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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떠나며-이연식]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 | Memento 2019-06-23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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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조선을 떠나며

이연식 저
역사비평사 | 2016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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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다. 아의 목소리와 비아의 목소리 모두가 역사를 만든다. 이 책은 비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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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재 신채호는 역사는 아() 비아(非我)의 투쟁이라 말했다. 우리의 근대사는 필연적으로 아에 치중되었다. 일제의 식민통치에 저항해서 한국의 정신이 살아 있음을 알려야 했다. 독립 후에는 식민지의 피해를 극복해야 했다. 필연적으로 우리의 소리에 집중해야만 했다. 하지만 스스로에게만 집중할수록 우리의 시야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신채호의 말을 떠올린다면, 나만으로는 역사가 성립하지 않는다. 필연적으로 나 이외의 존재들의 소리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내가 보지 못하는 시간, 우리가 놓친 공간을 채울 수 있다. 그렇기에 <조선을 떠나며>는 식민지 말기의 비아에 대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역사의 효용 중 하나가 돌아보는 일이다.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노력이다. 결국 비아를 본다는 일은 비교를 통해 나를 더 풍부하게 알 수 있다.

  “패전은 반세기 동안 아시아를 호령한 일본제국에 총체적 균열을 가져왔다.(p.22)” 이런 상황에서 원초적 본능만 남은 조선의 일본인들에게” “식민 지배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조선인 사회의 목소리는 제대로 들릴 리 없었다. (p.23)” 그전까지는 인식하지도 못했던 조선인들의 존재가 패전 후에야 비로소 조선인의 존재를 강하게 인식하기 시작했고, 이내 그것이 생경한 공포로 다가왔(p.31)”. 일본인과 조선인의 가해와 피해’, ‘피해에 대한 보복이라는 악순환 고리는 패전 후 일본인의 귀환과 조선인의 귀환을 통해 이어지고 있었다. (p.244)” 여기에 미 군정의 적절하지 못한 대응 역시 한 몫을 했다. 미 군정은 관심이 없었고, 우리는 약했으며, 일본은 제 살기 바빴다. 피해는 결국 일반 사람들의 몫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적반하장의 태도를 살펴 볼 수 있다. 본인들도 전쟁의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것들 말이다. 분명 일본인들도 피해를 입었다. 책에서 말하는 대로 귀환민들을 광의의 전쟁 피해자(p.271)” 규정하는 것.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의 피해를 통해 전쟁 피해자로 자리 잡음으로 전후 배상을 최소화하고, 자신들의 내부를 단속하며, 식민지 피해국들의 입을 다물게 하려는 것이 전략이다. 식민 지배에 대한 반성은 근대 이래의 한일관계와 조선에서 보낸 자신의 삶 전체를 상대화할 수 있을 때 획득할 수 있는 관념이다. (p.23)” 연이어 터진 6.25 전쟁은 우리에게 반성을 촉구할 기회마저 날려 버렸다.

  조금 지루하고 딱딱한 내용일 수 있다. 하나 확실한 것은 전쟁으로 인해 한일 양 민족이 모두 피해를 입었, 피해의 정도의 차이는 논외로 하더라도 피해의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에 대해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다.(p.271)” “가해와 피해의 기억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먼저 이에 대한 해답을 양 국민이 납득 하고 공유(p.272)” 해야만 이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그래서 비아의 목소리를, 이 책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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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전은 반세기 동안 아시아를 호령한 일본제국에 총체적 균열을 가져왔다. 그것은 단순히 제국이 지배하던 영역의 공간적 분리나 지배 네트워크의 붕괴로 끝나지 않았다. 좀 더 중요한 문제로 부각된 것은 그동안 애써 감춰왔거나 제국의(p.22) 논리로 강제 봉합되었던 일본인 사회 내부의 잠재된 불신과 갈등이 패전을 계기로 뚜렷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특히 비상시국을 맞아 사리사욕과 개인의 보신만을 추구하는 사회 지도층의 낯 뜨거운 행태는 결국 민심의 이반을 가져왔다. 또한 그것은 오랜 기간 해외의 일본인 사회를 하나로 묶어낸 제국의 이념과 가치관을 급속도로 무너뜨렸다. 지도력과 상호 신뢰의 붕괴는 사회 구성원들로 하여금 위기감과 피해 의식을 고조시켰고, 급기야 극단적인 이기주의로 치닫게 만들어 곳곳에서 일본인 공동체의 해체를 촉진했다. 이제 나만 살겠다는 원초적 본능만 남은 조선의 일본인들에게 천황의 백성으로서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정제되고 균질화된 제국의 일본인 상을 기대하기는 어려워졌다. 상황이 이러하니 일본인을 상대로 식민 지배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조선인 사회의 목소리는 제대로 들릴 리 없었다. p.23

식민 지배에 대한 반성은 근대 이래의 한일관계와 조선에서 보낸 자신의 삶 전체를 상대화할 수 있을 때 획득할 수 있는 관념이다. p.23

언제부터인가 어른들은 조선인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야기 끝에는 이웃 일본인 집에 불이 났다거나, 동네 부잣집과 순사 가족이 차례로 화를 입었다는 심각한 대화가 늘 따라붙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른들이 부쩍 조선인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이는 조선의 일본인들이 패전 후에야 비로소 조선인의 존재를 강하게 인식하기 시작했고, 이내 그것이 생경한 공포로 다가왔음을 말해준다. p.31

남북한을 막론하고 일본인의 본토 귀환과 정착 과정은 강고한 지배체제 속에 숨어 있던 구 제국의 균열이 도처에서 드러나고 확대 심화되는 일련의 과정이었다. p.135

식민지 시기부터 패전과 해방에 걸쳐 복잡하게 얽힌 일본인과 조선인의 가해와 피해’, ‘피해에 대한 보복이라는 악순환 고리는 양 지역 간의 인구 이동을 통해 이어지고 있었다. p.244

(이소가야 스에지) “북한의 역사적 비극(한국전쟁)을 지켜보면서 대다수의 일본인은 자신들이 입은 고난을 군국주의 일본의 무모한 전쟁 행위에 따른 결과로 간주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전에 조선 민족에 대한 일본의 반세기에 걸친 박해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일본인은 얼마나 반성했을까. 그저 자신들이 조우했던 고난에만 매몰되거나, (p.264)은 조선 민족을 가해자로 생각하고 이들을 미워하며 조선을 떠나지 않았는지 ...” 그는 일본이 제국을 유지 확대하고자 또 다른 전쟁을 준비하고 도발하는 과정에서 조선인들이 일상적으로 감내해야 했던 다양한 피해에 눈을 감아버린 것, 그리고 이를 간과한 전후 일본 사회의 평화 이데올로기가 지닌 역사 인식의 오류와 허상을 날카롭게 짚어냈다. p.265

전후 일본 사회가 해외에서 돌아온 일본인을 광의의 전쟁 피해자로 자리매김 한 것은 이들의 궁상과 피해를 연합국에 호소해 전후 배상을 최소화하고, 은급법의 부활 등 차별적 원호행정에서 비롯된 사회집단 사이의 분열을 봉합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들이 내세운 논리는 아시아, 태평양전쟁 이전 그들이 자행한 식민 지배로 말미암은 구 식민지 사람들의 피해를 어떤 구도로 설명할 것인지, 그리고 전쟁으로 인해 한일 양 민족이 모두 피해를 입었다면 가해의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에 대해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다. 궁극적으로 한일 양국(p.271)이 가해와 피해의 기억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먼저 이에 대한 해답을 양 국민이 납득하고 공유해야만 할 것이다.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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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우석훈] 먹고사느라고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해왔다. | Memento 2019-06-1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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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

우석훈 저
한겨레출판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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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간적으로 사람들에게 너무 막 대해왔다. 먹고사느라고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해왔다. 모멸감을 참으면서 돈을 버는 시대가 너무 길었다. (p.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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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나요”, “무능보다 부패가 낫다


  생명체는 살기 위해 애쓴다. 가장 중요한 일이 생존이다. 일단 살아야 뭐라도 할 수 있다.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하지 않는가. 생존을 위한 분투를 욕하기 어렵다. 하지만, 사람 사는 일에 생존만이 전부는 아니다. 빵만으로 살 수 없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고 민주주의의 최강국(?) 미국에서도 그렇다하니, 한국만 빵을 따지는게 아닌가보다. 그래도 혼란스럽다. 배부른 돼지가 되느냐, 배곯는 돼지가 되느냐는 너무나도 쉽다. 배부른 돼지가 되느냐, 배곯는 사람이 되느냐는 고민스럽다. 특히 극한의 배고픔을 겪어본 사람들에게는 밥은 생존이다. 전전세대의 식민지 고난과 전쟁세대의 비극적 상처는 우리 사회에 뚜렷하게 나와 내 가족의 생존을 각인 시켰다. 국가가 우리를 지켜주지 못했기에, 스스로 살아남아야 했다.


  2018년 한국의 부패인식지수 전체 180개 국가 중에서 45위로 전년대비 6단계에 올랐다. 하지만, 아직도 경제 규모에 비하면 초라한 수준이다. 2022년에 세계 20위 권의 청렴 선진국에 진입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지만1) 회의적이다.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나요”, “무능보다 부패가 낫다는 인식은 아직도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게다가 스스로 생존해야 한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공정함은 거치적 거리는 선언문이다. 경쟁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경쟁은 공정하지 못하다. 그럼에도 공정하지 못한 경쟁은 왜곡된 자유시장주의에 비호아래 우리나라의 제1의 가치가 되었다. 공정하지 못한 경쟁은 각자도생의 지옥을 만들었다. 생존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 각인되어 있다.


  공정하지 못한 경쟁 속에서 생존을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다. 결과를 뽑아내고, 승리를 쟁취해야 한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죽고 살고의 문제다. 비정상적인 전시 상황이다. 이때 민주주의는 비효율적이다. 단일한 목표를 향해 의심 없이 달려가야 한다. 잠시 멈춰서는 순간 죽음이다. 아무리 강력한 독재자가 모든 사회를 군대식으로 개조했다하더라도, 자발적인 동의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 우리에게 각인된 생존의 문제는 예전에도 마찬가지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아직도 한국은 전쟁 중이다.

 

- 87년 이후


  영화 <1987>에서 보듯이 수많은 이들의 피와 땀으로 호헌을 철폐하고, 직선제 개헌을 얻어냈다. 절차적 민주주의를 얻어냈지만, 거기까지였다. 군부독재에 대항하기 위해 군대식으로 싸워야 했던 운동권이다. 그런 그들이 많은 분야에서 민주적 제도를 일구었지만, 머릿속에 각인된 생존은 여전히 남았다. 제도는 바꿨지만, 생존은 바꾸지 못했다. 사회는 아직도 군대식으로 돌아간다. 여기에 생활 속 민주주의는 요원한 일이다. 거기에 IMF는 생존의 경고등을 더 강하게 울리게 했다. 하루걸러 회사가 무너지고, 내 직장이 사라지는 시절. 저자는 경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적기였다 말한다. 하지만 저자의 지적 대로 무지했다. 위기의 상황에서 생활 속 민주주의? 가능할리 없었다. 그렇게 민주주의를 한 단계 성숙시킬 기회를 놓쳤고, 지금에 이르렀다.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는 우리의 새로운 과제를 직장 민주주의라 말한다. 지난날 절차적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보다 수월하게 이룰 수 있다. 직장 민주주의는 여직원들이 억지로 웃지 않는 것(p.37)”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조직 내부의 경쟁게임을 협력게임으로 전환시키는(p.108)” 장치를 도입하는 것이다. 이 일은 정부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가능하다. 직장 민주주의 인증제가 그 예다. 민주적인 직장은 폐쇄적이고 내부 경쟁적인 직장보다 효율이 높다. 기업은 내부의 경쟁을 완화하여 협업을 하기 위한 조직으로, 경쟁이 너무 심해지면 조직의 근본이 무너진다. (p.85)” 그렇기에 직장 내 민주주의는 회사의 생산성 향상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더불어 직장내의 다양한 문제와 소리에 대처할 조직이 필요하다. 노조가 필요하다. 한국에서는 귀족노조라는 표현이 있다일상에서 노조를 경험해 보지 못했고, 경험해 보더라도 우리의 직장과 괴리된 어용노조들이 가득한 세상이다노조의 간부들 역시 개별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을 하고 파벌을 형성하니 노조를 곱게 볼 리 없다. 노조가 있어도 문제가 생기지만, 노조가 없는 경우 그 문제는 몇 배로 증폭된다. (p.293)” 어용일지라도 최소한의 견제장치가 생긴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다. 민주주의의 주요한 원리가 권력분립을 통한 견제가 아닌가. 회사가 사장 개인의 소유물일지라도, 직원은 사장의 소유물이 아니다. 독립적인 개인이자, 살아있는 사람이다. 개인의 판단이겠지만, 감정적인 노조에 대한 생각과 실재적인 노조의 생각은 달라야 한다고 믿는다. 없는 것 보다는 낫다고 말이다.

 

- 사람 사는 세상을 기대하며... 말의 힘. 이야기하자.


  대한민국은 헌법 제1조 제1항에 명시하듯, 민주주의 공화국이다. 제도적으로 민주주의 국가다. 하지만 우리 생활에서는? 우리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직장에서는? 갑질, 태움, 과로사, 자살, 죽음의 외주화, 비정규직 등등 수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미미하고, 그 사이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다. 국가가 경제 대국이면 뭣하나. 내가 지금 죽어가고 있는데. 효율과 경쟁, 생존의 문제 속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에 대해서 너무 쉽게 눈을 감는다. (p.40)“ 한 간호사는 이렇게 말한다.

 

직장이라는 공간이 원래 이렇게 비인간적인 곳이었나. 만약 직장이 이처럼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곳이고, 그런 상황들을 감내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곳이라면, 직장은 민주주의 시민 사회에서 없어지거나 계몽이 필요한 마지막 공간일 것이다. -‘행동하는 간호사회김소현 간호사의 메모 중 (p.281)”

 

우리는 인간적으로 사람들에게 너무 막 대해왔다. 먹고사느라고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해왔다. 모멸감을 참으면서 돈을 버는 시대가 너무 길었다. (p.382)” 그 끝이 언제인지 알 수 없다. 저자의 주장과 달리 민주주의가 밥을 먹여주지 못할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생존하는데 분명 필요하다. 우리가 민주주의 공화국에서 계속 살고자 한다면. 그래서 저자의 주장을 고민해 볼만 하다. 이런 말들이 불편하거나, 공감가지 않을 수 있다. 정확한 언어는 감각적이지 않고, 감각적인 언어는 순간 공감을 일으키지만 해법으로 우리를 인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p.253)” 그럼에도 계속해서 우리는 떠들어야 한다. 떠들고, 시끄럽고, 소란스러운게 민주주의다. 결국 무엇을 하느냐보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얘기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세상을 바꾼다. (p.7)”

 

1) 부패인식지수 45...2022년 청렴선진국 가능할까?, YTN, 2019.02.18.,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tvh&oid=052&aid=0001254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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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정책 혹은 정교한 정책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무엇을 하느냐보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얘기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좋은 정책을 디자인하는 것이 국정 운영의 전부가 아니다. 공개적으로, 더 많은 토론을 하는 것이 진짜로 중요하다. (p.6) 많은 사람이 토론하고, 어느 정도 정서적?감정적 합의를 이룬 정책들이 진짜로 강한 정책이 된다. 그런 것들이 세상을 바꾼다. p.7

민주주의는 공장 문 앞에서 멈추지 않는다. 이것이 노동자 참여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 필요한 사회경제적 시스템의 또 다른 다리이다. 민주주의는 위계나 조직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명령이 높은 곳에서 오는 군대 모델이 아니라, 위에서 또 아래에서 오는 힘이 합류하는 지점에서 조직 내의 결정이 이루어지는 것을 뜻한다. _도널드 럼볼, <캐나다에서의 노동자 참여?>, <<오늘날의 산업 민주주의>> 논문집(1979) p.32

내가 생각하는 한국의 직장 민주주의는 간단하다. 여직원들이 억지로 웃지 않는 것,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p.37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에 대해서 너무 쉽게 눈을 감는다. p.40

박정희 이후로 한국 경제와 기업의 관계는 통제와 지원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는 기업을 통제하고, 그 통제를 잘 수행한 기업들에게 아낌없(p.75)는 지원을 주었다. p.76

우리 국민에 1등 국민, 2등 국민은 없지만, 우리 직장에는 1등 사원과 2등 사원이 존재한다. p.78

회사 그리고 직장의 문제는 오랫동안 한국 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치외법권 같은 것으로 남았다. 마치 박정희가 허리 아래의 일은 넘어가라고 한 것이 남자 권력자들의 치외법권이 된 것처럼 말이다. p.81

기업의 존재 자체가 시장 실패의 대표 사례다. 사람들을 모아서 조직을 이루고, 그 안에서 경쟁을 잠시 정지시키기 때문이다. 애덤 스미스의 표현을 쓰면 분업이다. 직원들끼리 경쟁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협동해서 분업하기 위해서 기업을 만든 것이다. ... 서로 경쟁하는 경우도 있지만, 시장에서의 경쟁에 비하면 협력을 전제로 하는 제한적 경쟁이다. 그런데 이 경쟁이 너무 심해지면 조직의 근본이 무너진다. p.85

일한 만큼 월급 받는다, 이건 과학이 아니라 이념이다. 국가 차원에서 보면 노동생산성 변동과 임금총액 변동이 일치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일 자체가 복합적이게 되면서 누가 성과를 냈는지 정확히 측정하기란 불가능하다. 내부 경쟁을 강화하면서 전체적인 성과가 높아지기를 바라는 것, 사실 이념에 지나지 않고, 모순에 지나지 않는다. 기업이라는 조직이 생긴 이유가 내부에서 경쟁을 제한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p.88

직장 민주주의는 조직 내부의 경쟁게임을 협력게임으로 전환시키는 장치 중 하나다. 내부의 더 많은 소통, 더 많은 협력 그리고 쌍방향적인 관계, 이런 것들이 직장 민주주의를 통해서 기대할 수 있는 결과다. p.108

큰 권력은 무섭지만, 작은 권력은 끈적끈적하다. 피해갈 방법이 별로 없다. p.124

너무 야박한 얘기일지도 모르겠지만, 우리가 만들어낼 앞으로의 직장은 일하면서 같이 밥 먹을 일이 없는 조직이어야 한다. 남자, 여자를 떠나서 같이 밥 먹자고 하는 사람들이 직장에서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시대로 가게 된다. p.178

사회과학의 언어(p.252)는 우리가 느끼는 안타까움에 비해 너무 무덤덤하다. 좀 더 감각적이며 인간적인 언어는 없을까? 잘 모르겠다. 정확한 언어는 감각적이지 않고, 감각적인 언어는 순간 공감을 일으키지만 해법으로 우리를 인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p.253

불편은 참을 수 있지만, 위험은 참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 우리가 깜박깜박 잊는 것들이 있다. 우리의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들이 행복해져야 우리도 안전해진다. p.280

직장이라는 공간이 원래 이렇게 비인간적인 곳이었나. 만약 직장이 이처럼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곳이고, 그런 상황들을 감내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곳이라면, 직장은 민주주의 시민 사회에서 없어지거나 계몽이 필요한 마지막 공간일 것이다. -‘행동하는 간호사회김소현 간호사의 메모 중 p.281

노조가 있어도 문제가 생기지만, 노조가 없는 경우 그 문제는 몇 배로 증폭된다. p.293

우리는 인간적으로 사람들에게 너무 막 대해왔다. 먹고사느라고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해왔다. 모멸감을 참으면서 돈을 버는 시대가 너무 길었다. p.382

그다음 세대에게 좀 더 인간다운 직장을 주는 일, 미래를 만드는 일이다. p.388

맥스민(max-min), 즉 가장 약한 사람들의 보호를 최대화하는 것 p.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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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팀은 왜 기본에 충실한가-패트릭 랜시오니] 삶의 태도에 대한 상식 | Memento 2019-06-09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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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최고의 팀은 왜 기본에 충실한가

패트릭 렌시오니 저/유정식 역
흐름출판 | 2018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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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라밸을 외치는 요즘 이상과도 다르기도 싶지만...그래도 이왕 일할거라면....팀플레이어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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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직은 특정한 목표를 달성하고자 한다. 그 목표를 달성하는 일이 최우선의 가치다. 가급적이면 효율적으로 말이다. 조직을 구성하고, 평가하여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일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꾸리는데 필수적이다. 우리는 일생을 조직에 속해서 살아간다. 직장인이라면 하루의 대부분을 조직의 최하부 단위인 팀에 속해서 보낸다. 팀원들과의 관계가 인간관계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며, 때로는 가족보다 더 자주 보기도 한다. 간혹 팀의 기조를 가족같음을 표방한다. 가족끼리는 투닥거리고 싸우더라도, 싫더라도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팀의 구성원들끼리 가족과 같이 함께 가자는 의미겠지만, 실재 가족이 아니라 x ’ 같은 경우가 많다.


 


   가족을 운운하더라도 결국 조직은 가족이 될 수 없다. 조직은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존재의 이유다. 필연적으로 개인의 목표와 다르다. 관리자도, 팀원들도 모두 조직의 목표만을 위해 그 자리에 있는게 아니다. 서로 목표가 다르니 충돌할 수 밖에 없다. 결국 ‘x ’ 같을 수 밖에. 그렇다면 조직이 세포인 팀을 어떻게 꾸려야 할까. <최고의 팀은 왜 기본에 충실한가>팀워크에 해답이 있다고 한다. 조직을 팀플레이 능한 사람들로 채워야 한다는 것. 그렇다면 무엇으로 팀 플레이어를 구별할 수 있을까. 관리자들은 - 옮긴이의 표현대로, ‘호사분면을 통해 직원들을 파악한다고 지적한다. “‘싸가지가 있다, 없다가 사실 팀 플레이어의 중요한 역량임을 암묵적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p.10)”이다.

(https://subokim.wordpress.com/2011/05/20/mungbu-mungge/)

 

  이와 유사한 구분법으로 멍게, 똑게, 멍부, 똑부 구분법이 있다. 상사와 부하의 성향에 따른 궁합을 보여주는데, 궁합이 적합하다면 성과를 떠나서 적절한 팀플레이를 이룰 수 있다. 똑부 상사와 똑부 부하의 조합은 쉽지 않겠지만, 절친 궁합이나 평화를 이루기만 해도 조직은 자체로 굴러가기도 한다.


  반면에 저자는 적극적인 팀워크를 중시한다. 그리고 이 팀워크가 조직의 핵심요소임을 인정한다면, 조직의 핵심가치는 겸손, 갈망, 영리함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겸손은 실재보다 과대평가하지 않지만 자신의 재능과 기여를 과소평가하지도 않는(p.330)” 을 의미하며, 갈망은 주어진 과업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 그리고 필요하다면 그 이상을 달성하기 위해 관리 가능하고 지속 가능하게 헌신한다는 의미다.(p.333)” 영리함은 지식이나 지능적인 측면이 아닌 “‘타인에 대한 상식(p.335)” 의미한다. 이 세 가지 핵심가치는 “DNA에 새겨진 영구적인 성격이 아니라, 집이나 직장 등에서 경험하는 삶과 개인적 선택을 통해 개발되고 유지(p.343)” 된다. ,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말인데,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친절하고 지속적으로 직원에게 개선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p.409)”을 리더의 임무라 설명한다.


 저자의 분류법에 따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책에 나온다.)



  책의 대부분은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가치를 스토리화 한 픽션이다.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 저자의 목적에 맞게 창조된 회사와 세상에서 무엇인들 이루지 못할까. 경제학이나 이론과학이 현실에서 다르게 작동하곤 한다. 이론을 일반화하기 위해 완벽한 세계를 가정하기 때문이다. 실재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다양한 변수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공식이 그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저자의 스토리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 회사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고, 존재할 수도 없다. 저자가 말하는 핵심 가치도 마찬가지다. ‘건전하고 관리 가능함을 말하지만, 여기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없다. 자신이 비판했던 다른 평가 모델과 다를바 없다. 팀워크를 말하며 갈망이라는 가치를 말할때는 은근한 야근(? 혹은 추가적인 근무)을 권장하는 느낌을 받았다. 잘하고 싶은 마음을 적절하게 잘 표시하라는 건가. 이상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워라밸을 외치는 요즘 이상과도 다르고.

 

  어쨌든 일을 하자면 팀워크가 중요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겸손, 갈망, 영리함은 저자의 말대로 핵심가치임은 자명하나, 하나로 축약해보자면 상식 common sense’이 아닐까. 그 말이 그 말인지 모르겠지만, 삶의 태도에 대한 상식이 아닐까. 자신이 맡은 일을 책임진다. 다른 사람들과는 좋은 관계를, 그렇지 않다면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한다 등등. 결국 상식에 반하는 행동은 불협화음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보기에 따라 상식은 억압이다. 일반적이라는 말은 개별적이고 개인적인 사항을 배제한다는 의미다. 개인을 억누르고 상식을 받아들일 사람이 아니라면 조직에서 버티기 어렵다는 말을 풀어서 쓴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자신을 억누르고 상식을 받아들일 자신이 없다면 떠나라는 말을 완곡하게 표현하고, 이런 논리를 제공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너무 비뚤어진 생각일까. 소수의 천재가 조직을 이끌고 다수의 범재가 조직을 지탱한다고 보면, 상식을 가진 팀 플레이어들이 많아야 통제하기 쉬울 법도 하다. 그래야 예측 가능하고, 허락된 범위 내에서, 목표를 향해 움직일 테니까.

 

  멍게, 똑게 분류도, 옮긴이의 호사분면도, 저자의 밴다이어그램도 결국 완벽하지 않다. 일과 삶의 경계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는 개인의 선택이다. 조직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개인은 단순히 먹고 살기만 위해서 존재하지 않는다. 조직의 목표와 내 인생의 목표는 전혀 상관없다. 먹고 사는게 우선인지, 하고 싶은 일을 하는게 우선인지 용기를 가지고 선택하기 나름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겠지만, 즐길 수도 없다면 돈이라도 벌어야지. 기왕 한다면 팀플레이어가 되어서 제대로 해보고자 한다면 이 책은 좋은 선택이다. 상식이라는 것이 꼭 조직 생활이 아니라, 무리 지어 사는 사람이라면 필요한 것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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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들이 현장에서 호사분면으로 직원들을 바라보는 까닭은 싸가지가 있다, 없다가 사실 팀 플레이어의 중요한 역량임을 암묵적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p.10

이 책에서는 겸손, 갈망, 영리함을 팀플레이어의 중요한 덕목으로 꼽고 있다. ... 겸손은 좋은 팀 플레이어가 되기 위해서는 당연히 요구되는 자질이다. .. 두 번째 자질인 갈망은 팀의 정의를 동일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모인 집단이라고 볼 때 목표 달성의 (p.11)로서 팀워크에 역시나 필수적이다. ... 세 번째 자질인 영리함은 ... ‘타인에 대한 상식’, 즉 대인 관계를 잘 이해하고 그에 맞춰 적절하게 행동하는 능력 ... ‘지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p.12

관리자의 임무란 허울뿐인 역량 모델을 버리고 세 가지 요소를 통해 직원들이 이상적인 팀플레이어로 육성하는 것이다. p.14

만약 누군가가 조직 생활을 잘하기 위해 개발해야 할 자질 중 가장 유용한 것이 무엇인지 우선순위 목록을 만들어 달라고 말한다면, 나는 목록의 맨 위에 팀 플레이어가 되는 것이라고 적을 것이다. p.20

진정한 팀워크는 구체적인 행동을 필요로 한다. ... 숨김없이 자신을 드러내기, 건전한 갈등에 뛰어들기, 결정된 사항에 매진하기, 책임지는 문화 형성하기, 성과에 집중하기 등. (<팀이 빠지기 쉬운 다섯 가지 함정>) p.20

진정 겸손한 사람은 자신을 실재보다 과대평가하지 않지만 자신의 재능과 기여를 과소평가하지도 않는다. C.S.루이스는 겸손은 자기 자신을 낮춰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을 덜 하는 것이다.” p.330

갈망은 건강한 유형을 뜻한다. , 주어진 과업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 그리고 필요하다면 그 이상을 달성하기 위해 관리 가능하고 지속 가능하게 헌신한다는 의미다. p.333

팀이라는 환경에서 영리함이란, 간단히 말해 타인에 대한 상식을 의미한다. 이는 대인관계를 잘 이해하고 그에 맞춰 적절하게 행동하는 능력과 전적으로 관련이 있다. p.335

영리함이 반드시 좋다고만 볼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영리한 사람은 좋은 목적으로 혹은 나쁜 목적으로 자신의 재능을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사실 역사적으로 가장 위험했던 사람 중 몇몇은 영리하기로 유명했던 자였다. p.336

이 세 단어가 반드시 핵심가치일 필요는 없지만 팀워크가 조직 운영의 중심이길 바라는 조직(p.340)에선 이것이 필수적인 채용 요건임을 알게 됐다. p.341

세 가지 덕목은 DNA에 새겨진 영구적인 성격이 아니라, 집이나 직장 등에서 경험하는 삶과 개인적 선택을 통해 개발되고 유지되는 것이다. p.343

마음의 벽을 허물고, 신뢰를 구축하고, 생산적이지만 불편한 갈등 상황에 적극 참여하고, 처음에는 동의하지 않았더라도 집단이 내린 결정에 헌신하고, 성과 면에서 뒤떨어지는 동료들이 책임을 다하도록 격려하고, 자신의 이익보다 팀의 성과를 우선시하게 된다. 겸손하고, 갈망하고, 영리한 사람만이 거창한 코칭 프로그램 없이도 이 모든 것을 해낸다. p.344

정말로 필요한 것을 행하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직원들에게 상기시키겠다는 리더의 의지는 개선 절차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지만 자주 간과되는 경향이 있다. p.405

해결책은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친절하고 지속적으로(지속적이란 말을 두 번이나 썼다는 점을 명심하라) 직원에게 개선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리더가 지속적으로 그렇게 하면 직원들은 스스로 상황을 개선시키기 위해 노력하거나 아니면 회사를 나갈 것이다. 그러나 리더가 직원에게 솔직히 말(p.409)해야 하는 책임을 회피한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p.410

훌륭한 팀이 되려면 리더는 겸손, 갈망, 영리함의 결함을 즉각적이고 요령 있게 일러줘야 한다. p.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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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2-주경철] 빛을 향해 나아갈수록 그림자는 커진다. | Memento 2019-06-09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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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2

주경철 저
휴머니스트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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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향해 나아갈수록 그림자는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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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넘게 포스터모더니즘 책을 몇 개 주워섬겼던 대학생 시절. 참으로 고민이 많았다. 절대적인 진리, 나아가야 할 이상이 모두 무너진 시대.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던 시간이었다. 같잖게도 절대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절대적이다는 식의 세기말, 2병 넘치는 좌우명을 만들어 혼자서 만족해 했다. 짧은 인생에서 이때만큼 순수하게, 마음 편히 책을 읽었던 시기도 없었다. 부족했지만 많은 분야에 책을 주워섬겼고, 돈은 없었지만 대학 도서관이라는 최고의 시설이 있었으니 이때야말로 독서를 하기에 가장 좋았다. 물론 목표는 900의 모든 책을 섭렵하고 졸업하겠다! 였지만, 애당초 가능한 목표가 아니었다. 술과 놀음이 주였고, 앞서 말한 중2병 좌우명으로 개똥철학을 전파하고 다녔다. 개인적으로 가장 어두운 시기였지만, 가장 치열하게 고민했던 시기다. 밝은 곳으로 나가기 위해서 그만큼 어둠이 필요했을까.

 

  빛과 어둠은 항상 함께 존재한다. 찬란하게 빛나는 곳이 있다면, 반대로 빛이 가지 못하는 곳도 생긴다. 빛을 향해 나아갈수록 그림자는 커진다.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2>는 유럽의 그림자를 보여준다. 근대는 유럽인의 세계였다.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지금도 강대국으로서 강력한 권위를 가진다. 동양에 비해 허약했던 지역이 단번에 지구라는 행성을 지배하는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 유럽의 관점에서 전체 역사를 보자면 지금이 영광의 빛이 비추는 시대다. 그렇기에 그림자도 길었다. 중세와 근대의 과도기적 지점에서 짙은 그림자를 볼 수 있다.

 

  특히 <마녀사냥>이 유명하다. “‘중세적 현상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근대 초 정점이었다. “르네상스와 과학혁명, 계몽주의로 이어지는 시대가 바로 마녀사냥의 전성기였던 것이다. (p.241)”. 인플레이션의 아버지인 <존 로>의 이야기는 어떤가. 지금 보면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주식에 돈을 투자한다니 믿을 수가 없다. 뉴턴조차도 돈을 잃었다. 주식이 언제 오르냐는 물음에 나는 천체의 무게를 측정할 수는 있어도 미친 사람들의 마음은 알 수 없다오.”(p.580)라고 말했단다. 하긴 지금도 다를 바 없다.

 

  어둠과 빛은 항상 함께 존재한다. 칠흑 같은 어둠이, 그림자가 길어진다면 그만큼 빛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말이다. “진리 혹은 선을 지킨다는 명분 아래 악을 창안해내는 어둠의 성향은 여전히 우리 안에 있다. (p.298)” 반대로, “아름답고 숭고한 한 조각의 가능성이 깃들어 있다.” 빛과 어둠은 함께한다. 그렇기에 역사라는 거울을 통해 우리를 비춰보아야 한다. 저자의 말대로 믿고 싶다. “인간 사회는 어쨌든 조금씩 밝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리라(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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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황당하고 때로는 아름다운 사건의 주인공들을 보노라면 유럽인이란-더 크게 보아 인간이란- 사악하기 그지없는 존재라고 느껴졌다가도 인간 내면의 한 구석에는 아름답고 숭고한 한 조각의 가능성이 깃들어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 작은 가능성을 크게 키우고자 하는 것이(p.18) 역사라는 거울을 통해 우리를 비춰보는 이유이다. 인간 사회는 어쨌든 조금씩 밝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리라 믿고 싶다. p.19

세상일이(p.210) 그렇다. 논리적으로 맞다 해도 그것이 꼭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부아를 돋을 수 있다. p.211

흔히 마녀사냥은 중세적 현상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근대 초 정점에 이르렀다. 르네상스와 과학혁명, 계몽주의로 이어지는 시대가 바로 마녀사냥의 전성기였던 것이다. p.241

마녀사냥은 주변적이거나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유럽 문(p.241)명은 마녀를 필요로 했다. 선과 악, 정의와 불의, 신성성과 마성 등은 함께 규정되었다. 최고의 선을 확립하고 지키기 이해 최악의 존재를 만들어야 했다. ... 그리고 대개는 세상에는 알 수 없는 어떤 신비한 힘이 존재할 수 있다는 정도로 용인하고 넘어간다. 그런데 유독 유럽에서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을 악마의 하수인으로 규정했다. ... 유럽 문명만의 특이한 요소다. p.242

다양한 갈들이 폭력적으로 분출할 수 잇는 기제로서 마녀 개념이 장기간에 걸쳐 준비되었고, 그것이(p.286) 특정 지역의 특정 국면에 따라 유연하게 작동했다는 점이다. 마녀사냥은 다양한 갈등이 분출될 수 있는 일종의 범용 기제로 작용했다. p.287

우리는 흔히(p.289) 지난날의 마을 공동체를 미화하여, 순박한 사람들이 서로 돕고 사는, 훈훈함이 넘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마을 공동체는 갈등과 투쟁이 빈번하고, 위험 요소가 잠재해 있다. ... 마녀사냥은 누군가의 고발이 필수적이다. 재판관이 모든 의혹을 하나하나 밝혀내서 기소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가장 기본적으로는 이웃의 고발이 있어야만 마녀사냥이 진행된다. 결국 이웃이 이웃을 죽인 셈이다. p.290

마녀사냥이 종식된 결정적 계기는 사법개혁이었다. (p.294) ... 결정적으로 마녀재판을 끝장낸 동력은 근대 국가의 발전에서 나왔다. (p.296) ... 무지몽매하거나 광기에 찬 지방 권력자가 저급한 수준의 사법 제도를 악용해 극단적 힘을 행사하려 할 때, 이를 제어할 수 있는 힘은 전국 단위의 사법 제도를 운영하는 국가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p.297

진리 혹은 선을 지킨다는 명분 아래 악을 창안해내는 어둠의 성향은 여전히 우리 안에 있다. 오늘날 우리가 정의로운 일이라 생각하며 행하는 일들이 50, 100년 뒤에 보면 어이없는 악행으로 판명 나는 건 아닐까? p.298

토크빌은 절대주의 체제에 대해 강력한 원칙, 융통성 있는 실천이라고(p.307) 이야기한 바 있다. ... 오늘날 역사가들은 절대주의는 절대적이지 않다는 말을 자주 한다. p.308

혼란스러울수록 사기가 잘 먹힌다. p.572

세기의 천재 아이작 뉴턴도 투자 행렬에 끼어들었다. 누군가 그에게 언제까지 주가가 오를지 묻자 이렇게 대(p.579)답했다. “나는 천체의 무게를 측정할 수는 있어도 미친 사람들의 마음은 알 수 없다오.” p.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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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고양이면 좋겠어-나응식] 내가 "잠시 고양이면 좋겠어" 그렇다면 널 이해할 수 있을테니. | Memento 2019-06-07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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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잠시 고양이면 좋겠어

나응식 저/윤파랑 그림
김영사 | 2019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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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잠시 고양이면 좋겠어" 그렇다면 널 이해할 수 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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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양이에 대한 첫 번째 기억

겁이 많다. 무서운 이야기를 극도로 싫어한다. 그 이유를 굳이 따져본다면, 시골이라는 자연환경과 전설의 고향이라는 TV 때문이다.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모든 무서운 장면은 우리집 주변에 존재했다. 대나무숲, 부뚜막, 폐가, 오래된 기와집. 전설의 고향이라는 프로그램은 나에게는 현실이었다. 정확한 기억인지는 모르겠지만 고양이와 개, 그리고 지네가 얽힌 편이었다. 오래 묵은 지네 독이 음식에 떨어져서 먹으면 위험한 상황. 위험을 알리기 위해 고양이와 개는 끝까지 울었고, 결국 고양이가 죽었던가, 쫓겨났던가 했다. 후일 고양이가 복수를 위해 돌아왔다는 내용인가 싶지만, 무서워서 이불을 뒤집어 썼던지라 정확한 기억은 없다.

하나 확실한 것은 고양이는 요물이며, 무서운 동물이라는 기억이 선명하다. 그날 이후로 통실로 (푸세식인데 배설물이 통통 떨어진다고 우리 동네에서는 통실이라 불렀다.) 화장실을 갈 때마다 울어대는 고양이가 너무 무서웠고, 급기야 나는 마당에서, 요강에서 볼일을 볼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의 야단보다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더 무서웠으므로.

 

2. 고양이에 대한 두 번째 기억

고양이는 요망한 동물이었다. 우리 집 창고에 새끼 냥이 한 마리 홀로 남아 밤새 울었다. 어찌된 이유인지는 모르겠다. 다른 모든 새끼들은 밤새 옮겨졌는데 아침까지 한 마리 홀로 남았다. 점심시간까지 홀로 두었으나 어미가 데려가지 않았고, 부득이 우리 집에서 키우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집안 사정상 10일간 고양이를 돌볼 수 없었고, 걱정된 나머지 홀로 10km를 걸어 고양이를 모시고 할머니집으로 데려오던 차였다. 매우 어렸고, 야생 냥이다 보니 가방 안에 고이 넣어 올 수 밖에 없었다. 8km쯤 왔을까. 문득 울어대던 고양이 소리가 조용해졌다. 어린 마음에 혹시나 죽었나? 라는 걱정과 함께 숨구멍이라도 열어줘야겠다 싶어 가방을 조금 여는 순간! 내 손을 할퀴고 달아났다!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애타게 이름을 불렀으나 놀란 고양이는 저 멀리 달아났다. 그날 참 많이 울었던 것 같다.

후일 그 냥이는 내 친구 집 보일러실에서 성인이 되어, 아기도 낳고 천수를 누렸다.

 

3. 고양이에 대한 현재 기억

알레르기가 심하다. 봄 가을마다 고통받고, 청소를 할 때마다 넘쳐나는 콧물과 재채기로 고통받는다. 잠도 자주 설치는 편이다. 내 코를 복개하고 싶다는 생각을 일주일에 두 번, 세 번씩 한다. 그런데 반려인의 반려묘는 쉽지 않다. 정말 때로는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다. 그래도 알고 싶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내가 무엇을 해주면 좋을지. 함께 사는 길이 있으리라 믿는다. (증세가 심해져서 끝끝내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나 확실한 점은 무지도 폭력일 수 있다는 점. 나보다 약한, 그리고 우리와 소통을 할 수 없는 존재이거나, 다른 방법으로 살아가는 존재라면 더더욱 야만적인 일 수 있다는 점. 너무나도 미안해서, 때로는 정말로 내가 <잠시 고양이면 좋겠어> 그렇다면 널 이해할 수 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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