필연성'이 아니라 '그러할 것'이라는 '개연성'으로 성립되는 것이 역사입니다. 그렇다면 (p.193)

우리는 역사에 대해 '진실이다'가 아니라 '진실일 것이다'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습니다. p.194
인문 지식을 기른다는 것은 인간력(근래에 새롭게 나온 말로 인간력전략연구회의 이치카와 신이치는 이를 '사회를 구성

하고 운영함과 동시에 자립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힘차게 살아가기 위한 종합적인 힘'이라고 정의했다.)을 기르는 것

이자 리더로서의 힘을 기르는 것이며, 일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고, 또한 사회 전체의 다양성과 풍요로움을 기르는 것입

니다. p.196
사람들을 꿈에서 깨워 현실을 직시하게 하고, 깊숙한 곳에서부터 '10년 전'과 '지금'에 관한 의식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된 것은 분명 2011년 3월 11일에 일어난 동일본대지진일 것입니다. ... 이 커다란 희생을 겪으며 일본에 사는 사람들이

조금씩 깨닫게 된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생활이 결코 금전에 의해 지탱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을 실질

적으로 지탱해 준 것은 '유대'라 불리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였으며, 이를 포함하여 사회관계자본이라는 형태로 지

역 전체에 축적되(p.201)어 온 것이었음을 실감했습니다. 실제로도 사회에 공헌하는 일을 하려는 젊은이가 늘어났다고

합니다. ... 사람을 일하게 하는 가장 큰 동기는 바로 '타자의 주목'이라고 합니다. 이와 관련지어 본다면 사회에 공헌

하는 일 혹은 사회봉사를 하려는 사람은 비즈니스라는 측면뿐만 아니라 '타자의 주목'또한 바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p.202
일본은 역사적으로 도시의 슬럼을 해소하기 위해 전쟁 피해나 천재지변을 기회 삼아 배치전환과 분산이라는 수단을 활

용해왔습니다. 일반적으로 '스크랩 앤드 빌드'를 반복하는 대도시권은 사회관계자본이 성립되기 힘들다고 합니다. 대도

시처럼 사회관계자본이 충실하지 않은 지역일수록 소득과 자산의 유무가 중요해집니다. p.206
사물을 보는 방식이 달라지거나 복안의 시점을 통해 자신이 지금까지 받아들이지 못했던 시각이 존재함을 인정하는 것

은 곧 '자신의 복수성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 타자와 사회와의 만남은 내가 몰랐던 나와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습

니다. ... 다양성이란 나의 외부에 다른 사람이 있고 다른 시각이 있어서 그것들이 각자 나름대로 공존하며, 동시에 내

가 변하는 것을 뜻합니다.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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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싫어서-장강명]톰슨가젤과 사자의 연대는 가능할까? | Memento 2018-10-06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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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한국이 싫어서

장강명 저
민음사 | 2015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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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슨가젤과 사자의 연대는 가능할까. 정글과 축사에서 어떻게 살지를 고민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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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 분명 발전한 나라다. 발전에 대한 정의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복지제도는 늘고 있고, 경제규모도 커지고 있으며, 민주주의와 평화의 기운도 상승하고 있다. 그렇게 믿고 싶다. 그럼에도 장강명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는 우리가 사는 이 나라의 민낯을 보여준다. 모 전 대통령께서 나라가 텅텅비도록 중동으로, 해외로 떠나라고 했었다. 젊은 세대는 그것을 아주 잘 실현하고 있다. 아에 한국을 떠나거나, 자식을 낳지 않음으로써. 그가 바랬던 바는 아니겠지만 확실한 것은 한국이 텅텅비고 있다는 점이다. 인구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한국이라는 나라가 움직일 수 있는 동력적인, 정신적인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젊은 세대는 "한국이 싫다." 그리고 외친다. "여기서는 못 살겠다."(p.7)고. 무엇이 우리를 조국인 한국, 아름다운(?) 이 땅에서 살지 못하게 하는가. 혹자는 말한다. 요즘 젊은 것들은 인내하지 못하고, 끈기가 없기 때문에, 도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진부한 젊음이 개새끼론과 입씨름 할 생각은 없다.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요즘 세대는 싸가지가 없는게 아니다. '민감성'이 기성 세대와 다르다. 감수성이라고 바꿔 말해도 좋겠다. 현 세대가 받아들이는, 받아들여야 하는 정보의 양은 기성세대가 살아오며 받아들인 양과는 차원이 다르다.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세대다. 그렇기 때문에 (질의 문제는 차치하고) 항상 민감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도태되고 만다. 끓는점이 다르다. 기성 세대가 보기에는 분명 역치가 분명 낮아진 것으로 보일테다. 분명한 것은 기성세대가 그렇게 무덤덤 했던 것 역시 정상은 아니었다. "인간성이고 존엄이고 뭐고 간에 생존의 문제 앞에서는 다 장식품 같은(p.14)"것인 줄 알지만, 2호선에 몸을 구겨넣고 "어떤 조직의 부속품이 되어서" "난 내가 무슨 일을 왜 하는지도 모(p.18)"르는 채로 살기는 싫다. 배가 부른걸까. 그렇다고 부모 세대 보다 최초로 못사는 세대가 된 젊은 세대에게 "내가 그냥 여기 가만히 있는다고 더 나아질 거라는 보장은 아무 데도 없(p.119)"는데, 버티라고만 말해야 한다면 그 또한 얼마나 무책임한가. 가진게 없기에 더 조심해야 한다. "낮은 데서 사는 사람은 더 바닥으로 떨어지는 걸 조심해야 해. 낮은 데서 추락하는 게 더 위험(p.145)"한 곳이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절은 세대가 욕심이 많은 것도 아니다. "명품 백이니 뭐니 그런 건 하나도 필요 없(p.179)"다. 가족과 함께하는 소소한 행복, "내 이름으로 된 식당도 열어 보고 싶(p.160)"다는 꿈,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존중받으며 살 수 있다는 희망. 이런 희망이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과분한 것일까. 허희 문학평론가의 표현대로 "가까이에서 보면 정글이고, 멀리서 보면 축사인 장소"인 "한국(p.234)"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죽거나(자살), 도망치거나(이민), "남의 불행을 원동력 삼아 하루하루를 버티는(p.218)" 것 뿐이다. 평론가는 ""톰슨가젤들이랑 사자랑 맞짱뜨자는 게 아니야. 톰슨가젤들이랑 사자랑 연대해서 우리를 부숴버리자는 거지." 이것이 사육장 너머를 지향하는 내가 최종적으로 도출한 방안이다. (p.238)"고 말하지만, 개인적으로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 그런 일이 이루어지는 곳은 <주토피아> 아니면, 이론속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현실에서 사람들은 늘 분열되어 있고, 서로 배신한다. 최약자인 톰슨가젤과 최강자인 사자의 연대가 이뤄지더라도, 이는 필연적으로 유약하다. 사자 입장에서는 우리가 아쉬울리 없다. 자기는 거리낄게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있다면 톰슨가젤은 더 멀리 달아나지 못할테니까. 내가 내린 결론은 정반대다. 톰슨가젤이 장렬히 멸망하는거다. 죽거나, 이민을 가거나, 참거나(후세를 낳지 않는) 그렇다면 결국에는 사자도 굶어 죽을 것이다. 그렇게 파멸로 향해야만, 사자가 협력을 하든 아니면 주인이 우리를 깨든 무슨 변화가 생길테다. 둘이 연대하여 우리를 깨려 덤빈다면, 주인이 총으로 모두를 죽이겠지만 내 견해는 그렇다.

 문득 조한혜정 교수가 말하는 "선망국"이 떠오른다. 우리는 용기가 필요하다. 희망을 꿈 꿀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큰소리로 우기고, 누군가를 발고 서려는, 차별을 내면화한 한국의 톰슨가젤인 나 역시 반성한다. 시스템 안에서 개인은 나약하지만, 그래도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서는 개인이 변해야 한다. 나라를 구성하는 건 영토, 주권 그리고 그 속에 살아가는 국민도 포함하기 때문에.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불가능한 연대를 꿈꿔야 할까. 쓰디쓴 풀을 우물거리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역시 나도 "안정감과 예측 가능성이 너무나 소중(p.140)"한 걸까. 이 나라를 떠나고 싶었던 나로써, 그리고 그럴 용기도 없었던 나 자신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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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회사 다닐 때는 매일 울면서 다녔어. 회사 일보다 출퇴근 때문에. 아침에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아현역에서 역삼역까지 시도림 거쳐서 가 본 적 있어? 인간성이고 존엄이고 뭐고 간에 생존의 문제 앞에서는 다 장식품 같은 거라는 사실을 몸으로 알게 돼. p.14

여자들더러 아이 많이 낳으라는 사람들은 출근 시간에 지하철 2호선 한번 타 봐야 해. 신도림에서 사당까지 몇 번 다녀 보면 그놈의 저출산 이야기가 아주 쏙 들어갈텐데. 그런데 그런(p.14) 소리 하는 인간들은 지하철을 타고 다니지 않겠지. p.15

회사에서 일할 때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던거 같아. 내가 어떤 조직의 부속품이 되어서 그 톱니바퀴가 되었다 해도, 이 톱니바퀴가 어디에 끼어 있고 이 원이 어떻게 굴러가고 이 큰 수레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그런 걸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난 내가 무슨 일을 왜 하는지도 모르겠고 이 회사는 뭐 하는 회사인지 모르겠고, 온통 혼란스러웠달까. 아니 아예 알려고 하지도 않았지. 중고생과 다름없었던 거 같아. p.18

한국이 선진국이 됐다고, 서울이 옛날이랑 몰라보게 달라졌다고 하는데, 어떤 동네, 어떤 사람들은 옛날 그대로야. 나아지는 게 없어. 내가 그냥 여기 가만히 있는다고 더 나아질 거라는 보장은 아무 데도 없어. p.119

은혜랑 미연이 그 두 얘기를 너무 오래하는 거야. 몇 년 전에 떠들었던 거랑 내용도 다를 게 없어. 걔들은 아마 앞으로도 몇 년 뒤에도 여전히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을 거야. 솔직히 상황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 자체가 없는 거(p.139)지. 걔들이 원하는 건 내가 "와, 무슨 그럴 쳐 죽일 년이 다 있대? 회사 진짜 거지 같다, 한국 왜 이렇게 후지냐."라며 공감해 주는 거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냐. 근본적인 해결책은 힘이 들고, 실행하려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니까. 회사 상사에게 "그건 싫다."라고 딱 부러지게 말하기가 무서운 거야. 걔들한테는 지금의 생활이 주는 안정감과 예측 가능성이 너무나 소중해. p.140

"예나야, 너 비행기에서 낙하산 메고 떨어지는 거랑, 빌딩 꼭대기에서 낙하산 메고 떨어지는 거랑, 어느 게 더 위험한지 알아?" "어느 게 더 위험한데?" (p.144) 내 동생은 뭔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듯 뜨악한 표정이었지. "빌딩 꼭대기에서 떨어지는 게 훨씬 더 위험해. 높은 데서 떨어지는 사람은 바닥에 닿기 전에 몸을 추스르고 자세를 잡을 시간이 있거든. 그런데 낮은 데서 떨어지는 사람은 그럴 여유가 없어. 어차, 하는 사이에 이미 몸이 땅에 부딪쳐 박살나 있는 거야. 높은 데서 떨어지는 사람은 낙하산 하나가 안 펴지면 예비 낙하산을 펴면 되지만, 낮은 데서 떨어지는 사람한테는 그럴 시간도 없어. 낙하산 하나가 안 펴지면 그걸로 끝이야. 그러니까 낮은 데서 사는 사람은 더 바닥으로 떨어지는 걸 조심해야 해. 낮은 데서 추락하는 게 더 위험해." p.145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 나중에는 내 이름으로 된 식당도 열어 보고 싶어. 내가, 사실 어디서 뭘 배우고 일을 해서 남들한테 인정을 받은게 태어나서 처음이야. 한국에 있는 동안에는 한 번 도 그런 적이 없었거든. 남자들이라는 게 단순해. 회사에서 인정받으면 얼굴 펴지고 어깨 으쓱으쓱하고 그러는 게 남자들이야." p.160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건데, 내가 뭘 하겠다고 나서건 그게 성공할지 성공 안 할지는 몰라. 지금 내가 의대 가서 성형외과 의사 되면, 로스쿨 가서 변호사 되면 본전 뽑을 수 있을까? 아닐걸? 10년 뒤, 20년 뒤에 어떤 직업이 뜰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러니까 앞으로 전망 얘기하는 건 무의미한 거고, 내가 뭘 하고 싶으냐가 정말 중요한 거지. 돈이 안 벌려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좀 덜 억울할 거 아냐. 지명이가 그렇게 자기 진로를 선택한 거지. 그런데 난 내가 뭘 하고 싶은지를 잘 모르겠어. p.177

내가 아는 건 '무엇을'이 아니라 '어떻게' 쪽이야. 일단 난 매일매일 웃으면서 살고 싶어. 남편이랑 나랑 둘이 합쳐서 한국 돈으로 1년에 3000만 원만 벌어도 돼. 집도 안 커도 되고. 명품 백이니 뭐니 그런 건 하나도 필요 없어. 차는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돼. 대신 술이랑 맛있는 거 먹고 싶을 때에는 돈 걱정 안하고 먹고 싶어. 어차피 비싼 건 먹을 줄도 몰라. 치킨이나 떡볶이나 족발이나 그런 것들 얘기야.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 남편이랑 데이트는 해야 돼. 연극을 본다거나, 자전거를 탄다거나, 바다를 본다거나 하는 거. 그러면서 병원비랑 노후 걱정 안 하고 살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해.(p.178) 그리고 나는 당당하게 살고 싶어. 물건 팔면서, 아니면 손님 대하면서 얼마든지 고개 숙일 수 있지. 하지만 그 이상으로 내 자존심이랄까 존엄성이랄까 그런 것까지 팔고 싶지는 않아. 난 내가 누구를 부리게 되거나 접대를 받는 처지가 되어도 그 사람 자존심은 배려해 줄거야. 자존심 지켜 주면서도 일 엄격하게 시킬 수 있어. 또 여유가 생기면 사회를 위해 작더라도 뭔가 봉사하고 싶어. p.179

한국 사람들이 대부분 이렇지 않나. 자기 행복을 아끼다 못해 어디 깊은 곳에 꽁꽁 싸 놓지. 그리고 자기 행복이 아닌 남의 불행을 원동력 삼아 하루하루를 버티는 거야. 집 사느라 빚 잔뜩 지고 현금이 없어서 절절 매는 거랑 똑같지 뭐. p.218

한국인이 한국을 등진다는 말이 틀렸음을 단언할 수 있다. 오히려 한국이 한국인을 나가라고 등 떠미는 상황이다. p.226

정글과 축사는 상반된 공간으로 간주된다. 정글은 경쟁하여 생존하는 장이고, 축사는 관리되어 생존하는 장이다. 그런데 정글의 법칙과 축사의 논리가 한국에서는 혼용되어 나타난다. 가장 부정적인 점만 취합한 방식이다. p.233

가까이에서 보면 정글이고, 멀리서 보면 축사인 장소가 한국이다. 치열하게 아귀다툼하는 사방에 커다란 울타리가 쳐져 있다. 이곳의 주인은 약자를 홀대하하고 강자를 우대한다. 자유를 영위하며 사는 줄 알았던 곳이 실제로는 거대한 사육장이었던 셈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양한 형태로 우리에서의 탈출을 꿈꾸고 결단하지 않으면 안된다. 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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