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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가 없다면 스윙은 없다] 하루키의 음악에세이 | 일반도서 2018-05-05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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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의미가 없다면 스윙은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 저/윤성원 역
문학사상 | 2018년 04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이 책은 음악에 대한 글이다. 하지만 그에 앞서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음악이 없는 생활이란 무척이나 허전할 것 같다고 새삼스럽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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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은 소설도 좋지만 에세이는 그야말로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나는 에세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소설파인데도 하루키의 에세이만은 고개를 연신 주억거리며 읽고는 책장에 고이 모셔두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보곤 한다. 이번에 마주한 책은 음악에세이다. 그동안 작품 속에 그토록 많은 음악이야기를 담아내었는데 본격적인 음악 관련 에세이는 처음이라고 한다. 음악이 주는 자연스러운 기쁨을 일과 연관 짓고 싶지 않다는 기분, 충분히 알 것 같다. 후기를 읽어보니 하루키는 어려서부터 음악과 독서를 무척이나 좋아했던 모양이다. 나 역시 한글을 깨우치면서부터 그림책을 건너뛰고 책을 읽기 시작해 방학이면 도서관에 가는 게 일과였으며, 음악교과서를 받아오면 엄마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곡을 불러보고 매일 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심취해 있곤 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어려서부터 장래희망은 문학이나 음악 관련 일이라고 생각하고 자랐는데, 사람 일이란 생각처럼 풀리지는 않는 법이라 대학에 진학하며 진로가 바뀌어버리고 말았다. 냉정하게 스스로를 평가했을 때 음악이든 글을 쓰는 일이든 내게는 예술적인 재능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고 주어진 현실에 만족하기로 했던 것이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에 너무나도 열중한 나머지 자신이 무엇을 쓰고 창작한다는 모습이 제대로 그려지지 않았다. 수신인으로 오랜 세월을 보내게 되면 자신이 발신인이 된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게 된다.”

 

흠. 발신인과 수신인이라는 말인가.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닌 바에야 무슨 일에서든 발신과 수신이 오갈 수밖에 없을 터이지만 그래도 나는 늘 수신인에 더 가까운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첫 번째 음악인으로 시더 월턴을 꼽았다는 것이 기뻤다. 나는 재즈를 잘 모르고 연주자래야 유명한 몇 명의 인물만 간신히 알 정도이니 당연히 이름도 연주 실력도 알지 못하지만 시더 월턴이라는 재즈 피아니스트는 나 같은 성향의 사람이었던 듯싶다. ‘숨은 맛’ 같은 사람이라니, 어쩐지 내가 칭찬을 받은 것 같아 흐뭇한 마음으로 연주곡을 찾아 들으며 제 맛도 모르는 채 음, 좋구나 하며 실실거리고 있었다.

 

시더 월턴Cedar Walton; 강인한 색채를 지닌 성실한 비주류 시인
"평소에는 얌전해 적극적으로 앞에 나서서 의견을 피력하는 일이 없어 그다지 눈에 띄진 않지만, 중요한 순간이 오면 일어서서 적은 말수로, 하지만 정연하게 바른 의견을 논한다. 그 말에는 확실히 무게가 있다. 이야기가 끝나면 다시 제자리에 앉아 조용히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를 기울인다. 그런 사람이 있기에 이 세상의 저울추 같은 것이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조정되어 수렴되어 있는 것이라는 인상이 든다. 시더 월턴은 그야말로 그런 타입의 뮤지션이다."


브라이언 윌슨Brian Wilson 남부 캘리포니아 신화의 상실과 재생
브라이언 윌슨은 몰라도 비치보이스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영화 <러브 앤 머시 Love & Mercy>의 주인공 브라이언 윌슨은 신나는 서프(surf) 뮤직으로 전 세계를 열광시킨 그룹 ‘비치 보이스The Beach Boys’의 중심에 있던 리더로 천재적인 뮤지션이다. 그러나 천재들은 신의 축복과 저주를 함께 받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굴곡 많은 인생을 보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아버지에게서 받은 상처와 주위에 난무하는 배신과 거짓, 그로 인한 마약 남용. 하지만 모두가 끝이라고 생각했을 때 브라이언 윌슨은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덩달아 힘을 얻은 나는 ‘틸 아이 다이Till I Die’라는 너무나 근사한 곡을 알게 되었다.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제17번 D장조 D850 Franz Schubert 부드러운 혼돈의 오늘
내가 슈베르트를 좋아하게 된 건 <노다메 칸타빌레>의 영향이 크다. 노다메의 마라도나 콩쿨 1차예선곡이었던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6번 A단조 D.845’가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슈베르트는 가곡으로 유명하지만 나도 하루키처럼 피아노 소나타가 더 좋다. “스피커 앞에 앉아 눈을 감고 음악을 듣고 있으면 그곳에서 펼쳐지는 세계 속으로 자연스럽게 발을 들여놓을 수 있다.” 어쩜 내가 느끼던 감정을 그대로 글로 옮겨 놓았을까. 새롭게 알게 된 피아노 소나타 제17번을 어렵게 찾아 들으며 ‘마음속으로부터 용솟음치는 정신적인 힘’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스탠 게츠Stan Getz 어둠의 시대, 천상의 음악
테너 색소폰 연주의 거장, 스탠 게츠. 재즈 뮤지션 리스트에서 빠지는 법이 없는 천재적인 연주자이지만 역시 헤로인의 덫에 걸려버린 안타까운 인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연주는 늘 빛이 났다고 한다. 아니 오히려 약에 취했을 때가 더 훌륭했다고 하니 스탠 게츠의 입장에서는 연주가 좋으면 그만이지 무슨 상관이야 할지도 모르겠다. 너무 어린 나이에 아무런 보호막 없이 세상에 맞서 홀로서야 했던 그였지만 재즈를 사랑하는 전 세계 음악인의 가슴속에 반짝이는 별로 영원히 남아 있을 테니 성공한 삶을 살았다고 박수쳐주자.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 미국 노동자 계급의 대변인
미국을 대표하는 팝가수. 근육질 몸에 청바지를 걸치고 거친 음성으로 외치는 ‘본 인 디 유에스에이Born In The USA'와 함께 건강한 훈남의 모습이 우선 떠오른다. 마치 미국의 영광을 찬양하는 느낌이었는데 실은 희망 없는 도시에 대한 블루컬러 계급의 절절한 메시지를 담은 노래라니, 그의 노래를 상업적으로 또는 정치적으로 이용해버린 미국이라는 나라가 우리 사회의 모습과 묘하게 겹쳐 보인다. 도시 인텔리층이 점령한 포스트모더니즘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사회 저변의 생생히 살아있는 이야기들을 청중에게 전하고자했던 그의 행보야말로 진정한 용기가 아니었을까.


제르킨과 루빈스타인Rudolf Serkin & Artur Rubinstein 전후 유럽의 대조적인 두 거장 피아니스트
피아니스트 루돌프 제르킨과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의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마치 치아키 센빠이와 노다메를 보는 것 같았다. 내게 있어 클래식 음악에 대한 지식이란 ‘노다메 칸타빌레’를 중심으로 습득된 터라 감상 수준이 낮은 건 어쩔 수가 없다. 아무튼 연습 또 연습, 모든 작곡가가 하는 이야기에는 이유가 있으니 잘 듣고 그대로 표현해야한다는 치아키와 즐겁게 연주하는 게 뭐가 나쁘냐는 노다메의 모습이랑 비슷하지 않은가 말이다. 두 명장의 브람스 피아노협주곡 2번을 연이어 들어봤지만 솔직히 어느 연주가 더 좋은지,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훌륭한 연주를 듣고 좋았으면 되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윈튼 마살리스Wynton Marsalis 뛰어난 뮤지션의 지루한 음악
뛰어난 연주이지만 어쩐지 계속 듣고 싶은 마음이 없다? 물론이다. 노래 잘 부른다고 모두들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이야기 잘한다고 더 듣고 싶은 것도 아니지 않은가. 너무 진지하다, 굉장히 위엄에 차 있다, 융통성이 없다, 라는 평가를 읽다보니 잘난 척 하는 사람이라는 선입견이 생겼는지 연주도 괜히 싫어지는 느낌이다. 그런데 왜 하루키는 이런 연주자를 골랐을까? 한 점의 티도 없이 훌륭한 테크닉보다는 마음을 전하는 진정성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는 세상의 진리를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스가시카오スガシカオ J-POP 가수의 유연한 카오스
되도록 다양한 종류의 음악을 편견 없이 폭넓게 듣고 싶다는 생각에 동의한다. 그래서 클래식에 꽂히는 날엔 하루종일 클래식을 틀어놓고 팝뮤직이 동하는 때엔 오래된 플레이리스트를 뒤적거리기도 하는데, 그러고 보니 언젠가부터 국내음악을 주로 듣고 있게 되었다. 그래도 아이돌 위주의 K-POP은 귀로만 듣기보다는 동영상으로 봐야 더 좋게 들리는 것 같다. 하루키의 표현대로 ‘리듬감 있는 가요’이기 때문이겠지만 요즘 국내 싱어송라이터들 정말 실력 있는 뮤지션들이 많다.


프랑시스 풀랭크Francis Poulenc 상쾌한 일요일 아침, 풀랭크를 듣는 행복
나는 런던하면 락 페스티벌이 떠오르는데 하루키는 클래식을 듣기에 이상적인 장소라 한다. 그곳에서 살아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유럽에서 맞는 아침, 일요일엔 클래식 콘서트를 들으러 연주회장으로 향한다. 마치 영화 같은 그림이다. 그런 느낌의 음악이란 어떤 건지 들어보려 하니 풀랭크에 대한 자료는 참 부실하다. 오페라나 가곡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인지 별 감흥을 얻지 못한 풀랭크, 나는 아침형 인간이 아니라 저녁형 인간이라서 일는지도 모르겠다.


우디 거스리Woody Guthrie 학대받는 사람들을 노래한 국민시인
처음 들어본 포크 송 가수이다. 밥 딜런이나 윌리 넬슨이라면 알아도 우디 거스리라니. 아무래도 하루키는 나만 아는 음악가, 그리고 나만 알고 싶은 음악가를 주제로 이 책을 집필한 듯하다. ‘심플한 말, 심플한 멜로디, 그리고 똑바른 시선과 마음가짐.’ 그것이 바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열쇠라는 점을 제대로 알았던 뮤지션이 바로 우디 거스리라고 한다. 그의 노래는 몰라도 음악에는 다양한 힘이 있다는 걸 몸소 보여준 그의 음악혼만큼은 제대로 계승되기를 바란다.


이 책은 음악에 대한 글이다. 하지만 그에 앞서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음악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고난과 좌절을 겪고 한없는 즐거움과 기쁨을 맛보았던 음악인들의 삶을 통해 어둠과 빛을 동시에 본 느낌이다. 어둠을 경험했기에 빛이 얼마나 찬란하고 아름다운지를 절절하게 느꼈을 인물들을 떠올리며 오늘을 있게 만든 일부일 뿐인 과거로부터의 후회를 날려 보냈다. 내게 있어 책이 없는 삶이란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다. 이 에세이를 읽으면서 그 못지않게 음악이 없는 생활도 무척이나 허전할 것 같다고 새삼스럽게 생각했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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