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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린『이중 연인』_6회 : 밤 아홉시에 걸려온 전화 | 읽을거리 2019-10-23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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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연인 #6





6


집에 도착해서는 그대로 침대에 쓰러져 자고 열한 시쯤 깨서는 이를 닦으며 욕실 거울에 비치는 내 눈을 보았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만 가여운 두 눈을. 그러나 이내 가여운 두 눈이 비난하듯 나를 보았다. 사랑이 어떻게 오는지 보았다고 자만한 것이 부끄러웠다. 나는 거울 속의 시선을 피했다. 수신 확인을 해보니 이열에게서 전화가 와 있었다. 아홉 시 사십 분에 한 번, 열 시에 한 번. 아무것도 정리가 되지 않았다. 당혹감과 실망감 위로 낭패감과 수치심이 어리고 그 위로 의혹과 혼란이 차오를 뿐이었다. 서로의 몸을 밀며 복도 끝 방으로 들어가던 모습만 떠올랐다. 사실인지 아닌지 자신이 없었다. 그건 악몽이거나 망상일지도 몰라. 사실이 아닐 거야. 적어도 복도 끝 방에 둘이 들어가진 않았을 거야. 침실에 둘이 들어갔다 해도 무슨 일은 없었을 거야. 이미 헤어진 사람들이 대체 왜 그러겠어……. 오후 다섯 시가 되었을 때 나는 침착하게 냉장고 문을 열고 준비해 둔 페타치즈 샐러드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저녁 무렵 엄마가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엄마의 하소연을 들어줄 기운이 없었다. 투자에 실패한 해변의 폐건물, 오 년째 물려 있는 거액의 대출. 생활비의 반이나 되는 이자, 계절 따라 번갈아 가며 앓는 관절염과 협심증, 고혈압과 고혈당, 우울증과 불면증, 그리고 무기력하게 뭉개며 노는 여동생, 말끝에 엄마는 흐느끼며 울 것이다. 지긋지긋한 바닷가의 폐건물에 물린 대출 이자의 반은 내가 물고 있었다. 월급 통장에서 사분의 일이 꼬박꼬박 잘려 나갔다. 미칠 정도로 많은 액수는 아니라 해도 때때로 맹수의 이빨에 잘근잘근 씹히는 끔찍한 기분이 들고, 때론 숨이 막히고 무력증이 몰려올 정도는 되는 액수였다. 엄마 덕분에 대학 학자금과 생활비를 빌리진 않았으니 기꺼이 분담했지만 언제까지 버틸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엄마를 다독거렸다. 다들 그 정도 빚은 갚으며 살아. 언젠가는 끝이 나겠지. 몸을 잘 챙기세요. 아프진 말아야죠. 이자를 내면서부터는 엄마의 생일도 그냥 보냈다. 명절들, 기념일들도. 더는 엄마에게 쓸 돈도 마음의 여력도 없었다.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만화방에 틀어박혀 만화책을 보거나 집 안에서 열대어나 들여다보며 세월을 보내다 눈치가 보이면 교통비를 대주는 무료직업훈련원에 등록하고 이런저런 자격증이나 모으는 여동생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야근, 빚, 이자, 병든 엄마, 노는 여동생…….  삶의 무게가 한꺼번에 닥칠 때면 나는 무너지고 싶었지만 좀처럼 무너지지 않았다. 그때마다 오히려 내 안에 우산살 같은 것이 더 팽팽하게 펴지는 것 같았다. 너무 팽팽해서 늑골이 아파 왔다.  

 

 밤 아홉 시에 이열의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긴 했지만 얼른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잘 들어갔어요?”

“…….”

“미안해요.”

누구든, 미안하다고 할 때는 얼버무리지 말고 콕 찍어서 무엇이 미안한지 말하면 좋겠다. 아니라면, 한 번 실수를 한 게 아니라 원래, 늘 그러고 사는 사람인 것이다. 나는 소리를 내기 위해 헛기침을 했다. 성대가 모래에 묻힌 느낌이었다. 

“나와는, 다르게 사는 분이네요.”

목 안이 뜨겁고 묵직한 통증이 느껴졌다. 편도가 부은 모양이었다. 이번엔 이열이 말이 없었다. 전화기를 계속 들고 있다가는 둘이 복도 끝 방에 들어갔는지, 방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추궁하게 될 것만 같았다. 아직 그런 질문을 할 사이는 아니었다. 내게 권리도 없고 그에게 의무도 없었다. 그로선 그저 미안한 정도가 적절한 것이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는 나의 몫이었다. 하지만 아직 갖지도 않은 것을 잃을 수가 있을까,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끝낼 수가 있을까. 그런데도 참담함이 가시지 않았다. 

“알아 갈 시간이 좀 필요해요. 우리는.” 

어딘지 천연덕스러운 어투여서 황당하고 얄미웠다. 

“그런 일로 섣불리 문을 닫아버리지는 말아요.”

그런 일이, 그가 생각하는 일과 내가 생각하는 일이 같은지 알 수 없었다. 갈등을 겪고 미주알고주알 검토하고 분석하고 토론하기에는 너무 일렀다. 심지어 불화하기에도 너무 빨랐다. 아직 어떤 관계인지 이름 붙일 수도 없었다. 

 “그대로 문을 열어 두면 돼요. 그건 쉬운 일이에요.”

 무엇이 들어올지 모르는데 문을 열어 두라니, 무슨 헛소리인가, 하면서도 이열에게 관대해지는 마음을 어쩔 수 없었다. 이열은 상대를 관대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었다. 나는 끌림과 위화감 사이에 끼어버렸다. 

“내게도 문을 열어 둘 건가요?”

“물론.”

“무엇이 들어가든?”

“무엇이 들어오든. 그래요, 수완 씨는 뭘 하든 괜찮아요.”

백지 계약서를 받은 기분이었다. 생각해 볼게요, 라고 대답할 뻔했다. 하지만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잘 지내요.”

일단은 무대응이 나을 것 같았다. 

“편히 자요.”

 나의 회피적인 인사에 비해, 이열은 다음 날 아침에 모닝 인사를 할 것같이 다정한 인사를 했다. 화근이 된 보라의 초대에 먼저 응한 사람은 이열이 아니라 나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떠올랐다. 엉망진창이 된 사태에 나도 원인 제공을 한 셈이었다. 호기심이 늘 문제였다. 하지만 호기심을 억누를 수 없었다. 나는 알고 싶어 했다. 늘 그게 문제였다. 마음이 누그러지며 다시 기포 같은 기대가 보글보글 일어나는 것을 누르기 위해 일부러 눈썹을 찌푸려 보다가, 당장 내일 아침에 굿모닝 전화가 올지 오지 않을지 궁금해하다가, 오면 어떻게 대응할지를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미 시작된 일이었다. 흥분과 화와 기대와 희망이 뒤섞였다. 그중에서 어떤 것도 선택할 수 없었다. 

 욕실로 가서 치약을 쭉 짜서 양치질을 했다. 그날의 일곱 번째 양치질이었다. 떠올라도 현실의 수면 위로는 떠오르지 않기 위해, 가라앉아도 바닥 아래로는 가라앉지 않기 위해 나는 양치질을 했다. 치아와 잇몸과 혀를 닦으며, 혀뿌리와 심장과 그 아래의 냄새나는 어둠을 떠올리며, 사람 이상도 사람 이하도 되지 말자고 다짐했다. 양치를 한 후에 갑자기 심술이 나 혀를 있는 대로 힘껏 내밀고 손가락으로 잡으려고 했다. 혀는 미끄러운 물고기처럼 손아귀에서 빠져나갔다. 다시 잡으려고 하자 혀는 말리듯이 안쪽으로 달아났다. 손과 혀와 나는 똑같이 놀라고 당황했다. 제멋대로였다. 내게서 달아난 혀를 멍하니 보다가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참 없다는 생각을 하고 말았다. 괜찮아, 괜찮아, 하면서 손가락의 힘을 빼자, 혀도 차차 긴장을 풀었다. 나는 혀 아래로 손가락을 조금씩 더 밀어 넣었다. 혀는 가만히 놓여 있었다. 괜찮아, 괜찮아. 안심한 혀는 엄지와 검지 사이에서 따뜻하면서 뜨겁고 물렁하면서 단단했다. 혀는 생명 자체에 속할 뿐 도무지 내 것 같지 않았다. 내 것과 내 것 아닌 것 사이에 가만히 놓여 있는 낯선 날개 같았다. 때론 제멋대로 날아오르는 날개. 이열의 말이 떠올랐다. 그대로 문을 열어 두면 돼요. 그건 쉬운 일이에요.  





이중 연인

전경린 저
나무옆의자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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