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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_ 곤란해도 괜찮아 | 나의 서재 2017-04-12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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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김신회 저
놀 | 2017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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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툰 어른들을 다독이는 아기 해달 보노보노의 따뜻한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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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툰 어른들을 다독이는 아기 해달 보노보노의 따뜻한 메시지!

꾸밈없는 위로를 건네는 이웃집 언니 같은 에세이!

 

 

 

 

 

   “괜찮아, 엄마 여기 있잖아.” 지난 밤, 잠결에 나쁜 꿈이라도 꾸었는지 느닷없이 엉엉 울어대며 나의 목을 끌어안는 세 살 된 아들을 다독여야 했다. 늘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맹목적으로 나를 더듬어 찾는 존재에게 늘 너른 품을 내주어야 하는 게 부모라는 것을 누가 가르쳐준 적은 없지만, 그렇게 나는 엄마라는 세계로 진입했다. 때로는 눈물도 흘리고, 때로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워하면서.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가장 많이 한 생각이 있다면 “엄마도 이렇게 나를 키웠을까”, “엄마는 외롭지 않았을까” 였다. 누군가에게 말로 해서는 모두 이해를 구할 길이 없는 엄마로서의 역할을 다해내기 위해, 본인은 얼마나 외로운 시간을 보냈을까 궁금해지는 것이었다. 게다가 자식 마음 다치지 않게 헤아려주는 육아서만 봤지, 아이 키우면서 겪는 숱한 고민과 아픔들을 헤아려주고 보듬어주는 책은 읽어보지 못해서 결국 엄마는 다 그런 거라고 자위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내게 이런 글귀가 마음을 두드렸다.

 

 

누군가를 돕는 건 엄청 부자연스러운 일이야.

우리가 하는 일 중에 가장 부자연스러워.

그 부자연스러운 짓을

부모가 되면 평생 해야만 하는 거야. / 125p

 

 

   아, 나는 알고 보면 가장 부자연스러운 일을 자연스럽게 해내려고 애써왔구나. 그래서 이렇게 힘들었던 거구나, 하고 말이다. 평생 해야만 하는 이 부자연스러운 일을 어떻게 단번에 자연스럽고 완벽하게 해낼 수 있겠는가. 이런 위로, 참 위안이 된다.

 

 

 

곤란해도 괜찮아  

 

 

   순박해 보이는 캐릭터 하나가 시선을 끈다. 유명 캐릭터 보노보노를 모티브로 하여 출간된 에세이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표지를 보면 조개를 쥐고 있는 아기 해달의 순박함에 마음이 사로잡힌다. 간혹 투니버스에서 방영하는 이 만화를 흘리듯 본 적이 있지만 제대로 보지 못했던 까닭에, 마냥 귀엽다기보다는 어쩐지 애잔한 느낌이 먼저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보노보노는 곤란해질 것에 대해 미리부터 걱정을 하면서 사는 소심한 성격이다. 잘할 줄 아는 것도 별로 없다. 하지만 친구들을 매우 좋아하고, 소심하기 때문에 소심한 마음을 이해할 줄 알며 걱정이 많은 만큼 정도 많아서 친구의 소중함을 잘 안다. 그래서 온갖 걱정을 다 하면서도 누군가에게 미움 받을 것 같다는 걱정은 단 한 번도 하지 않는다. 함께 등장하는 너부리는 항상 밉상인 짓을 하지만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통찰력 있는 말을 던질 줄 알며, 매사 불평을 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따뜻한 마음씨를 드러내고 상대를 미워하거나 재단하지 않는다. 이처럼 만화 속에 등장하는 또 다른 캐릭터들은 나와 우리 주변에 있는 어느 누군가들과 상당히 닮았다. 그래서 저자가 ‘우리는 모두 보노보노 같은 사람들’이라고 했나보다.

 

 

나는 도리도리를 이해한다.

나는 도리도리를 이해한다.

나도 계속 울기만 한 적이 있어서 잘 안다.

내가 운 이유는 배고프고 싶지 않은데 배고파지는 거랑

춥고 싶지 않은데 추워지는 거랑

무섭고 싶지 않은데 무서워지기 때문이었다.

그랬기 때문이었다. / 32p

 

 

   무엇보다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는 이웃집 언니 같은 솔직담백한 언어가 매력적인 에세이다. 그녀의 친구, 사랑, 부모 사이의 관계에서 느낀 고민이나 어려움을 보노보노로부터 위로 받은 경험을 통해, 그녀처럼 어른이 되었으나 여전히 서툴기만 한 우리들에게 가벼운 넋두리 속에서 잔잔한 위로와 깊은 울림을 준다. 대중과 소통해야 하는 방송작가이자 다수의 에세이를 집필한 경험 덕분인지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 속에서 사사롭지만 가장 중요한 이야기들을 화두로 꺼내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런 점에서 ‘진정한 위로는 내가 받고 싶은 위로’라던 첫 장의 내용이 퍽 마음에 와 닿는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면서 곤란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보노보노에게 야옹이 형이 무심코 툭, 내뱉은 말, 살아 있는 한 곤란하게 돼 있다고. 곤란하지 않게 사는 방법 따윈 결코 없다고. 언젠가는 그 곤란함도 끝날 거라며 마음껏 곤란해 할 시간을 마련해주는 야옹이의 모습은 억지로 자신과 타인을 위로하려들지 않고, 노력해도 안 되는 일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저자의 담담한 위로와 닮아있다.

 

 

 

 

 

완벽함보다는 충분함

 

 

   아이를 낳고 나서 새롭고 재미있는 경험에 대한 강박이 늘어났다. 유년시절에 내가 해보지 못한 것들을 아이에게 일찍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해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 다 그렇겠지만, 하루를 심심하게 보내고 나면 그저 무의미하게 보낸 것만 같은 기분을 감출 수 없다. 어쩌면 집에서 아이를 보는 일만 하는 탓에 마치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만 같은 죄책감 같은 것을 느끼는 탓일지도 모르겠다. 아이와 뭐라도 더 하면, 더 움직이면 무언가를 했다는 일종의 성취감으로 죄책감을 덜어낸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재미있는 일도 재미없는 일도 다 이 세상의 것’이라고, 오늘의 단조로웠던 일상이 결코 무의미한 것은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것을 갈구하는 것 이상으로 하고 있는 일을 매일 하는 것이야말로 더욱 대견한 일이라고. 매일 똑같은 일상의 육아생활에 지친 나와 오늘도 자신의 업과 새로운 일 사이에서 고민하는 내 사람에게 큰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할 수 없는 일을 해낼 때가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을 매일 할 때, 우주는 우리를 돕는다. (김연수, 『지지 않는다는 말』주에서. 마음의 숲 출간)“

마치 나에게 들려주는 듯한 문장 앞에서 절로 얼굴이 붉어졌다. ‘어떤 일을 매일 한다’는 말은 왜 이리 사람을 숙연하게 만드는가. 지루함이나 숨 막힘 따위 안 느끼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계속해나간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대견한 일 아닌가. / 119p

 

 

 

 

 

 

   저자는 보노보노가 좋은 이유는 젠체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심오한 이야기를 심오하게 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심오한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툭 내뱉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특히 엉성한 번역체가 주는 느슨하고 여유로운 느낌으로 인해 슬렁슬렁, 살고 싶다던 그녀의 이야기에 공감을 느낀다. 만화를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책에 수록된 단편들과 은은한 그림체만 보아도 가만가만 힐링이 되는 듯하다. 완벽하려 애쓰기보다 재미없는 것은 재미없는 대로 재미있는 것은 재미있는 대로 나에게 주어진 것들에 충실하게 사는 삶을 살라고 말하는 보노보노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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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_ 버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 | 나의 서재 2017-04-09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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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손솔지 저
새움 | 2017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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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듬히 기우는 현실, 폐허 같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상처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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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언과 읊조림을 오가는 기이하고 낯선 상상력과 섬뜩하리만치 담담한 문장들!

비스듬히 기우는 현실, 폐허 같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상처들의 이야기!

 

 

 

   그로테스크한 상상력이 우리 문학 전반에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때가 있었다. 천운영과 편혜영을 필두로 하여 현실을 비틀어 낯선 상상력을 덧입힌 그로테스크문학은 당시 문학을 전공으로 삼기 시작했던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날선 직관과 내밀한 욕망, 기이하면서 섬뜩한 문체에 매료되어 나는 물론, 같은 출발선에 선 동문들은 하나같이 그와 닮은 글을 쓰고 싶어 했다. 당시로서는 이른바 기존 문학이 지닌 정통성에서 필사적으로 달아나는 것만이 새로운 문학세대가 지녀야 할 덕목이라고 믿었는지 모르겠다. 2010년 이후에 들어서면서 우리 문학은 여전히 그로테스크한 미적 감각을 잃지 않았지만, 보다 세련되게 정돈되어 발전해온 듯하다. 특히 여성혐오와 페미니즘, 개인과 사회 공통의 트라우마에 집중한 형태의 작품들이 상당히 눈에 띈다. 그 중 <먼지 먹은 개>에 이어 <휘>를 발표한 손솔지라는 젊은 작가의 작품이 인상적이다. 앞서 밝힌 주제의식과 더불어, 세련된 그로테스크함의 환상적인 미학과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정밀하게 풀어낸 밀도 높은 작품이라는 느낌을 감출 수 없다.

 

 

 

 

 

 

 

한 글자에서 시작된 8편의 단편들

 

 

   휘, 종, 홈, 개, 못, 톡, 잠, 초. 여덟 편의 소설은 모두 한 글자에서 비롯되어 마침내 확장되었다. 휘- 휘- 누군가를 애타게 부르듯 유리창에 부딪히는 바람소리에, 작가는 문득 바람이 흘리고 간 이야기를 밤을 새워서라도 들려주고 싶었다고 한다. 미처 나에게로 와 닿지 못한 채 유리창에 부딪치고 만 바람의 그 쓸쓸함을 생각하다, 휘- 라는 한 글자가 끌어안고 있던 숨겨진 이야기들을 한 편의 글로 완성한 것이 소설만큼이나 흥미롭다. 표제작인 소설 「휘」는 이름에서 휘파람 소리가 나는 소년의 이야기다. 소설에는 하나 같이 이름을 알 수 없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름에 ‘악’자가 들어간다던 아버지와 단 한 번도 이름을 불러 본 적 없는 어머니, 지니라는 예명으로 뭇 남성들에게 몸을 파는 소녀, 고약한 악취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이름 모를 사내와 가만히 땅콩 껍질을 까주던 반송장의 노인 모두에게 말이다.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모두 불행해졌다던 소년의 독백은 그들을 어디로 데려갔을까. 이름이 없는 이들, 그래서 누구나일 수 있는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마음속에 스산한 바람 한 점을 불러일으킨다. 표지의 그것처럼.

 

 

그러고 보면 어머니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나의 이름을 불렀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어머니의 이름을 불러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에게도 이름이 있었던가. 어머니는 집 안의 냉장고이거나 선풍기이거나 식칼이거나 양파망처럼 그 자체로 고유명사였다. / 「휘」 28p

 

 

   여덟 편의 단편 중 가장 강렬한 인상을 주는 작품은 단연 「종」이다. 계집은 요물이라던 아버지, 모두를 버리고 사라진 어머니, 모두의 종이 된 누이, 그런 누이를 증오하는 ‘나’가 등장한다. 여기서 종은 매우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다. 치이고 치여 나의 몸으로 하여금 깊은 울림을 발산하는 종(鐘)이든 자의적으로는 살 수 없는 종속의 의미인 종이든, 사내들에게 몸과 마음을 휘둘려 ‘나’를 욕보이는 누이는 경멸의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균형이 무너진 가족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누이는 아버지의 불순물과 욕설을 거름으로 배양되었다’와 같이 거침없이 담담한 문장으로 담아낸 젊은 작가의 패기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이어 소설 「톡」 역시, 몇 번의 결혼을 거듭하는 엄마로부터 받은 상처들을 베란다 밖에서 빨대를 이용해 물방울을 추락시키는 행위로 달래곤 했던 소녀로 하여금 이지러진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잠」 또한 현대 사회에 만연한 ‘불면증’이라는 병증을 통해 가족 안의 상처들을 몽환적으로 풀어나간 이색적인 작품이다.

 

 

그건 바로 그녀가 모두의 종이 되었기 때문이다. 누이는 아무 때나 잘 울리는 종이 되었다. 나는 그 울림이 누군가 아프거나 슬프거나 가족이 죽었을 때의 소리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누이를 더 경멸할 수 있었다. 누이와 손가락 하나라도 접촉하는 순간, 나는 오염되고 말리라. / 「종」44p

 

 

   소설 「개」는 제목그대로 개를 화자로 등장시켜 그가 바라보는 인간 세상의 단면들을 담아낸다. 상징과 은유의 기법이 많이 녹아든 다른 작품들에 비해 가장 일반적인 소설에 가까운 작품이나 그래서 가장 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반면, 「못」은 상하이와 서울에 각각 떨어져있게 된 연인의 이야기를 통해 소통 불능으로 인해 못 박히듯 박힌 마음의 상처들을 그리고 있다. 여덟 편의 작품 중 그로테스크한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은 바로 「홈」인 듯하다. 고3 수험생 교실 안의 풍경을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함과 동시에, 2명의 자살 학생이 나온 뒤에 저마다 마음속에 깊이 파인 상처들을 홈에 비유함으로써 기이하면서도 낯선 상상력을 견고하게 써낸 수작이다. 마지막 작품인 「초」는 각자의 사정과 시민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많은 고민을 하게 되는 ‘세월호 침몰’ 그 이후의 이야기다. 시류를 읽어내는 날카로운 시선과 함께 광장에 모여 초를 들어야 했던 사람들, 우리 자신에 내재한 복원력을 믿었던 그 수많은 사람들의 희망이 잘 녹아든 소설이었다.

 

 

가방에 노란 리본을 매달고 다니는 것이 위험한 일이 되었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깨달았다. 언제 누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나를 돌려세울지 모르는 일이었다. 슬픔을 잊는 것이 죄가 아니라 빨리 잊지 못하는 것이 죄가 되었다.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를 추모하고 가슴 아파하는 일이 철 지난 연극을 반복하는 것처럼 타인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거리에서 우리는 살고 있었다. / 「초」240p

 

 

사람들은 망설이 없이 나아갔다. 끝을 알 수 없이 길게 이어지는 초의 행렬은, 한곳을 향하고 있었다. 가차 없이 잘라내고 살아가려고 해도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이 모두의 마음에 빛을 밝히는 순간이었다. 나는 이 순간의 우리가, 끝없이 이어지던 질문의 대답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 「초」248p

 

 

 

뒤틀린 가족, 불온한 남성상  

 

 

   여덟 편에 이르는 작품을 읽으며 손에 잡히는 가장 큰 주제가 있다면 바로 ‘가족’, 그 속의 ‘불온한 남성상’이었다. 일종의 페미니즘 문학의 성격을 지녔는데, 가족이라는 주제 안에서 여전히 남성중심의 사회에 머물러 발생하는 각종 부정적인 현실과 폭력들에 저항하는 흔적들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여러 편의 소설에 걸쳐 묘사되는 아버지들은 방문판매 업자나 신문 배달부보다 더 드물게 집을 드나들고, 눈을 현혹하는 살덩어리와 웃음을 빌미로 남자들에게 기생해서 살아가려는 것이 여자들이라고 말한다. 중국인 아내를 두고서 한국에 내연녀를 두고 있는 의사, 스카치 캔디를 주며 키스를 요구하는 어머니의 연인 등 어디에도 이상적이거나 건강한 남성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 남성으로부터의 평등을 갈구했던 많은 페미니즘 문학들이 2000년대 이후인 오늘날까지도 이처럼 젊은 여성 작가의 작품에서 주요한 화두가 된다는 점은, 여전히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숙제들을 많다는 점을 시사하는 바이기도 하다.

 

 

어쩌면 집 안 곳곳에서 아버지가 숨겨두고 간 심벌즈가 제멋대로 부딪쳐 내는 소리가 아닐까. 어머니는 늘 아버지의 이름을 문제 삼았다. 아버지 이름에는 악樂 자가 들어 있었다. 늘 즐겁게 살기를 바라던 조부의 뜻이었다. 아버지는 정말 즐거웠을까. 적어도 어머니만은, 아버지의 그 이름에 깊이 찔려 치명상을 입은 채로 겨우 삶을 연명했다. 날카로운 기역 받침에 가슴 한구석이 꾹 압정처럼 눌려 이따금 참지 못한 비명을 흘리곤 했다. / 「휘」13p

 

 

관객 없는 무대 위에서 연기하듯 아버지는 자상하게 고기를 구워 잘랐다. 희고 보드라운 비계가 켜켜이 낀 살코기는 뜨겁게 달아오른 불판에 쩍 눌어붙으며 흰 정액 같은 불순물을 길게 흘렸다. 누이가 널어놓은 내 요 쪽으로 불판 연기가 몰려간다. 누이는 눈치 없이 또 내 밥숟갈 위에 살그머니 고기 조각을 올린다. 나는 누이의 젓가락이 닿은 살점을 밥공기 밑으로 추락시킨다. 아버지는 한 뺨이 거무스름하게 탄 것이나 붉은기가 빠지지 않은 속살을 구별하지 않고 입에 집어넣어 씹는다. / 「종」54p

 

 

 

약자에게 가하는 폭력, 버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

 

 

   결국 약한 것들에 대한 폭력과 버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이 손솔지의 작품을 지배하는 주요 정서인 듯하다. 약자가 폭력에 노출되는 모습을 통해 세상의 모든 연약하고 나약한 것들에 대한 자조 섞인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드러나기 까닭이다. 「개」에서는 외국인 며느리가 “나는 사람 아니야”라는 신음을 토해내며, 「톡」에서는 남성에의 종속성과 버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여러 번의 재혼을 거듭하는 엄마가 등장하며, 「잠」에서는 어머니의 연인이 키스를 요구하여도 입을 다무는 것밖에 할 수 없는 그녀가 있다. 엄마가 자신을 두고 사라졌지만 가장 아끼던 스카프는 두고 갔다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휘」의 소녀에게서는 버려지는 두려움에 대한 자기방어의 태도를 드러내기도 한다. 그래서 모두의 종이었던 누이가 점차 아버지로부터 벗어나 ‘나만의 방’을 만들겠다고 선언하며 자신의 ‘언어’를 찾아나가는 과정은 많은 영감을 준다. 자신의 가능성을 찾아 최대한 나아가려는 모습은 어쩌면 우리 모두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비밀 키스의 대가로 스카치 캔디를 받곤 했다. 어머니의 연인은 이가 앙망으로 뒤틀려 있었는데, 종유석 같은 그의 송곳니에 찔려 혓바닥에 상처가 생기면 캔디 포장을 뜯어 얼른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쌉싸래한 혀를 감싸는 다디단 커피 맛은 끔찍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단맛을 입안에서 조용히 녹이며 입을 다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충치보다 무서운 일은 세상에 널렸고, 그녀는 아직 겁이 많았다. / 「잠」202p

 

 

그녀가 이틀 동안 밤새 호프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돌아온 날, 어머니는 연인과 함께 모든 짐을 가지고 떠나며 고요를 남기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빈집은 세간 하나 남지 않은 채 처참한 알몸을 드러냈다. 가지고 떠날 가치가 없는 것들만이 초라한 형색으로 남았다. 여태 가구들이 등을 대고 있던 숨은 벽지들은 검푸르게 물들어 있었다. 벽지를 타고 올라온 곰팡이들은 정면에서 마주했을 때에 그녀는 깨달았다. 그들이 두고 간 물건 중에 가장 쓸모없고 버리고 싶었던 것은, 다리 한 짝이 고장 난 앉은뱅이 책상이나 전기 코드가 벗겨진 헤어드라이어가 아니었다. 바로 그녀였다. / 「잠」204p

 

 

   약자가 쉽게 폭력에 노출되는 세상, 버려지는 것이 두려워 관계를 개선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들의 모습을 포착해내 자신만의 소설적 언어를 완성해나가는 손솔지의 작품은 여러모로 음미할 부분이 많아서 즐거운 독서였다. 연일 따뜻한 날씨가 계속되다 오늘은 갑자기 찬바람이 불어 창문을 두드리니, 어쩐지 이 책에서 금방 헤어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휘- 하고 바람이 불 때마다 이름에서 휘파람 소리가 나는 소년이 떠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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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발_ 같은 땅, 다른 현실을 살고 있었던 그들의 이야기 | 나의 서재 2017-04-04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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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고발

반디 저
다산책방 | 2017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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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부조리한 인권과 사회주의 체제의 민낯을 고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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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작가가 쓴 진짜 북한의 현실!

북한의 부조리한 인권과 사회주의 체제의 민낯을 고발하다! 

 

  한반도의 북반부에 위치해 지척에 닿아있지만 우리에겐 여전히 멀고 먼 나라, 북한. 자체 매체에서 선전하는 북한의 모습과, 탈북자 출신자들이 몇 차례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대한민국으로 건너와 북한의 실상을 방송으로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 그 간극이 커서 심리적 거리는 더욱 멀게만 느껴진다. 분명 한 민족, 한 핏줄이지만 그들의 빈번해지는 대남도발의 행위를 볼 때면 이념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그들과 유대감을 갖기란 더더욱 힘들어 보인다. 그런 와중에 이목을 끄는 한 권의 책이 출간되었다. ‘북한에 살고 있는 작가가 목숨을 걸고 써서 반출시킨 소설!’이라는 광고 문구가 단숨에 시선을 사로잡는다. 기나긴 억압과 부조리 앞에서 높은 응분을 가장 낮은 목소리로 외치는 듯한 제목의 <고발>이다.

 

 

 

북한의 실상을 오롯이 담은 7편의 단편소설

 

 

   <고발>은 ‘반디’라는 이름으로 북한에서 살고 있는 작가가 탈북자, 브로커 등 여러 사람을 통해 남한으로 원고를 반출시킨 끝에 탄생한 단편집이다. 총 7편의 작품으로 구성된 소설들은 사회주의 체제 속 북한의 내밀한 현실들을 굉장히 사실적인 캐릭터들을 통해 그려나간다. 그러면서도 때로는 은유적으로, 때로는 위트 있게 표현함으로써 사실주의에 매몰되지 않은 문학적 가치를 완성하였다. 분명 언어적으로 우리와는 차이가 있지만, 매우 가독성이 높고 간결하면서도 적확한 묘사에 빈틈이 없을 정도이다.

 

 

   7편의 소설 속에는 북한 체제 속에서 누구 하나 자신의 뜻대로 살 수 없어 절망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담겨 있다. 「탈북기」는 ‘반당 반혁명 종파분자’로 낙인찍힌 아버지의 죄가 연좌제처럼 자식과 또 그 자식들에게까지 미쳐 감시 대상이 되는 일을 그린 작품으로, 체제의 부조리함이 대대로 전해지는 현실로부터 탈출하려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절절하게 펼쳐진다. 「유령의 도시」는 마르크스와 김일성의 초상화에 놀라 경기를 일으키는 아이와 엄마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사회주의 체제 속의 평양을 ‘공산주의 유령이 떠도는 도시’에 비유함으로써 서슬 퍼런 독제의 그늘을 여실히 보여준다. 한편 「준마의 일생」에는 국가훈장 2급에 13번째 훈장을 받은 사회주의 노력 혁신자 설용수가 등장한다. 그는 그 스스로가 준마가 되어 일생동안 나라를 위해 큰 공로를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냉골인 바닥과 끼니 걱정으로 차디찬 현실이라는 자가당착에 빠진 한 남자의 회한을 그리고 있다.

 

 

149! 그것은 참으로 무서운 말이었다. 도장도 그저 도장이 아니라 목장에서 가축들의 잔등에 지워지지 않게 불에 달구어 찍어대는 쇠도장이었다. 옛날엔 노예들에게도 찍었다던 그런 무서운 철인이 지금 민혁 아버지와 그의 삼촌에겐 물론, 여리고 여린 민혁의 잔등에까지 깊숙이 찍혀져 있는 것이었다. / 『탈북기』 중에서 39p

 

전영일의 새끼손가락에 제 손가락을 걸며 “약-속-하-다!” 외쳐댔던 그 신념, 그 기대가 한낮 신기루에 불과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을 때, 그 실망과 회오의 괴로움을 이 세상 무엇에 비길 수 있었으랴! 하여 누구를 탓할 수도 원망할 수도 없는 뼈저린 상실의 아픔을 안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 혼자 부대껴야 했을 설용수가 아닌가! 그러고 보면 결국 도끼산장이라는 말은 안전부 선로공들이나 느티나무에 가해진 폭언인 것이 아니라 자가당착에 빠진 설용수라는 인간의 자기규탄의 부르짖음이었던 것이다. / 『준마의 일생』 중에서 108p

 

 

  「지척만리」의 경우, 수록된 작품들 중에서 가장 뼈아픈 북한의 실상을 여실히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노모가 위급하니 빨리 오라는 전보를 세 차례나 받았지만 ‘여행질서’라는 당의 통제 하에 이마저도 마음대로 갈 수 없는 인민들의 가혹한 처지가 애처롭게 펼쳐진다. “완악한 이 세상은 명철에게 단 한 발자국의 양보도 할 줄 몰랐다”는 문장이 유독 사무친다. 「복마전」은 노인 오 씨가 딸의 원만한 해산을 위해 동생에게 멧돼지열을 부탁한 것을 가지러 가다 우연히 김일성을 만난 이야기로, 그의 은혜를 입어 어버이 수령을 우상화하는 선전 도구로 이용되는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김일성이 기차를 이용할 거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32시간이나 역에서 머물러야했던 오 씨가 인민의 고통 따위 안중에도 없는 김일성을 늙은 마귀에 비유하며 깊은 환멸을 토해내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이어지는 「무대」는 체제에 철저히 순응하며 살아온 군부대보위부장인 아버지와 북한의 현실에 회의감을 느끼는 아들 홍경훈의 대립을 보여줌으로써 젊은 세대들의 깨어있는 의식들을 엿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작품이다. 시당 청사를 「빨간 버섯」에 비유한 마지막 작품은 어느 도일보사 특파기자의 취재기를 통해 이 땅의 독버섯과 같은 부조리한 체제를 냉철하게 고발한다.

 

 

“진실한 생활이란 자유로운 곳에만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억압, 통제하는 곳일수록 연극이 많아지기 마련이구요. 얼마나 처참해요. 지금 저 조의장에선 벌써 석 달째나 배급을 못 타고 굶주리는 사람들이 애도의 눈물을 흘리고 있어요. 꽃을 꺾으려고 헤매다 독사에게 물려 죽은 어린아이의 어머니가 애도의 눈물을 흘리고 있단 말입니다. 그래 그들의 눈물이 진실이란 말입니까? 예? 백성들을 이렇게 지어낸 눈물까지 흘릴 줄 아는 명배우로 만들어버린 이 현실이 무섭지도 않은가 말입니다.” / 『무대』 중에서 209p

 

 

허윤모의 질척한 시선은 조금 전 고인식이 군중의 머리 너머로 그것을 바라보았을 것이 틀림없는 시당 청사-빨간 버섯을 직시하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귀중한 생명들이 저 독소에 희생되고 있는 것인가! 과연 그 사자머리의 마도로스 파이프가 지껄였다던 구라파의 붉은 유령이 이 땅에 뿌린 것이 인간의 모든 불행과 고통의 화근인 저 빨간 버섯의 씨앗 따위였단 말인가! / 『빨간 버섯』 중에서 268p

 

 

 

목숨을 걸어서라도 써야만 했던

 

 

   작가 반디가 작품에서 묘사하고 있는 북한의 모습들은 차마 이것이 진실이 아니기를 바라게 된다. 연로 보장 나이가 되기 전엔 농장원이라는 직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어머니, 제대 후 집단 배치 명령에 할 수 없이 검덕산의 광부가 되어 고향에도 갈 수 없는 남자, 신문사는 물론 지방당의 검열을 받아야 하는 기자, 이 땅에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아이 갖기를 주저하는 여자 등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뜻대로 살 수 없는 비참한 현실 속을 살아간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이것이 만들어진 세상이 아니라 이 순간에도 존재하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명철은 목놓아 울며 땅이라도 치고 싶었다. 하나 때로는 울음도 반항으로 되는 법이다. 반항 앞엔 오직 가차없는 죽음밖에 없는 이 땅, 그래서 아파도 웃고 쓰거워도 삼켜야만 하는 것이 이 땅의 체질이었다. / 『지척만리』 중에서 122p

 

 

   이런 이유로 시대에 대응하여 문학의 존재론적인 사명을 다하려 애썼던 작가의 대담한 용기에 박수를 건네고 싶다. 목숨을 걸고 쓴 그의 작품들은 다행스럽게도 북한에서 벗어나 이렇듯 세계 곳곳에서 찬사를 받고 있지만, 그의 삶은 어떻게 흘러갔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책의 마지막 작품인 「빨간 버섯」이 1993년에 쓰였다고 하니, 이미 세월은 20년이 훌쩍 넘어버렸다. 그 뒤에 쓴 작품들이 있다면 좀 더 희망과 자유가 그 속에 담겨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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