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블로그 | 랜덤블로그 쪽지
Memento mori
http://blog.yes24.com/swordsou1
태그 & 테마링 | 방명록
검혼
읽은 책에 대해 끄적거리는 연습하는 곳입니다
프로필 쪽지 친구추가
1월 스타지수 : 별1,468
댓글알리미 비글 : 사용안함
전체보기
잡설
취중잡설
나의 리뷰
Memento
m o r i
살림지식총서
영화
태그
고궁을 나오면서 자살사건 눈사람자살사건 와장창 류근 상처적체질 notsure 달리봄 수동형인간
2020 / 03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월별보기
새로운 글

Memento
[어디서 살 것인가-유현준]어디든 안착할 내 집이 있었으면 | Memento 2019-05-18 16:19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11320709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eBook]어디서 살 것인가

유현준 저
을유문화사 | 2018년 06월

        구매하기

어디든 안착할 내 집이 있었으면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어디서 살 것인가는 인류의 오랜 숙제다.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다. 정착을 시작하면서 이는 더 중요해졌다. 배산임수를 비롯한 풍수지리는 오랫동안 우리의 살 곳을 정해주는 지침이었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풍수지리에서 극복하고자 했던 많은 제약들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하지만 아직도 남향을 우선하고, 수맥을 따지는 등등이 남아있다. 여기에 경제적 이유, 문화적 이유와 같이 더 많은 조건들이 추가되었다. 어디서 살 것인가의 고민은 날로 발전하고 복잡해졌다. 어디서 살 것인가는 여전히 우리에게 중요한 화두를 던져준다. 유현준 교수의 책은 우리에게 무심결에 넘어갔던 많은 질문들을 고민하게 한다. 건축가인 저자가 우리가 살 곳이 이대로 괜찮은지, 우리의 도시는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지를 현실적으로 말해준다. 이는 우리의 삶이 이대로 괜찮은지 고민하게 한다. 물론 월세방을 전전하는 나에게야 어디든 안착할 내 집이 있었으면 하지만.

-----------------------------------------------------------------------------

건축물의 의미는 사용자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삶과의 관계를 배제하고 그 건축물을 이해하거나 평가하기는 어렵다. 사람과 건축은 불가분의 관계다. ... 건축과 사람은 별개의 존재가 아니고 서로 연결되어 상호 영향을 주면서 의미를 규정한다. p.7

우리는 지금 다양한 생각이 만나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할 수 있는 '21세기형 아고라와 원형극장'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책임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를 잘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건축 환경을 이해하는 것은 사람을 이해하는 하나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건축은 거울과도 같기 때문이다. 우리는 건축 공간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비춰볼 수 있다. p.21

변화는 우리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유명한 철학자들이 산책을 하면서 사색을 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p.77) 하지만 우리는 지금 마당 대신 아파트 거실의 변화 없는 인테리어 속에서 TV를 켜면 쏟아지는 정보에 질식하며 살고 있다. TV는 마치 내가 말할 틈을 안 주고 계속해서 떠드는 친구와 같다. 마당이 주는 자연의 변화가 내 해석이 필요한 요리하기 전의 재료라면 TV 속 이야기는 가공식품과도 같다. 가공식품이 있으면 내가 요리할 가능성이 없어진다. 우리에게 밀가루와 버터가 주어지면 각자 다른 빵을 만들지만, 만들어진 빵이 주어지면 먹고 살만 찐다. 지금 우리의 주거공간은 인스턴트식품 같다. p.78

도시를 좋게 만들려면 추억이 만들어질 만한 장소가 많아야 한다. 그런 장소를 만드는 데 가장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이들이 어린아이들이다. ... 아이들은 '시간'만 있으면 '공간'을 찾아서 '장소'를 만든다. p.85

방송과 마찬가지로 건축물도 여러 명의 공통의 가치관이 반영되어 지어지기 때문에 시대정신을 반영한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우리가 사는 도시가 아름답지 않다면 그것은 어느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다. 그 안에 사는 많은 사람의 건축적 이해와 가치관의 수준이 반영된 것이다. 좋은 도시에 살고 싶은가? 나부터 좋은 가치관을 갖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p.119

과거에는 자기 방을 열고 나가면 거실이라는 공공의 공간에서 다른 사람, 즉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1인 가구는 여유 공간을 찾을 수 없는 원룸에 갇혀 살고, SNS를 이용해 사람을 만난다. 사용하는 공간보다 더 작은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을 쳐다보며 살게 된 것이다. 부모와 살면 친구를 집에 초대할 수 없고, 원룸에 살면 공간이 작아 초대할 수가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디 편하게 앉아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려면 한 끼 식사비 정도로 비싼 거피값을 지불하고 카페에 앉아야 한다. 우리가 사는 현대사회는 공간을 즐기려면 돈을 지불해야 한다. 그게 집값이든 월세든 카페의 커피 값이든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소유하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공간들이 많았지만(p.126) 이제는 '몇 평'으로 계산되는 공간을 얼마나 소유하고 있느냐가 그 사람의 삶의 질을 평가하는 척도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열심히 일해서 한 평이라도 넓은 집으로 이사 가고 싶어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의 흐름은 지금 거꾸로 1인 가구의 작은 집으로 향하고 있다. p.127

우리도 1인 가구가 늘어나는 변화에 맞는 우리만의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야 한다. 돈이 많은 사람만 갈 수 있는 공간들로 채워갈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무료로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곳들이 다양하게 많아져야 한다. 그리고 그곳들은 자동차가 아니라 걸어서 갈 수 있을 만한 거리에 분포되어 있어야 하고, 서로 연결되어야 한다. p.129

정주할 수 있는 공공 공간의 부족을 해결하는 것은 앞에서 말했듯 각종 카페들이다.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단위 면적당 가장 많은 카페를 보유한 이유는 결국 우리 국민들에게 앉아서 쉴 곳이 없기 때문이다. p.134

필자는 전작에서 사람들이 걷고 싶어 하는 성공적인 가로는 '지하철역과 공원 사이를 연결하는 1.5킬로미터 정도의 거리'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p.136

건축적으로 보면 후드티를 입는 사람들은 자신의 공간을 가지기 어려운 도시 빈민들이다. 이들은 어떻게든 자신만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시선을 차(p.145)단하고 자신의 영역을 만들려고 한다. 지붕이 있는 공간을 소유하지 못하니 모자를 쓰고, 후드를 뒤집어쓴다. 주변이 안 보이니 머리를 좌우로 두리번거려야 한다. 이런 행동이 힙합의 무브(움직임). 후드티를 입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행동은 자신만의 사적인 공간이 없을 때 자연 발생적으로 만들어진 행동 패턴이다. p.146

나를 드러내지 않고 다른 사람을 엿보는 것을 '관음증'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런 관음증은 본능이자 권력을 나타낸다. 훔쳐볼 수 있는 사람은 보이는 대상이 되는 사람보다 더 권력을 가지는 것이다. 도시에서 자동차 안의 공간은 일부러 불을 켜지 않으면 항상 밖보다 어둡다. 어두운 자동차 안에 있으면 나를 드러내지 않고 다른 사람을 관찰할 수 있다. 자가용은 관음증을 충족시켜 주는 장치다. 익명으로 댓글을 쓸 때 폭력적이 되는 것처럼, 자동차 안에서는 숨어서 자신을 감출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운전할 때 더 난폭해지는 것이다. 자가용이 없을 때 관음증을 가장 손쉽게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은(p.148) 선글라스를 쓰는 것이다. ... 자동차, 헤드폰, 장갑, 선글라스는 복잡한 세상 속에서 내 공간을 만들려는 장치들이다. p.149

제한된 도시 공간에서 윤택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이 시대에 맞는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의 황금 비율을 찾아내야 한다. p.152

현대 도시가 삭막한 이유 중 하나는 도시의 건물에 중간 지대 역할을 하는 '사이 공간'이 없어서다. 사이 공간이란 한옥의 처마 아래 툇마루 같은 공간을 말한다.(p.156) ... 내부와 외부 두 가지 성격을 다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 현대 도시에서 이 사이 공간의 역할은 발코니가 한다. ...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발코니 확장법' 때문에 발코니가 멸종됐다. 그래서 더 이상 건물의 표정이 없다. p.157

우리가 선택한 라이프스타일이 그런 도시 공간 구조를 만들어 내고, 우리에게 선택권이 없는 한 방향으로 도시가 진화하게 만들었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싶은 것이다. p.174

현대사회의 공간적 특징은 "변화하는 미디어가 자연을 대체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p.176

도시가 좋아지려면 성공적 상업 가로, 미술관, 공원 같은 불특정 다수가 갈 수 있는 장소가 많아져야 한다. 그중에서도 상업 가로는 외부 공간과 실내 공간이 적절하게 어우러진 공간으로, 도시만이 제공하는 특별한 공간이다. 도시를 활력 있게 만드는 상업 공간을 어디에 어떻게 배치하느냐가 그 도시의 공간의 성격을 결정한다. 저층의 선형으로 적절하게 분포된 상업 공간이 도시를 걷고 싶게 만든다. 문제는 우리의 경제활동은 무한하지 않다는 점이다. 한 사람이 하는 경제행위는 제한적이기에 우리가 사는 전체 도시 공간에서 상업 공간은 극히 일부분이다. p.179

걷고 싶은 환경이 되려면 걸을 때 풍경이 바뀌어야 한다. 그 풍경은 다양한 가게일 수도 있고 샛길로 나오는 다른 길의 풍경일 수도 있다. p.193

골목길은 예측 불가능한 다양한 환경이 서식하는 갯벌과도 같은 존재다. 반면 재개발을 통해 지어진 대규모 아파트 단지는 간척지와 같다고 할 수 있다. p.197

우리가 창조라고 하는 것들은 어차피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닌, 자연에 있는 물질의 재구성일 뿐이다. 우리 인간이 하는 모든 행위는 자연으로부터 잠시 빌려쓰는 행위다. 그러니 내가 다 쓰고 나면 후손들이 다르게 사용하는 것이 당연하다. 업사이클링도 잠시 빌려 쓰는 행위다. p.212

고인돌은 일종의 무력시위였다. 무거운 건축물은 통치자가 눈에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통치의 영향력을 느끼게 해 준다. p.235

높은 곳은 권력을 창출한다. 높은 곳을 만든 다음에 그곳에 가게 해 주는 건축 장치는 계단이다. 그리고 그 계단을 장악하는 사람은 권력자다. 지구라트를 지은 사람들은 계단을 통해 권력을 창출하고 그 권력을 통해 나라를 통치하는 힘을 만들어 낸 것이다. 계단은 이처럼 권력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 장치다. p.308

제약은 획일화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p.398

위아래가 있는 게 문제가 아니라 위아래가 바뀔 수 있는 평화적 방법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 평화적 시스템이 없어지면 폭력적 방법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평화적 사다리가 없고 폭력적 방법 외에 별다른 선택권이 없는 세상에서는 폭력이 정당성을 가지게 된다. 폭력적 댓글과 시위를(p.420) 비판하려면 평화적 사다리가 있어야 한다. ... 우리 사회에는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자리를 이어 줄 평화적 사다리가 필요하다. 건축에서도 그런 공간이 필요하다. 그것이 없으면 사회적 긴장감은 커지고 폭력이 정당성을 갖는다. 그리고 그런 사회는 정상적으로 유지되기 어렵다. p.421

현대사회에서 나는 내가 소유한 공간으로 대변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소비한 공간으로 대변된다. ... 내가 제작(p.464)한 디지털 자료로 만든 나를 사이버공간이 나를 대변하는 것이다. p.465

신기술로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하는 노력과 그에 따른 사회적 현상과 문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대다. 왜냐하면 기술은 바뀌어도 인간의 유전적 본능은 그렇게 빨리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 속도의 차이에 따른 갈등은 생겨날 수밖에 없다.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식은 역시 전통적으로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하는 길밖에 없다. 왕도는 없다. p.472

건축이 다른 예술과 다른 큰 차이점은 가장 근본적인 자연법칙인 '중력'을 이겨 내려는 인간의 노력을 보여 준다는 점이다. 하지만 현대 건축에서는 그 본질이 다 가려져서 안 보인다. 그래서 현대 건축물이 옛 건축물보다 감동이 덜한 것이다. p.504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제국에서 민국으로 가는 길-박광일,신춘호]가진 것은 없지만 | Memento 2019-05-17 20:39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11319241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eBook]제국에서 민국으로 가는 길

박광일 저/신춘호 사진
생각정원 | 2019년 02월

        구매하기

가진 것은 없지만 해야 할 일은 많았던, 한 많은 역사에 대한 답사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를 꼽으라면 시간과 공간, 그리고 사람이라 하겠다. 역사에 똑같은 사건이야 없겠지만, 특정한 과거 사실이 발생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된다. 예를 들어보자. 동일한 행위를 하더라도, 어느 시기에 어느 곳에서 일어났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지금 내가 종로경찰서에 가서 사제폭탄을 던진다면 테러범이지만, 일제강점기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진다면 의사(義士). 일제강점기라는 시공간 때문이다. 사람이라는 조건 또한 마찬가지다. 일제강점기 서울이라는 같은 시공간에서도 밀정이 될 수도 있고, 독립운동가가 될 수도 있다. 누구냐에 따라 사건은 다르게 나타난다. 이는 역사를 해석함에도 마찬가지다. 동일한 사건도 어느 시공간에서 누가 해석하느냐에 따라 판이하게 달라진다. 광해군은 조선시대 동안 대국의 의리를 저버린 폭군이었지만, 지금은 중립외교를 펼친 위대한 군주로 평가 받기도 한다. 동일한 사실에 대해서도 역사가에 따라, 역사가가 있는 시공간에 따라 다르게 인식한다.

 

  이 세가지는 역사의 중요한 요소이자, 영원한 숙제다. 이처럼 중요한 세 조건을 확인할 방법이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학문 특성상 과거의 일을 다루기 때문에, 세 조건이 현실에 남아 있지 않다. 구전, 문자, 사진 등 불완전한 요소들만이 과거와 과거의 틈새를 겨우 붙들고 있을 뿐이다. 여기에 역사가가 상상력을 동원해서 이어보지만, 비어있는 간극을 좁히는 일은 불가능하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처절한 노력이 있다면, 바로 답사.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면, 답사는 그 시간, 그 공간에 있던 사람을 찾아가 시도하는 대화다. p.12” 본래의 것들은 이미 사라진 공간을 찾아 간다고 해서 무엇 하나 싶을지 모르겠다. 답사는 역사를 주제로 한 여행이다. 기본적으로 낯설게 보는 일을 동반한다. 낯설게 보는 만큼 상상력을 북돋는 일도 없다. 그리고 이 상상력은 과거와 과거의 틈새를 메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제국에서 민국으로 가는 길>은 부제 그대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27년을 걷는다. 임시정부의 한계는 명확하다. 독립전쟁을 하겠다는 점에서 전시정부와 비슷하지만 실질적인 군대를 갖지 못했고, 국외에 수립됐다(p.80)는 점에서 망명정부와 비슷하지만 빼앗긴 나라와 찾아야 할 나라의 모습이 달랐다. 가진 것은 없지만 해야 할 일은 많(p.81)”았다. 그럼에도 근 30년에 걸쳐 국외를 전전했다. 오로지 조국의 독립을 위해. 그 고난의 길은 어떠했을까. 얼마나 많은 고뇌와 삶의 힘겨움이 있었는지는 직접 걸어보지 않는 이상 알기 힘들다. 책과 영화로 아무리 잘 표현하더라도, 그 먼 거리를 걸어보지 않고, 그 건물을 만져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중국 각지를 직접 돌아다닐 수 없기에, 이보다 더 쉽고 편하게 알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역사라는 학문 특성상 직접체험은 쉽지 않다. 시공간을 넘어 사람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결국 역사는 간접체험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

 

  그래서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삶이다. 치열한 전쟁만이 역사가 아니라, 지리멸렬한 일상도 역사다. 까마득한 기나긴 생활을 이어나가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일 수(p.54)” 있음을 깨닫는 방법은 남아있는 흔적을 더듬는 길 뿐이다. 침대에 누웠어도 가시밭이었던 그들의 삶을 떠올리는 것(p.225)” 직접 가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 독립전쟁의 표면을 이룬 독립운동가의 투쟁만큼이나 그 속에서 일상을 지켜나간 이들의 고생도(p.523)” 우리의 역사이며, 정정화와 같은 분들도 중요한 독립운동가라는 저자의 인식은 가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체험이다. 전쟁은 야전사령관만으로 할 수 없다. 보급관도 필요하고, 이를 수행할 인력도 필요한 법이다. 이렇게 또 새로운 역사가 쓰여진다.

 

여기에 머물던 임시정부의 내력도 역사지만 그 내용(p.440)을 확인하고 또 찾아낸 것도 역사다. 그리고 이곳을 방문하고 기록을 남기니 우리도 역사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세 가지 중 하나만 없어도 역사는 의미를 잃어버릴 것이다. p.441

 

-----------------------------------------------------------------------------

답사는 그 시간, 그 공간에 있던 사람을 찾아가 시도하는 대화다. p.12

이름, 명예, 자존, 긍지보다는 우선 급한 것이 생활이었다. <장강일기>

어쩌면 적과 싸우는 것보다 앞이 까마득한 기나긴 생활을 이어나가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일 수 있겠다. p.54

막 출발한 통합 임시정부의 과제는 분명했다. 독립전쟁을 하겠다는 점에서 전시정부와 비슷하지만 실질적인 군대를 갖지 못했고, 국외에 수립됐다(p.80)는 점에서 망명정부와 비슷하지만 빼앗긴 나라와 찾아야 할 나라의 모습이 달랐다. 가진 것은 없지만 해야 할 일은 많은 임시정부였다. p.81

잊지 않아야 용서할 수 있지 않은가. 잊어버린다면, 역사를 잊는다면 그들이 사죄를 해오더라도 용서할 방법이 없다. p.197

침대에 누웠어도 가시밭이었던 그들의 삶을 떠올리는 것이 우리들의 임시정부 답사다. p.225

혁명을 하면서 지도부가 부각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른바 국부가 없는 나라도 많다. 더구나 한 사람에(p.359)게서 그 나라의 바탕이 나와야 한다는 발상 자체가 무척이나 아슬아슬하게 느껴진다. ‘광야에서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을 기다리는 것은 그 초인이 단 한 명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p.360

여기에 머물던 임시정부의 내력도 역사지만 그 내용(p.440)을 확인하고 또 찾아낸 것도 역사다. 그리고 이곳을 방문하고 기록을 남기니 우리도 역사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세 가지 중 하나만 없어도 역사는 의미를 잃어버릴 것이다. p.441

정정화를 가리켜 임시정부의 살림살이를 책임진 사람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표현을 들어 정정화의 업적을 독립운동 전선에서 과소평가하는 이들이 있다. 1~2년 혹은 그보다 짧은 독립운동이라면 적에게 타격을 가하거나 군사활동을 하는 독립운동가의 역할이 중요할 수 있겠다. 그러나 몇 년을 넘어 근 30년에 이르는 독립운동은 전쟁과 일상의 결합이라는 기묘한 상황을 만들어냈다. (p.522) 전쟁이란 일단 일어나면 총력전을 펼쳐 단박에 끝내야 하는 일시적인 사건이며, 일상은 한 사람이 생로병사와 희노애락을 경험하며 길게 이어지는 장기적인 생활이다. 사건과 생활의 결합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닌데 이러한 상황이 임시정부에 닥쳤다. 독립전쟁의 표면을 이룬 독립운동가의 투쟁만큼이나 그 속에서 일상을 지켜나간 이들의 고생도 보통이 아니었다. 당시 외부활동에 제약이 따랐던 여성들이 대(p.523)부분 이런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여성 독립운동가를 새롭게 발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한 독립운동가가 훈포장을 받았다면 옆에서 도운 아내, 드물게 남편도 역시 함께 받아야 한다. p.524

답사는 그 시간, 그 공간에 있던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던가. p.633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정의를 밀어붙이는 사람-에노모토 히로아키] 실천만 남았다. | Memento 2019-05-11 19:28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11304634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eBook]정의를 밀어붙이는 사람

에노모토 히로아키 저/정지영 역
쌤앤파커스 | 2019년 02월

        구매하기

자신의 이치만을 주장하지 말고, 상대의 주장에 근거가 되는 이치를 이해하기 위해 상상력을 동원하고 그것을 존중하려 가능한 합의점을 찾는 자세(p.74)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하루의 시작을 뉴스 기사와 함께 한다. 사실 기사 자체보다는 댓글들에 관심이 많다. 다른 사람들은 이런 사안에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댓글들이 민의를 대표한다거나 대다수의 사람의 뜻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그 중에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댓글들을 찾아보는 편이다. 하지만 쉽지 않다. 거대한 쓰레기장에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댓글은 찾기 힘들다. 대부분이 비난과 비방, 모욕과 조롱이 대다수다. 자극적인 글일수록 공감이 높다. ‘정의를 밀어붙이는 사람은 많지만, ‘정의를 논의 하는 사람은 드물다. 정치나 사회면만 그런게 아니다. 스포츠, 연예도 마찬가지다. 저마다 정의를 성토한다. 일정부분 그런 정의에 공감하지만, 그 정의가 무섭다. <정의를 밀어붙이는 사람>은 우리에게 물음을 던진다. “'이것이 과연 정의감만으로 하는 언행일까?', '잘못을 지적할 만한 상대를 찾아 공격하면서 분풀이를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사례가 적지 않다. (p.28)”

  굳이 사례를 들 필요가 없다. 인터넷에 접속하여 정치 또는 스포츠 기사 하나만 클릭해 보면 된다. 저마다의 입장에서 의견을 표현한다. 밑도 끝도 없다. 그들은 왜 그런 댓글을 썼을까. 우선 개인적인 이유가 있겠다. 저자는 정의를 밀어붙이는 사람은 인지 복잡성이 낮다.(p.123)”고 말한다. 입장이 다르고, 입장에 다라 상황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기준이 다르고, 그 판단이 옳다고 설명하기 위해 내세우는 이치가 (p.71)” 다른데, 그것을 고려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상대에 대한 이해, 공감의 부재가 의사소통 저해한다. 여기에 익명성에 따른 공격성이 더해지면, 지옥도가 펼쳐진다. 상대에 대한 이해가 필요 없다. 알고 싶지도 않다. 알아야할 이유가 없다. 모니터 너머에 존재하는 사람은 살아서 감정을 느끼고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분풀이의 대상, 공격의 대상일 뿐. 이런 상황에서 기사와의 소통, 댓글간의 소통은 불가능하다. 진지한 논의보다는 감정의 배설, 만 댓글에 대한 만 댓글의 투쟁이 벌어진다. 이런 지옥도에서 건전한 논의는 불가능하다. 진중권 교수가 한 말 그대로다. “말을 해도 알아듣지 못하니 이길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 모든 일이 개인적인 문제란 말인가. 꼭 그렇지도 않다. 불만과 분노를 자아내는 사회도 한 몫 한다. 알권리라는 명목 하에 무분별한 이야기가 쏟아진다. 지금은 많은 뉴스가 시청자의 감정을 자극하고 있다. 감정이나 어떤 극단적인 반응을 부채질하는 요즘의 보도 방식은 시청자로 하여금 매사를 냉정하게 판단하는 습관을 앗아가고, 무턱대고 감정적으로 반응하게끔 유도한다. (p.105)” 안 그래도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 생활, 생기 없는 자신(p.212)”에 짜증이 나는데, 뉴스는 불난 집에 부채질한다. 술 권하는 사회다. 감정노동과 세계화 등등 욕구불만과 분노는 점점 쌓이지만, 이를 해소할 방법은 없다. 결국 잘못이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이나 조직을 비난하면서 푼다. (p.212)” “어떤 윤리관으로 움직인다기보다 그야말로 비난하는 일에 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p.229)” 이런 현상은 막을 수 없는 걸까. 알아듣지 못하니 포기해야하는 걸까. 정의로운 사람이었지만, 현실에서는 정의감을 좇아 행동하는 것이 어려우므로 이 때문에 쌓인 울분을 안전한 형태로 해소(p.324)”하려다 보니 그렇게 점점 위험한 사람이 되어가는(p.325)” 현실을 막을 수 없을까. 저자는 거기까지 답하지 않는다. 다만, 그런 현상이 일어난 이유들에 대해 다양한 원인을 나름대로 분석하고 제시 할 뿐이다.

  사실 이런 책이 없어도 원인은 다들 알고 있다. 어쩌면 방법도 정해져 있다. 자신의 이치만을 주장하지 말고, 상대의 주장에 근거가 되는 이치를 이해하기 위해 상상력을 동원하고 그것을 존중하려 가능한 합의점을 찾는 자세(p.74)”를 가지는 것, 이런 자세, 합의와 믿음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 실천만 남았다. 오늘 역시 지옥도로 아침을 연다.

-----------------------------------------------------------------------------

'이것이 과연 정의감만으로 하는 언행일까?', '잘못을 지적할 만한 상대를 찾아 공격하면서 분풀이를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사례가 적지 않다. p.28

이렇게 보면 자유경쟁이 옳은지, 경쟁을 규제하거나 배제하는 것이 옳은지와 같은 문제에는 정답이 없다. 단지 선택의 문제만이 있을 뿐이다. p.60

입장이 다르면 매사를 보는 구도가 달라진다. 그리고 내세우는 이치도 달라진다. 어떤 이치가 옳은지 판가름하는 일은 결국 입장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므로 내(p.63)가 내세우는 이치가 상대에게 통하지 않아서 곤란할 때, 상대의 이치를 받아들이기 힘들 때, 그래서 논의가 잘 이루어지지 않을 때는 서로의 입장 차이를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입장 차이를 무시하면 아무리 논의해도 서로 자신이 절대적으로 옳고 상대가 잘못되었다고 믿어서 상대를 공격하기만 한다. p.64

입장이 다르고, 입장에 다라 상황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기준이 다르고, 그 판단이 옳다고 설명하기 위해 내세우는 이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p.71

"정의는 힘을 가진다."라는 말은 이상적이다. 하지만 현실은 유감스럽게도 힘이 정의가 된다. 그래서 '힘이 정의가 된다.'는 사고방식에 편승해 무력으로 타국을 지배하려는 국가가 나오거나, 자본을 휘둘러 국경의 벽을 넘고 거침없이 착취하려는 글로벌 기업과 그들을 후원하는 국가가 나타는 것이다. (p.73) ... 힘이 정의가 되는 상황에서는 강압적인 승부를 규제할 수가 없다. 강자의 논리가 옳기 때문이다. 그때 필요한 것은 상대의 입장에 공감하며 서로 이해하고 다가가는 일이다. 매사를 자기주장대로만 밀어붙이려고 하면 누구의 주장이 옳은지 다투게 되고, 결국 힘센 자의 전면적인 승리로 끝나고 만다. 어떤 이치가 옳은지 다투기만 해서는 분쟁이 해결되지 않는다. 따라서 자신의 이치만을 주장하지 말고, 상대의 주장에 근거가 되는 이치를 이해하기 위해 상상력을 동원하고 그것을 존중하려 가능한 합의점을 찾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p.74

온라인에서 어떤 글을 보고 정의를 지키고자 행동할 때는 자신이 하려는 행동이 실은 부당한 행위에 힘을 실어 주는 일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p.79

익명성이 일방적으로 정의를 주장하게 만든다. p.97

객관적으로 판단할 정보가 적은 상태에서 누군가의 시선에 따라 감정적으로 자극받으면 사건을 극단적으로 바라보게 될 위험이 있다. p.104

지금은 많은 뉴스가 시청자의 감정을 자극하고 있다. 감정이나 어떤 극단적인 반응을 부채질하는 요즘의 보도 방식은 시청자로 하여금 매사를 냉정하게 판단하는 습관을 앗아가고, 무턱대고 감정적으로 반응하게끔 유도한다. p.105

자기만의 정의를 밀어붙이는 사람은 자기 관점만을 고수할 뿐 타인의 관점을 헤아리지 못한다. p.112

도쿄대 명예교수를 지낸 정신과 의사 도이 다케오도 자신의 관점에 집(p.113)착할 수록 공감력이 부족해진다고 했다. p.114

정의를 밀어붙이는 사람은 인지 복잡성이 낮다. 인지 복잡성이란 매사를 다각적인 관점에서 보는 것을 말한다. p.123

설득을 다루는 심리학에서도 인지 복잡성이 높은 사람을 설득하는 경우와 낮은 사람을 설득하는 경우, 적용하는 설득법이 다르고 설명한다. 가령 인지 복잡성이 높은 사람에게는 양면적 설득법이 효과적이며, 인지 복잡성이 낮은 사람에게는 일면적 설득법이 효과적이라고 한다. 쉽게 설명하면 이점만이 아니라 원가가 좀 높다거나 습득하는 데에 시간이 걸린다는 단점도 함께 설명하는 것이 양면적 설득법이다. 반면에 어떤 상품을 팔거나 제안을 할 때 그 이점만을 설명하는 것이 일면적 설득법이다. p.126

분노에 사로잡혀 과도하게 화를 내거나 비난하는 사람들은 사회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어쩌면 그 내면에 어떤 갈등이나 불만이 있어서가 아닐까? p.147

자기주장만 밀어붙이며 공격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이렇게 누군가에게 의지하려는 마음을 거부당해 욕구불만이 생겨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p.169

자신을 과대평가하다 보면 누구나 자신이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한다는 불만을 품게 된다. p.185

앨리 러셀 혹실드 <감정노동> "이 노동(감정노동)"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겉모습을 유지하고 감정을 북돋거나 억누르면서 상대의 기분을 좋게 만든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친숙하고 안전한 장소에서 대접받는다는 느낌을 주어야 한다. 이런 노동은 정신과 기분을 잘 조절해야 하고, 나아가 각자의 개성을 구분하는 본질까지 내어주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p.187

일을 하다 보면 스트레스가 쌓여 이렇게까지 한계에 내몰리기도 한다. 그리고 이렇게 쌓인 스트레스가 자기주장만 앞세우고 타인을 비난하게 만드는 것일 수 있다. p.192

왜곡된 정의를 내세워 사람이나 조직을 집요하게 공격하는 소위 악플러들 중에는 이렇게 버릇처럼 타인을 비난하여 자기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이 상당히 포함되어 있는게 아닐까. p.201

자기합리화, 즉 자신에게 어떤 정당성을 부여해 그러한 이기적인 행위를 인정받고 싶어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사람들이(누군가를 비난하는 행위에 대해) 어떤 정당성을 부여받고 싶을 때, 절호의 기회가 되어주는 것이 바로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타인이다. 그런 사람을 비난하는 일은 자기 정당성을 확보하기에 좋기 때문이다. p.203

정리하자면, 사람들이 자기주장을 앞세우거나 잘못한 사람을 비난하는 까닭은 평소에 쌓인 욕구불만을 해소하기 위함이다. 일종의 분풀이인 셈이다.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 생활, 생기 없는 자신에 대한 짜증을 잘못이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이나 조직을 비난하면서 푼다. p.212

"샤덴프로이데" 타인의 불행을 더 달콤하게 느끼는 심리 p.222

어떤 윤리관으로 움직인다기보다 그야말로 비난하는 일에 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p.229

현재 진행 중인 세계화는 관계를 중시하는 일본의 윤리관을 무너뜨리기 시작했고, 사회에는 돈이 많은 사람이 이긴다는 분위기가 퍼져 있다. 그리고 이것이 많은 사람의 불만과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p.243

자신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므로 밀어붙인다는 생각 자체가 없다. p.258

타인의 입장과 기분은 알고 싶지 않아. p.259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사람은 상대방과 소통하는 능력이 없다. p.263

정의로운 사람이었지만, 현실에서는 정의감을 좇아 행동하는 것이 어려우므로 이 때문에 쌓인 울분을 안전한 형태로 해소하려고(p.324) 한다. 그렇게 점점 위험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다. p.325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정현채] 인빅터스 | Memento 2019-05-07 20:13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11295714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eBook]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

정현채 저
비아북 | 2018년 08월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나는 죽음이 두렵다. 너무나도 무섭다.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공포, 겪어보지 못한 일에 대한 두려움. 도무지 익숙해질 수 없는 무서움이 바로 죽음이다. 가급적 죽음에 대해 언급하거나 경험하고 싶지 않다. 모른 채 살고 싶다. 그럴 수가 없다. 문제다. 그래서 무엇인가에 몰두한다. 혼자서 멍하니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다. 어느 순간 불현듯 죽음에 대한 공포가 찾아온다. 아직도 멀다면 멀겠지만, 그 순간에 대한 소름이 느껴진다. 가쁜 숨, 무기력한 손짓, 떨리는 목소리, 극심한 고통, 지독한 외로움. 나는 어떤 죽음을 맞이할까. 죽음에 연연하지 않는 대단한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삶에 충실히 살았고, 이만큼이면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들은 죽음을 어떻게 느낄까. 나도 그런 죽음이 가능할까. “다 이루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p.398” 것은 못 하더라도, 내 주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갈 수 있을까.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는 이런 나에게 두려워 말라고 말한다. 임사체험이나 영적인 이야기들은 실로 믿기 어렵다. 저자와 같이 ‘호의적인 회의론자의 입장을 취하더라도 쉽게 믿어지지 않는다. 나머지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100% 공감한다. 너무나도 우리는 거부하고 있다. 반드시 맞이할 일에 대해서, 불신하고 두려워 한다. 그런다고 오지 않을 죽음이 아니다.

  나를 돌아본다. 늘 그렇듯 보지 않고 믿지 못하는 불쌍한 사람이 나다. 믿음이 부족한 사람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지극히 오만하다. 욕심이다. 초조함이다. 내가 무엇을 이루겠다고 그렇게 애쓰는가. 살아감에도 태도가 중요하듯, 죽음에도 태도가 중요하다. 나는 삶을 어떻게 살고 있는가. 어떻게 죽음을 준비하는가. “‘당하는 죽음이 아닌 맞이하는 죽음’ p.615”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죽음은 정말 두려운, 무서운 일인가. 저자의 대답에 평안을 얻진 못했지만, 자그마한 실마리를 얻는다인빅터스. (죽음에 대해 이야기해야만 한다. 그리고 두려워하지 말고, 따스히 안아야겠지.)

-----------------------------------------------------------------------------

보람있게 보낸 하루가 편안한 잠을 가져다주듯 값지게 쓴 인생은 편안한 죽음을 가져다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p.11

죽음과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누가 주인공이 되어야 할까 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p.84

이제까지 전혀 몰랐던 다른 차원을 이해하려면 알려고 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p.168

우리는 영적인 체험을 하는 인간이 아니라, 인간 체험을 하고 있는 영적인 존재이다. p.201

호의적인 회의론자’ ... 새로운 사실에 대해 열려 있는 마음을 갖되 무비판적으로 아무것이나 덥석 믿지는 않고, 끊임없이 질문하는 자세를 견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p.211

진정한 성공이란, 작은(p.397) 정원을 가꾸든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랠프 월도 에머슨 p.398

죽어 가는 사람들에게 대해 어떤 관심과 예우를 보이느냐는 그 사회의 성숙도를 알려주는 척도다. p.401

 

어둠이 나를 뒤덮고 있는 밤에도,

온 세상이 탄광 속처럼 캄캄한 이 밤에도,

나는 신들에게 감사합니다.

내게 굴복하지 않는 영혼을 주셨으므로,

 

잔인한 삶의 질곡 속에 갇혔을 때도

나는 움츠러들거나 소리 내어 울지 않았습니다.

운명이 가혹하게 내 머리를 피투성이로 만들어도

나는 굽히지 않습니다.

 

이 분노와 눈물의 땅 너머에는

어둠의 공포만이 어른거립니다.

하지만 그 세월이 아무리 나를 위협해도

나는 두려움에 떨지 않습니다.

 

문이 아무리 굳게 닫혀 있어도,

형벌이 아무리 잔인해도

나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나는 내 운명의 주인이니까.

나는 내 영혼의 선장이니까.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 <인빅터스(라틴어로 천하무적, 정복불능)>


당하는 죽음이 아닌 맞이하는 죽음을 준비해 나가시기를 p.615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김상욱의 과학공부-김상욱] 과학은 영원히 미래기술 | Memento 2019-05-07 13:39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11294890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eBook]김상욱의 과학공부

김상욱 저
동아시아 | 2016년 07월

        구매하기

너무 지나쳐 왔다. 작년에 이루지 못한 “미래 기술”을 계속해서 연구해봐야겠다.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내가 아는 과학적 지식의 최고봉은 그림과 같다. 여기서 말하는 앎은 이름과 대강의 내용을 아는 척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것도 문명이라는 게임에서만... 과학은 나에게 낯설기도 하지만 자의 반, 타의 반 미지의 영역이다. 게다가 양자역학이라니? 저기 그림에서 미래기술 쯤 포함하는 기술인가. 파인먼이 양자역학을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안전하게 말할 수 있다.”고 했지만, 그래도 양자역학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영화에서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어벤져스에서도 나온다. 물론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저게 맞는 가정인지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한 마디로 알게뭐야!. 과학을 몰라도, 양자역학이 뭔지 몰라도 영화를 보는데 부족함이 없고(어차피 전투 씬에 빠져있다.), 게임을 하는데도 부족함이 없다. (클릭만 하면되니까)

  과학이라는 미지의 영역에 도전하고자 했던 2018년의 목표에 따라 이 책 저 책 구매를 했었다. 그렇게 시간은 훌쩍 지났고, 이제야 <김상욱의 과학공부>를 펼쳐본다. 과학을 매개로 세상을 이해하는 책이다. 과학자는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현상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배울 수 있다. “모든 것을 의심하고, 객관적이고 물질적인 증거에만 의존하여 결론을 내리는 것p.195”은 좀처럼 익숙하지 않다. 게다가 과학적 내용은 역시나 먼 나라 이야기다. 최대한 쉽게 설명했지만, 나에게 쉽지 않다. 과학을 배워가며 따라가는 길은 문명처럼 클릭 한 번으로차례에 따라 성취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과학을 배워야 한다. 과학자가 아닌 이상, 내가 과학자 수준의 공식과 이론과 개념을 알 필요는 없다.(물론 알 수도 없다.) 과학적 사고를 익혀서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 (물론 그 충분까지 엄청난 실력이 필요하겠지만) “인간이 생각하는 중요한 가치는 그 자체로 상상 p.313”이라고 말한다. 영화에 나오는 과학도 이런 상상의 힘을 바탕으로 할테다. 결국 인문학도 과학도 상상을 기르는 한 영역이고,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보는 방법이다. 독서도 편식을 하면 안되겠다 다짐한다.

  너무 지나쳐 왔다. 작년에 이루지 못한 미래 기술을 계속해서 연구해봐야겠다.

-----------------------------------------------------------------------------

교양이란 타인과 소통하고 스스로를 성찰하여 그 결과를 행동으로 이끌어 내는 능력이라고 한다. 과학이 이런 능력을 배양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일까? p.15

잉여는 말 그대로 남는다’, ‘필요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잉여인 것과 잉여가 아닌 것을 나누려면 그 기준이 옳다는 전제 조건이 있어야 한다. 기준이 영원불멸한 것이 아니라면 오늘의 잉여가 내일의 필수가 될 수도 있고, 오늘의 필수가 내일의 잉여가 될 수도 있다. 사실 잉여를 판단하는 가치라는 것도 대개(p.29) 근거 없는 경우가 많다. ... 현대사회가 가진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데 잉여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현대의 근본 문제란 점점 더 많은 일을 기계가 대신하고 그만큼 사람들의 일자리는 줄어드는 것이다. 이 때문에 경쟁은 더욱 치열해져가고 경제는 더 나빠진다. p.30

아주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면 우리는 놀기 위해 일한다. 일이 목적이 아니라 잉여가 목적이었다는 말이다. 잉여의 중요성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기계로 절약된 시간을 우리의 행복으로 전환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p.31) ... 자연에서 잉여는 그 자체로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복지사회란 잉여를 누리는 사회이다. p.32

<그래비티>가 주는 평범하지만 심오한 교훈이다. 중력이 버겁다고 느껴지면 뛰어내리면 된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몸을 허공에 내맡기면 자유로워진다. p.119

사람들은 대개 머리가 아주 좋아야 위대한 과학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위대한 과학자는 문지기를 무시할 줄 아는 사람이다. ... 그래서 뛰어난 과학자들은 문지기의 말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문 안으로 들어가서 확인한 결과만을 믿는다. p.162

일이 되게 만드는 것도 인간이고, 안 되게 만드는 것도 인간이다. 우주는 자연법칙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p.165

정치는 옳고 그름의 문제를 다루기보다, 이익이 상충할 때 이를 조정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양보가 필요(p.183)하다는 말이다. 양보는 신뢰에서 온다. 결국 이 사회의 근본 문제는 정부에 대한, 대학에 대한, 회사에 대한, 거래처에 대한, 사회에 대한, 인간에 대한 신뢰가 없는 것이 아닐까? p.184

논문에 나온 데이터의 조작 여부를 걱정하는 사회에서 과학은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분명 과학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지식을 제공한다. 하지만 신뢰가 없다면 지식은 쌓이지 못하고 바람에 날아가버린다. 세월호 참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도 바람에 날아가버릴지 모른다. p.184

과학적 사고의 핵심은 간단하다. 모든 것을 의심하고, 객관적이고 물질적인 증거에만 의존하여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많은 과학자들이 종종 권위에 도전하고 불의에 저항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p.195

사과(apple, apology)는 아무 조건이 없을 때 땅과 만날 수 있다. 달과 같이 수평 방향의 속도가 있으면 땅과 영원히 평행선을 그리게 된다. 자신은 낙하한다고 주장하겠지만. p.205

부재는 그 자체로 실체이다. 어둠이란 것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빛이 부재한 것이다. 불의는 말 그대로 단지 의가 없는 것이다. 잘못된 일을 보고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의가 없는 상태, 즉 불의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렇게 생겨난 의의 부재는 실체가 되어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p.210

잘못된 사회에서 비판과 행동의 부재는 그 자체로 독재와 억압이라는 실체가 된다. 때로 침묵은 금이 아니라 독이다. p.211

힘은 관계에서 오는 것이지 어느 한쪽이 다른 쪽에 일방적으로 발휘하는 것이 아니다. p.228

지식과 무작위성이 서로 관련이 있다는 말이다. p.283

자연의 기술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나는 자연의 법칙을 따라 계가 진행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결과를 얻기 위해 계를 관측하는 것이다. ... 양자역학은 계의 상태를 기술하는 이론이다. 상태는 관측 결과를 확률적으로 예측(p.296)할 수 있게 해준다. 쉽게 말하면 양자역학으로 동전 문제를 열심히 풀어봐야 앞면이 나올 확률이 얼마, 뒷면이 나올 확률이 얼마 하는 식의 답밖에 얻을 수 없다는 말이다. p.297

하나의 현상을 설명하는 두 개의 대립되는 이론이 있을 때, 이들이 양립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하나의 현상을 두 가지 방식으로 본다면 두 방식은 공존할 수 있다. p.308

신학과 인문학이 알아낸 대부분의 가치는 엄밀한 의미에서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산물이다. 그렇지 않다면 일찌감치 과학적 연구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과학의 대상이 아니라고 해서 쓸모가 없을까? 우리는 이런 상상이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다. 누구도 사랑을 수학적 공식으로 정의할 수 없지만, 우리는 사랑 없이 살 수 없다. 존재하지 않는 이런 상상을 믿는 우리의 능력이야말로 인공지능이 모방하기 힘든 인간만의 특징일지 모른다. 우리가 신을 믿는 것도 무지의 결과가 아니라, 그런 능력의 필연적 부산물일 수 있다. p.311

문제는 인공지능 자체가 아니라, 거기서 얻은 이익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이다. 인공지능이 우리의 일자리를 대체할까 걱정하기보다 인공지능을 소유한 사람들이 어떠헥 행동할까를 걱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p.312

인간이 생각하는 중요한 가치는 그 자체로 상상이기에 우리의 상상으로 지켜내야 한다. 인간의 행복이라는 비과학적 대상에 대한 인문학적 고민이 없다면 인간은 불행해질 거다. 과학뿐 아니라 인문학적 상상력이 필요한 시대이다. p.313

표현이 없다고 실재가 아닌 것은 아니다. p.314

깨닫거나 안다는 것은 새로운 지식이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큰 모순 없이 연결고리가 생겼을 때 일어난다고 볼 수 있다. 이때 우리는 그 사실을 이해했다고 말한다. p.318

우리가 새로운 지식을 배운다는 것은 새 지식을 기존의 지식과 연결시키는 것이다. 양자역학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이 새로운 학문이 기존 물리학의 모든 기본 가정들을 송두리째 거부한다는 것이다. 결국 기존 지식과의 단절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p.321

의미는 처음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라 나중에 부여하는 것이다. 이해를 초월한 현대미술에서는 의미를 찾는 것조차 당신의 몫이다. p.327

정보에 대해 과학적으로 이야기하려면 우선 정보를 정량적으로 표현할 척도가 필요하다. p.343

엔트로피는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와 관련된다. 따라서 복잡성의 척도이기도 하다. 경우의 수가 많다는 것은 복잡하다는 얘기다. p.345

과학적 진실은 종종 경험을 뛰어넘을 때, 상식을 의심할 때 드러나기 때문이다. 일상의 경험을 무슨 수로 쉽게 뛰어넘나? 장벽을 뛰어넘게 하는 힘이 바로 상상력이다. p.444

결과를 얻어가는 과학적 과정은 그때그때 생존에 유리한 것이 선택되는 생물의 진화와 비슷하다. 나중 단(p.448)계는 분명 이전 단계에 기반을 두지만, 이전 단계에서 바로 연역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절대적 목표의 설정이 아니라 목표에 대한 다양성의 추구가 과학을 하는 올바른 방법일 수 있다. 이 경우 상상력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p.449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 것은 세상 그 자체가 아니다. 세상, 즉 자연은 그저 법칙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모든 불행은 상상으로 만들어진, 신화와 영혼의 동요를 일으키는 공포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공포는 권력을 가진 자들이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p.458

철학한다는 것은 신화와 동요를 걷어내는 것, 자연(p.458) 그대로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다. 자연을 이해하는 것을 과학이라 한다. 이렇게 과학은 철학이 된다. p.459

과학이 어려운 것은 그것이 낯설어 보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상상을 만들고 그 상상이 마치 실재하는 양 믿는 동물이다. 역사 이래 인간은 신화 속에 살아왔고 또 살고 있으며, 이는 자연을 제대로 보는 것을 방해한다. 따라서 일부러 낯설게 보는 것이야말로 과학의 첫걸음이다. p.459

과학자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상태라는 말이 있다. p.463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진행중인 이벤트
트랙백이 달린 글
내용이 없습니다.
스크랩이 많은 글
내용이 없습니다.
많이 본 글
오늘 67 | 전체 45708
2005-12-30 개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