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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선계단의 앨리스] 앨리스를 좋아하는 아리사의 추리 | 장르소설 2020-04-15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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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선계단의 앨리스

가노 도모코 저/장세연 역
손안의책 | 2008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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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업은 했으나 의뢰인 하나 없이 기다림의 시간을 침묵으로 보내던 중 동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미소녀가 평소 사용하지 않는 나선계단을 올라와 문을 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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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물 [소년 소녀 비행클럽]이 너무 재미있어서 새로이 인식하게 된 작가 가노 도모코 加納朋子. 예전에는 코지 미스터리 계열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편견에 사로잡혀 멀리했던 저자의 대표작 ‘앨리스 시리즈’도 궁금해졌다. 첫 권은 [나선계단의 앨리스螺旋階段のアリス]다. 이 소설의 주요인물인 ‘니키’와 ‘아리사’는 바로 영국작가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의 동화 ‘앨리스 시리즈’의 광팬으로, 사건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 1865)>나 <거울 나라의 앨리스(Through the Looking-Glass, 1871)>의 내용을 언급한다. 바로 그 점이 이 작품이 갖는 묘미가 아닌가 싶은데, ‘Alice’의 팬이 아닌 나로서는 그저 그런가보다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재미가 반감되고 말았다. 사실 어릴 적 읽었던 동화 중 가장 지루했던 작품 중 하나가 바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서 잘 기억도 나지 않는데다 갑자기 ‘하트 여왕이구나. 목을 쳐라!’ 하면 ‘생뚱맞게 무슨 소리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워낙 인기 있는 동화인 만큼 시도는 좋았다고 본다.


다니던 회사에서 구조조정 대신 채택한 휴직 시스템에 솔깃해진 중년의 샐러리맨 니키(仁木)는 이 기회에 늘 동경했던 사립탐정사무소를 차리기로 결심한다. 개업은 했으나 의뢰인 하나 없이 기다림의 시간을 침묵으로 보내던 중 동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미소녀가 평소 사용하지 않는 나선계단을 올라와 문을 두드린다. 길을 잃었다는 그녀의 이름은 아리사(安梨紗). 우연을 가장했지만 실은 전단지를 보고 탐정조수가 되고 싶어 찾아온 것이다. 아리사의 등장과 함께 비현실적인 느낌이 드는 나날이 시작되고 의뢰인이 하나둘 찾아온다. 그러나 소설 속의 셜록 홈즈나 엘러리 퀸처럼 스펙터클한 사건을 맡아 해결하고 싶었던 꿈은 그야말로 몽상일 뿐, 현실은 소소한 일상에 숨은 비밀을 다루는 일들밖에 없는데다 그나마도 아리사가 없이는 해결하기 어려웠을 것임을 깨닫는 니키. 이제 아리사가 없는 탐정사무소는 쓸쓸하기만 하다. 


죽은 남편이 자신을 위해 숨겨둔 금고 열쇠를 찾아 달라는 여인, 자기가 바람을 피우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해 달라는 여자, 30년 동안 길러온 애견이 사라졌다며 찾아달라는 노부인, 지하실에서 울리는 전화의 출처를 밝혀달라는 남자, 자신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아내의 동정을 살펴달라는 친구, 아기를 돌보아달라는 산부인과 의사, 갑자기 사라진 아리사에게 얽힌 비밀 등 총 7가지 사건을 다루고 있는 소설집으로, 이야기 자체만 보면 시리즈가 왜 두 권으로 끝났는지 알 것 같은 무언가가 조금 부족한 느낌이다. 기회가 있으면 속편격인 [무지개집의 앨리스虹の家のアリス]도 마다하지는 않겠지만 다른 작품을 먼저 시도하련다. 검색을 하다 보니 저자의 작품 중 ‘사사라(ささら) 시리즈’가 있다. 사사라 시리즈는 예전에 의외의 재미를 준 드라마 [내일은 맑음 てるてるあした]의 원작이라고 한다. 그러나 번역서가 없으니 우선 ‘고마코陶子 시리즈’라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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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타운] 희망은 찾아온다, 용기만 있다면 | 일반도서 2020-04-11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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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베어타운

프레드릭 배크만 저/이은선 역
다산책방 | 2018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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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특유의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삼은 이 소설은 숲으로 둘러싸인 조그만 도시 베어타운을 무대로 인간 공동체가 빚어내는 빛과 어둠을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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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작가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은 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잡아끄는 힘이 있다. 재미와 감동 때문만이 아니라 그 뒤편에 자리 잡고 있는 불편한 현실이 오히려 자꾸만 자꾸만 책장을 넘기라 한다. 덕분에 이틀간 잠을 설쳐가며 두꺼운 벽돌책 [베어타운 Beartown]의 끝을 향해 달렸다. 여담이지만 북유럽 사람들은 길고긴 장편을 좋아하나보다. 같은 스웨덴의 ‘스티그 라르손’이나 ‘요나스 요나손’ ‘카타리나 잉엘만순드베리’의 작품들도 그렇고 노르웨이의 ‘요 네스뵈’ 작품도 기본 500페이지는 훌쩍 넘어가니 말이다. 눈 덮인 혹한의 겨울, 낮게 드리운 하늘, 조용하고 한적한 마을, 환경의 영향이 여가시간을 집에서 느긋하게 보내도록 만들기 때문일까? 그런 북유럽 특유의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삼은 이 소설은 숲으로 둘러싸인 조그만 도시 베어타운을 무대로 인간 공동체가 빚어내는 빛과 어둠을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전작 [브릿마리 여기 있다]가 축구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면 [베어타운]은 아이스하키에 목숨 건 사람들의 이야기다. 스포츠는 사람들을 똘똘 뭉치게 만드는 힘이 있지만, 분열을 일으키게 되면 대대적인 싸움으로 번지는 부작용이 따른다. 물론 이 작품은 역경을 헤치고 꿈을 향해 부단히 노력해서 마침내 성공한다는 줄거리의 스포츠 성장소설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과 그들을 응원하는 팬들의 모습을 그 어떤 스포츠소설 못지않게 열정적이고도 짜릿하게 묘사하고 있다. 솔직히 나는 스포츠를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고 경기 규칙 또한 잘 모른다. 아이스하키란 스케이트를 타고 아이스링크를 누비고 다니며 스틱으로 퍽이라는 까만 공을 골대에 넣는 스포츠라는 정도밖에 지식이 없다. 그런데도 나는 또다시 ‘브릿마리’가 되어 이번에는 베어타운의 아이스링크 관람석으로 날아가 열광하는 사람들 틈에서 함께 흥분을 나누고 있었다. 그런 황홀한 즐거움이 지속되면 좋으련만 손에 땀을 쥐는 뜨거운 시간은 그만큼 빨리 식어버린다는 것이 함정이다.


점점 쇠락하고 있는 소도시 베어타운은 과거에도 그랬듯이 현재에 이르러서도 마을의 부흥을 하키에 걸고 있다. 극적으로 전국 대회 준결승에 진출한 청소년 아이스하키팀이 우승한다면 시의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염원하는 어른들은 어린 선수들의 어깨에 묵직한 짐을 지우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결승전을 앞두고 승리를 자축하는 십대들의 파티에서 벌어진 어떤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마을 공동체는 점점 들끓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이루는 사회란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인걸까. 대를 이어 평생을 어우러져 살아가는 지역민들을 주축으로 하는 아주 작은 마을임에도 베어타운 역시 돈으로 나누어지는 카스트 사회의 모습 그대로다. 실업, 차별, 여성비하, 성소수자, 폭력, 파벌 등 현대사회의 문제점 또한 고스란히 안고 있다. 돈과 권력에 빌붙는 비굴한 사람들, 힘으로 약자를 괴롭히는 사람들, 거짓과 잘못을 정당화하려는 사람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부조리에 눈을 감는 사람들, 분란의 소용돌이에 휩쓸리지 않으려는 사람들, 정의와 대의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하는 사람들, 그들이 벌이는 마녀사냥 속에서 몸부림치는 한 가족이 너무 안쓰러울 따름이다.


“네 아이가 열다섯 살이 되거든 나를 찾아와줘. 그때는 생각이 달라졌을지도 모르지.”

p.499


삶에는 자신이 당사자가 되어보지 않는 한 절대 모를 일들이 너무나도 많다. 성폭행이란 더욱이 까다로운 사건이다. 게다가 가해자가 지역 유지의 아들이자 천재적인 실력의 소유자라면 순식간에 피해자로 뒤바뀌고, 실제 피해자는 온갖 폭력과 비방을 감당해야 한다. 하물며 열다섯 살 소녀가 그런 엄청난 현실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루아침에 심연으로 굴러 떨어졌음에도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려는 아이, 그녀를 좋아하면서도 어렵게 얻어낸 팀이라는 안전한 소속감을 좀처럼 떨쳐버리지 못하는 아이, 내면의 아픔을 외적인 고통으로 산화시키며 묵묵히 자신의 길을 찾는 아이, 옳다고 생각한 선택을 한 아이들이 10년 후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정의가 해피엔딩을 가져다주지는 못했다. 사실 옳고 그름의 기준이 뭐란 말인가. 각자의 가치관과 처한 입장이 다를 뿐이다. 하지만 마을 회생이라는 꿈을 무너뜨린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희망은 있을 거라 믿고 싶다면 다음 편을 읽으라는 이야기일까? 분쟁의 불씨가 말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탓에 마을의 미래가 순조롭게 전개될 리는 없겠지만, 그들 안에 깃들어 있던 곰이 눈을 떠 더욱 강한 인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베어타운의 다음 이야기 [우리와 당신들]을 기대하련다.


“이 마을은 옳고 그름을 잘 구분하지 못할 때가 있어. 그건 인정해. 하지만 선과 악은 제대로 구분하지.”

뒤에서 말없이 건배하는 소리가 들린다. 베어타운 사람들은 고맙다는 말을 잘 하지 않는다. 미안하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런 방식을 통해 이 마을에도 한 번에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p.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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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탐정 쇼타로의 모험 2] 고양이는 크리스마스이브에 추리한다 | 장르소설 2020-04-07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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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고양이 탐정 쇼타로의 모험 2

시바타 요시키 저/권일영 역
시작 | 2010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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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사건을 소재로 하는 연작 단편으로 각 편마다 화자가 바뀌는데, 아무래도 주연인 고양이 쇼타로가 친구들과 함께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가 훨씬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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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보니 또다시 읽은 순서가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일본작가 ‘시바타 요시키’의 시리즈 소설 [고양이 탐정 쇼타로의 모험]. 지난 3권에 이어 거꾸로 올라가 2권을 읽었지만 이 시리즈는 그야말로 순서가 아무 상관이 없다. 애완동물을 좋아하지 않아 잘 모르긴 해도 이런 영특한 고양이라면 키우는 재미가 꽤 있을 것 같다. ‘쇼타로正太郞’라는 멋진 이름에 걸맞은 지적이고 거만한 고양이를 주인 히토미는 쿠로, 타마, 쇼짱 등 귀여운 애칭을 내키는 대로 부른다. 의사소통 능력이 떨어지는데다 덜렁거리고 가난할지라도 동거인이 자신에게 듬뿍 쏟는 애정만큼은 인정하고 있기에 쇼타로도 그다지 큰 불만은 없다. 오히려 수수께끼라면 사족을 못 쓰는 미스터리 작가와 지내다보면 이런저런 모험도 할 수 있어 재미와 보람도 있다. 


이 시리즈는 몇 가지 사건을 소재로 하는 연작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어 각 편마다 화자가 바뀌는데, 아무래도 주연인 만큼 고양이 쇼타로가 친구들과 함께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가 훨씬 흥미롭다. 2권 [고양이는 크리스마스이브에 추리한다.]에는 아파트에 출몰하는 수상한 남자를 둘러싼 미스터리를 다룬 ‘쇼타로와 수다쟁이의 모험’, 향긋한 복숭아로 위기를 모면하는 이야기 ‘고양이와 복숭아’, 물건들의 머리 부분만 훼손되는 기이한 사건 ‘쇼타로와 목 없는 인형의 모험’,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남녀의 로맨스 ‘나이트 스위츠’, 22세기 미래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우주 밀실 살인사건 ‘쇼타로와 차가운 방정식(번외편)’, 크리스마스이브를 함께 보내는 히토미와 쇼타로의 아주 짧은 에피소드 ‘현명한 사람의 선물’ 등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정말 이상한 고양이다. 아무리 추리작가가 기르는 고양이라고 해도 수수께끼를 너무 좋아한다. 세상에 이런 고양이는 없을 것이다...... 아니, 있군. 홈스라거나 코코라는 이름을 지닌 고양이. 뭐 그건 어쨌든 됐고.

사실대로 말하자면 말이야, 쇼타로.

오늘 밤은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아.

너랑 단둘이 있어서, 그게 너무 기뻐.

p.252/p.255


*릴리언 잭슨 브라운 <거꾸로 읽을 수 있는 고양이>; ‘코코’라는 이름의 샴 고양이가 등장

*아카가와 지로의 <삼색털 고양이 홈즈의 추리>; ‘홈즈’라는 이름의 얼룩고양이가 사건의 힌트를 준다.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생각되는 에피소드로 끝나는 2권의 수록작은 많은 친구들이 등장해 서로 힘을 모아 범죄 사건을 밝혀내는 첫 번째 편이 가장 재미있었고 번외편은 너무 지루했다. 복숭아 이야기는 시시했지만 토끼파이의 맛이 궁금해지는 나이트 스위츠는 로맨틱했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3권이 더 재미있었지만, 각 편을 따로 떼어보자면 ‘쇼타로와 수다쟁이의 모험’이 단연 최고다. 검은 수고양이 쇼타로, 흰색 페르시아 고양이 첼시, 느긋한 동네 고양이 긴타, 스코치테리어견 다마사부로, 커다란 아키타견 초초. 그들이 빚어내는 한바탕 소동에 주인들은 엉겁결에 범인을 잡고 사건을 해결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는 이야기로, 단편임에도 잘 짜인 구성과 각각의 캐릭터가 맡은 활약상이 빛난다. 시리즈의 다른 권도 또 읽겠냐고 묻는다면 ‘물론’이라고 답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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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별꽃] 슈퍼히어로의 원조 ‘스칼렛 핌퍼넬’의 활약 | 장르소설 2020-04-05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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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빨강 별꽃

에무스카 바로네스 오르치 저/남정현 역
동서문화사 | 2003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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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를 숨기고 억울한 사람들을 돕는 정의의 사도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소재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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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에 발표된 소설 [빨강 별꽃]. 백년도 더 지난 작품임에도 역시 불멸의 역작이란 이런 것인가 싶다. 존스턴 매컬리의 <쾌걸 조로(The Mark of Zorro)>도 여기서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걸보면 신출귀몰하는 히어로의 모험담은 이 소설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정체를 숨기고 억울한 사람들을 돕는 정의의 사도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소재임에 분명하다. 영웅을 원하고 영웅에 열광하는 심리는 보통 사람들의 로망이니까. 따라서 20세기의 대작가 ‘바로네스 엠마 오르치 남작부인(Baroness Emma Orczy)’이 그려낸 원조 슈퍼히어로 ‘스칼렛 핌퍼넬(Scarlet pimpernel)’이 지닌 매력은 시대를 뛰어넘는 것이다. 로맨스 서스펜스의 원조 같은 이 작품이 아직까지도 출간되고 있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야기의 배경은 프랑스 혁명 당시 귀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단두대 길로틴의 제물로 온 일가가 희생되던 혼란의 시대다. 잡히면 즉결재판으로 처형당하는 귀족들을 구출하기 위해 영국의 신사들이 도버해협을 건너 아수라장에 뛰어든다. 20명의 무리를 이끄는 수장은 ‘빨강 별꽃’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데, 구출에 성공하면 반드시 작은 별모양의 꽃무늬가 그려진 통지를 남기기 때문이다. 누구도 진짜 정체를 알지 못한다는 신비함이 더해져, 더욱 사람들의 추앙을 받는 그를 잡기 위해 프랑스 공화정부에서는 전권대사를 파견한다. 아름다운 여인과 대부호인 멋진 남자의 등장은 쫓고 쫓기는 추격전, 아슬아슬한 박진감에 빠질 수 없는 감미료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물론 고전인데다 로맨스의 요소가 적지 않은 만큼 의외성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그런 뻔한 공식에도 불구하고 흥미롭게 읽히는 건 역시 작가의 필력과 플롯의 힘이라 하겠다.


어렸을 때 읽고 실로 오랜만에 다시 찾아든 ‘빨강 별꽃’은 당시 불러일으켰던 불길만큼 커다란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세월이 흘러 삭막해져버린 마음에 자그마한 불꽃을 피울 정도는 되었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11권의 ‘스칼렛 핌퍼넬 시리즈’가 발표되었다고 하는데, 역시 등장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첫 번째 작품이 화제작으로 대성공을 이루는 경우 곧잘 찾아오는 비운을 극복해내기란 과연 쉬운 일이 아닌가보다. 원래는 소설보다 연극으로 발표된 이야기로 국내에서도 몇 년 전 뮤지컬로 공연했다고 한다. 더없이 로맨틱한 영웅 역할을 맡은 세 명의 배우 박건형, 박광현, 한지상, 누가 가장 어울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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