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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힘껏 멀리 멀리 도망쳤기를 | 읽겠습니다 2018-12-01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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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새싹 뽑기, 어린 짐승 쏘기

오에 겐자부로 저/유숙자 역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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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새싹뽑기 . 어린 짐승 쏘기 ㅡ 오에 겐자부로 , 유숙자 옮김 , 문학과지성사 , 문지스펙트럼시리즈,



우리는 마을에서 마을로 이동하는 동안 , 빈번히 반복된 탈주와 실패를 체험하면서 우리가 엄청나게 넓고 거대한 벽에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 농촌에서 우리는 피부와 살에 박힌 가시 같은 존재였다 . 순식간에 우리는 사방팔방에서 빽빽이 뭉쳐드는 살집의 싹에 에워 싸여 질식하고 짓눌린다 . 농민들은 그지없이 베타적인 단단한 갑옷을 제대로 차려입고 그 안으로 기어 들어가기는커녕 그곳을 빠져나가는 것조차 거부한다 . 외지에서 온 사람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고 투이겨내는 바다를 , 작은 집단을 이루어 간신히 표류하고 있는 것이 우리들이었다 .
( 본문 12 쪽 ) 

마을 여자들이 커다란 접시에 담은 주먹밥과 쇠냄비의 국을 날라 왔다 . 그리고 나의 동료들은 주먹밥과 나무 그릇에 담긴 뜨거운 국을 받아서 먹기 시작했다 . 그것은 분명 진정한 식사 , 우리가 오랜 감화원 생활 , 소개 여행 , 아이들뿐인 생활에서 얻을 수 없었던 , 인간적이고 풍성한 식사였다 . 사랑이나 일상생활로부터 차단된 차갑고 기계적인 식사가 아니라 들과 밭 , 거리를 자유로이 오가며 살아가는 여자들의 손바닥으로 뭉쳐진 밥 , 일상적인 주부의 혀로 간을 맞춘 국이 거기에 있었다 . 내 동료들은 그걸 볼이 미어지게 먹으면서 고집스레 내게 등을 돌리고 분명히 내게 창피해하고 있었다 . 그러나 나는 스스로를 , 내 입안에 솟는 침 , 수축하는 위장 , 그리고 몸 구석구석까지 피를 말리는 굶주림을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
촌장이 아무 말 없이 앞으로 나와서 내 코끝에 주먹밥 접시와 그릇을 내밀었을 때 , 떨리는 내 팔이 그걸 내동댕이친 것도 어쩌면 그토록 가슴을 옥죄는 수치심 때문이었으리라 . 

" 까불지 마 ! " 촌장이 소리쳤다 . " 어이 , 까불지 마 . 이봐 , 넌 자신을 뭐라고 생각하나 ? 너같은 놈은 진짜 인간이 아니야 . 나쁜 유전자를 퍼뜨릴 뿐인 칠푼이야 . 커봤자 아무짝에도 못 써 ." 
촌장은 내 멱살을 붙잡아 나를 거의 질식시키고는 자신도 분노에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
" 알아 ? 너 같은 놈은 어릴 때 비틀어 죽이는 편이 나아 . 칠푼이는 어릴 때 헤치워야 돼 . 우린 농사꾼이야 , 나쁜 싹은 애당초 잡아 뽑아버려 . "
( 본문 224 ,  225 쪽 )


작년 10월 , 도서관에서 대출한 첫 독서 때는 막연하게 이 소설 속의 인물들과 공간 , 환경들을 상상하느라 더듬더듬 읽었던 것이 기억이 난다 . 뚜렷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던 독서 .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 분명하고 입체적으로 이 공간들이 그려졌으니까 . 하지만 그렇게 그려진 공간도 인물도 사실 내가 직접 그리고 만든 인물들은 아니었다 . 오랜 시간 기억 속에 축적된 일본 애니메이션들의 영향이 상당히 컸으니 말이다. 

물론 , 그때도 제목이 말하려는 바는 , 알아먹었지만 당시의 내가 , 삶 자체에 크게 휘청이던 순간들 였기에 뭐라고 흔적을 따로 남길 기력이 없었다 . 

잔인하고 모질게도 저 어린 소년들을 쳐다보고만 있었던 거다 . 하긴 뭘 해줄 수 있었겠는가 ... 광차에 안전하게 태워 폭신하고 안전한 어디로도 옮겨 줄 수 없었는 걸 . 

이 소설의 배경은 태평양전쟁의 시기이다 . 감화원이란 우리 식으론 소년원쯤 될까 ? 남색이란 이유로 , 뭔가의 이유로 사람을 찌르고 가족들에 전염병 환자처럼 취급 되던 , 전쟁의 시기였음에도 철저하게 버림 받는 작으나 치기 어린 죄수들이 나온다 . 어린 그들은 어딘가 소속된 군복만 봐도 탄성을 지르는 그저 그런 아이들이었다 . 

나라간의 전쟁을 이유로 생때같은 인간의 목숨을 마구 죽여도 되는 , 사회 분위기와 어떤 이유로든 죄는 있으나 , 조금 더 말랑말랑한 미성숙하고 인간적인 아이들 중에 나는 누가 더 큰 죄인인가를 두고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 

아이들 무리는 습하고 , 거친 , 죽음의 마을과 마을을 거쳐 내내 안으로 들여보내지지 않고 고립된 한 산골마을에 닿을 때까지 걷는다 . 제대로 된 신발도 없이 . 더러 탈주를 시도해도 그들이 달아날 곳은 사회 어디에도 없다 . 순박할 것만 같은 농촌의 인심조차 어찌나 사나운 지 , 아닌가 ? 그들은 다른(?) 이방인들에게 두려움을 느꼈던 걸까 ? 아주 인정사정없는 매질과 죽음의 위협도 서슴없이 그려진다 . 

그들은 광기라는 전염병에 이미 깊이 병들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 그것은 그들의 영토에 이미 물든 짐승들의 피비린내와 교묘하게 겹쳐진다 . 

얼마 전에 조선희 작가의 세여자를 읽었는데 , 그 중 한 여자인 고명자가 옥중에 있다가 해방이 되어 각기 다른 이유로 수감되었을 죄인(?) 들이 무차별로 해방되는 장면을 읽곤 , 감옥이란 곳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던 순간이 떠올랐다 . 어쩌면 고명자 말고도 먼 이국의 차가운 유형지에서 숨만 겨우 쉬는 베라 한(주세죽) 까지 떠올리기도 했던 거 같다 . 

사회와 이념이란 울타리에서 어디로도 갈 수 없이 벽뿐인 삶임에도 희망을 놓지 않던 그녀들 . 그리고 같은 시기의 타국 어린 소년들의 유형지 . 그것들은 참으로 비슷하면서 다른 기분이 든다 . 

여자와 , 아이들이어서 그럴까 ? 

땅끝같은 산골 계곡에 받아들여졌으나 , 부패하고 썩은 짐승들의 시체가 층층이 쌓여 있는 곳에서 그들의 일은 썩은 짐승 묻기였다 . 여행중 내내 앓던 동료 하나가 그날로 죽고 , 마을의 한 여인도 죽자 마을 사람들은 이 어린 소년들만 두고 계곡을 건너 감으로 해서 소년들을 또 다른 유형지에 가둬버린다 . 

감시와 지시가 없는 단 며칠 . 죽은 여인 곁을 지키던 마을 소녀가 개에 물리며 전염병 으로 죽기전 작은 축제같던 순간 . 

이 책은 읽으면 통째로 소설 자체가 머릿속에 들어 앉는다 . 그 냄새들까지도 . 마지막의 촌장 모습은 , 말 그대로 누가 정상이고 비정상이며 누가 병든 자이고 병들지 않은 자인지 ,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 새싹을 뽑는다는 제목처럼 , 기득권의 힘 , 권력까지도 점층적인 문체로 보여주는 작가 . 누가 어린 짐승들을 쏘았는가 ! 하는 질문까지도 메아리처럼 되돌아오고야 만다 . 그러므로 숨죽여 읽고 새기게 되는 소설이다 . 이 소설은 . 

마지막 추방 된 한 소년의 생명이 어찌되었는지는 먼 곳에서 울리는 총성 만큼이나 암울하고 , 그러나 그가 힘껏 멀리 멀리 도망쳤기를 , 전쟁이 끝난 황폐한 마을의 복판에 그가 서있기를 희망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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