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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칼렛 오아라_ 사라지지 않을 욕망에 대하여 | 나의 서재 2016-10-06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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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스칼렛 오아라

이승민 저
새움 | 2016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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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욕망의 변주, 사라지지 않을 지독한 욕망을 담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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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하는 마음을 욕망이라 한다. 어쩌면 삶을 이끄는 건 바로 이 욕망의 에너지가 아닐까. 살고자 하는 것도, 먹고자 하는 것도, 이보다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려는 것도 모두 욕망에서 기인된 인간의 본능과 다름 없다. 이 때 우리가 욕망을 어떻게 다루고 표현하느냐에 따라 매순간 치열하게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으로 평가받기도, 욕망에 눈이 멀어 아집으로 똘똘 뭉친 그릇된 사람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그렇다면 내가 지닌 욕망의 이미지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어떻게 실현하고 있는가? 사소한 이상과 헛된 신기루 속에서 적절히 균형을 잃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가? 누구도 피하지 못한 채 욕망에 붙들려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그린 <스칼렛 오아라>는 내 안의 욕망을 직시하게 하는 그런 소설이었다. 낮과 밤이 다른 이중생활의 그녀, 라는 카피에서 주는 첫인상의 가벼움은 의외로 깊은 성찰로 나아가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이승민의 장편소설 <스칼렛 오아라>에는 지방신문지의 신춘문예 당선으로 갓 등단하게 된 가난한 무명작가, 오아라가 등장한다. 그녀의 꿈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것이자, 자신이 좋아하는 명품을 마음껏 소비하며 타인의 부러움을 받는 셀러브리티가 되는 것이다. 우울하거나 답답할 때마다 청담동의 명품 편집숍을 찾아 화려한 명품들을 바라보며 한낮 신기루일지 모르는 속물적 감흥과 그에 비례하는 상대적 박탈감 사이에서 자신의 욕망을 직시하곤 한다. 그녀를 사로잡는 가장 큰 욕망은 역시 글을 쓰는 것이었다. 그저 글을 쓰고 싶었을 뿐이지만 항상 비루한 삶이 발목을 붙들고 노력한 만큼의 대가도 얻지 못한다. 그래서 오아라는 과외하는 학생의 아버지이자 유명 성형외과 원장인 김중권을 유혹하는 한편, 스폰을 앞세워 돈을 벌기 위해 '스칼렛'이라는 이름의 오피스걸이 되기로 결심한다. 




낮엔 글을 쓰거나 구상을 하고 밤에는 스칼렛이 되어 고객을 상대하는 일상이 이대로 계속되었다가는 자아 분열을 일으킬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이 일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오아라는 멘탈이 꺾이면 육신이 꺾이고, 일상이 꺾이고, 삶이 꺾인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매순간 정신을 다잡아가면서 A와 B를 상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몸과 마음 둘 중 하나는 꺾이기 십상이었다. 때론 육신이 지랄 맞게 반응했고 뇌 속 어딘가에 시퍼런 균열이 가는 소리가 들릴 때도 있었다. 그래도 참고 견뎠다. 스칼렛이 열심히 돈을 벌어야 오아라가 밥을 먹고 글을 쓸 수 있으니까. / 89P


  오아라가 자신의 배경을 노리고 접근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명 성형외과 원장이라는 명함을 뒤로하고 이혼을 하여 오아라와 소박한 삶을 꿈꾸는 김중권, 그녀가 원하는 돈을 주고 몸을 탐하는 A와 B, 오아라처럼 부잣집 사모님들로부터 스폰을 받아 생활하는 동갑내기의 남자 노아가 등장한다. 그녀로써는 아픈 엄마의 어마어마한 병원비를 감당하고 빠듯한 생활을 하기 위해, 그녀가 원하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이들이 필요하다. 스칼렛의 시간을 견디게 만드는 것은 바로, 무엇보다 강하게 소설을 쓰고 싶은 욕망이었다. 하지만 작가라는 고매한 이미지와는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이중생활, 그 불온하고 위태위태한 관계들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금방이라도 어느 한쪽이 꺾여들어갈 것만 같다. 그 때마다 그녀는 생각한다. 가난한 소설가가 명품을 사랑하는 것이 그토록 이상한 일인가. 왜 작가는 백화점상품권 보다 디올, 샤넬, 까르띠에보다 문화상품권을 더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양심의 가책 또한 중요하지 않다. 비루한 삶은 욕망을 부추기고, 그것의 정당성을 찾기엔 이미 너무 고달프기에.  


  "인간의 욕망이란 것은 결국 똑같은 거 아니겠어요. 그것에 접근하고 그것을 실현하는 방법론의 차이 혹은 인식의 차이일 뿐이지. 다시 말하지만 이미지에 현혹되지만 않으면 된다고 봐요. 적잖은 명품 브랜드들은 오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유럽 왕실이나 귀족, 최고 상류층들을 위한 소수의 제품을 만들던 것이 시초잖아요. 희소성이 많이 사라졌다는 게 서글픈 일이긴 하지만 역사와 전통은 분명한 족적으로 남아 있는 거니까. 그들이 보여준 성장과 역사의 궤적 자체가 매우 소설적이라는 생각을 해요. 명품은 누가 소비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소비하느냐가 중요하니까." / 247P



  유명 셀러브리티들이 자주 본다는 잡지사와의 인터뷰에서 오아라가 한 말이다. 진실은 명품으로 대변된 화려한 삶을 자신도 가지고 싶다는 열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은 척, 작가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는 척 행동하는 그녀는 이미 너무나 이중적이다. 가만보면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에게서 이중적인 면모를 찾을 수 있다. 자신은 부유한 삶을 원치 않는 것처럼 행동하는 김중권은 여전히 아내의 배경 속에서 살아가고, 대기업 간부이나 오피스걸을 찾아다니며 성적 욕망을 해소하는 A와 B는 물론, 유명 문학지의 편집장이자 대학 교수로써 존경받는 지식인의 상징인 듯했던 윤석향 역시 오아라가 오피스걸인 것을 알게 된 후 늑대의 발톱을 드러내는 등 대부분의 인물이 하나같이 모순을 떠안고 있다. 그 어느 누구도 오아라를 손가락질 할 수 없다. 알고보면 모두가 욕망에 떠밀려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이렇듯 작가 이승민은 꽤 입체감있고 설득력있는 캐릭터를 구축하여 소설의 완성도를 높였다. 캐릭터가 잘 짜여져있고 그들에게서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구성되어 있다보니 가독성이 높고 얼개가 잘 짜여진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칫 막장이 될 수도, 통속 소설의 이미지가 더 강하게 느껴질 수 있는 소재였음에도 불구하고 성찰에의 의미를 지닌 문장들이 시의적절하게 쓰여져 재미와 작품성을 모두 갖춘 소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문학만 하며 살기에는 척박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소설이어서 개인적으로 꽤 이입을 했고, 그래서 더욱 재미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작가가 되기를 꿈꿨다. 글만 써도 살아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현실을 깨닫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결국 나 역시 돈을 벌기 위해 출판사에 취직을 하면서 다른 방향으로 노선을 바꿔야했기에, 오아라가 꿈꿨던 욕망이 다소 극단적으로 실현되었을지는 모르겠으나 그럼에도 글을 쓰기 위해 선택한 것들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오아라는 결국 자신이 원하는 물질적 욕망과 작가로써의 욕망을 모두 채웠을까? 그 결말이 궁금하다.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 우리 문단에 앞으로도 이렇게 재미있게 잘 읽히는 소설을 쓸 수 있는 작가가 계속 배출되었으면 하고 또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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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아리움_ 수면 아래, 그 깊은 상처를 위로하다 | 나의 서재 2016-10-05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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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아쿠아리움

데이비드 밴 저/조연주 역
arte(아르테) | 2016년 09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화해하지 못한 상처들을 용서하고, 용서받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는 냉정하고도 따뜻한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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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왜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가.’
   인간에게 있어 가장 큰 비극은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때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얻은 상처가 가장 깊은 상흔을 남긴다. 화해를 함에 있어 모든 걸 다 용서하고 잊겠다 하는 것은 거짓이다. 잊었다고 하는 것 또한 망각일 뿐, 마음 한편에 묻어둔 상처는 저도 모르게 불쑥불쑥 되살아나 자신을 할퀴거나 때로는 덧나고 엉뚱하게 불거져서 또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데이비드 밴의 장편소설 <아쿠아리움>은 바로 이런 상처와 용서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리가 서로에게 어떻게 상처를 주며, 그것이 얼마나 잔인한 아픔을 남기는지, 또한 용서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상처들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는 것인지, 아쿠아리움이라는 독특한 발상의 장치를 통해 그려나간다.

   열두 살 소녀 케이틀린은 방과 후면 언제나 아쿠아리움으로 향한다. 어류학자가 되기를 꿈꾸는 소녀는 엄마가 일을 마치고 데리러 오기 전까지 아쿠아리움 속의 물고기를 보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즐겁다. 수조 밖의 세상을 알지 못하는 물고기처럼 소녀 또한 수조 속 물고기들의 세상을 모두 알지 못하지만 그래서 그들과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소녀에게 있어 좁은 수조 속에서 느리게 유영하는 물고기는 자신과 다름없으며 자신이 가보지 못했던 세계, 언젠가 따뜻하고 드넓은 바다로 나아가기를 희망한다.


 

이 세상은 곧 하나의 바다였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좋았다. 매일 밤 잠이 들 때면 나는 수천 피트 아래 저 밑바닥을 상상하곤 했다. 저 수압을 모두 견디며, 그러나 마치 쥐가오리처럼 미끄러지듯, 소리도 없이 한없이 가볍게 저 끝도 없이 펼쳐진 평원 위로 솟아올랐다가, 저 깊고 어두운 협곡 아래로 떨어졌다가, 다시 소용돌이를 그리며 새로운 고원 위로 솟아오르는 것이다. 나는 이 세상 어디라도 갈 수 있었다. 멕시코나 괌, 북극이나 아프리가 어디라도, 물이라는 한 가지 원소로 이루어진 모든 곳이 집이었다. / 34p

  



  어느 날, 소녀는 아쿠아리움에서 한 노인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매일같이 만나 함께 물고기를 구경하며 친해진다. 대부분 물고기의 외관을 묘사하며 서로 감탄하기도 하고, 물고기에 대해 꽤 깊은 상식을 가지고 있는 소녀가 노인에게 설명해주기도 한다. 단순히 물고기에 대해 서로 질문과 답을 하는 대화에 불과한 듯하나 물속 생명체의 경이로움을 넘어서 삶에 대한 관조적 태도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정답이 없는 것 같은데. 마침내 노인이 입을 열었다. 정답이 없는 게 가장 좋은 질문이지. 해마가 어떻게 생겨났을지 상상이 잘 안 되는구나. 녀석들은 왜 육지의 말 같은 머리를 하고 있을까. 둘이 그렇게 닮았다는 건 아무도 모를 텐데 말이다. 말은 해마를 보지 못할 테고, 해마도 말을 보지 못할 테고, 양쪽 모두를 알아볼 만한 것들도 없을 텐데. 지금이야 우리가 이렇게 알게 되었지만, 그래서 어쨌다는 걸까? 이거야말로 제대로 된 질문이겠구나. / 26p

  



  사실 노인은 19년 전 병든 아내와 딸을 버리고 떠났던 케이틀린의 외할아버지였다. 그는 물고기를 사랑하는 손녀를 바라보며 자신의 가족들에게 저질렀던 잘못을 용서받고자 용기를 내는 중이었다. 한편, 이 사실을 알 리가 없는 케이틀린의 엄마는 빠듯한 형편을 꾸역꾸역 살아내느라 딸과 아버지가 만나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엄마에게 있어 아버지란 존재는 죽어 마땅한 사람이었기에, 자신의 불운했던 과거와 현재를 상기시키는 존재였기에 그의 등장으로 충격에 휩싸인다. 늘 가족이 더 있기를 꿈꾸었던 케이틀린으로서는 용서를 구하며 다가오는 할아버지에게 잔인한 분노를 토해내며 격하게 밀어내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다. 마치 가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두 개의 세계가 만난 것처럼 도저히 맞닿을 수 없을 것만 같다.


 

거기서 할아버지를 만났다. 어두운 수조 속에 검은 모래와 흙뿐, 몸을 숨길 만한 바위는 없었다. 할아버지는 유리에 바짝 붙어 서서 벌감펭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벌감펭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물고기 중의 하나였다. 연한 올리브색 날개에, 머리는 하연 솜털로 뒤덮인 나방처럼 생긴 녀석이었다. 가늘고 하얀 더듬이들은 꼭 곤충의 다리 같았다. 게다가 녀석의 몸통은 마치, 서로 다른 두 마리가 붙어 있는 것 같았는데, 정확하게 설명할 수가 없다. 어둠 속에서 녀석들은 변신을 했는데, 결코 가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두 개의 세계가 만나는 것 같았다. / 144p

  



  케이틀린과 할아버지는 엄마의 눈을 피해 몰래 아쿠아리움에서 다시 만난다. 하지만 금방 엄마에게 들켜버리게 되고, 엄마는 아물지 않은 상처가 터져버린 듯 딸에게 폭력을 가하거나 꽤 극단적인 행동을 보이기까지 한다. 수면 아래에 드리우고 있던 상처가 일순간 팍, 하고 튀어 오르는 그 낯설고 두려운 광경은 딸에게도 역시 지우지 못할 상처를 만들고 만다. 모두에게 상흔을 남겨버린 이 가족에게 과연 평화가 찾아올까? 훗날 이 때의 일을 두고 케이틀린은 이렇게 회고한다.
   ‘나는 용서하고 또 잊어야 할 것이다’
   케이틀린은 엄마를 간단히 용서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잊어야 했다. 한 사람의 삶을 당사자가 아닌 이상에야 모두 알 수 없는 법이다. 우리 모두는 가슴 속에 말로 다 할 수 없는 상처를 지니고 있다. 그것을 어느 누구도 헤아릴 수 없다. 그렇기에 어느 한쪽도 용서를 강요할 수 없고, 상처를 쉽게 위로할 수도 없다. 그저 잊으려고 애쓸 뿐, 상처는 또 다른 상처를 남기기에 최대한 끌어안는 수밖에.


어쩌면 이런 것이 우리가 용서라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과거를 모두 청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던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는 현재에 받아들이고 또 인식하면서 끌어안는 것, 천천히 내려놓는 것 말이다. / 337p



  언젠가 아쿠아리움을 방문했던 적이 있었다. 수조 속을 간접적으로 체험해볼 수 있게 하기 위해 얼굴만 넣어서 볼 수 있는 이중 구조 형태의 수족관이었다. 그때 나는 묘한 압박감을 느꼈다. 신기하기보다 얼른 그곳에서 나오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간절했다. 마치 심연의 어두운 밑바닥을 들여다보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이 소설 또한 마찬가지였다. 소설의 까만 표지 속에서 부유하는 물고기들을 보고 있으려니 헤아릴 수 없이 내 마음속을 떠도는 어떤 부유물처럼 느껴졌다. 때때로 그 부유물들이 내 사람들에게도 상처가 되지는 않았는지, 나도 모르게 그들의 마음속에 상흔을 남기지 않았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작품이었다. 누군가를 용서하고 싶을 때, 용서를 구하고 싶을 때 이 책을 읽어보시길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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