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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라는 시대 2-도널드 킨] 같은 시대를 같은 방법으로 다른 결과를 만들었던 인물 | Memento 2020-04-03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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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메이지라는 시대 2

도널드 킨 저/김유동 역
서커스출판상회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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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대를 같은 방법으로 다른 결과를 만들었던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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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과 비교해 본다면 어떨까. 과연 메이지 천황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한국에서의 고종은 망국의 군주로서, 전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우유부단하고 무능했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그를 재평가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을 감안해도, 부정적인 평가가 지배적이다. 물론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일본의 작업도 영향이 있었겠지만 책에 나온 천황에 대한 평가와 비교해 볼 때, 극명하게 대립을 이룬다. “일본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동양의 군주국으로부터 열강제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근대 국가로 발돋움할 때 그 원동력이 된 존재(p.1066)”에 합당한 평가들이 주로 나온다.

성공한 군주와 실패한 군주. 그리고 성공한 군주가 실패한 군주를 신하로 부리게 된 이 상황을 객관적으로 비교하거나 분석하기는 쉽지 않다. 두 사람 모두 전근대에 태어나 근대의 격동기를 전근대적인 방법으로 헤쳐 나가고자 했다. 한 쪽은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 방법으로, 한 쪽은 자신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는 것으로 자신의 삶을 정리했다. 책의 많은 부분은 메이지 천황의 순행과 군사 훈련 참관에 할애되어 있다. 특히 순행도중 학교를 반드시 들러 교육을 강조했다. 이는 고종 역시 마찬가지였다. 식산흥업을 장려하고 신식군대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주 무대는 현장이 아니었을 따름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우리가 잘 알고 있다.

물론 이러한 차이는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특성에 기인한다.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유지했던 한국과 유명무실했던 천황과 실권을 쥐고 있던 막부, 분권적 성격이 강했던 일본과는 기반자체가 다르다. 그렇기에 각자 개인의 목표가 다를 수밖에 없다. 조선의 국왕은 모든 것을 가져야만 했다. 사직을 지키는 일이 백성을 지키는 일보다 중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본인의 권력이 강해야만 했다. 그렇다고 믿었는지도 모른다. 반면 애초에 가진 게 없던 천황은 달랐다. 오히려 갑자기 본인에게 주어진 권력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문제였다. 그는 적극적인 활용보다는 중재를 택했다. 이렇게 가진 게 달랐던 고종에게 모든 권력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근대화를 성공하지 못했다고 비난하는 것은 다소 억울할만하다.

아니면 역사적으로 고종에게 허락된 시간과 메이지 천황에게 허락된 시간이 달랐는지도 모른다. 메이지 천황의 최대 공적은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군림했다는 점. p,1087” 뿐인지도 모른다. 저자는 평한다. “메이지 천황에게 반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 인물은 가장 허물없이 마음을 터놓는 경우에도, 자신과 조상에 대한 생각이 염두에서 사라지는 일이 없는데다가 여간해서는 자신의 감정을 나타낼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p.1069” 한국인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메이지 천황보다는 고종의 면모가 인간적으로 동정이 간다. 알 수 없는 사람보다는 차라리 미운 사람이 낫지 않겠는가. 물론 그것은 인간적인 면모로 평가할 때에 한정되지만.

결국 긴 책을 읽고서도 메이지 천황이 어떤 존재인지 알지 못하겠다. “전기 작가의 소임은 대상을 눈앞에 소생시키는 데 있다. p.1069”고 말한 저자가 실패한 것인가. 그것은 아니다. 저자는 최대한의 노력을 다했고,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전부 다했다. 다만, 대상이 문제거나 독자인 내가 문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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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천황은 사실 자유를 빼앗긴 양심의 수인이었다. 10년 전, 벨츠 박사가 일기에 쓴 적이 있었다. 천황은 공식적으로 어머니를 1년이면 몇 차례 의례적으로 방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신하인 생모는 자유롭게 방문할 수 없었다. ‘기묘한 에티켓의 정화다!’하고 벨츠는 평했다. 천황은 에티켓, 즉 예식을 깰 수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죽기 전에 한 번 만나고 싶어한 천황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p.873

언제나 그런 것처럼 천황의 이름으로 나오는 조칙의 경우 어느 부분이(만약 있다면 말이지만) 천황 자신의 표현인지 분명치 않다. 그러나 아마 이 조서의 내용은 한국의 현재의 운명에 관한 천황의 의견과 일치하지 않았을까 여겨진다. 현재의 우리 눈으로 볼 때, 한국을 일본에(p.940) 합병한다는 결단에 관여한 모든 사람들은 중대한 과오를 범했음을 알 수 있다. 한일 합병이 상호의 번영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기대한 한국인은 지금까지의 외교 경험을 비추어 이런 일을 예견했어야 했다. 외국(일본)을 위한 이익은 언제나 한국인에게 번영을 가져다주려는 그 어떤 욕구보다 우선한다는 것, 그리고 또한 이런 사실도 알고 있어야 했다. 설사 그들의 명목상의 국왕이 쾌적한 은거 생활을 누리는 일이 허용된다 하더라도, 한국 대중은 착취당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근대 문명의 모든 방면에서 한국인보다 진보해 있던 일본인은 틀림없이, 그리고 주저 없이 그 우월성을 이용할 터이니까. / 그리고 자국의 정부가 공언하고 있는 목적을 순진하게 믿고 있던 일본인들은 이런 점을 깨달았어야 했다. 총독을 앉히고 한국을 지배하는 군인들은 대륙에서 일본의 다음 단계 침략을 위한 도약대의 기능 말고는, 한국에 관심을 기울인 흔적이라곤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p.942)을 말이다. 이런 일은 쉽사리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합병의 최악의 국면을 우려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 같다. 한국에서 일본인은 지배 민족으로 오만하게 굴었고, 한국인은 일본인의 지배하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터득해야 했다. 그것은 한국인을 때때로 굴욕적으로 만들었다. / 한국 정부가 설혹 일본의 지배가 한국 국민에게 미칠 영향을 예견했다 하더라도, 이 시점에서는 저지할 방법이 없었다. 합병 조약에서는 왕과 귀족에게 우대 조처를 한다는 것이 강조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아마 상류 계급이 만족하는 한 무지한 대중이 불만을 가진다 한들 큰 문제가 아니라는 일본인의 신념을 반영한 것임에 분명하다. 이 비슷한 태도는 인도에서의 영국인에게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다. p.943

위대한 왕이란, 예를 들면 스페인의 펠리페 2세처럼 국사를 스스로 조종하기를 바라는 자(p.1039)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우수한 대신들을 신뢰하고, 왕권의 위엄으로 이를 지원하는 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1912.08.22. <코레스퐁당>

메이지 시대의 사건들에 대해서는, 1860년대의 개국에 이어지는 반세기 동안 일본에서 일어난 엄청난 변혁에 매료된 연구자들에 의해, 아마 예상할 수 있는 모든(p.1066) 각도에서 연구되어 왔을 것이다. 그러나 천황이 그 연구 대상이 될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다. / 메이지는 국민들 대다수에 의해 우상시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독자적인 특질을 갖춘 한 인간이라서기보다는, 오히려 일본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동양의 군주국으로부터 열강제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근대 국가로 발돋움할 때 그 원동력이 된 존재로서 였다. ... 그러나 천황의 치세를 살아본 일본인의 수가 착실히 감소되어 가고 있는 가운데, ‘메이지는 일반적으로 하나의 명칭으로만 남겨지고 있다. 그의 갖가지 업적 또한 그를 섬기던 군인이나 관리의 업적과 분간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p.1066

전기 작가의 소임은 대상을 눈앞에 소생시키는 데 있다. 헨리 제임스의 이름 높은 전기 작가 레온 에델이 일찍이 말한 것처럼, 전기 작가는 그 대상에 흠뻑 빠져야한다. 그러나 메이지 천황에게 반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 인물은 가장 허물없이 마음을 터놓는 경우에도, 자신과 조상에 대한 생각이 염두에서 사라지는 일이 없는 데다가 여간해서는 자신의 감정을 나타낼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p.1069

아마도 그의 최대 공적은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군림했다는 점일 것이다. 이 점이 거의 같은 시대 인물인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과 비슷했다. 빅토리아 여왕은 비탄에 잠긴 나머지 군주로서의 임무를 소흘히 했다며 오래도록 신문의 공격을 받아왔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그의 오랜 치세 덕분에 위대한 군주라는 명성을 얻었다. p.1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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