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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싸우고 살아남다_ 말과 글의 힘을 믿었던 25인의 여성들 | 나의 서재 2020-04-13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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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장영은 저
민음사 | 2020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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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글쓰기로 온전히 자기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간 여성들이 전하는 메시지를 기억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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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한계가 되었던 시절, 말과 글로 쓰고 싸우고 살아남은 여성들!

우리는 글쓰기로 온전히 자기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간 여성들이 전하는 메시지를 기억해야만 한다

 

 

   어쩌면 그녀들은 개인의 삶을 살았을지 모르겠으나, 우리는 그들에게 많은 빚을 졌다.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를 읽다보면, 그녀들이 기꺼이 쓰고 싸우고 살아남음으로써 새롭게 펼쳐 보인 세상 속에서 내가 살고 있음에 감사하게 된다. 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한계가 되었던 시절, 평생에 걸쳐 편견과 차별, 폭력에 맞서야 했던 그녀들이 유일하게 믿을 수 있었던 것은 ‘말과 글이 지닌 힘’이었다. 제각기 다른 시대에 다른 환경 속에서 살아왔지만 모두들 한결같이 읽고 쓰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것은 한낱 취미가 아닌 생존이었고, 본능이었으며 삶 그 자체였다. 때문에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글쓰기로 자신들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간 여성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지금 우리에게도 이어지고 있으며, 미래의 ‘그녀들’에게 우리 또한 전해주어야 할 것들이 있기에.

 

 

 

 

 

 

글 쓰는 여자는 온전히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는 2020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세상을 바꾸기 위해 분투해 온 여성들의 생애를 복원하고, 그들의 말과 글을 차근차근 모아 널리 전하고자 출간된 책이다. 마르그리트 뒤라스, 버지니아 울프, 프리다 칼로, 에밀리 디킨슨,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 수전 손택, 박경리, 제인 구달에 이르기까지, 책 속에 등장하는 25인의 여성들의 면면을 살펴보자면 나이도 시대도, 성격도 모두 제각기 다르지만 책 읽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고 글을 씀으로써 억압과 편견에 저항한 공통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한 문장 한 문장에 자신의 전부를 걸었던 이들, 병들어 가는 사회를 치료하기 위해 문학의 역할의 중요성을 믿었던 이들, 무엇보다 내가 되고 싶은 여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랐던 이들의 삶과 철학은 짧지만 강렬해서 더욱 깊은 여운을 남긴다.

 

 

 

“식민지의 백인 여자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다. 열두 살짜리 백인 소녀도 마찬가지다.” 어머니는 딸을 좋아하는 남자에게 무엇을 받아 낼 수 있을지 그것만을 따졌다. 뒤라스는 그런 머니가 야속하고 부끄러웠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게다가 베트남에서는 수시로 전염병이 돌아 멀쩡한 사람들이 갑자기 죽어 나가곤 했다. 뒤라스는 질병과 죽음, 가난과 고독에 몸서리쳤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책을 읽고 글을 쓸 때 그 공포는 잠시 사라졌다. 자신이 누구인지 온전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경험하며 뒤라스는 글 쓰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다. / 마르그리트 뒤라스 편 중에서 17p

 

 

1925년에 『댈러웨이 부인』, 1927년에는 『등대로』를 연이어 발표하면서 버지니아 울프는 드디어 작가로서 자신감을 획득한다. “내 마음 속에서 자기 자신의 목소리로 무엇인가 말하는 방법을 찾아냈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나자 일종의 해방감도 느꼈다. “매일같이 아버지와 어머니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나 『등대로』를 쓰고 난 다음에, 나는 그들을 내 마음속에 묻어 버렸다.” 버지니아 울프는 “나는 이제 누가 칭찬하지 않아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고 선언했다. / 버지니아 울프 편 중에서 40p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글 쓰는 여자가 얼마나 눈부시게 성장할 수 있는지를 증명해보였고, 도리스 레싱은 과거에 함몰되지 않고 현재에 안주하지 않기 위해 94세까지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시도니 사브리엘 콜레트는 여성의 삶은 그 자체로 이미 멋진 이야기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었고, 제이디 스미스는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지금 쓰고 읽는 것에 구원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 중 글쓰기가 삶의 전부였기에 글을 쓸 수 없는 최악의 상황과 타협하지 않고 끝내 생과 이별한 실비아 플라스의 이야기가 유독 마음을 두드린다. 그녀는 문학에 심취한 전도유망한 우등생이었다. 그러다 인류학을 전공한 시인 지망생 테드 휴즈를 만나 결혼을 하면서 남편의 명성은 날로 높아져 가는데, 정작 자신은 두 아이를 키우며 읽고, 쓰고 일하는 삶에서 이탈해가고 있는 상황에 괴로워했다. 더욱이 지속적인 생활고로 “우리는 지금도 그렇거니와 앞으로도 결코 글을 써서 먹고살지는 못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원하는 유일한 직업이 그것인데도. 에너지와 시간을 쓸데없이 낭비하지 않고 글 쓰는 작업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돈을 벌려면 뭘 해야 할까?” 던 그녀의 고뇌야말로 글 쓰는 일이 먹고사는 일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오늘날의 현실과 결코 다르지 않기에 뼈아프다.

 

 

 

   무엇보다 실비아 플라스는 돈이 없는 것보다 더욱 고통스러운 상황 즉 “최악의 상황은, 이 모든 상황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나쁜 상황은, 글을 쓰지 않고 사는 삶”이라며 아파했다. 그녀에게 글쓰기는 “종교적인 행위”와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이 세상과 인간에게, 또 세상과 인간이 품고 있는 가능성에 질서를 부여하고, 그들을 개선하고, 다시 배우고 다시 사랑하는 일”을 포기한 채로 살고 싶지 않았기에 가스오븐에 머리를 박은 채 생을 마감한 그녀의 선택은 비극적이라기보다는 숭고하다. 한때 글만 쓰며 사는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매달 꾸준히 들어오는 월급에 타협했던 내 모습이 떠올라서일까, 두 아이를 돌보는 일이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마다 나를 버티게 하는 것이 책과 글쓰기이기 때문일까. 글을 쓰지 못할 바에야 죽음을 택했던 실비아 플라스의 삶은 유독 나를 공감하게 하고 슬프게 한다.

 

 

 

콜레트는 낙천적이었다. 자신에게 닥친 불운을 새 출발의 기회로 전환시키는 승부사 기질도 강했다. 결단력도 뛰어났다. 한때 자신의 책이 남편의 이름을 달고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가며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모습을 쓸쓸하게 지켜보기도 했지만, 어리석고 뼈아픈 경험을 두 번 다시 반복하지는 않았다. 콜레트는 자기만 쓸 수 있는 글이 무엇인지 고민했고, 항상 명쾌한 답을 찾았다. 활동적이었던 콜레트가 지병으로 칩거하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콜레트를 염려하고 동정했지만, 콜레트는 방 안에서 파리 사람들을 제대로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 작가인 자신에게는 전혀 문제가 아니라고 응수하며 4년 동안 더욱 날카로운 글들을 써내려갔다. /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편 중에서 49p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 시절 미국 최초의 히스패닉계이자 여성으로서는 세 번째 연방 대법원 대법관을 지명하려 했을 때, 이를 문제 삼는 여론을 향해 여성의 입장을 대변한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의 이야기 역시 인상적이다. 미국 역사상 두 번째 여성 연방 대법원 대법관인 긴스버그는 평소 대법원에 여성 대법관이 몇 명이길 바라느냐고 질문을 받을 때마다 “아홉 명 전원”이라고 당당하게 밝혔다. 그녀가 하버드대 로스쿨에 입학할 당시만 하더라도 540명 가운데 여성은 9명뿐이었고, 여성 혐오와 차별이 공기처럼 존재하던 시절이었다. 긴스버그는 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여성의 삶은 근본적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그녀는 여성들이 불평등과 적극적으로 맞서고, 젠더 평등과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일관되게 고수하며 소수 의견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여성이 여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삶의 원칙을 수호했다. 결국 그녀는 차기 대법관인 소토마요르를 적극적으로 옹호함으로써 여성의 권리를 지지하고 신장시켰다. 이처럼 여성의 자리가 커지는 것을 여성이 두려워할 때, 뛰어난 여성을 여성이 모른 척할 때, 핍박받는 여성을 여성이 지켜 주지 않을 때 여성 운동은 뒷걸음치게 된다는 경고를 보여준 그녀의 태도는 우리에게 시사 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왜 인간의 희생을 필요로 하는가. 왜 우리는 아직도 여전히 그리고 언제나 계속해서 희생양을 필요로 하는가? 오래된 신들의 이야기 속에서 “인간적인 것”을 발견해 낸 볼프는 “희생양을 필요로 하는” 사회에 질문을 던졌다. 어쩌면 볼프 자신이야말로 분단과 통일 시대의 갈등 상황에서 여러 차례 “희생양”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새로운 질문을 계속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믿었다. “이 몸을 끌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 나에게 어울리는 세계, 나에게 어울리는 시간은 과연 어디에 존재할 것인가.” 코린토스의 희생양 메데이아는 마지막까지 묻고 또 물었다. / 크리스타 볼프 편 중에서 122p

 

 

한평생 많이 슬프고 크게 아팠던 박경리는 그 고통 앞에 굴복하지 않았다. 글을 써 내려가며 그 무엇에도 “눌리지는 않으리라는 독한 마음”을 지킬 수 있었다. 2008년 4월 박경리는 마지막 시를 남긴다.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모진 세월은 그냥 물러가지 않았다. 억울하고 혹독했던 시간들과 싸우기 위해서 무엇보다 살기 위해서 박경리는 소설을 썼다. “소설이란 삶과 생명의 문제이며, 삶이 지속되는 한 추구해야 할 무엇이지요.” 글 쓰는 여자는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 박경리 편 중에서 194p

 

 

“성공은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자크 디네센에게 이야기는 생명이자 구원이었다. 그의 신념은 한 위대한 철학자의 사상적 기반이 되기도 했다. 한나 아렌트는 이자크 디네센의 작품에서 “모든 슬픔은, 말로 옮겨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에 관해 이야기한다면 참을 수 있다.”는 통찰을 얻었고, 실제로 그와 같은 믿음이 고통을 직시하며 현실을 분석하고 윤리적 판단의 기준을 내린 한나 아렌트의 저작들을 관통하고 있다. / 221p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는 글 쓰는 여성, 삶을 주체적으로 살고자 했던 25인의 여성들을 통해 억압과 차별의 여성서사를 들여다보게 한다. 뿐만 아니라 문학이 우리 시대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나에게 있어 ‘글쓰기’는 어떤 의미인가를 생각해보게 한다. 두 아이를 키우며 오로지 책과 글쓰기를 통해 위안을 얻고 있는 요즘, ‘그녀들’이 그러하였듯 단순한 취미를 넘어 세상과 소통하는 길이자 내 목소리를 드러낼 수 있는 절실한 도구로 나는 무엇을 쓰고 남길 것인가를 계속 고민해봐야겠다.

 

 

 

  추신, 책에 의하면 마거릿 애트우드의 「그레이스」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를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기에, 서평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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