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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인간의 대지

생텍쥐페리 저/최복현 역
이른아침 | 2007년 10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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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모르겠다. 이 책에 대한 서평에는 나의 취향이나 초라한 수준따위가 기준이 되어선 안될 것 같다는 부끄러운 생각이 자꾸만 든다.  처음 30장부터 그렇게 나를 흔들어놓았다.

실로 오랜만에 내 삶의 기준과 수준이 의심스러워졌으며,

실로 오랜만에 인간을 풍요롭게 만드는 정서적 교감이 이루어지는 독서의 체험이었다.

프랑스리옹 출신의 소설가이자 비행기 조종사,

'어린왕자'라는 강력한 작품으로 전세계에 각인되어 있는 그 생떽쥐베리의 소개글 중

[1944년 7월 31일 남프랑스 지역정찰 비행을 위해 출격한 직후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다.]

라는 마지막 줄을 읽었을때의 먹먹함이란...

정신차린 후 드는 생각은 왜 이리도 위대한 작가들은 우리 곁을 빨리 떠나느냐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그토록 그가 작품속에서 부르짖었던 인간의 고귀함,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 극한의 상황들 속에서의 명상과 사유들...

그것들 앞에서 깃털같이 한없이 가벼운 나의 사고들은 완전히 흩어져버리고

작가로써가 아닌 인간 생떽쥐베리의 자전적 경험들은, 그 경험에서 우러난 숭고한 사색의 결정체들은

어느새 내 마음 속을, 영혼 속을 마음껏 비행하며 헤집어 놓고 있었다.

 

직업이라고 규정하기에 너무 큰 의미로 다가온 비행사라는 사람들,

그 안에서 느껴지는 동료의식과 그것을 뛰어넘어 죽음과 인간의 고독이라는 뗄 수 없는 관계들 속에서 맺어진 철저한 유대감과 휴머니즘을 이처럼 잘 표현한 작품이 또 있을까 싶다.

또한 비행중 혹은 체류 중 만난 포로와 노예들과의 관계들 속에서의 생떽쥐베리는

인간이 인간에 대해 지켜할 것들과 그 안에서 발생되는 책임이라는 개념을 누구보다 분명히 알고 있으며 무엇보다 가슴 저릿하게 느껴지는 모든 아름다운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인간에 대한 성찰을 여실히, 그만의 서정적인 문장과 단어들로 뱉어내는데 읽으면서 숨이막힐 것 같았다.  

 

다시 직업적인 면으로 돌아가자면, 길에서 고장난 자동차는 잠깐 갓길로 멈춰서서 수리를 기다릴 수가 있고 바다 위에서 고장이 난 배 역시 잠시 구조를 기다리며 몸을 물에 의지할 수가 있다.

그런데 이 하늘을 나는 비행기라는 것이 고장이 나거나 연료가 떨어졌다, 혹은 항로를 이탈해 버리면 멈춰 있을수도 없고 도무지 대책이 서지 않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부끄럽게도 나는 비행사라는 사람들, 그들이 선택에 따르는 위험성과 공포 그리고 고통, 그것들에 대한 깊은 생각은 커녕 필연적인 대가라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 어리석고 어리석은 우물안 개구리를 조용히 그러나 근엄하게 꾸짖는 이들이 있었으니 셍떽쥐베리의 동료들, 그리고 그가 만난 낯선 세계의 사람들이었다. 

돌아오는 것은 단지 다시 떠나기 위한 준비과정일 뿐이었던 동료 메르모즈, 결국 자신이 개척한 하늘에 숨어버려 셍떽쥐베리의 가슴을 서늘하게 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통보되지 않는 자연과 운명의 선고에 비행사들은 점점 죽음에, 공포에 초연해지는 자신들을 발견해나간다.

안데스 산맥을 횡단하다 조난당한 기요메의 이야기는 촌각을 다투는 시간들에 대한 새삼스런 깨달음과 누군가는 처절하고 어쩌면 숙연하기까지한 죽음과의 사투를 벌이는 그 시간들을 나라는 누군가는 너무 어이없이 낭비하고 있다는 허탈함을 남긴다.

 

셍떽쥐베리가 비행을 하며 만난 야만인들과 바르크 영감을 비롯한 노예들, 그리고 전쟁중인 많은 사람들, 정확히 말하면 그들을 너무나 인간답게 대우하고 본질적으로 꿰뚫어 표현하려고 애쓴 부분은 경험해보지 못한 시대일지라도 무지막지한 감동으로 혹은 낯설지만 인간에 대한 새로운 탐구로, 마치 미분야를 개척하는 사람인양 흥분하며 읽었다. 나도 똑같은 사람인데 말이다.

 

인간관계를 가장 사치라고 한 셍떽쥐베리가 오아시스라고 표현한 쳅터V의

어느 낡은 오두막에 사는 가족과의 만남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그의 사치는 인정될만하며 거론된 인물들은 그의 책 속에, 그의 여행 속에 녹아있다는 것만으로 영광일 듯 싶다.

우리의 삶은 사막이지만 그가 발견한 관계속에서의 꿈과 열정은 그 누구도 찾아내지 못한 꿀맛같은 오아시스였고, 그것은 비행중에 혹은 만남 속에서 끊임없이 빛났다. 

설사 사막에 불시착하여 메마른 심장을 끌어안고 갈증에 허덕이며 신기루를 볼 지언정,삶에 대한, 인간에 대한 그만의 사유의 즐거움은 빼앗아가지 못했다.

그가 돌아오지 않은 비행이 마지막이라고 느껴지지 않은 이유, 

자연에, 대지에 도전하며 그는 구름 속 혹은 바다 위 어디선가, 

혹은 낮에는 행로의 한 지점이 되었으나 밤에는 눈앞에 들이닥치는 장애물이 될 산봉우리 어디선가, 혹은 내 마음 속 어디선가 계속 비행하고 꿈꾸고 글을 쓰며 진정한 행복을 누리고 있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인간의 대지는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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